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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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착한 서민 구동백, '그바보'가 남긴 것

D.H.Jung 2009. 6. 19.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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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백, 서민적 삶이 가진 가치를 긍정하다

도대체 '그바보'의 무엇이 우리의 마음을 이토록 잡아끌었을까. 평범한 우체국 직원과 스타의 만남. 이 낯익은 이야기 구조는 누구라도 쉽게, 멀게는 '로마의 휴일'에서, 가깝게는 '노팅힐', 또 최근에는 드라마화된 '스타의 연인'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과연 '그바보'가 그린 세계가 이 통상적인 신데렐라 이야기의 변주에 머물렀을까. 만일 그랬다면 우리는 일찌감치 그 관심을 끊었을지도 모른다.

'그바보'의 이야기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 데서 그 묘미를 찾을 수 있다. 톱스타인 한지수(김아중)와 우체국 직원인 구동백(황정민)이 만들어가는 러브스토리는 물론 그 신데렐라(남성이 신데렐라인) 이야기를 따라가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모든 관계는 역전되어 있다. 이 드라마는 한지수가 구동백을 구원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구동백이 한지수를 구원하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한지수는 왜 구원받아야 할까. 그녀가 사는 세계가 그녀에게 부과한 삶이 그녀를 불행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불행은 한 마디로 '상품화된 인간'으로서의 삶이 갖게 되는 불행이다. 한지수가 가진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자본에 둘러싸여 상품의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그대로 표상함으로써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 세계 속에서는 김강모(주상욱) 같은 자본을 쥔 자가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른다. 그가 한지수에게 그러한 것처럼 그 대상은 인간이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그러한 관계를 내면화하면서 살아온 한지수로서는 자신의 불행을 깨닫지 못한다. 자신이 왜 점점 슬플 때 울지 못하고 웃길 때 마음껏 웃지 못하는 표정 없는 인간이 되어가는지 알지 못한다. '그바보'는 바로 그 한지수의 세계 속에 구동백이라는 전혀 다른 별에서 온 듯한 바보 같은 남자를 집어넣는다. 그는 인간 간의 관계가 거래로 취급되는 이 세계의 법칙을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바라본다.

위장결혼을 하는 조건으로 그 대가를 물어보지만, 구동백은 엉뚱하게도 동화 속에서나 나올 세 가지 소원을 제시하는 인물이다. 거래와 관계, 대가와 소원만큼의 거리는 한지수와 구동백 사이에 놓여진 거리만큼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차츰 한지수는 구동백을 통해 자신의 거짓된 삶에서 조금씩 벗어나 진실된 삶(즉 구동백의 삶을 향해서)으로 다가간다. 물론 이것은 일방적인 변화가 아니다. 구동백 역시 스스로 평가절하해온 삶의 진정한 가치를 한지수를 통해 찾고 있기 때문이다.

 “난 진짜가 아니잖아...난 가짜잖아”라고 오열했던 구동백에게 “내 옆에 있어줄래요?”라고 한지수가 수줍게 말하는 그 순간은 이 두 사람의 변화가 서로 교차하는 순간이다. 구동백은 가짜가 아닌 진짜임이 드러나는 것이고, 한지수는 비로소 자신의 진실된 삶을 찾게 되는 것. 구동백과 한지수가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은 따라서 멜로의 과정으로 그려지지만 동시에 사회적인 맥락을 갖게 된다. 이 이야기가 진심은 내팽개쳐지고 대신 돈이 오고가고, 갖은 모략과 술수가 판치는 예의 없는 세상에 대한 구동백의 선전포고처럼 여겨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여기서 구동백이 예의 없는 세상과 대결하기 위해 꺼내드는 일련의 카드들이 흥미롭다.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진정으로 불행을 겪어본 자들만이 아는 ‘바닥의 정서’에서부터 길어 올려진 것들이다. 실의에 빠진 한지수에게 구동백이 처방한 “진짜 슬픈 인생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라는 대사나, 행복하고 싶다면 “웃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는 대사는 그 바닥의 정서를 아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구동백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절망 끝의 희망을 얘기한다.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 그렇게 마음먹으면 그 곳이 절벽 끝이 아니라 다이빙대 일수도 있구요. 그리고 그 아래는 시원한 바다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떨어져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는, 때론 온통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있어 늘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가진 자들의 불안을 오히려 치유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소유하는 사랑만 해온 자들에게는 그 사랑을 손에서 놓는 것이 참으로 불안하고 힘겨운 것이지만, '그저 바라보는 사랑'을 해온 자들에게 그것은 사랑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 된다.

‘그바보’는 제목처럼 너무 높은 곳에 있는 것만 같아 ‘그저 바라보다가’, 그 높은 곳이 힘겨워 뛰어내리고 싶어도 뛰어내리지 못하는 그녀를 알게 되고는 함께 그 위에서 낮은 곳으로 뛰어내려주는 구동백이라는 착한 서민의 자화상을 그려낸 드라마다. 이로써 우리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삶의 실체에 더 가까운 서민들의 삶을 구동백을 통해 긍정하게 되는데, 이것이 그토록 우리의 마음을 잡아끌었던 '그바보'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한지수는 구동백을 통해 이제 '네모난 하늘' 아래 두 사람으로서 족한 행복을 갖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제목이 구동백을 바보로 지칭하는 것처럼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판타지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구동백의 승리를 통해 잠시나마 행복한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