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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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개그야’, 기대되는 유망주들

D.H.Jung 2009. 4. 13.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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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발견된 유정승, 미안한 김완기, 어눌엉뚱 김경진


달라진 ‘개그야’가 심상찮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남다른 캐릭터들의 존재감. 코너가 새롭게 재정비되면서 전체적으로 캐릭터들의 무게감이 돋보이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주목되는 캐릭터들이 있다. 그들은 ‘유정승의 재발견’의 유정승, ‘박준형의 눈’에 한 코너로 등장해 “미안합니다”를 연발하는 김완기, 그리고 같은 코너에서 전문가를 사칭하며 엉뚱 어눌한 개그를 보여주고 있는 김경진이다.


최국, 죄민수 대신 유정승을 데려오다
죄민수 조원석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은 코너, ‘최국의 별을 쏘다’. 그렇게 별을 쏘아준 최국이 이번에 무대에 올린 개그맨은 유정승이다. 최국과 유정승이 새롭게 들고 나온 ‘유정승의 재발견’은 따라서 ‘최국의 별을 쏘다’의 다음 버전 같은 코너라고 볼 수 있다. 죄민수 조원석이 거만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스타의 모습을 과장된 연기로 보여주면서 큰 웃음을 주었던 시대는 가고, 대신 ‘지구상에서 가장 열심히 안하는 개그맨’, 유정승의 시대가 왔다.


함께 출연 중인 최국은 어떻게든 유정승이 웃음을 주어야 자신이 잘리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유정승은 천하태평. 그저 온몸에 색칠을 하고 무대 위에 오른 것 빼고는 전혀 웃길 마음이 없는 모양이다. 답답한 최국이 “유정승씨만의 개그의 특징이 있나요?”하고 묻자 그는 “제 개그의 특징은 저만 웃겨요”라고 당당하게 밝힐 정도다. 이 코너는 웃겨야 한다는 개그맨들의 중압감을 거꾸로 뒤집어버린 개그라고 볼 수 있다.

유정승이 웃기려 전혀 노력하지 않는다는 그 지점이 오히려 웃음을 준다는 것은 거꾸로 개그맨 입장에서는 웃겨야한다는 중압감이, 그리고 관객 입장에서도 반드시 웃어야 한다는 중압감(?)이 오히려 웃음을 저해한다는 점을 잘 포착해준다. 최국이 이번에도 유정승을 별로 쏠 수 있을까. 귀추가 주목되는 코너다.


김완기의 자학 개그, “미안합니다”
‘박준형의 눈’은 시사프로그램을 패러디하고 있지만 그 코너의 형식은 ‘개그콘서트’의 ‘봉숭아학당’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 박준형은 ‘봉숭아학당’의 선생님처럼 개그맨들의 산파 역할을 하는 것이고, 거기서 다양한 개그맨들의 캐릭터가 만들어진다. 다른 점은 ‘봉숭아학당’의 개그맨들은 한 자리에 모두 모여 앉아 있지만, ‘박준형의 눈’에는 한 코너씩 나누어져 소개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봉숭아학당’처럼 모여 앉았을 때 동료들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등장한 단독 캐릭터에 보다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안합니다”라는 유행어로 돌아온 김완기는 약간은 취기가 오른 얼굴로 모든 상황이 자기 탓이라는 자학적인 말로 웃음을 준다. 이것은 언뜻 루저 문화의 풍자로도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미안함의 대상이 얼토당토않은 거대한 사건들이라는 점에서 약간의 결을 달리 한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은 심각한 저출산으로 신음”하고 있고 “이 저출산이 다 저 때문”이라고 말한다거나, WBC 야구 결승전에서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진" 것이 자신이 보지 말았어야 하는 TV를 봤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거꾸로 이 거대한 사건들(?)이 모두 자신 으로 인해 생긴 것이라는 자기자랑도 숨어 있다. 미안하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기자랑을 하고 있는 셈. 술 취해 호기를 부리는 김완기의 연기는 이런 이중적인 심리(패배자의 자기도취적 승리)를 정확히 짚어 웃음으로 전환시켜주고 있다.


어눌하면서 엉뚱하다, 김경진이라는 달인
같은 코너에 등장하는 김경진도 주목할 만한 캐릭터다. 자칭 전문가라고 등장해서 엉뚱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이 캐릭터는 ‘개그콘서트’가 낳은 최고의 캐릭터, ‘달인’의 새로운 버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엉뚱한 말을 계속 해대는 그에게 박준형이 의구심을 품을 때면 “전 전문가입니다. 경청하세요.”라고 말하지만, “확실합니까?”하고 박준형이 재삼 물을 때면, “확실하지 않습니다”라고 꼬리를 내리는 모습은 누가 뭐래도 주장을 굽히지 않는 김병만의 달인과는 비교되는 지점이다. 그는 엉뚱함에 어눌함을 덧붙였다.


그는 습관처럼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하는 전문가들이 흔히 쓰는 문구들을 끄집어내고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본인 스스로도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안다는 듯이) 어눌하게 얘기함으로써 웃음을 유발한다. 하지만 ‘거짓말’에 대해 얘기하면서 “아파트 광고에 걸어서 오 분 거리”라고 나오는 건 순 거짓말이라며 “겁나게 뛰어서 오 분 걸릴까 말까”라고 말하는 대목 에서는 그 어눌함 속에도 세상에 대한 풍자는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새로운 ‘개그야’는 이밖에도 가능성을 보이는 캐릭터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다. ‘그렇지요’의 황제성은 그 악동의 이미지를 ‘비겁한 거리’로 가져와 “장비로 천장을 뚥습니다” 같은 무식한 조폭들의 언어생활로 기발한 웃음을 선사하고, 정성호는 ‘감동’이라는 새 코너에서 특유의 땀을 뻘뻘 흘리는 오버연기로 웃음을 주고 있다. 여기에 이제 ‘사바나의 추장’과 ‘맹구’로 인기를 모았던 심현섭이 ‘무릎팍 도사’를 패러디한 ‘가슴팍 도사'로 합류할 예정이고, 이어 잠시 쉬었던 정종철도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 ‘개그야’의 달라진 캐릭터들. 그 존재감이 심상찮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