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하면서 보는 프로그램이 대세인가. 최근 일일드라마 ‘너는 내 운명’의 발호세(?)라는 인물이 화제다. 드라마상 이름은 본래 강호세인데, 흔히들 말하는 발연기(발로 하는 연기 같다는 뜻으로 연기력 부재를 비하하는 말)의 ‘발’자를 붙여 발호세라 불리고 있다. 발호세의 연기력은 지탄의 대상에서 이제는 격상되어 “연기의 신기원을 열었다”는 식으로까지 오히려 인기(?)를 얻고 있다. 손바닥에 맞지도 않았는데 어색하게 쓰러지는 장면은 드라마 속에서는 그저 지나가는 장면이었을지 몰라도 인터넷 세상으로 오면 하루에도 수만 번씩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발연기의 끝장을 보여준다.

발호세의 백미는 이른바 ‘붕가시리즈’에서 압권을 이룬다. 대사가 되지 않아 “저희 분가하겠습니다”라는 말이 묘한 뉘앙스로 들리자, 네티즌들은 이 장면을 떼어 붙인 후, 밑에 자막으로 “저희 붕가하겠습니다”라는 설명을 덧붙여 놓았다. 댓글들은 내용은 없고 대부분 “ㅋㅋ” 같은 웃음소리만 가득 차 있다. 이 정도면 어설픈 연기를 보면서 화가 났던 시청자들도 그저 박장대소할 수밖에 없다. 이른바 정극의 연기가 너무나 어설퍼 그 자체가 개그처럼 희화화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은 분명 욕이지만, “그래서 안 본다”는 식의 욕이 아니다. 오히려 “그래서 기대된다”는 의미까지 들어가 있다. “그래 막장드라마야 끝까지 한번 해봐라”는 식의 적극적인 체념적 대응이다.

만일 ‘너는 내 운명’이 꽤 괜찮은 주제와 스토리, 그리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캐릭터를 세워둔 드라마였다면 어땠을까. 몇몇 발연기는 그저 웃어 넘겨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설정으로 가고 있는데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은 40%에 육박한다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욕하면서 다 본다는 얘기다. 한편에서는 드라마 속 비현실적 캐릭터를 욕하면서 보고, 또 한편에서는 이 비현실적인 드라마를 욕하면서 본다는 말이다.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의 역사는 너무나 깊어서 어디서부터 그것이 비롯되었는지 찾기가 어렵다. 어쩌면 저 신파로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갈등이고, 그 갈등에는 대립하는 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니 한쪽에서 문제를 만들면 다른 쪽은 거기에 대한 대응을 하면서 드라마가 만들어진다. 이것은 드라마의 기본 얼개다. 그러니 어찌 보면 심정적으로 자기 편인 주인공을 핍박하거나 대립하는 대상을 욕하면서 드라마를 보는 건 정상적인 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나 캐릭터가 등장할 때다. 대부분 드라마를 보면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핍박하는데 요즘 같은 상황에 그런 시어머니가 있을 리 만무며 그렇게 한다고 당하는 며느리도 있을 턱이 없다. 그런데 그 비정상적인 상황이 드라마로 나왔을 때, 그 상식을 뛰어넘는 캐릭터는 오히려 힘을 발휘한다. 비현실적일수록 보는 시청자들의 어처구니없음은 더 커지고, 거기에 대한 분노, 혹은 적개심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 상태를 느꼈다면 이건 그 드라마에 낚였다는 얘기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중독이라는 것이다. 중독은 자신에게도 그다지 좋은 것이 아니고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바로 그것 때문에 빠지게 되는 것을 말한다. 비정상적이라 빠지는 것이다. TV의 주 시청층의 연령대가 높아지면서 그러나 이 중독적이고 퇴행적인 드라마들은 아무런 문제없이 그 시청층에 환영을 받는다. 욕? 그것은 인터넷에서나 회자되는 것들이다.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라는 말에는 두 주체가 나뉘어져 있다. ‘욕하면서’는 그 드라마를 전적으로 지지하지 않지만 그저 볼 수밖에 없어 보게된 시청층들이 인터넷에서 주로 하는 행위이며, ‘보는’은 이런 상황과 전혀 상관없이 그것의 문제를 인식하지 않고 보는 고정 시청층의 행위를 말한다. 이 두 주체는 나뉘어져 있고, 이 드라마를 보는 두 시선 또한 점점 갈라져가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TV가 점점 올드 미디어화되어 가고 있거나, 뉴미디어의 세대들의 감성을 끌어안지 못하고 있다는 징후로도 볼 수 있다.
(이 글은 스포츠칸에 게재되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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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배우들 틈에서 빛난 그들의 개그

올 한 해 개그계는 유난히 힘겨웠던 걸로 기억된다. 하반기에 와서 ‘개그콘서트’가 겨우 힘을 발휘할 뿐, 무대개그는 여전히 어렵고, 각종 예능 프로그램들도 개그맨들보다는 가수들과 배우들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자신의 입지를 다져온 두 개그맨이 있다. 바로 ‘1박2일’의 이수근과 ‘무릎팍 도사’의 유세윤이다.

지옥을 천국으로 만든 이수근의 상황극
사실 이수근에게 올 한해는 가장 어려웠으면서 동시에 가장 보람된 한해로 기억될 것이다. ‘개콘’에서 고음불가의 인기에 힘입어 ‘1박2일’에 (메인 MC인 강호동을 빼고) 유일한 개그맨으로 투입되었지만 처음 하는 리얼 버라이어티의 적응은 쉽지 않았다. 프로그램 내내 운전대만 잡고 조용히 일만 하는 그에게 ‘국민일꾼’이라는 캐릭터는 그다지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었을 터이다. 심지어 ‘1박2일’ 디시인사이드 갤러리에서는 그런 이수근에게 ‘수근신’이라는 별명까지 붙여주었다. 여기서 신은 개그맨이면서 웃기지 못하는 ‘병신’을 뜻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병신이라는 폄하의 의미의 ‘신’은 몇 달 후 진정한 웃음을 주는 웃음‘神’이라는 의미로 격상된다. 어느 날 한가한 틈에 갑자기 던져본 상황극이 터지기 시작하면서 이수근은 점차 ‘빈자리 개그’의 주인이 되었다. ‘1박2일’ 특성상 이동을 하거나 할 때 지루해지는 시간들이 생기는데 이럴 때 이수근은 없는 상황을 만들어 팀원들에게 웃음을 주었고 그 웃음은 바로 시청자들에게도 전이가 되었다. 매번 운전대만 잡고 있다는 한탄 역시 성실함의 이미지로 바뀌었다. 이수근은 자신이 직접 버스를 몰고 ‘1박2일’팬들을 모시겠다는 뜻으로 1종대형면허를 따서 거꾸로 국민드라이버로의 적극적인 변신까지 시도했다.

다양한 분야로 확장된 유세윤의 건방진 캐릭터
한편 ‘무릎팍 도사’의 옆자리에 앉아 사정없이 건방을 떠는 캐릭터로 자리잡은 유세윤은 올해가 주목한 또 한 명의 개그맨이다. 건방진 도사는 건방진 프로필을 통해 시대의 지성이건 예술가이건 할 것 없이 거침없는 입담을 보여주었다. 특유의 깐죽대는 개그는 올 한해 개그의 트렌드이기도 했고, 그것을 완벽하게 캐릭터화한 유세윤은 서태지 앞에서도, 황석영 앞에서도 전혀 주눅들지 않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각종 토크쇼에서 그 캐릭터를 강화하고 확장해나갔고, 고향이랄 수 있는 ‘개콘’에서는 ‘할매가 뿔났다’ 같은 코너를 통해 재수 없는 캐릭터를 통한 웃음을 새로운 상황 속으로 확장시켜 나갔다. 이 ‘미워할 수 없는 재수 없음’이라는 캐릭터는 자칫 억지춘향이 되기 쉬운 프로그램 속의 감동 모드를 삭여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무릎팍 도사’가 어떤 진지함 속에서 감동의 순간을 포착할 때, 본연의 모습인 가벼운 토크쇼로 다시 돌려주는 것은 유세윤의 이 건방진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이 두 개그맨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강호동의 남자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개콘’이 배출한 스타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우연처럼 보이는 것이 과연 우연일까. 이들은 그만큼 ‘개콘’이라는 공간에서 치열하게 생존경쟁을 몸에 체득해왔고, 그것이 어떤 어려움이나 어떤 상황 속에서도 웃음을 줄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고 보여진다. 또 물론 강호동이 올 한 해 두 마리 토끼, 즉 리얼 버라이어티로서의 ‘1박2일’과 새로운 토크쇼로서의 ‘무릎팍 도사’를 잡았지만 그 뒤에는 바로 이 그림자 같은 두 개그맨의 지원이 있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일이다. 이수근과 유세윤은 올 한해 어려웠던 개그맨들에게 어떤 희망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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