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어색함을 웃음으로, ‘절친노트’의 역발상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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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함을 웃음으로, ‘절친노트’의 역발상

D.H.Jung 2009. 4. 11.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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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발이 오그라드는’ 리얼함, ‘절친노트’


흔히 ‘손발이 오그라드는’ 이라는 표현을 쓰게 되는 상황이 있다. 최근 들어 웃음의 새로운 경향으로 주목되고 있는 이 어색한 상황을 웃음으로 바꾼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절친노트’다.


잘 짜여진 대본과 코미디언의 콩트 연기가 기본기가 되었던 과거였다면 이 어색함은 버려져야하고 지탄받아야할 어떤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리얼리티 개그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어색함은 리얼리티를 드러내는 새로운 포인트로 제시되고 있다. 어색한 장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짜여진 내용의 실패(따라서 짜여지지 않은)를 드러내준다.


‘절친노트 - 절친하우스’에 새롭게 등장한 절친대본은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 대본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대담한 역발상이라 할 수 있다. 대본을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대본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 절친대본은, 서먹서먹한 김국진과 김성민 앞에 제시되면 그 낯간지러움에 대본대로 읽고 연기하는 것 자체가 리얼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이 절친대본은 사실 ‘절친노트’가 취하고 있는 리얼리티 요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 프로그램의 전체를 제어하고 있는 절친노트 자체가 하나의 절친대본이기 때문이다. 매번 어색한 관계에 있는 이들 사이에 제시되는 미션들은 그것을 연기(?)해야만 하는 당사자들의 리얼한 속내를 드러내게 만든다.


하지만 ‘절친노트’의 리얼함이 단지 그 어색함을 드러내는 수준에 머물렀다면 대중들과의 공감의 폭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어색함을 연기하다 보면 마술처럼 사이가 진짜 점점 가까워진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어색함을 연기하다 보면 속내를 드러내게 되고 그것이 서로를 알게 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만일 이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절친노트’의 마무리에 가서는 진짜 어색함 없는 리얼한 절친의 마음이 통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만일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훈훈한 느낌을 받았다면 그것은 바로 어색함을 훈련시키는 과정에서 변화되는 마음들의 진심을 문득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아무리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그 틀 속에서 처음 만난 타인들이 어떻게 진짜로 친한 척 행동할 수 있겠는가. 얼마간은 설정이고 얼마간은 연기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제 대중들은 다 알고 있다. 흔히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인원 구성이 평소에도 무슨 무슨 라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가까운 사람들로 구성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절친노트’는 역발상의 예능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아예 누가 누구를 만나는 지도 모르는 상황을 설정해놓고 이 막무가내의 예능 프로그램은 절친노트라는 마법의 대본을 내놓고 그대로 하라고 한다. 아예 친하지 않은 그 분위기를 프로그램의 맨 앞부분에 세워놓고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씩 그 마음들이 열리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보는 것으로 ‘절친노트’는 버라이어티쇼의 리얼한 재미들을 만들어낸다. ‘절친노트’의 웃음이 자연스러운 것은 거꾸로 거기 출연한 인물들이 어색함을 드러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