주간 정덕현

‘아내의 유혹’그녀들, 월경전증후군 있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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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유혹’그녀들, 월경전증후군 있나

D.H.Jung 2009. 4. 10.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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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 급격한 기분 변화, 걱정, 긴장, 슬픔, 우울감, 절망, 자괴감, 죄책감, 격정, 흥분, 민감함, 갈등, 무력감, 집중력 저하... 월경전증후군의 많은 증상들을 읽어나가면서 문득 떠오른 드라마가 있다. 바로 하루가 멀다하고 막장이네, 끝장이네 하며 구설수가 끊이지 않는 드라마, ‘아내의 유혹’이다. 왜 난데없이 월경전증후군이고 또 거기에 ‘아내의 유혹’인가를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다만 그것들이 꽤 닮아있고 그 닮은 구석에는 모종의 사회적 분위기가 일조하고 있다는 의심 때문이라고 해두자.

남자 입장이라서 생리가 주는 일상의 고통을 정확히 가늠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매달 치러야 한다는 그 수고스러움을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다. 그런데 월경전증후군은 바로 그 매달 치러야 하는 수고스러움을 고통으로 바꾼다고 한다. 생리가 시작되기 일주일에서 10일 전에 발생하고 생리가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나면 사라져버리는 이 증후군은 흔히 ‘사랑과 전쟁’같은 드라마에서 갑자기 멀쩡했던 여자가 백화점에서 도둑질을 하다가 들키는 장면으로 그려지곤 한다. 그런 드라마들 속에서는 대개가 그 여자의 행동에 대한 비난이 전면을 차지하고 그 원인은 아주 작게 보여주는 것이 트렌드화 되어 나타나곤 한다. 월경전증후군이 하나의 질환(물론 병은 아니지만 이게 심해지면 월경전불쾌장애라는 병이 된다고 합니다)이라는 인식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니 그 고통은 은연 중에 여성들이 그대로 감내해야 하는 어떤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아내의 유혹’의 악녀 애리(김서형)는 위에서 말한 거의 대부분의 증상(?)들을 성격으로 내면화해 갖고 있는 캐릭터다. 그녀는 드라마 상에서 내내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고, 잔뜩 독이 든 눈빛을 사방에 날린다. 격정과 흥분은 그녀의 트레이드마크고 짜증과 급격한 기분변화는 그녀의 장기다. 그녀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바로 주인공인 은재(장서희)를 괴롭히고 몰아세우기 위함이다. 그런데 과거 조신한 아내였던 은재는 부활해 돌아오면서 애리의 장기들을 그대로 가져와 애리를 공격한다. 그렇게 한바탕 애리를 수세에 몰아넣자, 이번에는 새롭게 등장한 민소희(채영인)가 은재를 괴롭히는 존재로 부각된다. 그녀는 아예 우울증으로 심각한 정서장애를 겪는 정신병자나 다름없다.

이 드라마는 여성들을 타깃으로 하고 있어서 그런지 바로 이 여성들 간의 대결구도가 백미를 이룬다. 그래서 ‘아내의 유혹’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면 편안한 모성이나 사랑 같은 이미지는 좀체 떠오르지 않는다. 대개가 이 신경쇠약 직전에 있는 듯한 여성들의 악에 받친 얼굴들이 떠오를 뿐이다. 현실적으로 이런 이미지는 거짓이고 과장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이러한 허점 투성이에 실상을 오도하는 캐릭터들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 것일까.

그것은 우리네 드라마들이 은연 중에 여성들의 모습을 전형화하면서 반복적으로 그려낸 결과이다. 시어머니는 늘 며느리와는 못 잡아먹어 안달 난 존재고, 유부녀들은 멋진 외갓 남자와 불륜을 꿈꾸는 존재이며, 젊은 여성들은 돈 앞에 무력하게 자존심을 버리는 존재로 그려진다. ‘아내의 유혹’의 극대화된 전형적인 인물들이 보이는 증상들이 병적임에도 불구하고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여성들의 모습으로 당연시된 드라마 풍토, 나아가 사회적 풍토에서 기인한다.

흔히들 여성들이 짜증을 부리거나 하면 “너 생리하니?”하고 던지는 습관적인 질문 속에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여성으로서의 고통을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는 잘못된 사회의 의식이 숨겨져 있다. 우리나라의 꽤 많은 여성들이 월경전증후군을 겪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하나의 병으로 인식하지 않고 여성으로서 겪어야할 어떤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는 바뀌어져야 할 것이다. 또 막장 캐릭터가 갖는 월경전증후군의 제 증상을 겪고 있는 ‘아내의 유혹’의 여성 캐릭터들도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여성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