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나벨’, 불길한 상상이 만드는 공포가 더 무섭다

영화 <애나벨 : 인형의 주인>은 개봉되기 전부터 무섭다는 소문이 돌았다. 너무 무서워 팝콘이 날아다니니 굳이 팝콘을 사서 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농담 섞인 이야기가 있었고, 그 유명한 <컨저링> 시리즈 사상 가장 무서운 작품이라는 평론가의 평가도 있었다. 

사진출처: 영화<애나벨:인형의 주인>

악령 들린 인형 하나 나오는 게 뭐가 그리 무서울까 하는 의구심을 갖는 관객도 있고, 또 실제로 영화를 봤는데 생각만큼 무섭지 않아서 왜 그렇게 호들갑이었는가 하는 비판을 하는 관객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영화를 보며 “안 돼”, “가지마” 같은 말을 할 정도로 몰입하는 관객도 있다. 어째서 이런 다른 반응들이 나오게 된 걸까. 

<애나벨>은 사실 다 보고 나오면 내가 왜 그토록 긴장했던가가 놀랍게 느껴지는 공포영화다. 대부분의 공포 영화들이 실제적인 끔찍한 장면들을 보여줌으로써 어떤 충격을 가하지만, <애나벨>은 보여주기보다는 보여주기 전까지 기다려야 하는 그 침묵과 가려짐의 시간이 참을 수 없는 공포를 주는 영화다. 바로 그 장면과 장면 사이의 참고 기다리는 그 시간 동안 관객이 스스로 머릿속으로 떠올리기 마련인 불길한 상상. 그것이 <애나벨>이 공포를 만들어내는 힘의 원천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 영화가 말하려는 악이 어떻게 우리의 정신 속으로 깃드는가에 대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딸이 교통사고로 죽고 실의에 빠진 애나벨 인형을 만드는 장인 사무엘(안소리 라파글리아)과 그의 아내 에스더(미란다 오토). 그리고 12년 후 그들이 내준 집에 들어와 지내게 되면서 섬뜩한 상황을 마주하게 되는 소녀들. 애나벨 인형에 깃든 악령이 깨어나 소녀들의 영혼을 잠식해가는 그 과정이 주는 공포가 바로 이 영화의 주된 이야기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영화 속에서 어떤 끔찍한 공포 상황을 겪게 되고 그로인해 희생되는 건 다름 아닌 상처받아 약한 정신을 가진 이들이라는 점이다. 그들의 약한 정신 속에서 깃드는 불온한 상상은 악이 자라나게 되는 씨앗이 되고 그것이 그의 영혼을 잠식해간다는 것. 딸의 죽음을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집착하는 사무엘과 에스더가 그렇고,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해 같이 놀아주지 않는 보육원 친구, 언니들에게 원망의 마음을 갖는 재니스(탈리사 베이트먼)가 그렇다. 

즉 사무엘과 에스더 그리고 재니스에게 그 악령이 나타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깊은 상처로 인해 그들 안에서 만들어진 ‘불길하고 불온한 상상’이 그 악령을 스스로 찾아가게 했다는 것이다. 재니스가 그 악령을 처음 맞닥뜨리는 장면은 그래서 두려우면서도 동시에 그 힘을 통해 보복을 하려는 마음에 이끌리는 양가감정이 교차한다.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는 허수아비나, 그저 아이들 장난감일 수 있는 인형 그리고 장난감 총이나 그저 방치된 우물 같은 것들은 그래서 이 곳에 머무는 이들의 상상에 의해 공포의 존재로 깨어난다. 그리고 이런 체험은 고스란히 관객들에게도 반복된다. 관객 스스로 이미 벌어지지도 않는 상황을 상상하면서 영화를 보게 됨으로써 공포가 배가된다는 것. 

그래서 <애나벨>에 대한 평가는 보는 이들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유난히 많은 불길한 상상을 떠올린 이들이라면 그토록 무서울 수가 없는 영화지만, 공포영화가 너무 익숙해 그저 액면 그대로의 장면이 주는 공포를 기대했다면 조금 심심한 영화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렇게 잔인한 장면 없이도 소름끼치는 공포가 상상력만으로도 가능해질 수 있다는 걸 이 영화가 보여줬다는 건 인정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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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화제성 모두 잡은 ‘동상2’, 왜 잘 되나 했더니

일요일 집안 일 도와 달라는 아내와 좀 쉬고 싶은 남편. 그래도 관절이 안 좋은 아내를 위해 툴툴 대며 일어나 물걸레질을 하지만, 어딘지 돕는다기보다는 더 일거리만 만들어놓는 남편과 애써 잔소리를 꾹꾹 누르는 아내. 짐짓 스킨십을 시도했다가 괜스레 민망한 거부의 손길을 당하고 여름휴가 계획으로 낚시를 가자는 남편과 풀빌라가 있는 집으로 가자는 아내. 아마도 이런 서로 다른 남편과 아내의 생각이 부딪치는 이야기들을 우리는 그 많은 드라마와 콩트 코미디에서 봤을 게다. 하지만 SBS 예능 프로그램 <동상이몽2>는 같은 이야기라도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들이 설정이 아니라 실제 부부이고, 그 부부가 다름 아닌 이재명 시장 부부라는 점 때문이다. 

'동상이몽2(사진출처:SBS)'

지난 대선 당시 그 누구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이재명 시장이라는 점을 떠올려보면 <동상이몽2>가 보여주는 그의 모습은 그저 평범하기 그지없는 현실 남편 그대로다. 일터에서는 그 누구보다 남다른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그이지만 집안에서는 아내에게 구박받기도 하고 때론 구박받을 짓을 하기도 하는 그런 현실 남편. 그 모습이 남편들 입장에서는 200% 공감 가는 지점이다.

하지만 스튜디오에서 그의 부부생활을 같이 관찰하는 여성 출연자들은 이재명 시장의 행동 하나하나를 보며 아내 입장에서 질색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이 관찰카메라에 참여한 추자현과 이지애 아나운서는 이재명 시장이 한 행동에 “저러면 아내 입장에서는...”이라는 주석을 연실 달아 놓는다. 그러면 김구라가 마치 남편 입장을 대변이라도 하겠다는 듯 이재명 시장의 입장을 대변한다. 그저 현실 부부의 일상을 관찰하는 것이지만, 이런 남편과 아내의 입장을 끄집어내는 스튜디오에서의 설전은 의외로 흥미진진한 남녀 관점 토크의 맛을 낸다. 

이재명 시장 부부의 일상이 현실 부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면, 화제가 되고 있는 추자현과 우효광 부부의 삶은 여성 관찰자들에게 로망이 될 수 있을 만큼의 판타지로 다가온다. 일을 하는 남편의 촬영장을 찾기 위해 100인분의 닭튀김을 직접 만드는 추자현의 모습은 그저 아내의 내조라기보다는 그녀가 어떻게 중국에서 그토록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는가를 가늠하게 해준다. 물론 그렇게 만들어서 촬영장 스텝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추자현 옆에서 하트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밤에는 힘들었을 아내를 위해 발마사지를 해주는 남편 우효광에게서는 그가 어떻게 그녀의 사랑을 얻었는가를 확인하게 된다. 

우효광이 어떤 행동 하나를 할 때마다 스튜디오에서 그것을 관찰하는 남자 패널들은 질색을 하고 대신 여자 패널들은 일제히 로맨틱함에 빠져드는 그 상반된 반응은 그 자체로 웃음을 준다. 하지만 그것이 그저 웃음으로만 끝나는 건 아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남편의 입장과 아내의 입장으로서 같은 상황이라도 서로 다른 생각을 읽어내고 공감하게 된다. 

<동상이몽2>는 그런 점에서 보면 시즌1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면서 동시에 재미와 의미까지를 모두 담보하는 형식으로 돌아왔다. 시즌1은 일반인들이 출연한다는 데서 가질 수밖에 없는 리스크가 있었고, 그 관점의 차이도 어쩌면 편집의 차이로 나타난 인위성 같은 걸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하지만 시즌2는 그저 그들의 부부생활을 관찰하며,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를 남녀 관점으로 나누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동상이몽>이라는 이 프로그램의 취지를 자연스럽게 살려내고 있다. 

물론 이런 관찰카메라에서 가장 중요한 건 누구를 관찰하느냐는 점이다. 캐스팅이 사실상 절반 이상의 성패를 가늠하는 중요한 조건이 된다는 것. 그런 점에서 보면 이재명 시장 부부나 추자현과 우효광 부부 같은 캐스팅은 신의 한수라고 해도 될 법하다. 이들의 진솔하고 때론 로망을 주는 삶이 소소한 갈등이 가득한 일상 속에서도 저마다의 매력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러니 시청률과 화제성 모두 거머쥘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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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해' 김영철의 절규가 남다른 울림으로 다가온 이유

“왜 제게 벌을 안주십니까? 벌을 주세요 판사님. 죄를 짓지 않았을 때는 잡아서 그 독한 벌을 주시더니 지금 죄를 지었는데도 왜 제대로 벌을 안주십니까? 주세요. 판사님. 죽이지 않았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그 때는 안 믿어주시더니 이젠 제가 다 잘못했다는데도 왜? 왜 벌을 안주십니까?”

'아버지가 이상해(사진출처:KBS)'

KBS 주말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에서 결국 법정에 서게 된 변한수(김영철)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언도받았다. 타인의 이름으로 살아온 죄의 대가. 그 법정에서 판결을 들은 가족들은 그나마 안심하는 얼굴이었다. 정상참작이 되어 집행유예를 받음으로써 감옥에 들어가 실형을 사는 것은 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변한수는 왜 벌을 안주냐며 오열했다. 아마도 자신이 살아왔던 힘겨운 삶 전체가 그 판결로 인해 허망하게 느껴졌기 때문일 게다. 과실치사를 했다는 누명으로 유도 유망주로서의 꿈도 포기한 채 전과자의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가야 했던 그가 아닌가. 그래서 자신은 원하지 않았어도 가족을 위해 자신을 지우고 친구의 이름으로 살아와야 했던 삶이다.

가족을 위해 선택한 삶이지만 자신을 떳떳이 내세울 수 없는 그 삶이 얼마나 불안하고 가슴 졸이는 시간들이었을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그 가슴 졸이며 숨겨왔던 걸 다 드러내고 이제 벌을 받고 떳떳한 삶을 살겠다 마음먹은 그에게 이런 판결은 너무나 허무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가 이상해>라는 드라마가 그려낸 아버지상은 지나치게 자기희생을 당연시해온 인물이었다. 법정에 가서 판결을 받으면 혹 감옥에 갈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에 미리 가족들이 먹을 음식을 챙겨두는 그런 아버지. 배우 안중희(이준)의 친부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져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을 때조차도 자신은 괜찮다며 가족과 진짜 친아들처럼 대해온 안중희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그런 아버지. 

그래서 그 아버지는 어딘가 이상해 보이는 구석이 있었다. 보통의 아버지들과는 다른 지나칠 정도로 자기희생을 하는 그런 모습. 물론 그것은 지금의 우리네 현실에서 달라진 아버지들의 모습이 투영된 것일 게다. 한때는 가부장적 틀에서 자라났지만 이제는 그 틀을 벗어버리고 가족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소통하려는 아버지상.

<아버지가 이상해>는 거기에 아버지의 ‘원죄의식’이라는 구체적 사건을 담아뒀다. 과거 잘못된 선택을 했기 때문에 가족들 앞에서도 떳떳할 수 없었던 원죄의식. 그런데 법정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변한수의 절규를 들어보면 이상한 건 아버지가 아니라 세상이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저 열심히 살아온 것뿐이지만 세상의 잘못된 판결은 그의 삶을 뒤틀어지게 했다. 억울함과 미안함의 교차.

물론 변한수가 겪은 특수한 사건이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아버지들의 사정과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서적으로 아버지들이 갖는 어떤 ‘원죄의식’은 분명히 존재한다. 자신은 열심히 살았어도 어딘지 나아지지 않은 삶으로 가족들이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누구나 갖게 되는 그 미안함과 억울함의 양가감정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달라진 세상 앞에 아버지들은 어딘지 이상해졌다. 괜스레 가족에게 미안해지고 그래서 기꺼이 자기희생을 감수하면서도 때로는 억울하다. 하지만 그렇게 복잡한 감정이 교차하는 건 아버지만의 문제라기보다는 때론 노력해도 엇나가게 만드는 세상의 잘못된 판결 같은 것 때문은 아닐까. 변한수의 절규가 남다른 울림으로 느껴진 건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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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리네 민박’ 효리·지은·상순, 서로 힐링이 된다는 건 

JTBC 예능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에서 이효리와 이지은(아이유)이 새벽 요가를 함께 가는 길, 집착하는 게 무어냐는 이효리의 질문에 이지은은 의외의 답변을 한다. “평정심에 집착한다”는 것. 그녀는 자신이 “들떴다는 느낌이 스스로 들면 기분이 안좋다”고 했다. 평정심을 잃은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란다. 그러자 이효리는 거꾸로 “너무 슬펐다 너무 기뻤다 하는 것이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어쨌든 너나 나나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평정심에 집착하는 것이나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나 사실 마찬가지라는 것. 

'효리네 민박(사진출처:JTBC)'

성향은 완전히 반대지만 고민은 같다는 결론에 이른 두 사람은 자신들의 바람에 대해 털어놨다. 이지은은 그 감정 절제를 이제는 좀 놓고 “더 많이 웃고 많이 울고 싶다”고 했고, 이효리는 정반대로 “덜 웃고 덜 울고... 기복을 줄이고 싶다”고 했다. 고민을 나누는 자리, 이효리는 서로 정반대의 모습을 상상하며 깔깔 웃었다. 그러면서 “너랑 나랑 반대 에너지니까 같이 있으면 시너지 효과가 있겠다”며 좋아했다. 서로 조금씩 닮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려고 너랑 나랑 만났나 보다.” 이효리는 이지은과 고민을 나누면서 그들의 만남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했다. “나는 너를 많이 웃기고 울려줄 테니까 너는 나를 항상 Calm Down 시켜줘.” 이효리의 이야기는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의 부족함을 어떻게 채워주고 완성해 가는가에 대한 삶의 비의가 담겨 있었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이상순의 평정심에 대한 쪽으로 넘어갔다. 평정심이 없어 요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이효리를 늘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 이상순은 이해가 안 될 것이라는 것. 그러면서 이상순은 아마도 “의식의 요가”를 하고 있는 모양이라고 했다. 몸은 안 움직여도 항상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신혼 때를 떠올리며 이효리는 이상순이 너무 무덤덤하고 이벤트가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매일 매일이 이벤트였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이효리와 이지은이 서로 달라 상보적인 관계인 것처럼 이효리와 이상순 역시 그런 관계로서 서로에게 좋은 에너지를 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남한테 궁금한 게 없고,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이지 않고, 나는 효리한테만 잘 하면 되니까...” 이상순이 이지은과 장을 보러갈 때 그녀에게 했다는 이 말 속에는 어떻게 그가 평점심을 유지하는지가 들어있다.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에게 중요한 것들에 집중하는 것으로 그는 평온함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과 다르지만 에너지 넘치는 이효리가 그에게는 사랑스러움으로 느껴졌을 게다. 이지은이 이효리에게서 느끼는 ‘멋짐’의 정체가 그러하듯이.

사실 <효리네 민박>은 특별한 이벤트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저 만나고 서로 관계를 맺고 또 헤어지는 사람 사는 이야기이다. 그런데도 여기 있는 이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어떤 힐링의 느낌을 갖게 되는 건 왜일까. 그것은 우리가 각자 살아가면서는 관조적으로 바라볼 수 없는 삶의 비의들을 이들의 상보적인 관계가 자연스럽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효리와 이지은이 완전히 정반대의 성격을 보이고, 또 부부로서 서로 사랑한다는 것이 눈에 띄게 느껴지지만 이효리와 이상순 또한 다르다. 누가 낫고 누가 못 나고 없이 각자 넘치는 부분이 있는 반면 부족한 면들도 있다. 아마도 혼자였다면 그 부족함이 자신을 짓눌렀을 것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이들은 함께 함으로써 서로가 그 부족함을 채워주고 오히려 자신에게는 없지만 타인에게는 있는 그 과도함을 매력으로서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조금씩 닮아가고 닮기를 원한다. 

<효리네 민박>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그 집에 왔다가 돌아가며 잔상을 남긴다. 모두가 떠나갔을 때 그 빈자리에 여전히 그들의 흔적들이 남아 가슴에 어른거린다. 그것은 아마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들이 서로에게 결코 작지 않은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뜻이고, 그것이 우리의 삶을 차츰 충만하게 채워가고 있다는 뜻일 게다. 이효리와 이지은 그리고 이상순을 보기만 해도 어떤 힐링을 갖게 되는 건, 그네들의 서로를 채워주는 관계가 우리들이 사는 삶의 비의라는 걸 부지불식간에 느끼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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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녀’, 김선아는 왜 돈을 얻고도 허망해진 걸까

“박복자씨, 당신은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난 처음부터 그걸 알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나쁜 짓을 하면 행복할 수가 없는 거예요.” JTBC 금토드라마 <품위 있는 그녀>에서 우아진(김희선)은 박복자(김선아)에게 그렇게 말한다. 마침 박복자는 과거 호텔에서 우아진을 처음 봤을 때 그녀가 입었던 하얀 원피스를 자신도 만들어달라고 말하던 참이었다. 도대체 왜 박복자는 그 하얀 원피스에 집착하고, 우아진은 그런 그녀를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는 걸까.

'품위있는 그녀(사진출처: JTBC)'

화려한 장식이 들어간 색색의 원피스가 아닌 하얀 원피스를 입은 우아진. 아마도 박복자는 그런 우아진의 모습을 처음 접하며 거기서 우러나오는 ‘품위’를 자신도 갖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부모 없이 자라 버림받는 비천한 삶을 살아가는 자신과는 너무나 다른 그것. 하지만 도무지 자신을 가질 수 없을 것만 같은 가치. <품위 있는 그녀>가 그려내는 모든 사건의 시작이 바로 거기서부터였다면 박복자의 욕망이 그리 잘못된 것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게다. 그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인지상정이니 말이다. 

하지만 박복자는 그 품위를 얻을 수 있는 것이 돈이라고 오해했을 게다. 거기서부터 비뚤어진 욕망이 비롯된다. 안태동을 유혹하고 그의 진심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려 했다. 그래서 결국 그녀는 안태동의 재산을 모두 가로채지만 결과는 어땠을까. 그것이 그토록 그녀가 원했던 우아진에게서 보이는 그 품위를 얻게 했을까. 

부유층의 동태를 그들의 집에서 일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감청함으로써 파악하고 이를 통해 그들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으려 하는 풍숙정의 오풍숙(소희정)은 절대로 박복자가 그 세계에 들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제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그녀는 여전히 ‘하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박복자 스스로도 넘치는 돈을 가졌지만 자신이 본래 얻으려 했던 그 ‘품위’는 얻지 못했다는 걸 깨닫는다. 결국 그녀는 우아진을 찾아와 그녀처럼 자신도 만들어달라고 애원한다.

우아진은 처음부터 박복자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린다. 그것은 그녀가 처음 우아진을 만났을 때 칸딘스키와 마티스를 알아보고 예술에 대한 어떤 동경 같은 걸 읽어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저 돈에 대한 욕망과는 다른 개인적 성취나 성장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이내 돈에 대한 욕망으로 비뚤어지기 시작한다. 결국 우아진이 다시 박복자의 마음을 돌리는 순간에 칸딘스키와 마티스를 언급하는 대목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것은 애초에 박복자가 가졌던 본래의 마음으로 되돌리는 열쇠 역할을 하는 것이니까.

<품위 있는 그녀>는 첫 회에 박복자가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했다. 그런 장치를 만든 건 이 드라마가 그녀의 폭주 끝에 벌어진 살인사건이 있었고, 그 진범은 과연 누구일까 하는 궁금증을 계속 유지시키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이 장치가 가진 의미심장함은 ‘죽음’을 이 욕망에 대한 폭주 직전에 슬쩍 꺼내 보여줬다는 점이다. 

드라마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 우아진이 함께 하는 마음공부 모임에서는 저마다 유서를 써와 읽는 시간을 가진다. 결국 우리 모두는 죽는다는 것을 전제하고 바라보면 박복자가 가진 그 욕망의 허망함이 공감된다. 제 아무리 돈을 많이 얻었다고 해도 그것으로 삶의 ‘품위’가 얻어지는 건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삶의 품위란 죽음을 전제로 바라볼 때 그 삶이 얼마나 자신에게 진심어린 삶이었는가를 통해서만이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안태동 회장의 집은 그런 점에서 보면 욕망의 허위로 가득 채워진 곳이다. 그 곳에는 주인들도 혹은 일하는 사람들도 똑같이 그 욕망의 수레바퀴 안에서 휘둘린다. 박복자는 그 부유함이 삶의 품위를 가져다 줄 것이라 생각하고 그 세계 속으로 뛰어들지만 그것은 욕망의 수레바퀴에 휘둘리는 일일 뿐이라는 걸 엄청난 재산을 얻은 후에 돌아오는 허망함 속에서 깨닫는다. 우아진은 그 세계 속에서 그나마 자신을 지키며 살아오던 인물이지만 남편의 불륜을 알게 된 후 그런 삶이 그 속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탈출하는 인물이다. 결국 우아진은 홀로서고 그 누구와 비교되지 않는 자신만의 삶에 충만함을 느낌으로써 품위를 얻는다. 

<품위 있는 그녀>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건 이 안태동 회장의 집에서 벌어지는 욕망과 진정한 삶 사이의 긴장감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누구나 느끼는 갈등 상황이라는 점이다. 누구나 강남의 부유층들이 살아가는 삶을 막연히 동경하고 그래서 그렇게 살기 위해 돈을 벌려고 하지만, 그들의 실제 삶이 과연 동경할만한 것인가 그리고 그 품위라는 것이 돈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이 드라마는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그래서 막바지에 이른 <품위 있는 그녀>에서 궁금해지는 건 박복자를 누가 살해했는가 하는 그 의문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박복자가 그 세계 속으로 들어와 죽음에 이르기까지 느끼는 감정의 동요와 변화들이 어떠했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그 죽음의 끝에서 그녀는 과연 진정한 삶의 품위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될까. 그래서 그녀가 동경하던 우아진의 삶이 사실은 외부가 아닌 자신의 내면에 존재했다는 걸 알게 될까. 칸딘스키와 마티스를 동경하던 그 마음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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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넘어 감동까지, 최고의 위치서도 최선 다하는 잭 블랙

순간 잭 블랙이 한국 사람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긴 하지만 <무한도전> 출연자들과 언어나 문화의 장벽은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잭 블랙은 등장하자마자 1년 7개월 전 <무한도전> ‘예능학교 특집’에 출연했던 그 순간의 친밀함으로 다가왔다. 다 함께 발을 동동 굴리며 위로 뛰는 모습을 연출했고 누군가 어떤 동작이나 리액션을 요구하면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걸 열심히 해주었다. 언어 따위는 필요 없는 그의 친근함에 거리감은 사라졌고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주는 웃음은 그 이상의 감동까지 느끼게 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특히 춤과 한국어를 그대로 따라하는 능력은 <무한도전> 출연자들을 모두 놀라게 만들었다. 덩치에 걸맞지 않게 날렵하고 귀여운 모습을 보여준 잭 블랙은, <무한도전> 출연자들의 춤을 복사 수준으로 척척 따라했고, “고마해라 마이 묵었나 아이가” 같은 대사를 진짜 한국 사람처럼 따라했다. 그러니 언어나 외모, 문화적 차이 같은 것들은 순식간에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지난 <무한도전> 출연 당시에도 화제가 됐었던 ‘고요 속의 열창’ 게임을 통해 잭 블랙은 놀라운 표현력을 보여줬다. 소리를 그대로 복사 수준으로 따라 부르면서 그 노래가 가진 특징들을 정확히 표현해냈다. 그건 그저 ‘노래 따라하기’의 남다른 능력이라기보다는 연기자로서의 표현능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마치 진짜 임재범이 된 듯 완벽하게 불러내는 ‘고해’는 그가 얼마나 재능 있고 또한 노력하는 연기자인가를 잘 보여줬다.

사실 이번 <무한도전>이 잭 블랙을 만나게 된 건, 정준하 밀어주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미드 출연’ 미션을 수행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사전에 출연자들 각자 셀프 테이프를 준비해 할리우드에 보낸 <무한도전>은 오디션을 보기 위해 직접 LA로 날아갔던 것. 잭 블랙 출연은 그 오디션을 사전에 경험하게 해주기 위한 깜짝 ‘몰래카메라’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잭 블랙이 워낙 열심히 <무한도전> 출연자들과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여줘, 그것 자체가 ‘잭 블랙 특집’처럼 느껴지게 했다. 

중요한 것은 잭 블랙이 보여준 이러한 프로정신이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는 전 세계가 이미 인정하는 최고의 위치에 서 있는 배우지만 <무한도전>에서는 그저 친근한 ‘잭 형’의 모습이었다. 순식간에 모든 걸 내려놓고 <무한도전> 출연자들과 어우러졌고 우스꽝스런 동작과 표정연기, 말 따라 하기 같은 것들을 끊임없이 내놓으며 웃음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 열정과 노력에 <무한도전> 출연자들도 감복했다. 박명수는 “정말 또 많은 걸 배워간다”고 했고, 유재석은 “정말 우리의 선생님이다”라고 말했다. 

한때 <무한도전>은 ‘대한민국 평균 이하’라는 캐릭터를 내세워 주어지는 모든 것들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봅슬레이부터 프로레슬링 같은 실제로 도전하기 어려운 미션들까지 해내는 그 프로정신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래서 시작점은 실제로 ‘대한민국 평균 이하’였지만 11년을 달려오며 어느새 ‘최고의 위치’에 서게 됐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건 바로 이 ‘최고의 위치’에 선 이후에도 멈추지 않는 프로정신이 아닐까. 

사실 스테판 커리가 나왔던 지난 주 미션 이전까지만 해도 <무한도전>은 어딘가 너무 느슨해진 느낌이 있었다. 몇 회간 새로운 기획의 참신함을 찾기가 쉽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시청자들의 반응도 그리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지난 주 스테판 커리가 등장해 <무한도전> 멤버들과 함께 한 농구경기는 충분한 재미와 의미를 남겨주었다. 그리고 이어진 ‘LALA랜드 특집’ 역시 잭 블랙의 출연과 더불어 이들의 새로운 도전이 남달랐던 한 회가 아니었나 싶다. 

무엇보다 잭 블랙이 보여준 ‘최고의 위치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무한도전> 출연자들에게도 어떤 자극제가 되어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잃을 게 없는 ‘평균 이하’에서 최선을 다하는 건 어쩌면 쉬운 일일 수 있다. 오히려 모든 걸 다 가진 최고의 위치에서도 과거와 다를 바 없이 최선을 다할 때, 그 프로정신은 단지 웃음 그 이상의 가치를 전할 수 있다는 걸 잭 블랙은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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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텀싱어2’, 세상은 넓고 숨은 실력자들은 넘쳐난다

1월에 종영한 <팬텀싱어>는 겨우 반 년 만에 시즌2로 돌아왔다. 사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시즌 기간으로는 짧게 느껴지는 공백기다. 약 7개월여 만에 방송이 되는 것이지만 사전 녹화를 생각해보면 6개월도 안 되는 기간 만에 돌아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조금 이른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법하다. 

'팬텀싱어(사진출처:JTBC)'

하지만 제작발표회에서 김형중 PD가 밝힌 것처럼, JTBC 예능 프로그램 <팬텀싱어>가 이렇게 빨리 시즌2로 돌아온 데는 그만큼 충분한 실력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걸 단 첫 회 만에 확인할 수 있다. 김주택 같은 이태리에서 날아온 이미 세계적인 러브콜을 받는 바리톤이 출연하는가 하면, 독일에서 건너온 베이스 바리톤 김동현 같은 인물도 있었다. 또 조민규 같은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인 보이스를 가진 테너도 있었고, 연기력까지 겸비해 무대장악력으로 눈길을 끈 바리톤 권성준도 있었다. 

흥미로운 건 이들의 다양한 출신과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사연들이다. 사실 조민규 같은 희소성 있는 목소리는 시청자들의 귀를 사로잡기에 충분했지만 오페라에서는 너무 날렵한 음색 탓에 혹평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여기에 대해 윤종신은 <팬텀싱어>는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관객에게 감동을 주기만 하면 된다며 그 목소리를 칭찬했다. 이런 점은 <팬텀싱어>가 왜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미를 드러내줬다. 기존의 틀에서는 어울릴 수 없어도 크로스오버를 통한 새로운 틀을 추구하는 <팬텀싱어>에서는 그것이 색다른 신선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

또한 김주택 같은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 바리톤이 <팬텀싱어>에 출연하게 된 사연도 흥미로웠다. 그 역시 많은 고민을 하고 내린 결정이라는 <팬텀싱어> 출연에는 여러모로 오페라라는 대중들에게는 조금은 멀리 떨어진 장르를 보다 친숙하게 알리고픈 마음이 느껴졌다. 제 아무리 좋은 오페라라고 해도 관객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그의 말은 그가 부담스런 오디션에 참여한 중요한 이유였다. 

조민규나 김주택, 김동현 같은 제대로 성악을 배운 이들의 무대는 자못 제대로 배우지 않은 아마추어들에게는 굉장한 부담감으로 작용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팬텀싱어2>에 출연한 아마추어들은 프로들마저 놀라게 할 정도의 실력을 보여주는 반전을 만들었다. 그 대표적 인물이 시즌1의 ‘성공한 덕후’라고 자칭한 최진호와 평범한 회사원인 강형호였다. 

최진호는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슈베르트의 결코 쉽지 않은 곡을 너무나 편안하게 소화해내 심사위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고, 강형호는 <오페라의 유령>의 ‘더 팬텀 오브 디 오페라’(The pantom of the opera)를 남녀 파트를 넘나들며 불러 듣는 이들을 소름 돋게 만들었다. 특히 강형호는 때론 부드러운 여성적인 보이스로 때론 강렬한 남성적인 보이스를 모두 소화해내 중창단에서 다양한 색깔이 가능한 인물로 급부상했다.

즉 시즌2는 시즌1의 성공으로 인해 더 강력한 출연자들이 모여든 것으로 보인다. 해외에서 넘어온 세계적인 실력파가 있다면 그들조차 감동받는 발굴되지 않은 원석의 아마추어들도 있었고, 독특한 목소리 때문에 각 분야에서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크로스 오버를 추구하는 <팬텀싱어>에는 최적화된 인물도 있었다. 결국 <팬텀싱어> 같은 음악 프로그램의 핵심은 다양한 출연자들에게서 나온다는 점을 두고 보면 시즌2가 시즌1보다 훨씬 더 기대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음악적으로도 시즌1이 주로 이태리 음악에 치중되었다면 이번 시즌2는 첫 방송에서부터 러시아 음악은 물론이고 독일 가곡 같은 또 다른 매력을 드러내는 레퍼토리들이 등장했다. 출연자들도 다채롭고 레퍼토리 또한 다양해진 <팬텀싱어2>. 왜 서둘러 시즌2로 돌아왔는가가 이해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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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세끼’, 산양유 하나로 이런 훈훈한 정경이라니

왜 하필 바다목장이었을까. tvN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에서 나영석 PD는 바다목장을 굳이 마련한 이유에 대해 “낚시에는 영 소질이 없어서”라고 했다. 하지만 그건 아마도 반은 진담 반은 농담이었을 게다. 낚시라는 소재가 방송에서는 물론 들인 시간에 비해 나오는 분량은 적을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낚는다는 그 사실이 주는 즐거움이 있고, 그 낚은 걸로 삼시 세끼를 챙겨먹는 이 프로그램이 또 잘 어울린다는 건 이미 첫 번째 <삼시세끼> 어촌편에서 차승원과 유해진이 보여준 바 있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그러니 낚시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어떤 새로운 그림을 원했다는 게 더 맞을 게다. 저 멀리 바다가 보이는 목장에서 시청자들에게도 익숙한 잭슨 패밀리가 여유롭게 풀을 뜯어먹는 풍경. 그리고 그 젖을 짜는 특이한 체험만으로도 ‘어촌편’의 남다른 그림이 되어줄 테니까.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삼시세끼> 바다목장편은 여기에 룰을 하나 더 추가했다. 그들이 짠 산양유를 제작진에게 파는 것이 아니라 마을 정자에 마련된 잭슨살롱 냉장고에 넣어두는 것. 득량도 마을 어르신들을 위한 프로그램 제작진들의 고마움의 표시인 셈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렇게 마을 분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드는 정자에 냉장고 하나 마련해 놓고 매일 짠 산양유를 제공해드리는 것뿐인데, 그것 하나가 가져오는 파급효과는 의외로 크다는 점이다. 자연스럽게 산양유를 냉장고에 넣기 위해 가는 길에 마을 분들과 출연자들은 교감하게 된다. 게스트로 온 한지민은 자전거를 타기 위해 내려가서는 어르신들에게 산양유 드셔봤냐며 맛은 어떻냐고 묻는다. 그 짧은 장면 속에서 어르신들의 훈훈한 정 같은 것들이 느껴진다. 

급기야 옆집 아저씨는 별거 아니라는 듯 비닐봉지로 둘둘 싼 걸 냉장고에 넣어두며 “산양유 값”이란다. 시골 마을에서 이처럼 음식을 주고받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산양유를 맛보신 어르신들이 그냥 넘어갈 리가 만무다. 마을 분들은 김치도 넣어주고 잡은 게나 소라도 넣어준다. 출연자들에게 이런 의외의 득템은 이번 <삼시세끼>의 색다른 행복감이 될 수밖에 없다. 마을 분들에게는 대단한 것이 아닐지 몰라도 받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큰 무언가를 받은 느낌. 그건 바로 정이다. 

그렇게 받은 게나 소라가 <삼시세끼>의 밥상 위로 올라온다. 한지민이 마음을 졸여가며 정성을 다해 만든 해신탕에 마을 분이 준 게와 소라가 한 자리를 차지한다. 시청자들로서는 그런 밥상의 풍경 자체가 따뜻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다음번에는 또 어떤 분이 산양유 값이라며 무엇을 넣어주실 지가 궁금해진다. 이 정자에 마련된 ‘잭슨살롱’은 그저 냉장고가 아니라 마을 분들과 외지에서 온 출연자들, 제작진들 사이에 오고가는 마음이 나눠지는 공간이 된다. 

도시에서 살다보면 음식을 먹는 일이 너무 편의적이고 기능적으로 되기 마련이다. 그만큼 바쁘고 모든 음식들이 돈을 주고 사고파는 어떤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돈으로 환산되는 세계에서 인간적인 따뜻함이나 마음 같은 걸 느끼기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물건과 물건의 교환이 아니고(물건과 돈의 교환은 더더욱 아닌) 마음과 마음의 교감이 되는 잭슨 살롱이라는 공간이 주는 로망은 도시인들에게는 의외로 크게 다가온다. 

그렇게 음식을 주고받으면서 나눠진 마음 때문일까. 한지민이 화투 치는 동네 어르신 옆에서 살갑게 말을 붙이고, 그녀가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보며 마치 물가에 내놓은 자식을 보는 듯 걱정 한 가득, 대견함 한 가득을 드러내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작은 섬이지만 득량도의 이 동네에 드리워지는 한 가족 같은 포근함. 모든 게 돈으로 환산되는 도시의 삶에서는 도무지 느끼기 어려운 그런 것이 그 안에는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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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경찰’이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공권력

수사의 세 가지 방법을 묻는 시험에서 공부 잘 하는 카이스트 출신 희열(강하늘)은 정답인 ‘피해자 중심 수사, 물품 중심 수사, 현장 중심 수사’라고 적어 넣는다. 반면 공부보다는 몸으로 부딪치는 성격의 기준(박서준)은 고민 끝에 엉뚱하게도 ‘열정, 집념 그리고 진심’이라고 답을 적어낸다. 아마도 영화 <청년경찰>이 하려는 이야기는 바로 이 부분에 다 들어 있을 것이다. 시험이 원하는 정답은 아니지만 기준이 적은 열정과 집념 그리고 진심이야말로 진정한 공권력 수행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덕목이라는 것.

사진출처:영화<청년경찰>

경찰대생이 실제 사건을 수사하고 해결하는 이야기는 우리가 아주 오래 전 봤던 할리우드 코미디영화 <폴리스 아카데미>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청년경찰>은 그 영화와는 정서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청년경찰>은 그 안에 우리네 현실적 상황과 정서들을 콕콕 박아 넣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의외로 웃음의 강도가 강하고, 학생이라 어설프지만 포기하지 않고 수사를 해나가는 이 청춘들의 좌충우돌에 대한 정서적 지지도 크다. 

<청년경찰>은 사실상 그 캐릭터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찰 이야기를 담으면서 굳이 부여한 ‘청년’이라는 캐릭터에는 그 자체로 이 영화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당연한 것이지만 청년들의 어설픔은 오히려 영화 속에서 ‘순수함’으로 표현되고, 당장 성공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응당 경찰로서 해야 할 일을 하는 ‘정직함’으로 그려진다. 그것은 거꾸로 말하면 그렇지 못한 기성 경찰들에 대한 엄중한 비판이다. 

결국 사건을 해결했지만 학생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라며 징계를 주려는 경찰 수뇌부들이 바로 그 기성 경찰들을 표상한다면, 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양교수(성동일)는 과거에는 자신들도 그렇게 열정에 넘쳤던 적이 있다는 말로 스스로 반성하는 어른이다. 넘쳐나는 사건들 속에서 우선순위를 따져가며 해왔던 수사가 결국은 피해자들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적인 오류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이 청년경찰들의 열정, 집념, 진심이 들어간 수사는 그 어설픔에 웃음이 터지면서도 그 진지함에 뭉클한 면들이 묻어난다. 

<청년경찰>이 흥미로운 건 이런 거창할 수 있는 이야기를 아주 일상적인 수준에서 농담처럼 잘 배치해놓았다는 점이다. 훈련을 받으며 다리를 다친 희열을 업고 내려오다 정해진 시간을 초과해버리는 기준의 이야기는 사실은 고기를 먹게 해주겠다는 말에 한 행동으로 처리되며 웃음을 주지만 그 농담 속에 도움이 필요한 이를 위해 기꺼이 손을 내미는 것이 경찰의 본분이라는 메시지를 담아 넣는다. 결국 길거리에서 우연히 한 소녀가 납치되는 걸 목격한 그들이 그걸 외면하지 않고 수사에 뛰어드는 이야기는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 앞부분에 보여진 에피소드와의 연결고리를 가지며 공감을 만들어낸다. 

<청년경찰>은 영화에서 캐릭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현실정서를 반영하는 잘 축조된 캐릭터가 주는 매력만으로도 영화는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최근 드라마 <쌈마이웨이>로 기분 좋은 청춘의 면면을 드러냈던 박서준과 영화 <동주>로 역시 청춘의 초상을 그려냈던 강하늘의 손발이 척척 맞는 콤비 코미디가 주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코미디의 이면에 담겨진 의미 역시 작지 않다는 점에서 <청년경찰>은 부담 없이 보는 여름철 오락영화로서의 모든 구색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게다. 

특히 <청년경찰>이 그려내는 청춘의 긍정성은 충분히 박수 받을 만한 일이다. 그간 청춘의 쉽지 않은 현실을 담은 작품들은 많았다. 하지만 그 작품들 속에서 청춘들의 고충이 주로 부각됐다면, <청년경찰>은 오히려 그 청춘이 가진 열정, 집념, 진심 같은 기분 좋은 가능성들을 영화의 에너지로 끌고 간다는 점에서 여타의 작품들과는 조금 다르다. 현실에 적응하기보다는 바로 그 부적응상태가 주는 긍정성. 이 영화가 주는 또 다른 통쾌한 구석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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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사남’ 최민수, ‘모래시계’ 인생 캐릭터 경신할 판

정말 대단한 연기라고 말할 수밖에 없겠다. MBC 수목드라마 <죽어야 사는 남자>의 사이드 파드 알리 백작(본명은 장달구) 역할을 연기하는 최민수 이야기다. 우리에게 아직까지도 <모래시계> “나 떨고 있냐?”라는 대사로 기억되는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인생 캐릭터를 경신할 판이다. 

'죽어야 사는 남자(사진출처:MBC)'

이번 작품이 최민수의 연기 인생에 남다르다고 여겨지는 건 코믹한 과장 연기로 하나의 캐릭터를 완성해냈다는 점 때문이다. 마치 짐 캐리의 연기를 떠올리게 하는 그의 백작 연기는 의도적으로 과잉되어 있다. 마치 만화의 한 대목에서 나온 듯한 그런 비현실적인 캐릭터지만, 그것이 이 작품이 갖고 있는 판타지, 주제의식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1970년대 중동에 근로자로 가서 일하다 성공한 억만장자 로맨티스트. 자신에게 딸이 있다며 공주와의 결혼을 거부하는 그에게 왕은 그 딸을 데려오라고 명하고, 만일 데려오지 못하면 그의 모든 것들을 빼앗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그래서 어마어마한 재력으로 못할게 없는 이 억만장자가 한국으로 들어와 딸을 찾고 그 관계를 회복해가는 이야기가 이 드라마의 줄거리다. 

보통의 드라마라면 이런 키다리 아저씨를 가진 딸 이지영A(강예원)가 당연히 주인공 역할을 할 것이다. 그래서 처음 <죽어야 사는 남자>가 방영됐을 때 이지영A가 자신의 지위를 회복해가는 그 과정이 드라마의 주요 내용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실제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이지영A라기보다는 백작이라는 것이 명백해진다. 물론 거기에는 최민수가 구축해내고 있는 놀라운 연기력이 작용한 덕분이기도 하지만.

초반 백작이 엉뚱하게도 이지영A의 남편인 강호림(신성록)의 내연녀인 이지영B(이소연)를 딸로 착각하고 그녀 역시 거짓말을 하면서 고구마 전개가 이어졌지만, 이제 백작이 진짜 딸이 누구인지를 알게 된 상황부터는 반전이 이뤄지고 있다. 그가 자신의 아버지인 줄 모르는 이지영A에게 무심한 척 챙겨주는 백작의 부정이 훈훈한 풍경들을 연출하고 있는 것. 고아원에서 딸을 만난 백작이 그녀의 하이힐 굽이 부러진 걸 보고 자신의 신발을 벗어주는 장면에는 우습기만 했던 그의 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묻어난다.

하지만 백작은 이런 딸에 대한 마음을 드러내면서도 그 고유의 캐릭터는 변함이 없다. 최민수는 여전히 과장된 표정 연기를 통해 자못 진지해진 순간에도 빵 터지게 만드는 상황을 연출한다. 진지한 연기를 줄곧 해왔던 최민수에게서 이런 코믹 캐릭터가 탄생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완전히 그 캐릭터에 빙의되어 몰입하지 않게 되면 어색하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이 드라마의 제목 <죽어야 사는 남자>가 지칭하는 남자는 다름 아닌 백작이 아닐까 싶다. 이미 딸에게는 죽은 것으로 되어 있는 백작은 자신이 가진 재력으로 딸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하지만 그것이 그녀의 진정한 행복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지점이 이 드라마가 내세우는 주제의식일 것 같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녀의 꿈인 드라마 작가의 길을 계속 걷게 하는 것이 백작의 딸이 되는 것보다 그녀에게는 더 큰 행복일 수 있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백작은 딸을 위해서 ‘죽어야 사는 남자’가 아닐까.

어쨌든 <죽어야 사는 남자>는, 이런 흥미로운 캐릭터를 구축하고 그 힘으로 드라마의 동력을 만들어낸 최민수라는 배우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다. 결코 쉽게 해낼 수 없는 연기를 통해 드라마에 흥미를 만들어내고 또 그것을 드라마의 주제의식과도 연결시켰다는 점에서 최민수의 백작 캐릭터는 당분간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모래시계>의 인생 캐릭터를 경신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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