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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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블로거의 시선

'업', 날으는 집이 마음을 흔든 이유

D.H.Jung 2009. 8. 2.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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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날으는 교실'이라는 책을 보고 마음을 온통 빼앗겼던 적이 있습니다. 후에 알고 보니 그 책은 에리히 케스트너의 작품이었는데, 1930년대초 히틀러 집권시기에 작가가 독일국민들에게 지혜와 용기를 전해주기 위해 쓴 것이라고 하는군요. 책 내용 속에 실제로 날아가는 교실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저 학교 기숙사에서 지내는 동급생들의 좌충우돌 재미난 이야기들이 있을 뿐이죠. 하지만 이상하게도 저는 이 책에서 날아가는 교실을 자꾸만 떠올렸더랬습니다. 저렇게 재미있게 지내는 학교생활이라니! 그게 초등학교 시절부터 과외를 전전했던 저로서는 마치 진짜 신나게 날아가는 교실처럼 여겨졌던 것 같습니다.

픽사의 신작 애니메이션, '업'을 보면서 저는 이 어린 시절의 상상을 다시 떠올리게 됐습니다. 집에 풍선을 가득 매달아 하늘로 둥실 떠오르는 상상력이라니! 이제 나이 사십을 넘겨 두 아이의 아빠이자 한 집안의 가장인 저에게 현실의 집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아파트 청약통장과 은행 대출과 자꾸만 오르는 전세비를 뜻하는 것이고, 아이들과 가족을 위해 마땅히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구해야하는 보금자리를 뜻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운좋게도 금싸라기 아파트에 당첨되어 순식간에 몇 억씩을 벌었다는 로또 같은 것이고, 누군가는 단 몇 평 남짓한 그 공간도 용납되지 않아 쫓겨나야만 하는 그런 것이기도 합니다.

'업'의 주인공 칼 할아버지의 중년의 삶도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애니메이션은 의도적으로 이 중간지대인 중년의 삶을 짧게 축약해버리죠. 어린 시절의 칼이 앨리를 만나 모험을 꿈꾸는 시기의 에피소드가 나오고는, 둘이 결혼하고 늙어가고 결국 앨리를 먼저 보내는 장면은 경쾌하면서도 짧게 처리돼죠. 그 때 그 시간을 축약하는 상징적인 동작들 중에 연달아 목에 채워지는 넥타이가 인상적입니다. 칼 할아버지의 중년의 삶은 여느 누구와 마찬가지로 현실적인 무게에 붙박여있었던 것이죠.

칼 할아버지와 앨리가 늙어가는 것만큼 눈에 띄는 것은 집의 변화입니다. 그들이 처음 만났던 그 집은 폐가처럼 남루한 곳이었지만, 둘은 결혼해서 그 곳을 보금자리로 꾸미고 차츰 그 텅빈 공간들은 두 사람의 살림으로 채워지죠. 이것은 살아가며 쌓여가는 삶의 무게와 거의 같은 것으로 은유됩니다. 어린 시절 그토록 가벼워보였던 집은 점점 그 안에 쌓여진 물건들과 현실의 기억들로 무거워지고 그럴수록 집이라는 공간은 거기 살아가는 이들을 속박하게 만들기 마련이죠.

주변지역이 개발되고 있는데 고집스레 그 집을 지키고 있는 칼 할아버지는 앨리와의 기억의 무게 속에 침잠해 살아가는 무거운 존재입니다(실제로 이 캐릭터는 육중한 몸과 거동 또한 불편한 설정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 그가 집에 풍선을 달아 날아올리는 것은 발상의 전환입니다. 풍선을 파는 것은 그의 직업이었는데, 그 현실적인 일은 이처럼 재기발랄한 상상력의 일로 바뀌게 되는 것이죠.

칼 할아버지의 그 모험에 동참하게 되는 러셀(7세)은 어쩌면 칼 자신의 분신인지도 모릅니다. 그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두 사람이 차츰 가까워지는 과정은, 칼 할아버지가 그렇게 멀리 두었던 자신의 순수했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과 같은 것이니까요.

이 애니메이션은 대단히 매력적인 스토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구구절절 설명하기 보다는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더 깊은 인상을 만들어냅니다. 현실을 벗어나 모험을 꿈꾸는 이야기를 이처럼 집에 풍선을 다는 것 하나로 간결하게 얘기할 수 있는 작품은 드물죠. 풍선이 하늘 위에 떠 있고, 그 풍선이 무거운 집을 들어올리고 있고, 그 집이 날아갈까봐 칼 할아버지가 줄로 집과 자신의 몸을 묶어놓는 그 그림은 우리네 삶을 그려놓은 기막힌 초현실적인 구도로 읽혀지기도 합니다.

풍선에 매달려 날아가는 집은 이처럼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들어놓습니다. 물론 저와 함께 간 아이들은 그 기발한 상상력만으로도 충분히 유쾌한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저는 그 유쾌함 속에서 어딘지 모를 울컥함 같은 것을 느끼기도 했죠. 칼 할아버지를 연기한 이순재의 더빙은 작품을 더 친근하게 만들어주었고, 본 영화 시작 전에 한 '업'의 미니 버전 같은 단편도 좋았습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저는 저대로, 한층 업된 분위기로 극장을 나설 수 있는 그런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