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시상식, 수상소감보다 뭉클했던 시국소감들

 

새해가 밝았다. 연말 시상식들도 모두 끝이 났다. 방송사들의 시상식이라는 것이 결국은 자사의 한 해 성과들을 자축하고 그간 고생한 분들에 대한 감사를 표하며 또 다음해를 기약하는 자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올해는 시국이 시국인지라 그 시상식 분위기가 과거와는 조금 다른 느낌을 주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이 드리워진 연말 시상식은 유독 시국소감들이 넘쳐났다.

 

'2016 SBS연기대상(사진출처:SBS)'

<무한도전>으로 <MBC 연예대상>을 수상한 유재석은 “<무한도전>을 통해 많은 걸 보고 배운다. 역사를 통해서, 나라가 힘들 때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소수의 몇몇 사람이 꽃길을 걷는 게 아니라 내년엔 대한민국이 꽃길로 바뀌어서 모든 국민들이 꽃길을 걷는 그런 날이 됐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 소감은 최근 <무한도전>으로 했던 위대한 유산특집을 통해 역사를 다시금 들여다봤던 것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지금 현재에 전하는 울림이 적지 않았다. 결국 역사란 과거가 아닌 현재를 반추하는 거울이 아니던가. 그의 개념 소감은 그래서 대상 수상만큼이나 많은 박수를 받았다.

 

<MBC 연기대상>에서 <W>로 황금연기상을 받은 김의성은 마지막 MBC 드라마가 1997년인데, 20년 만에 다시 출연하게 된 것도 영광인데 상을 주셔서 감사하다. 오랫동안 떠나 있었던 집과 직장에 돌아온 기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올해 부당한 이유로 집을 떠나고 직장을 떠난 사람들이 많다. 내년에는 그 사람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한해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미 SNS를 통해 수차례 현 시국에 대한 날선 발언들을 해왔던 김의성이었다. 또한 드라마 <W>에서 웹툰 작가 역할로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주인공 못잖은 존재감을 드러냈던 그였다. 수상 소감에서도 자신보다는 현실에 상처 입은 대중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려는 그의 마음이 느껴졌다. 김의성을 올해 <MBC 연기대상>의 진짜 숨은 주역이라고까지 일컫게 된 건 연기와 개념 모두가 박수받을만 했기 때문이다.

 

<SBS연기대상>에서 5년 만에 대상을 수상한 한석규는 하얀 도화지, 검은 도화지의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꺼냈다. “문득 직업란에 제 직업을 쓸 때가 있는데 연기자라고 쓰곤 한다. 그때마다 제 직업이 연기자구나 하고 생각한다. 신인 시절, 하얀 도화지가 되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자신의 색깔을 마음껏 펼치라는 의미에서다. 검은 도화지가 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낯선 표현이었지만 그것은 여러모로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비참한 현실을 에둘로 꼬집는 이야기였다.

 

한 번 상상해보라. 밤하늘 같은 암흑이 없다면 별은 빛날 수 없을 것이다. 어둠과 빛은 한 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때 제 연기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배우는 문화종사자로서 엉뚱하고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한 후, “이 다르다는 걸 불편함으로 받아들인다면 배려심으로 포용하고 어울릴 수 있겠지만, ‘위험하다는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사회, 국가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실로 낭만닥터 김사부 같은 시국 소감이었다. 그는 <낭만닥터 김사부>의 기획의도가 된 시인 고은의 글의 한 구절로 수상 소감을 마쳤다. “가치가 죽고, 아름다움이 천박해지지 않기를...”

 

한편 <KBS연기대상>에서 라미란과 베스트커플상을 받은 차인표는 유머 섞인 시국 소감을 내놔 화제가 되었다. “50년을 살며 느낀 것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어둠을 빛을 이길 수 없다. 둘째, 거짓은 결코 참을 이길 수 없다. 셋째, 남편은 결코 부인을 이길 수 없다.” <월계수양복점 신사들>의 배삼도라는 유쾌한 인물이 바로 현실로 나온 듯한 느낌이라니.

 

연기는 현실과 무관할 수 없다. 연기자들 역시 그 현실을 같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고, 그 현실이 대중들에게 주는 애환들을 그들은 연기로서 풀어내는 것이니 말이다. 따라서 그 애환을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연기자라면 제대로 된 연기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수상소감이 시국소감이 된 건 당연하다. 그들에게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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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힙합의 콜라보, <무도>의 역대급 도전

 

역시 고수는 고수다. 이 어려운 시국에 이런 도전을 기획으로 내놓는다는 건 역시 <무한도전>이 아니면 그 누가 할 수 있을까. 역사와 힙합의 콜라보는 그 의미와 재미에 있어서 역대급이었다. 역사 교육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첨예한 현재가 아닌가. 그러니 역사를 다시 배운다는 의미만으로도 이 도전은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여기에 힙합이 일종의 교육적 도구로서 활용된 건 신의 한 수였다. 힙합 장르의 특성상 가사를 통한 메시지 전달이 용이하고, 또 무엇보다 올바른 역사 교육과 인식이 상대적으로 더 요구되는 젊은 세대들을 자연스럽게 끌어안을 수 있다는 점이 그렇다. 그리고 무엇보다 힙합이 또한 갖고 있는 저항정신은 역사를 통한 현실 인식을 가능하게 하리라는 점이 주효했다.

 

개코와 광희 그리고 오혁이 피처링한 당신의 밤같은 곡은 윤동주 시인의 삶에 빗대 현재의 우리들을 되돌아보는 가사를 담고 있었다. 유독 부끄러움이 많았던 시인의 삶을 들여다보며 개코는 자신의 부끄러운 머뭇거림과 두려움을 털어놨다. ‘비판이나 비아냥이 싫어 머뭇거리던 입가 뒤돌아 걸어가는 시대 뒤에 고개 숙인 내가 밉다같은 가사나 오늘 밤은 어둡기에 당신이 쓴 시가 별이 돼. 광장 위를 비추는 빛이 돼.’ 같은 가사는 마치 한 편의 시처럼 우리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힙합을 통해 역사의 한 자락을 소환해와 현재를 이야기하는 가사들.

 

이는 또한 세종대왕의 삶을 통해 현재를 이야기한 지코와 정준하 그리고 넬의 김종완이 피처링한 지칠 때면이란 곡에서도 그대로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시력을 포기하며 모두 눈 뜨게 했어. 난 글도 읽을 줄 알면서도 보지 못 했어. 눈앞에 놓인 현실을 말이야.” 같은 가사는 역사를 등한시해왔던 우리를 반성하게 했고, “명령보단 대화를, 회피 대신에 책임을... 통치가 아닌 보살핌을같은 가사들은 세종대왕과는 정반대로 흘러가는 현재의 국정운영을 꼬집었다.

 

<무한도전>의 이번 위대한 유산특집이 역대급이라 여겨지는 대목은 그것이 예능적으로도 충분히 재미를 안겨주면서도 동시에 역사 교육과 현실 인식 그리고 힙합이라는 장르까지도 끌어안은 종합 예술의 성격을 띠었다는 점 때문이다. 무대 하나하나는 그래서 숙연함을 느낄 만큼 진지함을 담고 있었지만 또한 힙합 특유의 흥이 넘쳐흘렀고 그러면서도 같은 시간 광화문 광장에 모여 있는 대중들의 간절한 마음까지 어루만지고 있었다.

 

어려운 시국을 맞아 예능 프로그램들은 저마다 날선 풍자들을 쏟아내 놓고 있다. <개그콘서트>가 그렇고 <SNL코리아>가 그러하며 또한 <웃찾사>가 그랬다. 하지만 여러 모로 <무한도전>이 이번 내놓은 위대한 유산만큼 이 시국을 정조준하면서도 예능적으로 완성도 높은 성취를 보여준 아이템이 있었을까.

 

2016년의 마지막 날, <무한도전>이 쏘아 올린 이 도전은 그래서 현 시국에 지친 많은 분들을 위로하고, 또 실망과 좌절을 느끼는 분들에게는 역사적 영웅들을 소환해옴으로써 다시금 자긍심을 불어넣어주는 계기가 되면서도 또한 현실에 대한 냉엄한 비판까지 담고 있었다. 역시 어려운 시국일수록 더욱 빛나는 고수다운 면모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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