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티’, 시청자도 빠져드는 김남주의 진심 혹은 거짓

제목처럼 ‘안개가 자욱한’ 상황의 연속이다. 과연 그녀의 진심은 무엇이고 또 거짓은 무엇이며 만일 거짓이라면 왜 그런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걸까. JTBC 금토드라마 <미스티>에서 차량사고로 죽은 케빈 리(고준) 때문에 경찰 조사를 받고 나온 고혜란(김남주)은 참고인이 피의자처럼 취급되는 여론을 마주하게 된다. 청와대 대변인 제의까지 받고 있던 상황에서 고혜란은 대변인 자리는커녕 그가 하고 있던 ‘뉴스9’ 앵커 자리까지 위협받는다. 

그런데 이 고혜란이라는 인물이 가진 심경이 복잡 미묘하다. 그는 앵커 자리를 지키기 위해 또 그 이상의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기 위해 뭐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심지어 그가 강태욱(지진희)과 결혼하게 된 것도 그가 가진 집안과 배경이 우선이었다. 결혼까지 이런 이유로 선택할만한 인물이라면 더한 일도 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인물이 바로 고혜란이다. 

그러니 죽기 전 고혜란을 성추행하고는 그 장면을 사진으로 몰래 찍어 협박했던 케빈 리의 죽음에 그를 의심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물론 그는 경찰서에서도 또 남편 앞에서도 결백을 항변한다. 그래서 경찰서 바깥에 운집한 기자들 앞에 당당히 나서고, ‘뉴스9’에서도 이 사건에 대해 자신은 참고인일 뿐이라며 추측성 기사들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하는 방송을 한다. 

그 정도라면 그의 결백이 확실해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방송에서 자신의 결백을 항변하는 고혜란의 모습을 보고는 남편 강태욱은 아내에게 이제 믿기로 했다고 말하고 자신에게 기대라고 한다. 그래서 남편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는 고혜란의 모습은 진짜 그의 결백과 억울함이 묻어나는 듯하다. 하지만 또한 데스크인 장규석(이경영)이 한 뉴스란 ‘팩트에 기반한 쇼’이고 고혜란은 역시 그걸 잘 안다는 말이 걸린다. 방송에서의 멘트는 자못 진지한 것이었지만 그건 과연 진심이었을까.

고혜란이 사망 전 차 안에서 케빈 리와 나누는 대화 역시 그의 진심을 의심하게 만든다. 그는 케빈 리에게 강태욱과 결혼한 건 사랑이 아니라 ‘필요’였다고 분명히 밝히고, 대신 케빈 리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걸 드러낸다. 차 안에서 케빈 리와 키스를 나누는 고혜란의 모습은 그래서 또 다시 그에 대한 의심을 갖게 만든다. 하지만 케빈 리에게 안겨 어딘가 무표정한 얼굴에서는 그것 역시 연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무엇이 진심이고 무엇이 거짓일까. 고혜란이라는 인물은 ‘미스티’한 느낌 그 자체를 보여준다. 진심으로 얘기하는 것 같지만 필요하면 누구에게도 거짓을 말할 것만 같은 성공에 대한 강박을 가진 인물이 그이기 때문이다. 아주 격이 있어 보이지만 자신의 앵커 자리를 노리는 한지원 기자(진기주)가 케빈 리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갖는 걸 몰래 사진으로 찍어 몰아내는 술수에도 능한 인물이다. 

<미스티>라는 드라마는 그래서 이 미스터리한 속내를 좀체 드러내지 않는 고혜란이라는 인물이 온전히 이끌어가는 원 탑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 고혜란을 연기하는 김남주라는 배우의 속을 알 수 없으면서도 때론 속물적이고 때론 우아하기까지 하며 때론 걸크러시가 느껴질 정도의 통쾌한 면모까지 보여주는 다채롭고 섬세한 감정 연기가 놀랍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아마도 <미스티>의 고혜란이라는 인물은 이 작품의 동력이면서도 또한 김남주에게 역대급 연기를 끄집어낸 작품으로 기억되지 않을까.(사진:JTBC)

‘어서와’ 친구들이 새삼 확인시킨 제주의 다양한 모습들

제주가 이토록 다채로운 재미를 주는 곳이었던가. 사실 여행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제주의 여러 명소는 이미 여러 차례 방송을 통해 소개된 공간이 되었다. 그래서 모든 게 익숙할 법도 한데, 어찌된 일인지 MBC 에브리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가 소개하는 제주여행은 남다르다. 이탈리아, 멕시코, 독일, 인도 친구들이 그들의 시선으로 어찌 보면 평범해 보이는 것도 새롭게 담아내기 때문이다. 

멕시코 친구들이 찾은 ‘도깨비도로’만 봐도 그렇다. 사실 이제 너무 흔해져서 ‘도깨비도로’를 찾는 사람들은 예전만큼 많지 않다. 그것이 일종의 착시현상이라는 걸 이제는 누구나 다 알고 있어서다. 하지만 멕시코 친구들이 그 곳을 찾아 시동을 끈 차가 오르막길처럼 보이는 그 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걸 경험하고 놀라워하는 장면은 새삼 이 공간을 흥미롭게 만든다. 

차에서 내려 직접 그 도로를 경험하기 위해 물을 바닥에 따르고, 귤을 굴리지만 생각만큼 거꾸로 굴러가지 않아 당황하는 멕시코 친구들의 모습도 우습지만, 다른 관광객이 놓은 작은 병이 굴러가는 걸 보고는 동글동글한 친구 파블로를 일부러 굴려보는 장면은 ‘도깨비도로’에서도 느껴지는 멕시코 친구들의 유쾌함이 느껴진다. 

독일 친구 페터와 다니엘이 아침부터 든든하게 김치와 곁들여 한 끼를 챙겨먹고 오른 한라산도 새롭게 다가왔다. 눈 덮인 한라산의 아름다운 풍광도 풍광이지만, 이들을 알아보는 등산객 아저씨가 그들은 물론이고 제작진에게까지 음식을 나눠주는 모습은 새삼 ‘산사람’들의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해줬다. 페터와 다니엘이 그 아저씨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느꼈듯이.

알베르토가 제안해 이탈리아 친구들이 체험한 바다낚시는 그들의 첫 경험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알베르토는 어려서부터 이웃집 아저씨 때문에 낚시를 해왔다고 했지만 다른 친구들은 바다낚시를 해본 적이 없었던 것. 하지만 의외로 가장 많은 물고기를 낚은 루카 앞에서 알베르토는 멋쩍어질 수밖에 없었다.

외국인 친구들이어서 그저 음식 하나를 먹어도 그 느낌은 다르게 다가왔다. 이탈리아 친구들이 제주 특유의 고기국수 맛에 푹 빠지는 모습이나, 인도 친구들이 산낙지를 통째로 집어 넣어 끓여 먹는 해물탕의 비주얼에 놀라다가, 그 맛에는 더욱 놀라는 모습 또한 흥미진진하게 다가왔다. 

어찌 보면 그들이 한 제주여행 자체가 새로웠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외국인, 그것도 다양한 나라의 저마다 다른 문화와 취향을 가진 그들이기 때문에 제주여행의 모든 면들이 새롭게 느껴졌다. 커피 한 잔을 마시거나 국수를 먹어도, 산을 오르거나 거기서 낯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도 모든 게 달라보였던 것.

그토록 많은 여행을 소재로 하는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래서 국내는 이제 어느덧 너무 흔해진 느낌마저 주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를 보면 이런 느낌 자체가 하나의 편견이자 선입견이라는 걸 확인하게 된다. 공간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공간을 누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가 중요하다는 걸 이 프로그램은 새삼 깨닫게 해주고 있다.(사진:MBC에브리원)

돌아온 ‘조선명탐정’, 웃음은 충분하지만 남는 아쉬움

사실 설 명절이라는 특수한 시기에는 다소 심각하기보다는 가벼운 코미디가 극장가에서 먹히기 마련이다. 아이들 손잡고 부모가 함께 명절에 가는 영화관에서는 조금 억지스러울 수 있는 웃음도 웃을 수만 있다면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영화 <조선명탐정> 시리즈는 과거 명절이면 돌아오던 <가문의 영광> 시리즈를 닮은 면이 있다. 캐릭터가 확실하고 웃음이 있는데다 어느 정도의 볼거리와 이야기까지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돌아온 <조선명탐정>은 ‘흡혈괴마의 비밀’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기존 <조선명탐정> 시리즈가 1편 ‘각시투구꽃의 비밀’이나 2편 ‘사라진 놉의 딸’에서 모두 신비한 사건에서 비롯되지만 사실은 현실적인 ‘독’으로 벌어진 살인사건이었거나, 정교하게 만들어진 ‘잠수정’으로 만들어진 괴수사건이었다는 게 밝혀졌던 걸 떠올리는 관객이라면 ‘흡혈괴마’ 역시 무언가 현실적인 이유가 담겨져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 마련이다. 

조선시대라면 마치 마술처럼 벌어지는 신비한 사건에 대해 갖가지 소문과 풍문이 더해져 하나의 신화처럼 느껴질 법하지만, 현대적인 탐정의 면면을 가진 김민(김명민)은 이를 과학적으로 풀어낸다. 사실 <조선명탐정>이 남다른 재미를 준 부분은 빵빵 터지는 슬랩스틱과 콤비 코미디가 가장 크지만, 그 밑바탕을 받쳐주는 ‘나름 과학 추리’의 맛이 현실성을 잃지 않아서다. 

물론 이번 <조선명탐정 : 흡혈괴마의 비밀> 역시 웃음의 측면에서 보면 김민과 서필(오달수)이 만들어가는 콤비 코미디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정극에서 ‘연기 달인’이라는 칭호를 붙여도 될 법한 김명민과 오달수는 이 작품을 통해 코미디 연기 역시 달인이라는 걸 입증한다. 진지한 표정에서 나오는 엉뚱한 대사가 주는 부조화의 웃음이나, 지체 높은 양반인 척 하지만 순간 머슴처럼 드러나는 본능들은 조선시대의 반상을 깨는 웃음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 남는 아쉬움은 앞서 말한 ‘현실성의 측면’이 진짜 흡혈괴마의 탄생으로 인해 깨져버렸다는 점이다. 영화는 그래서 시작부터 죽었던 사체가 피를 빨아들이고는 다시 살아나고 관군에 의해 쫓기던 괴마가 벼랑 밑으로 추락하지만 곧 다시 달이 휘엉청 떠 있는 하늘로 치솟아 올라 저 멀리 날아가는 장면을 일찌감치 보여준다. 그건 과학을 이용한 신비한 사건이 아니라 말 그대로 흡혈괴마라는 비현실적 존재의 탄생을 이 영화가 수용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툭 건드리기만 해도 인간 무사들 정도는 날아가 버리는 괴마의 어마어마한 힘은 그래서 힘이 어느 정도 균형을 이뤄야 가져올 수 있는 대결구도의 긴장감을 흐트러트리고, 그 비현실성은 <조선명탐정> 특유의 추리요소를 상당부분 지워버린다. 그래서 전반부를 가득 채운 웃음과 긴장감은 후반부로 갈수록 뒷심이 달리는 느낌을 주게 된다. 

이러한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명절 영화로서 가족이 함께 하기에 그리 큰 부담이 되지 않는 영화가 바로 <조선명탐정>인 것만은 분명하다. 김명민과 오달수가 보여주는 콤비 코미디가 주는 웃음의 묘미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시리즈가 앞으로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마디 덧붙인다면, 너무 지나친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나가기보다는 그래도 과학적으로 납득이 되는 이야기로 <조선명탐정>이 돌아오길 바란다는 점이다. 막판에 슬쩍 나온 좀비가 다음 시리즈에서 ‘흡혈괴마’의 새로운 버전이 되는 건 이 시리즈에는 그다지 좋은 선택처럼 보이지 않는다.(사진:영화'조선명탐정;흡혈괴마의 비밀')

‘와이키키’, 부족해도 순수한 청춘들에게 보내는 으라차차

이렇게 웃겨도 되나 싶다. JTBC 월화드라마 <으라차차 와이키키>는 드라마라는 외피를 쓰고 있지만 시트콤에 가깝다. 하지만 시트콤이라고 해서 드라마보다 격이 낮거나 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웃음의 강도가 그만큼 세다는 얘기다. 

실로 이 드라마는 아예 작정한 듯 웃음을 주기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단역배우인 이준기(이이경)가 영화에 캐스팅되어 나간 현장에서 영화계의 전설 김희자(김서형)의 상대역이 되어 겪는 고충은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다. 지나치게 배역에 몰입해 사정없이 상대역이 이준기를 패고, 눈물과 함께 떨어지는 김희자의 콧물이 이준기의 입 속으로 떨어지는 장면은 이 드라마가 가진 웃음에 대한 자세(?)를 보여준다. 

이런 식의 원초적인 코미디는 이미 강동구(김정현)가 상한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나서 화장실을 찾아 온 동네를 돌아다니는 장면에서도 나온 바 있다. 하지만 이런 원초적인 코미디 속에 이 드라마는 상황이 만들어내는 웃음 또한 놓치지 않는다. 마침 그 상황에서 그토록 다시 만나기를 애원했던 헤어진 연인을 만난 동구가 화장실이 급해 할 이야기를 못하는 장면이 그렇다. 

영화 현장에서 김희자의 과도한 몰입 때문에 심하게 두드려 맞은 이준기가 애초에 영화 캐스팅에 가졌던 그 설렘은 온 데 간 데 없고 대신 다음 장면을 앞두고 두려움에 떠는 모습은 그 상황의 반전으로 웃음을 준다. 당하는 코미디 상황을 그 누구보다 잘 소화해내는 이이경의 연기는 이 장면을 더 빵빵 터지게 만든다. 

하지만 드라마는 원초적인 웃음 뒤에 이 청춘들이 마주하고 있는 웃픈 현실을 놓치지 않는다. 배역 하나 따내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이준기가 김희자와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건 사실 유명한 배우인 그의 아버지 이덕화가 뒤에서 힘을 써준 덕분이었던 것. 이준기는 아버지에게 자신이 존경하는 아버지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서야 떳떳할 것 같다며 영화 감독과 김희자에게도 사죄한다. 결국 그 모습이 보기 좋았던 김희자가 이준기가 아침드라마에 나올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하는 흐뭇한 광경은 백도 줄도 아닌 실력으로 올곧이 서려 안간힘을 쓰는 이 순수한 청춘에 ‘으라차차’ 응원을 보내게 만든다.

이런 점은 언론사 서류전형을 간신히 통과하고 면접을 보러 간 강서진(고원희)의 에피소드에서도 등장한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외국인과 부딪쳐 하얀 블라우스에 묻은 커피를 지우느라 정신없던 강서진이 너무 급해 블라우스를 입지 않고 정장만 겉에 걸치고 나간 면접자리에서 땀을 뻘뻘 흘리는 장면은 우습기 그지없다. 

하지만 고깃집에서 하는 특이한 면접에서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에 다른 여성 지원자에게 성희롱을 하는 면접관에게 강서진이 돼지갈비로 싸대기를 날리는 사이다를 선사한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성희롱을 당한 그 여성 지원자는 강서진에게 고마워하기는커녕 자신이 살기 위해 면접관을 오히려 챙기는 모습을 보여줘 씁쓸함을 안긴다. 취업을 하기 위해 성희롱까지도 감수해내야 하는 청춘들의 현실을 <으라차차 와이키키> 특유의 웃픈 상황으로 담아낸 것.

이이경과 고원희는 이 웃음 가득한 드라마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배우다. 이이경은 매회 갖가지 웃픈 상황 속에서 페이소스 가득한 웃음을 선사하고, 고원희는 심지어 수염 나는 여자라는 캐릭터까지 소화해내며 웃음을 준다. 청춘의 왁자한 웃음이 가득한 드라마지만, 안을 잘 들여다보면 짠내까지 물씬 느껴지는 이야기가 이토록 잘 살아나는 건 이들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 덕분이 아닐까. 면접을 위해서든 연기를 위해서든 열정을 다하는 드라마 속 청춘들의 이야기와 이들 신인배우들의 면면은 그래서 어딘지 일맥상통하는 느낌이 있다.(사진:JTBC)

경계 넘는 '크로스', 고경표라는 배우의 경계 넘기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고경표가 연기한 선우는 홀로 살아가는 엄마에 대한 마음이 살뜰한 착한 아들이었다. 이런 면모는 연애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성보라(류혜영)에 대한 일편단심을 보여줬다. 가로등 아래서 고경표가 성보라와 나누는 첫 키스는 그래서 시청자들의 가슴을 따뜻한 설렘으로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고경표는 이 드라마 이전 영화 <차이나타운>에서는 선우와는 완전히 다른 얼굴로 등장해 살벌한 악역을 연기하기도 했다. 드라마에서의 그 따뜻했던 눈빛과 훈훈했던 미소와 달리 이 영화 속에서는 야비한 눈빛과 치 떨리는 차가움으로 소름 돋는 긴장감을 만들었다. 우리는 <차이나타운>과 <응답하라 1988>을 통해 고경표의 그 얼굴에 다양한 표정들이 숨겨져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tvN 월화드라마 <크로스>는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살벌함과 따뜻함 사이를 오가는 고경표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장기밀매조직에 의해 처참하게 장기가 모두 적출된 채 사체로 발견된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의사가 된 강인규라는 인물이 바로 고경표가 맡은 역할이다. 교도소에 수감된 살인범 김형범(허성태)을 아주 조금씩 고통스럽게 죽이기 위해 독이 되는 약물처방을 내리는 모습은 복수자의 섬뜩함을 보여주지만, 장기밀매조직에 잡힌 한 소녀를 구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모습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의사로서의 면면을 보여준다.

강인규가 이런 양면을 보이는 이유는 그가 겪은 아픈 과거사 때문이다. 아버지의 죽음과 남은 여동생의 죽음. 아버지는 장기밀매조직에 의해 장기가 적출되었지만, 지병을 앓다 죽음을 맞게 된 여동생은 장기기증을 했다. 아버지로 인해서 장기밀매조직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을 갖지만, 지병을 앓다 결국 사망한 여동생에게 남은 부채감은 그로 하여금 죽어가는 생명을 포기하지 못하게 만든다.

장기밀매조직으로부터 가까스로 구해낸 소녀가 응급실에서 심정지가 왔을 때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건 그 소녀로부터 여동생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기억은 그래서 복수심에 불타는 강인규를 생명 앞에 최선을 다하는 의사로 만들어주는 힘이 된다. 장기기증으로 누군가의 생명을 이어준 그의 여동생은 그래서 오빠인 강인규에게도 따뜻한 인간애의 마음을 남기고 떠났다.

살벌함과 따뜻함을 오가는 강인규라는 인물이 가진 경계를 넘나드는 면면은 그래서 이를 연기하는 고경표에게도 배우로서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도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미 <차이나타운>과 <응답하라 1988>을 통해 확인했던 것처럼, 고경표는 이 상반된 모습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넘나들고 있다.

멜로에 장르물, 선한 인물에서부터 극악무도한 악역, 착한 의사와 살인을 꿈꾸는 의사 사이를 넘나드는 고경표의 연기는 그래서 강인규라는 의사가 메스를 들 때마다 상반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장기이식으로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드는 메스는 생명에 대한 간절함이 더해지지만, 누군가를 죽일 듯이 복수심에 불타 드는 메스는 무시무시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배우로서 하나의 메스로 이런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건 충분히 박수 받을 일이다.(사진:tvN)


‘황금빛’ 천호진과 신혜선의 공감이 주는 남다른 울림

“마지막으로 일주일만 만나기로 했어요.”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서 딸 서지안(신혜선)은 아버지 서태수(천호진)에게 그렇게 말한다. 애초에 서태수는 지안이 자신에게 했던 말과는 달리 최도경(박시후)과 만나고 있는 것을 보고 걱정되는 마음에 딸에게 그러지 말라고 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딸의 그 말 한 마디에 이 아버지는 말문이 턱 막혀버린다. ‘마지막’이란 말이 너무나 자신의 가슴에 콕콕 박히기 때문이다. 

서태수가 그 말을 남다르게 느끼는 이유는 자신 또한 그 ‘마지막’의 의미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나친 스트레스로 인해 생겨난 상상에 불과했지만, 그는 자신이 암에 걸렸다고 생각하며 ‘마지막’을 준비했다. 너무나 힘겨운 삶이었기 때문에 ‘마지막’이라는 그 생각이 오히려 ‘축복’처럼 느껴져 허허 웃었던 그가 아니었던가. 그러니 서태수는 딸 서지안이 말하는 ‘마지막’의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마지막’을 상정해놓고 서로 웃으며 지내고 있었을까.

걱정되는 마음에서 찾아온 서태수는 문득 딸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그래서 “그 사랑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한다. 너무 다른 집안의 차이 때문에 결코 이뤄지기 어려운 딸의 사랑이 자신의 잘못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서태수에게 딸은 절대로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며 손을 내젓는다. 자신은 괜찮다고 애써 말한다. 

딸 서지안이 서태수를 이해하게 된 것 역시 자신 또한 죽음까지 생각한 고통을 겪어봤기 때문이다. 자신이 재벌가의 친 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는 쫓겨난 서지안은 그제서야 재벌가의 딸인 줄 알고 선선이 집을 나서버린 자신을 용서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죽음을 결심하고 산 속으로 들어갔다 겨우 그 곳을 지나는 이에 의해 살게 되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이제 자신의 삶을 찾아가며 안정을 되찾게 된 서지안이 외면하고 있던 아버지가 사실은 극단적인 외로움과 고통 속에서 죽음을 상상하고 있었다는 걸 알고 오열하게 된 건, 바로 자신이 겪었던 그 상황을 통해 아버지의 상황을 더 절실히 이해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얼마나 힘들었으면 죽음을 오히려 축복처럼 받아들이게 됐을까. 

이런 동병상련의 마음은 <황금빛 내 인생>의 인물들이 저마다 제 자리를 찾아가는 힘으로 작용한다. 이를테면 평범한 서민출신이지만 노명희(나영희)와 결혼해 해성그룹 부회장으로 살아가는 최재성(전노민)이 딸 서지수(서은수)를 돕는 마음이 되는 게 바로 자신의 경험 때문이다. 재벌가의 삶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사랑마저 희생해야 하는 것임을 누구보다 자신의 삶을 통해 알고 있는 최재성은 그래서 서지수에게 선우혁(이태환)과의 연애를 허락하고 노명희에게 사직서를 내버린다.

결국 누군가를 진짜 이해한다는 건 타인의 상황을 고스란히 공감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일 게다.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그래서 서로의 입장을 똑같이 바라보는 것으로서 풀어질 수 있는 일이다. 종반으로 치닫고 있는 <황금빛 내 인생>이 그래서 해법으로 내세우고 있는 건 바로 그 입장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깨닫게 되는 타인에 대한 이해다. 

이 흐름 안에서 최도경과 서지안이 맞닥뜨리는 위기 상황을 대처하는 현명한 방식들이 나타난다. 갑자기 나타나 결혼을 제안하는 노명희 앞에서 두 사람은 잠시 흔들리지만, 그것이 서로를 위한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는 단호히 거부한다. 최도경은 이미 홀로서기를 해나가며 갖게 되는 행복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일 수 있다는 걸 자신의 홀로서기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 결혼으로 서지안의 발목을 잡는 일은 그에게 결코 행복이 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고, 그래서 노명희에게 이를 거부하는 뜻을 전한다. 

<황금빛 내 인생>은 그래서 관계의 그물망에 허우적대던 인물들이 저마다 자신의 인생을 찾아가는 이야기지만 그러기 위해서 서로의 입장을 체험을 통해 이해하고 공감해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의 인생이 중요한 만큼 타인의 인생도 중요하다. 나만의 인생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타인 또한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이어야 결국 진정한 자신의 행복 또한 찾아질 수 있다고 <황금빛 내 인생>은 말하고 있다.(사진:KBS)

‘효리네2’,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힐링이란 말 실감나네

뭐니 뭐니 해도 JTBC 예능 <효리네 민박2>에서 그 중심을 잡아주는 인물은 바로 이효리다. 이미 시즌1을 통해 보여진 바대로 그의 일상은 우리 같은 바쁜 삶을 살아가는 도시인들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요가를 하기 위해 새벽같이 눈을 뜨고 잠시 차 한 잔으로 몸을 녹이며 명상에 빠져드는 이효리의 모습은 몸과 마음을 혹사시키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렇게 몸과 마음을 다독이는 시간이 왜 필요한가를 생각하게 한다. 

마침 창밖으로 눈에 내리고, 그 눈이 우박이 되어 번쩍 번개가 지나간 자리에 우르릉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는 풍경은 그래서 꽤나 상징적인 느낌을 준다. 창밖의 살풍경한 현실이 엄연해도,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며 소리에 무서워 잠이 깬 순심이를 다독이며 품에 안아줄 수 있는 넉넉함을 가지는 것. 월요일부터 바쁜 시간으로 번개와 천둥처럼 정신없이 흘러갈 일상 속에서도 차 한 잔의 여유는 필요할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다스리다보면 그 살풍경한 날씨도 차츰 개이고 때론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눈발 속을 뛰어다니며 슬로우모션으로 영상을 찍는 재미를 찾아낼 수도 있다. 눈발 속으로 뛰어나간 이효리와 이상순 그리고 이 곳의 직원 임윤아는 눈 속에서 뛰어 노는 반려견들처럼 즐거워한다. 그냥 보면 엉성하고 별 의미도 없어 보이는 그 풍경을 아주 천천히 슬로우모션으로 돌아보면 너무나 아름답고 멋진 순간이었다는 게 발견된다. 우리의 일상도 그렇지 않을까.

<효리네 민박2>는 이미 시즌1으로 익숙한 이효리와 이상순의 그 변함없는 매력에 새로운 직원으로 온 임윤아의 예쁘고 싹싹한 매력을 더했다. 첫 손님으로 온 소녀들이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현실감이 없는 예쁜 외모지만, 그 성격은 이효리처럼 털털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청소면 청소, 요리면 요리, 운전이면 운전 뭐든 척척 해낸다. 

특히 눈에 띄는 건 남다른 섬세한 배려심이다. 첫 날 이효리가 흘러내리는 머리를 실핀이 없어 테이프로 붙이고 있던 걸 남다르게 바라본 윤아는 이상순과 장을 보러 가서는 실핀을 챙긴다. 요리를 하겠다고 준비해온 갖가지 요리도구들 역시 윤아의 남다른 배려 깊은 성격을 확인하게 한다. 잘 먹이고 잘 재우겠다는 이효리와 이상순의 이번 겨울 민박집 방침에 이토록 딱 들어맞는 직원이 있을까.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첫 번째 손님으로 온 유도 소녀 중 한 명이 아무 생각 없이 꺼내놓은 “죽기 전 박보검을 한번 보고 싶다”는 말 한 마디는 이제 앞으로 진짜 이 민박집을 찾아올 박보검에 대한 기대감을 벌써부터 채워버렸다. 그가 올 것을 까마득히 모르는 이효리는 유도 소녀에게 박보검이 이상형으로 자신을 꼽았다며 기사까지 찾아준다. 이효리 역시 박보검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는 얘기이고, 실제로 살짝 등장한 예고 장면에서 박보검이 왔다는 소식에 그게 실화인지 확인하러 달려 나가는 모습도 포착됐다.

이효리, 이상순 부부가 만들어내는 일상 바깥의 의미들이 <효리네 민박2>의 남다른 공기를 만들어낸다면, 여기에 보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예쁜 윤아와 심쿵 박보검이 합류해 완벽한 조합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들은 온전히 이 프로그램의 실제 주인공이랄 수 있는 민박객 손님들을 위해 정성을 다한다. 시청자들로서는 손님들이 부러움을 넘어서 그들에게 마치 자신이 거기 있는 듯 몰입할 수밖에 없다. 

역시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녹이는 건 사람들의 온기가 아닐까. 눈보라가 몰아쳐도 따뜻한 사람들의 환한 웃음과, 마음과 마음이 오가는 이야기들이 가득 채워지는 <효리네 민박2>에 몹시도 추운 겨울밤 월요일을 앞둔 시청자들의 마음마저 녹는 이유다. 잠시라도 저런 느린 풍경 속에서 여유를 찾아볼 수 있다면.(사진:JTBC)

‘미스티’, 김남주 주변인물 모두가 용의자라는 건

JTBC 금토드라마 <미스티>는 방송국 앵커 고혜란(김남주)이 경찰서에서 차량 사고로 죽은 케빈 리(고준)에 대한 조사를 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죽은 케빈 리의 차 안에서 그의 브로치가 발견됐기 때문. 그래서 이야기는 고혜란이 지금 현재 방송국에서 ‘뉴스9’ 앵커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한지원(진기주) 기자와의 경쟁과, 이를 이용해 시청률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방송사가 방송 섭외 1순위가 된 케빈 리를 인터뷰하려 하면서 고혜란이 그와 다시 엮이게 된 사연, 그리고 그가 과거 고혜란이 버린 남자라는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그 과정에서 고혜란과 남편 강태욱(지진희)이 사실상 쇼윈도 부부로 살아가는 모습과, 케빈 리가 결혼한 서은주(전혜진)가 과거 고혜란과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결국 케빈 리의 죽음은 성공을 위해서라면 남편까지 이용하는 고혜란의 욕망의 질주와, 과거 버려졌던 상처로 복수의 일념으로 최고의 프로골퍼가 되어 돌아온 케빈 리가 그 욕망의 질주에 걸림돌이 되는 상황 사이에서 벌어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만일 그 죽음이 단순 사고가 아니라 누군가의 살인이라면 그 살인자가 누구인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고혜란은 스스로 자신의 무고를 남편에게 호소하고 있지만, 성공을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 그의 그 말을 믿기는 쉽지 않다. 그의 남편 강태욱은 고혜란과 이혼까지 결심한 인물이지만 어딘지 여전히 그에 대한 애증이 남아 있다. 그래서 은근히 고혜란의 성공을 뒤에서 밀어주면서, 동시에 케빈 리가 은연중에 암시하는 고혜란과의 관계에 분노한다. 이런 점이 어쩌면 케빈 리의 죽음에 그가 관여되었을 수도 있다는 심증을 갖게 만든다. 

그렇지만 용의자는 이보다 훨씬 더 많다. 사실상 고혜란과 케빈 리 사이에 얽혀 있는 모든 인물들이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특히 케빈 리의 아내인 서은주는 성공한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는 감지하고 있다. 그래서 케빈 리에게 아이를 갖자고 하지만 남편은 아이에는 별 관심이 없다. 실제로 아이를 갖게 된 서은주는 고혜란 앞에서 묘한 열등감을 느끼고 한지원과 또 고혜란과도 남편이 관계를 맺고 있고 맺으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어쩌면 그가 케빈 리의 살해 용의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갖게 만드는 이유다. 

한지원은 고혜란과의 앵커직을 두고 벌어진 대결에서 무참히 무너져버린 인물이다. 그래서 케빈 리와 불륜관계를 맺는 것 또한 어떤 면에서는 고혜란과의 또 다른 대결로서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물론 한지원은 직접적인 케빈 리 살해 용의자라기보다는 이런 일들을 조장해내 고혜란을 곤경에 빠뜨리는 걸 더 목적으로 했을 수 있는 인물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의심이 가는 또 한 명의 인물은 감옥에서 출소일이 임박하면 사고를 쳐서 형량을 늘려가는 미스터리한 수감자 하명우(임태경)다. 그는 아직까지 고혜란과 어떤 식으로 얽혀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과거 고혜란에게 자신은 감옥에 있을 테니 너는 앞만 보고 나아가라고 말했던 인물이다. 만일 고혜란의 앞길에 어떤 장애물이 생겼다면 그걸 제거해줄 수 있는 인물일 수도 있다는 것. 그 역시 케빈 리의 죽음과 연관된 뉘앙스를 주는 이유다. 

결국 <미스티>는 케빈 리라는 한 프로골퍼의 죽음과 고혜란이 살해용의자로 지목되는 가운데, 그들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저마다 가진 욕망들이 드러나는 드라마다. 겉으로는 ‘격정멜로’라는 장르적 틀로 위장하고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살인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욕망들의 충돌을 다루고 있는 것. 

어쩌면 우리가 흔히 신문 사회면에서 발견하는 살인사건들은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저마다의 욕망과 좌절, 분노 같은 것들이 숨겨져 있을 게다. <미스티>는 고혜란이라는 인물의 폭주와 그의 걸림돌로 등장한 케빈 리라는 인물의 죽음으로 현대인들이 갖는 욕망을 해부한다. 살인사건의 진실을 따라가다 보면 그 안에서 많은 이들의 욕망들이 어떻게 부딪치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욕망들의 부딪침은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단면을 말해주는 것일 지도 모른다.(사진:JTBC)

최강 한파 속 ‘한끼줍쇼’, 홍진영에 녹고 윤정수에 웃고

겨울 한파는 예능 프로그램에게는 최대 복병이면서 기회가 되기도 한다. 과거 KBS <1박2일>이 오히려 한겨울에 시청률 고공행진을 기록한 건 그 한파 속에서도 계곡의 얼음을 깨고 입수를 하는 장면을 연출하면서다. 체감온도 영하 20도에 어둑해져가는 저녁 시간 한 끼 저녁을 함께 할 집을 찾아나서는 JTBC 예능 <한끼줍쇼>에도 한파가 닥쳤다. 길거리를 걸어가는 것조차 얼굴이 얼어붙는 것 같아 출연자들은 힘겨워했다. 베테랑 이경규마저 입이 얼어 말이 잘 나오지 않을 정도니 그 추위를 쉽게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추워서 가장 덩치가 큰 강호동을 맨 앞에 세우고 오리들처럼 줄을 맞춰 걸어가는 출연자들의 힘겨움은 이 날 밥동무로 출연한 홍진영과 윤정수 덕분에 예능적인 즐거움으로 풀어졌다. 누구든 만나기만 하면 쉽게 다가가 친해지는 홍진영의 특급 친화력은 추위를 녹이는 훈훈한 인간적인 온기를 느끼게 했고,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자연스러운 예능인의 공력이 느껴지는 윤정수의 모습은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특히 홍진영 특유의 끼와 흥은 이경규조차 혀를 내두르게 했다. 콕 지르면 노래가 절로 나오는 홍진영은 한 끼 도전에서 초인종 벨을 누르고 낯선 분들과 대화하는 것부터가 남달랐다. 물론 누구에게나 익숙한 그의 존재가 한 몫을 한 것이지만, 애교 넘치는 목소리로 유쾌한 느낌을 주는 홍진영의 소통 앞에서는 누구든 녹아내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마치 부동산 전문가처럼 사당동에 대한 지식을 줄줄 늘어놓는 윤정수는 이제 오픈한 지 1년 정도 됐다는 부동산 사장님을 당황하게 만들어 웃음을 주었다. 집을 알아보기 위해 이 동네를 자주 오갔다는 윤정수는 사당동의 지형부터 곳곳에 위치한 명소 또 유입인구들의 특성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너무 추운 날씨는 초인종을 누르는 출연자들에게도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인심 좋기로 유명한 사당동 주민 분들은 한파에 고생하는 출연자들에게 선선히 문을 열어주었다. 먼저 강호동과 윤정수에게 문을 열어 준 어머니는 날씨가 이렇게 춥지 않았으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추운 날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사당동 주민들의 남다른 인심 때문이었을까. 문을 열어준 사당동 주민 분들의 살아가는 모습은 더더욱 훈훈하게 다가왔다. 강호동과 윤정수에게 문을 열어주신 어머니는 1남2녀의 자식들이 연달아 가진 아이들 때문에 7년째 사실상 산후조리원처럼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어찌 보면 힘겨울 거라 생각되지만 어머니의 얼굴은 웃음이 가득했다. 손주들이 너무나 예쁘고 이렇게 온 가족이 가까이 지내는 게 그토록 행복할 수 없다는 것.

홍진영과 이경규에게 문을 열어 준 어머니는 <한끼줍쇼>의 애청자라고 했다. 아버님이 병환으로 위기를 넘겼고 어머니 역시 잘못된 투자로 큰 손해를 보기도 했지만 이 가족은 그런 그림자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위기 상황에서도 오히려 서로를 위해주고 챙겨주는 가족의 힘을 더 느낄 수 있었다는 아버님의 말씀은 이 소박해도 따뜻하기 그지없는 집안의 훈훈함이 어디서 비롯되는가를 보여주었다. 

이들 가족들의 단란함을 전해주는 역할로서 홍진영 특유의 친화력과 윤정수 특유의 유머 감각이 한 몫을 했다. 한파 때문에 보기에도 추워 보이는 골목길의 풍경은 오히려 한 끼를 위해 문을 열어준 집을 가득 채운 가족들의 따뜻함을 배가시켰다. 힘겨울수록 더더욱 소중해지는 게 가족이라고 했던가. <한끼줍쇼>는 한파 속에서 바로 그 가족의 따뜻함을 다시금 확인시켜줬다.(사진:JTBC)

기막힌 교집합 ‘크로스’, 범죄와 의술 사이 생명은

이 교집합이 실로 흥미롭다. tvN 월화드라마 <크로스>는 바로 이 드라마가 가진 많은 경계의 접점들에서 나온 제목 같다. 범죄와 의술이 겹쳐지고, 살인과 활인(活人)이 겹쳐진다. 장르로 보면 의학드라마와 범죄물이 겹쳐지고, 공간으로 보면 감옥과 병원이 겹쳐진다. 그리고 이렇게 ‘크로스’되는 지점에 놓여진 건 다름 아닌 ‘생명’이다. 

천재의사 강인규(고경표)라는 존재 자체가 여러 이질적 면면이 ‘크로스’된 캐릭터다. 그는 처참하게 장기가 적출된 채 살해당한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꿈꾸기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의사가 된 인물이다. 그래서 그가 드는 메스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복수를 위해서는 ‘살인검’이 되지만 의사의 본분인 생명을 위해서는 ‘활인검’이 된다. 

이 의학드라마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지는 장기이식 역시 두 가지 이질적 요소가 ‘크로스’ 되어 있다. 충격적인 범죄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장기밀매와 아름다운 미담으로 전해지는 장기기증, 장기이식 이야기가 그것이다. 둘 다 장기를 꺼내 다른 사람들에게 이식하는 것이지만, 하나는 심각한 범죄이고 다른 하나는 휴머니즘이 가득한 의술이다. ‘크로스’는 그 의미 자체가 장기이식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는 문구지만, 거기에는 이러한 범죄와 의술로 나뉘어지는 상반된 관점이 들어 있다. 

강인규는 이 크로스 된 상황 속에서 갈등하는 인물이다. 수감 중인 아버지를 죽인 원수 김형범(허성태)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는 교도소에 자원하고 부적절한 약물 투여를 통해 조금씩 그를 고통스럽게 죽이려 한다. 강인규를 자신의 장기 밀매 조직에서 이용하기 위해 김형범은 ‘장기 적출’ 일을 제안하고, 그는 그 밀매조직을 검거하기 위해 그 위험한 일을 수락한다. 그러나 그 사실이 발각되어 위기에 처한 강인규는 거기 누워 있는 소녀를 구해내 살려내려 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흥미로운 건 이 소녀를 구해내려는 과정에서 강인규가 보이는 절실함이다. 어린 시절 늘 병마에 시달리는 동생 때문에 부모들이 모두 힘겹게 살아가는 걸 목도한 그는 차라리 동생이 죽었으면 하는 마음을 먹었고, 그 기억은 못내 그의 죄의식으로 남았다. 결국 길가에 버렸던 동생을 다시 구해내는 그 과거의 일이 그에게는 눈앞에 존재하는 생명을 어떻게든 구해내려는 절실함을 만들어낸다. 

복수를 위해 메스를 쥐었다고 하고 있지만, 메스를 쥔 그의 손은 어느 새 생명이 경각에 달린 환자를 위해 재게도 움직인다. 아무리 두드려도 병원비가 없다는 이유로, 부모가 없다는 이유로 아픈 동생을 위해 병원 문을 열어주지 않은 그 절망감을 경험했던 그로서는 차가운 세상에 대한 복수심과 아픈 생명에 대한 절실함을 동시에 갖게 된다. 

멀쩡한 생명에서 장기를 적출해 팔아먹는 범죄자들보다 더 무서운 이들은 선림병원 이사장인 손영식(장광) 같은 권력자다. 범죄자들의 장기밀매는 공공연한 범죄이지만, 손영식 같은 사람이 권력에 줄 대기 위해 힘없는 이들보다 힘 있는 이들에게 장기이식의 우선권을 주려 한다거나 혹은 심지어 그들을 위해 실려 온 환자가 차라리 죽기를 바라는 모습은 드러나지 않는 범죄라는 점에서 끔찍하다. 

“적어도 의사에게 생명에는 차별이 없다”고 말하는 고정훈(조재현) 같은 의사만이 이 돈과 권력으로 드러나지 않는 범죄가 벌어지는 현실에 희망이 된다. 세상에 복수하려 든 강인규의 메스를 생명을 위한 메스로 바꾸려 노력하는 그의 노력을 응원하고 지지하게 되는 건 그래서다. 

<크로스>는 생명을 두고 벌어지는 양 갈래의 서로 다른 선택의 상황들을 보여준다. 그래서 거기에는 끔찍한 자본 세상의 추악함이 담기지만, 동시에 기꺼이 자신의 장기를 기증해 누군가의 생명이 되려는 이들의 따뜻함 또한 그려진다. 그리고 그것은 강인규라는 인물을 양극단에서 잡아끄는 요소들이다. 그는 어떤 길을 선택할까. 강인규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크로스’를 그려보게 된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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