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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콘'의 풍자개그, 그 현실공감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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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대학등록금이 무슨 우리 아빠 혈압이야?" 이 한 마디면 충분했다. 마치 마당놀이에서 광대들이 세상사를 그 도마 위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요리를 할 때 십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그 경험. 장동혁은 그렇게 '동혁이형'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지자체의 호화청사에 대해 "거기가 무슨 베르사이유 궁전이야?"라고 비판하고, 고층 시청사에 대해 "수익을 낼 거라는데 시청이 무슨 복덕방이야?"하고 꼬집었을 때는 국민의 세금 받아 정작 국민을 위한 일은 좀체 하지 않는 그 답답한 행태에 대한 신랄함에 속이 다 후련해졌다.

물론 이것은 개그다. 우리는 '동혁이형'의 샤우팅을 보면서 억울함에 부들부들 떨거나, 그 말에 선동 당하지는 않는다. 대신 우리는 말 그대로 빵 터진다. 그것은 이 개그가 웃음의 장치를 충분히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기본은 촌철살인의 적절한 비유에서 나온다. '대학등록금'이 '아빠 혈압'과 만날 때, '호화청사'가 '베르사이유 궁전'이 될 때, '고층 시청사'가 '복덕방'이 될 때, 명절 고속도로 정체 속에서 하루 종일 운전해야 하는 귀향객이 "하루 종일 운전하는 이수근"이 될 때, 웃음은 빵 터진다.

게다가 이렇게 세상에 쓴 소리를 던지는 존재가 깔깔이에 교련복을 차려 입은 후줄근한 모습의 낮은 인생이기 때문에, 웃음이 터진다. 즉 정치인들이나 경제인들 같은 엘리트들이 하지 않는 이야기를 전혀 그런 얘기하고는 상관없을 것만 같은 불만투성이 청년이 '저 나름대로' 논리를 갖고 마구 쏟아내기 때문에 웃음이 나온다. 게다가 이 쓴 소리는 '동혁이형'이 스스로 말하듯, "애정이 있어서 하는 말"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 그저 분노를 폭발시키기 위한 헐뜯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억눌렸던 감정이 터지며 그 분노가 웃음으로 전화된다는 점에서 '동혁이형'은 그 말을 입증하는 셈이다.

'동혁이형'이 부조리한 세상을 직설어법으로 풍자해낸다면, '남성인권보장위원회(이하 남보원)'와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은 그 형식이 갖는 간접어법을 사용한다. '남보원'은 남성들이 자신들의 인권을 주장하는 내용을 갖지만 이것만으로 이 개그는 웃음을 주지 못한다. 여기에 시위처럼 붙여진 과장된 형식이 붙으면서 웃음을 만들어낸다. 문제제기-구호-사연설명-상황반전. 이것이 '남보원'의 간단한 형식이지만 이 형식은 많은 현실의 부분들을 공감으로 끌어안는다. 즉 남성들의 공감대는 물론이고 시위조차 하나의 통상적인 것이 되어버린 정치권에 대한 풍자까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한편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으로 잘 알려진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은 취객의 목소리라는 희극의 단골소재를 통해 알 수 없는 그 더러운 세상을 풍자해낸다.

방송개혁시민연대(방개혁)는 '동혁이형'이나 '남보원' 같은 풍자개그가 선동을 함으로써 '개그를 개그로 볼 수 없게 만든다'고 하지만, 바로 그 풍자 속에 담겨진 현실 공감이 있기 때문에 이 풍자개그는 개그가 된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는 풍자개그는 '개그콘서트'의 오랜 전통이기도 하다. 특유의 어눌한 말투로 세상에 대한 하소연을 담아낸 안상태 기자가 그렇고, 잘못된 상흔에 대해 꼬집는 황현희 PD가 그렇다. 또 '분장실의 강 선생님' 같은 코너에서 늘 당하면서도 "행복한 줄 알아야 하는" 신참들은 88만원 세대들의 고충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이 현실공감은 '개그콘서트'가 꾸준히 대중들과 호흡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방개혁은 심지어 이 개그를 보고 있으면 "국민이 천민(賤民) 혹은 폭민(暴民)화"된다고까지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풍자개그를 개그로 보지 못하고 선동으로 보는 그 과잉된 시선 때문이다. 개그가 선동으로 매도되는 세상. 아마도 '동혁이형'이 불만을 개그에 담아 풍자한 것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바로 이런 세상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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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가 전문직을 끌어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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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사진출처:MBC)

동경의 대상이 되는 직업군의 남녀들이 삼각 사각으로 엮이던 전통적인 멜로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외면 받으면서 등장한 것이 전문직 장르드라마다. 그만큼 직업에 대한 디테일을 요구하기 시작했던 것. '멜로는 이젠 별로'라는 인식이 자리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파스타'는 그 하나로서 멜로드라마가 거꾸로 전문직의 요소들을 흡수하면서 나타난 새로운 경향이라고 볼 수 있다.
  
멜로드라마는 그 오랜 전통으로 볼 때, 드라마가 가진 본질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드라마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극적인 결과이기 때문에 그 속에 사랑과 이별이 빠질 수는 없다. 즉 전통적인 멜로드라마의 추락은 그 본질적인 요소의 추락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시대에 걸맞게 변화하지 못한 점이 문제로 지적되는 것이다. 무늬만 전문직인 캐릭터들과 천편일률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에 돌고 도는 복잡한 삼각 사각관계의 멜로드라마는 그 내적인 장치를 모두 시청자들에게 들킴으로 인해서 식상해져 버렸다.

그 해법은 멜로드라마의 추락과 함께 부상한 전문직 장르 드라마에서 발견되었다. 팽팽한 긴장감을 유발하는 전문직의 세계, 권력과 욕망과 자기 성장이 부딪치는 그 세계 속에서 전문직 장르 드라마는 멜로드라마가 보여주지 못했던 흥미진진한 일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전문직 장르 드라마는 호평을 받았지만 대중적인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화제성으로 주목받았던 '하얀거탑'이 20%대의 시청률에 머문 것은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멜로드라마와 전문직 장르 드라마의 결합이 실험적으로 이루어졌다. '뉴하트' 같은 드라마는 의학 드라마와 멜로드라마가 적절히 엮어지면서 시청률에도 성공하는 전문직 장르 드라마가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전문직 장르드라마가 재미적인 요소의 한 부분으로서 멜로를 활용하는 것이지, 멜로드라마의 화려한 부활을 알리는 것은 아니었다. 여기서 가능성을 보인 것은 '커피 프린스 1호점'이다. 이 드라마는 청춘 멜로를 다루면서 전문직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일의 세계를 이야기의 중심으로 다루었다. 커피 전문점이라는 공간과 그 금녀의 공간에 남장여자로 들어가는 고은찬이라는 캐릭터는 모두 직업적인 바탕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 위에서 이 청춘 멜로는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파스타'는 그 연장선에서 좀 더 직업적인 전문성이 확장된 경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라스페라라는 파스타 전문점에서 쉐프를 꿈꾸는 여성 요리사 서유경(공효진)과 새롭게 부임한 마초 쉐프 최현욱(이선균)의 밀고 당기는 멜로를 그리는 이 드라마는, 그 멜로의 틀 속에 직업적인 세계를 모티브로 활용하고 있다. 주방에서의 쉐프의 사랑은 자칫 요리사들에 대한 형평성을 잃게 할 수도 있다는 발상은 이 멜로가 갖는 장애요소의 독특함을 만들어낸다. 즉 직업이 사랑의 장애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랑에만 빠져 직업을 등한시하던 과거적인 멜로드라마와는 다른 양상이다.

'파스타'는 막내 요리사와 쉐프의 사랑을 그리면서 또한 여성 쉐프의 꿈을 꾸는 한 여성 직업인의 성장드라마를 담아내고 있다. 이로써 멜로드라마는 성공적으로 전문적인 직업의 세계를 끌어안을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서유경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자기 직업에 대한 사랑은 이 멜로드라마를 팽팽하게 해준다. 사랑 앞에서 직업을 포기하지 않는 여성의 모습은 현대 직업여성들이 가질 수 있는 일과 사랑 사이의 리얼리티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멜로드라마는 이로써 '파스타'를 통해 한 단계 진화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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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보는 두 개의 눈_한상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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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어렵다. 어려운 데다 어딘가 학문적인 뉘앙스까지 풍긴다. 경영이나 마케팅이라면 모를까. 그래서 경제서라고 하면 선뜻 손이 안간다. 무엇보다 경제서가 하는 말은 나와는 상관없는 먼 나라이야기 같은 경우가 많다. 이유는? 경제서가 대부분 국제경제나 국가경제, 기업경제 같은 거대담론에만 지면을 할애할 뿐, 가계경제에는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하루 벌어먹고 살기 힘들어 죽겠는 서민들이 나라경제가 어떠니 하는 경제서가 눈에 들어올 리 만무다. '공자님 얘기는 개나 물어가라지'하는 냉소적인 시선까지 더하고 나면 경제서를 대중들이 손에 쥐는 것은 참 어려운 이야기처럼만 들린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경제서는 무조건 다 어렵고, 또 나와는 상관없는 공염불만 외는 그런 종류의 책일까. 남의 경제 다 집어치우더라도 내 경제에 도움되는 그런 경제서는 없을까. 뭔가 거대한 흐름을 읽는 시선이면서도 그 시선이 바로 나와 직결된 이야기라는 것을 해주는 그런 경제서. 평소 이런 생각을 가졌던 분이라면 한상완 박사의 <경제를 보는 두 개의 눈>이라는 책을 권한다. 이 책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쉽게 경제적 상황을 거시적으로 설명하면서도, 그것이 바로 가계경제와 연결되는 지점을 포착해낸다. 저자는 현대경제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축적해온 분석 데이터를 활용해, 경제학자들이 좀체 건드리지 않는 투자 트렌드를 짚어낸다.

저자는 투자의 기회로서 이른바 디바이드(divide)라는 현상에 주목한다. 경제는 늘 균형상태를 추구하는데, 그 균형상태가 일시적으로 이탈하는 현상이 바로 디바이드다. 예를 들어 버블현상 같은 것이 대표적인 디바이드 상태인데, 이렇게 이탈된 격차가 커지면 디바이드는 거꾸로 균형상태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때가 부의 기회라고 필자는 말한다. 결국 부라는 것은 어떤 변화의 물결이 새롭게 일어날 때 새롭게 탄생한다. 수렵에서 농경사회로 전환될 때 나타난 봉건 지주 계급이나, 산업혁명으로 나타난 부르주아 등은 바로 이 새로운 변화에 올라탄 집단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보는 현재 세계는 최소한 3개의 디바이드가 존재한다고 한다. 서구 국가들과 아시아 국가들 간의 컨트리 디바이드, 1차 산업과 2차 산업 간의 인더스트리 디바이드, 노년 세대와 청장년 세대 간의 제네레이션 디바이드가 그것이다. 이 책은 이 디바이드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고 또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어 갈 것인가를 분석하면서, 그 기회를 어떻게 부로 만들어낼 것인지 가계경제의 입장에서 조언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이 '경제를 보는 두 개의 눈'이고 그 부제가 '당신의 세상의 절반만 보고 있다'는 것은 이 책이 거시적인 시선과 실용적인 관점을 모두 아우르고 있다는 것을 잘 말해준다. 즉 '세상의 흐름을 투자자의 관점에서 개인이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 된다. 이것은 저자가 깨려고 한 편견, 즉 다름아닌 '경제서가 나와는 상관없는 딴 나라 이야기'라는 생각을 깨뜨리는 방식이기도 하다. 쉽고 재미있게 쓰여져 있어 빠져서 읽다보면 어느새 투자의 눈을 가진 당신을 발견하게 되는 즐거운 순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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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웃어요'(사진출처:SBS)

'천만번 사랑해'와 '그대 웃어요'가 모두 해피엔딩으로 종영했습니다. 하지만 이 두 드라마의 해피엔딩이 너무나 다른 느낌을 주는 건 왜일까요. '천만번 사랑해'는 사실상 그 해법을 찾기 어려운 거미줄 같은 관계를 인위적으로 얽어놓았습니다. 자신이 결혼한 남자가 하필이면 자신이 대리모로 한 아이가 사는 집이라는 우연은 오로지 여주인공의 신파를 만들어내기 위한 자극적인 설정이었죠.
 
하지만 이 상황에서 고은님(이수경)은 자식을 선택할 수도,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살 수도 없는 입장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극단적 상황의 해결은 결국 극단적인 처리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죠. 고은님의 위암과 시어머니인 손향숙(이휘향)의 치매 설정은 이 무리하게 얽힌 관계를 풀기 위한 고육지책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고은님은 결국 위암을 이겨내고 해피엔딩을 이루지만 그간 자극적인 신파 설정을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절망 속에 허우적대야 했던 주인공을 생각해보면 그 짧은 해피엔딩 역시 인위적인 느낌이 강합니다.

막장에 가까운 전개에서 급속히 가족 간의 화해로 봉합되는 과정은 이 드라마가 가진 작위성을 잘 보여줍니다. 드라마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자꾸 작가의 의도된 손길로 흘러갈 때, 그것은 자칫 시청자를 두고 벌이는 감정 놀음이 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천만번 사랑해'는 결과적으로 보면 작가의 손에 의해 운명이 좌지우지되는 캐릭터 게임을 함으로써 시청자들을 TV앞에 끌어들인 드라마가 되었습니다. 막장은 바로 이런 작가의 과도한 개입에서 비롯되는 것이죠.

한편 '그대 웃어요'는 이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갑니다. '그대 웃어요' 역시 공교롭게도 '천만번 사랑해'에서 설정된 암과 치매라는 소재가 사용되었지만, 그 소재는 대단히 자연스럽게 사용되었습니다. 그것은 소재가 이 드라마의 주제인 가족의 단합, 화해를 이끌어내는 장치로 활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천만번 사랑해'처럼 '결국은 병을 이기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식의 섣부른 해피엔딩을 그리지 않습니다.

'그대 웃어요'의 강만복(최불암)은 여전히 병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지만, 그 가족들은 그것을 희망으로 바꿉니다. 이것은 '그대 웃어요'라는 드라마의 독특한 태도입니다. 제목에서 풍겨나듯, '그대 웃어요'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라는 전제를 그 앞에 괄호로 채워놓고 있습니다. 힘들어도 웃다보면 희망이 올 것이라는 전언이지요. 결국 강만복은 가족들이 하나로 묶이고, 또 점점 다복해지는 것을 바라보며 속에 두었지만 좀체 내뱉지 않았던 그 말, "사랑한다!"는 그 말을 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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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번 사랑해'(사진출처:SBS)

'천만번 사랑해'가 인위적인 비극을 인위적인 해피엔딩으로 처리했던 반면, '그대 웃어요'는 비극을 비극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자세를 통해 희망의 해피엔딩을 연출했습니다. 이것은 극단적으로 이른바 막장드라마와 착한드라마 사이에 놓여진 거대한 차이를 보여줍니다. 진정성은 '그대 웃어요' 같은 자연스럽고 진지한 드라마의 태도에서 느껴지게 마련이죠. 두 드라마의 종영. 똑같은 해피엔딩이지만 너무나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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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라 불리운 사나이'(사진출처:MBC)

시청자들의 드라마 볼거리에 대한 눈높이는 높아졌습니다. 과거에는 해외 로케만 하더라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차량 추격전이나 총격전만으로도 볼거리가 되었던 적이 있었죠. 하지만 지금 그런 단순 볼거리는 더이상 시청자의 눈을 즐겁게 해주지 못합니다. 몇 년 전부터 등장했던 일련의 블록버스터 드라마들이 실패한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볼거리라도 어떤 스토리와 맥락을 갖거나 아니면 새로운 연출로 만들어진 볼거리가 아니라면 이제 '돈낭비'했다고 비난할 정도로 시청자의 눈은 높아졌죠.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는 그 시청자의 높아진 눈높이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 통상적인 볼거리에 이야기를 끼워맞추다 실패한 대작드라마들인 '로비스트'나 '태양을 삼켜라'의 후속작을 보는 것 같았죠. 다분히 의도된 첫 시퀀스로서의 스카이다이빙 장면은 마치 007시리즈의 한 장면처럼 멋진 것이었지만, 아무런 드라마의 이야기와 맥락을 갖지 못했습니다. 스카이다이빙 하는 장면에서 갑자기 툭 끊어지고 다음으로 말을 타고 달려오는 최강타(송일국)의 모습, 그리고 앞에 나타나는 성. 액션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야기 전개도 아닌 이 그저 순전한 볼거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장면들은 송일국의 잘 다듬어진 몸이 아까울 정도로 감흥을 주지 못했습니다.

이 첫 장면은 그 후에도 계속 이 드라마가 가진 '맥락없는 볼거리'의 연속으로 이어졌습니다. 수영장 신, 요트를 타는 송일국의 동작 신, 본부(?)에서 펜싱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등등은 이야기 속으로 시청자를 끌어들이기 보다는 그저 "이 장면 멋있지 않아?"하며 볼거리에 집착하려는 드라마의 태도를 고스란히 드러내주었습니다.

사실 이 작품은 이야기로만 본다면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단순 복수극이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전략을 어떻게 짰어야 했을까요. 볼거리 위주, 즉 액션 위주로 가되 그 볼거리가 독특한 연출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새로운 즐거움을 주었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이리스'는 영화적인 연출을 통해 볼거리 자체를 즐기게 해주었습니다. '추노' 역시 레드원 카메라를 통해 액션만 쳐다봐도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는 경험을 하게 해주었죠. 물론 이 두 드라마의 성공은 볼거리 때문만은 아닙니다.

'아이리스'는 배우들의 호연이 그 뒷받침을 해주었고, '추노'는 연기는 물론이고 대본의 완성도까지 연출, 대본, 연기의 삼박자를 갖춘 드라마의 완성도를 보여주었죠. 이들 작품에는 그저 '보여주기 위한 볼거리' 이상의 의미가 들어있었습니다. 즉 연출의 의도가 있었다는 점이죠. '아이리스'는 그 국가를 넘어서는 집단들이 만들어놓은 미궁 속에서 끝없이 허우적대고 흔들리는 개인을 보여주기 위해 카메라가 연실 흔들렸고 그 생존의 몸부림은 수없이 많은 컷으로 빠르게 나뉘어짐으로써 긴박감을 연출했습니다.

'추노'는 몸뚱어리 하나로 부조리한 세상과 대결하는 민초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 그 몸에 집중했고, 그 처절한 몸부림이 심지어 아름다울 수 있게 연출되었습니다. 이 '아이리스'와 '추노'가 보여준 볼거리는 '로비스트'나 '태양을 삼켜라'가 보여주었던 그저 '볼거리를 위한 볼거리'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이런 상황에 '신불사'가 '아이리스'나 '추노'의 볼거리가 아니라 '로비스트'나 '태양을 삼켜라'의 볼거리를 선택했다는 점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을 위해 수개월 동안 몸을 만들어온 송일국의 노력이 그렇습니다. 아무리 배우가 열심히 한다고 해도, 그걸 받쳐주는 대본과 연출이 없는 한 그 비난은 심지어 배우에게까지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드라마에 있어서 볼거리에 대한 생각의 전환을 가져야할 시기라고 생각됩니다. 볼거리는 그저 스펙타클이 아닙니다. 이야기의 맥락을 잘 표현해내는 것이 볼거리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없을 때, 그저 볼거리를 위한 볼거리로 전락할 때, 드라마는 매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뤼미에르 형제가 기차가 도착하는 장면만을 찍어서 대중들을 매료시켰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미 우리네 대중들은 수많은 볼거리를 경험해왔고, 또한 드라마들도 새로운 볼거리를 보여주면서 성공사례를 만들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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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으로 점철된 저주받은 여성수난사, '천만번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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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번 사랑해'(사진출처:SBS)

'천만번 사랑해'가 의학드라마였나? 각종 병들에 고통 받는 인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천만번 사랑해'를 보다보면 문득 이런 착각에 빠진다. 이 드라마가 처음 끌어온 병은 불임이었다. 손향숙(이휘향)의 큰며느리인 이선영(고은미)은 산부인과에서 여러 차례 불임 시술을 받지만 결국 실패한다. 그러자 아이를 얻기 위해 대리모라는 결정을 내리고, 마침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돈이 필요했던 (장차 둘째 며느리가 될) 고은님(이수경)은 그 대리모로 나선다.

이 현실적으로는 거의 가능성이 없는 관계 설정은 끊임없이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여성들을 독하게 만들거나 비극적인 존재로 전락하게 만든다. 여성이 여성을 핍박하고, 핍박당한 여성은 눈물의 세월을 보내는 이 드라마의 이야기 설정은 전형적인 신파의 구도를 그대로 답습한다. 아이를 낳지 못한다고 시어머니에게 핍박받아 결국 대리모를 구하는 상황(이선영), 대리모를 해서 낳은 자신의 아이를 아이라 부를 수 없는 상황(고은님), 게다가 이 두 저주받은 여성들이 그 아이를 두고 서로 갈등하는 상황은 지나칠 정도로 드라마 속 여성들을 수난의 질곡 속으로 빠뜨린다.

사실상 해결점이 거의 없는 이 파탄난 가족사가 결국 선택하는 길은 불치병 같은 설정이다. 손향숙은 갑자기 치매 판정을 받고 기억을 잃게 되고, 고은님은 말기 위암 판정을 받는다. 지나칠 정도로 악행을 저질러온(그것도 가족에게) 손향숙은 그 기억을 지워버리는 것으로 처리하고, 자신의 자식과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 그 어느 쪽도 결정하기 어려운 고은님은 결국 위암이라는 극단적인 죽음의 상황으로 그 복잡한 실타래를 덮어두려 한 것.

산부인과에 정신과에 내과적 질환까지 겹쳐 놓은 '천만번 사랑해'의 선택은 이 드라마가 얼마나 지독하게 여성들을 의도적으로 고난에 빠뜨리고 있는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 질병의 당사자들이 모두 한 집안의 여성들, 즉 시어머니와 두 며느리라는 점과, 또 그 병들로 인해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는 관계가 전개된다는 점은, 이 비상식적인 드라마가 얼마나 자극으로만 치닫고 있는 지를 잘 보여준다.

이 드라마 속의 남성들은 주인공인 백강호(정겨운)를 빼놓고는 모두 여성들에게 짐을 지우는 캐릭터들이다. 고은님의 아버지 고인덕(길용우)은 자신 때문에 딸이 대리모를 선택하게 만드는 인물이며, 강호의 아버지 백일(노영국)은 어찌 보면 손향숙의 아이에 대한 차별과 집착을 만들어 결국 이 모든 문제의 발단이 되게 한 배다른 아이(백강호)를 집안으로 데려온 인물이다. 또한 백세훈(류진)은 아내가 대리모를 했다는 사실에 괴로워해 바람을 피게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즉 이 드라마 속 남성들은 여성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다. 그리고 여성들은 그 고통 속에서 스스로를 파멸하는 삶을 선택하며 살아간다. 이 지독한 신파적인 설정이 결국 불치병으로 마무리 되는 상황은 이 드라마가 거의 모든 막장의 요소를 빼놓지 않고 선택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천만번 사랑해'는 이로써 소재가 가진 윤리적인 막장, 즉 대리모라는 소재를 한 가족 속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동서지간에 아이 쟁탈전을 벌이게 되는 상황은 물론이고, 작품의 완성도에서의 막장, 즉 전혀 개연성 없는 사건들이 그저 자극을 위해 돌출되는 상황을 모두 연출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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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콤과 정극의 균형을 잃은 '지붕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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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뚫고 하이킥'(사진출처:MBC)

"이거 시트콤 맞아?" '지붕 뚫고 하이킥(이하 지붕킥)'의 초반부에 이 질문에 담긴 뉘앙스는 칭찬 반 놀라움 반이었다. 하지만 지금 끝을 향해 달려가는 '지붕킥'에 이 질문은 질책 반 실망 반이 되었다. 도대체 왜 이런 상황에 이른 것일까.

'지붕킥'은 여러모로 기존 시트콤과는 궤를 달리 했다. 시트콤 본연의 웃음 코드를 캐릭터들을 통해 가져오면서도 동시에 정극의 분위기를 접목시켰던 것. 세경과 동생 신애의 상경기는 신파적인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이 시트콤은 절묘하게도 신파가 갖는 감정 과잉을 또한 웃음의 코드와도 연결시켰다. 즉 동생 신애에게 학용품을 사주기 위해 샌드위치 많이 먹기 대회에 나가는 식의 설정은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이끌어냈다.

이것은 희비극은 한 가지에서 나온다는 것을 정확히 꿰뚫어본 결과였다. 희비극의 절묘한 균형 속에서 시트콤은 웃음과 눈물 양쪽이 모두 강화되었다. 웃다가 울리고, 울리다가 웃기는 시트콤을 보며 "이거 시트콤 맞아?"하는 질문이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매일 방영되어야 하는 살인적인 제작 환경 속에서 '지붕킥'은 그 본연의 힘이 조금씩 소진되어 갔다. 물론 멜로의 등장은 시트콤이라는 요리에 맛을 더하는 향신료 같은 요소지만, 그것보다는 매번 웃겨야 한다는 강박을 덜어줄 수 있기 때문에 더 유용해 보였다. 초기 정음과 지훈(최다니엘), 지훈과 세경, 세경과 준혁(윤시윤), 심지어 준혁과 정음 같은 거의 모든 관계들을 엮어 멜로를 보여준 것은 그런대로 성공적이었다.

그것은 그 멜로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고, 질척거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초기 세경과 신애의 신파가 시트콤과 잘 어우러진 이유이기도 하다. 그만큼 이 시트콤은 울리다가도 본연의 자세인 시트콤으로 회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웃음과 눈물의 균형은 유지되었다.

하지만 후반부에 오면서 '지붕킥'은 웃음의 코드 보다는 멜로에 더 무게중심을 두었다. 매일 방영되는 시트콤에서 우리네 제작환경(거의 실시간 촬영에 가까운) 속에 계속해서 아이디어를 뽑아낸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이 아이디어가 고갈되면 결국 쉬운 길로 돌아설 수밖에 없다. 멜로가 그 자리를 차고 들어오게 된다.

웃음이 빠져버린 시트콤에서의 멜로는, 더 이상 향신료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저 설정된 관계의 반복으로 보여질 뿐이다. 그러니 그 멜로는 더 이상 거리두기 같은 쿨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게 된다. 세경은 변화 없이 그 자리에서 계속 지훈만을 해바라기 하고 있고, 준혁 역시 그런 세경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갑자기 등장한 정음 집의 파산 설정은 이 반복적인 멜로에 어떤 변화를 주기 위함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관계의 질척거림만을 가중시키고 있다.

해리가 점점 아이다워지고, 정음이 된장녀의 습성을 버리며, 세경이 차츰 자신의 미래를 위한 공부를 하는 모습은 인물들의 성장을 보여주지만, 그것은 어쩌면 시트콤과는 어울리지 않는 행보인 지도 모른다. 시트콤은 인물의 부족함에서 그 웃음을 끄집어내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극에서 인물의 성장은 재미를 주지만, 시트콤에서 인물의 성장은 재미요소를 반감시킨다. 따라서 지금 황정음이나 해리는 초창기처럼 우리를 웃기지 못한다. 현재도 여전히 우리를 웃기는 인물은 정보석이나 이순재 같은 성장하지 않는 인물들이다.

이처럼 정극적인 요소와 시트콤적인 요소를 엮는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게 되면 웃음도 감동도 모두 주지 못하는 어정쩡한 상황에 이르기 때문이다. '지붕킥'은 초반부에 이 쉽지 않은 선택이 가능할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주었다. 하지만 이 시트콤은 차츰 지쳐가면서 결국 멜로에 지나치게 기대게 되었다.

펀(fun)했던 '지붕킥'이 뻔하게 된 것은 아마도 열악한 제작환경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작진들의 책임이 상쇄되는 것은 아니다. 모쪼록 나머지 남은 기간이라도 '지붕킥'의 초심, 즉 시트콤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대미를 장식하길 기대한다. 그래서 "이거 시트콤 맞아?"하고 칭찬 반 놀라움 반으로 묻던 그 질문을 다시 하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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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승장구', 아주 특별한 시청자 참여 토크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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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승장구'의 시작과 끝은 MC가 아니라 방청객이 열고 닫는다. 이것은 어찌 보면 그저 간단한 오프닝과 클로징의 변형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토크쇼의 주인이 호스트나 게스트가 아니라 바로 시청자라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지금껏 토크쇼들은 게스트의 숨겨진 이야기를 끄집어내려 독한 질문도 불사하는 호스트와, 그 질문을 피해가며 자신에게 유리한 이야기를 얘기하려 하는 게스트의 전쟁터와 같았다. 문제는 이 양자가 모두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호스트의 리드가 강하면 자칫 독설과 막말로 이어지는 부작용을 낳았고, 게스트에 대한 배려가 강하면 자칫 홍보쇼로 전락하곤 했다. 결과는 시청자의 소외로 이어진다. 보고 싶지 않은 폭로성 이야기나 홍보성 이야기들을 억지로 듣고 있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승승장구'가 들고 온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은 호스트와 게스트 사이에 어떤 균형점을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우리 빨리 물어' 같은 코너는 먼저 출연자에 대해 알고 싶은 질문을 직접 시청자들에게 받아 정해진 시간 내에 질문을 대신 빨리 읽어주는 형식을 갖고 있다. 이른바 '승승돌'로 불리는 태연과 우영이 김소연이 출연했을 때, "아이리스 촬영 시 이병헌의 사탕키스를 본인도 해보고 싶은 적 있냐"는 질문이나 "솔직히 김태희보다 이쁘다고 생각해본 적 있냐" 같은 질문을 빠른 속도로 읽는 것. 물론 질문에 대해 하나하나 대답을 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시청자가 출연자에 대해 어떤 점을 궁금해 하는 지를 알게 해주는 형식이다.

'승승장구'의 MC진들이 다양한 세대와 성별, 출신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점은 이러한 다양한 질문들을 소화해낼 수 있는 장점을 가진다. 윤현준 PD는 "한두 명으로 국한된 MC가 다양한 수위의 질문을 하는 것은 부담을 준다"고 말한다. '승승장구'에는 질문에도 그 성격에 따라 각각 MC들이 역할분담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최화정은 연륜에 맞게 조금 수위가 높은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때론 깊은 공감을 표해 출연자의 마음을 편안하게도 해준다. 김신영은 개그맨으로서 상황을 복기하거나 증폭시켜 웃음을 만들어내고, 우영과 태연은 소년 소녀 같은 풋풋함을 유지하며 그 세대의 궁금증을 대변해준다.

김승우는 메인 MC로서 전체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자신을 한껏 낮추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특히 우영과 툭탁대면서 만들어진 '꽁승우'라는 별명은 토크쇼를 부드럽게 해주면서 세대를 넘어서는 토크 콤비의 탄생마저 예감케 한다. 이처럼 다양한 세대와 성별, 출신으로 진용을 갖춘 이유는 결국 시청자들이 원하는 다양한 수위의 질문을 대변해주기 위함이다. 무엇보다 MC들이 라디오 같은 매체를 통해서 편안하면서도 할 말은 다하는 '토크의 구력'을 갈고 닦아왔다는 점은 '승승장구'라는 토크쇼 특유의 편안함을 만들어낸다.

'승승장구'의 토크 중간에 갑자기 게스트의 지인을 출연시키는 '몰래온 손님'이란 코너 역시 게스트에 대한 시청자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한 또 다른 장치다. 호스트와 게스트만의 주고받는 대화가 갖는 차원에서 한 걸음 옆으로 나가, 지인을 통해 게스트의 이야기를 듣는다. 김소연의 '몰래온 손님'으로 바다가 출연해 김소연이 갖고 있는 숨겨진 엉뚱한 매력을 경험담으로 말하는 식이다. 이 '몰래온 손님'의 장점은 굳이 연예인이 아닌 코디나 매니저 같은 주변인물들도 출연해 식상함을 탈피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승승장구'의 특별한 코너인 '아주 특별한 약속-우리 지금 만나' 역시 시청자와 직접적으로 소통하고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려는 제작진의 노력이 돋보이는 코너다. '스타가 ○○하면 나는 △△한다'는 이 형식은 스타의 미션을 제안하고 거기서 채택된 미션에 시청자도 참여미션을 제시해 특정 장소에서 만나 그 미션을 수행하는 코너다. 광화문 한 복판에서 김소연이 태권도를 하고, 그 옆에서 시청자 중 채택된 몇 명이 까나리 액젓에 시리얼을 말아 먹거나, '아이리스'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식이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의외의 해프닝은 그 자체로도 재미있지만, 무엇보다 그것을 모두 시청자와 함께 한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

'승승장구'가 특별한 이유는 이처럼 시청자와의 참여를 위해 다양한 장치들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물론 그것이 완전히 새로운 장치들은 아니다. 이미 '상상플러스'가 초기 버전에서는 이른바 댓글을 통해 시청자의 참여를 유도한 적이 있었고, '반갑다 친구야'가 의외의 지인을 토크쇼에 초대하는 형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승승장구'는 이런 기존 장치들을 가져와 자기들만의 색깔로 녹여내고 있다. 이것은 '승승장구'라는 밥상이 가진 특징이다. 어떤 토크쇼는 원하지 않는 밥숟갈을 억지로 시청자의 입에 들이밀기도 하고, 어떤 토크쇼는 강하기만 한 맛으로 시청자를 중독시키려 한다. 반면 '승승장구'는 시청자들의 입맛을 향해 다양한 상차림을 내는 것으로 오래 먹어도 물리지 않는 밥상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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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승승장구 다행히 박중훈쇼와는 많이 달라 보인다

    Tracked from 노천카페에서 상상을 즐기며  삭제

     1...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박중훈쇼는 생각할수록 참 안타까운 프로그램이다. 평소 빼어난 박중훈의 입담대로라면 분명히 성공하고도 남을 프로그램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박중훈의 신중하지 못했던 사전 인터뷰가 방영 전부터 괜한 안티를 불러 모았다는 생각이다. 그냥 기획 의도에 충실하겠다라고만 했으면 되었을 것을 무례한 토크쇼니 어쩌니 해서 가뜩이나 먹잇감에 굶주려 있던 인터넷 언론의 배만 불려 주는 험한 상황을 초래해 초반부터 희생되고 만 희대의..

    2010/03/03 13:28
  2. 패떴2+승승장구, 2PM+소녀시대가 대세긴 대세인가 보다(택연 우영+윤아 태연)

    Tracked from 노천카페에서 상상을 즐기며  삭제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셀 수 없이 많은 남녀 아이돌 그룹들이 각각 맹활약을 하고는 있지만 그중에서도 각기 2PM과 소녀시대가 발군은 발군인가 보다. 그런데 갑자기 뜬금없이 드는 생각 하나 요즘은 왜 혼성 그룹이 안 나올까. 오히려 예전엔 꽤 많았다. 지금 바로 생각나는 그룹만 해도 룰라 와 투투도 있고 얼마전 까지 쿨도 활동을 했다. 이젠 왠지 혼성 그룹도 한번 보고 싶다. 만약 윤아 태연 택연 우영이 한 그룹에서 활동을 한다면...? 1... 패밀..

    2010/03/03 13:28

팽팽한 긴장감 놓지 않는 '파스타'의 일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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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사진출처:MBC)

'선덕여왕'의 독주가 끝나고 새롭게 시작된 월화극 삼파전에 '파스타'는 꼴찌로 시작했다. 장르적으로 보면 그것은 당연해 보였다. 사극 '제중원'이 당연히 시청률 1위를 할 것이고, 사회극의 성격을 가진 '공부의 신'이 그 다음을, 그리고 멜로드라마인 '파스타'가 마지막을 장식할 것이라 예상됐다. 하지만 이러한 장르가 가진 힘에 의한 서열은 '공부의 신'이 앞서나가고 '제중원'이 뒤떨어지면서 무너졌다. 그 와중에 멜로드라마로서 '파스타'는 놀랄만한 힘을 보여주었다. 사극 '제중원'을 앞서나갔고, '공부의 신'이 종영하고는 드디어 시청률 20%를 넘기면서 수위에 올랐다.

최근 들어 멜로드라마는 그다지 시청률면에서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것은 멜로드라마들이 갖는 천편일률적인 삼각 사각 구도의 사랑타령이 식상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멜로드라마가 그 특성으로 취해왔던 '운명적인 거창한 이야기'가 작금의 시청자들에게 그저 감정 과잉의 드라마로 인식되게 된 것은 가장 큰 멜로드라마의 한계로 지적되었다. 따라서 멜로드라마의 이야기구조는 사극 속으로 편입되거나, 가족드라마 속으로 들어가거나 전문직 장르 드라마 속에 끼워 넣어지는 상황에 도달했다. 멜로드라마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현실성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그 현실(리얼리티)을 확보하는 것으로서 '파스타'가 시도한 것은 일과 사랑을 적절히 엮는 것이었다. 그간의 멜로드라마들이 저마다 멋진 직업을 가져왔지만 직업과는 상관없이 남녀 간의 감정 게임에 몰두해왔다면, '파스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요리사라는 직업 속에서 그 일이 갖는 의미에 천착하면서도, 그것을 또한 사랑과 연결시키는 작업을 했다. 서유경(공효진)이라는 캐릭터가 기존 멜로드라마의 주인공과 다른 점은, 멜로의 주인공만이 아니라 전문직 장르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디테일을 살리면서도 성장드라마가 갖는 개인적 성취를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마치 전문직 장르드라마가 멜로드라마를 끼워 넣던 형국에서 거꾸로 멜로드라마가 전문직 장르드라마를 활용하는 방식처럼 보인다. '파스타'는 라스페라라는 파스타 전문점에서 요리사로 성장해가는 서유경이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이 일에 대한 사랑은 새롭게 부임한 까칠한 셰프 최현욱(이선균)과의 사랑으로 연결된다. 라스페라의 주방은 이 일과 사랑이 동시에 얽혀있는 흥미로운 공간이다. 최현욱의 호언장담처럼 "내 주방에 여자는 없다"고 말한 그 곳에서 조금씩 그 선을 넘어서는 멜로는 그만큼 달콤해지고, 서열이 엄격한 주방에서 조금씩 인정받아가는 서유경의 일은 그만큼 흐뭇해진다.

결국 '파스타'가 보통의 멜로드라마들이 겪던 침체의 길을 걷지 않고 끝까지 힘을 유지하면서 막판 뒷심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일과 사랑을 엮으면서 마지막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멜로드라마는 후반부에 이르면 이미 결정된 결말을 향해 달려가기 마련이지만, '파스타'는 공개적인 연인 선언을 한 이후에도 라스페라라는 공간 속에서 살얼음을 걷는 긴장감을 유지한다. 이것은 어쩌면 '커피 프린스 1호점' 이후부터 새롭게 고개를 들고 있는 '전문직이 있는 청춘멜로'의 경향으로 보이기도 한다. '외과의사 봉달희' 같은 멜로가 섞인 전문직 장르드라마는, 이제 '파스타' 같은 전문직의 리얼리티를 살려낸 멜로드라마로 확장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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