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선덕여왕'의 이요원, 연기자의 눈빛을 얻다 본문

옛글들/네모난 세상

'선덕여왕'의 이요원, 연기자의 눈빛을 얻다

D.H.Jung 2009. 8. 12.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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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녀린 이미지 탈피한 이요원, 연기의 폭 넓어져

연기자의 눈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어떤 눈은 사람을 깊게 빨아들일 만큼 유혹적이고, 어떤 눈은 그저 쳐다만 봐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처연함을 담는다. 어떤 눈은 텅 빈 내면의 허탈함을 담고, 어떤 눈은 욕망으로 활활 타오르는 마음을 담는다. 그런 면에서 이요원의 눈은 웃고 있을 때의 해맑음과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을 때의 슬픔이 공존하는 눈이다. 때론 그 두 개가 동시에 겹쳐졌을 때, 그녀의 연기는 보는 이의 마음을 뒤흔든다.

'외과의사 봉달희'에서 이요원은 그 해맑음과 슬픔이 공존하는 눈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존재가치를 알렸다. 그녀가 연기한 봉달희는 심장병을 앓고 있는데, 그 병의 존재는 두근거리는 가슴과 아픈 가슴을 둘 다 품는 이 캐릭터를 표상한다. 미칠 듯이 환자를 구하기 위해 열심히 병원을 뛰어다니는 그녀는 정작 자신이 아프다. 봉달희가 가진 이 상반된 성격은 이요원의 이미지와 딱 달라붙으며 그 아픔을 시청자들의 마음 속으로 전해주었다.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의 이요원은 봉달희의 연장선 위에 서 있었지만, 무언가 좀 더 강렬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마치 전쟁터에 떨어진 듯한 그 광주의 현장에서 그녀의 하얀 가운은 빨갛게 물들었고, 환자를 돌보던 손은 총을 쥐고는 부들부들 떨었다. 이 때 이요원의 눈빛에는 연기자로서의 어떤 광기 같은 것이 언뜻 비쳐났다.

하지만 '못된 사랑'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이요원의 눈빛 속에는 조금씩 연기자로서의 강렬한 광기가 담기고 있었지만, '못된 사랑'은 그 눈빛을 멜로의 틀 속으로 가두었다. 눈물을 흘리고 징징 짜는 그 모습은 이요원의 속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자로서의 불꽃을 쇠잔하게 만들었다. 그녀 속에 있던 강인한 모습은 멜로의 가녀린 외관 속에 묻혀버렸다.

'선덕여왕'의 덕만은 그런 그녀의 강인함을 전면으로 끌어냈다. 많은 이들이 '못된 사랑'의 그 가녀린 이미지를 떠올리며 이요원의 캐스팅을 염려했지만, 실상은 정반대였다. 남지현의 어린 덕만에 대한 연기가 호평을 받을수록 부담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지만, 이요원은 오히려 그 아역의 힘을 성장시켰다. 아역이 가진 쾌활함 위에 낭도의 모습으로 강인함을 더했다. 백제와의 전쟁 신에서 그녀는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비담을 연기하는 김남길이 말하는 것처럼 사극의 촬영현장은 말 그대로 야전이다. 특히 전쟁 신이라도 들어가 있다면 그것은 마치 유격훈련에 들어가는 군인들처럼 초주검이 되기 마련. 이요원의 연기자로서의 광기를 담은 눈빛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은 아마도 이 엄청난 강행군 속에서 뒹구는 과정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제 이요원은 눈물을 흘려도 과거처럼 가녀린 이미지가 연상되지 않는다. 앙다문 입으로 눈빛을 세우며 "난 죽지 않아!"하고 외치는 모습은 지금 현재 이요원이라는 연기자가 스스로에게 외치는 다짐처럼 보인다. '선덕여왕'이라는 좋은 드라마의 덕만이라는 좋은 캐릭터를 통해 우리는 이요원이라는 연기자를 얻었다. 연기자의 눈빛을 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