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전성기 ‘1박2일’ 보는 듯, ‘신서유기6’의 익숙한 재미들

사실 어디선가 봤던 익숙한 재미들이다. 갑자기 시즌을 뛰어넘어 시즌6라 명명하고 시작한 <신서유기6>는 어찌 보면 그걸 노린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건 이 게임 예능이 가져온 게임들이 이미 KBS <1박2일> 시절이나 그 프로그램이 그 때 게임 소재를 가져오곤 했던 <가족오락관>의 그것들이기 때문이다. 

‘고요 속의 외침’은 사실 그토록 많이 반복된 게임이지만 항상 어느 정도의 웃음을 담보했다. 귀에 커다란 헤드폰을 끼우고 시끄러운 음악을 들으며 상대방에게 단어를 설명해 맞추는 게임. 시청자들은 뻔히 보이는 답이지만, 게임을 하는 당사자들은 엉뚱한 설명에 답변을 이어가기 마련이다. 어찌 보면 바보스러워 보이는 그 말과 행동들은 늘 예측 불가한 것들을 끄집어내 포복절도의 웃음을 만든다.

일본 홋카이도 후라노의 어느 숙소에서 용돈을 놓고 벌어진 이 게임에서 단연 큰 웃음을 준 건 희한한 설명 방식을 보여준 안재현과 설명을 하다 결국 화를 낸 블락비 피오다. 안재현은 홍길동을 “여기 뿅, 저기 뿅. 우리나라 영웅”이라고 설명해 강호동을 황당하게 만드는 것으로 웃음을 줬고, 피오는 처음 ‘인물퀴즈’를 하며 부담감에 맞히지 못했던 ‘도날드 트럼프’가 다시 문제로 나오자 “내가 틀린 거!”를 외쳐 갑자기 ‘자기반성의 시간’을 갖는가 하면, 절친인 송민호가 문제를 틀리자 진심으로 화를 내는 모습으로 큰 웃음을 줬다. 

다음 날 아침 기상미션도 복고풍(?) 게임으로 진행됐다. 전날 단체미션이라는 말만 듣고 은지원이 “줄넘기 아냐?”라고 얘기하고 실제로 그 미션이 단체줄넘기라는 게 나오는 장면은 이 프로그램이 얼마나 익숙한 재미들을 추구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어찌 보면 너무 많이 봤던 장면들이라 뻔하고 식상해보이지만 이번 게임에서도 역시 도드라진 건 피오 같은 새로운 캐릭터가 보여주는 재미였다. 의외로 몸 쓰는 게임을 잘하는 안재현과 달리 들어가기만 하면 실수를 하는 피오의 모습은 하나의 캐릭터로서 웃음을 주었다.

후라노의 여러 곳을 다니며 주어진 게임을 하는 방식도 <1박2일>에서 그토록 많이 봤던 것들이다. 세 대의 차로 나뉘어 한국인 기사분, 일본인 기사분, 그리고 제작진이 각각 운전하는 차를 선택해 미션을 수행하는 이 게임도 새로울 건 없었다. 그토록 많이 했던 아메리카노 복불복이 반복됐고, 그림 제목 맞히기 같은 간단한 퀴즈 게임이 이어졌다. 그리고 항상 <1박2일>이 바닷가 같은 곳에 가면 하던 코끼리코 게임도 재현되었다. 그런데 그 흔한 코끼리코 게임이지만 이를 수행하는 송민호와 피오의 모습이나, 안재현이 보여주는 의외의 몸 개그 같은 요소들이 여전한 재미를 주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번 일본 후라노에서 보여준 <신서유기6>의 게임들은 마치 <1박2일>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익숙한 재미들이고, 어찌 보면 새로울 것 없는 웃음들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웃음에 기꺼이 빠져드는 건 왜일까. 너무 많은 의미 과잉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그게 잘못된 건 아니지만, 그런 예능 프로그램들을 오래도록 보다보면 때론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싶은 마음도 생기는 법이니까. 물론 보는 이에 따라서는 예능으로서 새로움에 대한 갈증은 아쉬움으로 남겠지만.(사진:tvN)

자리만 채운 주말 드라마와 예능, 방법이 없는 걸까

한 때 일요일 밤 예능 프로그램들은 시청자들을 여지없이 TV앞으로 끌어들였다. KBS <1박2일>이 잘 나가던 시절에는 무려 4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SBS <패밀리가 떴다>도 30%에 근접하는 시청률을 냈고, MBC <나는 가수다>도 20%가 넘는 시청률을 냈다. KBS <개그콘서트>는 30%가 넘는 시청률을 내며 일요일 밤 아쉬운 주말을 보내는 시청자들을 웃음 폭탄으로 달래주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일요일 밤 프로그램들을 들여다보면 그저 틀어놓곤 있지만 그만한 즐거움을 주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이미 많은 시청층이 본방사수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10% 미만으로 시청률이 떨어졌고, 게다가 그만한 화제도 나오지 않는다는 건 프로그램들이 전반적으로 하향평준화되었다는 걸 말해준다.

KBS의 경우, 그래도 상대적으로 본방 시청층이 많이 남아있는 채널이지만, 그 채널을 채우는 프로그램들은 너무 오래되어 새로운 즐거움을 주기에는 힘에 벅찬 느낌이다. <1박2일>은 이제 찾아보는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그나마 주말 밤에 틀어놓기에 편안해서 보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무엇보다 심각한 건 <개그콘서트>다. 5%대까지 뚝 떨어진 이 프로그램은 맨 앞부분에 ‘봉숭아학당’을 먼저 선보이는 변화(?)를 보여줬지만, 웃음의 포인트를 찾아내기 어려워 그저 향수와 추억에 더 기대는 것 같은 인상마저 주고 있다. 개그 프로그램이 웃음을 주지 못한다는 건 그 존재 자체가 의심된다는 이야기다.

SBS <런닝맨>이나 MBC <복면가왕> 역시 어느 정도의 시청층을 확보하고는 있지만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내지는 못해 전성기가 지나간 프로그램이 되어버렸다. 새로 채워진 SBS <집사부일체>는 그래도 우리 시대의 사부를 찾아간다는 콘셉트가 참신한 편이지만, MBC <궁민남편>은 갈수록 시청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일요일 밤에 예능으로 출사표를 던진 tvN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주말사용설명서>는 한가락씩 한다는 김숙, 라미란, 장윤주, 이세영 등이 출연해 “어머 이건 해야 해”라는 슬로건처럼 하고픈 무언가를 시도하는 걸 보여준다고 했지만 그다지 ‘해야 할 것 같지 않은’ 너무 흔하고 익숙한 이야기들만 보여주었다. 한 때 유행했던 캐릭터쇼를 반복하는 느낌이다. 시청률은 1%대로 떨어진 지 오래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는 주말드라마도 이렇다 할 도드라진 작품을 발견하기가 어려워졌다. tvN <미스터 션샤인>이 끝난 후 방영되고 있는 <나인룸>은 tvN 드라마라기보다는 자극적인 사건들을 연달아 배치해 보여주는 전형적인 MBC나 SBS 주말드라마 같은 느낌을 준다. 빠른 사건 전개와 극단적인 상황을 연결해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려고 안간힘을 쓰긴 하지만, 어딘지 자극에만 집중한 듯 정신없어 보이는 면이 있다.

주말드라마의 마지막 보루라고 얘기하는 KBS 주말드라마도 최근 방영되고 있는 <하나뿐인 내편>을 보다보면 시간이 퇴행하고 있는 듯한 드라마의 이야기에 실망하게 된다. 전형적인 신파 구조에 ‘출생의 비밀’을 더해 놓은 이 드라마는 그래서 이제 KBS 주말드라마가 본격적으로 주 시청층인 장년 세대들의 향수를 채우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 같은 아쉬움을 갖게 만든다.

한때는 주말이 가장 볼거리가 많았던 방송 시간대였지만 어쩌다 보니 지금의 주말 프로그램들은 너무나 뻔해지고 식상해졌다. 어떤 면으로 보면 앞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과거 잘 나갔던 시절을 애써 붙들고 회고하는 듯 보인다. 워낙 TV 본방 시청층이 점점 줄어들다 보니, 남아있는 시청층들만을 겨냥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프로그램의 콘셉트도 옛 방식으로 퇴행하고 있다. 물론 모든 프로그램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주말에 오히려 볼 게 없어졌다는 시청자들의 볼멘소리가 공감 가는 대목이다.(사진:KBS)

'전참시' 박성광·임송, 이들의 관계가 어색하면서도 편안한 까닭

워낙 직장 내 갑을관계니 상하관계니 하는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어서인지 방송이 보여주는 관계는 그만큼 조심스럽다. MBC 예능 <전지적 참견 시점>은 본질적으로 보면 바로 이 관계를 관찰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매니저가 등장하게 된 건 그래서다. 연예인만을 보던 관찰카메라가, 연예인과 매니저의 관계를 들여다보게 된 것. 

<전지적 참견 시점>이 우리의 시선을 잡아끌었던 건 어찌 보면 막연히 상하관계로만 생각되어온 연예인과 매니저의 관계가 의외로 가족 같은 훈훈함이 보였고 또 프로그램에서 오히려 매니저들이 주목됨으로써 살짝 그 관계가 뒤집어지는 전복의 즐거움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유병재의 사인회에서 오히려 자신을 찾아온 팬과 더 사진을 많이 찍는 유규선 매니저나, 이영자와 함께 하면서 주목받게 된 송성호 매니저, 그리고 박성광과 임송 매니저가 화제가 된 것도 바로 이런 요소들 덕분이다.

특히 임송 매니저는 업계에 그리 많지 않은 여성 매니저라는 점, 그래서 이 프로그램에도 거의 유일하게 출연한 여성 매니저라는 점 때문에 더더욱 주목되었다. 매니저 업계에 여성들의 비율이 적다는 건 임송 매니저가 박성광과 함께 KBS <개그콘서트> 특별 출연 때문에 찾아갔다 만난 개그맨 유민상 매니저(역시 여성 매니저)를 만나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쉽게 알 수 있었다. 

여성 매니저들이 적어 같은 여성으로서의 매니저일을 하며 생기는 고민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고 말한 임송 매니저는 “그 날이 가장 힘들다”고 말해 이를 보는 스튜디오의 출연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 놀라움은 마치 매니저라는 직업이 남자들만의 영역이라고 치부해온 업계의 분위기를 새삼 드러내는 부분이었다. 

매니저라는 직업은 직장이라는 직업적 공간에서만 그 관계가 한정되는 직업이 아니다. 계속 해서 현장을 함께 다녀야 하고 필요하면 사적인 공간일 수 있는 연예인의 집에도 가야 한다. 일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의 경계가 그만큼 애매하다. 이런 영역의 중첩 때문에 서로 다른 성별로 이뤄지는 관계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영자와 송성호 매니저가 그렇고, 박성광과 임송 매니저가 그렇다. 

그런데 이 조심스러운 관계를 더더욱 조심스럽게 보여주는 이들이 바로 박성광과 임송 매니저다. 이들은 처음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부터 그 관계가 어색하다는 점 때문에 우리를 웃게 만들었다. 생각이 많은 박성광은 뭐 하나를 임송 매니저에게 얘기하더라도 극도로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찍 주차장에 도착한 임송 매니저에게 밥 먹을 시간이 없을 것 같아 올라와서 같이 밥을 먹자고 묻는 대목에서 극도로 조심스러워하는 박성광의 모습이나, 자신이 먹을 계란 프라이를 자기는 먹었다며 임송 매니저에게 먹으라고 주는 모습에서는 상대방이 부담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배려하려는 박성광의 마음이 느껴진다. 

또 <개그콘서트>에서 후배들 코너를 짜다가 어딘가 부족함 임팩트를 메우기 위해 임송 매니저가 함께 출연했으면 좋겠다는 조심스러운 후배들의 제안에 난감해하는 박성광의 모습에서도 그 배려가 느껴진다. 임송 매니저 역시 자신이 그 코너를 망칠까봐 걱정하면서도 박성광의 부탁이니 하겠다고 나서는 모습에서도 그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박성광과 임송 매니저 사이의 관계에서 늘 느껴지는 약간의 어색함은 ‘적절한 거리두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두 사람을 하루 종일 함께 움직여야 하는 관계지만,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의 경계를 그만큼 존중하려 애쓴다. 그것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그 너무 멀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는 선에서의 관계는 그래서 보는 이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구석이 있다. 

물론 세상의 모든 관계들이 이러한 ‘경계 존중’을 바탕으로 한다면야 얼마나 좋을까. 만일 그렇다면 최근 뉴스에 그토록 많이 등장하고 있는 갑을 관계의 권력을 유용한 많은 폭력들이 사회적 의제로까지 등장하지는 않았을 게다. 박성광과 임송 매니저의 그 관계를 통해 보듯이, 우리네 사회에서 가족관계든, 직장 내 상하나 동료 간의 관계든, 나아가 부부나 연인 사이의 관계에서도 ‘경계 존중’의 문화가 있다면 지금 현재 우리 사회가 처한 그 많은 관계의 문제들이 상당부분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사진:MBC)

‘알쓸신잡3’, 우리 시대에 맞는 논개 해석이 필요한 까닭

“우리가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논개라는 한 인간의 선택에 대해서 우리가 들어온 이야기가 국가주의 서사라는 거예요. 국가라는 어떤 권위 있는 인간조직을 위해서 한 여인이 국가를 위해서 뭘 한 것과 같이 스토리를 만들어낸 이 서사가 왠지 불편한 거예요.” 

진주에서 펼쳐진 tvN 예능 <알쓸신잡3>에서는 그 지역에서 빼놓을 수 없는 논개 이야기가 화제로 올랐다. 우리에게는 왜장을 껴안고 강물로 뛰어들었다는 기생으로 알려진 이야기. 그래서 진주성의 촉석루에서 보이는 진주교의 다리 밑으로는 논개가 왜장을 껴안을 떼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끼었다는 황동가락지 모양이 조형물로 들어가 있었다.

한 때는 이 논개의 이야기가 마치 국민이라면 누구나 숭앙해야할 애국적 서사로 읽혔던 적이 있었다. 사실 남아있는 사료도 거의 없어 일종의 해석에 의해 이야기가 더해진 논개 서사는 조선시대에는 충효를 하나의 근간으로 보던 유교적 서사로 이야기되었고, 이승만 정권 때부터는 국가주의 서사가 더해졌다. 하지만 이러한 국가주의 서사는 이제 지나간 유물로 여겨진 지 오래다. 그러니 하나의 해석일 뿐이지만 마치 사실 자체인 것으로 받아들이지는 논개의 국가주의 서사가 불편하게 다가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여성이 해야 될 일은 국가를 위해서 하루 종일 밥도 하고 그러면서도 국가를 위해 애국하고 죽을 수 있는 이런 사람 되라는 식의 어떤 국가주의가 이 사건을 다루는 거예요. 저는 언제나 생각하지만 누군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에 대해서는 진실을 외부에서 알기는 거의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아주 복합한 감정상태였을 거고 그런 것을 이제 우리가 와서 지금 21세기 2018년인데 지금 우리가 이 논개를 놓고 다시 애국적 시각, 국가주의 시각으로 볼 것인가? 그건 아닌 거 같아요. 그 진실을 추구하는데 새로운 사실이 없다면 이제 우리 시대의 잣대로 한 인간으로서 그렇게 보는 게 우리의 시각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건 사실 끔찍한 사건이거든요. 이건 아름다운 일도 아니고 멋있는 일도 아니고 한 개인으로 보면 정말 끔찍한 일이에요. 그걸 이제 국가를 걷어내고 봐야할 때가 되지 않았나.”

김상욱 박사는 이 사건을 국가주의가 아닌 한 개인에게 맞춰져 다시금 들여다봐야하지 않겠느냐고 역설했다. 거기에 대해 김영하 작가 역시 똑같이 공감했다. 논개의 이야기는 “국가를 위해서 개인을 희생해야 되는 걸 또 국가를 위해서 아낌없이 몸을 바쳐야 되는 걸 칭송하는 이야기”라는 것. 김영하는 이제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며, 과거 <심청전>은 효녀 이야기로 그려졌을지 모르지만 지금으로 보면 ‘인신매매’ 풍습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논개의 이야기가 현재의 우리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지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국가주의 서사라는 점이고 또 하나는 여성을 바라보는 비뚤어진 시각이 들어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다른 관점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에는 충을 집안에서는 효를 하나의 동일한 근간으로 보는 유교적 사고관에 기반한 관점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후대에 이르러 가부장적 사고관으로 굳어지게 된 이유가 되었다. 국가를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그 사고관은 가족에서는 여성과 아이 같은 약자가 남성과 어른을 위해 희생하는 서사를 정당화했다. 

유시민은 아이에게 <무덤 속의 산삼>이라는 동화책을 읽어주다 반성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딸이 갖은 고생을 해서 산삼을 구해와 아픈 아빠를 구해낸다는 이야기였는데, 그걸 읽어주고 아이에게 “너도 아빠가 아프면 그렇게 해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아이가 너무나 힘들어했다는 것이다. 유시민은 결국 반성하며 “그래 너는 아빠가 아파도 그렇게 할 필요 없어. 아빠가 병원 가면 돼”라고 말했다고 한다. 

농담처럼 들리지만 이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주입된 ‘교훈’이 그걸 그대로 당연히 받아들이게 된 이들에게는 얼마나 큰 고통을 줄 수 있는가를 말해주는 대목이었다. 김영하는 조선시대 사람들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었던 유교적 세계관의 끔찍함을 ‘삼강오륜 행실도’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며느리가 시아버지가 아프면 허벅지살을 베어서 먹이고, 아픈 아버지를 위해 아이를 삶아 먹였다는 식의 “호러가 따로 없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는 것. 

유시민이 “불편하다”고 지목한 논개의 국가주의 서사는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남긴다. 그것은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들어온 많은 이야기들이 사실은 어떤 시대착오적 관점들을 여전히 담고 있음으로써 그 자체로 우리를 억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똑같이 전해져 내려오는 고전의 이야기라도 현재 우리의 시각에 맞게 재해석하고 관점을 새롭게 하는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알쓸신잡3>는 논개를 두고 벌어진 지식수다를 통해 들려주었다.(사진:tvN)

‘손 더 게스트’를 만든 빙의 연기자들, 윤종석, 전배수, 유승목...

한 마디로 올해 최고의 역대급 스릴러가 아니었나 싶다. ‘한국형 엑소시즘’을 표방한 OCN 드라마 <손 더 게스트>가 종영했다. ‘무서워 못본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공포와 스릴러를 넘나들며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빙의라는 소재를 가져와 공포 스릴러를 효과적으로 만들어내면서도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들까지 끄집어내려 했던 시도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 작품의 진짜 수훈갑은 그 모든 것들을 진정으로 가능하게 한 빙의 연기자들이었다. 

박일도라는 큰 귀신에 빙의된 인물들을 연기한 연기자들은 진짜 말 그대로의 ‘빙의된’ 연기를 보여줬다. 어린 화평의 삼촌 역할로 출연해 시작부터 확실한 몰입감을 만들어냈던 한규원, 최신부 역할로 소름 돋는 빙의자의 끔찍함을 보여준 윤종석이 이 드라마의 색깔을 확실히 보여줬다면, “박일도-”하고 외치는 모습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전배수는 이 배우 자체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KBS <오늘의 탐정>에서도 소름 돋는 연기를 보여준 전배수는 아마도 향후 주목받는 배우가 될 거라 여겨진다. 

폐차장 주인으로 등장해 동생이 빙의자인 줄 오인하게 만들고 결국 빙의된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시청자들을 오싹하게 만든 이중옥, 임산부 빙의자 역할을 놀랍게 해낸 김시은, 귀신을 보는 영매 역할을 연기한 명불허전 아역배우 허율, 윤화평의 아버지로 빙의된 부마자로서의 끔찍함과 부성애의 뭉클함을 동시에 선사한 명품 조연 유승목, 강길영(정은채)의 파트너로 따뜻한 형사지만 빙의되어 그를 공격하는 장면으로 소름 돋게 만들었던 박호산 등등. <손 더 게스트>는 그 빙의 연기를 해낸 많은 연기자들의 놀라운 연기가 빈틈없이 채워진 드라마였다. 

그 중에서도 뒤통수를 때리는 역대급 연기를 보여준 인물들은 빙의된 것도 아니지만 빙의자 그 이상의 사이코패스 연기를 보여준 박홍주 역할의 김혜은과, 처음부터 최윤의 옆에서 그를 지켜주는 줄 알았지만 악마가 들어온 모습으로 ‘어둠의 미사’를 주관하는 연기를 보여준 양신부 역할의 안내상, 결국 박일도였다는 것이 드러난 윤화평의 할아버지 역할의 전무송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박일도를 받아들여 봉인해버린 윤화평 역할의 김동욱이 그들이었다. 

이중에서도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이 박일도임을 드러내는 결코 쉽지 않은 연기를 소화해낸 전무송과, 그 귀신을 받아들여 봉인하려 하지만 오히려 박일도에게 지배당하기도 하는 모습을 오가는 연기를 해낸 김동욱은 역대급 엔딩을 가능하게 해준 장본인들이다. 끝내 최윤(김재욱)을 지켜내며 혼자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장면과, 한쪽 눈을 잃었지만 그래도 살아남아 재회하는 장면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되돌아보면 <손 더 게스트>는 좋은 드라마 한 편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연기자들이 숨은 공헌을 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 작품이었다. 그 많은 빙의자들은 진짜 말 그대로의 ‘빙의 수준의’ 연기 몰입을 해냈다. 그리고 이것은 <손 더 게스트>는 해외의 그 어떤 엑소시즘 장르나 스릴러와도 차별화되는 지점이었다. 그 어떤 물량 투입이 만들어내는 스릴러와는 확실히 다른 ‘역대급 인력 투입을 통한’ 스릴러의 완성. 어쩌면 여기에 우리네 스릴러의 강점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그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었다.(사진:OCN)

‘손 더 게스트’가 그리는 분노가 지배한 사회의 혼돈

갈수록 충격적이다. 한 사람씩 빙의되어 벌어지는 사건들을 하나씩 다루던 OCN 수목드라마 <손 더 게스트>는 이제 한 마을을 뒤덮어버린 빙의자들이 마치 좀비 떼처럼 창궐하는 이야기로 그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 

그 최종 목적지는 박일도 큰 귀신이 처음 빙의자를 낳았던 바닷가 마을 계양진. 구마의식을 하며 점점 몸도 영혼도 어둠에 피폐되어가는 신부 최윤(김재욱)과 정직 징계를 받게 된 형사 강길영(정은채) 그리고 부상을 입은 채 할아버지를 찾아 나선 윤화평(김동욱)은 함께 그 계양진을 찾았지만 이미 마을을 뒤덮어버린 양신부(안내상)의 어둠이 사람들을 부마자로 만들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하고 있었다. 

슬쩍 최종회에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깔린 복선에는 최윤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구마의식을 하려할 거라는 것과, 그를 구하기 위해 영매인 윤화평이 스스로 자신의 몸에 박일도를 봉인한 채 죽음을 택함으로써 영원히 그를 제거하려 할 거라는 암시가 담겼다. 결국 좀비 떼처럼 변한 부마자들 하나하나를 상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양신부를 해결하는 것만이 마을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됐다는 것. 

거의 공포에 가까운 너무 충격적인 이야기 전개 때문에 시청자들 역시 계속 벌어지는 사건에 빙의된 채 볼 수밖에 없게 되었지만, 한 걸음 물러나 <손 더 게스트>가 무얼 이야기하려 했는지를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도대체 <손 더 게스트>는 이 한국형 리얼 엑소시즘을 표방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어떤 문제들을 건드린 걸까.

그 단서가 되는 건 여기 빙의된 자들이 벌인 일련의 충격적인 사건들 속에서 찾아질 수 있다. 한 집안의 가장이 “돈” 얘기만 하는 아내와 딸들 앞에서 갑자기 변해 골프채를 들고 폭력을 휘두른 사건이나, 약자들을 지켜야할 경찰이 오히려 창문을 깨고 들어와 폭력을 저지르는 장면, 주유소에서 툭하면 구박하고 손찌검을 하는 사장을 죽인 아르바이트생이나, 고장 난 버스를 고치는데 짜증을 내며 비하하기까지 하는 손님들을 모조리 죽인 관광버스 운전기사 같은 이들을 촉발시킨 ‘어둠’은 무엇일까. 

그건 우리가 가끔씩 신문 사회면에서 “어떻게 저런 짓을 저질렀지”하고 다시 보게 되는 사건들 속에서 발견되곤 하는 것들이다. 갑자기 툭 터져 나온 것처럼 보이지만 그 사건의 이면 속에는 우리네 사회 속에서 보이지 않게 조금씩 누적되며 쌓여온 ‘분노’의 감정들이 어느 비등점을 넘어 폭발하며 생겨난 일들이다. 너무 끔찍한 일들이라 인간이 한 일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그 사건들을 <손 더 게스트>는 그래서 ‘빙의’라는 상징적인 소재로 풀어내려 했던 것이다. 

최종회가 펼쳐질 계양진 마을의 좀비 떼처럼 들고 일어난 빙의된 부마자들의 모습은 그래서 꽤 상징적인 장면들이다. 분노가 지배한 우리네 사회가 맞닥뜨릴 수 있는 혼돈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마지막 회에 담겨지게 되겠지만 분노는 제압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보다는 누군가의 사랑이 전제된 숭고한 희생 같은 것들이 오히려 해결책이 된다. 분노와 악의 화신이 된 양신부를 막기 위해 제 한 몸 기꺼이 던지려는 윤화평과 최윤 그리고 강길영의 희생은 그래서 이 드라마가 말하려는 주제의식에 해당하지 않을까. 충격적인 이야기 속에서도 <손 더 게스트>가 담은 메시지가 만만찮게 다가온다.(사진:OCN)

‘골목식당’을 통해 백종원이 창업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SBS 예능 프로그램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처음 백종원이 성내동 만화거리의 식당들을 찾아갔을 때만 해도 이런 변화가 가능할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분식집은 가족들이 음식 맛있게 한다는 소리만 듣고 덜컥 음식점을 인수했다가 장사가 안돼 가게를 내놓은 상태였고, 피맥집은 장사의 개념 자체가 없어 피자집을 할 것인지 맥주집을 할 것인지조차 그 정체성의 혼돈을 겪고 있었다. 그나마 장사를 하고 있는 중식집은 재료부터 조리법까지 세세한 부분들이 지켜지지 않아 특징적인 맛을 내지 못하고 있었고, 이 골목의 에이스로 보인 파스타집은 퓨전파스타 하나를 빼놓고는 특별한 맛이 없었다. 

도무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너무 많은 문제들을 가게마다 갖고 있었지만 백종원은 각각의 가게에 맞는 솔루션을 갖고 조금씩 변화를 유도해갔다. 분식집은 아예 색다른 레시피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아주머니가 김밥을 마는 기술이 능숙한 걸 보고는 멸치 국물을 내고 그렇게 우려낸 멸치를 다시 김밥으로 활용하는 놀라운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멸치를 국물용으로만 쓰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똥만 빼고 전부 끝까지 쓰는 방식이니 원가를 줄일 수 있었고 따라서 가격은 낮추면서 좋은 품질의 음식을 내놓을 수 있었다.

흥미로운 건 그렇게 새로운 레시피를 전수받은 아주머니가 그 김밥에 어묵이나 맛살을 추가했던 걸 백종원이 빼는 게 훨씬 낫다고 말했다는 점이다.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다 넣은 김밥이 더 낫다고 해서 그렇게 했다는 아주머니의 말에 백종원은 당연히 다 넣는 걸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좋아한다고 말하며, 하지만 실제 맛에 있어서는 더 넣는다고 더 좋아지는 건 아니라고 했다. 결국 기본을 지키는 것이 맛을 내는 비법이라는 것. 그러고 보면 국수 맛을 냈던 것도 전통적인 방식인 멸치를 충분히 우려내 국물의 깊이를 만드는 그 기본에 있었다. 

파스타집은 이미 파스타를 만드는 기술을 충분히 갖고 있는 가게인 만큼 백종원이 제시하는 솔루션도 달랐다. 그냥 파스타가 아니라 좀 더 특징적인 파스타, 즉 한국적인 맛이 들어간 퓨전파스타를 시도해 보라고 한 것. 하지만 일주일 간 미션을 받고 청년들이 준비한 파스타는 한 마디로 ‘과유불급’이었다. 시식단으로 초빙한 이태리인들은 이들이 내놓은 흑임자 파스타 같은 퓨전이 전혀 파스타로서의 기본이 되어있지 않다며 한 번 맛을 보고는 입을 닦아버리곤 했다. 

백종원은 “파스타를 너무 무겁게 생각하는데 그 편견을 깨보자”고 직접 나서 기본적인 알리오올리오에 열무와 고사리만을 각각 넣어 변주를 한 파스타를 내놓았다. 혹평을 하고 돌아서던 이태리인들은 이 맛을 보고는 금세 “개선됐다”며 놀라워했다. 결국 파스타집 청년들은 너무 어렵게 생각했다는 걸 깨닫고 퓨전을 시도한다고 하더라도 기본에 충실한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알게 됐다. 

중식집은 이미 푸드코트에서 오래도록 요리를 해왔던 사장님이기 때문에 백종원은 그 잘못된 습관들을 고치는 쪽으로 솔루션을 잡았다. 그래서 짬뽕을 만드는 데 있어서 국물을 보관하는 법이나 탕수육에 어떤 고기를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고 또 좀 더 바삭하게 튀겨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 지 같은 것들을 변화시킴으로서 전체적인 음식 맛을 끌어올렸다. 습관적으로 해오던 방식이 맛을 내지 못하는 이유였다는 걸 알게 된 사장님은 그 작은 변화들이 모여 엄청난 맛의 차이를 낸다는 걸 깨닫게 됐다.

한편 피맥집 사장은 피자집을 하겠다고 결심을 했고, 자신만의 강점이 없다는 백종원의 지적을 받아들여 다른 피자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피자 만드는 방법을 몸에 익혀가기 시작했다. 아무런 기본이 되어있지 않은 채 가게를 오픈한 그에게는 이 통과의례가 가장 절실한 과제였고, 백종원은 그것을 풀어주기 위해 그 기본을 배울 수 있는 피자집을 연결해주었다. 

이번 성내동 편은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면 ‘기본’과 ‘초심’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장사가 잘 안될수록 낙담하거나 의기소침해지기 마련이고, 또 어떤 경우에는 했던 습관을 반복하고 너무 문제를 어렵게 생각하는 것 때문에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것. 백종원이 말한 것은 그럴 때일수록 기본과 초심에 충실한 것이 해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건 아마도 쉽지 않은 현실 앞에 절망하고 있는 창업자들이라면 한번쯤 귀 기울여야 할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사진:SBS)

'창궐', 시도는 참신하지만 남는 아쉬움들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NEW)가 내놓은 영화 <창궐>과 <부산행>은 닮은 점이 있다. 우리 식으로 해석한 좀비 장르라는 점이 그 첫 번째다. <부산행>은 좀비 장르의 마니아적인 특성을 훌쩍 뛰어넘어 1천만 관객을 넘어서는 놀라운 흥행을 기록했다. 두 번째로 비슷한 건 다소 폐쇄적인 특정 공간에 집중된 좀비 장르라는 점이다. <부산행>은 영화의 대부분이 부산까지 가는 KTX와 몇몇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창궐>은 제물포항과 궁이라는 두 공간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점보다 더 흥미롭게 보이는 유사점은 서구의 좀비 장르와 사뭇 다른 좀비라는 존재에 대한 해석이 들어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좀비가 바로 민초라는 시선이다. <부산행>에서는 가족이 좀비로 변화해 결국 어쩔 수 없이 싸우게 되는 그 과정을 통해, 또 집단적으로 몰려다니며 공격하는 좀비들을 통해, 우리네 집단주의적인 문화와(나아가 군사문화가 더해진) 그로 인해 대립과 갈등이 가족 내에서도 존재하는 우리네 상황을 에둘러 담아낸 바 있다. 

<창궐>은 좀비를 ‘들에 있다고 하는 귀신’을 뜻하는 야귀로 해석했다. 그런데 야귀떼들이 보이는 습성이 흥미롭다. 야귀떼들은 갈증과 배고픔을 호소하며 눈이 시뻘개지고 결국은 가족을 포함한 사람을 습격한다. 굶주린 민초들의 생존본능이 이 야귀라는 존재의 특징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 

이들이 이렇게 된 건 영화가 처음부터 특별한 설명 없이 보여준 ‘헬조선’의 풍경들 때문이다. 왕 이조(김의성)는 힘이 없고 대신 권력을 농단하는 김자준(장동건)에 의해 휘둘린다. 그래서 그의 간계 속에서 심지어 자식마저도 역모로 몰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한다. 왕이 관심을 갖는 건 자신의 왕좌뿐이다. 그래서 야귀떼가 창궐하고 있는 제물포의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야귀가 궁으로 들어오고 왕의 측근으로 있던 조씨(서지혜)가 야귀로 변하게 되면서 궁에도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조씨에게 물린 왕이 조금씩 야귀로 변해가고, 또 이런 상황들을 이용하는 김자준의 눈빛이 점점 벌겋게 물들어가면서 야귀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이 만들어진다. 굶주린 민초들의 생존본능으로서의 야귀가 조선을 위협하는 존재들로 보였지만, 알고 보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건 왕좌의 권력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진짜 야귀들’이 궁안에 있었다는 것. 

이렇게 권력욕이 탄생시킨 야귀와 그로인해 굶주린 민초들이 변한 야귀를 구분해서 보면 이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가 ‘헬조선’과 ‘국정농단’ 같은 최근 몇 년 전 우리네 현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걸 쉽게 읽어낼 수 있다. 청에서 돌아온 왕자 이청(현빈)이 조선 땅에 발을 딛고 민초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나라냐”하고 묻는 대목은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를 더욱 명쾌하게 드러낸다. 

사실 이런 이야기 구조와 좀비라는 상징의 우리 식 해석, 게다가 조선시대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 좀비 장르를 엮어 보여주는 액션이라는 기획 포인트들은 이 작품이 우리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주목하게 만든 요인들이다. 하지만 기획과 상징적 메시지만으로 영화가 되는 건 아니다. 영화가 주는 재미는 이러한 시대적 정서를 이야기와 액션 속에 응축했다 폭발시키는 그런 섬세한 장치들을 통해서다.

하지만 아쉽게도 <창궐>은 이런 영화적 재미를 장르적으로 구현해내는데 있어서 많은 허점들을 드러낸다. 그 첫 번째는 민초들의 피폐해진 삶에 대한 공감대를 충분히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대신 좀비 장르의 특징들인 충격적인 장면들과 액션들이 채워진다. 주인공인 이청의 성장담은 이런 이야기들과 유기적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어 본래부터 엄청난 무공을 지닌 ‘슈퍼히어로’의 밋밋한 이야기로 흘러간다.

“왕이 있어야 백성도 있다”는 이야기를 뒤집어 “백성이 있어야 왕도 있다”는 결론에 이르는 그 메시지는 결코 유통기한이 지난 것이 아니지만, 이청이라는 인물이 그런 깨달음에 도달하는 과정이 너무 급작스러워 큰 감흥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물론 170억 원에 달하는 제작비, 그리고 현빈과 장동건 캐스팅이 화제를 모았고, 조금 색다른 좀비 영화를 보겠다는 그 호기심이 관객들의 발길을 잡아끄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입소문이 창궐할 지는 미지수다.(사진:영화'창궐')

무에서 유를 창조, 이게 ‘냉부해’의 진짜 매력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가 200회를 맞았다. 지난 주 노사연에 이어 이번 주에 특집으로 방영된 기안84편은 한 마디로 말해 <냉장고를 부탁해>의 ‘초심 찾기’ 같은 느낌이었다. 워낙 충격적인 기안84의 냉장고 속이 그랬고, 그나마 있는 재료들도 상해서 버려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걸 놀라운 고급 요리로 변신시킨 셰프들의 ‘마법’이 그랬다. 그 일련의 과정은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이 2014년 11월부터 시작해 지금껏 이어온 저력이 어디에 있는가를 잘 보여주었다. 

기안84가 그 초심 찾기에 최적의 인물이 된 건, 전혀 먹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 특유의 삶의 태도가 냉장고에 고스란히 묻어났기 때문이다. 언제 사둔 것인지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편의점 음식들은 물론이고, 그나마 있는 명란젓 같은 재료도 식사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일을 끝내고 자기만의 휴식시간에 곁들이는 술안주를 위한 것이었다. 퇴근길에 집에서 먹으려 편의점에서 사온 오래된 음식들에 대해서, 기안84는 라면에 넣어 먹으면 다 괜찮다고 했다. 

심지어 라면을 끓여먹고 냄비도 잘 닦지 않는다는 그는 염분 때문에 부패가 되지 않아 그대로 끓여먹어도 괜찮다는 듣고도 놀라운 ‘귀차니즘’을 들려줬다. 혼자 사는 이들이라면 어쩐지 공감이 가기도 하는 이야기였을 게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는 식사를 챙긴다는 게 즐거운 일이 되기도 하지만, 혼자 먹는 상황이라면 대충대충 때우게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음식을 만들 재료가 거의 남아나지 않은 기안84의 냉장고는, 그걸 가지고 15분 만에 요리를 만들어내야 하는 셰프들에게는 엄청난 도전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기안84가 원한 요리는 두 종류. 하나는 급식에 맞는 요리와 다소 사치스러울 수 있는 최고급 요리. 급식 요리 대결에 나선 레이먼 킴과 김풍은 각각 자신들만의 급식요리를 내놓았다. 레이먼 킴은 그 짧은 시간 안에 없는 재료로도 소세지와 야채볶음, 냉채족발, 명란계란말이 등을 선보였고, 김풍은 돼지고기와 편육을 이용해 덮밥을 만들고 상추겉절이를 곁들였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건 기안84의 해맑으면서도 솔직한 음식에 대한 평이었다. 레이먼 킴의 급식요리에 “맛있다”고는 했지만 ‘잘 나온 급식’의 맛이라고 하는 기안84의 평은 의외로 ‘미식가’의 면모를 드러냈다. 심지어 김풍의 덮밥은 한 숟가락을 뜨고는 “맛없다”고 혹평을 내놓아 만든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워낙 재료가 일천해 그 이상의 맛을 내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라는 걸 기안84의 솔직한 음식평이 드러내준 것.

하지만 반전은 이러한 기안84의 기대를 접은 첫 번째 요리대결의 결과가 깔리면서, 마치 본게임처럼 들어간 듯한 샘킴과 정호영 셰프의 대결에서 일어났다. 전혀 기대하지도, 할 수도 없을 것 같았던 놀라운 고급 요리들이 기안84 앞에 놓여지게 된 것. 정호영 셰프는 달걀찜과 명란마요 비빔면 그리고 목살 스테이크로 제대로 된 고급진 한 상을 내놨고, 샘킴은 고기를 다져 특유의 소스를 얹은 함박스테이크를 만들었다. 놀라웠던 건 과자들을 이용해 그 소스를 만들었고, 그 소스 맛이 기막혔다는 점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게 본래 <냉장고를 부탁해>의 제 맛이 아니었던가. 그런 점에서 보면 저런 요리가 나올 수 있을까 싶은 기안84의 충격적인 냉장고와 그걸 통해 마치 마법처럼 만들어지는 요리들의 향연은 <냉장고를 부탁해> 본래의 맛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었다. 여기에 꾸밈없이 솔직하게 속내를 다 드러내는 기안84의 엉뚱하면서도 해맑은 말들이 주는 묘미가 더해지니 더할 나위가 없었다. 200회 특집으로 기안84가 섭외된 건 그래서 신의 한 수가 아닐 수 없었다.(사진:JTBC)

‘1박2일’, 먼저 떠난 김주혁이 우리에게 남긴 선물들

‘제2회 최고의 가을밥상’ 특집으로 마련된 KBS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은 알고 보니 ‘영원한 구탱이형’ 故 김주혁을 위한 1주기 특집이었다. 김주혁이 특히 낙지와 돼지갈비를 좋아했다는 걸 알고 있는 멤버들은 그 날 ‘최고의 가을밥상’ 특집을 하면서도 어느 정도는 눈치를 챘다고 했다. 음식을 만들고 먹으면서 저마다 김주혁을 떠올렸으니 말이다. 

한 바닷가 카페에 마련된 ‘특별한 사진전’에서 멤버들은 사진 속에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환하게 웃고 있는 김주혁의 모습을 보며 먹먹해졌다. 그리고 들려오는 생전 김주혁의 육성. “잘 지내고 있냐 동생들”이라는 그 목소리에 울컥해졌다. 아마도 <1박2일>을 떠나고 나서 보내온 육성이었을 그 목소리가 이렇게 고인이 된 1주기에서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줄 그 누가 알았을까.

<1박2일>에 처음 김주혁이 출연했던 그 시절부터 마지막 촬영까지 회고하고 추억하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시청자들이 모두 기억하는 그 모습들이 새록새록 다시금 떠올랐다. 집에 급습해 잠자는 김주혁을 깨우며 장난치던 모습과, 그렇게 떠난 첫 번째 여행에서 서먹해했던 모습, 그리고 그 유명했던 어느 시골에서 벌어진 인지도 대결에서 단 한 사람도 알아보지 못해 당했던 굴욕의 순간들... 그러면서 조금씩 <1박2일>이 익숙해지고, 멤버들과 형 동생 사이로 끈끈해지는 그 과정들이 다시 눈시울을 젖게 만들었다.

그는 김준호가 그리 웃기지도 않다 여겼던 이주일, 서영춘 선생님의 성대모사에도 자지러지듯 웃어주었고, 늘 의지했던 동생 데프콘에게 잘 해주라며 <1박2일>을 떠나서도 챙겨주려 했으며, <1박2일>의 선배격인 김종민의 아버지 빈소에 가서는 맏형답게 동생 자랑을 늘어놓기도 했다. 나이 차이가 가장 많이 나는 막내 정준영과도 점점 스스럼없이 어울리던 형 같은 사람이었고, 배우로서도 큰 선배인 그는 유작을 통해서도 차태현을 극장에서 펑펑 울게 만든 사람이었다.

김주혁이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해주는 대목은 매일 함께 동고동락해온 멤버들은 물론이고 <1박2일>을 하며 인연을 맺게 된 어느 시골의 어머니나 이제 갓 대학에 들어가게 된 후배와도 그저 지나치는 관계가 아닌 늘 기억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어느 시골에서 인연을 맺은 어머니와 사진관에서 함께 사진을 찍었을 때 그 어머니가 “아들”이라고 말하는 모습이 진심이라는 게 느껴지고, 함께 출연했던 후배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직접 전화까지 걸어 축하해줬다는 김주혁에게서 그 마음이 느껴진다. 삶이 힘들고 짧으며 어느 순간 갑자기 꺼지는 것일지라도 아름답게 기억되는 건 바로 이런 따뜻한 마음이 그 후에도 계속 남아 전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1박2일>을 마지막으로 촬영하고 떠날 때, 늘 함께 했던 카메라맨이 눈물을 보이는 걸 보고는 결국 눈시울을 붉히는 김주혁에게서 ‘아름다운 사람의 온기’를 새삼 느끼게 된다. 영화 <독전>에서 그 독한 악역을 소화해냈지만, 그 속에서도 특유의 김주혁의 면모들을 발견해내는 친구에게서 삶이 짧고 그렇게 끝나는 것이라 슬플지라도 누군가 진가를 기억해줄 때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김주혁이 처음 <1박2일>에 출연해서 하차하기까지의 짧다면 짧은 그 과정은 그래서 어느 한 사람의 생을 압축해 놓은 것처럼 보인다. 어느 날 세상에 나오게 되어 어색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고, 그 따뜻한 온기들 속에서 웃고 울고 즐거워했던 시간들을 살아간다. 그러다 결국은 누구나 끝을 맞이하게 되지만, 그것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지나보면 누구나 한 순간처럼 느껴져 더더욱 아름답게 기억되는 삶이 아니던가. 먼저 간 김주혁은 마치 ‘1박2일’처럼 짧지만 영원히 기억되는 삶의 아름다움을 보여줬다.(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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