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매력’ 항상 애쓰는 서강준과 늘 미안한 이솜의 서투른 사랑

준영(서강준)은 뛰고 또 뛴다. 강력계 형사로서 범인을 잡기 위해 뛴다. 그 범인을 빨리 잡고 영재(이솜)를 만나러가기 위해 또 뛴다. 그게 JTBC 금토드라마 <제3의 매력>의 준영이다. 쉬지 않고 뛰어다니며 누군가를 위해 헌신하는 것. 그래서 범인을 잡거나, 영재가 환하게 웃을 때 자신도 행복해지는 것. 그래서 잘 하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것이 준영이다. 

하지만 영재는 준영과는 다르다. 그는 ‘잘 못하겠는 것’이 어느새 습관이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되게 잘 못하겠더라. 오빠가 속상해할까 봐도 그렇고. 그게 습관이 됐나봐.”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오빠 앞에서 그는 뭔가를 잘 하려 노력하지 않게 됐다고 했다. 그래서 준영과 만나며 느끼게 되는 사소한 감정들을 그에게 애써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그 때 그 때 드는 사소한 감정들을 준영이한테 바로 다 얘기했더라면 달라졌을까? 아마 그래도 준영이는 날 이해하려고 노력했겠지? 아마 그러면 난 계속 더 미안했겠지.” 그래서 준영은 늘 애쓰게 되었고, 영재는 늘 미안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사랑하면 할수록 더더욱 힘들게 되었다. 

그건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서투른 스물일곱 살, 사랑이 익숙하지 못한 이들의 엇나감이다. 함께 섬으로 의료봉사를 갔던 날, 두 사람은 어느 노부부의 집을 찾아가 머리를 해주고 돌아온다.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사랑하는 노부부의 따뜻한 눈길들을 보며 행복해한다. 하지만 돌아와서도 영재와 함께 지내지 않고, 그 집에서 고쳐주겠다고 가져온 라디오에 준영은 집착한다. 뭐든 자기 앞에 있는 것들을 해내려고 노력하는 건 그의 습관이 되었다.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 상처받을 일이 없었을 게다. 그것이 준영이 경찰이 되고 또 강력계에서도 표창을 받는 힘이 되었을 테니. 하지만 사랑은 그렇지 않다.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때론 부담이 되기도 한다. 특히 영재처럼 노력하지 않으려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상대방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자신이 노력하는 만큼 영재가 미안해하고 힘들어한다는 사실은 그래서 고스란히 준영에게도 힘겨운 시간으로 되돌아온다. 

<제3의 매력>이 담고 있는 준영과 영재의 이별이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건, 그것이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사랑하지만 서투르고 모자라서 생긴 일이라는 점 때문이다. 사랑에 있어서 ‘노력한다는 건’ 그래서 어쩌면 양자를 모두 힘겹게 만드는 일인지도 모른다. 수재(양동근)가 사고로 장애를 가진 후 병수발을 들던 연인을 애써 “보기 싫다”며 밀어낸 건 그 ‘노력’이 사랑하는 사람을 얼마나 힘겹게 만드는가를 알기 때문이다. 이 상황이 오면 헤어짐은 상대방을 위한 마지막 사랑의 행동이 된다. 

“서툴러서 아팠고 모자라서 미안했던 시간들. 고마웠고 설레었고 사랑했던 순간들. 찬바람이 불 때 바람 앞에 곧게 서 있는 나무가 되었으면. 추운 겨울엔 햇빛이 되고 더운 여름엔 그늘이 되었으면. 이제는 돌아오지 않을 우리의 스물일곱이여. 안녕.”

범인을 검거한 공으로 경찰서장의 표창을 받는 날, 준영은 상을 받지 않고 대신 사직서를 낸다. 그리고 차를 몰아 영재가 있는 곳으로 간다. 그 곳 먼발치에서 영재를 바라보다 돌아선다. 준영은 드디어 알게 됐다. 마치 상을 받기 위해 종종대며 노력해왔던 그것들이 얼마나 서투른 사랑이었는가를. 

그는 과연 더 이상 뛰고 또 뛰지 않으며 사랑할 수 있을까. 스물일곱의 서투름을 넘어서 좀더 성숙해진 사랑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어느 섬에서 만난 노부부의 그 편안하지만 한없이 느껴지던 진정한 사랑에 도달할 수 있을까. 잔잔하고 소소하지만 누구나 한번쯤을 겪었을 스물일곱 준영의 사랑이야기가 가슴 아픈 공감으로 다가오는 이유다.(사진:JTBC)

‘알쓸신잡3’가 담은 악의 평범성에서 우리의 모습이 떠올랐다면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나치 독일의 이야기지만 어쩐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전후 그 때의 잘못된 역사를 반성하고 잊지 않으려는 독일의 노력에서, 그와는 정반대로 반성은커녕 그 역사를 덮으려고만 하는 일본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더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건 우리네 개발시대의 잔상들이 이 이야기에서 연상된다는 점이다. tvN <알쓸신잡3>가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나눈 나치 독일과 히틀러 그리고 ‘악의 평범성’에 대한 이야기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 이유다. 

먼저 인상적으로 다가온 건 프라이부르크 길거리 곳곳에 남겨진 ‘슈톨터스타인’이라는 당시의 아픈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걸림돌’이었다. 당시 희생된 유대인들이 마지막으로 살았던 지점에 남겨진 그 ‘걸림돌’에는 그 분들에 대한 짤막한 기록들이 남겨져 있었다. 길거리에서 유시민과 김진애 그리고 유희열이 발견한 어떤 슈톨터스타인은 한 가족의 흔적을 그대로 읽을 수 있어 보는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전쟁을 일으켰던 나치 독일의 잘못된 역사들을 바닥에 걸림돌의 형태로 기록해 늘 고개를 숙이며 들여다볼 수 있게 해놓은 것.

그런데 이처럼 철저하게 이뤄진 나치 독일이 저지른 야만에 대한 반성은 어떻게 해서 가능해진 걸까. 그건 그 지독한 악이 나치나 히틀러 같은 한 명의 ‘악’에 의해 벌어진 것이라 치부하지 않은 결과다. 프라이부르크에서 공부했던 한나 아렌트가 고민했던 ‘악의 평범성’이 그것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으로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에 대한 기록을 담았던 한나 아렌트는 무려 600만 명을 가스실로 보낸 그가 너무나 평범하다는 사실을 알고는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무능력이 바로 악’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시종일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 증언하는 아이히만에게서 악이 엄청난 동기를 갖고 벌어지는 일이 아니고, 따라서 그 때의 비극들이 히틀러나 괴벨스 같은 특정인들이 저지른 짓만이 아니라 독일인 모두가 책임이 있다고 설파한 것.

한나 아렌트의 이 통찰은 너무나 아파 당대 유대인들은 물론이고 독일인들에게도 비판받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지금은 모두가 받아들여지는 이야기가 됐다. 여기에 김영하는 최근의 연구결과의 한 대목을 더해주었다. “순종적인 사람들이 나쁜 짓도 잘 순종해서 따른다”는 것. 이야기를 한참 듣던 유희열이 갑자기 “이 이야기를 듣는데 낯설지가 않아요”라며 “대한민국에서 수도 없이 들어왔던” 이야기라고 말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탈취한 개발시대 의 군부독재와 신군부독채 시절의 아픈 역사와 세월이 흘러 그 주범들이 청문회에 나와했던 아이히만 같은 발언들. 그럼에도 여전히 지지의 의사를 보냈던 사람들과 그래서 다시 대통령이 됐던 그 딸이 또다시 그 때의 역사를 반복했던 일들....

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독일이 전후보상금으로 경제가 파탄나게 되면서 생겨난 혼란 속에서 탄생한 히틀러와 그가 등장하면서 처음부터 내건 “공익은 사익에 우선한다”라는 말이 개발을 내세운 박정희 독재 정권시대의 그 기조와 무엇이 다를까. 또 독일인들이 우수하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우생학을 내세워 유대인들을 희생양으로 내몬 그 잔악한 범죄가, 전두환 신군부가 등장하며 무고한 광주 시민들을 폭도로 부르며 총칼을 휘두른 일과 무엇이 다른가.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악의 평범성’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잘 들여다봐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우리에게도 저질러졌던 그 악은 한두 명의 독재자들에 의해 이뤄진 저들만의 일이 아니라 거기에 항거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도 일정 부분의 책임이 있었다는 것. 지금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 공기처럼 존재하는 혐오를 우리 스스로 인정하고 다스리려 하지 않는 한 또 다시 비극적인 역사가 반복될 수도 있다는 걸 한번쯤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사진:tvN)

‘전참시’, 동생을 보니 임송 매니저의 진가가 다시 보이네

임송 매니저 같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저절로 바르게 되지 않을까. MBC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에 출연하는 박성광 매니저 임송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지켜야할 원칙들을 지키려 애쓰고, 자신보다 항상 타인의 입장을 먼저 들여다보려 애쓰는 모습. 어머니가 싸주신 음식을 갖고 상경한 동생을 만나 하루를 보내는 그 모습 속에서 임송 매니저의 그 착하고 바른 심성이 어디서 나왔는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박성광 앞에서는 늘 수줍은 소녀 같은 모습을 보이던 임송이지만, 동생 앞에서는 엄한 언니의 카리스마를 드러내는 모습에 이를 관찰하는 출연자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시험을 앞두고 있는 동생에게 연거푸 열심히 하라고 당부하고, “엄마 걱정 끼치게 하지 말라”고 하는 임송 매니저는 지금껏 방송을 통해 보이던 앳된 소녀의 모습이 아니었다. “다 잘되라 하는 소리”지만 그 이야기가 동생에게 “잔소리”로 느껴질 수도 있다는 걸 임송 매니저 자신도 인정했다.

하지만 엄하면서도 동시에 동생을 살뜰히 챙기는 애정 또한 느껴졌다. SM엔터테인먼트에서 운영하는 카페라 아이돌 굿즈에 정신이 팔린 동생에게 맛있는 케이크를 사주고, 맛있다며 먹어보라는 동생의 말에 “난 단거 싫어한다”고 말하는 임송 매니저에게서는 어딘지 자식 먼저 챙기려는 엄마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데 동생을 챙기면서도 자신의 본분인 매니저의 역할을 잊지 않는 임송 매니저의 모습은 더더욱 인상적이었다. 피자 뷔페로 점심을 먹으러 가기 위해 상사에게 전화해 허락을 받는 과정에서 차도 같이 이용할 수 있느냐고 묻는 대목이 그랬다. 그냥 사용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그 차량이 자기 소유가 아니라 회사차량이기 때문에 당연히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임송 매니저의 행동에 출연자들은 모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 뷔페로 가는 길 먼저 그날 행사에서 박성광이 입을 옷부터 챙기고, 갑자기 박성광에게 와달라는 전화가 오자 집으로 먼저 달려가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굳이 주차장으로 내려오겠다는 박성광의 말에 차 안에서 숨도 쉬지 말고 숨어있으라고 동생에게 당부하는 그 모습에서는 혹여나 박성광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까 하는 특유의 배려 깊은 마음이 묻어났다. 

결국 동생이 함께 왔고 점심을 먹기 위해 피자 뷔페를 찾아가는 길이라는 걸 알게 된 박성광은 자신이 점심을 사겠다고 나서 동생에게 톡톡한 ‘팬서비스’를 해주었다. 복스럽게도 먹는 자매들 앞에서 입이 짧은 박성광은 흐뭇해했고, 조심스레 꺼내놓은 사인지에 친구들 것까지 정성껏 사인을 해주었다. 물론 너무 많이 요구하는 것 같아 그만 하라며 자꾸만 임송 매니저는 동생의 옆구리를 찔렀지만.

“언니가 잘 해주냐”는 박성광의 질문에 동생은 서슴없이 “잘 해준다”며 마치 “엄마 같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 아래서 임송 매니저는 동생의 엄마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그 어린 나이에도 매일 밥을 차려주고 돈이 있으면 동생 옷부터 먼저 사주었다는 것. 

사람의 가치는 어쩌면 그런 삶에서 묻어나는 인성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닐까. 때론 엄하게 때론 자애롭게 동생을 챙기는 임송 매니저와, 그런 언니의 말이면 뭐든 따르는 착한 동생의 관계를 보면 한 사람의 바른 행동들이 주변 사람들에게도 얼마나 큰 좋은 영향을 주는가를 실감하게 된다. 우리가 임송 매니저를 보면서 느끼는 행복감이 바로 거기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임송 매니저는 각박한 세상이지만 바르게 사는 모습이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다.(사진:MBC)

‘알쓸신잡3’, 시에나 캄포광장에서 떠올려진 우리의 포용성 수준

이것이 진정한 <알쓸신잡>의 묘미가 아닐까. 이탈리아 시에나의 캄포광장 이야기가 우리네 공동체 문화 이야기로 옮겨가고, 그 이야기는 포용성 문화가 얼마나 그 지역을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코드가 되는가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 이야기들은 이탈리아의 시에나 캄포광장에서 시작해 우리네 아파트 이야기, 산업혁명 시기의 영국이야기, 인구가 서울에만 집중되는 이유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심지어 음악하던 친구들이 모이던 홍대와 최근 새로운 음악인들의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는 온라인으로까지 옮아간다. 대화를 통한 인식의 확장. 지식들이 겹쳐지면서 생겨나는 깨달음. <알쓸신잡3>가 시에나 캄포광장을 통해 우리의 포용성 수준을 질문하는 대목이 흥미로웠던 이유다. 

이야기는 김진애 교수가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갖고 있다는 시에나의 캄포광장을 다녀온 소감에서 비롯됐다. 마치 미로처럼 펼쳐진 이탈리아 특유의 좁은 골목길들을 헤매다 보면 어느 새 캄포광장에 와 닿아 있게 그 도시가 설계되어 있다는 것. 그러한 공간 설계는 각각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기회들을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탈리아의 골목들은 다니다 보면 조금 넓어지는 공간들이 존재하는데, 그 곳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 역할을 해준다고 한다.

캄포 광장 이야기는 김영하로 하여금 우리네 아파트 문화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왜 그렇게 아파트를 선호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 이유로 김영하는 개인 공간을 인정하지 않고 치고 들어오는 우리네 문화를 지적한다. 유시민 작가는 거기에 더해 우리가 “너무 많은 공동체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개인을 무시하고 관계망을 중시하는” 사회라는 것. 그러면서 캄포 광장이 말해주는 건 “유럽의 공동체”가 “개인주의의 기반 위에 있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이 개인을 무시하는 사회의 문제에서 유시민은 ‘포용성’이 얼마나 그 지역 발전에 중요한 인자인가를 말해주는 이른바 ‘게이 지수(Gay Index)’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어떤 지역의 번창 혹은 몰락에 영향을 미치는 주된 요소’를 연구해 도시들의 순위를 나열해 보니, 그 순서가 게이 지수(도시마다 동성애자의 거주 비율)와 일치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3T이론’이라는 가설로 분석했다. 

도시가 발전하려면 테크놀로지(1T)가 높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재능 있는 사람(탤런트, 2T)이 많이 모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재능 있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이유는 톨러런스(포용성, 3T)라는 것이다. 게이지수가 포용성의 지표가 되는 건, 제일 마지막까지 차별받는 소수집단으로서의 동성애자들까지 별 문제를 느끼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란다. 그런 곳이라면 모든 유형, 모든 종류의 괴짜들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김영하는 실제 그 사례로 지난 몇 십 년 간의 샌프란시스코를 들었다. 미국 5대 밀집지역으로서 성소수자의 상징적 도시이고 동시에 실리콘 밸리가 있는 곳이 그 곳이다. 유시민은 나치 독일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 과학기술에서 완전히 뒤지게 된 이유가 바로 그 포용성이 사라지면서 많은 인재들이 전부 미국으로 빠져나갔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상욱 박사는 그 사례를 19세기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던 이유에서도 찾았다. 당시 영국에 천재들이 많이 나왔는데 출신성분이 미천했던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가난한 집 7형제 중 막내로 태어나 방적기를 발명한 리처드 아크라이트나 빈민가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전기모터를 발명한 마이클 패러데이가 그 사례다. 즉 당시 영국사회는 일을 잘하고 능력이 있으면 성공할 수 있는 사회였다는 것이다. 

<알쓸신잡3>가 시에나의 캄포광장 이야기에서부터 비롯되어 나온 포용성 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다시 우리의 현실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개인을 인정하지 않는 공동체 문화로 인해 똑같은 익명성으로 존재하는 아파트 속으로 숨어들어가는 우리들. 유시민이 말하듯 천만 인구가 서울에 모여사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괴짜들이 이방인이 살 수 있도록 지역이 포용성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그나마 익명성으로 살 수 있는 서울로 모여 든다는 것이다. 

특히 이런 인식의 지평이 아픈 깨달음으로 다가오는 건 김상욱이 얘기한 산업혁명 시기의 영국사회처럼 우리는 “일 잘하고 능력 있으면 성공할 수 있는” 그런 사회일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스펙과 출신으로 미래가 결정되고, 성장의 사다리가 끊겨버린 우리 사회는 언젠가부터 일 잘하고 능력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그런 믿음이 사라져버린 건 아닐까.

이런 문제들은 이야기를 듣다 1990년대 홍대를 떠올린 유희열처럼 우리 사회 어디서나 발견되는 것들이다. 클럽 한두 개였던 당시 홍대에 몇몇 괴짜들이 음악을 시작하면서 실력 없는 친구들도 데뷔할 수 있는 포용성이 만들어지고 이른바 ‘홍대문화’가 생겨났는데, 자본이 들어오면서 클럽들이 사라져갔다는 것. 그런데 최근 들어 다시 괴짜들이 나오고 있는데 그 공간이 이제는 온라인 공간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포용성을 찾기 힘든 우리네 현실(오프라인)의 씁쓸함을 보여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이 대안적으로 찾아낸 온라인 공간이 어째서 최근 들어 우리 사회를 변혁시키는 중요한 공간이 되고 있는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유시민이 적어도 “뭘 하지 말라고 하는 거 좀 안했으면 좋겠다”고 한 말이 속 시원하게 느껴진 건, 포용성 없는 우리네 현실의 갑갑함을 우리가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사진:tvN)

‘내 뒤에 테리우스’, 유치해보여도 코믹·멜로·액션 다 있다

이 드라마 정체가 도대체 뭘까. MBC 수목드라마 <내 뒤에 테리우스>는 큰 부담 없이 그저 피식피식 웃으며 보다가 어느 순간 이 세계 깊숙이 들어와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킹캐슬이라는 단지가 점점 익숙하게 다가오고, 그 안에서 비밀작전을 펼치고 있는 킹스백이라는 가방가게를 둘러싼 정보전에 저도 모르게 빠져든다. 

사실 그 이야기가 굉장하다거나, 우리가 예측하지 못할 반전을 내포하고 있다거나 한 건 아니다. 다만 아이를 등원시키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 수다를 떠는 그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 속에서 무언가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의 시선을 잡아끌고 있을 뿐이다. 매일 매일이 거의 똑같고 별로 사건이랄 것 없이 지나가는 그 일상이 모험의 세계로 바뀐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내 뒤에 테리우스>의 그 세계에 몰입하게 된다. 

그 모험의 주인공은 어느 날 갑자기 남편 차정일(양동근)이 죽고 준수(김건우) 준희(옥예린)와 살아가야 하는 평범한 주부 고애린(정인선)이다. 생계를 위해 일자리를 찾아야 하지만 경력단절은 재취업을 만만찮게 만들고, 아이를 돌봐줄 시터를 구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의 앞에 마치 만화 ‘캔디’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전직 요원 김본(소지섭)이 구세주처럼 등장한다. 그는 아이를 돌봐주는 시터로 위장한 채 차정일의 죽음과도 연관된 무기 브로커 진용태(손호준)를 예의주시한다. 

이런 일이 과연 가능할까 싶지만, <내 뒤에 테리우스>는 그 과장된 사건전개를 코미디라는 장르의 틀로 극복한다. 그것은 국정원이 개입된 정보전 같은 엄청난 사건들이 킹캐슬 단지의 주부들 모임인 KIS(Kingcastle information System)가 활약하는 코믹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듯이 눙치며 이 일상과 거대 사건들을 병치해놓는다. 고애린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김본이 나타나 문제를 해결하곤 하지만, 또 고애린 역시 자신이 일하는 캥스백이라는 가게에 숨겨진 비밀기지를 자기 방식으로(?) 추적해 찾아내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 이 모든 것들이 코미디라는 장르가 있어 허용되는 과장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코미디가 허용하는 상황들 속에서 <내 뒤에 테리우스>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구사한다. 즉 김본이 시터 역할을 자신이 요원으로 해왔던 자질을 통해 더 잘 해내는 모습을 통해 육아의 능력이 요원들이 갖는 능력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유쾌한 메시지를 던지고, 고애린과 조금씩 가까워지는 모습을 통해 달달한 멜로 관계를 보여준다. 사회풍자극과 멜로드라마의 재미요소가 더해지는 것. 

그리고 일상적인 이야기들로 자칫 소소해질 즈음, 진짜 스파이액션을 보는 듯한 액션 장르가 펼쳐진다. 진용태가 운영하는 J인터내셔널의 정체가 드러나자 누군가 “깨끗이 지워내라”는 명령을 내리고, 클리너로서 케이(조태관)가 투입되어 진용태마저 죽이려 한다. 코너에 몰린 진용태는 고애린을 납치해 김본을 움직이고 그 과정에서 그가 국정원의 추격에 노출된다. 국정원의 권영실(서이숙)이 진두지휘하는 국정원요원들과 김본의 도심을 질주하는 차량 추격 장면이 연출된다. 

일상의 현실과 거대한 모험이 묘하게 엮어진 <내 뒤에 테리우스>는 그래서 조금 유치해보이긴 하지만, 피식피식 웃다가 빠져들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세계를 그려낸다. 거기에는 정서적으로 우리를 잡아끄는 워킹맘이나 육아, 경력단절 같은 단어들이 어른거리고, 동시에 달달한 멜로와 거의 시트콤에 가까운 웃음 그리고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작지 않은 스케일의 액션이 들어있다. 이러니 이 드라마가 쟁쟁한 타 방송사들의 드라마들과 경쟁하며 동시간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사진:MBC)

'골목식당', 라면 하나 못 끓이면서 분식집은 왜 여나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했던 백종원은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식당을 하라고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준비 없으면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성내동 만화거리의 식당들을 보면 왜 백종원이 그런 이야기를 했는가가 이해된다. 이렇게 준비가 하나도 안 된 식당들이 덜컥 장사에 뛰어들고 있으니 말이다.

해외에서 요리를 공부하고 돌아와 와인집을 낸 동생의 제안으로 5년 동안 근무하던 어플회사를 그만두고 피맥집(피자맥주집)을 오픈한 7개월차 초보 사장은 자신의 가게의 정체성이 피자집인지 맥주집인지조차 잘 모르고 있었다. 본인은 맥주집이라고 했지만, 메뉴판을 보면 맨 앞장에 피자 메뉴가 들어가 있어 누가 봐도 피자집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정작 가게 전면은 맥주병들이 인테리어랍시고 그냥 널려 있어 전혀 피자집으로 보이지 않았다. 결국 이 집은 손님이 별로 없는 이유가 그 정체성조차 애매하기 때문이었다.

또 시그니처 피자라고 해서 시켜놓고 보니 토핑이 보이지 않고 토마토소스만 위에 발라져 있었다. 나름 아이디어라고 토핑들을 안쪽에 넣고 위 아래로 도우를 덮어 구워낸 것이지만, 백종원은 그 비주얼만 봐서는 “주문 안할 것 같다”고 말했다. 맛 역시 밀가루맛과 소스 맛이 강해 재료들이 어우러지지 않고 겉돈다고 했다. 결론은 맛이 없다는 것. “최악”이라고 백종원은 최종 평가했다.

짬뽕이 대표메뉴라는 중식집에서는 탕수육 고기에서 나는 냄새의 원인이 잘못된 해동과정에 있었다는 게 밝혀졌다. 냉동 돼지고기를 가져와 비닐을 벗기고 물에 해동을 하기 때문에 세균에 노출될 위험이 커졌던 것. 결국 그 때 그 때 소진되지 않는 재료는 더 빨리 상할 수 있었다. 냄새는 거기서 비롯된 것이었다. 또한 짬뽕의 국물 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 이유가 육수를 온장고에 보관하는 것과 조리 후 바로 음식을 내놓지 않을 때 무쇠 웍에서 나는 냄새라는 걸 백종원은 알려줬다.

생각해보면 보통의 피자맛을 제대로 내지 못하면서 아이디어라고 엉뚱한 방식으로 피자를 만드는 피맥집 사장이나, 꽤 장사를 해왔음에도 잘못된 습관이 하나 둘 합쳐져 제대로 된 짬뽕국물 맛을 못 내고, 심지어 쉰내가 나는 탕수육을 내놓은 중식집 사장이나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러니 장사가 될 리가 있을까.

하지만 더 심각한 집은 분식집이었다. 집에서 아이들이 맛있다고 해서 덜컥 창업까지 하게 된 분식집 사장님은 장사의 현실을 잘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백종원이 내놓은 미션은 손님들을 두 조로 나눠 장사의 ‘천국(환상)’과 ‘지옥(현실)’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느긋하게 타이밍을 맞춰 주문하는 손님들을 맞으며 기분 좋아하던 분식집 사장은, 한꺼번에 여러 개를 동시에 시켜대는 손님들 앞에서 당황하며 땀을 뻘뻘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라면을 끓이는 방식이 특이했다. 물을 먼저 끓이는 게 아니라 찬물에 스프와 면을 동시에 다 집어넣고 뚜껑을 닫은 채 딱 3분 타이머가 돌아가는 동안 끓여서 그냥 내놓는 방식이다. 한때 백종원이 요리 프로그램에서 했던 말처럼, 라면을 가장 맛있게 끓이는 방법은 거기 봉지에 적혀있는 대로 끓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찬물에 면까지 넣어 끓이면 퍼질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면발을 쫄깃하게 하려면 뚜껑을 열고 면을 몇 번쯤은 들었다 놨다 해야 된다.

그런데 분식집 사장님은 2인분을 시켜도 4인분을 시켜도 한꺼번에 스프와 면을 다 집어넣고 3분 타이머를 돌리는 식으로 라면을 끓였다. 그러다 보니 면이 풀어지지 않은 채 그냥 그릇에 담겨져 나오기도 하고, 물이 쫄아 버려 짜게 되면 뜨거운 물을 넣어 간을 맞추는 식으로 라면을 내놓기도 했다. 사실 분식집에서 라면은 기본 중에 기본이 아닌가.

백종원이 분식집 사장에게 장사의 환상과 현실을 오가며 경험하게 해준 건, 어쩌면 그 분만을 위한 미션은 아니었을 게다. 그건 너무 쉽게 창업을 생각하는 우리네 현실에 경각심을 느끼게 하기 위함이다. 도대체 피자 하나 못 만들면서 피자집을 내고, 라면 하나 제대로 끓이지 못하면서 분식집을 내는 용기는 어디서 나온 걸까. 결국 장사가 안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런 처지가 된 건, 아무런 준비 없이 막연한 환상으로 뛰어드는 창업 그 자체 때문이 아닐까. (사진:SBS)

‘여우각시별’, 공항은 어째서 드라마의 공간이 되었나

사람들이 떠나고 돌아오고 만나는 곳. 또 날고픈 비행의 설렘과 어쩔 수 없이 내려야 하는 운명을 가진 우리네 현실이 교차하는 곳. 공항은 어쩌면 SBS 월화드라마 <여우각시별>이 담으려 하는 ‘평범’과 ‘비범’이 교차하는 지점으로는 최적인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삶을 살고 싶지만 사고로 인해 비범한 몸을 갖게 된 이수연(이제훈)과, 누구보다 비범하게 인정받고 싶지만 실상은 지극히 평범해 오히려 사고만 치고 다니는 한여름(채수빈)이 만나는 공간. 

드라마 <공항 가는 길>이 그 길 위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설렘을 공항이라는 공간을 통해 풀어냈던 것처럼, <여우각시별>은 가까이서 보면 별의 별 인간 군상들이 모여 복작대는 그 공간이지만 밤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여우각시별처럼 아름답게 보이는 공항처럼 그 부대낌 속에서 만들어지는 사랑이야기를 담으려 한다. 비행기들이 오르내리는 그 여우각시별에는 그래서 그곳에서 일하는 이들에게는 일상이지만 그 곳을 지나쳤던 우리들에게는 특별한 사건들이 벌어진다.

최근 들어 공항이라는 공간이 자주 드라마의 배경으로 등장하고 있다. <여우각시별>은 아예 공항을 소재로 삼았고, JTBC <뷰티 인사이드>에서도 남자주인공 서도재(이민기)는 티로드항공 본부장으로 공항에서 그 첫 모습을 드러낸다. 과거 2007년에 방영된 <에어시티>가 그저 공간으로서의 공항만을 차용한 느낌에 머물렀다면, 2016년 방영됐던 <공항 가는 길>같은 작품은 공항에서 일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공항이라는 공간이 주는 특유의 정서를 통해 풀어낸 바 있다. 이처럼 이제 공간은 그저 배경이 아니라 드라마가 담아내는 정조를 표징하는 곳으로까지 그려지고 있다.

드라마가 다루는 공간은 당대의 대중들이 갖는 정서와 무관하지 않다. 이를테면 의학드라마가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아 꽤 오래도록 드라마의 공간이 되고 있는 병원은 ‘생명’과 ‘자본’이 뒤얽혀 있어 극적인 사건들이(심지어 사람들이 살고 죽는) 벌어지는 곳으로서, 대중들이 갖고 있는 자본주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삶을 축소해서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또 법정드라마의 법정은 대중들이 갖는 ‘법 정의’에 대한 갈증이 투영되는 공간이고.

<여우각시별>의 공항은 갖가지 사건들이 벌어지는 공간이다. 때로는 날아든 새 때문에 프로펠러에 불이 붙어 비행기가 불시착하기도 하는 그런 큰 사건들이 벌어진다. 또 난동을 부리는 진상 여객들 때문에 기물이 파손되거나 사람이 다치는 사고들이 벌어진다. 물론 국가와 국가가 나뉘어지는 일종의 접경지대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 경계를 사이에 두고 만나지 못하는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담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특별하고 비범해 보이는 많은 사건들 속에서 <여우각시별>이 집중하고 있는 건 어쩌면 평범할 수 있는 이수연과 한여름 사이에 벌어지는 관계의 진전과 저마다의 성장담이다. 좌충우돌의 사고뭉치로 보이는 한여름을 마치 젊은 날의 자신처럼 바라봐주고, 또 남다른 몸을 갖게 된 이수연을 지극히 평범한 직원처럼 보듬어주는 양서군(김지수)이라는 인물은 이들의 나날이 벌어지는 사건들의 지향점이 어느 방향으로 나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들은 평범과 비범 사이에서 저마다 자신에게 부족한 것들을 채우거나 넘치는 걸 덜어내 가면서 삶의 균형을 찾아간다. 냉철하고 이성적이면서도 동시에 따뜻한 감성을 가진 양서군의 모습 같은.

설렘이 익숙함으로 바뀌고, 익숙해도 여전히 설레는 감정. 아마도 우리가 공항을 떠올리면 항상 반복해서 느끼는 그 감정의 교차는, <여우각시별>이 공항이라는 공간을 통해 궁극적으로 담아내려는 그 특별함과 일상의 균형과 닮았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사는 삶의 진면목이라는 걸 이 드라마는 공항이라는 공간을 통해 부지불식간에 담아내고 있다. 가까이서 보면 복작대는 일상적인 삶의 공간이지만 부감으로 내려다보면 그 어느 것보다 아름다운 특별한 여우각시의 형상을 닮은 우리네 삶이라는.(사진:SBS)

이엘·배두나에게 버림받은 차태현 통해 '최고의 이혼'이 하고픈 이야기

“10년이 지나도 아무 것도 모르네. 나 너와의 사이에 좋은 추억 같은 거 하나도 없어. 헤어질 때 생각했어. 죽어버리면 좋을 텐데. 이런 남자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같은 동네에서 우연히 만난 대학시절 첫사랑 진유영(이엘)이 갑자기 내뱉은 이 말에 조석무(차태현)는 충격에 빠진다. 조석무는 진유영의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걸 목격한 후, 그 찜찜함을 견디지 못한다. 결국 진유영을 찾아가 생각해준답시고 그 사실을 얘기하는데, 갑자기 진유영에게서 나온 이야기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다.

KBS 월화드라마 <최고의 이혼>은 우리가 흔히 이혼이나 헤어짐에서 상상하는 그런 극적인 이유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보통 이혼이라고 하면 계기가 되는 엄청난 사건을 떠올린다. 무수한 드라마들이 불륜을 다루고 끔찍한 사건들을 그 헤어짐의 이유로 제시하듯이. 하지만 <최고의 이혼>은 그 사유가 자잘한 일상의 누적과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뱉은 말들, 혹은 하필이면 상대방에게 상처 줄 수 있는 말이나 행동을 하게 된 ‘기막힌 타이밍’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첫 회 만에 이혼을 하게 된 조석무와 강휘루(배두나)의 이혼 전 분위기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반복처럼 보인다. 하지만 “헤어지자”며 “시원하다”고 말하는 강휘루의 그 지점에서 되돌아보면 아주 자잘한 일상 속에 담겨진 무수한 상처들이 느껴진다. 강휘루의 앞에서 습관처럼 나오는 조석무의 한숨이나, 조금이라도 어질러진 걸 견디지 못해 잔소리를 해대며 치우고 또 치우는 조석무의 행동은 강휘루의 마음 한 구석을 짓누른다. 

물론 조석무는 고객들이 언제 어디서든 부르면 출동해야 하는 보안업체 직원으로 고객들의 자잘한 요구들에 힘겨워한다. 그들에게는 별 것도 아닌 요구처럼 보이지만 조석무는 그걸 위해 뛰고 또 뛰어야 한다. 그래서 조석무는 많은 걸 포기하고 살아가는 비관주의자가 됐다. 젊은 날에는 꿈도 있어 기타를 치고 음악을 했지만 지금 그의 소망은 고양이와 함께 아무도 없는 산골 어딘가에서 살고 싶다거나, 커피 한 잔에 나가사키 카스테라를 즐기고 싶은 정도다. 하지만 그것을 강휘루는 ‘별 것도 아닌 일’로 치부한다. 

그런 일상들이 오래도록 겹치고, 거기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오해가 깊어지다 결국 사건이 터진다. 동화작가가 꿈인 강휘루는 자신이 쓴 원고를 조석무가 한번쯤 읽어봐 주기를 바라며 식탁 위에 흩어 놓지만, 실수로 물을 흘려 젖은 원고를 조석무는 정리하지 않고 굴러다니는 쓰레기나 잡동사니 정도로 여긴다. 결국 폭풍우가 치던 날, 문을 두드리는 게스트하우스 손님 때문에 두려워 조석무에게 빨리 와 달라 보낸 문자의 답변으로, 문밖에 있는 화분을 들여놓으라는 문자를 받게 된 강휘루는 “헤어지자”고 말하게 된다.

이런 사정은 조석무가 첫 사랑인 진유영과 헤어지게 된 이유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어째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까지 말했는가의 이유는 진유영의 어린 시절 겪었던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어부였던 아버지에 그토록 의지했던 이 어린 소녀는 아버지가 상어의 습격을 받아 죽게 되면서 자우림의 노래를 좋아하게 됐고, 자신도 음악의 꿈을 갖게 된다. 

하지만 진유영이 작곡한 곡을 조석무는 그가 한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표절”이니 “쓰레기”니 하는 지독한 표현으로 폄하해버린다. 물론 조석무는 아무 것도 모르고 한 이야기지만, 그 말은 아마도 진유영의 삶 전체를 부정하는 듯한 상처로 남았을 게다. 그리고 심지어 밴드부에서 진유영이 만든 곡에 조석무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싸구려 꽃무늬 변기 커버 같은 음악”이라는 말을 한다. 게다가 하필이면 상어의 습격을 받아 죽은 사람의 뉴스를 보면서 조석무는 진유영에게 “사람은 맛이 없다”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이러니 조석무를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까지 말한 진유영의 마음이 이해될 밖에.

물론 여기에는 일본 원작 특유의 독특한 정서가 깔려 있다. 즉 일본인들의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 그 정서가 깔려 이런 관계가 틀어지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석무가 충격을 받는 건, 그가 무심하거나 나쁜 사람이거나 해서가 아니라 다만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짜로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몰라서다. 알고 보면 조석무 역시 어린 시절 아버지가 병에 걸린 반려견을 어딘가로 데려가 버린 일 때문에 지금껏 그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그 충격적인 경험은 조석무에게 알 수 없는 분노와 체념, 깔끔한 것에 대한 집착, 부정적인 사고방식 같은 것들을 만들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최고의 이혼>이 하려는 이야기는 무얼까. 그건 아마도 ‘연민’이 아닐까. 본래 비극이 가진 가장 큰 기능은 위에서 인간사를 내려다보며 그들이 저도 모르게 어쩔 수 없는 아픔이나 슬픔, 관계의 비틀어짐 속으로 들어가는 걸 보면서 갖게 되는 ‘연민’의 감정이다. 누가 잘했고 잘못 했고가 아니라 한 치 눈앞의 비극적 상황들을 모른 채 그 속으로 발을 들이는 인간의 소소함을 들여다보며 느끼는 연민의 감정. 

<최고의 이혼>은 우리에게 벌어지는 비극적인 선택들이 굉장한 사건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자잘한 일상들 속에서 저도 모르게 벌어지는 ‘인간적 한계’로 인해 생기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살아가고, 뒤늦게 그 이유들을 발견하며 충격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렇게 알아가며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다. <최고의 이혼>은 그래서 제 아무리 잘 사는 것처럼 보여도 그 실체를 보지 못하는 ‘최악의 결혼’의 반대말처럼 다가온다.(사진:KBS)

'미쓰백', 거칠지만 따뜻한 한지민이라 더 매력적

아동학대의 현장을 본다는 건 괴로운 일이다. 하지만 그 끔찍한 실상을 들여다봄으로써 그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절감하게 된다는 건 가치 있는 일일 게다. 그런 점에서 영화 <미쓰백>은 우리가 언젠가 뉴스에서 짤막하지만 충격적이었던 아동학대 사건을 더 깊숙이 들여다본다. 엄마는 도망가고, 아빠는 차라리 죽기를 바라며 방치된 아이 지은이(김시아). 그 아빠의 애인은 아이를 짐으로 보며 학대한다.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허구’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지만, 그건 다만 우리가 믿고 싶지 않을 뿐이지 없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것만 보였다면 그건 뉴스나 르포이지 영화는 아닐 것이다. <미쓰백>이 영화로서 힘을 갖게 되는 건 다름 아닌 제목에 담겨진 이 영화의 주인공 미쓰백 백상아(한지민)의 시선이 담겨져서다. 그 자신도 학대당한 기억이 있는 이 주인공은 어느 날 한겨울 보기에도 추워 보이는 원피스 하나를 입고 달달 떨고 있는 아이를 보게 된다. 한눈에 봐도 학대받는 아이라는 걸 누구나 알 수 있지만, 그 누구도 손길을 내주지 않는 아이. 미쓰백이 그 아이에게 자꾸만 시선이 가게 되는 건 그 아이에게서 자신을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는 미쓰백이 자신의 삶이 더 고달파 외면하려던 아이를 점점 외면하지 못하고 결국 손을 내밀게 되며 나아가 아이를 구해내는 그 과정을 담고 있지만, 거기에는 또한 미쓰백 스스로 자신을 학대받던 아이로 방치하며 살아왔던 삶에 손을 내미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미쓰백은 아이를 구하는 것이고 동시에 자신도 구해내려 안간힘을 쓴다. 영화가 끔찍함을 넘어서 가슴 먹먹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건 바로 이 지점 때문이다. 미쓰백이 상처로 가득한 아이를 꼭 껴안는 그 장면은, “나 같은 것”으로 치부하며 스스로를 비천하게 취급해온 자신을 껴안는 장면으로 다가온다.

이 영화는 그래서 미쓰백이라는 캐릭터와 그 인물을 연기하는 한지민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우리가 지금껏 봐왔던 한지민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면 <미쓰백>의 백상아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영화는 시작부터 빠르게 백상아의 거친 일상을 잡아낸다. 한지민은 재게 손을 놀리며 다소 거칠게 갖가지 일을 하는 동작들만으로 이 인물이 가진 예사롭지 않은 삶의 편린들을 느끼게 해준다.

욕을 해대고, 늘상 담배를 입에 물고 다니고, 얼굴이고 몸이고 항상 상처 하나씩은 달고 다니는 이 백상아라는 인물은 어린 시절의 학대받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서 어찌 보면 자신의 삶을 학대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상처 가득한 지은이의 등장은 들춰내고 싶지 않던 과거의 자신을 다시금 꺼내보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그 거친 삶이 사실은 그 누구보다 따뜻함을 희구하는 마음을 가리기 위함이었다는 걸 아이 앞에 한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통해 보여준다.

이 과정은 그래서 한지민이라는 배우에게도 그간의 고정되어 가던 이미지가 만들어낸 틀을 벗게 해주는 시간들로 다가온다. 영화를 보면 볼수록 한지민에게 이런 거칠면서도 따뜻한 매력이 존재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그래서 영화 속 백상아가 지은이를 통해 자신을 구원해내듯이, 연기자 한지민은 백상아라는 캐릭터를 통해 연기자로서의 자신의 또 다른 면을 꺼내 보인다. 왜 그간 이런 매력적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가. <미쓰백>은 그렇게 한지민을 꼭 껴안으며 말하고 있는 작품 같다.(사진:영화'미쓰백')

시즌제 위에서 펄펄 나는 나영석 사단, 여행 위에 쓴 예능사

vN 예능 <알쓸신잡3>는 국내가 아닌 해외로 영역을 넓혔다. 이전 시즌에서 슬쩍 나왔던 해외편에 대한 이야기를 나영석 PD는 놓치지 않았다. 한 프로그램의 지나가듯 던져진 작은 이야기로부터 또 다른 프로그램이 기획되고 만들어지는 건 나영석 사단의 중요한 제작방식 중 하나다. <꽃보다 할배>에서 농담처럼 나왔던 이서진의 요리 이야기가 발단이 되어 <삼시세끼>가 만들어졌고, <신서유기>에서 비롯되어 <강식당>이 등장하는 방식이다.

<알쓸신잡3>는 그 여행지 선정부터가 야심이 넘쳐난다. 그리스에서 피렌체를 거쳐 독일로 가는 그 여정은 서양사를 조금 들여다본 본들이라면 그냥 선택된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서양문명의 발상지라고도 얘기되는 그리스가 고대 문명의 문화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라면, 피렌체는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가 꽃핀 시기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아직 방영되진 않았지만 독일은 여러모로 근현대로 넘어오는 역사들을 포함하지 않을까. 이렇게 보면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르는 그 흐름을 여행지를 통해서 어느 정도 훑어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반응도 좋다. 조금 진지한 지식 수다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빠져들고 그간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지식들이 현장의 화면들과 자료 화면들이 더해져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되니 더 깊은 지적 쾌감을 준다. 무엇보다 시즌1을 성공시킨 유시민, 김영하 작가가 전체 프로그램을 끌고 가는 이야기꾼으로서의 놀라운 면모를 이어가고, 여기에 새롭게 투입된 김진애 교수와 김상욱 박사의 진솔한 건축, 미술 그리고 과학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더해진다. 그저 웃고 떠드는 예능 프로그램에 지친 분들이라면 지식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는 <알쓸신잡3>에 푹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면 새로 시작한 <신서유기5>는 <알쓸신잡3>와는 정반대의 결을 가진 예능 프로그램이다. ‘바보들의 행진’이라고 할 법한 무식함이 갖가지 게임과 퀴즈로 이어지고, 여지없는 폭풍웃음을 만들어낸다. 물론 그 무식함이 과해 논란의 소지를 만든다는 아슬아슬함이 존재하지만, 그래도 요즘처럼 사건도 많고 사고도 많은 시기에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싶은 분들에게 <신서유기5>의 ‘무조건 웃기기’ 콘셉트는 그 자체로 기능하는 바가 있다 생각된다.

이번 시즌의 콘셉트는 ‘귀신 분장’이다. 그래서 처녀귀신, 저승사자, 가오나시, 강시 등등으로 분장한 출연진들이 그 모습 그대로 홍콩 시내를 활보하며 게임을 하고 음식을 먹는 장면들은 마치 ‘분장실의 강선생님’을 보는 듯한 웃음을 준다. 게다가 매번 이어지는 퀴즈와 게임들은 그 놀랍고도 기상천외한 답변으로 이미 <1박2일> 시절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웃음을 주는 아이템이다.

현재 순항중인 <현지에서 먹힐까>도 지난 시즌인 방콕편에 비해 이번 중국편이 단연 화제성에서나 시청률에서 성공적이다. 물론 <현지에서 먹힐까>는 이제 나영석 사단에서 벗어나 있지만 <신혼일기>에서부터 그 사단 아래 성장했던 이우형 PD의 독립 프로그램이다. 그러고 보면 나영석 PD가 당시 후배들과 함께 작업하겠다고 공언한 후, 함께 했던 PD들인, <윤식당>의 이진주 PD, <알쓸신잡>의 양정우 PD 그리고 <현지에서 먹힐까>의 이우형 PD가 모두 제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신서유기>의 신효정 PD는 본래부터 자기 색깔을 확고히 갖고 있던 PD이고.

이번 <현지에서 먹힐까> 중국편이 이우형 PD에게 큰 의미가 있는 건, 이 프로그램의 관건이 어느 나라에서 어떤 음식을 할 것인가 만큼, 누가 그것을 수행할 것인가라는 걸 확연히 보여줬다는 점이다. 이연복 셰프는 온전히 이 프로그램의 중심에 섰고, 그의 성공철학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들의 시선을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향후 새로운 시즌을 계획한다면 누구를 중심에 세울 것인가에 성패가 달려있다는 걸 이제 제작진들은 공감할 수 있을 게다.

시즌3를 하고 있는 <알쓸신잡>, 시즌5에 도달한 <신서유기>, 시즌2에 안착한 <현지에서 먹힐까> 또 호평과 시청률을 모두 가져갔던 시즌2 <윤식당>까지를 보면, 이제 나영석 사단의 시즌제는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잘 돌아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애초 <1박2일>을 하다 tvN으로 오게 된 나영석 PD가 다른 것도 아니고 ‘여행’이라는 아이템 하나에 집중하겠다고 했던 뜻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모두가 여행이라는 소재 위에 쓴 다양한 형태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아닌가. 그렇게 나영석 사단은 시즌제 위에서 여전히 펄펄 날고 있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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