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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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명랑TV

떴다! 골방 브라더스!

D.H.Jung 2009. 6. 21.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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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늘과 길, 골방에도 볕들 날은 있다

왜 하필 안방도 아니고 사랑방도 아닌 골방일까. 하지만 무언가 주류라든가 1인자라는 이미지와는 걸맞지 않은 이하늘과 길에게 골방이 제공하는 이미지는 실로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월화의 밤, ‘놀러와’의 골방에서 그들은 외모와는 걸맞지 않게 파란 타이즈에 빨간 팬티를 차려입고 나와 얼토당토않은 상황극을 선보인다.

이들의 조화는 실로 절묘하다. 먼저 외모적으로 보면 길은 ‘수호지’에나 나올 것 같은 장대한 몸을 가진 반면, 이하늘은 그야말로 대꼬챙이 같은 외소한 몸을 가졌다. 슈퍼맨 복장은 그 몸의 대비를 극대화해 보여준다. 하지만 실제 관계를 들여다보면 이하늘이 길의 선배. DJ DOC의 악동으로서 만만찮은 성깔이 있을 것 같은 이하늘이 거꾸로 덩치 큰 길을 압도할 것만 같다.

이 외모와 관계의 부조화는 골방 브라더스가 갖는 웃음의 기본 코드가 된다. 그들은 그저 그렇게 함께 서서 관계를 배반하며 힘과 외모로 압도해오는 길을 통해 웃음을 주거나, 거꾸로 힘과 외모를 배반하며, 관계와 성깔로 압도하는 이하늘을 통해 웃음을 줄 수 있다. 물론 같이 망가질 때는 그들은 모두 똑같은 빡빡 민 머리로 하나의 색깔을 만든다. 힙합이라는 음악이 주는 정신 또한 이들에게는 모두 귀여운 반항적인 이미지를 부가시킨다.

이러한 골방이라는 공간에서 외모와 관계의 부조화로 구축한 새로운 이미지에 힘입어 이들은 지금 타 프로그램들 속에서 종횡무진 활약 중이다. ‘명랑히어로’ 같은 각종 토크쇼에서 특유의 독한 이미지를 과시했던 이하늘은 이제 ‘천하무적 야구단’에서 프로그램의 중심을 맡아 활약하고 있다. 그는 ‘이빨 빠진 사자’의 캐릭터로 여전히 강한 카리스마와 그 카리스마를 무너뜨림으로써 나올 수 있는 웃음 사이를 오가며 쇼의 핵심적인 재미를 구축하고 있다.

욕설과 잦은 지각으로 벌점을 잔뜩 먹은 이하늘이 벌칙으로 최루가스실에 들어가는 장면은 실로 압권이라고 할 수 있다. 이하늘은 그 속에서 눈물 콧물을 다 쏟아내며 ‘천하무적 야구단’의 야생적인 리얼리티를 끄집어냈고, 다른 한편으로는 동생인 마르코를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인간적인 면모 또한 부각시켰다. 이를 통해 그는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는 형식 속에 자신만의 캐릭터로 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냈다.

한편 길은 ‘무한도전’의 조커로 등장하면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무한도전’은 꽤 오랜 시간 동안 고정된 캐릭터들로 인해 조금은 느슨한 면이 생겼고, 길은 바로 그 지점에서 그것을 조이기 위해 채워 넣은 캐릭터가 되었다. 실제로 길의 투입은 ‘무한도전’ 전체에 조금은 긴장감을 조성해냄으로써 프로그램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다. 물론 그가 현재 ‘무한도전’에 서 있는 자리는 기존 멤버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그는 종종 함께 과제를 풀어 나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기존 멤버들에게 과제를 제시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것은 ‘무한도전’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준다는 데 의미가 있다. ‘무한도전’은 모두 그 도전자의 관점에 맞춰진 형식이었지만, 길의 등장으로 인해 과제 제시자의 관점이 부가되었다. 이것은 과제 해결 과정에 있어서 길이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만큼 리얼의 요소는 강화되는 것이며 이로써 길의 입지 또한 확고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물론 이하늘이나 길, 둘 다 아직까지 확고하게 예능에 자리를 잡은 상황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현재 어느 정도는 정체되어 있는 예능 프로그램 속에서 새로운 캐릭터의 가능성으로 제시되고 있다. 각자의 세계에서 강하기만 했던, 그래서 좀 더 폭넓은 지지자를 얻지 못했던 이들이 현재의 위치에 올 수 있었던 것은 저 골방이라는 공간이 제공한 힘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은 그 공간에서 서로의 강한 이미지를 상쇄시켰고, 각자의 캐릭터를 창조해냈다. 골방 브라더스라는 지칭이 이들에게 주는 의미는 이처럼 크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