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여성의 두 로망, 연애냐 결혼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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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두 명의 여성 사이에서 남성이 한 명을 선택하던 시대는 갔다. 대중문화의 키워드로 ‘칙릿(Chick 젊은 여성+ Literature 문학)’이 떠오르는 것처럼 이제는 여성이 여러 남성들 중 하나를 선택한다. ‘달콤한 나의 도시’의 두 남자, 태오(지현우)와 영수(이선균)는 바로 그 여성들의 로망이 투영된 그 남성들로, 은수(최강희)는 그 사이에서 갈등한다.

연하지만 어른스러운 태오, 지현우
“예쁨 받는 거 말고 사랑 받고 싶어요. 귀여운 어린애가 아니라 남자로써.” 태오의 이 말에 은수는 마음이 저리다. 우연히 만난 첫날, 원나잇 스탠드를 하게 되면서 활활 타오르게 된 연하남 태오와의 사랑에 있어서 은수는 스스로의 벽을 세워둔다. 현실과 유리된 듯한 알콩달콩한 태오에게서 달콤함을 느끼지만 그 현실과의 거리감에서 늘 태오는 아이취급을 받는다. 태오는 31살 현실에 치일대로 치인 은수에게 여전히 달콤한 사랑을 꿈꾸게 만들지만 친구들에게 보이기에는 쑥스러운 존재다.

하지만 태오는 그렇게 철모르는 아이가 아니다. 늘 생활의 중심에 은수를 세우고 열정적으로 사랑하기에 그 순수함이 아이처럼 보일 뿐이다. 오히려 그를 아이로 만드는 건 이제 그런 열정을 보이기엔 스스로 나이 들었다 생각하는 은수다. 과음으로 늦잠 자는 은수를 위해 후배 여자에게 부탁해 대신 회사에 전화를 하게 할 정도로 태오의 배려는 깊다. ‘당신은 날 사랑한 적이 없어요’하고 메시지를 보내는 태오는, 이제 직장생활을 통해 지극히 현실적이 되어버린, 그래서 그런 열정적인 사랑을 꿈꾸기엔 너무 나이 들어버린 현대여성들의 로망을 보여준다.

연상이지만 소년 같은 영수, 이선균
“미안하지 않아도 돼요. 고맙습니다. 그래도 당신이 미안하다면 고마운 마음도 잊을께요. 미안한 마음 잊어요.” 그만 만나자는 은수의 말에 특유의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로 영수가 하는 이 말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세월처럼 묻어난다. 친환경 유기농 먹거리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영수는 서른 여섯의 훈남. 이 나이 많음이 오히려 편안함과 여유, 따뜻함으로 전화되어 여성들의 로망을 자극하는 것은 그가 여전히 소년 같은 순수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만난 첫날 관계를 가져버린 태오와는 상반되게, 영수는 은수의 손 한 번 잡지 못하는 존재다.

무언가 아픔이 많았던 인물이지만, 그래서일까 상대방에 대한 진지한 태도는 영수를 편안하게 만드는 현실적인 이유가 된다. “가끔씩 낮은 목소리로 얘기할 때 이 사람이 깊은 바닥의 이야기를 내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진지함과 순수함, 그리고 능력과 연륜, 게다가 꿈을 잃지 않은 영수는 이제 나이 들어가는 현대여성들에게 여전히 현실적으로 꿈꿀 수 있는 로망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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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하고 싶은 남자, 결혼하고 싶은 남자
태오와 영수, 이 두 캐릭터를 연기하는 지현우와 이선균은 그 본래의 이미지를 그대로 드라마에 투영한다. ‘올드 미스 다이어리’를 통해 연하남으로서 여성들의 로망이 된 지현우는 특유의 순수하고 선한 웃음으로 오히려 연상인 여성을 배려해주기까지 하는 인물이다. 반면 이선균은 ‘커피 프린스 1호점’을 통해 그 훈남의 이미지를 확고히 했다. 그는 원숙하지만 소년 같은 순수함으로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달콤시’가 보여주는 태오와 영수, 혹은 완소남 지현우와 훈남 이선균은 현대여성들의 로망으로서 이율배반적이지만 여전히 꿈꾸고 싶은 두 요소를 지닌 존재들이다. 연하에 순수하고 열정적이지만 어른스러운 태오가 연애하고 싶은 남자라면, 연상에 능력 있고 진중하지만 때론 소년 같은 영수는 결혼하고 싶은 남자다. ‘달콤시’가 전해주는 달콤함은 이들이 어느 쪽이든 현실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환타지라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어떠랴. 힘겨운 현실 속에서 환타지라도 잠시 동안의 그 달콤함에 젖어보는 것이. 은수의 말처럼 늘 자신을 먹여 살려온 자신에게 “때론 칭찬해줘도 좋은 날”은 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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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게티 웨스턴, 만주 웨스턴, 김치 웨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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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의 시공간적 배경은 일제시대 만주다. 일제시대에 만주라는 공간이 함유하는 의미는 말 그대로 의미심장하다. 당대에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에서 만주는 대륙으로의 진입로이자 가능성의 공간이었다. 게다가 일제시대라는 독특한 시간적 배경은 그 가능성의 공간 위에 이질적인 문화들을 공존시킨다. 중국과 일본과 우리나라는 물론, 호전적인 북방민족들과 러시아 그리고 각종 신기한 문물들을 들고 중국을 통해 들어온 서구인들까지 공존하는 일제시대의 만주는 요즘으로 치면 퓨전문화가 살아있는 공간이었다. 게다가 법이나 규범보다는 총이 앞서는 무법천지로서의 만주는 오히려 국가 간의 분쟁이 벌어지는 상황 속에서는 자유에 가까운 공간으로 인식된다. 즉 나라와 나라,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같은 경계지움의 시대에 만주는 그 경계를 탈주하는 공간으로서 민족주의를 넘어 개인적 자유를 희구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스파게티 웨스턴, 미국 중심적 사고방식을 비웃다
경계를 탈주하는 공간으로서의 만주는 정통 웨스턴 무비를 비웃으며 이태리에서 만들어진 스파게티 웨스턴의 멕시코라는 공간과 유사하다. 존 포드 감독과 존 웨인으로 상징되는 초창기 미국 정통 웨스턴들은 분명한 선악구도를 내세우면서 정의는 반드시 이긴다는 표제 아래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전파했다. 거기에는 ‘좋은 놈’과 ‘나쁜 놈’으로 분명하게 나뉘어져 있었고, ‘좋은 놈’은 늘 멋지게 ‘나쁜 놈’을 해치웠다. 관객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물론 ‘나쁜 놈’을 선택하는 자는 없겠지만), 그 선택을 하는 순간 선택받지 못한 자는 철저히 응징되어야 하는 존재로 부지불식간에 구획되어진다.

정통 웨스턴이 가진 이러한 미국 중심적 사고방식과 흑백논리는 변방의 입장에서 보면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 이태리에서 들고 나온 스파게티 웨스턴의 대표주자로서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석양의 무법자’의 원제가 ‘좋은 놈, 나쁜 놈, 못생긴 놈(The Good, The Bad And The Ugly’인 것은 이 이분법의 구도를 깨버리면서 정통 웨스턴 무비가 가진 이데올로기를 비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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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사슬을 끊어라’, 만주 웨스턴의 민족주의를 끊다
1960년대 이른바 ‘만주웨스턴’이 우리네 영화사 속에 자리매김했던 것은 물론 당대의 웨스턴 무비의 영향에서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국내의 정치적 사정과 그 반작용이 맞물린 결과로 볼 수도 있다. 정통 웨스턴 무비들이 그랬던 것처럼 ‘만주웨스턴’은 대부분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민족주의 영화들로 당대 친정치적 성향이 강했다. 하지만 그 주제의식을 빼놓고 나면 만주라는 공간에서의 탈법적인 행위들을 통한 당대 답답한 현실의 대리충족 기능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1971년 이만희 감독의 ‘쇠사슬을 끊어라’는 정통 웨스턴의 국가주의적 색채를 저 스파게티 웨스턴이 잔뜩 비꼬았던 것처럼, 만주웨스턴의 민족주의적 색채를 끊어놓는다. 즉 주인공들은 애국자인양 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캐릭터로 분하는 것이다.

김지운 감독 스스로 밝힌 것처럼 ‘놈놈놈’이 만주라는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도 바로 이 스파게티 웨스턴이나 ‘쇠사슬을 끊어라’의 연장선상에 있다. 거기에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지만 입장이 다른 세 인물들이 서로 보물을 차지하려 싸울 뿐, 민족주의도 대의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스파게티 웨스턴이나 ‘쇠사슬을 끊어라’가 그랬던 것처럼 ‘놈놈놈’은 과연 어떤 경계로부터 탈주하려는 것일까.

우리 영화의 ‘이상한 놈’, 잘 만든 오락영화를 꿈꾸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못생긴 놈’에서 주인공은 분명 좋은 놈(클린트 이스트우드)이었지만 정통 웨스턴과 비교했을 때 주목해야할 캐릭터는 못생긴 놈이다. 이것은 좋은 놈과 나쁜 놈으로 이분되는 선악구도를 이도 저도 아닌 상황으로 만들어버리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김지운 감독의 ‘놈놈놈’에서 주목해야할 캐릭터도 이상한 놈(송강호)이다. 그리고 ‘놈놈놈’은 실제로 이 이상한 놈을 영화의 중심에 놓는다.

좋은 놈과 나쁜 놈이 장르영화 속에서 툭 튀어나온 듯 정형화되어 있다면 이와는 상반되게 이상한 놈은 독특한 캐릭터를 갖추고 있다. 이상한 놈이란 캐릭터 속에는 만주라는 공간과 일제시대 조선이라는 상황이 혼재되어 있고, 민족주의적 성향을 벗어나 지극히 자기 욕망에 충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미를 버리지 않는 모습이 내재되어 있다. 액션이라고 하기보다는 몸 개그에 가까운 해학이 있으며, 그 웃음 이면에는 섬뜩한 부분도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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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드라진 부분이 김지운 감독이 탈주하고픈 경계가 아닐까. ‘놈놈놈’이라는 김치 웨스턴이라는 이상한 장르영화는 바로 이 이상한 놈의 캐릭터처럼 도드라지고 기이하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구석이 있다. 한국영화라는 지형에서 보면 ‘놈놈놈’은 이상한 놈이다. 흔히 “한국영화가 망하게 생겼다”는 상업적 가치를 가장 큰 위기로 받아들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오락영화를 백안시하는 우리 영화의 지형 속에서 이 영화는 김지운 감독의 말마따나 그 ‘오락영화에 혼신의 힘을 담은’ 이상한 영화다.

한국영화를 말할 때, 늘 발목에 꼬리표처럼 달리는 작품성이나 예술성 같은 것들은 오히려 상업적일 수밖에 없는 대중영화의 토대자체를 위협하기도 한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 영화라는 사실상의 무한 자유의 공간에 그어놓은 경계가 아닐 수 없다. 드러내놓고 “열심히 재미있게 만들었다”는 그 말에 박수가 쳐지는 것은 바로 그 부분이 오락영화에 대한 편견의 경계를 넘게 해주기 때문이다. ‘놈놈놈’이 만주까지 가게된 것은 그 정도까지 달려가서야 비로소 한국영화라는 족쇄를 풀어내고 자유로운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 보기 드문 수작의 ‘오락영화’는 한국영화의 경계를 벗어나 스스로를 ‘이상한 놈’으로 자리매김하는 그 지점에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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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아부지! 멋져부러!

네모난 세상/명랑TV 2008/07/16 02:28 Posted by 더키앙

‘일지매’의 쇠돌, 마음을 훔치는 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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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사극 ‘일지매’에서 쇠돌(이문식)은 전직 좀도둑이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아주 귀하고 값진 걸 훔치게 된다. 그건 바로 단이(김성령)다. 보쌈을 해주고 꽤 많은 돈을 받았지만, 그녀를 죽이려 하는 걸 알게된 쇠돌은 그 돈을 전부 건네주고 그녀를 구해낸다. 바로 이 때부터 쇠돌의 좀도둑 인생은 다른 길을 걷게된다.

쇠돌이 훔쳐온(?) 이 단이는 홀몸이 아니었고 곧 시후(박시후)를 낳는다. 그러니 쇠돌은 결국 시후까지 훔쳐온(?) 셈이다. 단이가 보물인 만큼, 효심이 가득한 시후도 보물이다. 하지만 시후가 아홉 살 되던 해 쇠돌은 아들을 변식(이원종)에게 보내게 된다. 자신을 위해 변식의 일을 해준 아들 시후가 죽게 생기자, 단이가 시후를 변식의 아들이라 거짓말을 한 것이다.

눈물로 아들을 보낸 쇠돌은 그러나 새로운 보물을 얻게 된다. 그것은 바로 용이(이준기)다. 우연히 용이의 아버지 이원호(조민기)의 집에 갔다가, 궤짝 안에 숨어있는 용이를 발견하고는 궤짝 째로 집으로 가져온 것. 이로써 쇠돌은 용이를 새로운 자식으로 금이야 옥이야 키워낸다.

이처럼 쇠돌이라는 좀도둑은 보통 도둑과는 다르다. 그가 훔치는 것은 재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물론 여기서 훔친다는 표현보다는 거둬 기른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쇠돌이라는 도둑은 재물 같은 속세의 욕망보다는 오히려 인간적인 정에 더 굶주린 캐릭터다. 그것은 애초에 그의 좀도둑 인생을 마감하게 만든 단이를 데려오기 위해 거금을 던졌을 때부터 예고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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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위해 이빨 하나쯤은 쑥 빼주는 쇠돌을 보면서 아낌없이 주는 아버지상을 떠올린다면 그것은 반쪽만 본 것이다. 사실 쇠돌은 핏줄로 얽혀진 자식이 없고 부부의 관계로 맺어진 아내도 없다. 시후와 용이는 모두 이원호의 아들로 하나는 단이가 낳은 자식이며 하나는 자신이 데려온 아이일 뿐이다. 또 아내라고 해도 같이 살뿐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는 쇠돌은 바라보고 주는 데만 익숙할 뿐 받는 데는 익숙하지가 않다.

하지만 쇠돌에게 있어서 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들이 모두 자식으로 둔갑하고, 살 한 번 닿지 않은 단이가 아내로 둔갑하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쇠돌이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 이하로(마치 물건처럼) 취급된 단이나 용이를 훔쳐와 인간 그 이상의 존재로 받들기 때문이다. 이것은 부부나 부자 관계를 뛰어넘는 쇠돌의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에서 비롯된다.

그러니 ‘일지매’에는 두 명의 도적이 등장하는 셈이다. 하나는 탐관오리의 재물을 훔쳐와 민초들에게 나눠주는 의적 일지매이고, 또 하나는 물건처럼 버려진 이들을 훔쳐와(?) 귀한 존재로 받들어주는 쇠돌이라는 인간애의 도적이다. 사람을 물건으로 비유할 수는 없겠으나 물건보다 못하게 취급받는 시대에 이 두 도적이 하고 있는 일은 사실상 같다. 그것은 잘못된 사람에게 들어가 천하게 대해졌던 물건 혹은 사람을 훔쳐와 귀하게 쓰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일지매’가 보여주고 있는 민초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의 발원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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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들의 이승기, 형들 사이에서의 이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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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을 오르는 험난한 여정. 두 발로도 힘겨워 두 손까지 써가며 기다시피 오르는 그 길. ‘1박2일’의 출연진들은 말 그대로 땀 범벅이다. 그런데 그 길 위에서도 따가운 태양에 혹시나 탈까봐 얼굴에 선 크림을 바르는 친구가 있다. 예쁘장한 외모에 착한 동생 같은 이미지로 이미 누나들의 마음을 빼앗았던 이승기다. 그는 한 겨울 혹한 속에서도 얼음장같은 물로 꼭 머리는 감아야 하고, 야생의 하룻밤에 퉁퉁 붓는 얼굴에 휴대용으로 갖고 다니는 얼굴마사지기로 마사지를 하던 인물로, 최근 자신을 가꾸는 데 적극적인 남자들, 이른바 그루밍족의 표상이다.

‘1박2일’ 같은 야생 버라이어티에서 그루밍족 같은 도시적(?)인 캐릭터가 필요했던 이유는 당연히 그 대비효과 때문이다. 도시의 샌님들을 그대로 시골에 떨어뜨리는 것만으로도 그 부적응이 보여주는 재미는 상당할 수밖에 없다. 이승기는 초기 이런 프로그램의 의도에 제대로 부합되는 인물이었다. 그의 너무하다거나 어이없다는 표정은 비교적 야생에 적응된 다른 출연진들이 곯려주며 재미있어하기에 딱 어울리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승기는 이 프로그램의 출연진들 속에서 막내다. 가장 도회적인 캐릭터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할 상황에 서 있다는 것, 이것이 ‘1박2일’에서 이승기의 존재기반이 된다.

하지만 그것뿐일까. 여기까지가 ‘1박2일’의 의도에 해당하다면, 그 프로그램 속에서의 적응은 이승기의 반격(?)에 해당할 것이다. 이승기는 야생의 상황 속에 자신을 놓아버리는(?) 다른 캐릭터들과는 상반되게 끝까지 자신을 지키는 방향을 선택한다. 그러자 애초에 이승기의 도회적 이미지를 야생의 이미지로 탈바꿈하려던 시도는 엉뚱하게도 이승기의 도회적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오히려 이승기가 있음으로 해서 거꾸로 다른 캐릭터들은 더욱 더 야생의 냄새를 부각시키게 된다.

게다가 시켜먹고 곯려먹기 좋은 막내로서의 이승기는 점차 형들 사이에서 귀엽고 챙겨주고 싶은 막내로 탈바꿈한다. 바로 이 이미지는 사실상 이승기가 ‘1박2일’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이 아닐 수 없다. 그간 누나들의 이승기는 이 이미지를 통해 형들 사이에서 귀여움 받는 막내로서의 이승기 이미지를 부가시킨다. 이것은 그루밍족을 호감으로 받아들이던 누나들은 물론이고, 그다지 호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전통적인 가치관을 가진 남성들, 즉 형들의 마음까지 호감으로 돌려놓는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이승기 한 사람만의 수확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루밍족이 이 시대의 남성들이 추구해야할 단 하나의 바람직한 남성상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것은 마초적인 남성상이 갖는 시대착오적 오류들을 상당부분 여성성으로 극복해주는 부분이 있다. 사실상 타인에 대한 배려는 제일 먼저 자신에 대한 배려와 투자에서부터 비롯되는 것. 내가 소중할수록 타인의 소중함도 이해된다는 말이다. 이승기에 대한 이 세상 형들의 호감은 바로 이 과거적 남성성의 한 부분을 허무는 신호탄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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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설, 이독제독(以毒治毒)의 기능, 지나치면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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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프로그램에 언제부턴가 등장해 거침없는 독설로 주목을 끌고 있는 이들이 있다. 예능계에 김구라, 박명수가 있다면, 가요계에는 신해철이 있고, 개그계에는 왕비호(윤형빈)가 있다. 하나같이 독설가라는 이미지로 읽히지만, 그 양상은 조금씩 다르다. 상대방의 말을 받아치는데 능한 김구라는 특유의 공격적이고 집요함이 특징이며, 박명수는 약간은 모자란 듯이 자신을 낮추며 상대방에게 호통을 치는데 능하다. 신해철은 특유의 직설어법으로 연예계에서부터 사회전반에 걸쳐 진지한 비판을 하는 반면, 왕비호는 독설을 개그의 틀로 끌어와 신비화된 스타들을 비틀면서 웃음을 유발하는 ‘귀여운 독설가’이미지를 갖고 있다.

연예계에 독설가들이 이렇게 자리를 잡게 된 것은 작금의 달라진 방송 환경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시대는 이제 신비주의 전략을 고수할 수 없는 개방적인 대중사회로 변화해가고 있으며 이 상황 속에서 TV의 ‘맨 얼굴 숨기기 전략’은 거짓으로 치부되었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폰카에 찍힌 연예인 굴욕사진들이 순식간에 인터넷에 퍼지고 화제가 되는 시대에, 아닌 척 하는 이른바 짜고 치는 고스톱은 더 이상 먹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렇게 달라진 시대에 대본에 의해 만들어진 대사들과 이벤트, 제스추어들은 ‘방송의 독’이 되었다.

박명수의 호통개그와 김구라의 막말개그가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바로 이 ‘방송의 독’에 시청자들이 식상함을 느낄 때였다. 이전에는 재미없는 출연진들의 멘트에 억지로라도 웃음을 강요했었다면, 박명수는 그 재미없는 멘트에 대해 “야야야! 재미없잖아!”하고 호통을 쳤다. 김구라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숨기고 있는 연예인들의 이면을 들춰내기 시작했다. 약점으로 지목된 부분들을 거침없이 들춰내 이야기의 도마 위에 올려놓는다는 것은 물론 과격해 보이지만 그것은 한편으로는 독으로서 독을 치유하는 이독제독(以毒治毒)의 기능도 한다.

김구라가 ‘명랑히어로’에 출연한 김성주 아나운서를 ‘배신의 아이콘’으로 부르고, 김국진을 ‘이별의 아이콘’으로 부를 때, 일부 시청자들은 그것이 지나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 순간에 이독제독의 기능이 수행된다. 김구라는 문제가 되었던 연예인들에게 갈 모든 비판을 자신이 대신 한 셈이 되며, 그걸 통해 거꾸로 비판을 동정과 이해의 시선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즉 시청자들이 ‘그 비판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게 내버려두는 것보다는 ‘지나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독한 말이 오히려 비판의 대상에는 순기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독설의 기능을 프로그램화 한 것이 ‘무릎팍 도사’다. 초기 문제 있는 연예인들이 기꺼이 곤혹스러워 보이는 질문공세를 받을 각오로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유는 바로 이 독설의 기능이 가져올 이점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당집 같은 분위기에 살풀이를 한다는 컨셉트는 애초부터 ‘무릎팍 도사’가 이 기능들에 주목하고 있었다는 걸 잘 말해준다. 면죄부라고 하면 지나치겠지만 적어도 ‘문제 연예인’이라는 이미지를 상쇄시키고 그 문제를 시청자들과 나눌 수 있는 자리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물론 독설은 지나치면 독을 제거하는데 사용되지 않고 오히려 치명적인 독이 된다. 아프지만 솔직하고 직설적인 이야기와 비방은 다르며, 독설과 막말은 다르다. 이미 인터넷 환경을 통해 누구나 독설을 내뱉는 이른바 ‘독설의 평준화’가 이루어진 상황에서 자칫 독설은 본래의 진정성의 틀에서 벗어나 주목도를 높이려는 형식전략의 하나로 변질될 수도 있다. 바로 그런 우려에 대한 자성 때문일까. 최근 들어 김구라나 박명수, 그리고 프로그램으로서의 ‘무릎팍 도사’는 특유의 독설을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독설은 아직 유효하다. ‘공감 가는 악플러’는 늘 널리 퍼져있는 찬양가들과 함께 공존하면서 건전한 균형감각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속히 건전한 독설의 대가들이 귀환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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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보는 방송3사 예능 색깔

1년 전만 해도 방송사의 얼굴은 드라마였다. 잘 만든 드라마 한 편은 그 방송국의 이미지를 세우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요즘 이 역할은 예능과 분담되고 있는 추세. 주중 한밤중의 토크쇼 전쟁, 주말의 리얼 버라이어티쇼 경쟁은 드라마 경쟁만큼이나 치열해졌다. 재미있는 것은 드라마에 있어서 방송3사가 저마다 색깔을 달리하는 것처럼 예능에 있어서도 그 색깔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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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예능, ‘연애’에 빠지다
‘무한도전’이 주춤하는 사이, 새롭게 강자로 부각된 ‘우리 결혼했어요’. 짝짓기 프로그램과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접목된 이 프로그램은 최근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고 있다. 남자들끼리, 혹은 여자들끼리만 출연했던 각종 리얼 버라이어티쇼들이 저마다 남녀를 출연시켜 짝짓기 프로그램을 그 안에 넣으려하는 것은 이 프로그램의 영향력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무한도전’이 ‘무한걸스’와 미팅을 했고, ‘1박2일’이 백두산으로 가는 여정에 승무원들과 짝짓기 게임을 했으며, ‘패밀리가 떴다’에서는 여자 출연자들이 출연해 남자 출연자들이 묘한 기류를 형성하고 있고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선보인 ‘살아봅시다’는 ‘우리 결혼했어요’가 가진 결혼의 환타지를 현실 버전으로 바꾸었다. 최근 MBC에서 주목받고 있는 ‘스타의 친구를 소개합니다’는 MBC의 예능에 짝짓기 프로그램이 새로운 메인 아이템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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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예능, ‘가족’에 빠지다
SBS 예능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가족’이다. ‘라인업’에서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고배를 마신 SBS가 야심차게 꺼내놓은 카드가 ‘패밀리가 떴다’라는 점은 가족을 유달리 강조하는 방송사의 성격을 잘 드러내준다. ‘패밀리가 떴다’는 물론 그 프로그램 포맷에 있어서 ‘1박2일’과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상당부분 유사한 점들이 있지만, 다른 점은 바로 출연진들이 유사가족을 형성하고, 전국 시골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들과도 유사가족을 꿈꾼다는 점이다.

SBS의 ‘가족’ 편향은 ‘스타킹’의 출연진들이 남녀노소를 불문하는 보통사람들이라는 점에서도 발견되고, 몰래카메라의 새로운 버전인 ‘체인지’의 주류를 이루는 가족을 찾아가는 에피소드들에서도 발견된다. 이것은 폐지가 결정된 ‘사돈 처음뵙겠습니다’는 물론이고,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우리 결혼했어요’와 유사한 ‘살아봅시다’가 좀더 가족들과의 대면에 집중하는 것에서도 발견된다. SBS의 다른 예능들 예를 들면 ‘인터뷰 게임’같은 프로그램에서도 역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아이템들이 주를 이루는 것도 그 특징의 하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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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예능, ‘노래’에 빠지다
‘전국노래자랑’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오락관’같은 장수하는 코너에는 늘 노래가 있어서 일까. KBS는 좀더 예능의 본질적인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그것은 노래로 대변되는 일상 생활의 즐거움이다. KBS 예능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1박2일’은 물론 여행이란 아이템이 그 첫 번째 성공비결이 된 것이지만, 거기에서도 노래를 빼놓을 수는 없다. ‘1박2일’이 가장 파괴력을 보인 것은 ‘전국노래자랑’과의 만남이나, ‘충주대 게릴라 콘서트’같은 노래 아이템과의 만남에서였다.

이것은 물론 구성원들이 가수란 점도 작용을 한 것이겠지만, 노래 자체가 갖는 예능에서의 기본적인 힘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대결 노래가 좋다’나 ‘도전주부가요스타’같은 본격적인 노래 대결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열린 음악회’나 ‘윤도현의 러브레터’같은 라이브 음악 프로그램은 바로 노래 자체가 갖는 이 같은 힘이 극대화된 것들이다. 이처럼 ‘불후의 명곡’이나 ‘해피투게더’의 ‘쟁반노래방’의 새로운 버전으로 읽히는 ‘도전 암기송’ 같이 KBS는 줄곧 노래가 주는 즐거움을 프로그램 속으로 끌어오는 경향이 있다.

방송3사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비슷해 보이면서도 이처럼 다른 양상을 띄는 것은 그것이 각 방송사의 사풍이나 프로그램 정책, 또는 한때를 풍미했던 프로그램의 경험 같은 것들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방송3사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가질 수 있는 강점은 그때 그때의 트렌드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이 각기 다른 색깔을 극대화하는 부분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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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인의 맨 얼굴, 김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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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의 ‘백두산 특집’에서 배로 19시간, 버스로 23시간을 이동한 출연진들. 아무리 리얼 버라이어티쇼지만 눈을 뜬 강호동은 먼저 눈곱부터 닦아내고, 가까이 놓여있는 카메라에 얼굴 크게 잡힌다고 투덜댄다. 이승기는 늘 그래왔듯이 그 와중에도 생수를 조금 따라서 세수를 한다. 만인에게 얼굴이 노출되는 연예인이라면 습관적으로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그 때 불쑥 이런 목소리가 들려온다. “난 방송을 위해 안 씻을래.” 목소리의 주인공은 김C. 그 이유는 “우리의 여정이 힘들다는 걸 그냥 표현”하기 위해서란다.

‘1박2일’에서 김C는 사실 다른 멤버들과 비교해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는 캐릭터는 아니다. 복불복 게임의 벌칙으로 고추냉이가 잔뜩 들어간 음식을 먹게 된다면 아마도 예능에 익숙한 이들은 그것이 실제 맵건 맵지 않건 ‘확실하게 맵다는 리액션’을 보일 것이다. 하지만 김C는 다르다. 그저 먹고는 그저 그렇다는 표정을 지을 뿐 과장된 리액션은 보이지 않는다. 김C의 존재가 부각됐던 번지점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이승기와 은지원이 못한 번지점프를 하는데 있어서 김C는 예능인들 특유의 과장된 몸짓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뛰어내린 후, “이런 거라도 해야한다”고 담담히 말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런 과장되지 않은 모습은 ‘1박2일’에서는 사실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이명한PD가 밝힌 대로 리얼 버라이어티의 진가는 ‘꾸미지 않는 것’에서 자연스러울 때 드러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호동이 표현한 대로 “눈만 감으면 시체”가 되는 김C의 얼굴은 이미지로 메이크업된 것이 아닌, ‘예능인 본래의 맨 얼굴’을 보여준다. 그래서 백두산까지의 여정에서 다른 팀원들이 힘겨운 표정을 지으며 고생을 역설하는 것보다, 버스 맨바닥에서 자고 일어난 김C가 “온 몸이 두들겨 맞은 것 같다”고 하는 말 하나가 더 실감을 준다.

지금까지 김C가 ‘1박2일’에서 보여준, 아니 연예인으로 활동하면서 보여준 행보들도 거의 자신의 맨 얼굴에 가깝다. 김C가 소설가 이외수씨의 집을 추천해 찾아간 것은 ‘1박2일’에서 기획된 내용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로 김C와 이외수씨의 관계가 그렇듯 돈독하다. 김C가 쓴 책에 이외수씨가 삽화를 그려준 것이 계기가 되어 만난 그들은, 이외수씨가 김C의 콘서트에서 퍼포먼스를 할 정도로 가까워졌다고 한다. 춘천에서 오래 생활했고, 사실상 거지처럼 살았던 적이 있으며, 예쁜 색시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점 이외에도 그들은 삶 자체가 꾸며지지 않은 맨 얼굴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뜨거운 감자’의 보컬로서 ‘봄바람 따라간 여인’을 부르는 김C의 음악 또한 치장되지 않은 느낌을 준다. 시류를 타는 이른바 히트곡들과 비교해 조금은 덜 세련된 면이 있지만 바로 그것이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감칠맛 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것은 어쩌면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기보다는 자신의 음악을 고집하는 음악인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게 마련인 독특한 그들만의 매력일 것이다. 윤동주 시인의 생가를 찾아가 김C가 ‘서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내리는데 어색하지 않은 것은, 그가 노래를 할 때나 예능을 할 때나 혹은 라디오를 하거나 내레이션을 할 때나 늘 솔직한 진지함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카메라 앞에 선 예능인들이 늘 웃고 밝은 얼굴을 보이려 할 때, 막상 그 카메라를 메고 들고뛰는 제작진들의 힘겨운 얼굴처럼, 김C는 그 카메라 이면의 리얼리티를 그대로 보여주는 힘이 있다. 어쩌면 김C의 꾸미지 않는 얼굴은, 앞으로는 늘 웃고 있지만 때로는 찡그리고, 눈물도 나고, 힘겨워 하기도 하는 모든 예능인들의 맨 얼굴을 표상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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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트라이트’, 왜 미완의 아이템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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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수목 드라마 ‘스포트라이트’에서 사회부 기자, 서우진(손예진)은 갑자기 울어버린 앵커로 인한 방송사고를 막기 위해 아무런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생방송으로 시간을 끌기도 하고, 일본 관광객을 상대로 짝퉁 명품을 파는 현장을 탐사보도하기 위해 잠입했다가 곤욕을 치를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심지어 특종에 대한 강박으로 장진규라는 희대의 살인마에게 접근해 목숨을 내건 인터뷰를 강행하기까지 한다. ‘스포트라이트’의 초반 장진규 에피소드까지의 숨가쁜 이야기는 사회부 기자라는 직업이 보여줄 수 있는 절정을 보여주었다.

‘스포트라이트’, 왜 좋은 아이템을 살리지 못했나
이처럼 애초에 ‘스포트라이트’가 꿈꾸었던 드라마는 적당히 전문직을 차려입은 멜로 드라마가 아니었다. 물론 손예진과 지진희가 가진 배우로서의 이미지가 어떤 멜로의 예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잠입 취재를 하기 위해 다방 여 종업원으로 위장하고, 희대의 살인마와 격투를 벌이다 머리에 피가 철철 흐르는 맹렬 여성의 이미지를 부각시킨 손예진과, 따뜻함보다는 냉철함을 연기하며 ‘킬!’을 외쳐대는 캡 지진희는 그런 예감을 없애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 초반부에 너무 하이라이트를 집중시키다보니 다음 진행에 큰 부담이 생겼다. 앵커 경합이나, 사회에 전 재산을 기부한 할머니의 사연 같은 에피소드가 그 자체로는 약한 것이 아니지만, 장진규 에피소드 뒤로 붙으면서 상대적으로 맥이 풀리게 된 것. 장진규 에피소드에 환호하던 시청자들은 그 이후의 상대적으로 맥빠지는 에피소드들을 보면서 “‘스포트라이트’는 장진규 이후 종영했다”는 과격한 표현을 하기도 했다.

‘스포트라이트’는 이후에도 여러 번 기회가 있었다. 그것은 뉴시티 분양과 관련하여 벌어진 영환건설의 비리를 캐내려는 서우진 기자가 총체적인 위기 국면에 접어들면서다. 기자로서의 신뢰도도 땅에 떨어지고, 가족들마저 피해를 입게되는 극단적 상황으로 몰리면서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 올렸다. 하지만 결국 그 뿐, 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된다. 그리고 이어진 에피소드는 다시 심층리포트의 진행자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이는 서우진과 채명은(조윤희)과의 대결이다.

이후 마지막 에피소드로서 경제특구비리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되었지만 이 역시 결말에 있어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했다. 그동안 고압적으로만 보였던 국정원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는 것이나, 영환건설측이 순순히 방송출연을 자청한다는 것, 그리고 방송 도중 서로의 비리를 폭로하게 되는 내용은 드라마의 리얼리티를 상당 부분 떨어뜨렸던 것이 분명하다.

‘스포트라이트’, 왜 미완의 아이템이 되었나
전체적으로 보면 ‘스포트라이트’는 늘 일을 잘 벌여놓은 상태에서 뒤처리가 잘 되지 않는 경향을 보였다. 기자로서 서우진이 잡아내는 아이템들은 실제 현실 사회에서 보았던 유사한 비리사건들을 연상시키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그것이 다루어지는 방식은 주로 정치적인 해결에 의지했다. 사회부에서 시작한 에피소드가 정치부에서 끝나는 것은 실제로 보면 현실적일지 모르지만, 드라마 속에서 시청자들이 보고싶은 결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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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트라이트’는 또한 서우진과 오태석(지진희)의 멜로 구도에 있어서도 망설이기만 할 뿐 어떤 진행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꼭 멜로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드라마 중반부터 오태석의 캐릭터가 캡에서 연인으로 바뀔 조짐을 보였던 것은 드라마의 일관성에 독이 되었다. 차라리 멜로의 조짐 자체를 빼고 하드보일드하게 진행하던가, 아니면 처음부터 멜로를 바탕에 깔고 가던가 ‘스포트라이트’는 미리 결정을 했어야 한다. 직접적인 멜로 라인은 아니지만 저 ‘X파일’의 스칼리와 멀더 같은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스포트라이트’는 여러모로 미완의 성격이 강한 드라마가 되었다. ‘스포트라이트’가 ‘킬’해야 했던 것은 너무 초반부에 만들어버린 하이라이트에 이어진 전체 흐름과 아무 상관없는 소소한 경합아이템들이다. 또한 애초에 멜로를 예상하기 어렵게 어필되었던 오태석의 캐릭터가 중반부터 흔들린 것도 ‘킬’되었어야 하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에피소드들 하나 하나를 두고 보면 관심을 끌만한 좋은 아이템들이었지만, 이 아이템들을 꿰뚫는 하나의 주제나 큰 흐름을 잡지 못했기에 전체적인 흐름에서는 상승곡선을 이루지 못했다.

이로서 ‘스포트라이트’는 드라마 속에서의 뉴스프로그램과 유사한 성격을 띄게 되었다. 각각의 뉴스들은 흥미진진하지만, 어떤 일관된 심층리포트 같은 집요함이나 끈질김을 발견하기가 어렵게 된 것은 이 좋은 가능성을 가진 아이템 자체를 아쉽게도 ‘킬’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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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농담 질펀한 섹시한 폭력, ‘플래닛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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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했던 놀이 중에는 이른바 ‘엉망진창 놀이’라는 게 있었다. 진흙탕에서 뒹굴거나, 케이크를 잔뜩 얼굴에 바르거나 사방으로 던지고, 때로는 손바닥 가득 물감을 칠하고는 커다란 도화지 위에 아무렇게나 막 칠하는 그런 놀이. 엉망진창 놀이의 묘미는 처음 손이나 몸을 더럽힐 때만 조금 꺼려지지 아예 포기하고 나면 묘한 자유의 쾌감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다. 피가 철철 흐르고 살점이 튀며 머리가 호박처럼 쪼개지는 ‘플래닛 테러’는 바로 그 엉망진창 놀이를 닮았다. 일단 마음의 저항감을 없애고 그 피칠갑의 영상에 몸을 맡기게 되면 그 재미에 푹 빠지게 된다는 점이 그렇다.

엉망진창 놀이에 잘 꾸며진 영상이 대수일까. 일부러 B급 영상을 표현하기 위해 고의로 화면에 스크래치를 하고, 어딘지 엉성한 화면 연출과 대사까지 의도적으로 흘려보내며, 심지어 중요한(?) 베드신 장면에서는 필름이 소실된 듯한 영상을 꾸미면서 ‘필름이 분실되어 죄송합니다’라는 자막까지 끼워 넣는다. 이 엉성하고 느슨한 연출은 그 위에 얹어질 좀비들과의 피 튀기는 일대격전을 한바탕 놀이로 만들어버린다. 그 속에서는 조금 개연성이 떨어지거나 어색한 화면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은 것이 되어버린다. 중요한 것은 그 엉성함이 깔아주는 편안함 속에서 마치 카타르시스처럼 잘라지고 터지는 몸뚱어리와 피의 제전이며, 그 기저에 깔려진 끝없는 블랙유머다.

하지만 엉망진창으로 꾸며졌다고 해서 이 영화가 실제로 엉망진창이라는 것은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영화 곳곳에 치밀한 계산이 되어 있는 면면들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가 클럽에서 고고댄스를 추는 체리 달링(로즈 맥고완)의 도발적인 춤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그 유혹적인 춤동작들이 후반부에 여전사의 모습으로 전화될 것을 예고한다. 이 에로티시즘이나 식욕 같은 욕망을 폭력으로 연결시키는 독특한 발상은 타란티노와 로드리게스의 걸쭉한 영상 농담으로 구현된다. 영화 속 짝패를 이루는 체리 달링과 엘 레이(프레디 로드리게스)는 남녀의 성적 욕망을 폭력으로 구현된 캐릭터들이다. 좀비들에게 다리가 거세된 체리 달링은 엘 레이를 만나고 그가 나무 막대기를 다리에 박아주면서 여전사로 우뚝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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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 달링을 겁탈하려 하는 강간범(타란티노)을 때려눕히면서, 바로 그 나무다리는 부러지지만 엘 레이는 거기에 좀더 강력한 기관총 다리를 무기로 박아 넣는다. 이 성적인 묘사들은 두 사람의 사랑의 징표인 반지에 새겨진 ‘둘이 함께 세상에 맞서며’라는 문구와 잘 어울린다. 거기에는 사랑과 폭력이 함께 공존한다. 이러한 욕망과 폭력의 연결은 식욕과 피를 연결시키는 부분에서도 발견된다. 소시지 소스의 비밀을 찾고 있는 JT(제프 파헤이)가 피에서 단서를 발견하는 것이나, 죽은 듯 쓰러진 척 하는 JT의 배 위에 내장처럼 올려진 소시지를 엘 레이가 씹어 먹으며 “죽이는 맛이다”고 말하는 장면이 그렇다. 사실 사람을 뜯는다는 좀비들에 대한 상상 자체가 바로 이 식욕과 폭력의 혼합물이다.

‘플래닛 테러’는 엉망진창으로 만들어진 영화처럼 보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영화다. 그것은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 대한 찬양이지만 로드리게스 특유의 농담은 그 B급 취향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 힘이 있다. 그러니 이 영화를 보면서 괜스레 진지해질 필요는 없다. 그저 그 엉망진창 놀이가 주는 조금은 느슨한 즐거움으로 바라보기만 하면 그 안에서 우리는 피를 뒤집어쓴 수많은 농담을 발견해낼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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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버라이어티는 남자여자 따로따로? 천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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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버라이어티쇼들이 핑크빛으로 물들어간다. 그 진원지는 ‘우리 결혼했어요’. 연예인들의 가상으로 설정된 알콩달콩한 부부생활을 리얼리티쇼의 형식으로 보여주며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우리 결혼했어요’는 과거 남자여자 따로따로 존재해온 리얼 버라이어티쇼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리얼 버라이어티와 짝짓기 프로그램의 만남
새롭게 시작한 ‘패밀리가 떴다’에 리얼 버라이어티쇼로서는 이색적으로 남성 출연자들 속에 이효리, 박예진이 투입된 것은 이 변화의 바람을 예고한다. 이 여성 출연자들의 투입으로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남녀 사이에 벌어지는 연애 감정 같은 좀더 다양한 코드들을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패밀리가 떴다’의 일등공신으로서 이효리와 박예진이 지목되고, ‘사랑해 게임’이 주목받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번 주 방영이 예고되어 있는 ‘무한도전’에서 ‘무한걸스’와 6대6 미팅을 벌이며 커플 버라이어티를 시도한다는 것 역시 이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사실 케이블에서의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남녀간의 만남이 더 많이 이루어져 왔다. 청춘남녀의 소개팅을 다룬 엠넷의 ‘아찔한 소개팅’, 올리브의 ‘키스 더 데이트’같은 리얼리티쇼는 물론이고, 극단적으로는 코미디TV의 ‘애완남 키우기 - 나는 펫’도 남녀의 은밀한 연애감정을 주로 다뤄왔다.

이것은 심지어 ‘무한도전’의 여성 버전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MBC 에브리원의 ‘무한걸스’도 예외는 아니다. 여성 출연진들에 의해 꾸려져 가는 ‘무한걸스’에서 그 도전 과제 중 하나로서 멋진 남자들과의 소개팅은 늘 시도되었던 소재이다. 그러니 ‘무한걸스’ 입장에서 보면 ‘무한도전’과의 미팅은 그렇게 새로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공중파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원조격으로 주로 남자들만의 도전에 치중되어 있었던 ‘무한도전’의 입장에서는 다르다.

공중파와 케이블의 만남
‘우리 결혼했어요’가 케이블TV 짝짓기 프로그램의 공중파 버전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라면 이러한 변화양상을 공중파 전체에 파급시킨 것은 역시 그 진원지를 케이블TV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무한도전’과 ‘무한걸스’의 만남은 그 자체로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남자와 여자로 각각 팀원이 구성되어 성격도 다른 두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만남이면서 동시에 공중파와 케이블의 만남이기도 하다. 어떤 식으로든 케이블의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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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파는 케이블TV의 짝짓기 프로그램이 갖는 선정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안전장치들을 마련하고 있다. ‘우리 결혼했어요’가 사실은 동거생활을 보여주면서도 그 선정성이 가려지는 것은 마치 로맨틱 코미디를 보는 듯한 상큼 발랄한 영상들과 이야기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또한 한 공간에서 남녀가 함께 잠을 자야하는 상황에 있는 ‘패밀리가 떴다’는 유사가족 같은 분위기로 그 위험성을 넘어서려 한다. 이들 프로그램들은 모두 동거나 혼숙이라는 음성적인 코드를 결혼과 MT 같은 긍정적인 모드로 바꿔주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윤리적인 잣대보다는 그것이 진짜 리얼리티에 효과적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남자들만의, 혹은 여자들만의 팀원들이 갖는 자연스러운 분위기는 각자의 리얼리티를 끄집어내는데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혹자는 이 이성들이 함께 생활하는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정말 리얼리티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에 의문을 품기도 한다. 이미 케이블에서 예고되었던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짝짓기 프로그램과의 동거는 이제 점점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분명한 점은 핑크빛으로 물들고 있는 공중파의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 리얼리티는, 그것이 진짜인지 가상인지 출연진들조차 혼동을 일으키는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 위에 놓여져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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