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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 신구세대를 가로지르다

그저 지나쳤으면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그런 시골마을. 이제 개발의 손길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지만 도시인의 마음으로 보면 심지어 살고 싶을 정도로 한적한 그런 풍경. 그 풍경은 과연 아름답기만 한 걸까. 거기 덤불 아래, 세워진 집 아래에는 뭔가 숨겨진 시대의 생채기가 남아있지 않을까. '이끼'는 바로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하는 영화다. 어느 날 그 동네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 젊은 청년은 이곳으로 들어와 그 덤불을 들춰보고는 거기 무언가 이상한 것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 이상함은 전체주의적인 분위기다. 이장 천용덕(정재영)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마을 사람들이나, 마치 파놉티콘을 연상시키는 이장의 집에 의해 감시되는 마을. 의절한 채 살아왔던 아버지의 부음으로 시골동네를 찾은 유해국(박해일)은 이질적인 존재로서 단박에 그 분위기를 감지해낸다. 아버지가 혹시 살해된 건 아닐까 하는 의심 속에서 마을을 조사하기 시작하는데, 몰랐던 동네의 숨겨진 비밀들이 양파껍질 벗겨지듯 드러나면서 해국은 점점 더 깊은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윤태호의 웹툰을 영화화한 '이끼'는 상영 전부터 이미 화제가 된 작품. 웹툰이 게재될 때 이미 18건의 영화화 제의가 있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영화화 될 때 기대만큼 우려도 많은 작품이었다. 영화화된 웹툰이 거의 성공을 거둔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150만 관객을 돌파한 '이끼'는 이제 웹툰의 첫 번째 성공사례로 꼽힐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어떤 점이 '이끼'의 성공을 이끈 것일까. 그 해답은 신구세대를 가로지르는 독특한 이야기 구조에 있다.

이 영화의 대결구도는 천용덕으로 대변되는 개발시대의 잔재와 유해국으로 대변되는 신세대적 감성의 부딪침으로 그려진다. 즉 유해국의 아버지인 유목형은 월남전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던 인물이고, 천용덕은 이 폭력의 시대에 폭력으로 무장하곤 돈과 권력을 탐하는 형사였으며, 마을 주민들은 저마다 개발시대의 욕망 한 자락을 쥐고 죄를 지은 인물들이었다. 즉 현 시대의 젊은이인 유해국은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죽음을 통한) 이 이상한 마을로 들어와 천용덕이 세워놓은 왕국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것. 장르는 스릴러지만 그 아래에는 현재의 풍요 속에 감춰진 시대적 아픔을 들춰낸다는 점에서 사회극의 요소를 갖고 있다.

웹툰이 그 매체적 성격상 젊은 세대를 주 타깃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웹상에서의 폭발적인 인기가 영화로 이어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끼'는 신구 세대의 문제를 모두 아우르고 있다는 점에서 웹툰이면서도 그 타깃의 폭이 넓다. 영화로서 성공하려면 좀 더 넓은 타깃을 가져야 한다. 특히 중장년층의 호응은 절대적이다. '이끼'는 바로 그 점을 만족시켜주는 스토리 구조를 갖고 있다. 공간으로서의 도시와 농촌이, 존재로서의 인간과 신이 교차하는 이 작품 속에는 70년대 개발시대의 정서에서부터 2010년도 현재의 정서까지가 공존하고 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의 이야기이고, 어느 한 시골동네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이 땅 전체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웹툰에서 금세 튀어나온 듯한 싱크로율 100%의 박해일과,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정재영의 연기대결도 볼만하다. 무엇보다 유해진이라는 배우는 이 자칫 끝없는 긴장으로 피곤해질 관객들에게 간간이 시원한 소나기 같은 웃음을 선사한다. 2시간 40분이라는 런닝타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하지만 윤태호 작가가 구축해놓은 팽팽한 스토리와 백전노장 강우석 감독의 좀더 대중적으로 호흡할 수 있는 영화적 해석은 이 긴 시간을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영화에 속도감을 제공한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는 톡톡 튀는 신세대 작가와 여전히 저력을 갖고 있는 기성세대 강우석 감독의 만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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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위치타 공항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마치 가이드를 따라가듯 톰 크루즈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영화 속으로 들어간다. 공항 내 안내방송은 이 롤러코스터에 이제 막 톰 크루즈의 안내를 받아 탑승한 관객들에게 "즐거운 여행이 되시길 빌겠습니다"하고 말한다. 그리고 안전한 일상 속에 살아왔던 우리들을 때론 아찔하고 때론 로맨틱한 두 시간 짜리 여행 속으로 데려간다.

우리를 대신할 영화 속 인물은 캐머런 디아즈. 그녀는 '나잇 앤 데이'라는 영화적 판타지의 세계와 현실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해주는 인물이다. 그녀에게 감정이입된 관객들은 그녀가 느끼는 대로 위험해보이면서도 어딘지 매력으로 넘치는 톰 크루즈에게 기꺼이 몸을 맡긴다.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된다. 이 즐거운 여행을 깨뜨릴 수 있는 지독한 상황 속에 들어가면 친절하게도 톰 크루즈는 그녀에게 잠이 오는 약을 먹인다. 그러니 위험한 상황은 지워지고 대신 눈을 뜨면 꿈꾸던 곳에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톰 크루즈는 이 여행의 가이드이자, 친절한 기사(Knight)다. 관객을 공주처럼 대하는.

'나잇 앤 데이'는 액션물과 로맨틱 코미디를 절묘하게 엮어놓았다. 그것은 '미션 임파서블'의 톰 크루즈와 각종 로맨틱 코미디에서 발군의 푼수끼를 보여주었던 캐머런 디아즈의 조합 그대로다. 영화는 스파이 남편의 모험 속으로 갑자기 뛰어 들어간 아내의 이야기를 담았던 '트루 라이즈'를 떠올리게 한다. 과도한 액션이 로맨틱한 분위기를 깨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이 영화는 톰 크루즈라는 농담 잘 하고 여성에 대한 배려가 출중한 데다 잘 생기기까지 한 인물을 투여해 상황을 늘 말랑말랑하게 바꿔놓는다. 여성들이 진짜 좋아할만한 '로맨틱 액션'. 위험해보여도 안전함을 보장하는 짜릿한 일상탈출 롤러코스터가 '나잇 앤 데이'다.

놀이공원에 즐비한 롤러코스터들이 우리에게 말하듯, 이 영화는 '안전한 삶'이 가진 무료함을 '죽음'이라고까지 말한다. 톰 크루즈가 캐머런 디아즈에게 정보조직이 당신을 찾아갈 것이고 '안전' 같은 말을 반복하면 그건 "당신을 죽이겠다"는 말이니 도망치라고 하는 건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일상의 안전함을 벗어나 위험하지만 짜릿한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이 어디 쉬운 일인가. 캐머런 디아즈는 모험과 안전 사이에서 갈등한다. 대부분의 우리가 그렇듯이 '지금'이 아닌 '언젠가'로 꿈을 미루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삶. 그런 의미에서 '언젠가'라는 말은 톰 크루즈의 말대로 '위험한 말'이다.

영화는 이 '언젠가'의 삶을 살아가는 그녀를(어쩌면 우리를) '지금'의 삶으로 되돌려 놓는다. 그녀는 톰 크루즈라는 대단히 매력적인 가이드와 함께 알프스로 외딴 섬으로 오스트리아로 스페인으로 날아간다. 마치 비행기에서 푹 자고 나면 새로운 세계가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그녀는 자고 나면 그 꿈꾸던 세계 속으로 들어와 있다. 이처럼 '나잇 앤 데이'는 우리들이 원하고 꿈꾸는 세계를 두 시간 짜리 롤러코스터로 압축해 놓는다. 부담 없고, 신나고, 로맨틱한, 일상에 지쳐 잊고 있던 그 짜릿함에 열광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롤러코스터도 이 정도면 꽤 타볼만한 가치가 있다 느끼게 하는 영화, 바로 '나잇 앤 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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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의 눈빛으로 기억되는 영화, '포화 속으로'

'포화 속으로'의 전쟁 스펙터클은 한 편의 액션영화를 보는 것처럼 숨 가쁘고 정신없을 정도로 현란하며 심지어 때론 아름답게까지 느껴진다.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으면 그 화려한 영상의 박진감 속에 빠져들 정도다. 하지만 그 스펙터클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조금 답답해진다. 많은 이들이 영화 개봉 전부터 불거져 나왔던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했던 문제나, 특정 집단의 자본이 들어갔다는 이야기로 인해 이 영화가 반공영화일 거라는 우려를 하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다. 이 영화는 반공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가 반공영화가 아닌 이유는 당연하다. 상업영화이기 때문이다. 70년대도 아니고 2010년도에 반공영화는 대중들이 공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상품성이 없다. 그래서 주인공 장범(탑)이, 죽어가며 '오마이'를 외치는 어린 북한병사를 처음으로 확인사살하고는 '그들 역시 괴수가 아니었다'고 말하는 장면은 조금은 생뚱맞아 보인다. 반공을 주창하던 시기는 전후의 일이지, 전쟁이 막 벌어지던 당대의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장면은 상업영화로서 반공 냄새를 없애려는 안간힘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반공영화가 아니라는 것이 반전영화라는 얘기는 아니다. 초반부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몰아치는 전투장면과 낙동강 전선에 투입된다며 포항에 학도병을 놔두고 가버리는 강석대 대위(김승우). 그리고 이기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것 같은 인민군 776부대를 이끄는 박무랑(차승원). 이들은 어느 편이라기보다는 모두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 던져진 그저 싸워야 하고 이겨야 살아남는 비슷비슷한 존재들처럼 그려진다. 한바탕 전투의 소란 속에서 수많은 죽음을 경험하고 살아남은 장범의 넋 나간 얼굴과, 새로 온 학도병들을 장범의 손에 맡긴 채 떠나가며 강석대 대위가 "너희들은 군인인가 아닌가"를 묻는 초반부의 장면은 그래서 이 영화가 마치 반전영화인 것 같은 인상을 던져준다.

하지만 국군이 떠나가고 포항에 남은 학도병들은 이상하게도 이 덧없는 어른들의 전쟁 속에서 스스로를 자가발전시키며 조국을 위해 몸을 던진다. 영화 후반부에 장범이 "우리는 군인인가 아닌가"를 선창하듯 질문하고, 다른 학도병들이 "군인이다!"라고 선언하는 장면부터, 거의 초인처럼 총을 쏴대는 장범과 갑조(권상우) 앞뒤로 마치 게임처럼 우수수 쓰러져버리는 북한 병사들의 모습은 액션영화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논조는 이렇게 바뀐다. 왜 싸워야 하는지 모르지만, 조국이라는 명제 앞에서는 결국 그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전쟁은 비극적이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

이 쉽게 드러나는 영화의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감성적으로 영화에 빠져들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장범을 연기하는 탑의 눈빛이다. 아무런 얘기를 하지 않아도 그의 두려움과 순수함과 강인함, 그리고 슬픔이 교차하는 그 눈빛은 많은 걸 얘기해준다. 영화를 보다가 혹시 눈물이 났다면 그것은 영화가 꾸며놓은 화려한 영상 때문도 아니고, 조악하지만 꾸역꾸역 집어넣은 모성애적인 관점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이 모든 상황을 체념하듯 받아들이고 있는 탑의 슬픈 눈빛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탑의 눈빛은 이 영화와 이 영화가 방영되는 2010년도의 우리네 청년들의 눈빛을 닮았다. 마치 왜 하는지 영문도 모른 채 전쟁터로 나갔다가 죽음을 맞이한 학도병들처럼, 여전히 이런 국가의 메시지 속에 던져진 채 그 싸움으로 점철된 어른들의 세상에 여전히 편입되기를 강요받아야 하는 청년들의 슬픔. 그래서 영화 마지막에 뒤늦게 돌아온 강석대 대위가 장범을 안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장면은 여러 모로 의미심장하다. 어른들의 전쟁 속에 무참히 동원된 학도병에 대한 미안함, 혹은 그래도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어른들의 시각에 대한 미안함. 탑의 슬픈 눈빛이 아픈 여운을 남기는 건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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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자전', 김대우식 유쾌하고 음란한 도발

'방자전'의 상상력은 음란하다. 아니 어쩌면 이건 전작 '음란서생'에서 이미 싹을 보였던 김대우 감독의 상상력인지도 모른다. '춘향전'을 뒤집는 이 이야기에서 춘향이는 더 이상 정절을 지킨 열녀가 아니고, 이몽룡은 사랑의 맹세를 지킨 의리의 사나이가 아니다. 변학도는 탐관오리의 표상이 아닌 다만 성적 취향이 변태적인 인물일 뿐이며, 물론 방자도 그저 몽룡과 춘향이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하던 그 방자가 아니다.

성욕이나 성공 같은 욕망에 솔직하고 그것을 서로 이해할 정도로 쿨한 그들은 더 이상 조선시대의 인물들이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현대인에 더 가깝다. 우리가 '방자전'의 등장인물들의 대사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웃음을 터뜨리게 되는 건, 그 때문이다. 이 사극이라는 과거의 지대 속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현대어법은 미풍양속이란 이름 위에 존속하는 권위의 엉덩이를 쿡쿡 찌른다. 그러니 어찌 보면 '방자전'의 음란함은 지배계층의 눈에는 꽤나 위협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아무리 고전 중의 고전이고, 몇 년 마다 계속 반복되어 리메이크되는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21세기에 같은 정절의 이야기로서 '춘향전'을 그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시대는 바뀌었고 시선은 사극이 역사를 버릴 정도로 낮아졌다. 게다가 '춘향전'은 역사도 아닌 그저 허구적인 작품일 뿐이다. 따라서 '춘향전'에 내포된 기존 체제에 대한 호의적인 시선을 '방자전'에서 기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일일 것이다.

그러니 '방자전'의 이야기는 철저히 현대적일 수밖에 없다. 몽룡이 춘향의 마음을 달뜨게 하기 위해 구사했다고 주장하는 '차게 굴기'는 '짐짓 일부러 쿨하게 구는' 현재의 연애법이고, 춘향이 몽룡의 마음을 동하게 하기 위해 보냈다는 '은꼴편(은근히 꼴리는 편지)'은 '은꼴사(은근히 꼴리는 사진)' 같은 현대적 은어의 패러디다. 등장인물들의 언어가 현대어법이어서인지 그 사고방식 또한 현대적이다. '방자전'에는 물론 몽룡과 방자 같은 계급이 존재하지만, 그 둘이 춘향을 사이에 두고 경쟁을 벌이는 시퀀스에서 볼 수 있듯이 그 계급이 주는 무게감은 미미하다. 어찌 보면 부모 잘 만난 몽룡과 그렇지 못한 방자를 보는 것만 같다.

'춘향전'이라는 미담의 탄생 뒤에 숨겨진 적나라한 현실을 고발하는 '방자전'은 방자의 시각을 집어넣어 '춘향전'과는 완전히 새로운 김대우식의 도발적인 텍스트를 만들어냈다. '춘향전'이라는 고전을 훼손했다는 우려 섞인 비판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방자전'을 고전과 비견할 필요까진 없을 것 같다. '방자전'은 더 이상 옛이야기가 아니라 작금의 세태를 드러내는 현대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성공을 위해 사랑마저도 미담으로 조작하는 현실, 신분상승을 위해 기꺼이 순정을 포기하는 현실, 그럼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순정. 그래서 차분히 바라보면 그것 또한 하나의 현대적인 미담으로 보여지는 시선. '방자전'의 음란함은 그 과감한 노출수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음란함 그 자체보다는 그 엄밀한 신분구조 속에서도 음란한 상상을 하는 그 도발이 음란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음란함이 통쾌함을 주는 것은 속물근성 가득한 현대적 인물들이 고전을 빌어 뒤틀어지는 풍자가 현대인들의 억눌린 감정을 풀어내주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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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방자전', 춘향문화선양회측에선 상영중지 요청할 만했다

    Tracked from 토토의 느낌표뜨락  삭제

    이성간의 애틋한 연애감정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불행한(?) 나의 청춘탓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남녀간의 혼전관계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사고를 지닌 여자인지라, 사정상 결혼식을 뒤로 미루고 동거로 시작하는 남녀를 이해하기란 정말 힘들다. 21C를 살아가고 있는 요즘 젊은이들의 성문화가 아무리 개방되었다고 해도, 나는 우리 아이가 그 물결에 동승하지 않기를 바라는 어미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나는 할머니의 구전을 통해 춘향과 이도령에 대해 어렴풋이..

    2010/06/05 10:34

‘드래곤 길들이기’, 어른과 아이가 모두 공감하는 이유

왜 드래곤을 길들이려는 것일까. 마을을 쳐들어와 쑥대밭을 만드는 드래곤들과 사투를 벌이며 살아가는 바이킹족의 마을. 아이들조차 드래곤을 죽여 진정한 바이킹 용사가 되길 원하는 그 곳에 싸우기보다는 드래곤과 공존하려는 히컵이라는 소년의 존재는 아이들의 눈높이에는 모험과 재미를 선사하지만 그걸 보는 어른들에게도 꽤 많은 시사점을 발견하게 만든다. 우리는 자연과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가 하는 결코 작지 않은 환경적인 문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아바타’에서 나비족들과 제이크 설리가 익룡을 닮은 이크란을 타고 날아다니는 장면은 ‘드래곤 길들이기’의 히컵이 친구가 된 드래곤 투스리스(toothless 이빨이 없다는 뜻으로 히컵이 붙여준 이름)를 타고 날아다니는 장면과 중첩된다. ‘아바타’의 제이크 설리가 차츰 판도라 행성의 생명체들과 교감하게 되면서 결국 이를 파괴하려는 인간들과 맞서게 되는 것처럼, ‘드래곤 길들이기’의 히컵은 투스리스를 통해 드래곤들이 사실은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들과의 공존을 모색한다. 이런 점에서 ‘드래곤 길들이기’는 환경문제를 바탕에 깔고 있었던 ‘아바타’의 어린이 버전처럼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드래곤 길들이기’를 ‘아바타’로부터 차별화시키는 대목은 바로 그 투스리스라는 드래곤과 히컵이 어떻게 함께 하늘을 나느냐 하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히컵이 쏜 그물에 맞고 떨어져 꼬리 날개를 찢긴 채 더 이상 제대로 날지 못하는 투스리스에게, 히컵은 인공적으로 날개를 만들어 붙여주고, 그것을 다시 자신의 몸과 연결한다. 그리고 히컵과 투스리스는 마치 처음 그걸 해보는 것처럼 비행을 연습한다. 함께 나는 연습. 그 비행의 순간이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것이 이 애니메이션이 전하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의 메시지를 가장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바타’는 자연의 상징으로 내세워지는 판도라 행성에서 인간들을 지구로 내쫓는 방식으로 판도라 행성을 지켜내려 한다. 즉 ‘아바타’가 제시하는 환경문제의 해답은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있다. 인간들을 자연 바깥으로 몰아내면 자연은 저 스스로 보존될 것인가. 많은 환경학자들은 이미 자연은 인간화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을 축출하기 보다는 인간과의 공존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드래곤 길들이기’의 히컵과 투스리스의 관계 설정은 이 ‘공존’의 시각을 가장 잘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드래곤이라는 존재를 통해 자연의 두려움을 친근함으로 바꿔놓고, 그것을 개척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공존해야할 대상(심지어 그래야 더 재미있는 세상이 펼쳐진다는)으로 그리는 이 애니메이션이 아이들의 열광을 넘어 어른들의 열광까지 불러일으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슈렉’과 ‘쿵푸 팬더’를 통해 그저 동화책 같은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좀 더 세태에 현실적인 애니메이션의 추구를 통해 어른과 아이가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작품들을 만들어온 드림웍스는 이번 작품 ‘드래곤 길들이기’를 통해서도 역시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선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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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드래곤 길들이기 - 3D 활용의 모범적인 답안

    Tracked from 페니웨이™의 In This Film  삭제

    [드래곤 길들이기] 리뷰를 들어가기에 앞서 다소 위태롭게 보였던 일부 3D 영화들과는 달리 3D활용에 있어 모범적인 답안을 제시한 점에 대해 일단 칭찬부터 하자. 영화 [아바타]를 보면서 3D로 표현된 이크란의 활강장면에 감탄사를 연발했던 관객들에게 있어 [드래곤 길들이기]는 딱 안성맞춤인 작품이다. [아바타]이후 극장가의 트랜드로 자리잡은 3D를 활용하는 측면에 있어서 [드래곤 길들이기]의 전략은 명료하다. (러닝타임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드래곤..

    2010/05/25 10:21
  2. 드래곤길들이기 3D 영화추천 / 2010년 최고의 애니메이션이 되지 않을까...?

    Tracked from ★ Link's Another Side & Story  삭제

    드래곤길들이기 (How to Train your Dragon) 감히 2010년 최고의 애니매이션이라 말할 수 있을 만한 영화... - 평범한 영화인줄 알았는데 뒤통수 맞은 영화랄까... 아마 이 영화를 본 관객의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 오늘 (5월 24일) '드래곤 길들이기'를 가족과 함께 보고 왔습니다. ^^ 블로거 시사회에 당첨되었는데, 오랜만에 좋은 영화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서 추가로 표를 사서 모두 함께 즐기고 왔죠.. ^^..

    2010/05/25 11:32

‘하녀’의 냉소, ‘시’의 관조, ‘하하하’의 유머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처럼, 무심하게 흘러가는 시간의 절망 앞에서 우리는 어떤 몸부림을 하고 있을까. 칸느가 주목하고 있는 우리 영화 세 작품, 임상수 감독의 ‘하녀’, 이창동 감독의 ‘시’, 그리고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가 이 절망을 바라보는 세 가지 시선을 제시하고 있어 주목을 끈다. ‘하녀’가 50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견고한 시스템을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다면, ‘시’는 그 도저한 시간의 흐름 위에 가뭇없이 사라지는 생명의 아름다움을 관조하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시로 승화해냈고, ‘하하하’는 본래는 무의미한 절망적인 세상에서 어떻게든 의미화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우리의 실존을 과거와 현재를 병치함으로써 홍상수 특유의 유머로 그려냈다.

김기영 감독이 ‘하녀’를 만들던 1960년도에서 50년이 지난 2010년, 임상수 감독의 ‘하녀’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하녀’라는 텍스트가 50년을 넘어서도 그대로 다시 리메이크되는 현실은 그 질문에 답을 준다. 공장여직공에서 교육학을 공부한 여성으로, 중산층 가정에서 초상류층으로, 폐쇄공포증을 느낄 만큼의 좁은 저택에서 실제 공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판타지화된 대저택으로, 욕망의 화신에서 그저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여성으로 바뀌어졌지만,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이 ‘하녀’라는 계급이다. 자본의 시스템이 견고해진 현재에 ‘하녀’는 그 속에서 상류층에 살아가는 이들까지도 하녀로 부속화한다. 자본의 하녀다. 그래서일까.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김기영 감독의 ‘하녀’와는 다른 처절한 절망을 냉소적인 시선으로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세상은 좀체 변하지 않는다.

이창동 감독의 ‘시’는 그 변하지 않는 세상의 무심함이 삶의 본질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픈 본질을 계속 쳐다보려는 노력이 시의 아름다움이라고 말한다. 어딘가에서는 억울하게 사람이 죽어가고 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살아가는 세상은, 제 아무리 누군가의 죽음에 죽을 듯이 절망감을 느껴도 그저 아래로 흘러가기만 하는 강물을 닮았다. 즉 철저히 타인을 수밖에 없는 우리네 삶은 그 타자와 하나가 되려는 노력을 통해 아름다운 시를 탄생시킨다. 따라서 그 아프고도 고통스러운 시를 쓰는 행위는 그 절망적인 삶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라고 이창동 감독은 말한다. 점점 시가 죽어가고 있는 현실, 그 어떤 통렬한 비판보다 ‘시’가 우리를 울리는 것은 그 미사여구 없이 그대로 바라본 듯한 현실의 관조 덕분이다.

‘시’가 무심한 세상에 대한 의미화에서 시라는 인간의 아름다운 행위를 발견해냈다면, ‘하하하’의 시는 무의미한 세상에 대한 농담 같은 의미화가 사실은 우리 삶의 본질이라는 것을 해주는 소재다. 문경(김상경)과 중식(유준상)이 같은 시간대에 통영에서 겪었던 며칠을 그려내는 이 영화의 이야기는 사실, 이 두 사람의 막걸리 자리의 안주거리에 다름 아니다. 두 사람의 겪은 일들은 사실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한 가지 이야기지만, 두 사람은 그것을 자기 입장에서 각각의 이야기로 전한다. 즉 과거를 해석하고 의미화하는데 바로 그것이 우리네 삶이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무겁게만 느껴지는 삶을 한바탕 술자리의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이 영화는 제목처럼 하하하 웃게 만들지만 한편으론 허허로운 뒤끝을 남긴다. 홍상수 감독은 이제 삶의 절망감마저 유머로 승화시키는 달관의 경지를 보여준다.

공교롭게도 칸느에서 주목받은 이 세 작품은 모두 우리네 삶의 절망감을 다루고 있다. 그 절대로 변하지 않는 절망감을 향해 누군가는 냉소적인 시선을 던지고, 누군가는 그 속에서 외면하지 않고 절망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아름다운 시의 마음을 발견하며, 누군가는 그 절망감마저 하하하 막걸리 한 사발의 유머라고 달관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이들 영화들이 우리는 물론이고 칸느의 가슴에 와 닿는 것은, 마치 절망이란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세상의 허위들을 회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관련글)
'하녀', 그녀는 여전히 밑에 있었다
'시'는 정말 어려워요, 아니 고통스럽다
'하하하'가 우스운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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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하녀'와 2010년 '하녀', 뭐가 달라졌을까

'하녀'라는 말은 이제 우리의 일상어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아래 하(下)자와 계집 녀(女)자를 쓰는 이 단어는 다분히 계급적으로 읽힌다. 즉 신분제도가 있던 시대에 사용되었던 이 '하녀'라는 단어는 지금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것은 동일한 제목의 원작 영화인 김기영 감독의 '하녀'가 개봉되던 1960년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대에 사용되던 말로 제목을 바꾼다면 '식모'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왜 이 '하녀'라는 단어가 1960년에도 또 50년이 지난 2010년에도 그대로 제목의 자리에 앉아있을까.

아마도 김기영 감독은 '하녀', 즉 새롭게 등장하는 식모라는 직업군(?)에서, 당대 산업사회의 태동기에 물질주의가 가져올 욕망의 표상을 발견했을 것이다. 김기영 감독의 '하녀'는 분명 그 속에 계급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물질 자본주의의 욕망으로서의 의미다. 작은 집에서 이층집으로 이사한 후, 벌어지는 사건들은 바로 그 물질적 풍요가 사건의 단초를 제공한다는 걸 암시한다. 좁은 집에서(물질적 풍요가 없는 시점에서) 하녀는 없어도 되는 직업군이지만, 넓어진 집에서는 하녀라는 새로운 욕망이 탄생한다.

그 잉여의 욕망을 표상하는 하녀가 한 가족을 파탄내는 이야기는, 물질의 주인을 자처하며 살아가는 자본주의 속 삶에서, 바로 그 물질이 거꾸로 주인을 속박하고 파탄내는 그 현실을 하나의 섬뜩한 우화처럼 그려낸다. 재미있는 건 이 김기영 감독의 '하녀'는 이 모든 이야기를 액자식으로 구성함으로써 한 사내의 내적인 욕망을 들여다보게 해주었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 정신분석적인 구성은 프로이트의 영향으로 보인다.

50년이 지난 현재, 임상수 감독에 의해 다시 만들어진 '하녀'가 50년 전 그것과 같을 수는 없다. 당대는 자본주의의 태동기였지만, 지금은 고도 자본주의의 중심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돈(물질)에 의해 탄생하는 자본주의의 하녀(계급) 역시 좀 더 견고해졌다. 김기영 감독의 하녀는 공장에서 일하다 소박한 중산층의 이층집으로 들어오지만,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저자거리의 왁자한 소음과 어떤 절망으로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소란 속에서 살아가다 비현실적으로까지 느껴지는 초상류층의 이층집으로 들어온다. 양극화는 더욱 첨예해졌다.

계급의 첨예함은 이 2010년 '하녀'의 공간연출로 더 도드라진다. 카메라는 종종 부감에서 주인이 하녀를 내려다보듯 거기 서 있는 인간군상들을 내려다본다. 김기영 감독의 '하녀'가 이층의 한 켠에 마련된 방에서 남자의 욕망의 손길을 기다렸다면,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아예 계급에 맞게 1층엔 하녀가 2층엔 주인이 산다. 주인은 늘 하녀를 위에서 내려다보고, 하녀는 주인을 올려다본다. 마지막 클라이막스에서 그 상황은 잠시 역전되지만 그 역전은 오르지 못할 공간을 점유한 자의 파국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달라진 건, 이제는 하나의 시스템이 된 계급이 절대로 바뀌어지지 않을 견고함으로 절망적인 뉘앙스를 풍긴다는 점이다. 김기영 감독의 '하녀'는 한 가정을 파탄내지만,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하녀만 희생된다. 견고한 자본주의의 시스템 속에서 하녀란 돈이 있으면 언제든 교체될 수 있는 소모품 같은 존재다. 주인집 사람들은 모든 일이 마치 벌어지지 않은 것처럼 무표정하게 살아간다.

임상수 감독의 지독히도 냉소적인 시선은 철저히 판타지를 거부하면서 아프지만 섬뜩한 작금의 자본주의 상황을 그려낸다. 원작에는 없는 유일한 인물로 윤여정이 연기한 하녀가 돋보이는 건, 그녀의 투정과 화풀이가 이 꽉 막힌 시스템을 펼쳐놓은 숨 막히는 영화 속에 유일한 숨 쉴 틈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시스템 앞에서 어찌 절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위안이라고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아마도 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듯 살아가는 주인집 가족들의 그 무표정일 것이다. 돈이면 뭐든 할 수 있고 지워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들 역시 돈의 하녀이긴 마찬가지니까. '하녀'는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늘 밑에 있었다. 저 위에 자본이란 주인을 세워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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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은조의 통곡, 효선의 낙담, 송강숙의 절규-세 여인의 슬픔(신데렐라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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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데렐라 언니는 보면 볼수록 우리네 인생의 축소판을 그대로 가져온 듯 합니다. 원래 드라마는 그런 재미로 보긴 하지만 신데렐라에는 참으로 섬세한 희로애락이 그대로 다 들어가 있어서요. 그래서 그런지 보면서 섬뜩하기도 하구요. 또한 배우들의 연기가 하나같이 그네들의 인생이 녹아 있어 선득 선득 하기 까지 합니다. 어제도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빨려 들어 가는 수 밖에는 없었는데요. 어쩌면 그렇게들 다 연기가 자연스러운지 배우들이 아니고 그냥..

    2010/05/14 11:38
  2. 유재석 동기들 예지원 전도연 김태균 최승경 그들이 함께 한 세월...

    Tracked from 노천카페에서 상상을 즐기며  삭제

    1... 얼마전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에 새로 시작하는 MBC 일일 시트콤 볼수록 애교만점의 출연진들이 총 출동했는데요. 그중에는 큰언니로 출연하는 예지원도 있었답니다. 그때 예지원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인데요. 두사람은 연예인들을 대거 배출한 유명한 학교인 서울예대 방송연예과 91학번 동기라고 합니다. 그날 놀러와에 처음 출연했다는 예지원의 말을 듣고는 두사람이 그렇게 가까운 사이인데도 그동안 유재석 프로그램에서 한번도 볼 수 없었다는 것이 의아하..

    2010/05/14 11:38
  3. [하녀] 너희들만 사람입니까?

    Tracked from 드라마작가지망생의 S  삭제

        * (대놓고 스포일러 있습니다) *   평점이 낮고 반응도 그저 그렇다는 것도 알았다하지만 보기로 마음 먹었던 것은 평이 어떻든 내 눈으로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기대치가 낮더라도 보러는 가야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좋았다 재밌다 재미 없다를 떠나서좋았다라고 표현하고 싶다비록 우울하고 씁쓸하고 기분이 상당히

    2010/05/22 12:24

소통의 쾌감에 충실한 영화, '하모니'

‘아바타’가 전 세계 영화시장에 던진 파장은 쓰나미급이다. ‘타이타닉’이 세웠던 역대 최고 흥행 기록을 갈아 치웠고, 우리나라에서 외화로서는 이례적으로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그러고도 그 기세는 꺾이지 않아 항간에는 국내 최고 흥행 기록인 ‘괴물’의 기록까지 갈아치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중국에서는 ‘아바타’의 질주를 의식한 나머지 3D로만 개봉하는 제재를 가했을 정도라고 한다.

이 정도니 우리네 영화들이 긴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바타’의 쓰나미에 몇몇 우리 영화들은 흔적 없이 쓸려 내려가는 비운을 맞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 영화들이 차례로 개봉되면서 조금씩 ‘아바타’의 영향권을 벗어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하모니’다. 이 작품은 그다지 언론을 통한 홍보가 많이 되지 않았지만 특유의 스토리가 갖는 입소문으로 대중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도대체 ‘아바타’와는 다른 그 무엇이 ‘하모니’를 버티게 해주는 것일까.

‘하모니’는 여러 모로 보나 작년 최고의 흥행작인 ‘해운대’를 닮았다. 윤제균 감독에 의해 제작된 이 영화는 먼저 각본이 ‘해운대’를 쓴 이승연과 윤제균에 의해 만들어졌고, 감독도 윤제균 밑에서 조감독으로 일했던 강대규가 메가폰을 잡았다. 물론 ‘해운대’처럼 쓰나미가 몰려오는 거대한 블록버스터는 없지만, ‘하모니’는 ‘해운대’의 그 쓰나미를 빼고는 거의 비슷한 톤의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

각각의 사연들을 가지고 감방에 수감된 여죄수들. 그들의 이야기가 전면에 배치되어 제각각의 사연들을 들려주다가, 가족들을 앞에 둔 무대 위에 올라 하나로 묶여지는 하모니로 울려퍼지는 것은, ‘해운대’에서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이들이 쓰나미라는 거대한 사건 속에서 묶여 울림을 만드는 것과 같은 이야기 구조다. 즉 ‘하모니’에서의 쓰나미는 바로 그 무대 위에서 관객들을 향해 쏟아내는 감동의 하모니가 만들어내는 쓰나미인 셈이다.

‘해운대’가 웃기고 울리는 것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볼거리의 블록버스터보다는 감정이입의 블록버스터에 더 치중했던 것처럼, ‘하모니’도 마찬가지다. ‘하모니’의 인물들은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갖고 관객들을 웃기지만, 한 꺼풀 안으로 들어가 보면 모두 눈물 나는 이야기들을 갖고 있다. 순간적인 증오심에 죄를 짓고 감방에 들어왔지만, 그렇게 모여 한 방에 살아가는 그들은 유사가족을 형성한다. 그들이 더 끈끈해지는 것은 이 각자의 사연 속에서 뿔뿔이 흩어져 버린 가족들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모니’는 이 가족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하모니라는 점에서 공감과 소통의 쾌감을 주는 영화다.

‘하모니’를 굳이 ‘아바타’ 같은 작품과 나란히 놓고 비교하는 이유는, 이 작품이 주는 감정의 질주가 여타의 멜로드라마나 휴먼드라마와는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하모니’가 주는 감정이입은 저 '해운대'가 그랬던 것처럼 울다가도 웃음을, 또 웃다가고 울음을 터뜨리게 할 정도로 속도감이 있다. 작품의 메시지를 위해 머뭇거리거나 하는 지점을 이 영화에서는 발견하기가 어렵다. 그만큼 장르와 영화가 주는 즐거움(웃음뿐만 아니라 눈물까지)을 효과적으로 배치하는 충실함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하모니’를 우리는 굳이 ‘작품’이라고까지 말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또 혹자는 이를 ‘해운대’에서처럼 신파라고 폄하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영화가 주는 기능적인 측면을 두고 말한다면 ‘하모니’는 ‘아바타’처럼 충분한 즐거움을 주는 상업영화라고 할 수 있다. ‘아바타’가 보편적인 이야기가 갖는 공감 위에 세워진 새로운 세계에 대한 신기한 볼거리의 블록버스터라면, ‘하모니’는 가장 보편적인 가족의 이야기를 절절하게 호소하는 감정이입의 블록버스터라고 할 수 있다.

‘아바타’는 물론 현 영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말하게 만드는 그런 영화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모니’ 같은 우리 이야기가 갖는 강점들이다. ‘아바타’에 대처하는 ‘하모니’의 자세를 통해, ‘아바타’가 가진 쿨한 볼거리만큼 중요한 것이 감정을 이끌어내는 정서적인 이야기라는 것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영화의 본질이 어떤 소통의 쾌감이라고 한다면, '하모니'는 바로 그 쾌감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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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이면서도 현실감이 느껴지는 세계, '아바타'

"나는 세상의 왕이다!" '타이타닉'으로 11개 부문을 휩쓴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이제 왕을 넘어서 세상의 창조자가 되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영화 '아바타'에서 판도라라는 흥미로운 세상을 창조해낸다. 카메론의 상상 속에 만들어진 이 세상은 그 속을 채우고 있는 자연, 즉 생물이 지구와는 다르지만, 그 작동방식은 지구를 그대로 닮아있다. 울창하게 우거진 숲과 그 속에 우글거리는 동식물들,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나비라는 종족은 그 외관이 지구와는 완전히 다르지만(심지어는 공중에 떠있는 산도 있다!), 그 시스템은 아마존의 생태를 연상시킬 만큼 유사하다. 이 영화가 식민지 개척시대에 제국이 자행한 원주민 학살의 역사를 고스란히 떠올리게 하는 것은 그 생태의 방식이 같기 때문이다.

만일 이 판도라라는 세계가 가진 유사한 설정에 지나치게 천착한다면 이 영화의 일면만을 볼 가능성이 높다. 즉 '늑대와 춤을' 식의 스토리, 원주민에 동화되어가는 식민지 침략자의 이야기 정도로 단순화시킬 수 있다. 여기에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들이 보여주었던 일련의 세계를 떠올린다면 실로 영화가 가진 잡식성에 실망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미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의 거대목의 세계를 경험한 적이 있고, '천공의 성 라퓨타'의 날아다니는 대지에 경탄했던 적이 있으며, '원령공주'의 인간과 자연의 교감을 느낀 적이 있다. '아바타'는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우리가 일찍이 콘텐츠 속에서 보았던 많은 세계들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단지 이것뿐일까. 유사한 배경설정과 익숙한 스토리가 '아바타'의 전부일까. 그렇지 않다. '아바타'에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이렇게 상상으로 축조된 세계가 그토록 리얼하게 그려졌는가 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가상의 공간이지만, 실로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인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이것은 가상현실을 만들어내는 게임의 방식이기도 하다. 하반신이 마비된 제이크 설리(샘 웨딩톤)는 우주선의 긴 수면캡슐 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판도라에 도착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자신의 아바타와 '접속'하고 그 아바타를 통해 그 세계를 활보하고 다닌다. 이 설정은 게임 과정의 인터페이스를 완벽하게 재연해 보여준다. 그것은 가상세계 속으로 몰입해 들어가기 위한 워밍업인 셈이다.

게임의 가상현실은 그 몰입도가 높아지면 '매트릭스'가 일찍이 보여주었던 장자몽 같은 꿈의 재해석을 보여주기도 한다. 제이크가 잠이 들 때 아바타가 깨어나고, 아바타가 잠이 들면 제이크가 깨어나는 구조는 어느 것이 꿈이고 현실인가 하는 문제를 우리에게 제기한다. 제이크가 점점 나비 종족의 세계와 동화되어가는 과정은 가상현실이 가상에서 시작해 현실감으로 이어져가는 그 몰입의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꿈 같은 세계(물론 카메론의 꿈일 것이다)가 그저 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현실감을 주는 것은 이 영화가 가진 3D의 세계가 정교한 탓이기도 하지만 또한 그만큼 우리가 게임이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같은 현실을 모사한 가상세계 자체에 익숙해진 탓이기도 하다.

그 곳은 물론 현실세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낯선 새로운 세계도 아니다. 이 가상세계 속에는 무수한 콘텐츠들과 원형적인 문화들이 뒤섞여 나타난다. 즉 문화원형이 가진 세계들을 가져와 재해석하면서 만들어진 세계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공간이 자연과 과학, 신화와 역사, 동양과 서양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나타나는 것은 이 수많은 문화원형들을 한 세계 속에 뒤섞어 놓으면서 새로운 세계를 구축해냈기 때문이다. '아바타'의 판도라라는 가상공간 속에는 이러한 다양한 문화원형의 스토리와 설정들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낯설면서도 익숙하다. 특이한 것은 이 꿈 같은 가상공간이 디지털화된 네트워크 속의 세상처럼 그려진다는 점이다. 나비족들이 머리 끝을 연결해 자연과 교감하는 장면은 '접속'의 이미지가 강하고, '신성한 나무'는 이 판도라의 세계를 움직이는 슈퍼컴퓨터 같다. 종족들이 서로 손을 잡고 의식에 참가하는 모습은 집단적인 접속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 세계 속에서 슈퍼컴퓨터 같은 신성한 나무는 따라서 그 속의 생명체들을 움직이게 하는 대지모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네트워크 위에 만들어진 이 판도라라는 신세계는 게임의 세계이면서 애니메이션 등의 콘텐츠를 통해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온 그 판타지의 세계를 끌어 모아 재창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원본 없는 복제의 시뮬라크르를 잘 보여주는 세계라고도 할 수 있다. 가상이면서도 현실감이 느껴지는 세계. 이 게임과 현실이, 꿈과 현실이, 가상과 현실이 혼재된 판도라라는 세계는 현실을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가상을 모사한다는 점(원본 없는 복제로서)에서 3D가 가진 리얼리티의 한계를 손쉽게 넘어선다. 제이크 설리는 아바타를 통해 나비족의 모습으로 모험을 하기 때문에, 그 3D 인물 애니메이션은 실제 인간의 모습과의 비교를 허용하지 않는다. 현실을 3D 기술로 재현하기보다는 가상의 세계를 리얼하게 그려내는 것. 이것이 '아바타'가 가상현실에 현실감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혹자는 이 작품 속의 세계가 어디선가 많이 본 익숙한 것들이고, 이 작품이 하고 있는 이야기가 이미 고전적인 것들이라는 것을 지적하며, 이 영화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일 이 영화가 콘텐츠라는 상상의 공간을 재료로 해서 재탄생된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본다면 아마도 달리 보일 것이다. 지금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시대가 아니라, 이른바 '문화원형'을 연구해서 그것들을 재해석함으로써 새로운 콘텐츠를 창조해내는 시대다. '반지의 제왕'이 유럽 북구의 수많은 신화들에서 이야기를 따왔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일본의 많은 민담과 설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사례를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익숙한 이야기들의 조합을 통한 또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그 이야기의 현시로서의 실감나는 세계의 구축을 '아바타'가 꿈꾸었다는 점이다. '아바타'의 세계에 발을 디디면 그것이 제공하는 익숙한 스토리텔링과 익숙한 가상의 세계들(게임이나 영화 같은) 속에서 현실감을 느끼며 즐길 수 있게 된다. '아바타'가 간파해낸 것은 우리가 이미 현실은 아니지만 현실감을 주는 시뮬라크르의 세계 속에 발을 디디고 있다는 것이다. 제이크 설리가 아바타와 접속하면서 어떤 것이 꿈이고 어떤 것이 현실인지 또 어떤 존재가 진짜 자신인지 헷갈리게 되는 상황은 사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매일 느끼는 것이면서 어쩌면 앞으로 영상이 우리에게 제시할 유토피아이자 디스토피아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제이크의 선택이 현실이 아닌 가상에 있었다는 것. 카메론 감독이 연 것은 바로 이 현실과 가상이 공존하는 '판도라의 상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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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vatar[아바타](2009) by. 20th Century Fox/Lightstorm Entertainment

    Tracked from 아름다운 소녀를 위한 선물  삭제

    ⓒ 2009 20th Century Fox/Lightstorm Entertainment 오늘 아바타를 보러 갔습니다. 집 근처 영화관에서 3D상영을 한다기에 많은 리뷰어 들이 이 영화는 3D로 보아야 제맛이라는 이야기가 있어 3D로 보려고 하니 너무 비싼 영화값에 놀라서(한 편에 1만 3천원)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나다 3D상영도 조조할인이 되기에(한 편에 8천원) 조조로 보러갔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그냥 3D상영이라는 점이었습니다. IMAX..

    2009/12/20 20:18
  2. 아바타 (Avata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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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바타 감독 제임스 카메론 (2009 / 미국) 출연 샘 워딩튼, 조이 살디나, 시고니 위버, 미셸 로드리게즈 상세보기 ★★★★☆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세상의 왕'을 넘어서 '영화의 신'이 되려고 작정한 것 같다는 <아바타>를 저도 평소처럼 그저 편한 상영관에서만 감상할 수는 없는 노릇이란 생각이 들어서 - 정확히는 2D 일반 상영관에서 보고 영화가 너무 좋으면 <다크 나이트>(2008) 때처럼 IMAX나 3D 상영관에서 다시 보고 싶은 욕구가 생..

    2009/12/21 10:01

 ‘여배우들’, 진실과 설정 사이를 걸어가는 아찔한 즐거움

이재용 감독의 새 영화 ‘여배우들’에서 고현정은 ‘무릎팍 도사’에 출연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한다. ‘무릎팍 도사’를 녹화하는데 비몽사몽 간에 자신도 모르게 속내를 털어놨다는 이야기. 그녀의 일상이 인서트로 들어가는 장면에서도 막 깨어 피곤한 얼굴로 ‘무릎팍 도사’를 보며 깔깔 웃는 모습이 나온다. 그녀의 그 대사는 바로 그녀가 진짜로 출연했던 ‘무릎팍 도사’의 장면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녀는 실제로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이른바 코현정(연실 코를 푸는 고현정의 이야기에서 비롯된 닉네임)이라는 닉네임을 얻을 정도로 거침없이 솔직하고 편안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다.

영화 ‘여배우들’이 상기시키는 ‘무릎팍 도사’의 이미지는 고현정에서 윤여정으로 이어진다. 최근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무릎팍 도사를 무릎 꿇리는 입담을 보여준 그녀는 자신의 젊었던 시절을 얘기하면서 ‘장희빈’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당대에는 최고의 여배우로서 알려진 그녀였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은 자신을 잘 모른다며 “장희빈에 출연했었다고 하니까, 그런 장희빈에서 역할이 뭐였냐고 묻는 후배 연예인도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이것이 영화 ‘여배우들’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영화 속에서 김옥빈은 ‘장희빈’ 얘기를 꺼낸 윤여정에게 “장희빈에서 역할이 뭐였냐”고 묻는다.

즉 이 윤여정의 ‘무릎팍 도사’에서의 진술과 ‘여배우들’ 속에서의 대사는 기묘한 리얼리티를 구성한다. 즉 리얼 토크쇼를 주창하는 ‘무릎팍 도사’에서의 이야기가 진실이라는 것을 드러낼 때, ‘여배우들’이라는 영화 속 상황 역시 짜여진 대본의 이야기가 아니라 리얼 상황이라는 것을 말해주게 된다. 실제로 ‘여배우들’은 물론 영화적 구성이 되어 있지만, 상황만 던져주고 대본은 따로 없는 말 그대로의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그 속에서의 이야기들은 어느 정도는 설정이겠지만 분명 진실된 영역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재미있는 것은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윤여정이 해준 일련의 ‘담배 에피소드’가 이 영화와 만나는 지점이다. 윤여정은 ‘무릎팍 도사’에서 두 가지의 ‘담배 에피소드’를 얘기했는데, 그하나는 “‘가루지기’에 출연하게 된 이유가 감독이 자신의 담배 피는 손이 그토록 섹시할 수 없었다는 말에 넘어가서”라는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한 선배 앞에서 담배를 피워도 되겠냐고 물었을 때, 함께 피워주면 고맙다고 한 말에 자신이 감복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에피소드는 ‘여배우들’ 속에 그대로 들어가 있다. 윤여정은 쉴 새 없이 담배를 피워 무는데, 카메라는 의식적으로 그녀의 담배를 쥔 손가락을 분위기 있게(?) 잡아낸다. 또 김옥빈과 함께 담배를 태우는 장면을 통해 ‘무릎팍 도사’에서의 세대를 넘는 훈훈한 이야기를 실제로 보여준다.

한편 이미숙이 영화 속에서 한 “100살이 되어도 여자로서 살고 싶다”는 이야기는 지난 2월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했던 그녀의 진술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이혼한 그녀에게 “현재 교제 중인 남자친구는 없냐”는 질문에 그녀는 “아직도 자신 뒤에 뭔가 숨겨둔 남자친구가 있을 것 같아 보이는 건 아직도 나를 여자로 본다는 얘기”라며 기뻐했던 적이 있다. ‘무릎팍 도사’에서 보여준 진솔한 모습과 영화 ‘여배우들’의 솔직한 모습이 겹쳐지는 부분이다. 이러한 진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이야기는 최지우에게 가장 라이벌 의식이 느껴지는 배우가 누구냐는 질문에 중국시장을 가진 이영애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도, 또 그런 이야기를 하는 최지우에게 윤여정이 “지우는 중국시장을 지키고 나는 재래시장을 지키마”하고 말하는 장면에서도 아찔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거기에는 진실과 설정 사이를 걸어가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짜릿함이 느껴진다.

‘무릎팍 도사’가 그 한정된 세트 안에서 그토록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은 그 속으로 들어오는 인물들이 갖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영화 ‘여배우들’은 화보 촬영장이라는 좁은 공간에서의 몇 시간 동안이라는 시공간의 한정에도 불구하고, 실로 다채로운 이야기를 구사한다는 점에서 그 형식 자체가 ‘무릎팍 도사’를 닮아있다. 여배우들 간에 벌어지는 팽팽한 대결구도, 듣는 이를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촌철살인의 이야기들, 여배우 자체가 갖고 있는 독특한 아우라, 그 아우라를 깨고 나오는 소박한 모습들, 그리고 여배우라는 삶이 주는 공감의 눈물까지, 이 영화는 한 편의 잘 만든 ‘무릎팍 도사’를 연상케 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여배우라는 특수한 위치의 존재들과 우리 같은 서민들 사이의 경계를 지워버리고 한 인간으로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지점에서 ‘무릎팍 도사’를 닮은 ‘여배우들’만의 독특한 매력이 생겨난다. 이들과 함께 하는 백여 분이 이질적인 존재들을 엿보는 판타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에 대한 공감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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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더 듣고 싶어지는 그들의 하고싶은 말들 - [여배우들]

    Tracked from 컬쳐몬닷컴  삭제

    ⓒ 뭉클 픽쳐스&#13;&#10; 여배우들 감독 이재용 출연 윤여정, 이미숙, 고현정, 최지우, 김민희, 김옥빈 등 제작 뭉클 픽쳐스 2009. 한국. @ 롯데시네마 요즘 TV의 예능프로는 리얼이 대세가 된지 오래다. 기본적인 컨셉만 구성한다음, 그 안에서 실제 상황을 만들어내며 결과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대부분 예측대로 진행되는) 이야기의 전개와 그런 프로를 이끌어가는 출연진들의 입담은 여러 쾌감을 전해준다. 이제 TV에서..

    2009/12/17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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