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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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드라마, 부잣집 아들에서 아들 부잣집으로

D.H.Jung 2009. 4. 26.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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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약국집...’, 딸 부잣집에서 아들 부잣집 시대로

‘딸 부잣집’은 여전히 가족 드라마의 단골 소재. 호평을 받고 종영한 김수현 작가의 ‘엄마가 뿔났다’에서도, 현재 방영되고 있는 ‘사랑은 아무나 하나’에서도 딸 부잣집은 여전히 맹위를 떨친다. 이들 딸 부잣집 드라마에 역시 단골로 등장하는 캐릭터가 부잣집 아들이다. 이 서로 다른 계층의 집안이 얽히는 이야기는 신데렐라 모티브를 자극한다. 즉 ‘딸 부잣집 드라마’란 ‘부유하지는 않지만 딸들이 많은(그래서 그게 재산인!)’ 가족의 딸 시집보내기가 메인이 되는 드라마가 된다.

하지만 최근 새롭게 시작한 주말극 ‘솔약국집 아들들’에는 이 드라마가 주목하는 남성과 여성의 위치가 바뀌어 있다. 아들 부잣집인 솔약국집 네 아들들에 대한 이야기인 이 드라마에는 집안 좋고 잘 나가는 부잣집 엄친아들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대신 어머니인 배옥희(윤미라)의 속만 푹푹 썩이는 아들들만 가득하다. 이름과 잘 어울리는 이 네 아들들은 모두 결혼 문제에 있어 하자(?)가 있어 보인다.

진풍(손현주)은 약사지만 나이 사십의 혼기를 놓쳐버린(?) 맏아들. 사람으로만 보면 진국이 우러나는 인물이지만 외모나 나이로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오는 사내다. 둘째 대풍(이필모)은 소아과 의사로 이 집안에서 가장 잘 나가는 아들이다. 큰 소리 뻥뻥치는 스타일이지만 실속은 없어 보인다. 셋째 선풍(한상진)은 방송사 기자지만 착해 빠지기만 했지 어딘지 현실적으로는 바보스러울 정도로 어수룩한 인물이고, 넷째 미풍(지창욱)은 재수생으로 성별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여성 취향적인 인물이다.

요즘 뜬다는 남데렐라(남자 신데렐라) 이야기가 중심에 있지만 그것은 경제적인 의미, 즉 신분상승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재수생인 넷째를 제외하고는 모두 약사에 의사에 기자인 그럴 듯한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여기서 남데렐라란 경제적 의미보다는, 이 드라마가 내세우는 결혼이라는 지상과제를 해결해주는 여성들을 만난다는 의미가 강하다.

바로 이 부분은 이 드라마가 이제는 달라진 남녀 관계를 드러내기는 하지만, 그것이 사회적인 맥락을 띄지는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즉 이 드라마는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다른 위치에 선 남녀를 다룬다기보다는, 그저 결혼이라는 문제에 있어서 달라진 남녀 관계를 다루고 있다. 물론 현실적인 결혼이 어찌 계층적인 문제를 외면할 수 있겠냐마는 이 드라마는 기존 여러 딸 부잣집 드라마에서 극적으로 대비되던 빈부의 문제를 의도적으로 뒤편으로 밀어내고 대신 성향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 부분은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것은 이 드라마가 아들 부잣집을 다루면서도 여전히 남성 중심적 사고관을 벗지 않고 있다(남자들은 여전히 사회적으로는 성공한 존재로 그려진다)는 반증일 수도 있고, 혹은 남녀 간의 사랑, 결혼에 있어서 이제 그런 경제적인 차이의 문제는 촌스러운 어떤 것이 되었다는 현실적인 반증일 수도 있다. 그것이 어느 것이든 분명한 것은 이 드라마의 이러한 위치가 보다 폭넓은 시청층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트콤에 가까운 코믹한 터치는 이 드라마에 대한 진지한 접근보다는 부담 없이 웃을 수 있는 지점을 제공해준다.

딸 부잣집을 뒤집어 아들 부잣집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 드라마를 가지고 섣불리 뒤집혀진 남녀 관계를 얘기하기는 어렵다. 이 드라마는 사회적으로 어려움에 직면한 남성들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성들이 개인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결혼에서도 성공(물론 그것이 여성들에 의한 구원일지라도)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이 드라마를 통해 핏줄로 세습되는 부잣집 아들의 식상한 이야기는 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것이 부잣집 아들 이야기보다 아들 부잣집 이야기가 좋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