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안 랩소디’ 흥행에는 사운드 특화관 효과도 있다

영화관에서 떼창을? 현실감이 없는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지금 현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이른바 싱어롱 상영회를 하며 실제로 벌어지는 일들이다. 스크린X가 시도한 이 상영회는 지난 6일부터 9일까지 진행된 데 이어, 호응이 이어지자 10일부터 13일까지 연장됐다. 

이런 독특한 관람 문화를 만들어내게 된 가장 큰 요인은 아무래도 이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영화가 담고 있는 퀸의 명곡들일 게다.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활동하며, 글램록에서부터 하드록, 헤비메탈, 프로그래시브록까지 다양한 장르들을 실험하며 무수한 명곡을 쏟아냈던 퀸의 명곡들을 영화를 통해 다시 듣는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프레디 머큐리부터 브라이언 메이, 존 디콘, 로저 테일러는 그대로 과거에서 데려온 듯한 캐스팅과 분장, 재연 연기는 영화를 관람하며 온전히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몰입감을 선사한다. 또 그간 음악으로만 듣던 퀸, 특히 프레디 머큐리의 이야기를 보다보면 그 독특한 음악적 색채가 어떻게 해서 탄생했는가를 들여다볼 수 있다. 자신이 가진 한계를 예술적으로 승화함으로써 뛰어넘은 퀸의 이야기는 국적과 세대를 넘어 이 영화가 공감을 주는 이유가 되고 있다. 

하지만 떼창까지 가능한 데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을 빼놓을 수 없다. 그것은 이미 시각적인 극대화를 추구해온 영화관이 이제 그 실감의 극점으로서 청각적 변신(?)을 이룬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른바 멀티플렉스들이 경쟁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사운드 특화관들은 지금까지 우리가 일면적으로 듣던 소리의 세계를 입체적으로 들을 수 있게 해주었다. 메가박스 MX관, CGV 사운드X, 롯데시네마 애트모스관이 그 사운드 특화관들이다. 

순수 국내 기술로 사운드X관의 음향시설을 담당하고 있는 소닉티어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면 스크린 뒤쪽과 천장과 측면 벽측에 입체적으로 설치된 스피커들이 여러 소리들을 분산해서 들려주기 때문에 소리의 공간감이 살아난다고 말한다. 소닉티어는 이 기술이 향후 게임 산업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사운드 특화관의 입체음향을 가장 실감나게 느낄 수 있는 장면은 영화의 시작과 끝을 채우고 있는 라이브 에이드 공연 실황이다. 1985년 에티오피아 기아 구제를 위해 세계적인 팝스타들이 기부 형태로 모여 했던 이 공연에서 퀸은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낸 바 있다. 영화는 당시 공연 실황을 거의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듯한 실감을 선사한다. 

특히 음향효과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건 카메라가 무대에서 스타디움을 꽉 채우고 있는 관객들의 환호와 떼창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서다. 사운드 특화관에서 이 장면을 보면 실제로 공연 현장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라이브 에이드 공연에 모여든 관객들의 떼창과, 이를 영화로 보고 있는 관객들이 함께 시간을 뛰어넘는 떼창으로 이어질 수 있는 건 바로 이런 기술적 기반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우리네 관객들은 특히 음악을 좋아하고, 그래서 음악영화들에 환호하는 경향이 있다. <원스>, <비긴 어게인>, <싱 스트리트>의 존 카니 감독 마니아들이나, <위플래시>, <라라랜드>, <퍼스트맨>의 데미안 셔젤 감독 마니아들이 생겨난 건 그래서다. 이런 점은 ‘귀로 보는 영화의 시대’에 더 많은 음악 영화들이 그만한 흥행 가능성을 갖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보헤미안 랩소디>가 심지어 떼창 같은 새로운 관람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처럼.(사진:영화'보헤미안 랩소디')

'창궐', 시도는 참신하지만 남는 아쉬움들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NEW)가 내놓은 영화 <창궐>과 <부산행>은 닮은 점이 있다. 우리 식으로 해석한 좀비 장르라는 점이 그 첫 번째다. <부산행>은 좀비 장르의 마니아적인 특성을 훌쩍 뛰어넘어 1천만 관객을 넘어서는 놀라운 흥행을 기록했다. 두 번째로 비슷한 건 다소 폐쇄적인 특정 공간에 집중된 좀비 장르라는 점이다. <부산행>은 영화의 대부분이 부산까지 가는 KTX와 몇몇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창궐>은 제물포항과 궁이라는 두 공간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점보다 더 흥미롭게 보이는 유사점은 서구의 좀비 장르와 사뭇 다른 좀비라는 존재에 대한 해석이 들어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좀비가 바로 민초라는 시선이다. <부산행>에서는 가족이 좀비로 변화해 결국 어쩔 수 없이 싸우게 되는 그 과정을 통해, 또 집단적으로 몰려다니며 공격하는 좀비들을 통해, 우리네 집단주의적인 문화와(나아가 군사문화가 더해진) 그로 인해 대립과 갈등이 가족 내에서도 존재하는 우리네 상황을 에둘러 담아낸 바 있다. 

<창궐>은 좀비를 ‘들에 있다고 하는 귀신’을 뜻하는 야귀로 해석했다. 그런데 야귀떼들이 보이는 습성이 흥미롭다. 야귀떼들은 갈증과 배고픔을 호소하며 눈이 시뻘개지고 결국은 가족을 포함한 사람을 습격한다. 굶주린 민초들의 생존본능이 이 야귀라는 존재의 특징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 

이들이 이렇게 된 건 영화가 처음부터 특별한 설명 없이 보여준 ‘헬조선’의 풍경들 때문이다. 왕 이조(김의성)는 힘이 없고 대신 권력을 농단하는 김자준(장동건)에 의해 휘둘린다. 그래서 그의 간계 속에서 심지어 자식마저도 역모로 몰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한다. 왕이 관심을 갖는 건 자신의 왕좌뿐이다. 그래서 야귀떼가 창궐하고 있는 제물포의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야귀가 궁으로 들어오고 왕의 측근으로 있던 조씨(서지혜)가 야귀로 변하게 되면서 궁에도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조씨에게 물린 왕이 조금씩 야귀로 변해가고, 또 이런 상황들을 이용하는 김자준의 눈빛이 점점 벌겋게 물들어가면서 야귀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이 만들어진다. 굶주린 민초들의 생존본능으로서의 야귀가 조선을 위협하는 존재들로 보였지만, 알고 보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건 왕좌의 권력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진짜 야귀들’이 궁안에 있었다는 것. 

이렇게 권력욕이 탄생시킨 야귀와 그로인해 굶주린 민초들이 변한 야귀를 구분해서 보면 이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가 ‘헬조선’과 ‘국정농단’ 같은 최근 몇 년 전 우리네 현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걸 쉽게 읽어낼 수 있다. 청에서 돌아온 왕자 이청(현빈)이 조선 땅에 발을 딛고 민초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나라냐”하고 묻는 대목은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를 더욱 명쾌하게 드러낸다. 

사실 이런 이야기 구조와 좀비라는 상징의 우리 식 해석, 게다가 조선시대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 좀비 장르를 엮어 보여주는 액션이라는 기획 포인트들은 이 작품이 우리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주목하게 만든 요인들이다. 하지만 기획과 상징적 메시지만으로 영화가 되는 건 아니다. 영화가 주는 재미는 이러한 시대적 정서를 이야기와 액션 속에 응축했다 폭발시키는 그런 섬세한 장치들을 통해서다.

하지만 아쉽게도 <창궐>은 이런 영화적 재미를 장르적으로 구현해내는데 있어서 많은 허점들을 드러낸다. 그 첫 번째는 민초들의 피폐해진 삶에 대한 공감대를 충분히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대신 좀비 장르의 특징들인 충격적인 장면들과 액션들이 채워진다. 주인공인 이청의 성장담은 이런 이야기들과 유기적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어 본래부터 엄청난 무공을 지닌 ‘슈퍼히어로’의 밋밋한 이야기로 흘러간다.

“왕이 있어야 백성도 있다”는 이야기를 뒤집어 “백성이 있어야 왕도 있다”는 결론에 이르는 그 메시지는 결코 유통기한이 지난 것이 아니지만, 이청이라는 인물이 그런 깨달음에 도달하는 과정이 너무 급작스러워 큰 감흥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물론 170억 원에 달하는 제작비, 그리고 현빈과 장동건 캐스팅이 화제를 모았고, 조금 색다른 좀비 영화를 보겠다는 그 호기심이 관객들의 발길을 잡아끄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입소문이 창궐할 지는 미지수다.(사진:영화'창궐')

'미쓰백', 거칠지만 따뜻한 한지민이라 더 매력적

아동학대의 현장을 본다는 건 괴로운 일이다. 하지만 그 끔찍한 실상을 들여다봄으로써 그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절감하게 된다는 건 가치 있는 일일 게다. 그런 점에서 영화 <미쓰백>은 우리가 언젠가 뉴스에서 짤막하지만 충격적이었던 아동학대 사건을 더 깊숙이 들여다본다. 엄마는 도망가고, 아빠는 차라리 죽기를 바라며 방치된 아이 지은이(김시아). 그 아빠의 애인은 아이를 짐으로 보며 학대한다.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허구’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지만, 그건 다만 우리가 믿고 싶지 않을 뿐이지 없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것만 보였다면 그건 뉴스나 르포이지 영화는 아닐 것이다. <미쓰백>이 영화로서 힘을 갖게 되는 건 다름 아닌 제목에 담겨진 이 영화의 주인공 미쓰백 백상아(한지민)의 시선이 담겨져서다. 그 자신도 학대당한 기억이 있는 이 주인공은 어느 날 한겨울 보기에도 추워 보이는 원피스 하나를 입고 달달 떨고 있는 아이를 보게 된다. 한눈에 봐도 학대받는 아이라는 걸 누구나 알 수 있지만, 그 누구도 손길을 내주지 않는 아이. 미쓰백이 그 아이에게 자꾸만 시선이 가게 되는 건 그 아이에게서 자신을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는 미쓰백이 자신의 삶이 더 고달파 외면하려던 아이를 점점 외면하지 못하고 결국 손을 내밀게 되며 나아가 아이를 구해내는 그 과정을 담고 있지만, 거기에는 또한 미쓰백 스스로 자신을 학대받던 아이로 방치하며 살아왔던 삶에 손을 내미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미쓰백은 아이를 구하는 것이고 동시에 자신도 구해내려 안간힘을 쓴다. 영화가 끔찍함을 넘어서 가슴 먹먹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건 바로 이 지점 때문이다. 미쓰백이 상처로 가득한 아이를 꼭 껴안는 그 장면은, “나 같은 것”으로 치부하며 스스로를 비천하게 취급해온 자신을 껴안는 장면으로 다가온다.

이 영화는 그래서 미쓰백이라는 캐릭터와 그 인물을 연기하는 한지민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우리가 지금껏 봐왔던 한지민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면 <미쓰백>의 백상아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영화는 시작부터 빠르게 백상아의 거친 일상을 잡아낸다. 한지민은 재게 손을 놀리며 다소 거칠게 갖가지 일을 하는 동작들만으로 이 인물이 가진 예사롭지 않은 삶의 편린들을 느끼게 해준다.

욕을 해대고, 늘상 담배를 입에 물고 다니고, 얼굴이고 몸이고 항상 상처 하나씩은 달고 다니는 이 백상아라는 인물은 어린 시절의 학대받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서 어찌 보면 자신의 삶을 학대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상처 가득한 지은이의 등장은 들춰내고 싶지 않던 과거의 자신을 다시금 꺼내보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그 거친 삶이 사실은 그 누구보다 따뜻함을 희구하는 마음을 가리기 위함이었다는 걸 아이 앞에 한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통해 보여준다.

이 과정은 그래서 한지민이라는 배우에게도 그간의 고정되어 가던 이미지가 만들어낸 틀을 벗게 해주는 시간들로 다가온다. 영화를 보면 볼수록 한지민에게 이런 거칠면서도 따뜻한 매력이 존재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그래서 영화 속 백상아가 지은이를 통해 자신을 구원해내듯이, 연기자 한지민은 백상아라는 캐릭터를 통해 연기자로서의 자신의 또 다른 면을 꺼내 보인다. 왜 그간 이런 매력적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가. <미쓰백>은 그렇게 한지민을 꼭 껴안으며 말하고 있는 작품 같다.(사진:영화'미쓰백')

‘협상’, 현빈이 만들어낸 독특한 긴장감과 통쾌함

제목이 <협상>이라 영화 <네고시에이터>나 일본 만화 <용오>를 떠올린 관객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테러리즘의 한 가운데 들어가 세치 혀로 놀라운 협상력을 보여주는 인물들의 이야기. 인질극을 해결하기 위해 제 몸 하나를 던지는 이들이 만들어가는 긴장감 넘치는 상황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협상>은 시작은 그런 ‘협상가’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그 끝은 의외의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영화의 핵심적인 재미의 부분이라 스포일러를 되도록 피하고 싶은 그 후반부는 이 영화가 우리 식의 해석을 얼마나 하려 노력했는가를 잘 드러내준다. 

영화 <협상>은 이미 예고를 통해 모두가 주지하고 있듯이 인질극을 벌이는 민태구(현빈)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냉정함을 유지하며 협상을 이끌어내는 협상가 하채윤(손예진)의 팽팽한 대결구도로 긴장감을 이어간다. 화상통화로 서로의 얼굴을 보며 상대방의 카드를 읽어내려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자칫 인질을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에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영화적 관습이지만 도입부분에 협상을 하는 도중 죽음을 맞이한 무고한 피해자 때문에 자책감 같은 걸 갖고 있는 하채윤은 또 다시 그런 일을 겪는 것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그와 함께 하는 경찰청장이나 국정원 측은 그에게 도움을 주기 보다는 오히려 어려움을 만들어낸다. 정보 공유를 하지 않아 생겨난 협상의 난항 때문에 하채윤은 먼저 그들부터 협상해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태국에 있는 테러범과 한국에 있는 협상가가 스크린 하나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며 협상을 해나가곤 있지만, 도대체 이 테러범이 무슨 이유로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협상가는 그 이유를 찾아내려 애쓴다. 그것이 협상의 전제조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유를 찾는 과정에서 하채윤은 의외의 진실들을 마주하게 된다.

사실 테러범과 협상가의 이야기가 추석이라는 명절 시즌에 어울릴까 싶은 의구심이 있지만, 괜찮은 액션 영화를 원하는 관객이라면 충분히 만족할만한 내용이다. 물론 허점도 적지 않다. 하지만 협상이라는 소재를 가져와 의외로 우리 식의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대목은 작은 허점들을 덮어주기에 충분하다. 

이 영화는 손예진과 현빈의 연기 변신도 볼만한 대목이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로 우리에게 사랑스러운 모습을 선보였던 손예진이 이 작품에서는 말 한 마디로 상대방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협상가로의 변신을 선보이고, 여성들을 설레게 했던 그 웃음이 테러범으로서 이제는 오싹한 긴장감을 갖게 만든 현빈의 변신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현빈의 연기는 그가 왜 그동안 해왔던 멋진 주인공의 모습에서 악역으로 변신을 도모하려 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악역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강렬함을 담아내고, 영화 전체를 긴장하게 만들어주며, 심지어 통쾌함까지 주는 그런 인물의 역할을 현빈은 멋지게 소화해냈다. 영화가 가진 부족한 부분들이 적지 않지만, 손예진과 특히 현빈의 연기는 이를 채워주기에 충분하다.(사진:영화'협상')

'안시성', 호불호 갈리는 압도적 볼거리와 약한 스토리 사이

영화 <안시성>은 지축을 뒤흔드는 말발굽 소리로부터 시작한다. 달리는 말과 창과 칼을 들고 맞붙는 당 태종의 군대와 고구려군의 치열한 전장. 살점이 잘려져 나가고 피가 튀는 그 현장이 마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상황을 고스란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재연된다. 

그 영화의 도입 부분을 채운 전투 장면은 앞으로 이 영화가 어떤 걸 보여줄 건가를 말해준다. 제목만 들어도 그 내용을 모를 우리네 관객은 없을 소재. 20만 당나라 최강의 대군을 맞아 고작 5천의 병사들로 이를 물리친 양만춘 성주가 이끈 안시성 전투가 그것이다. 

KBS 대하사극 <대조영>에서도 다뤄졌고, SBS 드라마 <연개소문>에서는 제작비 400억 중 상당한 액수를 소진시켜 결국 전체 드라마를 휘청하게 만들었던 게 바로 초반 안시성 전투 스펙터클이었다. 그 정도로 안시성 전투라는 소재를 재연해내려는 역사 콘텐츠들의 야심은 계속 있어왔다. 그러니 영화 <안시성>이 다루는 이야기는 이미 우리네 관객들이 대부분 아는 것이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재연해낼 것인가가 이 영화가 가진 관건이었다.

<안시성>이 그려내는 인물들은 다소 전형적이고 도식적이다. 백성들에게 자애로운 성주 양만춘(조인성), 그와 정치적으로 부딪치는 연개소문(유오성), 양만춘을 따르는 무사들로 부관인 추수지(배성우), 도끼를 쓰는 부월수장인 활보(오대환), 그와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를 챙기는 환도수장 풍(박병은)이 있고, 양만춘의 여동생인 백하부대장 백하(설현)와 그의 연인인 기마부대장 파소(엄태구)가 등장한다. 캐릭터 설명만으로도 그들이 앞으로 어떤 일들을 해나갈 것인가가 어느 정도는 예측 가능한 그런 인물들을 <안시성>은 배치해놓는다. 

이렇게 쉽게 전형적인 인물을 사용하고, 안시성 전투라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 소재를 가져왔다는 건, 이 영화가 주력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전투 장면의 스펙터클이라는 걸 명백히 해준다. 그래서 영화는 이야기의 재미보다는 볼거리의 재미가 훨씬 더 관객을 몰입시킨다. 특히 우리네 사극에서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공성전’을 다룬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밀고 당기는 전투의 스펙터클은 관객의 시선을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성을 부수고 들어오려는 당 태종과 이를 막아내면서 반격을 가하는 양만춘의 치열한 두뇌싸움은 흥미롭고,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공격 속에서 이를 뒤집는 전략들은 ‘전쟁 스펙터클’이 보여줄 수 있는 극점들을 보여준다. 특히 공간감을 잘 인지하게 만든 연출은 관객이 안시성에서 벌어지는 전투의 여러 국면들에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을 전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다만 이렇게 스펙터클이 강렬하게 전편에 채워지다 보니 가끔씩 전투의 소강상태에서 이어지는 드라마들이 너무 소소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이것은 인물을 다소 전형적으로 그려 놓은데서 빚어진 결과이기도 하고, 애초부터 인물을 파기보다는 전쟁의 양상에 더 집중하겠다는 영화의 전략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안시성>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영화다. 볼거리를 찾는 관객이라면 <안시성>의 시종일관 이어지는 전쟁 스펙터클이 압도적인 재미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보다 섬세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원하는 관객이라면 인물에 대한 평이한 이야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다. 다만 분명한 건 <안시성>은 극장에서 봐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영화라는 점이다. 시각과 청각이 아우러진 그 시스템 속에서 더더욱 생생하게 느껴질 수 있는.(사진:영화'안시성')

'서치'와 '상류사회' 희비쌍곡선, 좋은 영화는 관객이 먼저 알아본다

변혁 감독의 영화 <상류사회>는 시작 전부터 시끌시끌했다. 19금이니, 일본 AV배우까지 등장한 역대급 노출이니 하는 자극적인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여기에 변혁 감독 스스로 영화가 가진 의미를 이야기하는 인터뷰까지 더해졌다. 논란에 대한 해명의 뉘앙스를 가진 인터뷰였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것 역시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종의 홍보 마케팅처럼 여겨졌다. 논란과 19금이 버무려진 형태의 홍보 마케팅.

물론 홍보 마케팅이 잘못된 건 아니다. 영화가 그만한 완성도를 갖고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상류사회>는 감독까지 나서서 그 작품이 가진 의미들을 세세히 설명했어도 관객들의 마음을 잡지 못했다. 완성도도 떨어졌고, 새로움은 찾기 어려웠다. 결국 남은 건 노출뿐이었다. 관객들은 외면했고 주말 이틀 간 20만 관객을 동원해 누적 50만 관객을 기록했지만 주말 박스오피스 3위로 밀려났다.

<서치>가 미국 선댄스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했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우리가 하루 종일 들여다보며 살아가는 SNS 세계만으로 구성된 영화라는 게 일단 관객에게 참신하게 다가온다. 그게 한 편의 영화가 될까 싶지만,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는다는 걸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네 삶이 얼마나 이 새로운 세계에 포획되어 있는가를 깨닫게 만든다.

이 작품에서 아빠 역할을 연기한 존 조는 시종일관 얼굴 표정을 통해 그 깊은 감정과 아픔들을 연기해냄으로써 한국 관객들에게도 인상적인 모습을 남겼다. 우리에게는 <아메리칸 파이2>와 <스타트랙>의 술루 역할로 기억에 남겨진 배우다. 한국에서 태어나 6살 미국으로 이민해 성장한 한국계 배우다.


‘공작’, 이런 영화가 극장에 걸린다는 것만으로도 뭉클하다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선거철만 다가오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른바 ‘북풍’의 실체는 무엇일까. 어째서 선거 임박해 ‘북한의 도발’이 벌어지고 어김없이 일간지에 마치 당장이라도 전쟁이 벌어질 것처럼 대서특필되었나. 영화 <공작>은 아마도 1990년대 말 대선 과정에서 벌어졌던 이른바 ‘총풍사건’을 기억하는 분들에게는 그리 생소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당시 ‘흑금성 사건’으로 ‘북풍’의 실체가 드러났던 그 사건을.

<공작>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해석과 연출은 들어있지만 ‘흑금성 사건’의 현실적 자료들의 대부분이 그대로 담겨 있다. 워낙 흑금성이 실제로 해온 대북 공작 이야기 자체가 드라마틱해 특별한 이야기를 첨가하지 않아도 충분히 관객들을 몰입시킬만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액션이 있는 영화도 아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보게 만드는 힘은 그 실제 이야기에서부터 나온다.

북핵 위기가 점점 커지고 있는 시점에 대북 공작을 위해 목숨을 걸고 뛰어든 박석영(황정민)은 사업가로 위장해 북한의 외화조달을 책임지고 있는 간부 리명운(이성민)을 만난다. 그리고 실제로 대북사업으로 진행되었던 남북 합작 광고 사업을 두 사람은 공조해 진행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박석영은 본래의 목적이었던 영변의 핵시설을 들여다보려 노력하고, 북한의 정보들을 안기부에 넘기는 일을 동시에 수행한다. 

<공작>의 팽팽한 긴장감은 사업가로 위장해 북한까지 들어가 김정일 당시 위원장까지 만나게 되는 박석영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일 분 일 초들이 만들어낸다. 그와 함께 김정일의 허락을 받아내 사업을 진행하게 되면서 공동의 운명에 처하게 되는 리명운은 박석영과 기묘한 동지적 관계를 맺게 된다. 남과 북으로 서로 다른 위치에 서게 되지만 ‘새로운 남북관계의 시대’를 희망하는 두 사람의 의지는 그들을 위협하는 양국의 세력들(?)과 대결하게 만든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건 처음에는 박석영와 리명운이라는 인물을 통해 남북이 대결구도로 등장하지만, 차츰 두 사람은 공동운명체가 되어가고 대신 남북 각국의 또 다른 세력들이 그들을 위협하는 존재로 바뀌어간다는 점이다. 북한의 리명운을 위협하는 건 정무택(주지훈)으로 대변되는 군부세력이고, 남한의 박석영을 위협하는 건 엉뚱하게도 대선이 불리해지자 북풍을 조작하려는 정치인들과 안기부의 공조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선은 그래서 이 영화의 중대한 변곡점을 만들어낸다. 북풍을 조작하면서까지 대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밀어내려 했던 정치세력과 안기부는 그가 당선됨으로써 오히려 위기를 맞게 된다. 이른바 ‘총풍사건’이 드러나고 당시 북풍 공작을 했던 안기부 요원은 검거되며, 안기부는 국정원으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다 알고 있듯이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남북 정상 회담을 제안한다. 그렇게 남북관계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됐던 것.

<공작>의 신랄함은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특정 정치세력을 위해 북풍 공작까지 감행했던 시대의 어둠을 정조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기 전까지 또 다시 재연되고 있던 상황들이다. 김대중 정권에서부터 노무현 정권까지 이어지던 대북정책은 이명박 정권에서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지며 과거의 모습으로 퇴행해버렸던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작>이 남북 광고 합작을 계기로 남측의 이효리와 북측의 조명애가 만나는 장면과, 그 장소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박석영과 리명운의 모습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위원장이 만나던 장면과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는 장면으로 오버랩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공작>은 시대의 씁쓸함을 정조준하는 그 신랄함과 동시에 남북이 마주잡은 그 손의 훈훈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보기 드문 수작이다. 무엇보다 이런 영화가 극장에 걸릴 수 있는 시대를 만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뭉클해지는.(사진:영화'공작')

‘미션 임파서블6’, 쫀쫀한 이야기에 맨몸 액션 더해지니 안 될 리가

<미션 임파서블 : 폴아웃>은 이 시리즈의 6번째 작품이다. 보통 1편이 성공하면 속편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속설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이건 영화와 영화관이 그만큼 대중들에게 하나의 일상적인 여가로 자리 잡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속편에 대한 굉장한 기대감보다는 어느 정도의 기대가 충족되면 만족하는 관객들이 많아진 것이다. 

그럼에도 무려 6편이나 계속 나온 <미션 임파서블>이 이번 작품에서도 성공을 거두고 있는 건 확실히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건 마치 한 때 냉전시대의 만들어졌다 하면 공전의 히트를 치곤했던 ‘007 시리즈’를 보는 것만 같다. 냉전시대가 지나고 이제 테러리즘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007 시리즈도 고개를 숙였지만, 그 자리를 <미션 임파서블>이 차지하고 있는 듯한 그런 느낌.

하지만 <미션 임파서블>은 그 내적으로도 충분히 성공 잠재력을 가진 콘텐츠다. 이미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초까지 TV시리즈로 방영되며 화제가 되었고, 1980년대 말 리메이크될 정도로 <미션 임파서블>의 이야기 구조는 액션 장르에 있어서 하나의 교범으로 자리 잡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특유의 긴박한 OST 음악과 함께 타들어가는 심지로 표징되는 ‘시한폭탄’ 이야기 구조다.

시나리오 작법의 기본이 되어 있는 시한폭탄 설정은 이야기에 긴박감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자칫 흐름이 느슨해지는 것들을 잡아주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이번 <미션 임파서블 : 폴아웃>의 경우도 바로 이런 장치를 쓰면서 이야기는 ‘기-승-전-결’이 아닌 ‘전-결-전-결’ 구조로 빠르게 흘러간다. 플루토늄 3개가 사라지고 그 중 하나를 찾아냈지만 나머지 2개를 찾기 위해서는 희대의 테러리스트를 에단 헌트(톰 크루즈)가 직접 구해내야 한다. 

궁극의 큰 미션이 플루토늄급의 시한폭탄 구조로 장착되어 있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미션들이 작은 시한폭탄으로 놓여져 있다. 에단 헌트 앞에 놓여진 너무 많은 시한폭탄들은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미션 임파서블’이다. 그런데 그건 에단 헌트 혼자였을 때의 이야기다. 그에게는 그와 함께 하는 오래된 동료들이 있다. 그들이 팀을 이뤄 불가능할 것 같은 시한폭탄들을 해체해가는 이야기. 무려 2시간이 훌쩍 넘는 런닝타임을 갖고 있지만 영화가 시작하고 어느새 끝 지점까지 도달하는 ‘순삭’을 경험하게 되는 이유다. 

여기에 액션 영화의 핵심이랄 수 있는 리얼한 액션 신들이 더해진다. 그 위험천만한 액션들을 직접 배워 소화해내는 톰 크루즈의 몸 사리지 않는 투혼은 <미션 임파서블>이 시리즈를 더해도 계속 관객에게 신뢰를 주는 중요한 힘이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넘고, 아슬아슬하게 헬기에 매달리고, 보기만 해도 아찔한 헬기조종이 톰 크루즈의 온 몸으로 수행될 때 관객들은 “저거 실화냐”며 손에 땀을 쥘 수밖에 없다.

물론 영화를 보러가는 일에 대한 기대감 자체가 과거만큼 크지 않고 대신 일상적인 일이 되면서 어느 정도를 만족시키면 시리즈를 보는 관객들이 많아진 원인이 있지만, 그래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연작이 계속 성공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액션 장르의 바이블이 되어 있는 이야기 구조를 충실히 따르면서, 몸을 사리지 않는 실제 액션을 더하니 안 될 리가 있을까.(사진:영화'미션임파서블 폴 아웃')

"잘 사는 게 복수여".. '변산' 이준익 감독이 던진 메시지

이준익 감독의 신작 영화 <변산>은 ‘청춘 3부작’으로 불린다. 최근 이준익 감독이 만든 <동주>, <박열>에 이은 청춘의 초상을 담은 작품이란 의미에서다. 실로 <변산>에서 ‘심뻑’으로 불리는 래퍼 학수(박정민)의 낮게 읊조리다 점점 고조되고 나중에는 폭발하는 랩을 듣다보면 그 청춘의 단상이 녹아난 가사에 ‘마음으로부터 뻑이 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저 자신의 일상을 일기를 쓰듯 꾹꾹 눌러써서 만들어낸 가사지만, 그 안에는 이들이 겪는 상처와 그럼에도 넘어지기보다는 한바탕 욕이라도 해대는 그 마음의 절절함 같은 게 느껴진다. 

그래서 이 작품을 두고 ‘청춘 3부작’이라고 지칭하는 말에 이의가 있을 리 없다. 하지만 <변산>은 이준익 감독 영화 중 또 다른 특징으로 보이는 ‘음악’을 소재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음악 연작’이라 불러도 좋을 법하다. <라디오스타>가 노브레인 이성우를 출연시켜 인디 록 장르를 껴안았고, <즐거운 인생>이 락밴드 활화산으로 다시금 밴드 활동을 하는 아저씨들을 통해 밴드 음악을 담으려 했다면, <님은 먼곳에>는 베트남 전쟁에 남편을 찾아 떠난 순이가 위문공연단의 보컬이 되어 노래하는 장면을 통해 신중현의 이 명곡을 담았다. <변산>은 청춘의 이야기를 힙합 랩 가사에 담고 있다. 

한때 주먹으로 유명했고 도박에 빠져 인생을 탕진해버린 아버지 때문에 평생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어머니. 학수가 변산인 고향을 등지고 자신은 ‘서울사람’이라고 고집하며 살아가는 데는 그런 아픈 과거사가 있다. 하지만 <쇼미더머니>에 6년 간이나 지원했지만 탈락의 고배를 마신 학수는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전화 한 통을 받고 고향으로 내려가게 된다. 고향은 여전히 떠나고만 싶은 지긋지긋한 곳이지만 고교시절부터 그를 짝사랑해왔던 선미(김고은)와, 그가 좋아했던 미경(신현빈) 그리고 어렸을 때는 자신이 그토록 괴롭혔지만 지금은 잘나가는 조폭이 된 용대(고준)를 만나면서 그는 과거와 다시 마주하게 된다. 

고향 마을이 주는 느낌은 그가 고교시절 끄적여 두었던 ‘폐항’이라는 시의 두 줄 싯구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내 고향은 폐항. 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건 노을 밖에 없네.’ 흑역사로 지워버리고픈 고향은 그래서 어쩌면 청춘들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그대로 닮아있다. 가난하고 힘들어도 허세를 스웨그 삼아 살아가는 청춘들. 

그런데 영화는 그 청춘들과 폐항으로 치부되는 고향을 다독여준다. ‘보여줄 건 노을 밖에 없다’고 하지만, 그 노을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이야기한다. 어머니의 무덤가에 앉아 지는 노을을 바라보던 학수를 어느 날 귀갓길에 보게 된 선미는 그에게 빠져들고 노을에 빠져든다. 그래서 ‘노을마니아’가 되었고 그건 선미에게 또 다른 삶의 희망이 되어준다. 

처음 고향에 내려왔던 학수가 본 친구들은 그리 멋지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과 잘 어우러지지 않던 학수는 점점 그들과 가까워지고 힙합을 하고 있어 쓰지 않으려던 사투리를 조금씩 쓰기 시작한다. 영화는 처음 서울에서 만났던 촌스러워 보였던 고향 친구들이 차츰 저마다 정이 넘치는 인물들이라는 걸 보여준다. 영화 후반부에 가면 그 친구들 대부분이 그 어떤 청춘들보다 빛나는 존재라는 걸 느끼게 된다. 하다못해 조폭이 된 친구마저.

“값나가게 살진 못해도 후지게 살지는 말어.” 아마도 선미가 하는 이 말이 힘겨운 청춘들에게 또래 친구들이 던지는 메시지라면, 아버지가 학수에게 하는 “잘 사는 게 복수여”라는 말은 기성세대가 청춘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때론 너무나 화가 나 스스로를 파괴하는 삶을 선택하기도 하는 청춘들에게 진짜 복수는 ‘잘 사는 것’이라 말해주는 것. 

무엇보다 이토록 진짜 래퍼처럼 랩을 하기 위해 노력했을 배우 박정민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변산>은 충분한 값어치가 있다.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그의 랩을 듣다보면 웃다가 울다가 뭉클해지게 된다. 또 구성진 사투리로 따뜻함을 선사하며 때론 빵빵 터트리는 김고은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이준익 감독의 색깔이 늘 그렇듯이, 영화관을 나올 때면 뜨거워진 가슴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영화다.(사진:영화'변산')

'허스토리' 같은 영화가 설 자리가 없다는 건

사실 많은 이들이 영화 <허스토리>가 개봉되기 전까지 ‘관부재판’이 무엇인지조차 몰랐다고 말한다. 1992년부터 6년 간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가며 일본 재판부와 맞선 할머니들의 위대한 역사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재판 사상 처음으로 보상판결을 받아낸 재판.

워낙 소재가 소재인지라, 여기 등장하는 할머니들의 얼굴 표정 하나 손등의 주름살 하나를 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나는 영화다. 특히 부산이라는 지역에서 이 할머니들이 자신의 과거를 숨긴 채 남몰래 눈물만 삼키며 살아오셨을 그 세월의 이야기들이 전해주는 묵직한 감동은 영화가 아니라도 그 실제 사실이 주는 먹먹함을 피할 길이 없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오히려 과하게 감정선을 끌어올리는 연출 같은 걸 하지 않았다. 다소 건조하다싶을 정도로 이야기들을 병렬적으로 엮어 보여주는 <허스토리>는 그래서 관부재판의 연보를 하나씩 순차적으로 소개해주는 다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균형 감각이 있어 영화가 전하려는 역사적 사실은 더 엄밀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 영화가 시종일관 무거운 분위기로만 흘러가는 건 아니다. 그것은 이 관부재판을 이끈 원고단의 단장 문정숙(김희애)이라는 여장부 캐릭터 덕분이다. 부산여성경제인연합회라는 거창한 모임에 있던 여행사 대표 문정숙은 그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영화에 발랄한 힘을 부여한다. 그와 그의 절친 신사장(김선영)의 워맨스는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쾌한 웃음의 요소다. 걸 크러시라고 해도 좋을 법한 문정숙의 말과 행동들은 재판 장면에서 통역을 할 때 감정을 참지 못하고 폭발하는 장면에서 최고조에 이른다.

워낙 실제 관부재판이라는 사실 자체가 드라마틱한 지라 영화는 그 실제를 어떻게 제대로 전달할 것인가에 더 집중한 듯 보인다. 그리고 그 전달에 있어 가장 전위에 선 이들이 출연배우들이다. 김해숙, 예수정, 문숙, 이용녀처럼, 한 자리에 모여 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저 마다의 연기공력을 보여주는 연기자들은, 너무 과하지도 또 모자라지도 않게 그 아픈 역사를 온 몸으로 담아냈다.

김희애는 우리가 늘 봐왔던 그 ‘우아한 김희애’가 맞나 싶을 정도로 그 역할에 맞는 연기변신을 보여줬다. 커다란 안경테에 뽕이 들어간 철지난 양복을 입고 웬만한 남자들은 기만으로도 눌러 버릴 듯한 모습은 이 할머니들을 이끄는 단장으로서 든든한 느낌을 만들었다. <허스토리>라는 제목에 걸맞게 할머니들과 문정숙-신사장이 보여주는 여성들 간의 연대 역시 그토록 끈끈하게 보일 수 있었던 것도 이들의 연기가 큰 역할을 했다고 보인다.

이 영화는 관부재판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간 그 숨기고 말하지 못했던 아픈 과거를 드디어 말한다는 의미에서 최근의 미투 운동을 환기시키기도 한다. 그 분들이나 미투 운동으로 용기를 낸 분들은 어떤 의미에서 모두 생존자들이다. 사회의 편견과 선입견 때문에 자신의 아픈 과거를 말하지 못했던.

<허스토리>는 이처럼 영화적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고 또 잘 만들어진 작품인데다 의미도 남다른 작품이다. 그래서 영화 개봉 전까지만 해도 많은 관객들이 찾을 걸로 예상됐지만 결과는 영 다르다. 개봉한 지 10일 정도 지났지만 관객 수는 26만여 명에 머물고 있다. 이유는 개봉관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지난 4일 개봉한 <앤트맨과 와스프>가 좌석 수만 166만개를 가져간 반면, 겨우 개봉 2주 차를 맞은 <허스토리>는 고작 5만석을 배정받았다. 물론 영화의 상업성 자체가 다르다고는 해도 이제 퐁당퐁당 상영으로 <허스토리>는 보고 싶어도 보기가 어려운 작품이 되어가고 있다. 제아무리 자본의 논리에 따라 영화관이 선택하는 것이라고 해도 이런 작품에 조금 더 기회를 줄 수는 없는 걸까.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사진:영화'허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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