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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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해야 산다? 천만에! '놀러와'를 보라

D.H.Jung 2009. 8. 18.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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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토크쇼, '놀러와' 게스트의 입을 열다

집요하게 추궁하는 MC와 당황해하는 게스트. 이제 토크쇼에서 익숙해진 풍경이다. 상대방의 숨겨진 이야기를 폭로하고 끄집어내는 이른바 '독한 토크쇼'는 대세가 되어버린 리얼 토크쇼의 대안처럼 자리했다. '솔직함'이 모든 토크쇼의 지상과제가 되자, 그 솔직한 모습을 끌어내기 위한 방법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식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토크쇼가 기본적으로 보여주는 재미가 대화의 재미라고 볼 때, 토크의 내용만큼 중요한 것은 토크의 방식이다. 억지스럽고 강압적인 토크방식은 아무리 놀라운 토크의 내용이라고 해도 인상을 찌푸리게 만든다.

'놀러와'의 토크방식이 두드러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독설의 시대, 가시방석의 시대에 '놀러와'는 정반대의 전략을 구사함으로써 오히려 더 진솔한 이야기에 도달하고 있다. 마치 게스트의 옷을 벗기기 위해 억지로 바람을 불어대는 것보다, 따뜻한 햇볕 같은 분위기를 연출해 스스로 옷을 벗게 만드는 토크방식을 가진 '놀러와'가 시청률에서도 수위를 차지하는 것(13%)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야심만만2'가 초창기 버전이었던 자연스러운 설문 방식을 버리고, 강압적인 일련의 토크방식들(올킬에서 심지어 유치장 컨셉트까지)을 사용했으나 시청률에서 '놀러와'를 넘지 못하는 것에는 바로 이런 형식이 가진 자연스러움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놀러와'의 토크 방식은 '골방밀착토크'에서 그 특징을 찾아낼 수 있다. 골방이라는 공간이 주는 아늑함과 편안함은 게스트들이 자연스럽게 속내를 털어놓게 만든다. 그 곳에서 게스트들은 무거운 신발을 벗어버리고, 편안하게 아무렇게나 앉아 가운데 놓여진 주전부리를 먹어가며 수다를 풀어놓는다. 골방이 가진 협소함은 오히려 게스트와 MC들 간의 거리를 좁혀놓는 훌륭한 장치다. 너무 밝지 않은 적당한 조도의 조명 역시 골방 특유의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해낸다. 유재석, 김원희 MC는 오래된 친구처럼 게스트를 편안하게 해준다. 이런 곳이라면 누구나 찾아와 차마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풀어낼만한 유혹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고 '골방밀착토크'가 편안함만을 가진 것은 아니다. 지나치게 편안하다는 것은 자칫 쇼를 밋밋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에, '놀러와'는 이 곳에 장치를 두었다. 그들이 바로 골방브라더스다. 상대적으로 반항기 있고 강한 인상을 주는 이하늘과 길이 슈퍼맨 복장을 입고 앉아 짓궂은 질문들을 툭툭 던지는 것으로 그 긴장감은 유지된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이들은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캐릭터들이지 상대방을 괴롭히는 캐릭터는 아니다. 따라서 골방 브라더스라는 토크의 양념은 감칠맛을 낼 뿐, 상대방을 고통스럽게 만들지는 않는다.

'놀러와'의 이런 토크방식은 이 프로그램에 게스트들이 먼저 기획 아이템을 제안하는 기현상까지 만들어냈다. 이효리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걸프렌즈31 특집'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독한 토크쇼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상황에, 편안한 토크를 견지하는 '놀러와'의 선전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독한 토크가 결국은 점점 독한 자극으로 유지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놀러와'는 적절한 자극과 편안한 토크의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좀 더 장기적인 호응을 얻어내고 있다. 바람보다는 햇볕의 힘. '놀러와'의 토크방식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