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성역 없는 연예 생태계, 그 득과 실 본문

옛글들/네모난 세상

성역 없는 연예 생태계, 그 득과 실

D.H.Jung 2009. 9. 4.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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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들의 영역파괴, 더 이상 성역은 없다

KBS '생방송 뮤직뱅크'의 한 풍경. '인디언 보이'를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부르는 MC몽과 화려한 춤과 노래를 선보이는 몇몇 아이돌들 사이로 이색적인 얼굴이 보인다. 본래부터 가수를 꿈꾸다가 개그맨이 되었고, 그 관성 때문이었는지 유난히 '고음불가'나 '야야야 브라더스' 같은 음악 개그를 선보였던 개그맨. '1박2일'의 앞잡이, 이수근이다. 그는 새로 낸 싱글앨범 '해피송'의 타이틀곡 해피송을 불렀다. 잠시 후, 가요프로그램에서는 보기 어려운 또 한 명의 얼굴이 무대에 올랐다. '주몽', '이산'에서 특유의 굵직한 연기를 보여주었던 견미리. 그녀는 1집 '행복한 여자'를 내고 가수 데뷔를 했다. 음악 프로그램 속에 들어온 개그맨과 연기자. 그 풍경은 이색적이지만 이미 더 이상 이상한 풍경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1박2일'이나 '패밀리가 떴다'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 개그맨과 가수, 그리고 연기자들이 공존하는 모습을 봐왔다. 거기에서는 개그맨 이수근과 함께 MC몽이 형 동생 해가며 1박2일간 포복절도의 여행을 떠난다. 그러니 '생방송 뮤직뱅크'에서의 MC몽과 이수근이 같은 프로그램에 서는 모습이 우리에게 익숙할 수밖에. 그런데 '1박2일'에서 이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인물 중에는 '찬란한 유산'에서 한효주와 가슴 떨리는 멜로를 보여주었던 이승기도 있다. 가수이면서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면서 동시에 드라마에서 두각을 나타낸 이승기는 작금의 연예인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영역 파괴(?)를 상징처럼 보여주는 인물이다.

드라마를 보면 이제 가수들의 주연급 캐스팅은 일반적인 일이 되어 버렸다. '아가씨를 부탁해'의 윤은혜, '태양을 삼켜라'의 성유리, '혼'의 이진은 아예 가수활동에서 연기활동으로 선회했고, '드림'의 손담비, '혼'의 티아라 지연, 또 앞으로 방영될 '맨땅의 헤딩'의 유노윤호는 가수이면서 연기에 도전하는 인물들이다. 한편 개그맨들의 드라마 출연도 예외적인 일은 아니다. '선덕여왕'에서 뛰어난 감초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류담, '스타일'에서 에디터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 개그맨 한승훈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연예인들이 자기 영역을 넘어서 타 분야까지 넘나드는 퓨전 경향은, 연예인 당사자들과 프로그램 제작자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생겨난 것이다. 연예인 입장에서 보면 과거 이미지는 겹치지 않아야 하는 어떤 것으로 여겨졌었지만 신비주의가 지나간 리얼리티 세상에서 이런 사고방식은 수정되었다. 연예인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 즉 다양한 얼굴들이 존재하는 것이고, 연기든 노래든 개그든 그것은 하나의 퍼포먼스일 뿐이라는 것을 대중들은 인식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박예진이 정극에서 멜로 연기를 하면서, 동시에 ‘패밀리가 떴다’에서 웃음을 주는 것은 자연스럽고 또 솔직한 모습이 되었다. 하나가 아닌 복합적인 이미지가 오히려 호감을 준다는 이야기다.

한편 제작진들은 영역 바깥의 인물들이 갖고 있는 인지도와, 새로운 영역 속에 들어왔을 때의 신선함을 주목했다. 개그맨이 버라이어티쇼를 하는 것은 당연한 어떤 것으로 치부되는 반면, 가수나 배우가 버라이어티쇼를 하는 것은 새로운 호기심을 만들어낸다. 게다가 영역 속에서 그 영역에 익숙해진 이들은 리얼이 대세인 현재의 쇼 속에서 자칫 인위적인 모습을 연출할 가능성이 높다. 차라리 그 분야의 프로보다는 타 영역에서의 프로(따라서 그 분야에서는 아마추어가 되는)가 오히려 각광받는 상황은 연예인들의 영역 파괴 열풍에 불을 지피고 있다.

이러한 영역파괴의 경향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잘 나가는 특정 연예인에 대한 집중도가 그만큼 높아진다는 것은, 이제 새롭게 진입하려는 신진 연예인들에게는 커다란 장벽으로 작용한다. 한 분야에서 성공하면 타 분야까지도 영역이 넓어지지만, 이것은 결국 몇몇 연예인들이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장악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드라마에서 젊은 배우들의 입지는 점점 좁혀지고 있는데, 그것의 한 원인은 가수들의 드라마 진출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은 또한 리얼 버라이어티쇼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개그맨들의 입지가 줄어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편 ‘무한도전’의 ‘강변북로 가요제’ 앨범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가수로서의 성공이 음악적인 성취보다 이러한 이벤트적인 요소에 좌지우지된다는 허탈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영역파괴의 경향은 바꿀 수 없는 흐름이다. 따라서 이 변화를 거부한다는 것은 아예 연예 생태계에서 살기를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앞으로 연예인은 말 그대로의 ‘탤런트(talent : 재능을 가진 사람을 뜻함)’의 의미를 가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달라진 생태계는 벌써부터 거기에 맞는 탤런트들을 포진시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