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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쾌감에 충실한 영화, '하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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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모니'(사진출처:JK필름)

‘아바타’가 전 세계 영화시장에 던진 파장은 쓰나미급이다. ‘타이타닉’이 세웠던 역대 최고 흥행 기록을 갈아 치웠고, 우리나라에서 외화로서는 이례적으로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그러고도 그 기세는 꺾이지 않아 항간에는 국내 최고 흥행 기록인 ‘괴물’의 기록까지 갈아치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중국에서는 ‘아바타’의 질주를 의식한 나머지 3D로만 개봉하는 제재를 가했을 정도라고 한다.

이 정도니 우리네 영화들이 긴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바타’의 쓰나미에 몇몇 우리 영화들은 흔적 없이 쓸려 내려가는 비운을 맞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 영화들이 차례로 개봉되면서 조금씩 ‘아바타’의 영향권을 벗어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하모니’다. 이 작품은 그다지 언론을 통한 홍보가 많이 되지 않았지만 특유의 스토리가 갖는 입소문으로 대중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도대체 ‘아바타’와는 다른 그 무엇이 ‘하모니’를 버티게 해주는 것일까.

‘하모니’는 여러 모로 보나 작년 최고의 흥행작인 ‘해운대’를 닮았다. 윤제균 감독에 의해 제작된 이 영화는 먼저 각본이 ‘해운대’를 쓴 이승연과 윤제균에 의해 만들어졌고, 감독도 윤제균 밑에서 조감독으로 일했던 강대규가 메가폰을 잡았다. 물론 ‘해운대’처럼 쓰나미가 몰려오는 거대한 블록버스터는 없지만, ‘하모니’는 ‘해운대’의 그 쓰나미를 빼고는 거의 비슷한 톤의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

각각의 사연들을 가지고 감방에 수감된 여죄수들. 그들의 이야기가 전면에 배치되어 제각각의 사연들을 들려주다가, 가족들을 앞에 둔 무대 위에 올라 하나로 묶여지는 하모니로 울려퍼지는 것은, ‘해운대’에서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이들이 쓰나미라는 거대한 사건 속에서 묶여 울림을 만드는 것과 같은 이야기 구조다. 즉 ‘하모니’에서의 쓰나미는 바로 그 무대 위에서 관객들을 향해 쏟아내는 감동의 하모니가 만들어내는 쓰나미인 셈이다.

‘해운대’가 웃기고 울리는 것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볼거리의 블록버스터보다는 감정이입의 블록버스터에 더 치중했던 것처럼, ‘하모니’도 마찬가지다. ‘하모니’의 인물들은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갖고 관객들을 웃기지만, 한 꺼풀 안으로 들어가 보면 모두 눈물 나는 이야기들을 갖고 있다. 순간적인 증오심에 죄를 짓고 감방에 들어왔지만, 그렇게 모여 한 방에 살아가는 그들은 유사가족을 형성한다. 그들이 더 끈끈해지는 것은 이 각자의 사연 속에서 뿔뿔이 흩어져 버린 가족들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모니’는 이 가족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하모니라는 점에서 공감과 소통의 쾌감을 주는 영화다.

‘하모니’를 굳이 ‘아바타’ 같은 작품과 나란히 놓고 비교하는 이유는, 이 작품이 주는 감정의 질주가 여타의 멜로드라마나 휴먼드라마와는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하모니’가 주는 감정이입은 저 '해운대'가 그랬던 것처럼 울다가도 웃음을, 또 웃다가고 울음을 터뜨리게 할 정도로 속도감이 있다. 작품의 메시지를 위해 머뭇거리거나 하는 지점을 이 영화에서는 발견하기가 어렵다. 그만큼 장르와 영화가 주는 즐거움(웃음뿐만 아니라 눈물까지)을 효과적으로 배치하는 충실함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하모니’를 우리는 굳이 ‘작품’이라고까지 말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또 혹자는 이를 ‘해운대’에서처럼 신파라고 폄하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영화가 주는 기능적인 측면을 두고 말한다면 ‘하모니’는 ‘아바타’처럼 충분한 즐거움을 주는 상업영화라고 할 수 있다. ‘아바타’가 보편적인 이야기가 갖는 공감 위에 세워진 새로운 세계에 대한 신기한 볼거리의 블록버스터라면, ‘하모니’는 가장 보편적인 가족의 이야기를 절절하게 호소하는 감정이입의 블록버스터라고 할 수 있다.

‘아바타’는 물론 현 영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말하게 만드는 그런 영화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모니’ 같은 우리 이야기가 갖는 강점들이다. ‘아바타’에 대처하는 ‘하모니’의 자세를 통해, ‘아바타’가 가진 쿨한 볼거리만큼 중요한 것이 감정을 이끌어내는 정서적인 이야기라는 것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영화의 본질이 어떤 소통의 쾌감이라고 한다면, '하모니'는 바로 그 쾌감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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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이면서도 현실감이 느껴지는 세계, '아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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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사진출처:이십세기폭스코리아)

"나는 세상의 왕이다!" '타이타닉'으로 11개 부문을 휩쓴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이제 왕을 넘어서 세상의 창조자가 되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영화 '아바타'에서 판도라라는 흥미로운 세상을 창조해낸다. 카메론의 상상 속에 만들어진 이 세상은 그 속을 채우고 있는 자연, 즉 생물이 지구와는 다르지만, 그 작동방식은 지구를 그대로 닮아있다. 울창하게 우거진 숲과 그 속에 우글거리는 동식물들,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나비라는 종족은 그 외관이 지구와는 완전히 다르지만(심지어는 공중에 떠있는 산도 있다!), 그 시스템은 아마존의 생태를 연상시킬 만큼 유사하다. 이 영화가 식민지 개척시대에 제국이 자행한 원주민 학살의 역사를 고스란히 떠올리게 하는 것은 그 생태의 방식이 같기 때문이다.

만일 이 판도라라는 세계가 가진 유사한 설정에 지나치게 천착한다면 이 영화의 일면만을 볼 가능성이 높다. 즉 '늑대와 춤을' 식의 스토리, 원주민에 동화되어가는 식민지 침략자의 이야기 정도로 단순화시킬 수 있다. 여기에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들이 보여주었던 일련의 세계를 떠올린다면 실로 영화가 가진 잡식성에 실망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미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의 거대목의 세계를 경험한 적이 있고, '천공의 성 라퓨타'의 날아다니는 대지에 경탄했던 적이 있으며, '원령공주'의 인간과 자연의 교감을 느낀 적이 있다. '아바타'는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우리가 일찍이 콘텐츠 속에서 보았던 많은 세계들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단지 이것뿐일까. 유사한 배경설정과 익숙한 스토리가 '아바타'의 전부일까. 그렇지 않다. '아바타'에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이렇게 상상으로 축조된 세계가 그토록 리얼하게 그려졌는가 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가상의 공간이지만, 실로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인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이것은 가상현실을 만들어내는 게임의 방식이기도 하다. 하반신이 마비된 제이크 설리(샘 웨딩톤)는 우주선의 긴 수면캡슐 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판도라에 도착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자신의 아바타와 '접속'하고 그 아바타를 통해 그 세계를 활보하고 다닌다. 이 설정은 게임 과정의 인터페이스를 완벽하게 재연해 보여준다. 그것은 가상세계 속으로 몰입해 들어가기 위한 워밍업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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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사진출처:이십세기폭스코리아)

게임의 가상현실은 그 몰입도가 높아지면 '매트릭스'가 일찍이 보여주었던 장자몽 같은 꿈의 재해석을 보여주기도 한다. 제이크가 잠이 들 때 아바타가 깨어나고, 아바타가 잠이 들면 제이크가 깨어나는 구조는 어느 것이 꿈이고 현실인가 하는 문제를 우리에게 제기한다. 제이크가 점점 나비 종족의 세계와 동화되어가는 과정은 가상현실이 가상에서 시작해 현실감으로 이어져가는 그 몰입의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꿈 같은 세계(물론 카메론의 꿈일 것이다)가 그저 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현실감을 주는 것은 이 영화가 가진 3D의 세계가 정교한 탓이기도 하지만 또한 그만큼 우리가 게임이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같은 현실을 모사한 가상세계 자체에 익숙해진 탓이기도 하다.

그 곳은 물론 현실세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낯선 새로운 세계도 아니다. 이 가상세계 속에는 무수한 콘텐츠들과 원형적인 문화들이 뒤섞여 나타난다. 즉 문화원형이 가진 세계들을 가져와 재해석하면서 만들어진 세계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공간이 자연과 과학, 신화와 역사, 동양과 서양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나타나는 것은 이 수많은 문화원형들을 한 세계 속에 뒤섞어 놓으면서 새로운 세계를 구축해냈기 때문이다. '아바타'의 판도라라는 가상공간 속에는 이러한 다양한 문화원형의 스토리와 설정들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낯설면서도 익숙하다. 특이한 것은 이 꿈 같은 가상공간이 디지털화된 네트워크 속의 세상처럼 그려진다는 점이다. 나비족들이 머리 끝을 연결해 자연과 교감하는 장면은 '접속'의 이미지가 강하고, '신성한 나무'는 이 판도라의 세계를 움직이는 슈퍼컴퓨터 같다. 종족들이 서로 손을 잡고 의식에 참가하는 모습은 집단적인 접속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 세계 속에서 슈퍼컴퓨터 같은 신성한 나무는 따라서 그 속의 생명체들을 움직이게 하는 대지모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네트워크 위에 만들어진 이 판도라라는 신세계는 게임의 세계이면서 애니메이션 등의 콘텐츠를 통해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온 그 판타지의 세계를 끌어 모아 재창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원본 없는 복제의 시뮬라크르를 잘 보여주는 세계라고도 할 수 있다. 가상이면서도 현실감이 느껴지는 세계. 이 게임과 현실이, 꿈과 현실이, 가상과 현실이 혼재된 판도라라는 세계는 현실을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가상을 모사한다는 점(원본 없는 복제로서)에서 3D가 가진 리얼리티의 한계를 손쉽게 넘어선다. 제이크 설리는 아바타를 통해 나비족의 모습으로 모험을 하기 때문에, 그 3D 인물 애니메이션은 실제 인간의 모습과의 비교를 허용하지 않는다. 현실을 3D 기술로 재현하기보다는 가상의 세계를 리얼하게 그려내는 것. 이것이 '아바타'가 가상현실에 현실감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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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사진출처:이십세기폭스코리아)

혹자는 이 작품 속의 세계가 어디선가 많이 본 익숙한 것들이고, 이 작품이 하고 있는 이야기가 이미 고전적인 것들이라는 것을 지적하며, 이 영화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일 이 영화가 콘텐츠라는 상상의 공간을 재료로 해서 재탄생된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본다면 아마도 달리 보일 것이다. 지금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시대가 아니라, 이른바 '문화원형'을 연구해서 그것들을 재해석함으로써 새로운 콘텐츠를 창조해내는 시대다. '반지의 제왕'이 유럽 북구의 수많은 신화들에서 이야기를 따왔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일본의 많은 민담과 설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사례를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익숙한 이야기들의 조합을 통한 또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그 이야기의 현시로서의 실감나는 세계의 구축을 '아바타'가 꿈꾸었다는 점이다. '아바타'의 세계에 발을 디디면 그것이 제공하는 익숙한 스토리텔링과 익숙한 가상의 세계들(게임이나 영화 같은) 속에서 현실감을 느끼며 즐길 수 있게 된다. '아바타'가 간파해낸 것은 우리가 이미 현실은 아니지만 현실감을 주는 시뮬라크르의 세계 속에 발을 디디고 있다는 것이다. 제이크 설리가 아바타와 접속하면서 어떤 것이 꿈이고 어떤 것이 현실인지 또 어떤 존재가 진짜 자신인지 헷갈리게 되는 상황은 사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매일 느끼는 것이면서 어쩌면 앞으로 영상이 우리에게 제시할 유토피아이자 디스토피아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제이크의 선택이 현실이 아닌 가상에 있었다는 것. 카메론 감독이 연 것은 바로 이 현실과 가상이 공존하는 '판도라의 상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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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vatar[아바타](2009) by. 20th Century Fox/Lightstorm Entertainment

    Tracked from 아름다운 소녀를 위한 선물  삭제

    ⓒ 2009 20th Century Fox/Lightstorm Entertainment 오늘 아바타를 보러 갔습니다. 집 근처 영화관에서 3D상영을 한다기에 많은 리뷰어 들이 이 영화는 3D로 보아야 제맛이라는 이야기가 있어 3D로 보려고 하니 너무 비싼 영화값에 놀라서(한 편에 1만 3천원)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나다 3D상영도 조조할인이 되기에(한 편에 8천원) 조조로 보러갔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그냥 3D상영이라는 점이었습니다. IMAX..

    2009/12/20 20:18
  2. 아바타 (Avatar, 2009)

    Tracked from Different Tastes™ Ltd.  삭제

    아바타 감독 제임스 카메론 (2009 / 미국) 출연 샘 워딩튼, 조이 살디나, 시고니 위버, 미셸 로드리게즈 상세보기 ★★★★☆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세상의 왕'을 넘어서 '영화의 신'이 되려고 작정한 것 같다는 <아바타>를 저도 평소처럼 그저 편한 상영관에서만 감상할 수는 없는 노릇이란 생각이 들어서 - 정확히는 2D 일반 상영관에서 보고 영화가 너무 좋으면 <다크 나이트>(2008) 때처럼 IMAX나 3D 상영관에서 다시 보고 싶은 욕구가 생..

    2009/12/21 10:01

 ‘여배우들’, 진실과 설정 사이를 걸어가는 아찔한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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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들'(사진출처:뭉클픽쳐스)

이재용 감독의 새 영화 ‘여배우들’에서 고현정은 ‘무릎팍 도사’에 출연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한다. ‘무릎팍 도사’를 녹화하는데 비몽사몽 간에 자신도 모르게 속내를 털어놨다는 이야기. 그녀의 일상이 인서트로 들어가는 장면에서도 막 깨어 피곤한 얼굴로 ‘무릎팍 도사’를 보며 깔깔 웃는 모습이 나온다. 그녀의 그 대사는 바로 그녀가 진짜로 출연했던 ‘무릎팍 도사’의 장면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녀는 실제로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이른바 코현정(연실 코를 푸는 고현정의 이야기에서 비롯된 닉네임)이라는 닉네임을 얻을 정도로 거침없이 솔직하고 편안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다.

영화 ‘여배우들’이 상기시키는 ‘무릎팍 도사’의 이미지는 고현정에서 윤여정으로 이어진다. 최근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무릎팍 도사를 무릎 꿇리는 입담을 보여준 그녀는 자신의 젊었던 시절을 얘기하면서 ‘장희빈’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당대에는 최고의 여배우로서 알려진 그녀였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은 자신을 잘 모른다며 “장희빈에 출연했었다고 하니까, 그런 장희빈에서 역할이 뭐였냐고 묻는 후배 연예인도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이것이 영화 ‘여배우들’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영화 속에서 김옥빈은 ‘장희빈’ 얘기를 꺼낸 윤여정에게 “장희빈에서 역할이 뭐였냐”고 묻는다.

즉 이 윤여정의 ‘무릎팍 도사’에서의 진술과 ‘여배우들’ 속에서의 대사는 기묘한 리얼리티를 구성한다. 즉 리얼 토크쇼를 주창하는 ‘무릎팍 도사’에서의 이야기가 진실이라는 것을 드러낼 때, ‘여배우들’이라는 영화 속 상황 역시 짜여진 대본의 이야기가 아니라 리얼 상황이라는 것을 말해주게 된다. 실제로 ‘여배우들’은 물론 영화적 구성이 되어 있지만, 상황만 던져주고 대본은 따로 없는 말 그대로의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그 속에서의 이야기들은 어느 정도는 설정이겠지만 분명 진실된 영역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재미있는 것은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윤여정이 해준 일련의 ‘담배 에피소드’가 이 영화와 만나는 지점이다. 윤여정은 ‘무릎팍 도사’에서 두 가지의 ‘담배 에피소드’를 얘기했는데, 그하나는 “‘가루지기’에 출연하게 된 이유가 감독이 자신의 담배 피는 손이 그토록 섹시할 수 없었다는 말에 넘어가서”라는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한 선배 앞에서 담배를 피워도 되겠냐고 물었을 때, 함께 피워주면 고맙다고 한 말에 자신이 감복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에피소드는 ‘여배우들’ 속에 그대로 들어가 있다. 윤여정은 쉴 새 없이 담배를 피워 무는데, 카메라는 의식적으로 그녀의 담배를 쥔 손가락을 분위기 있게(?) 잡아낸다. 또 김옥빈과 함께 담배를 태우는 장면을 통해 ‘무릎팍 도사’에서의 세대를 넘는 훈훈한 이야기를 실제로 보여준다.

한편 이미숙이 영화 속에서 한 “100살이 되어도 여자로서 살고 싶다”는 이야기는 지난 2월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했던 그녀의 진술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이혼한 그녀에게 “현재 교제 중인 남자친구는 없냐”는 질문에 그녀는 “아직도 자신 뒤에 뭔가 숨겨둔 남자친구가 있을 것 같아 보이는 건 아직도 나를 여자로 본다는 얘기”라며 기뻐했던 적이 있다. ‘무릎팍 도사’에서 보여준 진솔한 모습과 영화 ‘여배우들’의 솔직한 모습이 겹쳐지는 부분이다. 이러한 진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이야기는 최지우에게 가장 라이벌 의식이 느껴지는 배우가 누구냐는 질문에 중국시장을 가진 이영애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도, 또 그런 이야기를 하는 최지우에게 윤여정이 “지우는 중국시장을 지키고 나는 재래시장을 지키마”하고 말하는 장면에서도 아찔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거기에는 진실과 설정 사이를 걸어가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짜릿함이 느껴진다.

‘무릎팍 도사’가 그 한정된 세트 안에서 그토록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은 그 속으로 들어오는 인물들이 갖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영화 ‘여배우들’은 화보 촬영장이라는 좁은 공간에서의 몇 시간 동안이라는 시공간의 한정에도 불구하고, 실로 다채로운 이야기를 구사한다는 점에서 그 형식 자체가 ‘무릎팍 도사’를 닮아있다. 여배우들 간에 벌어지는 팽팽한 대결구도, 듣는 이를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촌철살인의 이야기들, 여배우 자체가 갖고 있는 독특한 아우라, 그 아우라를 깨고 나오는 소박한 모습들, 그리고 여배우라는 삶이 주는 공감의 눈물까지, 이 영화는 한 편의 잘 만든 ‘무릎팍 도사’를 연상케 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여배우라는 특수한 위치의 존재들과 우리 같은 서민들 사이의 경계를 지워버리고 한 인간으로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지점에서 ‘무릎팍 도사’를 닮은 ‘여배우들’만의 독특한 매력이 생겨난다. 이들과 함께 하는 백여 분이 이질적인 존재들을 엿보는 판타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에 대한 공감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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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더 듣고 싶어지는 그들의 하고싶은 말들 - [여배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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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뭉클 픽쳐스&#13;&#10; 여배우들 감독 이재용 출연 윤여정, 이미숙, 고현정, 최지우, 김민희, 김옥빈 등 제작 뭉클 픽쳐스 2009. 한국. @ 롯데시네마 요즘 TV의 예능프로는 리얼이 대세가 된지 오래다. 기본적인 컨셉만 구성한다음, 그 안에서 실제 상황을 만들어내며 결과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대부분 예측대로 진행되는) 이야기의 전개와 그런 프로를 이끌어가는 출연진들의 입담은 여러 쾌감을 전해준다. 이제 TV에서..

    2009/12/17 17:20

서민형 히어로가 슈퍼히어로에게 건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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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 원더우먼, 배트맨, 스파이더맨, 엑스맨, 캣우먼, 엘렉트라... 헐리우드가 가진 슈퍼 히어로들을 보면 주눅이 든다. 우리는 왜 저런 영웅이 없을까. 하지만 진짜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때 우리는 김청기 감독이라는 불세출의 천재에 의해 '로봇 태권 V'와 '똘이장군', '슈퍼 홍길동'을 가진 적이 있었다. 일본 만화가 온통 우리네 TV를 장악하던 시절, 우리의 캐릭터는 애국심이라는 지상가치를 들고 등장했다. 특히 '똘이장군'은 당대 반공이라는 불행한 시대적 상황을 전적으로 보여주며 간첩을 잡거나(간첩잡는 똘이장군), 땅굴(똘이장군과 제3땅굴)을 발견하기도 한다. 탈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는 영웅들과 결별했다.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려는 노력이 있었지만(이것 역시 김청기 감독이 주도한 것 같다. 그는 '태권V'를 부활시켰고, 박중훈 주연의 '바이오맨'이라는 영화도 만들었다.) 어찌 보면 시대착오적인 무모한 발상처럼 보이기도 했다.

반공시대는 지났지만 여전히 할리우드에서는 슈퍼 히어로들이 맹위를 떨치고 있던 시기, 우리네 영화 속에서 슈퍼 히어로들은 애초부터 만들어지지 않았다. 당시 자본이 일천하고 기술이 일천한 우리네 영화계에서 영웅들은 할리우드보다는 중국식 영웅을 따라갔다. 소위 이소룡, 성룡, 주윤발, 이연걸 하는 중국식의 히어로와 맥을 같이 한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도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들은 초능력을 가진 무협영웅을 만들어 아시아 시장과 할리우드 시장까지 파고들었지만, 우리네 영웅들은 하늘을 날아다니지도 않고 괴력을 갖고 있지도 않은 우리의 이웃 같은 인물들이었다. '돌아이'의 전영록이나 '인간시장'의 장총찬, '장군의 아들'의 김두한 같은 서민들이 사회 불의와 맞서 싸우는 정도. 그 계보는 최근의 일련의 우리식 영웅물들, 예를 들면 '홍길동의 후예'나 '전우치' 같은 작품들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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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의 후예'(사진출처:어나더라이프컴퍼니)

이처럼 슈퍼히어로에 비교해서는 왜소하지만 서민들을 향해있고, 현란하지 않지만 진정성 있는 풍자로 세상의 힘 있는 자들을 꼬집는 것은 본래 우리식 영웅물들의 전통이다. '홍길동의 후예'에서 현대판 탐관오리로 등장하는 이정민(김수로)이 피규어 마니아로서 할리우드 슈퍼히어로에 빠져있는 모습은 그 대척점에서 우리식의 영웅상을 그려내는 현대판 홍길동과 맞닥뜨리면서 흥미로운 그림을 그려낸다. 그것은 마치 서구식 근대적인 세계관이 투영된 슈퍼히어로와 우리식의 서민감정이 만들어낸 서민 히어로의 대결양상이다. 서구식 근대라는 개발과 성장의 그림이 그네들 슈퍼히어로들에 반영되어 전 세계를 날아다니는 그 시기, 그 근대의 그늘 속에서 억압되어온 서민들은 저들만의 히어로를 만들어낸다. 전 지구적 영웅이 사실은 꽤나 이데올로기적이라는 것을, 이들 서민 히어로들은 지극히 현실적인 행적들을 통해 보여준다. 지구를 걱정한다면, 당장 눈앞의 작은 현실부터 바라봐야 한다고 이들 서민형 히어로들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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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시절', 멜로를 넘어 삶을 관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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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참 좋았었지"하고 말하는 자의 눈빛은 쓸쓸하다. 시간은 그 좋았던 시절이 늘 좋은 시절이 되게 놔두질 않는다. 흘러가고 흘러가면서 시간은 심지어 그 좋았던 시절의 기억마저 마모시킨다. 그러니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건,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 바로 그 무차별로 흘러가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허진호 감독의 다섯 번째 멜로, '호우시절'은 바로 이 시간을 응시하면서 과거의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좋았던 시절을 현재진행형으로 돌려놓는 영화다.

영화는 출장을 가게 된 박동하(정우성)가 이제 막 중국 청두에 내린 비행기 안에서 시차에 맞게 시계를 돌려놓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것은 앞으로 벌어질 시간여행(?)에 대한 짧은 암시다. 그 여행은 대나무 숲길을 걸어가는 휴식 같은 여행이자, 두보의 시집을 들고 가는 사색의 여행이자, 그 길에서 우연히 만난 과거의 좋은 기억 같은 설렘의 여행이면서, 그 위로 갑자기 쏟아져 내리는 감정의 폭우 같은 여행이다.

박동하가 청두 땅에서 우연히 메이(고원원)를 만나 보내게 되는 3박4일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산의 시간과는 전혀 다른 밀도를 보여준다. 그 3박4일 속에는 박동하와 메이가 과거로 묻고 살아가는 미국 유학 때의 좋은 시절이 들어있고, 그 이후 어찌 어찌 하다가 시를 포기하고 직장생활에 안착해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된 박동하의 시간이 들어있으며, 중국으로 돌아와 불행을 겪고 여전히 그 불행의 시간 속에 살아가는 메이의 시간이 들어있다.

영화는 이 중첩된 시간들을 박동하의 시선으로 관조하면서 삶의 어떤 깨달음 같은 것을 살짝 보여준다. 박동하와 메이가 우연히 만나게 되는 공간이 메이가 가이드로 일하는 두보초당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두보는 이처럼 이 영화의 공간이면서 두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해주는 시간이고, 또 그 공간과 시간 위에 흐르는 삶에 대한 관조이기도 하다. '호우시절'이라는 제목은 두보의 시, '춘야희우(春夜喜雨)'의 첫 구절인 '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린다)'에서 따온 것이다.

이 화두 같은 싯귀는 메이가 말장난처럼 동하에게 하는 질문, 즉 "꽃이 피니 봄이 오는 걸까. 봄이 오니 꽃이 피는 걸까."라는 말과 조우하면서, 이 두 사람의 만남과 사랑의 감정을 보다 보편적인 인간의 삶과 연결시킨다. 허진호 감독의 멜로가 여타의 멜로와 다른 점은 그 속에 남녀 간의 아주 사소해 보이는 사랑을 그려 넣으면서도 그 위에 삶을 관조하는 시간을 부여한다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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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시절(사진출처:판시네마)

'호우시절'은 그 멜로를 통한 삶의 관조라는 어찌 보면 균형 잡기 힘든 그 줄타기를 가장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영화로 보인다. 마치 출장길에서 잠시 일을 벗어나 여유로운 여행자의 마음을 만끽하는 자의 그것처럼 이 영화에 대한 허진호 감독의 시선은 충분히 어깨에 힘을 뺀 편안함이 묻어난다. 영화 내내 정우성과 고원원이라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배우들과 함께 편안하고 달콤한 여행을 떠나는 듯한 느낌이 전해지는 것은,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바로 이 허진호 감독의 편안해진 영화의 걸음걸이 탓이다.

이 선남선녀의 자연스러운 만남과 헤어짐 위에서 두보의 시는 입가에 저절로 미소를 짓게 만드는 삶에 대한 어떤 울림을 전해준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서로 다른 언어를 쓰며 각자의 삶을 살아가던 그들이 같은 시간과 공간에 서서 같은 언어를 소통하며 사랑하게 되는 바로 그 순간이, 한때 과거의 것으로 치부해두고 마모시키고 있었던 바로 그 '좋은 때'라는 것. 즉 좋은 비가 때를 알고 내리는 것이 아니라, 좋은 때가 그 비를 좋게 느끼게 하는 것이다.

'호우시절'은 바로 그 좋은 때로 우리를 인도해, 일상의 시간이 갉아버린 그 촉촉한 감성의 시간을 충분히 우리의 머리 위로 뿌려주는 영화다. 그러니 이 두 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여행은 우리의 좋은 때를 떠올리게 하는 여행이자, 현재를 좋은 때로 바꿔주는 여행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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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 입술이 너의 입술을 기억할테니까_ 허진호 감독의 &lt;호우시절&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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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과 나, 운명적 사랑? 우연?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원래는 잠깐 다니려고 했어. 첫 월급 받으면 그만두고 글 써야지 하다가 월급날이 다가오고, 또 월급을 받다보니 어느새 승진해 있고 점점 더 그만두기 어려워지더라.” 헤어졌던 두 연인이 우연히 타국에서 기적처럼 재회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행복하게 데이트 하던 중 때를 알고 내려준..

    2009/10/10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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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ver 와 Forever 사이에 점을 찍어 주고 싶다"1. 한 영화배우가 자기 시나리오의 한 구석에 적어 놓은 이 한 줄의 문장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Never는 절대적인 어감의 부정어이고, Forever는 영원을 약속하는 활짝 핀 긍정의 단어다. 그 구분되는 문자가 무엇이든 상반되는 두 단어를 떼어 놓아도 위치는 남는다. 허면 왜 점일까. 머리를 쥐어짠 결과 개인적으로 내린 결론은 이거였다. '그럼에도...' 라는 의미를 보다...

    2009/10/10 20:39
  3. 연인이라면 "호우 시절"같은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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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우 시절! 이 영화를 보면서 허진호 감독을 만나 보고 싶어 졌다. 대나무 흔들리는 소리,새 소리, 바람 소리, 빗 방울 소리, 바람 소리,물소리,자전거,꽃, 댄스,...그리고 연녹색의 봄날의 풍경! 자연의 소리를...

    2009/10/11 01:42
  4. 가끔 '호우시절' 연출하는 우리부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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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우시절(好雨時節) :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 사랑이던 우정이던 서로에 대해 느끼는 감정의 코드와 시기가 일치해야만 더 애틋하고 필요한 존재가 됨을 다시금 상기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남녀 주인공이 무척이나 잘 어울립니다. 잘생긴 정우성씨의 부드러움과 청순한 이미지의 고원원씨가 만들어낸 분위기는, 잔잔하고 차분한 전달임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설렘을 동반하며 맑다는 느낌을 줍니다. 영화는, 남녀주인공이 함께했던 유학시절에 대..

    2009/10/16 22:53

 '내 사랑 내 곁에'의 진정성을 만든 배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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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kg이라는 살인적인 감량.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몸. 심지어는 미이라 같다는 말까지 들은 김명민의 바짝 마른 몸에서는 눈물 한 방울 나오는 것조차 신기할 따름이었다. 루게릭병 환자 백종우 역을 하면서 그는 보통 사람과는 다른 중력을 견뎌내고 있었다. 손가락 하나 들어올리기가 어렵고, 얼굴에 달라붙은 모기 한 마리 쫓아내지 못하는 이 잔인한 병은 고단하고 힘겨운 육신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김명민이 왜 그런 몸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는지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그는 이 영화의 다른 중력을 만들어내고 있었으니까. 자칫 눈물의 신파로 번져나갈 수 있는 어수룩한 루게릭병 흉내로는 이 병이 갖는 눈물의 진정성을 보일 수 없었을 테니까.

이처럼 이 영화에서 김명민에 대한 주목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김명민만 있는 것이 아니다. 먼저 주목할 만한 연기자는 상대역인 하지원이다. 그녀는 점점 히스테릭해지는 백종우의 짜증을 다 받아내면서 웃음 뒤에 눈물을 삼키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손 하나 움직일 수 없는 백종우를 즐겁게 하기 위해 병실에서 핑클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은 백종우가 가진 무거운 중력의 세계 속에 한 줄기 깃털 같은 미소를 만들어낸다. 다리를 다친 장의사였던 아버지, 장례지도사라는 직업은, 죽음을 공기처럼 마시면서도 밝게 살아가는 그녀가 왜 백종우 앞에 갑자기 나타나 사랑을 '불태우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그녀의 눈물은 한 사랑하는 남자 앞에서의 한 여자의 눈물이면서, 동시에 그 죽어가는 인간을 바라보는 인간으로서의 눈물을 보여준다.

이 영화가 단지 백종우와 이지수(하지원)의 슬픈 러브스토리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루게릭병이라는 소재를 통해 인간애를 다루는 것이라는 점에서, 김명민과 하지원 이외에 같은 병실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은 조역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주연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눈에 띄는 인물은 개그맨에서 묵직한 연기로 돌아온 임하룡과, 삭발투혼까지 벌인 임성민의 열연이다. 거의 시체처럼 누워있는 춘자 역할을 맡은 임성민은 단 한 번 움직임을 보여줄 뿐이지만 상대역인 임하룡 특유의 너스레가 섞인 안타까운 얼굴과 어울리며 눈물 섞인 웃음을 만들어낸다. 아내의 죽음을 앞에 둔 자의 농담은 웃기는 만큼 눈물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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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손가인은 피겨스케이팅에서 트리플 악셀을 하다가 사고를 당해 전신마비가 된 서진희를 연기한다. 보는 이들을 심지어 분개하게 만드는 그 자연스러운 싸가지 연기는 첫 연기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 유일하게 자신을 꾸짖는 백종우와 서로 움직이지 못하는 몸을 침상에 두고 "너 이리와 봐!"하고 한 바탕 말로 싸우는 장면은 우스우면서도 움직일 수 없는 병이 가진 삶의 조건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든다. 한편 9년 동안 식물인간 상태인 남편과 그 남편을 지켜온 아내 역할을 연기한 남능미와 최종률, 그리고 수년째 식물인간 상태인 형과 그 형을 돌봐온 동생 역할의 임종윤과 임형준은 그 애증이 교차하는 환자와 환자가족의 이야기를 먹먹하게 전해준다.

이들은 모두 김명민과 하지원의 연기와 어울려 하나의 거대한 진정성을 구축해낸다. 박진표 감독은 독특한 사건을 만들어내기 보다는 이 특별한 조건에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면면을 담담하게 담아내는 것으로 이 발군의 진정성을 담은 연기를 영상에 고스란히 담아낸다. 자칫 감상의 함정으로 빠져버릴 수 있는 이 소재를 멜로가 아닌 휴머니즘으로, 눈물의 신파가 아닌 작품으로 만들어낸 것은 이 배우들의 열연과 그 열연을 과장 없이 담아낸 카메라 때문이다. 이로써 우리는 올 가을 가슴을 울리는 인간애에 먹먹해지는 카타르시스의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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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사랑 내곁에_초가을날 펑펑 울게 만든 영화

    Tracked from 완득이네 골방  삭제

    [내사랑 내곁에 2009.09.24 개봉] 떨어지는 낙엽에도 가슴이 스잔해지는 느낌이 드는 초가을 이맘때쯤... 어떤 때는 그냥 펑펑 울고 싶을 때가 있다. 일상을 잠시 놓고 사는게 힘드노라 중얼거리면서 그냥 한껏 울어버리고 나면 드는 그 깨끗한 기분이랄까... 눈을 크게 뜨고 참아보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체할 수 없을만큼 흘러내리는 눈물을 어찌하지 못하는 순간... 2005년 너는 내운명이라는 영화가 그랬고 두번이나 보고도 또 펑펑 울어버린 20..

    2009/09/26 22:09

'애자'의 최강희, '내 사랑 내 곁에'의 김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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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 암 판정을 받았지만 그 남은 짧은 시간마저 병치레로 자식이 고생할까 수술조차 받지 않으려는 엄마. 그 엄마 앞에서 늘 투덜거리기만 했던 딸이 억누르고 억눌렀던 눈물을 터뜨린다. 영화 '애자'의 한 장면. 전형적인 신파의 한 장면 같지만, 실상 영화를 보면서 이것이 신파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예쁘게 눈물 흘리기보다는 터져 나오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잔뜩 일그러져 심지어 못생겨 보이는 최강희의 얼굴을 보면 거기서 분명 진정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의식과 감각은 그대로인 채 근육만 마비되어 가는 루게릭병으로 투병하는 종우(김명민). 그리고 그의 앞에 나타나 끝가지 그 곁의 사랑이 되어준 지수(하지원).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의 구도는 역시 병원 소재의 전형적인 신파 같다. 하지만 김명민의 목숨을 건 연기투혼 앞에 절절한 종우의 심정은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해진다. 온 몸을 던지는 그 김명민의 연기 속에는 이미 루게릭병 환자인 종우라는 존재가 들어서 있다.

신파는 최근 들어 새롭게 하나의 흥행코드로 자리하고 있다. 1천만 관객을 돌파한 올 최고의 흥행작 '해운대'가 신파 코드와 재난 블록버스터를 적절히 조화시켰다면, 그 뒤를 따라 여름 영화 시장의 쌍끌이를 했던 '국가대표' 역시 스포츠영화에 신파 코드를 접목시켰다. 결과는 이례적이라 할 정도로 대 성공을 거두었다. 과거 신파라고 하면 먼저 고개부터 돌렸던 관객들은 왜 이런 변화를 보인 것일까.

그것은 지금의 신파들이 과거의 것과는 궤를 달리한다는 점에서 우선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눈물을 뽑아내려는 지상과제 하에 억지설정으로 일관하던 과거의 신파와는 달리, 이들 영화들은 눈물을 전제하되 최대한 자연스럽게 눈물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루게릭병에 걸려 움직일 수조차 없는 종우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 핑클의 노래를 부르는 하지원의 모습은 발랄하지만, 가슴 뭉클함을 안겨준다. '애자'의 최강희는 그 톡톡 튀는 캐릭터를 백분 소화해내면서, 신파마저도 상큼하게 만들어버리는 괴력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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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신파 코드가 대중문화의 신주류로 부상하게 된 것은 여러 모로 불황이 만들어놓은 풍경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대중들은 억눌린 감정을 풀어줄 대체제를 요구하고 있다. 끊임없이 웃던가, 아니면 울던가, 그것이 어느 것이든 가슴 속에 쌓아둔 감정이 풀어지는 느낌을 받았을 때, 관객들은 만족감을 느낀다. 무언가 사회적인 메시지 같은 것들은 상대적으로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신파는 어쩌면 이 시기에 그 본래의 뜻인 뉴 웨이브(新派)라는 의미를 갖게 될 지도 모른다. 할리우드적 볼거리가 주는 마비적인 블록버스터처럼, 우리의 눈물샘과 웃음보를 자극하는 감정의 블록버스터는 그 밑바닥에 신파가 가진 끈끈한 관계성의 실타래를 무기처럼 들고 있다.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은 바로 이 신파가 가지는 작위성을 뛰어넘어 그 눈물의 진정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아무리 작품이 그 진정성을 보여주려 한다고 해도, 그것을 구현해내는 연기자가 없다면 무용지물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애자'의 최강희나 '내 사랑 내 곁에'의 김명민은 신파를 넘어서는 진정성을 연기를 통해 보여준 배우들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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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롤러코스터, '차우'와 '해운대'

무덤을 파서 사체의 머리를 먹어치우고, 어디선가 나타나 사람을 훅 채어 게걸스럽게 뜯어먹으며, 심지어는 인가에까지 내려와 무차별로 사람들을 향해 돌진하는 식인 멧돼지는 말 그대로 괴물이다. 그 괴물을 잡으러 숲 속 산장에 모여 앉은 사람들은 비장해질 수밖에 없다. 긴박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인 듯, 캠코더로 찍힌 듯한 영상이 어지럽게 돌아가는데 순간, 캠코더를 든 사람이 말한다. "감정이 안 살잖아요. 다시 갈게요." 그러자 그 비장했던 사람들이 과장되게 연기를 한다. 객석에서는 폭소가 터져 나온다. 공포에서 순식간에 풀려진 긴장이 만들어내는 웃음이다.

괴수영화를 표방한 '차우'에서 이런 웃음은 흔하다. 살인사건이라 판단되어 시골로 수사를 온 신형사(박혁권)는 엉뚱하게도 남의 물건을 훔치는 버릇이 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행동은 장르 영화 속에서의 형사가 가진 긴장감을 해체시키면서 웃음을 몰고 온다. 포수 선후배 사이인 백만배(윤제문)와 천일만(장항선)이 심각하게 젊은 시절에 있었던 일을 가지고 설전을 벌이다가, 화를 내며 카메라 밖으로 빠져나간 백만배가 다시 돌아와 놓고 간 총을 가져가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팽팽한 긴장감은 이처럼 어리숙한 행동 하나로 해체되고 순식간에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어버린다.

공포를 기대했던 관객들은 거꾸로 기대한 만큼의 해체를 통한 웃음을 얻는다. 물론 긴박감 넘치는 멧돼지의 돌진과 그것을 피하려 달리고 달리는 인물들이 벌이는 사투는 장르 영화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다. 다만 그 과정을 지나가면서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부분을 코미디로 버무려놓은 것이 다를 뿐이다. 영화를 본 이들이 기묘한 감정에 사로잡히는 것은 이 기대감과 배반감이 동시에 어우러져 기분 나쁘지 않은 유쾌함을 주는 이 영화의 장르 변용 때문이다. 물론 혹자는 그 배반감이 너무 커 실망할 수 있겠지만 장르의 클리쉐가 파괴되는 순간을 즐기기만 한다면 의외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게 된다. 긴박감 넘치는 스릴러와 웃음을 동시에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해운대' 역시 재난영화라는 공식적인 장르에 걸맞지 않게 시종일관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영화라는 점에서 '차우'와 유사한 점이 있다. 재난영화가 가진 재난이 벌어지기까지의 과정에 들어가는 드라마를 '해운대'는 인물들이 만들어가는 다소 과장된 코미디로 채운다. '죽음 앞에 선 인간들'이라는 재난영화의 진지함을 기대하고 극장에 들어선 관객들은 시종일관 터져 나오는 주체할 수 없는 웃음 폭탄에 당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동시에 그 웃음은 의외의 수확을 얻은 것 같은 즐거움을 준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과정들을 촘촘한 웃음의 코드로 채워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구수한 부산 사투리의 사람들이 벌이는 우스꽝스러운 일상들 위로 쓰나미가 밀어닥칠 때, 블록버스터로서의 면모는 비로소 드러난다. 해운대를 삼켜버리는 쓰나미를 연출한 CG는 생각보다 자연스럽고 다이내믹하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이 볼거리를 장악하는 힘은 영화 전반부 내내 쓰나미처럼 몰아친 웃음폭탄 속에 숨겨진 인물들 간의 드라마이다. 그 드라마들이 후반부를 덮치는 쓰나미 위에 겹쳐지면서 웃음은 고스란히 눈물로 전화된다. 인물들에 대한 감정이입이 볼거리의 재미를 부가시키는 것이다.

올 여름 우리식의 블록버스터로 지목되는 '차우'와 '해운대'가 모두 웃음을 주 무기로 갖추고 장르를 변용하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 이것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차별화되는 점인 동시에, 우리식의 블록버스터에 대한 방향모색으로 읽혀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성공적인지는 아직까지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아드레날린을 자극하는 볼거리의 롤러코스터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는 달리, 이 영화들은 시종일관 웃기고 울리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연출하는 것으로 색다른 재미를 구축한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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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해운대, '한국형 재난영화'라기보단 '재난영화'

    Tracked from pa.ra.ma  삭제

    * 영화와 관련된 이미지는 '알라딘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음을 밝힙니다. 그리고 본 이미지들의 권리는 (주)JK픽쳐스, CJ 엔터테인먼트 에 있습니다. 해운대 영화 보고 왔습니다. 극장을 나오면서 남게 되는 2% 찜찜함... 도무지 떨쳐버릴 수 없는 가운데 다른 이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더군요. 역시 '설왕설래' 제가 보고 온 '해운대'와 다른 영화를 보고 온 듯한 전혀 다른 리뷰나 저런 부분은 정말 공감간다고..

    2009/07/22 08:50
  2. 차우 (Chaw, 2009)

    Tracked from 영화....그리고...  삭제

    차우 감독 신정원 (2009 / 한국) 출연 엄태웅, 정유미, 장항선, 윤제문 상세보기 무섭지 않다....긴장감이 없다....그렇지만...조금씩 웃긴다. ㅎㅎ 동막골의 멧돼지가 생각나게 하는 영화~!! 마지막 장면은..괴수..괴물영화의 전형으로...후속편을 예고하듯...새끼가 혼자 있는 장면이 나온다. 이영화도 후속편이 나올까?? 컴퓨터 그래픽이 다소 어색하지만, 그냥 기대감 없이 본다면 볼만하다. 이제 여러 영화에서 엄태웅을 봐서 그런지 엄태웅이..

    2009/08/31 12:27

우주로 가는 '트랜스포머', 시골로 가는 우리영화

'트랜스포머-패자의 역습'의 바람몰이가 심상치 않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집계에 따르면 개봉 첫날 '트랜스포머2'는 53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고 한다. 실제로 영화를 접해보면 그 이유를 실감할 수 있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빠져보았을 변신로봇에 대한 로망은, 주인공의 말 잘 듣는 오토봇들의 휘리릭 뚝딱 변신 CG가 주는 짜릿함으로 우리의 시선을 압도해버린다. 게다가 1탄에 비해 2탄은 그 시공간의 스케일이 더 커졌다. 원시시대에서부터 현재까지의 시간과, 미국의 한 동네에서 전지구로 확장되고 거기서 또 우주까지 펼쳐지는 공간은 마치 지구라는 별을 하나의 장난감 놀이하는 공간처럼 여겨지게 만든다. 영화의 압도적인 스케일이 가져온 결과다.

특히 주목해야할 것은 이 영화가 주는 감각적인 만족감이다. 거의 두 시간 반 동안을 쉬지 않고 달리는 그 속도감은 거기에 편승한 관객들을 짜릿한 롤러코스터의 세계로 인도한다. 달려 나가는 자동차들, 오토봇과 디셉티콘의 현란할 정도로 빠른 변신, 끊임없이 뛰고 또 뛰는 주인공들, 출격하는 전투기들, 탱크들, 긴박한 국방성의 움직임까지, 그 속도 있는 전개는 스토리의 앞뒤 맥락과 상관없이 어딘가 거대한 일이 벌어지고 있고 그걸 막기 위해서는 무조건 달려야 한다는 강박을 가져온다. 스토리가 주는 맥락의 재미는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엔 아드레날린을 분비시키는 효과로서의 영화가 자리한다. 이것은 사실 블록버스터가 추구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이 엄청난 물량이 투입된 판타지의 극점이며, 시각과 음향으로서의 영화 효과가 가져다주는 롤러코스터적인 감각적 만족감의 정점을 달리는 '트랜스포머2' 앞에 우리네 영화가 가진 면면은 언뜻 초라해 보인다. 하지만 진짜 그럴까. 우리 영화는 이제 이 거대한 블록버스터 앞에서 여름 영화 시장을 온전히 내주어야 하는 운명에 처해 있을까. 그렇지 않다. 우리영화가 이 거대 블록버스터에 대처하는 자세가 꽤 의미 있고 효과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거북이 달린다'는 충청도를 배경으로 한 시골형사의 탈주범 추적기를 다룬다. 영화 속에서 시골형사와 탈주범이 취하고 있는 대결구도의 뉘앙스는 이 영화가 블록버스터와 취하고 있는 그것과 유사하게 보인다. 즉 탈주범은 혼자 몇 명의 형사들을 상대할 정도로 싸움에 능하고 두뇌회전도 빠르며 대담한 반면, 시골형사는 거북이처럼 굼뜨기 그지없고 싸움도 잘 못한다. 그런 그가 탈주범을 추격하고 결국에는 잡을 수 있는 것은 돌봐야할 가족에 대한 애착 때문이다. 조금은 황당해 보일 수 있는 이 설정은 그러나 장르적 문법 속에서 우리 사회가 가진 독특한 가족중심주의와 맞아 떨어지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새로 개봉할 영화, '킹콩을 들다' 역시 이야기는 중심이 아닌 시골 변두리로 향한다. 88올림픽 동메달리스트였지만 부상으로 운동을 그만두고, 시골여중으로 내려간 역도부 코치와 역도선수로 커나가는 시골소녀들의 눈물겨운 한 판 들어올리기가 그 주 내용이다. '거북이 달린다'가 지칭하는 거북이가 토끼를 상정하는 것처럼, '킹콩을 들다'의 킹콩은 이 자그마한 시골소녀를 상정하게 한다. 즉 '거북이 달린다'의 대결구도가 마치 블록버스터와의 대결구도로 그려지는 것처럼 '킹콩을 들다'의 킹콩 역시 이 영화가 영화관에서 대적해야할 블록버스트의 뉘앙스를 풍긴다.

'트랜스포머'가 우주로 날아갈 때, 우리 영화는 시골로 내려간다. '트랜스포머'가 전 지구적인 이야기를 건넬 때, 우리 영화는 우리 이야기로 승부를 건다. '트랜스포머'가 감각적인 영화 효과에 기댈 때, 우리 영화는 감성적인 영화의 스토리와 영상에 기댄다. 과연 그 결과는 어떨까. 거북이는 토끼와 대적할 수 있을 것인가. 또 이 순박하기 그지없는 시골소녀는 킹콩을 번쩍 들어 올릴 수 있을 것인가. 화려한 '트랜스포머'의 멋진 변신 앞에서 이들이 그 성공을 쉽게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 대처하는 자세만큼은 상당히 다부진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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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포머'와 거북이의 대결, 누가 이길까

'트랜스포머 : 패자의 역습'의 졸속으로 치러진 월드 프리미어 행사가 가져온 파장이 만만치가 않다. 80분이나 늦게 도착해 별다른 사과도 없이 대충대충 치러진 행사에 취재진이 보이콧하는 이례적인 사건까지 벌어졌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행해진 졸속 행사와는 달리 화려하게 지극히 정상적으로 치러진 일본의 행사와 비교되면서, 국가적인 무시로 비화돼, 극장 보이콧을 하자는 네티즌들의 의견마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항간에는 이러한 논란 자체가 관심을 만들어 국내의 '트랜스포머' 흥행에 오히려 불을 지를 것이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이 사건은 때 아닌 한일 감정으로까지 비화되는 양상이다. 이 우리의 반응에 대한 기사가 나가자 일본 네티즌들은 노골적으로 한국의 태도를 유치하고 치졸한 대응이라는 식으로 비난하고 나섰고, 이것은 다시 우리 네티즌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트랜스포머'의 원작이 일본 것이라는 의식은 그 한일 감정의 바탕을 제공하고 있다.

물론 21세기에 대중문화에 있어서까지 애국주의라든가, 한일 감정 같은 양상으로 비화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트랜스포머'의 행사가 보여준 태도는 어쩌면 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견지하는 태도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 같아 씁쓸하다. 강자의 논리 혹은 경제의 논리 그것은 또한 블록버스터의 논리이자 미국의 논리이기도 하다. 이 단순한 오락영화 속에서도 발견하게 되는, 미국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물론 이것은 일본 원작이지만 영화 속에는 이 미국적 정서가 그대로 녹아있다)이 저 졸속 행사에서의 단면처럼 씁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이 돈의 위력이 만들어내는 현란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세계가 던져주는 유혹을 뿌리치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극장이라는 공간 자체가 블록버스터의 롤러코스터 타기에 가장 적합하게 만들어져 있는 건, 어쩌면 농구가 미국선수들의 체형에 가장 적합한 운동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똑같은 전략으로 우리네 충무로에서 만들어진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할리우드의 그것과는 조금씩 다른 체형과 개성을 갖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우리 식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이 게임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일 테니까.

그런 면에서 '거북이 달린다'는 할리우드 액션에 맞서는 우리 식의 대안처럼 보인다. 전 지구적인 배경 대신에 충청도의 한 조그마한 마을을 배경으로 삼고, 엄청난 힘을 보유한 로봇들 대신에 탈주범에게 매번 깨지고 터지는 시골 형사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 영화는 바로 그 토속적인 선택들 때문에 오히려 할리우드 액션보다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폼생폼사 하는 도시의 형사들이 보여주었던 외형을 벗어내자, 그 안에는 때론 배꼽 잡게 웃기고 때론 눈물 나게 먹먹한 한 인간으로서의 형사의 모습이 고개를 들고, 그것은 불황 정서와 맞닥뜨리며 서민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거북이 달린다'는 바로 이 작은 몸체의 느리기만 해보이는 거북이도 달린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고, 그 달리는 것이 꽤나 흥미진진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영화이며, 때론 그 거북이 걸음이 토끼 걸음을 앞지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의 영화다. '트랜스포머'의 졸속 행사로 인해 우리가 보게 된 할리우드로 대변되는 블록버스터의 실체를 목도한 현재, 거북이와 트랜스포머의 대결은 그 어느 때보다 흥미진진해졌다. 거북이는 먼저 달리기 시작했고, 곧 트랜스포머도 경주를 시작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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