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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콘'의 풍자개그, 그 현실공감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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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대학등록금이 무슨 우리 아빠 혈압이야?" 이 한 마디면 충분했다. 마치 마당놀이에서 광대들이 세상사를 그 도마 위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요리를 할 때 십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그 경험. 장동혁은 그렇게 '동혁이형'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지자체의 호화청사에 대해 "거기가 무슨 베르사이유 궁전이야?"라고 비판하고, 고층 시청사에 대해 "수익을 낼 거라는데 시청이 무슨 복덕방이야?"하고 꼬집었을 때는 국민의 세금 받아 정작 국민을 위한 일은 좀체 하지 않는 그 답답한 행태에 대한 신랄함에 속이 다 후련해졌다.

물론 이것은 개그다. 우리는 '동혁이형'의 샤우팅을 보면서 억울함에 부들부들 떨거나, 그 말에 선동 당하지는 않는다. 대신 우리는 말 그대로 빵 터진다. 그것은 이 개그가 웃음의 장치를 충분히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기본은 촌철살인의 적절한 비유에서 나온다. '대학등록금'이 '아빠 혈압'과 만날 때, '호화청사'가 '베르사이유 궁전'이 될 때, '고층 시청사'가 '복덕방'이 될 때, 명절 고속도로 정체 속에서 하루 종일 운전해야 하는 귀향객이 "하루 종일 운전하는 이수근"이 될 때, 웃음은 빵 터진다.

게다가 이렇게 세상에 쓴 소리를 던지는 존재가 깔깔이에 교련복을 차려 입은 후줄근한 모습의 낮은 인생이기 때문에, 웃음이 터진다. 즉 정치인들이나 경제인들 같은 엘리트들이 하지 않는 이야기를 전혀 그런 얘기하고는 상관없을 것만 같은 불만투성이 청년이 '저 나름대로' 논리를 갖고 마구 쏟아내기 때문에 웃음이 나온다. 게다가 이 쓴 소리는 '동혁이형'이 스스로 말하듯, "애정이 있어서 하는 말"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 그저 분노를 폭발시키기 위한 헐뜯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억눌렸던 감정이 터지며 그 분노가 웃음으로 전화된다는 점에서 '동혁이형'은 그 말을 입증하는 셈이다.

'동혁이형'이 부조리한 세상을 직설어법으로 풍자해낸다면, '남성인권보장위원회(이하 남보원)'와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은 그 형식이 갖는 간접어법을 사용한다. '남보원'은 남성들이 자신들의 인권을 주장하는 내용을 갖지만 이것만으로 이 개그는 웃음을 주지 못한다. 여기에 시위처럼 붙여진 과장된 형식이 붙으면서 웃음을 만들어낸다. 문제제기-구호-사연설명-상황반전. 이것이 '남보원'의 간단한 형식이지만 이 형식은 많은 현실의 부분들을 공감으로 끌어안는다. 즉 남성들의 공감대는 물론이고 시위조차 하나의 통상적인 것이 되어버린 정치권에 대한 풍자까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한편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으로 잘 알려진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은 취객의 목소리라는 희극의 단골소재를 통해 알 수 없는 그 더러운 세상을 풍자해낸다.

방송개혁시민연대(방개혁)는 '동혁이형'이나 '남보원' 같은 풍자개그가 선동을 함으로써 '개그를 개그로 볼 수 없게 만든다'고 하지만, 바로 그 풍자 속에 담겨진 현실 공감이 있기 때문에 이 풍자개그는 개그가 된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는 풍자개그는 '개그콘서트'의 오랜 전통이기도 하다. 특유의 어눌한 말투로 세상에 대한 하소연을 담아낸 안상태 기자가 그렇고, 잘못된 상흔에 대해 꼬집는 황현희 PD가 그렇다. 또 '분장실의 강 선생님' 같은 코너에서 늘 당하면서도 "행복한 줄 알아야 하는" 신참들은 88만원 세대들의 고충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이 현실공감은 '개그콘서트'가 꾸준히 대중들과 호흡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방개혁은 심지어 이 개그를 보고 있으면 "국민이 천민(賤民) 혹은 폭민(暴民)화"된다고까지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풍자개그를 개그로 보지 못하고 선동으로 보는 그 과잉된 시선 때문이다. 개그가 선동으로 매도되는 세상. 아마도 '동혁이형'이 불만을 개그에 담아 풍자한 것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바로 이런 세상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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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승장구', 아주 특별한 시청자 참여 토크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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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승장구'의 시작과 끝은 MC가 아니라 방청객이 열고 닫는다. 이것은 어찌 보면 그저 간단한 오프닝과 클로징의 변형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토크쇼의 주인이 호스트나 게스트가 아니라 바로 시청자라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지금껏 토크쇼들은 게스트의 숨겨진 이야기를 끄집어내려 독한 질문도 불사하는 호스트와, 그 질문을 피해가며 자신에게 유리한 이야기를 얘기하려 하는 게스트의 전쟁터와 같았다. 문제는 이 양자가 모두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호스트의 리드가 강하면 자칫 독설과 막말로 이어지는 부작용을 낳았고, 게스트에 대한 배려가 강하면 자칫 홍보쇼로 전락하곤 했다. 결과는 시청자의 소외로 이어진다. 보고 싶지 않은 폭로성 이야기나 홍보성 이야기들을 억지로 듣고 있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승승장구'가 들고 온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은 호스트와 게스트 사이에 어떤 균형점을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우리 빨리 물어' 같은 코너는 먼저 출연자에 대해 알고 싶은 질문을 직접 시청자들에게 받아 정해진 시간 내에 질문을 대신 빨리 읽어주는 형식을 갖고 있다. 이른바 '승승돌'로 불리는 태연과 우영이 김소연이 출연했을 때, "아이리스 촬영 시 이병헌의 사탕키스를 본인도 해보고 싶은 적 있냐"는 질문이나 "솔직히 김태희보다 이쁘다고 생각해본 적 있냐" 같은 질문을 빠른 속도로 읽는 것. 물론 질문에 대해 하나하나 대답을 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시청자가 출연자에 대해 어떤 점을 궁금해 하는 지를 알게 해주는 형식이다.

'승승장구'의 MC진들이 다양한 세대와 성별, 출신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점은 이러한 다양한 질문들을 소화해낼 수 있는 장점을 가진다. 윤현준 PD는 "한두 명으로 국한된 MC가 다양한 수위의 질문을 하는 것은 부담을 준다"고 말한다. '승승장구'에는 질문에도 그 성격에 따라 각각 MC들이 역할분담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최화정은 연륜에 맞게 조금 수위가 높은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때론 깊은 공감을 표해 출연자의 마음을 편안하게도 해준다. 김신영은 개그맨으로서 상황을 복기하거나 증폭시켜 웃음을 만들어내고, 우영과 태연은 소년 소녀 같은 풋풋함을 유지하며 그 세대의 궁금증을 대변해준다.

김승우는 메인 MC로서 전체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자신을 한껏 낮추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특히 우영과 툭탁대면서 만들어진 '꽁승우'라는 별명은 토크쇼를 부드럽게 해주면서 세대를 넘어서는 토크 콤비의 탄생마저 예감케 한다. 이처럼 다양한 세대와 성별, 출신으로 진용을 갖춘 이유는 결국 시청자들이 원하는 다양한 수위의 질문을 대변해주기 위함이다. 무엇보다 MC들이 라디오 같은 매체를 통해서 편안하면서도 할 말은 다하는 '토크의 구력'을 갈고 닦아왔다는 점은 '승승장구'라는 토크쇼 특유의 편안함을 만들어낸다.

'승승장구'의 토크 중간에 갑자기 게스트의 지인을 출연시키는 '몰래온 손님'이란 코너 역시 게스트에 대한 시청자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한 또 다른 장치다. 호스트와 게스트만의 주고받는 대화가 갖는 차원에서 한 걸음 옆으로 나가, 지인을 통해 게스트의 이야기를 듣는다. 김소연의 '몰래온 손님'으로 바다가 출연해 김소연이 갖고 있는 숨겨진 엉뚱한 매력을 경험담으로 말하는 식이다. 이 '몰래온 손님'의 장점은 굳이 연예인이 아닌 코디나 매니저 같은 주변인물들도 출연해 식상함을 탈피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승승장구'의 특별한 코너인 '아주 특별한 약속-우리 지금 만나' 역시 시청자와 직접적으로 소통하고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려는 제작진의 노력이 돋보이는 코너다. '스타가 ○○하면 나는 △△한다'는 이 형식은 스타의 미션을 제안하고 거기서 채택된 미션에 시청자도 참여미션을 제시해 특정 장소에서 만나 그 미션을 수행하는 코너다. 광화문 한 복판에서 김소연이 태권도를 하고, 그 옆에서 시청자 중 채택된 몇 명이 까나리 액젓에 시리얼을 말아 먹거나, '아이리스'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식이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의외의 해프닝은 그 자체로도 재미있지만, 무엇보다 그것을 모두 시청자와 함께 한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

'승승장구'가 특별한 이유는 이처럼 시청자와의 참여를 위해 다양한 장치들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물론 그것이 완전히 새로운 장치들은 아니다. 이미 '상상플러스'가 초기 버전에서는 이른바 댓글을 통해 시청자의 참여를 유도한 적이 있었고, '반갑다 친구야'가 의외의 지인을 토크쇼에 초대하는 형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승승장구'는 이런 기존 장치들을 가져와 자기들만의 색깔로 녹여내고 있다. 이것은 '승승장구'라는 밥상이 가진 특징이다. 어떤 토크쇼는 원하지 않는 밥숟갈을 억지로 시청자의 입에 들이밀기도 하고, 어떤 토크쇼는 강하기만 한 맛으로 시청자를 중독시키려 한다. 반면 '승승장구'는 시청자들의 입맛을 향해 다양한 상차림을 내는 것으로 오래 먹어도 물리지 않는 밥상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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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승승장구 다행히 박중훈쇼와는 많이 달라 보인다

    Tracked from 노천카페에서 상상을 즐기며  삭제

     1...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박중훈쇼는 생각할수록 참 안타까운 프로그램이다. 평소 빼어난 박중훈의 입담대로라면 분명히 성공하고도 남을 프로그램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박중훈의 신중하지 못했던 사전 인터뷰가 방영 전부터 괜한 안티를 불러 모았다는 생각이다. 그냥 기획 의도에 충실하겠다라고만 했으면 되었을 것을 무례한 토크쇼니 어쩌니 해서 가뜩이나 먹잇감에 굶주려 있던 인터넷 언론의 배만 불려 주는 험한 상황을 초래해 초반부터 희생되고 만 희대의..

    2010/03/03 13:28
  2. 패떴2+승승장구, 2PM+소녀시대가 대세긴 대세인가 보다(택연 우영+윤아 태연)

    Tracked from 노천카페에서 상상을 즐기며  삭제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셀 수 없이 많은 남녀 아이돌 그룹들이 각각 맹활약을 하고는 있지만 그중에서도 각기 2PM과 소녀시대가 발군은 발군인가 보다. 그런데 갑자기 뜬금없이 드는 생각 하나 요즘은 왜 혼성 그룹이 안 나올까. 오히려 예전엔 꽤 많았다. 지금 바로 생각나는 그룹만 해도 룰라 와 투투도 있고 얼마전 까지 쿨도 활동을 했다. 이젠 왠지 혼성 그룹도 한번 보고 싶다. 만약 윤아 태연 택연 우영이 한 그룹에서 활동을 한다면...? 1... 패밀..

    2010/03/03 13:28

'우결'이 배우보다 가수를 선호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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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결'(사진출처:MBC)

'우리 결혼했어요(이하 우결)'는 가상결혼을 소재로 한다. 물론 가상이라고 해도 사람인 이상 실제 감정이 완전히 숨겨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도 분명한 건 가상이라는 것. 그러니 이 예능 프로그램에는 기묘한 줄타기가 생긴다. 가상과 실제 사이의 아슬아슬한 지점을 조심스럽게 밟아나간다는 점이 이 프로그램이 갖는 재미의 근간이다. 완전히 사실일 수는 없지만, 그 실험 같은 설정의 틀에 들어가면 드러나기 마련인 인간적인 면모나 숨겨진 속내 가 살짝 보일 때. 그리고 그 리얼함 위에 판타지적인 설정이 잘 어울릴 때. 시청자는 재미를 느끼게 된다.

조권과 가인은 바로 이 이율배반적인 양자를 잘 만족시키는 커플이다. 그들은 영어학원을 다니는 미션 속에서도 마치 진짜 연인처럼 행동한다. 가인에게 남성다운 면을 보이고 싶어 탄탄한 몸을 살짝 보여주려는 조권의 행동이나, 그걸 보고 화들짝 좋아하는 가인의 행동이 그렇다. 영어학원에 가는 것이 두려워 조권의 뒤에 달싹 붙어 따라가는 가인의 행동이나 같은 반에서 공부를 하며 다른 여자를 경계하는 가인의 모습도 그렇다. 특히 서로 겉으로는 툭탁대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속으로는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이 드러날 때는 순간 이것이 가상결혼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다.

이것은 가상과 실제가 잘 어울려 상승효과를 만들어낸 경우다. 즉 가상이기에 설정을 통해 판타지를 극대화할 수 있고, 동시에 그 속에서의 행동이 리얼하기 때문에 이 가상은 실제 같은 힘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때론 이것은 정반대의 효과를 만들기도 한다. 그 안에 들어와 있는 인물들의 리얼함이 잘 드러나지 않을 때, 즉 진정성이 전해지지 않을 때, 가상은 가식으로 바뀐다. 차라리 드라마라면 드라마려니 하면서 감정이입을 하겠지만, 적어도 반응에 있어서 리얼을 표방한 이런 프로그램에서 가식이 느껴지면 보기가 어려워진다.

조권-가인 커플과는 상반되게 이선호와 황우슬혜 커플에게서 어떤 공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커플 패션 화보 촬영에서 지나친 스킨십과 대화로 문제가 지목된 것은 그 선정성 때문만이 아니다. 아마도 제작진은 그 과감함이 자연스러움으로 여겨졌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거리낌 없는 자연스러움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어울리는 것이다. '우결' 같은 가상과 실제가 혼재된 프로그램 속에서 이 너무나 빨리 이루어진 자연스러움을 자칫 연기로서 보일 수 있다.

부산으로 여행을 떠나서 보여준 모습 역시 지나친 감이 있다. 계속 해서 뽀뽀를 요구하는 이선호의 모습은 비호감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납득도 잘 가지 않는 것들이다. 게다가 그것을 결국 받아주고 인터뷰를 통해 "진심이 보였다"고 말하는 황우슬혜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게 된 것은 그 주인공들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지나치게 한 부분에 집중해서 드러낸 제작진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우결'의 대부분의 출연자가 가수라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사실 배우들은 이 프로그램 같은 드라마적인 속성을 가진 리얼 버라이어티쇼에는 기본적인 난점을 갖고 있다. 그것은 그들의 본업이 연기를 하는 직업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배우들은 설정에 대한 몰입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나치게 능숙한 모습과 자연스러운 모습은 자칫 '우결'의 리얼리티를 해칠 수 있다. 만남에 있어 어딘지 어색한 구석을 보여주는 것이 오히려 더 리얼하다는 얘기다. 물론 이것은 배우에 대한 편견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편견, 즉 배우는 어떤 상황에서도 연기를 할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리얼리티에 어떤 장벽을 만든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허구에서의 리얼함은 연기를 잘 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지만,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의 리얼함은 연기를 못하는 데서(혹은 못한다고 생각되는 데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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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지는 방송환경, 아나운서도 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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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무 아나운서(사진출처:KBS)

뉴스의 시그널송과 함께 등장한 앵커. 앵커로서의 권위는커녕 심지어 싼티마저 나보이는데, 거기에 부응이라도 하듯 한 바퀴 턴을 하고는 오프닝 멘트를 던진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가장 궁금한 건강정보를 깔끔하게 정리해서 5분간 전해드리는 비타5분의 전현무 앵커입니다. 뉴스 못해본 아나운서가 전해드리는 알짜배기 건강뉴스 비타5분 건강뉴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트레이드마크처럼 되어버린 동작, 몸을 날려 데스크 위에 털썩 앉는데 이건 또 웬 일? 거짓말처럼 데스크가 반 토막으로 부서져 버린다. 100% 실제상황. 그러나 뉴스 프로그램이라면 엄청난 방송사고일 이 상황은 오히려 의외의 즐거움을 주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비타민'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비타5분'이라는 코너를 진행하는 전현무 아나운서가 보여준 해프닝의 한 장면이다.

전현무 아나운서의 이 '비타5분'이라는 코너는 실로 독특하다. 5분이라는 짧은 시간 속에 말 그대로 '알짜배기 정보'를 담아야 하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를 압축적으로 전달하면서도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하는 인상적인 방식이 필요하다. 숙면의 방법을 전달하면서 코고리(코에 고리를 끼워 코골이를 예방해주는 기구)를 설명하기 위해 전현무 아나운서는 짧은 상황극을 보여준다. 즉 코를 골다가 코고리를 끼우는 순간 코를 골지 않는 모습을 연출한 것. 그 과장된 동작은 예능처럼 웃음을 주지만 코고리가 어떻게 사용되는 것인지를 정확히 전달해준다.

이것은 '비타민'이라는 프로그램이 가진 성격을 극대화해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은 과거라면 아마도 시사교양 프로그램으로 분류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능으로 분류된 이 프로그램은 정보에 즐거움을 더해 전해주는 형식을 보여주었다. 즉 인포테인먼트 시대에 정보 프로그램들이 걸어갈 길을 예시해 보여준 것이다. 즉 정보 프로그램이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은 이제 과거처럼 정확성이나 신뢰성에 머물지 않는다. 정보가 쏟아져 나와 도무지 주목할 수 없는 이 시대는 무엇을 전달하는 것만큼 어떻게 전달하는가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펀(fun)을 추구하는 경향이 생겼다. '자체발광' 같은 프로그램은 하나의 리얼 버라이어티쇼 형식을 정보와 연결시켰다. 한편 예능 프로그램은 그저 웃음만이 아닌 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지역의 특산물을 소개하면서 리얼 버라이어티쇼 형식을 취하는 '괜찮아U'나, 아예 정보 자체를 즐거움의 소재로 삼은 '스펀지'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사실 최근 시사교양 프로그램과 정보를 다루는 예능 프로그램은 구분이 어려워졌다. '신동엽의 300'이나 '위기탈출 넘버원'은 그 형식이 비슷해 보이지만 전자는 교양이고 후자는 예능으로 분류된다. '비타민'이 예능 프로그램이고, '자체발광'이 교양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은 분류표를 봐야 인식될 수 있을 정도다.

한때는 아나테이너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아나운서의 예능 외유가 하나의 트렌드인 적이 있지만 그 상황은 어느덧 저물어버렸고 아나운서들은 다시 본업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제 아나운서들은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시사교양 프로그램과 예능 프로그램의 경계가 희미해지게 된 것. 최근에는 그것이 예능인지 교양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 그런 하이브리드된 프로그램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아나운서들은 어떻게 해야할까. 과거처럼 정확한 정보 전달에만 집중해야 할까. 아니면 추세에 맞게 즐거운 진행을 연출해야 할까.

분명한 것은 정보가 즐거움을 추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 시대에 아나운서가 엄격한 신뢰성의 틀 안에만 안주하는 것은 어딘지 부족한 인상을 준다. 정확한 정보만큼 중요한 것이 즐거운 정보가 된 세상이다. 즐거운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 아낌없이 망가져주는 아나운서 전현무는 어쩌면 이렇게 달라져가고 있는 방송환경을 징후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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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동이 강마에가 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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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심장'(사진출처:SBS)

‘강심장’이 처음 기획 될 때만 해도 관계자들은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하고 의문을 표했다고 한다. 게스트만 스무 명이라면 섭외하는 것도 문제겠지만 그들을 한 자리에 앉혀 놓고 토크쇼를 진행한다는 게 만만찮은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현실로도 드러났다. 초기 ‘강심장’은 이른바 ‘병풍 게스트’로 논란이 일어났다. 아무리 바쁘게 카메라가 움직이고 이야기를 이쪽저쪽으로 토스한다고 해도 그 많은 인원을 모두 비춰낸다는 건 실로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츰 ‘강심장’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병렬적으로 저마다의 주제를 하나씩 피켓에 적어놓고 순서에 따라 얘기하는 방식으로는 ‘병풍 게스트’는 피할 수 없는 한계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기에 ‘강심장’은 ‘스타킹’식의 ‘조연 시스템’을 도입한다. 즉 한 명이 주연(?)으로서 자기의 이야기를 할 때, 주변에서 몇몇이 조연으로서 그것을 받쳐주는 형식이다.

이것은 ‘스타킹’에서는 일반인이 출연할 때 그들을 중심에 세워두고 연예인들이 조연역할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스타킹’에서는 그 조연역할이 주로 몸개그에 가까운 것인 반면, ‘강심장’은 토크를 통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 주연을 받쳐주는 ‘조연시스템’을 운용하는 MC, 강호동이다. ‘스타킹’에서 그는 일반인을 주연으로 세우기 위해 무대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다해 보여준다. 무릎을 꿇거나 바닥에 드러눕는 것은 보통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러다 보니 강호동의 솔선수범(?)을 보는 게스트로 출연한 다른 연예인들도 적극적으로 리액션에 가담할 수밖에 없다. ‘스타킹’은 사실상 ‘리액션의 예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거기에는 이러한 일반인을 주연으로 세워두고 강호동의 진두지휘에 따라 조연역할을 자처하는 연예인들이 만들어내는 시스템이 자리하고 있다. 한편 ‘강심장’은 기본적으로 토크쇼이기 때문에 ‘스타킹’처럼 몸으로 보여주는 리액션보다 좀 더 복잡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강호동은 마에스트로 같은 강력한 토크의 지휘자 역할을 자처한다. ‘강심장’에는 다양한 톤의 목소리(?)가 존재한다. 즉 김영철 같은 개인기로 똘똘 뭉쳐 있는 목소리가 있는 반면, 김효진처럼 이승기를 추종하는 뒷배(?)를 갖고 강호동에게 호통치는 목소리도 있다. 정주리처럼 부담스러울 정도로 무조건 들이대는 목소리도 있고, 데니안처럼 옛 아이돌로서 지금의 아이돌과의 비교점을 세워주는 목소리도 있다. 물론 강호동 옆에 자리한 이승기는 마치 오케스트라 협연에서 지휘자 옆에 서는 메인 악기 연주자 같은 듣기만 해도 기분좋은 목소리를 낸다.

이들은 반고정된 출연자들인데, 새로 들어온 게스트들의 목소리를 하나의 합주로 만들어내는 역할을 해낸다. 강호동은 게스트의 이야기가 조금 재미없다 싶으면 확실하게 웃음을 보장하는 김영철 같은 개그맨에게 바톤을 넘기고 잠깐 한숨을 돌리고 나서 다시 게스트에게로 돌아온다. 그러면 이야기가 좀 더 매끄러워지기 때문이다. 게스트의 이야기가 좀 밋밋하다 싶으면 ‘야심만만’ 시절에 했던 것처럼 슬쩍 슬쩍 넘겨짚기로 게스트의 숨겨진 비밀을 캐내기도 하는 데, 그것이 좀 부담스러운 아이템이라면 자신이 하지 않고 좀 더 편안한 질문자(?)를 내세운다. 과거에 붐은 바로 이 역할을 하는 목소리였다. 이렇게 하면 수위가 좀 높은 질문도 질문자의 캐릭터로 인해 부드럽게 넘어가게 된다.

자신이 좀 오버했다 싶으면 김효진의 일침을 허용하고, 때로는 바른생활 청년 같은 이승기에게 자신을 내어줘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이승기는 박상혁 PD의 말대로 “미소가 좋은 청년”이다. 그 기분 좋은 리액션 한 방이면 조금 썰렁해진 분위기도 금세 일소된다. 물론 이러한 다양한 소리들의 조합은 어느 정도의 가이드 라인으로서의 대본이 역할을 하게 마련이지만, 순간순간 치고 빠지는 토크의 조화는 MC인 강호동이 만들어간다. 박상혁 PD는 “강호동의 진행을 보면서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며 게스트의 토크 중간 중간에 카메라 밖에서 손짓 발짓으로 출연자들의 리액션을 요구하는 강호동의 진두지휘를 보는 건 흔한 일이라고 말한다.

버라이어티 쇼가 집단 체제화 되면서 그 많은 인원들의 행동이나 말을 조화롭게 만들어내는 역할은 이제 MC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 면에서 ‘스타킹’에서는 일반인을 상대로, ‘강심장’에서는 연예인을 상대로 거기에 맞는 ‘리액션의 예능’을 선보이는 강호동이 이 시대의 대표적인 MC로 부상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제 그는 그 범주를 넓혀, 예능이라는 오케스트라를 진두지휘하는 강마에가 되어가고 있다. 그가 메인MC로 자리한 버라이어티 쇼가 하나의 오케스트라 같은 느낌을 주는 건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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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놀이 문화, 세태를 반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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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의 좋은 예 나쁜 예(사진출처:실타래)

안경을 벗은 유재석의 그나마 멋지게 스타일이 살아있는 얼굴 사진과 쳐다보기 심히 민망한 얼굴 사진이 나란히 세워지고 그 밑에 포복절도 촌철살인의 캡션이 붙는다. '생얼의 그나마 봐줄만한 예'와 '얼굴에 못으로 안경을 고정하고 싶은 예'. 연예대상을 수상하는 진지한 얼굴의 유재석과 '패밀리가 떴다'에서 굴욕을 당하는 유재석의 모습을 세워두고 '예능 신의 위엄이 넘치는 예'와 '예능신의 위엄 따위 개나 줘버린 예'라는 설명이 붙는다.

이것은 최근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유재석의 좋은 예 나쁜 예'라는 네티즌이 만들어낸 콘텐츠다. 이른바 '좋은 예 나쁜 예'라고 불리는 이 콘텐츠는 이미 2PM, 2AM, 빅뱅, 샤이니, 슈퍼주니어 등등 아이돌을 중심으로 만들어져 하나의 인터넷 놀이 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 놀이는 이제 아이돌을 넘어서 점차 그 분야를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유재석의 좋은 예 나쁜 예'에 이어 나온 '무한도전의 좋은 예 나쁜 예'는 이 놀이가 그 대상을 넓혀가고 있다는 증거다.

이 놀이의 콘셉트는 간단하면서도 강력하다. 비교되는 사진을 병치하고 캡션을 다는 것이다. 먼저 좋은 예, 즉 멋진 예가 보여지고 다음에 나쁜 예, 즉 망가진 예를 보여줌으로써 그 비교점이 가져오는 웃음을 유발한다. 콘셉트는 단순하지만 그 대상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놀이라는 점에서 팬덤 문화의 확장으로도 볼 수 있다. 한 연예인의 지금껏 해온 활동을 담은 영상들을 캡처하고 분석(?)하는 작업은 그 연예인에 대한 꾸준한 연구(?)가 없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흥미로운 건, 이 놀이를 통해 네티즌들의 성향이 읽혀진다는 점이다. 이 놀이는 과거 외부의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던 데서 이제는 적극적으로 만들고 자기 것화 하려는 성향을 보여준 UCC의 성격을 그대로 가진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활동은 누군가에 의해 영상으로 기록되기 마련인데, 그 기록을 그저 바라보는 게 아니라 거기에 대한 나름의 단평을 다는 식이다.

그 단평이 과거의 기준이던 '옳고 그름'이 아니라, 현재의 기준이 되고 있는 '좋고 나쁨'으로 나타나는 것도 흥미롭다. 호불호는 개인적인 취향을 담기 마련인데, 그렇게 개인화된 취향을 공통의 주제를 통해 공감하고 싶어하는 네티즌들의 성향이 그 속에는 숨겨져 있다. 물론 팬 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갖지만, 연예인은 누구나 쉽게 접근이 가능하고, 놀이의 재료 즉 영상물이 많은 데다, 그 호불호 또한 분명하기 때문에 이 놀이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인터넷 놀이가 갖는 '개인적인 취향에 대한 공감'이라는 측면은 이른바 '서열놀이'라고 불리는 놀이에서도 발견된다. 이 놀이는 주로 아이돌 그룹이나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멤버들 같은 서열이 가능한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데, 특정한 기준을 내세워 각각의 서열을 제시하는 것이다. 2PM을 예로 들면, 대중인지도에서는 닉쿤이 서열 1위지만 팬덤 내 인기에서는 우영이 1위이고, 언어능력에서는 4개 국어를 하는 닉쿤이 1위이지만, 한국어 구사능력에서는 택연이 1위인 식이다. 즉 기준을 뭘로 정하느냐에 따라 서열이 달라지는 이 놀이방식은 은연 중에 획일적으로 구획되곤 하는 기성세대의 등수문화를 뒤집는다. 즉 이런 면에서는 꼴찌라도 이런 면에서는 1등이라는 식이다.

물론 놀이는 즐겁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 놀이는 그 매체적 속성 때문에 일정한 공감의 형식을 취하게 된다. 바로 이 부분에서 현 네티즌들이 갖고 있는 성향의 일단을 발견할 수 있다. 거기에는 자신들이 가진 취향을 타인과 공감하려는 강한 욕망과 함께 다양한 취향에 대한 인정을 요구하는 모습이 발견된다. 즐거운 놀이를 통한 공감에의 희구. 그 강력한 소통의 욕구가 이 놀이를 뜨겁게 만드는 이유다.
(사진출처 = 실타래(sealta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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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효리씨 이번 컴백 김국종 보란듯이 꼭 성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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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라도 오해하시는 분들이 계실까봐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이효리와 김종국 두사람의 경쟁을 유도하는 글이 전혀 아닙니다. 김종국님의 컴백도 잘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이 글은 단순히 패밀리가 떴다에서 보여준 이효리와 김국종의 아리까리한 러브 스토리(?)를 바탕으로 제가 좋아하는 말도 안되는 상상의 나라를 추가한 겁니다.^^ 이효리님과 김종국님 그리고 팬분들께 너그러운 아량을 구합니다. 이효리는 패밀리가 떴다의 영원한 안방마님이며 국민 남매..

    2010/02/12 08:36
  2. 유재석 없으면 다큐가 되는 무도, 유반장의 힘!

    Tracked from 노천카페에서 상상을 즐기며  삭제

      1... 짐승남이니 짐승 레이서니 남자의 향기가 난다느니 유재석도 남자라느니 유마허라느니 심지어는 섹시해 보인다라는 말까지 포함하여 엄청난 찬사를 들었던 그 폭풍같은 레이싱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오늘만 해도 여러 군데서 서너번이나 돌려 볼 수 있었다. 굳이 내가 녹화해 놓은 비디오 테입을 돌려 보기할 필요가 없어 너무 편하다. 아마도 수많은 사람들의 얼어 있던 동토와 같은 마음에 활활 타오르는 뜨거운 장작불같은 열기가 전해졌나 보다. 그렇게..

    2010/02/12 08:37
  3. 태터앤미디어의 생각

    Tracked from tattermedia's me2DAY  삭제

    이 놀이의 콘셉트는 간단하면서도 강력하다. 비교되는 사진을 병치하고 캡션을 다는 것이다. 먼저 좋은 예, 즉 멋진 예가 보여지고 다음에 나쁜 예, 즉 망가진 예를 보여줌으로써 그 비교점이 가져오는 웃음을 유발한다. <'좋은 예, 나쁜 예' 놀이가 폭발적인 이유>

    2010/02/12 10:36

'스타킹', 아주 일상적이면서도 특별한 쇼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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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킹'(사진출처:SBS)

1979년 MBC 인기 오락프로그램이었던 '묘기 대행진'. 인상 좋은 아저씨가 모자에서 연실 비둘기를 꺼냈다. 그 때마다 브라운관 앞에 앉은 시청자들은 탄성을 질렀다. 바로 1세대 마술사인 알렉산더 리, 이흥선 마술사다. 이 프로그램에는 송재철 관장이라는 초인간(?) 스타도 있었다. 그는 이륙하는 헬기를 80여 분 동안이나 멈추게 하고, 160톤짜리 보잉737기를 무려 38미터나 끌었다. 자기 배 위로 자동차를 지나가게 한다거나 입으로 자동차 끌기, 쌀 한 가마니 메고 달걀 위 달리기는 오히려 쉬워 보였다. 무엇보다 이 스타의 매력은 가끔 격파를 실패하기도 하는 그 인간적인 데 있었다. 볼거리만으로도 충분했던 시절, 이주일이 무대 위에만 오르면 강박처럼 "뭔가 보여주겠습니다"하고 말하던 시절, 이른바 쇼의 시대였다.

하지만 이흥선 마술사와 송재철 관장의 시대는 조금씩 저물었다. '묘기대행진' 같은 프로그램들이 묘기를 보여주기 시작하면서 실제 서커스단과 곡예단은 조금씩 설 자리를 잃었다. 동춘 서커스단이 해체 위기에까지 갔던 것은 TV라는 매체가 매일같이 쏟아내는 엄청난 볼거리 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특별한 볼거리가 너무나 많아지면서 쇼의 시대도 저물었다. 차돌을 깨고, 입으로 차를 끄는 차력이나, 비둘기를 모자에서 꺼내는 마술은 더 이상 대중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무엇보다 카메라가 일상 속으로 뛰어드는 마당에 '한정된 공간에서 무언가를 보여주는' 전통적인 쇼라는 형식은 힘을 잃었다.

이제 남은 건 보여주기 보다는 대화의 장으로서의 토크쇼와, 무대 밖으로 나가 현장의 리얼함을 스토리 형식으로 담아내는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전부다. 이런 시대, 말 그대로 '무언가를 보여주는' 쇼가 어떤 길을 가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스타킹'이다. 물론 '스타킹'의 시작은 'UCC의 프로그램화'에서 비롯됐다. 특별한 UCC의 주인공들이 무대 위로 초대되어 자신들만의 장기를 보여주고, 출연진으로 앉아있는 스타들이 이들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보낸다는 아이디어는, 인터넷이라는 매체에 의해 "이젠 나도 스타"를 외치게 된 달라진 세태를 제대로 포착해냈다.

하지만 과도한 경쟁의식에 의한 무리한 볼거리에 대한 집착은 이 프로그램의 훌륭한 초심을 흐려놓았다. 몇몇 아이템들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올려진 것은 과도한 의욕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계속 식상하지 않은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해내야 한다는 압박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논란의 논란을 거쳐 '스타킹'은 제작진까지 교체되는 수난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이 난관을 넘어서는 지점에서 '스타킹'의 달라진 면모가 드러난다. 그것은 한 때 우리 눈을 매료시켰지만 늘 반복적인 아이템과 비슷한 연출로 인해 사라져갔던, '무언가 보여주는 전통적인 쇼'의 현재적인 실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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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킹'(사진출처:SBS)

달라진 '스타킹'에는 과거 이흥선 마술사가 대중들의 입을 다물어지지 않게 했던 것처럼, 신세대 마술사 최현우가 출연해 출연진들이 가까이서 보는 와중에 동전을 둘로도 만들고 사라지게도 하는 마술을 선보인다. 그런데 과거와는 다른 특별함이 있다. 그것은 최현우 마술사 스스로 어떤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자신의 마술에도 어떤 이야기를 끼워 넣는다는 점이다. 똑같은 마술이라도 묵묵히 보여주기만 하던 시대에서, 이제 이 신세대 마술사는 출연진들과 대화를 나누며 마술을 선보인다. 때론 애프터 스쿨의 가희나 티아라의 효민이 마술을 보조하기 위해 무대 위에 올라서기도 하는데, 그녀들의 섹시한 이미지는 마술의 매력을 부가시킨다.

'특별한 볼거리'에 대한 범주의 확장 또한 특기할만한 점이다. 초창기 '스타킹'은 춤이라던가 노래, 웃음, 외모처럼 흔히 '무대 위에서의 특별함'을 소재로 한정지은 점이 있다. 이러한 외관에 집중하는 소재는 다름 아닌 '스타킹'이 비판의 불씨를 가지게 되었던 원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스타킹'은 '일상 속에서의 특별함'으로 그 소재를 넓혔다. 약수터에서 돌을 손바닥으로 쳐 건강을 유지한다는 약수터 건강킹 봉화산 때려맨이나, 불편한 몸으로 그저 아들을 위해 엄마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출연했다는 '앉은 꽃 예숙씨', 그리고 일을 하다가 스티로폼 쌓기의 달인이 된, '평택 이반장' 같은 인물들은 바로 그 일상 속에서 발견한 특별함을 갖고 '스타킹'에 나온 인물들이다.

이러한 '일상 속의 특별함'이 쇼로서 가능한 것은 그것이 갖는 독특한 이야기성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나 '생활의 달인'이 다큐의 형식으로 그 독특한 이야기성을 통해 프로그램화되는 것처럼, '스타킹' 역시 이들의 이야기를 쇼의 형식으로 프로그램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기획 아이템으로 '스타킹'이 신년과 함께 내놓은 '숀 리의 다이어트 킹' 같은 코너는 이러한 스토리텔링을 갖게 된 '스타킹'으로 인해 가능해진 것이다. 한정된 기간 동안 살을 빼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 이 일상적이면서도 특별한 아이템은 작금의 쇼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소소할 수 있는 일상이 이야기를 갖고 특별해질 수 있는 데는 '스타킹'만의 독특한 시스템 때문이다. 평범할 수 있는 일반인이 올라올 때, 스타들이 기꺼이 그를 보조해주는 조연역할을 자처하는 것은 '스타킹'만의 장점이었다. 하지만 달라진 '스타킹'은 그 영역 역시 넓혀가고 있다. 어린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배드민턴을 잘 치는 '리틀 이용대 추찬'이 나오자 실제 배드민턴 스타 이용대가 출연하고, 대한민국 인재상을 받은 '고딩 파바로티 김호중'이 출연했을 때 국립오페라단 소프라노인 이지은이 출연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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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킹'(사진출처:SBS)

게다가 이를 담아내는 제작진들의 연출에 대한 노력이 이 볼거리를 더욱 빛나게 해준다. 통상적인 카메라가 스튜디오에서 고정된 위치에 머무르고 있는 반면, '스타킹'의 카메라는 끊임없이 무대를 휘젓고 다닌다. 스튜디오에서 ENG카메라가 유독 많이 활용되는 것은 그 현장감을 좀 더 생생하게 잡아내려는 제작진의 의도다. 심지어 스튜디오의 공간적 한계도 어떤 순간에는 무너져버린다. 스튜디오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스튜디오 천장에 닿을 듯한 스티로폼 16개를 들고 방청객석의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을 굳이 찍는 장면은 스튜디오가 갖는 닫힌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제작진의 노력이 엿보인다.

이것은 쇼의 진화, 혹은 생존을 위한 안간힘이다. 일반인과 스타 사이의 벽을 깨고, 비전문가와 전문가의 벽을 깨며, 그저 볼거리에 머물지 않고 그 속에서 적극적으로 스토리를 끄집어내고, 스튜디오의 한계를 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그들에게 남다른 진정성이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스타킹'은 이렇게 이 시대의 쇼에 대한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 쇼는 늘 그래왔듯이 여전히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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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그룹의 무대 밖 스토리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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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시대(사진출처:SM엔터테인먼트)

연기자는 연기하고, 개그맨은 웃기고, 가수는 노래하고... 이젠 옛말이다. 연기자는 웃기기도 하고 개그맨은 연기를 하기고 하며, 가수는 웃기기도, 연기하기도 하는 세상이다. 예전에 가수들이 연기를 하면 ‘외도’라고 했지만, 이제는 다양한 ‘활동’이라고 한다.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달라졌고, 그들의 타 분야에 대한 도전의 자세 자체도 달라졌다. 무대 바깥에서 인기를 얻는 가수는 무대 위에서도 뜰 가능성이 높아졌다. ‘외도’가 ‘활동’이 된 상황. 무엇이 이런 변화를 만들었을까.

작년 소녀시대가 ‘gee'라는 노래를 들고 나와 말 그대로 이 땅의 아저씨들을 ‘ㅎㄷㄷ’하게 만든 데는 지금까지의 아이돌 그룹의 무대 전략과는 다른 무대 바깥의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었다. 소녀시대는 이미 일일드라마를 통해 중장년층에게 얼굴을 알린 윤아가 있었고, 라디오를 통해 그 털털함을 보여주었던 태연이 있었다. 사실 젊은 세대라면 모르지만 아홉 명이나 되는 소녀시대 멤버들이 펼치는 무대 위에서의 군무를, 나이든 세대들이 하나하나 친근감을 가지며 바라보긴 어려운 일이다.

만일 윤아나 태연 같은 이미 타 장르를 통해 친숙한 인물들이 없었다면 소녀시대의 군무는 그저 한 덩어리의 춤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 한 덩어리로 보이던 군무 속에서 자신이 아는 몇몇 인물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저 애가 그 애였어?”하며 어린 딸과 쇼 프로그램을 보며 나누는 대화 속에는 묘한 공감대가 형성된다. 이후 소녀시대는 본격적으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무대 위에서 덩어리져 보이던 이미지를 각각의 개성 넘치는 인물들로 쪼개놓기 시작했다.

‘우리 결혼했어요’나 ‘일밤’, ‘무한도전’ 같은 버라이어티쇼에 출연하면서 수영은 개그맨 뺨치는 예능감을 보여주었고, 제시카는 얼음공주 같은 쿨한 섹시함을 과시했으며, 효연의 춤, 티파니의 가창력이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유리와 써니는 ‘청춘불패’에 정착하면서 무대 위의 섹시함과 귀여움과는 전혀 다른 수수함과 털털함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타 분야에서 자신들의 개성을 뽐내던 소녀시대가 ‘오!(Oh!)'를 들고 무대 위에 오르자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 하나의 덩어리로만 보이던 무대 위의 소녀시대에게서 각각의 멤버들의 이야기들이 읽히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소녀시대의 활동이 폭발적인 것은 이 일 년 간 그녀들이 일궈 논 이야기 농사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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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AM(사진출처:JYP엔터테인먼트)

이 아이돌 그룹들의 ‘이야기 농사 전략(?)’은 소녀시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2AM을 예로 들어보면, 과거 조권이나 임슬옹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하기 전까지 이 그룹에 대한 대중적인 인지도는 낮았다. 2PM과 비교해보면 2AM은 거의 존재감이 없을 정도였다. 그것은 음악 장르 자체가 달랐기 때문이다. 2PM은 파워풀한 음악과 퍼포먼스로 강렬한 무대를 연출했고, 심지어 짐승남이라는 이미지를 대중들에게까지 어필했다. 하지만 2AM의 발라드는 그 힘이 약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발라드가 갖는 어딘지 가라앉는 분위기는 이들의 이미지까지 가라앉혔다. 하지만 조권의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깨방정은 이 이미지를 전복시킨다. 그러자 ‘죽어도 못 보내’로 다시 무대 위에 선 2AM에서 우리는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절절하고 진지하게 부르는 그 모습은 과거나 마찬가지지만,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얻어진 유쾌하고 친근한 이미지를 갖고 무대 위에 오른 그들에게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그 깨방정을 부리던 친구들이 진지한 구석도 있네”하는 긍정적 이미지다. 즉 늘 진지해보여 어딘지 무거웠던 2AM의 이미지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각자 멤버들의 이야기 농사를 통해 어떤 균형감각을 갖게 되었다. 2PM이 무대 위에서의 이야기를 구성해냈다면, 2AM은 무대 밖에서의 이야기를 갖고 무대 위로 올라 성공한 경우라고 말할 수 있다.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도발적인 무대 퍼포먼스에서 이제 우리는 ‘우리 결혼했어요’의 가인이 보여준 톡톡 튀면서도 어딘지 수줍은 소녀의 얼굴을 발견하게 되고, ‘청춘불패’의 나르샤가 보여준 따뜻한 마음을 읽게 된다. ‘Bo Peep Bo Peep’을 부르며 엉덩이를 흔들어대는 티아라의 무대에서 우리는 ‘청춘불패’의 통편녀 효민, ‘공부의 신’에서 “서방”을 부르는 지연, 그리고 ‘천하무적 야구단’의 치어리더 소연을 보게 된다.

이것은 아이돌 그룹의 스토리 전략이다. 뮤직비디오가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그 비디오 한 편이 어떤 스토리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이제 장르를 넘나드는 활동이 보편적인 것이 된 상황에서 가수들의 스토리는 무대나 뮤직비디오라는 테두리를 넘어선다. 이제 가수들은 저마다 무대 밖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일궈내고, 그것을 무대 위로 가져온다. 소녀시대의 ‘오!(Oh!)'가 과거 어느 때보다 친숙하면서도 폭발력을 갖는 이유에는 소녀시대가 그간 일궈온 바로 이 무대 밖의 이야기가 풍성하기 때문이다. 이제 가수들은 외도(?), 아니 무대 밖에서 활동할수록 뜨는 시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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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에 패자는 없다

네모난 세상/명랑TV 2010/01/30 21:42 Posted by 더키앙

'무한도전'의 패자 없는 경기가 말해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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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사진출처:MBC)

도전하는 그들에게 패자가 있을까. '무한도전'이 복싱 특집편에서 다룬 WBC 세계 챔피언 최현미 선수와 도전자 쓰바사 선수의 경기에 패자는 없었다. 세계 챔피언이지만 스폰서도 없고 심지어 다음 경기를 잡지 못해 챔피언 벨트를 내줘야 할 위기(6개월 안에 방어전을 치르지 않으면 반납한다고 한다)에 있는 최현미 선수. 그리고 역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밝은 모습으로 꿋꿋이 복싱을 하고 있는 쓰바사 선수. '무한도전'은 두 선수의 명승부를 보여주었지만 승패의 결과는 보여주지 않았다. 그것이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경기를 통해 이미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최선의 경기를 다한 선수들은 이미 모두 승자였다.

이 패자 없는 경기를 보여준 '무한도전'은 승패에만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던 권투 경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전해주었다. 일본까지 날아간 정형돈과 정준하는 쓰바사 선수 역시 최현미 선수만큼 속 깊은 사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프로그램은 모두 힘겨운 상황에서 도전하고 있는 이 두 선수를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있게 조명했다. 경기 전 좋은 경기를 보여 달라는 격려의 말은 물론이고, 경기가 끝난 후에도 쓰바사 선수의 라커룸을 찾아가 앞으로도 계속 응원하겠다는 말을 전했다.

권투 경기, 그것도 한일전이라면 무조건 우리가 이겨야만 된다고 입을 모았던 풍경과는 사뭇 다른 '무한도전'의 풍경. 경기가 끝나고 쓰바사 선수의 멍든 눈을 보며 정형돈이 울먹거리고, 길이 끝내 눈물을 흘린 것은 왜였을까. 그것은 아마도 권투라는 경기가 갖고 있는 그 처절함과 힘겨움을 가까이서 바라보고는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있을까. 그것도 링 위에 올라가는 그들에게는 더더욱.

흔히들 권투를 삶과 비교하곤 한다. 우리는 늘 아침에 세상이라는 링에 올라가 한바탕 힘겨운 경기를 치르고 다시 링 아래로 내려오는 삶을 반복한다. 링이라는 사회가 던져놓은 무대 위에서 우리는 늘 승자 혹은 패자가 되지만, 사실 링 밖으로 내려오면 누구나 누군가의 남편, 아내이거나 누군가의 부모로서 승자나 패자는 있을 수 없다. '무한도전'이 패자 없는 경기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바로 이 링 바깥의 시선으로 링 위에 오르는 두 선수를 바라봤기 때문이다.

봅슬레이 특집이나, 복싱 특집처럼 이제 '무한도전'은 사회적인 관심이 미치지 않는 곳에 시선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이 프로그램이 과거와는 조금 결을 달리하는 새로운 도전과제를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무한도전'의 멤버들은 이제 초창기의 그 낮은 위치에 서 있는 존재들이 아니다. 그들은 끊임없는 도전을 통해서 스스로를 성장시켜 이제는 정상의 위치에 서 있다. 이것은 '무한도전'의 도전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무한도전'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지는 이 위기를 넘어서게 해준다. 팀원들의 성장에서 이제는 타인의 성장으로 '무한도전'이 도전하는 과제의 폭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한다'는 '무한도전'의 기치는, 승패가 아닌 그 최선을 다하는 것에 대한 도전의 가치를 보여줌으로써 공감을 자아냈다. 이제 '무한도전'은 그 최선을 다하는 자들을 찾아가 어깨를 두드려주고 있다. 그곳에 승자나 패자는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사회를 흔히들 승자들이 모든 것을 다 차지하는 이른바 '승자독식사회'라고 한다. '무한도전'이 감동을 주는 것은 이 승자독식사회에서 패자 없는 사회를 꿈꾸기 때문일 것이다. '무한도전'에 패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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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콤, 멀리서 보면 즐겁지만 가까이서 보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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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뚫고 하이킥'(사진출처:MBC)

‘지붕 뚫고 하이킥’의 오현경과 정보석이 눈밭에서 격투를 벌이는 장면을 멀리서 바라보는 노부부는 ‘러브스토리’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우리도 젊었을 땐 저랬었지”하며 흐뭇해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자막.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찰리 채플린.’ 이 말은 지금 희비극 사이에서 힘겨운 줄타기를 하고 있는 ‘지붕 뚫고 하이킥’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준다. 희극과 비극은 멀리서 보느냐 가까이서 보느냐에 달린 것일 뿐, 서로 다른 삶의 현실을 다루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지붕 뚫고 하이킥’이 시트콤이냐 드라마냐는 정체성 논란이 나오는 것은 아무래도 시트콤은 역시 코미디여야 한다는 대중들의 바람이 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붕 뚫고 하이킥’은 초반의 코미디 분위기에서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사각 멜로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서로를 사랑하게 된 정음과 지훈(최다니엘), 지훈을 바라보는 세경, 그리고 그런 세경을 바라보는 준혁(윤시윤)의 엇갈린 마음이 보는 이를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

통상 두 가지 에피소드를 병치하는 스토리 구조를 가지고 있던 ‘지붕 뚫고 하이킥’은 이제 하나는 전형적인 코미디를,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이들의 멜로를 병치시키곤 한다. 이 희비극의 교차가 가져오는 효과는 분명히 있다. 그것은 적절한 균형만 맞춰진다면 희극과 비극 양쪽을 모두 강화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웃음 속에서 발견하는 눈물, 눈물 속에서 찾아지는 웃음은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균형을 맞췄을 때의 이야기다. 이 시트콤의 멜로가 코미디와 이질적이지 않게 어울릴 수 있었던 것은 그 전개에 있어서 적당한 거리를 두었기 때문이다. 초반부 세경에게 마음을 전하는 준혁은 멜로 특유의 가슴앓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가르쳐주기 위해 저 스스로 안하던 공부를 하는 그 모습을 통해서였다. 정음과 지훈의 사랑은 불꽃처럼 타오른 것이 아니라, 늘 툭탁거리며 싸우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유일하게 진짜 멜로의 틀로 사랑을 보여준 이는 세경이었다. 그녀는 이 시트콤에서 정극을 연기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하지만 멜로가 무르익으면서 지훈에 의해 상처를 입는 세경과, 그런 세경을 점점 안타깝게 바라보는 준혁이 전면에 드러나면서 이 시트콤은 때론 웃음보다 눈물을 더 많이 보여주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쿨한 관계가 조금씩 사라지고 인물들이 서로 끈끈해지기 시작하자, 이제 시트콤으로서의 거리두기는 가끔씩 그 선을 넘는다. 채플린이 말한 대로 멀리서 바라봐야 할 시선이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그들의 마음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한 것.

이것은 시트콤의 새로운 실험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간 시트콤은 드라마가 아닌 예능의 하나로 치부되며 폄하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이 시트콤의 코미디와 드라마를 넘나드는 희비극의 형식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러한 편견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처럼 코미디에 멜로가 깊숙이 자리하게 된 데는 더 단순한 이유가 자리하고 있다. 한마디로 멜로가 코미디보다 쉽다는 것이다.

정음과 지훈, 세경과 준혁의 안타까운 멜로의 에피소드들을 보면 기본적인 구도의 틀이 완성된 위에서 계속 변주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목도리라는 오브제는 이 멜로가 생겨나고 깊어져가는 과정에서 꽤 여러 번 사용되었고, 무심한 지훈과 그에게 상처받는 세경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준혁의 에피소드도 계속 반복되었다. 이것은 멜로의 틀이다. 구도의 완성, 상황의 반복을 통한 감정의 몰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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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뚫고 하이킥'(사진출처:MBC)

하지만 매번 새로운 아이디어로 웃음을 만들어내야 하는 코미디는 상황이 다르다. 그것은 전적으로 아이디어에 의해 좌우되는 것들이다. 게다가 매일 방영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이 시트콤이 짊어져야 하는 짐의 무게를 가늠하게 만든다. 매일 같이 새로운 상황의 웃음 코드를 뽑아내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그러니 멜로는 물론 이 시트콤의 별미 같은 맛을 주지만, 또한 어쩌면 이 시트콤 제작자들에게는 겨우 숨 돌릴 수 있는 여지를 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많은 드라마 작가들은 말한다. 사실 웃음을 만드는 것이 눈물을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그래서 시트콤에 대한 낮은 시선을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지붕 뚫고 하이킥’이 가진 희비극이 말해주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웃음은 멜로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 시트콤은 드라마와 비교해 절대 쉽거나 가치가 떨어지는 작업이 아니다. 드라마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제작비로 매일 편성되어 지옥 같은 제작의 고통을 감내하게 만드는 그 시선에도, 마치 시트콤을 하나의 그저 그런 쉬운 작업으로 바라보는 그 낮은 시선이 들어가 있는 건 아닐까.

황정음의 신종 플루 감염으로 '지붕 뚫고 하이킥'이 한 주를 스페셜로 대체한다고 한다. 물론 이 시트콤의 한 팬으로서 한 주의 안타까움이 있지만 어쩌면 이것은 열악한 제작여건 속에서도 끝없이 달리기만을 종용받아온 이 시트콤에 작은 재충전의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나의 시트콤이 드라마 이상의 대중적 지지도와 완성도를 가지고 있는 ‘지붕 뚫고 하이킥’. 그 희비극 속에 담겨진 고충을 이제는 이해해야할 때도 온 것 같다.

오현경과 정보석이 사투를 벌이는 그 장면을 멀리서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음 짓는 노부부처럼 우리는 어쩌면 전쟁 같은 제작현장의 상황을 생각하지 않은 채,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며 편안하게 웃음 짓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채플린의 말처럼, 시트콤의 제작여건도 마찬가지다. 멀리서 보면 즐겁게만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슬픈 현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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