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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하는 드라마와 겉멋에 빠진 드라마, 그 명암

작품의 질적인 부분은 일단 차치하자. 시청률과 시청자들의 평가만을 놓고 볼 때, 작품의 성패를 가름하는 것은 질적인 부분보다는 시청자와 작품 간의 소통에 있기 때문이다. 최근 두 드라마가 이 소통에 있어서 상반된 길을 걷고 있어 눈길을 끈다. 세대를 넘어서 거의 모든 대중들의 공감을 통해 시청률 40%를 넘어선 ‘찬란한 유산’과, 세련된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전혀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인물설정으로 이제 시청률 5%대로 추락한 ‘트리플’이 그것이다.

드라마를 대중들과 소통하는 하나의 커뮤니케이션으로 봤을 때,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드라마가 구사하는 화법이다. 그런 면에서 ‘찬란한 유산’의 화법은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다. 이것이 지나치다고 표현하는 것은 그것 때문에 심지어 세련된 느낌마저 상쇄되기 때문이다. 모든 걸 세세히 설명해주는 화법은 겉으로 보기에 폼이 나지 않게 마련이지만, ‘찬란한 유산’은 그런 겉멋에 연연하지 않는다. ‘찬란한 유산’은 고은성(한효주)이 어떻게 바닥까지 떨어지고 그 바닥에서 장숙자(반효정) 여사를 만나고 다시 어떻게 조금씩 상승하는가를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이 드라마가 말하려는 주제가 간결하고도 명료하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권선징악을 말하고 있고, 따라서 시청자들은 이미 초반부터 이야기가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를 다 파악하고 있다. 이런 경우 드라마는 철저히 시청자들과의 공감을 목표로 흘러간다. 고은성은 좀 더 잘 되어야 되고, 백성희(김미숙)는 파멸해야 하며, 고은성을 도왔던 인물들은 그만한 보상을 받아야 하고, 고은성을 통해 선우환(이승기)과 그 가족들은 좀 더 성장해야 한다. 드라마는 바로 이 시청자들의 바람을 하나씩 이루어주는 과정이 된다. 즉 소통은 이미 드라마의 시작과 함께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반면 ‘트리플’은 정반대다. 이 드라마의 주제는 시청자들의 공감을 끌어내기가 어렵게 설정되어 있다. 오빠-동생 사이에서 싹트는 사랑(신활과 이하루)이나, 친구의 아내와 사랑에 빠지는 것(장현태와 최수인), 결혼을 외면하고 바라는 사랑(조해윤과 강상희)은 모두 보통 사람들이 겪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러니 ‘트리플’은 시작부터 바로 이 보통 사람들의 생각들이 만들어내는 벽을 뚫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한다. ‘트리플’의 주제가 바로, 이런 상식 밖의 일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숨 쉬고 사랑하고 아파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런 어려운 주제의식은 작가와 PD의 대단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트리플’은 그 도전적인 주제의식에도 불구하고 전혀 소통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는다. 대신 그들의 빗나간 사랑의 풍경을 예쁜 그림으로만 보여주려고 했다. 소통은 겉모습으로 덮어지는 것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관계 속에서 서로 고민하는 모습들이 비춰질 때, 시청자들은 비로소 ‘그래 저럴 수도 있겠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트리플’의 주인공들은 이런 고민이나 표현을 지질한 어떤 것으로 여기는 이른바 쿨한 인물들이다. 그들은 고민은 차치하고 그저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고 한다. 그러다 보면 모든 건 다 지나가고 해결될 것이라고. 이 주제의식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네 시청자들과의 소통에 있어서는 굉장히 어려운 길을 선택한 것만은 분명하다.

‘찬란한 유산’이 바로 그 소통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 드라마로서 보다 효과적으로 공감을 가져갈 수 있었다면, ‘트리플’은 소통의 벽에 부딪칠 수 있는 상황을 뛰어넘어야 하는 드라마로 어떤 공감을 얻어낼 수가 없었다. 이것은 어쩌면 작품을 대하는 PD나 작가가 가진 마인드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드라마에 대한 쌍방향의 소통이 늘 순간순간 일어나는 요즘, 늘 겸손한 자세를 견지하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읽는 마음은 제작자들이 가져야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되었다. 한때의 성공이 가져온 지나친 자신감은 때론 독이 되며, 반대로 오랜 기간 묵혀졌던 힘겨운 시간들은 때론 약이 된다. ‘트리플’의 참패와 ‘찬란한 유산’의 성공은 바로 그 갈림길에서 생겨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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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초 연기의 대가 이문식, '선덕여왕'이 재발견한 감초, 류담

"니들 위장이란 거 해봤어? 안 해봤으면 말을 말어." '개그콘서트' 달인 코너의 대사가 아니다. '선덕여왕'에서 웃음을 책임지고 있는 죽방(이문식)과 고도(류담)가 나누는 대화 중 하나다. 덕만(이요원)이 미실에게 접근하기 위해 용화향도들까지 속인 것에 대해 마치 죽방이 그것이 위장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너스레를 떠는 장면이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고도 역할의 류담이 하는 말이 예사롭지 않다. "아휴 지겨워. 맨날 말을 말래." 이것은 '개그콘서트' 달인의 패러디다. 달인 김병만이 늘 하는 말, "안 해봤으면 말을 말라"는 그 말을 '선덕여왕'의 죽방고도가 나누는 웃음의 코드로 끌어들인 것이다.

'선덕여왕'의 죽방고도 콤비만 떼놓고 보면 진짜 '개그콘서트'의 달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죽방이라는 캐릭터는 늘 "자기는 다 알고 있었다"거나,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허세를 부리는 '선덕여왕'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류담이 맡은 역할이다. '개그콘서트'에서 류담은 달인의 머리를 툭 치며 "나가!"하고 면박주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선덕여왕'에서 류담은 거꾸로 죽방에게 늘 얻어맞는 역할을 하고 있다.

죽방고도 콤비는 긴장감 넘치는 사극 속에 늘 존재하는 감초 역할이다. 어리숙한 도둑이라는 캐릭터는 사극 이외에도 드라마 속에 늘 빛나는 감초 역할을 해왔다. 누군가의 물건을 훔쳤는데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어리숙함은 늘 드라마에 웃음과 함께 극의 긴장감을 동시에 가져올 수 있는 캐릭터다. 죽방고도가 훔쳐온 연적 에피소드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연적으로 해구신을 산 그들로 인해 향도들은 일제히 신체검사(?)를 받게 되는데, 이것은 주인공 덕만을 위기로 몰아넣는다. 반면 그 해구신을 숨기기 위해 고도의 입에 그걸 밀어 넣으면서도 아까운 듯 다 먹지는 말라는 죽방은 폭소를 자아내게 한다. 도둑이란 캐릭터는 더 큰 도둑(이를테면 나라를 훔친) 앞에서는 용인되기 마련. 그것도 그 큰 도둑의 물건을 훔치는 도둑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문식은 이미 정평이 난 감초연기의 달인이다. 그의 감초연기가 여타의 배우들과 다른 점은 그 웃음 속에 서민적인 눈물까지도 묻어난다는 점이다. '일지매'에서 생니까지 뽑아가며 연기투혼을 한 이문식은 뜨거운 부정을 보여줌으로써 웃음은 물론이고 감동까지도 선사했다. '선덕여왕'에서 이문식은 좀 더 웃음의 코드에 접근하는 인물이면서 동시에 덕만이 기댈 수도 있는 형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문식의 감초 연기야 이미 정평이 났지만, 류담의 연기는 재발견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개그콘서트' 달인에서 그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중심에 선 김병만의 개그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 그가 맡은 역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덕여왕'에서의 그의 감초 연기는 보통 개그맨들이 드라마로 진출할 때 넘기가 좀체 어려운 까메오 역할 그 이상을 보여주고 있다. 류담이 연기하는 고도는 그만큼 자연스럽게 드라마에 녹아있다는 말이다.

그간 보지 못했던 그의 다양한 표정 연기는 이문식과 콤비를 이루면서 더욱 빛이 난다. 억울한 얼굴과 놀라서 동그랗게 뜬 눈, 가끔씩 보이는 바보 같은 웃음은 '달인'에서는 보지 못했던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을 류담에게서 발견하게 한다. 거구의 몸 역시 '달인'에서는 주목되지 못했지만, '선덕여왕'에서는 이문식과 대비되면서 이른바 훌쭉이와 뚱뚱이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사극처럼 진지하고 긴장감이 넘치는 드라마 속에서 자칫 감초 역할이 차지하는 비중은 간과되기 쉽다. 하지만 감초는 그저 드라마에 부가되는 웃음이라는 양념만은 아니다. 논리적인 접근보다는 감성적인 접근이 필요한 부분에서 감초라는 캐릭터는 사건을 스스로 만들어내기도 하는 자체로 극을 움직이는 하나의 틀로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선덕여왕'의 달인, 죽방고도가 돋보이는 것은 이 두 가지 역할, 즉 웃음을 주는 역할과 극을 움직이는 역할을 모두 잘 소화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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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위험지대에서 가능성의 지대로

이승기가 처음 '1박2일'에 출연했을 때, 그는 이미지를 관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한겨울 얼음장 같은 물로 머리를 감고, 야생의 생활(?) 속에서도 피부관리를 하는 그의 모습은 가수로서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한 안간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과거라면 아이돌 가수가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것 자체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신비의 베일에 가려 있어야할 아이돌 가수가 맨 얼굴에 눈곱이 낀 채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이라니!

하지만 시대는 이미 바뀌어 있었다. 이승기가 들어왔을 때, 이미 한때(?) 아이돌가수였던 은지원은 은초딩으로 캐릭터를 잡고 있었다. 이승기는 그렇게 예능에 적응해나갔고, 2년여가 지난 지금 드라마에서도 주목받으면서 가수, 예능, 드라마까지 이른바 트리플 크라운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이승기 개인의 성공에 그치는 것일까. 이승기의 성공 과정은 현재 달라진 스타들의 롤모델을 가장 잘 보여주는 현상이 아닐까.

달라진 롤모델의 가장 대표적인 것은 한 스타가 과거라면 도무지 용납되지 않을 상반된 이미지들을 다양하게 갖는 것이 오히려 득이 된다는 점이다. 한 편에서는 정극에 출연하면서 시청자들을 울리는 이승기는, 다른 한 편에서는 버라이어티쇼에 등장해 소녀 같은 가발을 쓰고 정각이 될 때마다 거리에서 시각을 외치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웃긴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 걸까.

신비주의의 시대가 가고 친숙한 이미지가 대세가 된 현재, 다채로운 이미지는 그 자체가 진정성이 된다. 한 사람에게서 한 가지 이미지만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가식이 된다. 하지만 여러 이미지를 보여줄 때, 그것은 오히려 그 사람의 속에 있는 다양한 모습들은 리얼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인식된다. '1박2일'에서 멜로의 중심에 선 이승기를 벌칙수행을 통해 예능의 중심으로 세우는 것은 오히려 이승기에게는 득이 되는 일이다. 과거 상반된 이미지의 겹치기가 용납되지 않던 시대와 달라졌다는 것을 이승기를 통해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승기를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잘 하는 것'이 성공하기 위한 필수조건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승기가 '찬란한 유산'에서 선우환 역을 잘 소화해내고 있는 것은 물론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배우로서 완벽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초반부에 이승기는 여러 모로 어색한 연기를 선보였다. 하지만 이 '잘 하지 못하는 것'을 오히려 뒤집은 것은 '열심히 하는 모습'이었다. 차츰 나아지는 연기를 보면서 이승기는 성장하는 이미지를 가질 수 있었다.

이것은 '1박2일'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승기는 예능과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로 초반부 이물질 같은 느낌을 주었지만 차츰 형들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세워나갔다. 특별한 개인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드러나는 대로 보여주는 것이 이승기의 좋은 이미지를 만들었다. 허당이라는 캐릭터는 바로 이 '열심히'와 '어색한'의 사이에 서 있는 캐릭터다. '잘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열심히 하는 것'이란 걸 이승기는 예능에서는 물론이고 드라마에서도 보여주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승기를 통해 달라진 현재의 스타들의 롤모델을 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팬층이 특정 세대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승기는 어린 아이에서부터 중장년층에 이르기까지 팬층이 넓다. '1박2일'에 출연하기 전까지는 '누나들 사이에서의 이승기'였지만, '1박2일' 출연 후에는 '형들 사이에서의 이승기'가 되었고, '찬란한 유산'에 출연하고는 '부모들 사이의 이승기'까지 되었다. 그는 거의 전 세대를 아우르는 팬층을 갖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은 이승기가 본성처럼 갖고 있는 고급스런 이미지 위에 다양한 이미지들(허당으로서의 이미지나, 까칠한 이미지 같은)을 겹치는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이승기가 현재 스타들의 아이콘이 된 데는 이처럼 경계의 지대에 잘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경계는 분야의 경계이기도 하고, 이미지의 경계이기도 하며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이기도 하다. 과거라면 위험지대가 되었을 경계가 가능성으로 바뀌었다는 것, 그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스타가 바로 이승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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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유산', 핏줄의식에 대한 애증을 넘어서

'찬란한 유산'이 40% 시청률을 넘었다. 이런 드라마를 우리는 국민드라마라고 부른다. 도대체 무엇이 '찬란한 유산'을 국민드라마로 만들었을까. 그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은 극중 주인공인 고은성(한효주)이라는 캐릭터다. 고은성이라는 캐릭터가 국민들을 때론 울리고 때론 기쁘게 했던 것은 그녀가 가진 두 가지 측면, 즉 그녀의 추락과 상승 때문이다. 그녀가 추락할 때 우리는 그녀를 한없는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그녀가 상승할 때 그 승리의 기쁨을 함께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바로 이 추락과 상승에 한 가지 모티브가 얽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핏줄의식이다. 고은성을 추락시키는 것은 백성희(김미숙)의 친딸인 승미(문채원)에 대한 엇나간 모성애 때문이다. 자기 핏줄을 챙기기 위해 자식이지만 남의 핏줄을 내치는 비정한 모성애는 물론 극화된 것이지만, 우리네 스토리텔링 전통 속에 무의식적으로 잠재되어 있는 비뚤어진 욕망이다. 우리네 옛이야기 속에 무수히 다른 판본으로 등장하는 잔인한 계모의 이야기는 우리의 남다른 핏줄의식의 또 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한편 고은성이 그 핏줄의식으로 인해 떨어진 나락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흥미롭다. 그것은 핏줄을 넘어서는 그녀의 사랑(이것은 거의 인류애에 가깝다)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길바닥에서 봉변을 당한 할머니를 그저 지나치지 못하고 데려와 극진히 보살펴주는 일은 혈연과 같은 핏줄의식의 배반이다. 핏줄의식으로 버려졌지만 바로 그 핏줄의식을 넘어서 자식 이상으로 인정받는 고은성의 성장담은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건드린다. 그녀는 자신이 핏줄의식으로 인해 버려진 경험을 함으로써 비로소 그 핏줄의식을 버리고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또 얼마나 자기 핏줄만 챙기며 살아가는 이기적인 존재들인가. 강렬한 핏줄의식 속에는 강렬한 죄의식 또한 자리한다. 고은성을 바라보며 핏줄의식의 사회가 내동댕이친 그녀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바로 그 부채감 때문일 것이다. 타인을 자기 자식처럼 받아들이는 장숙자 여사(반효정), 그녀를 사랑하면서 변화하게 되는 선우환(이승기), 그녀의 삶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조용히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박준세(배수빈)는 모두 우리의 부채감을 대신해주는 분신들이다.

따라서 드라마는 바로 그 핏줄의식의 욕망을 넘어선 자리에 비로소 진정한 관계가 드러난다고 말한다. 장숙자 여사는 친 자식이 아닌 고은성을 유산의 상속녀로 지목함으로써, 박준세는 아버지가 아닌 사회의 정의를 선택함으로써 그 핏줄의식의 욕망을 넘어선다. 물론 선우환의 사랑 역시 이것과 관련이 있다. 자신의 유산(핏줄로 물려받게 될)을 빼앗아갈 지도 모르는 고은성을 그는 사랑하는 것이다. 이러한 세대를 넘나드는 핏줄의식의 배반이 말해주는 것은 우리네 사회가 가진 혈연의 문제가 어느 특정 세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장숙자 여사는 잘못된 자식들을 일깨웠고, 박준세는 잘못된 아버지를 일깨운다.

'찬란한 유산'은 고은성이라는 캐릭터를 내세워 우리가 마음 속에라도 가지고 있었던 핏줄의식의 욕망들이 가진 죄의식을 일깨워 눈물로 정화시킨다. 이것이 바로 '찬란한 유산'이 40%가 넘는 국민드라마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보면 고은성은 우리가 그토록 핏줄의식을 외치며 살아가는 삶 속에서 잊은 것처럼 저 편에 묻어두었던 타인에 대한 죄의식을 바라보게 만드는 캐릭터다. 우리가 그녀들에게 한 짓은 도대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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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팬을 따라가니 사회가 보이네

그녀들은 왜 자신보다 한참 어린 아이돌에 열광할까. 'MBC스페셜'이 던지는 질문은 최근 들어 새로운 팬덤의 하나를 형성하고 있는 일명 이모 팬들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한다.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비나 이민호, 김현중 같은 어린 친구들에 열광하고, 그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거의 외듯이 보며, 팬 사인회나 콘서트장에 어김없이 찾아가는 것을 주변에서는 주책으로 바라볼 수도 있는 일. 하지만 'MBC스페셜'이 포착하려 한 것은 단지 그 기이한 아줌마들에 대한 호기심어린 시선만이 아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이모 팬들의 인터뷰를 따라가면서 이들이 그렇게 스타에 열광하는 이유를 들여다 보다 보면 차츰 이 사회의 모습이 다시 그려지고, 그 사회 속에서 스타라는 존재가 갖는 의미도 다시 포착된다. 무엇보다도 이 사회 속에서 아줌마로 살아간다는 것이 갖는 무게감이 다큐멘터리를 자못 진지하게 만든다. 이것은 'MBC스페셜'이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다큐의 방식이다. 사회의 현상을 다루되, 그 속에 있는 인간에 집중하는 방식.

이모 팬들은 저마다 "왜 이렇게 좋은 걸 이제야 알게 됐나"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 반응 속에 숨겨진 것은 그동안 삶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러면서도 그저 그 삶을 버텨내기만 해왔지 뭔가 돌파구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는 후회다. 점점 자기 자신에 집중하기보다는 누구의 엄마이자 누구의 며느리이자 누구의 아내로 자리하다 보니 차츰 자신에 소홀해진 것에 대한 한탄이다. 그러니 이모 팬들이 가진 젊은 그들에 대한 열광은 그 잃어버린 자신을 찾는 일과 무관하지 않게 된다.

엄마도 아니고 며느리도 아니고 아내도 아닌 한 여성으로서 자신을 위치지울 수 있다는 것은 스타라는 존재가 가진 힘이다.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제시될 수 없어도 어떤 위안을 주고 변화의 계기가 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미 지나간 청춘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은 팬으로서 스타에 열광하는 그 순간 현재적인 것으로 환원된다. 프로그램에 소개된 이모 팬들이 저마다 팬클럽 활동을 하면서 보다 밝아진 자신의 삶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에드가 모랭은 스타라는 존재를 분석하면서 '스타신화는 신앙과 오락 사이에 양자가 혼합되어 있는 지대에 위치'한다고 했다. 과학이 신을 몰아낸 현대사회에서 그 신의 위치를 대리해주는 건 다름 아닌 스타라는 것이다. 과거 종교의 시대에는 힘겨운 현실에 위안을 주고 희망을 던져주는 기능을 한 것이 종교였지만, 이제 그 시대는 저물었다. 이모 팬들이 보여주는 일련의 모습들, 위안을 얻고, 희망을 갖고, 변화를 겪고, 심지어 누군가를 위한 봉사의 손길까지 내미는 그 모습들이 어떤 면에서는 종교를 대체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MBC스페셜"이 보여준 이모 팬이라는 현상은 그 이면에 남겨진 우리 사회의 아줌마들을 되돌아보게 해준다. 사회의 버팀목이랄 수 있는 그녀들의 침묵을 다시 듣게 해준다. 이것은 힘겨운 삶 속에서 어떤 위안과 희망을 얻는 그네들의 활동을 그저 주책으로 치부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물론 신적인 존재로서의 스타 이면에 또 하나의 얼굴로 상품으로서의 스타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작은 위안이 갖는 생각보다 큰 변화를 생각해본다면 이모 팬이 갖는 긍정적인 의미는 결코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MBC스페셜'은 자칫 이론적으로 접근했을 때 놓치기 쉬운 이런 감성적인 의미들을 인간에 집중함으로써 잘 포착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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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롤러코스터, '차우'와 '해운대'

무덤을 파서 사체의 머리를 먹어치우고, 어디선가 나타나 사람을 훅 채어 게걸스럽게 뜯어먹으며, 심지어는 인가에까지 내려와 무차별로 사람들을 향해 돌진하는 식인 멧돼지는 말 그대로 괴물이다. 그 괴물을 잡으러 숲 속 산장에 모여 앉은 사람들은 비장해질 수밖에 없다. 긴박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인 듯, 캠코더로 찍힌 듯한 영상이 어지럽게 돌아가는데 순간, 캠코더를 든 사람이 말한다. "감정이 안 살잖아요. 다시 갈게요." 그러자 그 비장했던 사람들이 과장되게 연기를 한다. 객석에서는 폭소가 터져 나온다. 공포에서 순식간에 풀려진 긴장이 만들어내는 웃음이다.

괴수영화를 표방한 '차우'에서 이런 웃음은 흔하다. 살인사건이라 판단되어 시골로 수사를 온 신형사(박혁권)는 엉뚱하게도 남의 물건을 훔치는 버릇이 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행동은 장르 영화 속에서의 형사가 가진 긴장감을 해체시키면서 웃음을 몰고 온다. 포수 선후배 사이인 백만배(윤제문)와 천일만(장항선)이 심각하게 젊은 시절에 있었던 일을 가지고 설전을 벌이다가, 화를 내며 카메라 밖으로 빠져나간 백만배가 다시 돌아와 놓고 간 총을 가져가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팽팽한 긴장감은 이처럼 어리숙한 행동 하나로 해체되고 순식간에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어버린다.

공포를 기대했던 관객들은 거꾸로 기대한 만큼의 해체를 통한 웃음을 얻는다. 물론 긴박감 넘치는 멧돼지의 돌진과 그것을 피하려 달리고 달리는 인물들이 벌이는 사투는 장르 영화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다. 다만 그 과정을 지나가면서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부분을 코미디로 버무려놓은 것이 다를 뿐이다. 영화를 본 이들이 기묘한 감정에 사로잡히는 것은 이 기대감과 배반감이 동시에 어우러져 기분 나쁘지 않은 유쾌함을 주는 이 영화의 장르 변용 때문이다. 물론 혹자는 그 배반감이 너무 커 실망할 수 있겠지만 장르의 클리쉐가 파괴되는 순간을 즐기기만 한다면 의외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게 된다. 긴박감 넘치는 스릴러와 웃음을 동시에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해운대' 역시 재난영화라는 공식적인 장르에 걸맞지 않게 시종일관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영화라는 점에서 '차우'와 유사한 점이 있다. 재난영화가 가진 재난이 벌어지기까지의 과정에 들어가는 드라마를 '해운대'는 인물들이 만들어가는 다소 과장된 코미디로 채운다. '죽음 앞에 선 인간들'이라는 재난영화의 진지함을 기대하고 극장에 들어선 관객들은 시종일관 터져 나오는 주체할 수 없는 웃음 폭탄에 당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동시에 그 웃음은 의외의 수확을 얻은 것 같은 즐거움을 준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과정들을 촘촘한 웃음의 코드로 채워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구수한 부산 사투리의 사람들이 벌이는 우스꽝스러운 일상들 위로 쓰나미가 밀어닥칠 때, 블록버스터로서의 면모는 비로소 드러난다. 해운대를 삼켜버리는 쓰나미를 연출한 CG는 생각보다 자연스럽고 다이내믹하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이 볼거리를 장악하는 힘은 영화 전반부 내내 쓰나미처럼 몰아친 웃음폭탄 속에 숨겨진 인물들 간의 드라마이다. 그 드라마들이 후반부를 덮치는 쓰나미 위에 겹쳐지면서 웃음은 고스란히 눈물로 전화된다. 인물들에 대한 감정이입이 볼거리의 재미를 부가시키는 것이다.

올 여름 우리식의 블록버스터로 지목되는 '차우'와 '해운대'가 모두 웃음을 주 무기로 갖추고 장르를 변용하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 이것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차별화되는 점인 동시에, 우리식의 블록버스터에 대한 방향모색으로 읽혀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성공적인지는 아직까지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아드레날린을 자극하는 볼거리의 롤러코스터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는 달리, 이 영화들은 시종일관 웃기고 울리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연출하는 것으로 색다른 재미를 구축한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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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해운대, '한국형 재난영화'라기보단 '재난영화'

    Tracked from pa.ra.ma  삭제

    * 영화와 관련된 이미지는 '알라딘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음을 밝힙니다. 그리고 본 이미지들의 권리는 (주)JK픽쳐스, CJ 엔터테인먼트 에 있습니다. 해운대 영화 보고 왔습니다. 극장을 나오면서 남게 되는 2% 찜찜함... 도무지 떨쳐버릴 수 없는 가운데 다른 이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더군요. 역시 '설왕설래' 제가 보고 온 '해운대'와 다른 영화를 보고 온 듯한 전혀 다른 리뷰나 저런 부분은 정말 공감간다고..

    2009/07/22 08:50
  2. 차우 (Chaw, 2009)

    Tracked from 영화....그리고...  삭제

    차우 감독 신정원 (2009 / 한국) 출연 엄태웅, 정유미, 장항선, 윤제문 상세보기 무섭지 않다....긴장감이 없다....그렇지만...조금씩 웃긴다. ㅎㅎ 동막골의 멧돼지가 생각나게 하는 영화~!! 마지막 장면은..괴수..괴물영화의 전형으로...후속편을 예고하듯...새끼가 혼자 있는 장면이 나온다. 이영화도 후속편이 나올까?? 컴퓨터 그래픽이 다소 어색하지만, 그냥 기대감 없이 본다면 볼만하다. 이제 여러 영화에서 엄태웅을 봐서 그런지 엄태웅이..

    2009/08/31 12:27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것이 실재하기나 한 것인지 의심이 가는 저로서는 '해운대'에 대한 기대감은 그다지 크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해운대'는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맞습니다. 블록버스터라 하면 볼거리가 있어야 하는데, '해운대'는 바로 그 실재하는 해운대라는 해수욕장을 집어삼키는 쓰나미(거대한 해일의 일본식 표현이라고 합니다만 이 용어가 가장 느낌을 잘 전달해주는 건 사실이네요)라는 확실한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해운대' 같은 점차 다가오는 재난을 다루는 영화가 그렇듯이, 이 영화의 볼거리는 따라서 맨 마지막에 자리합니다. 그것도 한 10분 정도로 짧고 굵게. 그러니 120분짜리 이 영화에서 110분은 그냥 뚝 떼어놓고 보면 인물들 간의 드라마가 차지하게 됩니다. 한국형 블록버스터에서 '블록버스터'가 이 후반부 10분 동안의 숨가쁜 볼거리라면, '한국형'이라는 표현은 110분간 벌어지는 톡톡 튀는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됩니다.

'해운대'는 바로 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할 110분간의 드라마를 꽤 흥미진진하게 끌고 가는 영화입니다. 거의 각 계층을 망라하는 인물들의 좌충우돌이 만들어내는 웃음은 왠만한 코미디영화보다도 더 관객들을 웃음의 바다에 빠뜨립니다. 만식(설경구)은 과거의 아픈 기억 때문에 늘 술에 절어 살지만 그 헤롱헤롱하는 모습 자체가 관객들을 웃게 하고 오동춘 역의 김인권은 영화 도처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관객들을 폭소의 도가니에 빠뜨립니다. 119 구조대원인 형식(이민기)과 철없는 삼수생 희미(강예원)의 알콩달콩한 로맨스는 왠만한 로맨틱 코미디를 연상케 합니다.

여기에 부산 특유의 정서는 구성진 사투리와 어울리면서 독특한 웃음의 지대를 보여줍니다. 부산 사직구장에서 부진한 이대호 선수에게 술취한 만식이 "야 이 돼지야"라고 약을 올리는 장면은 부산 아니면 나올 수 없는 것들이죠. 바닷물에 빠진 희미를 형식이 구조하면서 벌어지는 몸개그에 가까운 일련의 행동들 역시 부산, 그리고 해운대라는 어쩌면 한 걸음 정도 허공 위로 들려올려진 분위기의 공간이기에 용납되는 것일 겁니다.

할머니에서부터 꼬마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강한 경상도식의 캐릭터를 보여주며 110분간 웃음의 쓰나미를 연출하던 영화는 마지막 10분에 가서 그 웃음을 눈물바다로 바꾸어버립니다. 10분 동안 벌어지는 인물들의 사투와 희생, 죽음은 웃음 속의 주인공들이었던 110분간의 그 시간을 다시 되돌아보게 해주죠. 이 웃음과 감동의 기막힌 병치는 이미 다 알고 있는 이 영화를 흥미진진하게 만듭니다. 쓰나미가 덮치는 장면 속에서 사투를 벌이는 이들이 그저 지나가는 행인이 아니라 우리가 110분 동안 보아왔던 삶을 갖고 있는 인물들이기에 그 감동은 더 커질 수밖에 없죠.

'해운대'는 이로써 여러 결의 쓰나미를 보여준 셈이 됩니다. 먼저 해수욕장을 덮치는 블록버스터로서의 볼거리 바로 그 쓰나미가 하나이고, 그 마지막 10분에 도달하기까지 쉴 새없이 관객을 배꼽잡게 만드는 웃음의 쓰나미가 두번째이며, 마지막으로 이 둘이 만나 10분을 울게 만드는 감동의 쓰나미가 세번째입니다. 헐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쉴 새없이 볼거리를 던지며 아드레날린을 자극하는 것이라면, '해운대'라는 한국형 블록버스터는 볼거리만이 아닌 그 안의 이야기들을 통해 감정을 건드리는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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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납량특집: 역대 공포영화 최고의 귀신 BEST 10

    Tracked from BEST 10  삭제

    # 경 고 # 노약자 및 임산부나 심장이 약하신 분들은 아래에 나오게 될 경미한 사진들에 혹시나 설마하니 나자빠질까 두렵사오니, 이에 해당하시는 분들은 가급적 이런 얼토당토 않은 리뷰는 보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참고로 아래에 나오는 사진들은 죄다 영화사쪽에서 홍보를 위해 포털사이트에 제공한 기본적인 사진들로써 절대 불펌이나 캡쳐사진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이상. 본격 납량특집: 역대 최고의 귀신 BEST 10 쨔쟌~~ 빠라바라밤 빠라바라밤 빠라바라..

    2009/07/18 23:57
  2. 해운대, '한국형 재난영화'라기보단 '재난영화'

    Tracked from pa.ra.ma  삭제

    * 영화와 관련된 이미지는 '알라딘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음을 밝힙니다. 그리고 본 이미지들의 권리는 (주)JK픽쳐스, CJ 엔터테인먼트 에 있습니다. 해운대 영화 보고 왔습니다. 극장을 나오면서 남게 되는 2% 찜찜함... 도무지 떨쳐버릴 수 없는 가운데 다른 이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더군요. 역시 '설왕설래' 제가 보고 온 '해운대'와 다른 영화를 보고 온 듯한 전혀 다른 리뷰나 저런 부분은 정말 공감간다고..

    2009/07/22 08:45
  3. 해운대, 절반의 성공? 아니면 실패?

    Tracked from 감성적인 현실주의자  삭제

    영화 해운대 개봉일의 극장은 생각보다 한산하더군요. 우리나라 최초의 재난영화로 만들어진 해운대는 제작발표를 하고 개봉하기 전까지 그다지 큰 호응을 얻진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재난영화에서 가장 중요할수 있다고 볼 수 있는 CG 즉, 컴퓨터 그래픽을 얼만큼 실감나게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입니다. 애국심에 봐주었던 '디워'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겠습니다. 또 한가지는 윤제균 감독에 대한 불신(?)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색즉시공, 두사..

    2009/07/23 13:08
  4. 영화 ‘해운대’를 통해 본 우리나라에 쓰나미가 일어날 가능성은?

    Tracked from ::국토해양부 블로그 행복누리::  삭제

    지난주 개봉한 영화 '해운대'는 한국형 재난영화를 표방하며 관객몰이에 나서고 있는데요. 현재 박스오피스 순위에서 외국영화와 경쟁하며 상위에 랭크될 만큼 많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직접 영화를 보신분...

    2009/07/27 16:46
  5. 어정쩡한 오후 3시같은 영화 - 해운대 -

    Tracked from 보편적인 블로그  삭제

    부산 해운대, 우리 나라 여름 최대 인파가 몰리는 해운대에 쓰나미가 몰려온다! 시놉시스의 이 한줄로 이 영화의 기대치는 엄청나게 올라갔다. 드디어 한국에서 제대로 된 재난영화를 만날수 있다는 기대감에 한층 들떠있었다. 감독은 윤제균 감독님. 사실 이 감독의 영화는 한번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이 감독에 대한 어떤 정보도 알 수 없었고, 무작정 영화에 들이대는 수 밖에 없었다. 영화는 대략 4명의 등장인물이 등장한다. 설경구, 하지원, 박중훈, 엄정화..

    2009/08/08 15:52

대중의 기대와 작품 사이, 소통의 실패가 가져온 결과

결혼과 연애 사이, 오빠와 연인 사이, 우정과 사랑 사이. 이처럼 중간에 서 있는 것은 그만큼 오인 받을 소지가 많다. 결혼과 연애 사이에 서 있는 것은 문란한 방탕으로 보이기 쉽고, 오빠와 연인 사이에 서 있는 것은 근친상간을 연상케 하며, 우정과 사랑 사이에 서 있는 것은 불륜으로 보이기 쉽다. 특히 우리처럼 이쪽 아니면 저쪽이어야 하는 것이 마치 당위처럼 강요되는 사회 속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으면 양쪽으로부터 공격받는. 그러니 '트리플'은 한 가지도 오인 받고 비난받기 쉬운 어려운 난이도의 소재들을 무려 세 가지나 동시에 돌아야 하는 드라마다.

'트리플'이 가진 화법의 문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지 알 수 없는 초반부의 스토리만을 놓고 보면 이 드라마는 실제로 논란거리들이 가득한 드라마처럼 보인다. 그 낯선 지대에 서 있는 남녀들의 관계가 그렇다. 조해윤(이선균)과 아무렇지도 않게 하룻밤을 지내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친구로 돌아가려는 강상희(김희)와, 자꾸만 오빠가 좋아진다는 이하루(민효린), 또 친구의 부인이지만 그녀를 사랑하게 된 장현태(윤계상)는 드라마를 불편하게 만든다.

게다가 이들은 그 골치 아픈 관계 속에 들어가게 되는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는 캐릭터들이 아니다. 그들은 일단 먼저 행동하는 이른바 쿨한 인물들이다. 장현태는 마음을 빼앗긴 최수인(이하나)에게 조금씩 다가가기보다는 어느 날 갑자기 그녀의 집 담장을 뛰어넘는다. 집 마당에 농구대를 떡하니 세워두고 자기 집처럼 드나들며 그녀 앞에 불쑥불쑥 자신을 드러낸다. 이 행동은 아무런 고민 없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인다. 장현태는 늘 밝은 얼굴을 하고 있고 행동은 거침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행동은 후에 장현태의 고백으로 밝혀지는 것이지만, 아무 고민 없이 결행된 것들이 아니다. 장현태는 마음을 정리하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자신이 최수인의 집으로 가기까지 여러 번 그 동네 주변을 뱅뱅 돌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는 것을 밝힌다. 이것은 조해윤과 강상희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쿨한 인물들은 좀체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행동부터 보여준다. 하룻밤을 지내고도 "친구로 지내자"고 말했던 강상희에게 조해윤이 "넌 그게 쉬운 여자잖아"하고 심한 말을 하자, 그녀는 비로소 자신도 고민을 했었던 것을 밝힌다.

이것은 '트리플'이라는 드라마가 가진 화법이다. 이하루(민효린)는 신활(이정재)과의 어떤 일이 계기가 되어 오빠를 좋아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되어버린다. 강상희와 신활이 가깝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이상한 질투를 느끼는 것으로 사랑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이런 갑작스런 행동이 먼저 보여지고, 한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쿨하게 그 이유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는 이 드라마의 화법은 여러모로 위험성을 내포하게 된다. 그 이유가 제대로 밝혀지기 전까지는 결혼과 연애 사이, 오빠와 연인 사이, 우정과 사랑 사이에 선 이들이 그저 방탕하고 불륜적인 모습으로만 비춰지기 때문이다.

'트리플'의 실패, 작품이 아니라 소통이다
이러한 오인되기 쉬운 감추려는 화법 속에서 이윤정 PD 특유의 감각적이고 팬시한 연출은 심지어 이런 기저에 깔린 관계를 포장하기 위한 것으로 오인된다. 하지만 이것은 말 그대로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오해다. 이 드라마는 바로 이 엇갈린 관계의 중간에 서 있는 인물들을 통해, 사회가 얘기하는 규범의 틀과는 상관없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아파하는 것이 바로 우리네 일상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오빠(친오빠가 아닌 관계로서의 오빠)인 줄 알면서도, 친구의 아내인 줄 알면서도, 또 그녀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인 줄 알면서도 사랑에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 최수인의 어머니가 죽음에 임박해서 딸의 불륜이 될 수도 있는 장현태가 보내주는 사진들을 보며 기뻐하는 모습은, 관계의 틀을 벗어난 순수한 사랑의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이런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와 시청자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야기 사이의 차이는 이 드라마의 화법이 시청자와의 소통에서 실패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윤정PD와 이정아 작가라는 콤비는 '커피 프린스 1호점'의 달콤 쌉싸름한 커피향 같은 판타지를 기대하게 만들었지만, '트리플'은 그 엇갈린 관계들이 만들어내는 무게로 판타지를 한없이 무너뜨린다. '커피 프린스 1호점'처럼 청춘들의 순정만화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려했지만 '트리플'은 그 관계의 무게로 인해 순정만화의 기대치를 배반하고 만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정상적으로 조해윤이 보이는 것은 그가 그나마 이 기대치에 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이 주변인물들의 관계들을 보면서 투덜대곤 한다. 강상희에게도 솔직하게 숨기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장현태가 최수인을 여전히 그리워하는 듯 말할 때도 "그만해라. 이젠 지겹다"고 말한다. 조해윤과 강상희가 동거를 한다고 밝혔을 때 우연인 것처럼 보이지만 신활이 "우리 중에 가장 재밌게 사는 놈은 너"라고 말하는 것은 이 드라마의 자기고백인 셈이다. 이처럼 뒤늦게나마 이 화법들이 엇나가고 있다는 것을 드라마는 느끼고 있지만 그 돌파구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트리플'은 이 복잡하고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관계들을 안고 멋지게 삼단 점프를 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소재적으로 오인되는 부분들이 많지만 시도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 전하려는 메시지가 정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삼단 점프를 하면서 정작 그걸 보고 환호해줄 관객들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데서 발생한다. '트리플'이 끊임없이 비난을 받는 것은 작품이 조악해서가 아니라, 그 작품을 대중들의 기대와 맞춰가며 나가려는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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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이라는 사극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누구일까요. 제목이 '선덕여왕'이니 덕만(이요원)이 그 주인공일까요. 그녀와 짝패를 이룰 천명(박예진)이 그 주인공일까요. 아니면 이 모든 싸움의 결과를 가져갈 김유신(엄태웅)과 김춘추가 그 인물일까요. 저는 이 모두가 아쉽게도 그 주인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선덕여왕'의 힘은 다른 곳에서 나오고 있으니까요. 그 인물은 바로 미실(고현정)입니다.

이것은 미실이 이 사극에서 해오는 역할을 통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먼저 미실이라는 존재가 없다면 선덕여왕이라는 존재도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신하들을 자신의 수하로 끌어들여 강력한 권력을 소유하고 전횡하는 미실은 이 사극의 전제조건입니다. 결과적으로 생각해보면 덕만을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보낸 것도 미실이고, 그 곳에서 천문을 읽는 훈련과 세계의 문물을 경험하게 한 장본인도 미실이 됩니다.

미실은 이 사극의 가장 중심에 놓여져 있는 힘입니다. 그녀는 스스로를 카리스마로 무장하고 등장해 극 전체에 긴장감을 부여했고, 그 카리스마를 통해 상대방을 성장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녀와 대적하는 어린 덕만은 바로 그 행위만으로 자신의 아우라를 만들 수 있었죠. 이것은 후에 그녀와 대적하는 천명, 그녀와 대적하는 유신 같이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미실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의 캐릭터는 더욱 부각될 수 있었던 것이죠.

미실은 왕을 허수아비처럼 세워놓기도 하고, 신하들을 자신의 발밑에 줄세워놓기도 합니다. 설원공(전노민)과 세종(독고영재)은 미실을 가운데 두고 묘한 경쟁관계에 놓이고, 그 아들들인 하종(김정현)과 보종(백도빈) 역시 충성경쟁을 하게 합니다. 이 충성경쟁이라는 미묘한 관계는 사극에 어떤 흐름을 만들면서도 변수를 가능하게 합니다. 결국 미실이라는 존재의 카리스마는 같은 편 내부에서도 독특한 힘과 방향성을 만들어내게 하는 것이죠.

그리고 미실은 이 사극의 이야기를 주도해나갑니다. '사다함의 매화'라는 에피소드 속에는 미실의 비밀스런 과거가 숨겨져 있고, 그 과거는 또한 현재의 권력과 그대로 연관관계를 가집니다. 이 비밀 한 가지를 틀어쥐고 있는 미실을 통해 사극은 흥미진진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는 미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사극의 메시지도 숨겨져 있습니다. 민심과 천심에 대한 미실과 덕만의 대화는 이 사극이 말하려는 정치적 대결구도의 실체를 드러내줍니다. 천심을 틀어쥐고 민심을 휘두르려는 미실과 민심을 천심처럼 읽어내려는 덕만은 권력에 대한 서로 다른 시선을 드러내줍니다.

미실이 이 사극에서 얼마나 중요한 지는 잠시 미실이 없는(혹은 카리스마 없는 미실) 이 사극을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미실이 무너지면 사실상 이 사극은 끝이 나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 미실을 연기하는 고현정이 어떤 실패 앞에서도 늘 미소짓고 적까지도 자신의 수하로 끌어들이려는 여유있는 모습을 연기해보여줄 때, 이 사극은 힘을 발합니다. 혹자는 고현정의 연기가 이요원에 비해 단선적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미실이라는 역할은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을 때, 생명력이 길어집니다. 이것은 덕만과는 정반대죠. 덕만이 감정적인 인물에서 차츰 감정을 숨기는 인물로 성장하는 과정과 미실이 감정없는 인물(마치 신처럼)로 서 있다가 차츰 감정이 드러나는 인물(역시 인간이었다!)로 변화해가는 과정의 쌍곡선은 이 사극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악역들이 드라마의 핵심적인 힘을 담당하는 것처럼 '선덕여왕'의 미실도 이 사극의 중추적인 힘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타의 극과 다른 점은 미실이 거의 모든 부분에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 힘겨운 압력을 버텨내고 있는 고현정의 고군분투가 놀랍게 생각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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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권하는 사회에 대한 도발, '결못남'

'결혼 못하는 남자'는 언뜻 보기에는 이 결혼적령기를 지나 혼자 살아가는 남자, 조재희(지진희)에 대한 동정적인 시선의 드라마처럼 보인다. 다들 하는 것을 '못하고' 있는 이상한 성격의 남자, 조재희의 행동에 주변사람들은 "재수 없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혼자 먹는 저녁에 정성껏 스테이크를 굽고 와인까지 챙겨먹는 모습은 자신의 고독감을 속이려는 행동으로 보인다. 심지어 고깃집에 혼자 앉아 고기 맛을 음미하며 먹는 모습은 측은하게까지 생각된다.

하지만 이런 '결혼 못하는 남자'를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측은한 생각과는 달리, 보면 볼수록 마음 한 편으로 이 남자가 꽤 매력이 있고, 또 심지어 이 남자의 생활이 부럽기까지 한 것은 왜일까. 아마도 그 첫 번째는 이 남자가 관계의 피곤에서 해방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혼자인 대신, 그 혼자가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한다. 축제가 벌어질 때, 군중들 속에 자신도 끼고 싶다는 막연한 욕구는 종종 그 군중들이 가져오는 피곤함에 의해 배반당할 때가 많다. 이것은 결혼에 대한 은유다. 조재희가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저 혼자만이 아는 뷰포인트에서 와인이 세팅된 테이블에 앉아 오페라망원경을 손에 들고 그걸 감상하는 것이 궁상맞아 보이다가도 부럽게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이다.

관계 밖으로 나와 있는 그의 삶은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그려낸다. 드라마는 과장되게 마니아적인 삶으로 그것을 그려내지만 어떤 음악을 들을 때는 볼륨을 어느 정도에 맞춰 들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자신의 즐거움에 철두철미하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거나 혹은 포기해버린 그 즐거움을 그는 지독할 정도로 챙긴다. 파도에 자갈 쓸리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 때의 그 즐거움은 사실 이런 삶의 태도에서 비로소 건져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결혼 못하는 남자'는 지상과제로서의 결혼을 거부함으로써 혼자 사는 삶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의 일면들을 목도하게 해준다. '결혼적령기'라는 말이 가진 사회적 압박감, 즉 '결혼은 몇 세 이전에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그 압력은 혼자로서의 삶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치부하게 만든다. 결혼이 사회구성원의 생산과 관련된 것이기에, 이것은 사회의 생존을 건 압력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결혼은 사회생활을 하는 이들의 삶의 모든 것들을 규정해버린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싫어도 사회적 관계들을 유지해야 하고, 그 속에서 개인적인 삶은 잠자리에 들기 전 소파에 앉아 잠깐 TV를 쳐다보는 것 정도로 뒷전에 세워두어야 한다.

'결혼 못하는 남자'는 이러한 결혼을 중심으로 상식이 되어버린 삶에 대한 도발이 아닐 수 없다. 혼자 사는 조재희가 처음에는 이상하고 심지어 안쓰럽게까지 보이다가 차츰 그 삶이 부럽고 또 그가 매력적으로까지 느껴지는 것은 이 드라마가 가진 이 사회에 대한 도발이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징후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은 또한 결혼이 궁극의 목표가 되는 여타의 멜로드라마들에 대한 도발이기도 하다. 멜로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지극히 상투적인 '결혼 못해 안달난 남녀들'보다 이 드라마의 "결혼? 그걸 왜 해?"하고 묻는 이 남자가 더 매력적인 건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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