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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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네모난 세상

집 나가면 개고생? 이 광고가 불편한 이유

D.H.Jung 2009. 4. 3.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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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과 체험까지 개고생으로 만드는 상술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이런 자막과 멘트가 흘러나왔을 때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의 눈과 귀를 의심해봤을 것이다. ‘개고생’이라는 말이 주는 특유의 어감 때문이다(물론 이 단어는 표준어다. 하지만 어감은 여전히 비하하는 의미가 들어있다). 이 불쾌한 단어는 듣는 이들로 하여금 마치 자신이 욕이라도 들은 것 같은 감정을 갖게 한다. 티저광고로서 아무런 설명이 없기 때문에, 이 단어는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라는 맥락 속에 들어가면 엉뚱하게도 마치 모든 샐러리맨들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순간 샐러리맨들은 개고생하러 집 나가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바탕에 깔리는 ‘아내의 유혹’의 한 장면. 은재(장서희)의 치밀한 복수로 거리로 내몰린 정교빈(변우민)이 쓰레기통에 숨어 있다가 나와 거지꼴로 국밥집을 흘끔거리고, 노숙한 씻지도 못한 얼굴을 보여주는 그 영상은 그래도 애교가 있다. 변우민의 막장 표정을 보는 순간에는 웃음도 터진다. 아마도 막장드라마라 지칭되는 이 드라마에 대한 모종의 희화화도 한몫을 하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엄홍길 편에 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산악인으로서 산에 대한 도전을 하는 그 행위가 이 광고를 통해 개고생으로 치환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의미를 주는 하나의 가치가 개고생이라는 한 단어로 전락하는 그 장면에는 극단적인 냉소주의가 숨겨져 있다. 일반인 편에는 개미떼처럼 사람들이 몰린 피서지를 찾은 가족들과 무전여행을 하는 한 사내의 개밥그릇을 넘보는 장면이 오버랩되면서 그 행위들을 역시 개고생으로 의미 지운다. 이 정도까지 오면 목적(자신들의 메시지만 전달하면 된다는)을 위해 가치 따위는 개고생으로 치부해도 된다는 막장의 사고방식이 드러난다.

이 광고가 개고생으로 치부하는 행위들은 각각 별개의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현실(매개된 삶이 아닌 진짜 체험의 삶이란 의미로서의)과의 직접적인 대면이라는 점이다. TV나 기타의 매체를 통해 보면 편안한 것이고 괜스레 직접 하는 체험이나 경험은 개고생이다. 그러니 이 광고의 논리적인 메시지는 광고 마지막에 늘 등장하는 집 모양의 아이콘 위에 떠 있는 ‘ㅋㅋ’가 말해주는 것처럼 ‘집 밖에서의 개고생’보다는 ‘집 안에서의 ㅋㅋ’를 즐기라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ㅋㅋ’란 이 광고의 실체인 KT의 새로운 유선통합브랜드인 쿡(QOOK)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광고가 불편한 진짜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서 생겨난다. 이 광고의 메시지는 편안하게 집안에서 쿡(QOOK) 서비스를 즐기라는 것처럼 들리지만, 그 실체는 쿡(QOOK)을 통한 매개된 삶(잔짜의 삶은 개고생이니까)의 가치가 더 높다는 말이다. 이것은 상업적 목적을 위한 가치의 전도다. 이 땅 위의 그 무엇이든 상품으로 만들어내는 자본의 속성은 이제 체험이나 도전 같은 가치까지도 뒤집어 상품으로 포장한다. 이렇게 보면 개고생이란 단어의 즉각적인 불쾌감은 이 메시지가 주는 불쾌감에 비하면 오히려 적은 편이다. 물론 어쩌면 이 광고는 논란 자체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논란의 끝에 남는 것은 논란의 이유보다는 논란의 강도만큼 높아진 브랜드 인지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황당한 일이지만 어쩌면 이 글조차 이 광고의 한 부분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