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보나 다 불황이다. 거의 모든 경제지표들이 곤두박질치고 있는 상황. 이 상황에서 TV는 어떤 존재로 각인되고 있을까. 1,2년 전만 해도 TV의 화두는 리얼리티였다. 드라마에서 트렌디를 벗어나 좀 더 디테일과 현장감을 살린 전문직 장르 드라마가 꽃을 피웠고, 예능에서는 버라이어티 쇼 앞에 '리얼'이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발빠른 케이블TV에서는 리얼리티쇼들을 서둘러 수입하거나 자체적으로 제작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막돼먹은 영애씨' 같은 다큐드라마가 나왔으며, 가짜를 진짜처럼 만들어낸 페이크 다큐가 하나의 대세처럼 우후죽순 쏟아져 나왔다. 채널을 어느 쪽으로 돌리든 프로그램이 하는 얘기는 이랬다. "이거 리얼입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리얼이라는 수식어는 과거에 비해 서서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실정이다. 아직까지 과거의 수식어 그대로 전문직 장르 드라마, 리얼 버라이어티쇼 같은 용어들을 사용하고는 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이게 진짜 리얼이 맞는가 싶은 의구심이 생길 정도다. 먼저 드라마쪽을 보면 올 한 해 드라마의 한 경향으로 보였던 방송가 소재 드라마들의 경우, 리얼리티보다는 판타지쪽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을 비교할 수 있는 두 드라마는 '온에어'와 '그들이 사는 세상'이다. '온에어'는 방송가의 뒷얘기를 리얼하게 다룰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이른바 스타들의 화려하고 다이내믹한 삶에 대한 대중들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드라마로 그려졌다. 결과는 20%에 달하는 시청률이 말해줬다. 하지만 너무 리얼해 그들이 사는 세상이 우리가 사는 모습과 그다지 다를 것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그들이 사는 세상'의 경우, 시청률은 좀체 10%를 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사는 세상'과 맞붙은 '에덴의 동쪽'은 시대극을 표방했지만 사실은 욕망과 복수를 그리는 판타지극을 선보이면서 30%대에 이르는 시청률로 월화를 평정했다. 그래서인지 최근 드라마들은 점점 리얼리티보다는 판타지쪽으로 힘을 실어주는 양상이다. SBS에서 새로 시작한 '떼루아'는 그 전문적인 세계보다는 트렌디한 남녀 관계에 더 몰두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바람의 화원'이 끝나고 시작할 '스타의 연인'은 본격 트렌디 드라마의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TV의 판타지 편향은 드라마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새 강자로 등장한 '패밀리가 떴다'는 바로 그 리얼리티보다는 판타지 설정에 힘을 실어주면서 부상한 경우다. '패밀리가 떴다' 속의 캐릭터나 상황은 대부분 설정이다. 초반부터 관계를 만들어내며 그 관계 속의 상황을 통해 웃음을 주었던 이 쇼는 다른 시각으로 보면 거의 시트콤에 가까운 성격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1박2일'이 가졌던 야생의 리얼리티와는 상반되는 것이다. 즉 '1박2일'은 날것의 것을 그대로 보여주려 하지만, '패밀리가 떴다'는 대중들이 보고 싶은 것을 보여주려 한다는 점이다. 바로 이것은 이 쇼가 판타지에 기반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우리 결혼했어요' 같은 가상설정 버라이어티 쇼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도 예능의 판타지 편향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가상 부부, 가상 가족 같은 개념은 사실 우리가 드라마를 보면서 늘 상 빠지게 되는 판타지의 하나이다. 우리는 트렌디 드라마를 보면서 그 주인공들에게 감정이입 되는 판타지를 경험하고, 가족 드라마를 보면서 거기 있는 가족을 또 하나의 나의 가족으로 여기는 경험을 하게 된다. 가상 버라이어티 쇼는 바로 이런 드라마적 설정과 예능의 웃음코드를 연결시킨 것이다.

이처럼 TV의 판타지 편향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얼까. 이것은 힘겨워진 현실에서 TV는 정보와 의미를 통해 말 그대로 멀리 있는(tele) 것을 가까이 보여주는(vision)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잊게 해주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TV 앞에서나마 현실을 잊고 싶어 하는 대중들의 마음, 너무나 이해되고 공감 가는 것이지만 안타까운 현실이기도 하다.
(이 글은 스포츠칸에 기고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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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영의 발견, 장태유 PD의 성과 그리고 박신양의 숙제

'바람의 화원'은 시작하기 전부터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그 이유는 이 범상치 않은 사극이 제시하는 세 가지 도전 상황 때문이었다. 그 첫째는 박신양이 첫 사극 도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며, 둘째는 문근영이 남장여자 출연으로 그녀에게 족쇄로 작용하던 국민여동생 이미지를 벗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장태유 PD가 역시 첫 사극 도전을 어떻게 해낼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그렇다면 종영에 와서 이 도전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문근영의 발견, 국민여동생에서 연기자로
'바람의 화원'의 최대 성과는 아마도 문근영이라는 배우의 재발견일 것이다. 문근영은 이미 국민여동생이라는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었지만 바로 그 이미지가 족쇄로 작용했던 게 사실이다. 한 때 '사랑따윈 필요 없어'같은 영화에 출연하면서 성인연기자로의 변신을 노렸던 문근영이지만 대중들은 그 이미지 변신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바람의 화원'에서 남장여자 설정의 신윤복이란 캐릭터를 만나 문근영은 비로소 이 족쇄를 벗어버릴 수 있었다. 여성의 이미지를 남장여자라는 캐릭터 속에서 중화시켜버리자 비로소 문근영의 연기자로서의 면모가 드러났고, 그것은 대중들의 호평으로 이어졌다. 극중 신윤복이 당대 사회에 갇힌 새로써 당당히 새장을 빠져 날아간 것처럼, 문근영은 이 작품을 통해 국민여동생이라는 새장을 벗어나 연기의 세계로 훨훨 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장태유 PD의 성과, 사극에서 더 빛난 연출
'쩐의 전쟁'을 연출했던 장태유 PD의 연출 스타일은 꼼꼼하고 빡빡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이 완벽주의자의 연출에 걸리면 배우들은 죽어난다는 곡소리를 하면서도 그 완벽한 결과물에 환호성을 지른다고 한다. '바람의 화원'으로 첫 사극 연출에 도전한 장태유 PD는 특유의 꼼꼼함으로 군더더기 없는 영상을 선보였다.

게다가 실험적일 수 있는 그림 속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풀어내는 연출은 오래된 시간 속에 박제된 옛 그림을 눈앞에 생생하게 살려놓는 특별함을 선사했다. 그림 대결과 감동(감상)을 통해 설명되는 그림의 묘미는 사극 외적으로도 충분한 미술적인 즐거움을 제공해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현대물과 사극을 오가는 그 연출력을 인정받음으로써 장태유 PD는 앞으로 좀 더 폭넓은 연출의 세계로 뛰어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다.

박신양의 사극 도전, 비슷한 캐릭터 이미지가 발목 잡아
아쉬운 점은 박신양의 사극 도전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그가 사극 연기에 실패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극 속에서도 그는 여전히 훌륭한 연기력을 보였지만, 그 김홍도라는 캐릭터의 해석에 있어서 지나치게 기존 캐릭터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보였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즉 김홍도에게서 '쩐의 전쟁'의 금나라 이미지가 반복되어 보이자 그 역할은 박신양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처럼 보였다.

물론 후반부에 와서는 어느 정도 역할에 적응이 된 모습을 보였지만 어쨌든 박신양에게 이 사극은 이제는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도전의 필요성을 알게 해주었다. 자칫 하나의 패턴으로 고정된 이미지는 아무리 좋은 연기력이라 해도 대중들에게 외면 받게 된다는 점을 숙지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여러모로 박신양에게는 연기자로서 숙제로 남은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람의 화원'은 여러 모로 새로운 소재와 새로운 연출, 연기가 어우러져 독특한 사극의 한 세계를 열어놓았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말할 수 있다. 그 도전이 아름다웠고 그 성과 또한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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