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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보는 두 개의 눈_한상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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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어렵다. 어려운 데다 어딘가 학문적인 뉘앙스까지 풍긴다. 경영이나 마케팅이라면 모를까. 그래서 경제서라고 하면 선뜻 손이 안간다. 무엇보다 경제서가 하는 말은 나와는 상관없는 먼 나라이야기 같은 경우가 많다. 이유는? 경제서가 대부분 국제경제나 국가경제, 기업경제 같은 거대담론에만 지면을 할애할 뿐, 가계경제에는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하루 벌어먹고 살기 힘들어 죽겠는 서민들이 나라경제가 어떠니 하는 경제서가 눈에 들어올 리 만무다. '공자님 얘기는 개나 물어가라지'하는 냉소적인 시선까지 더하고 나면 경제서를 대중들이 손에 쥐는 것은 참 어려운 이야기처럼만 들린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경제서는 무조건 다 어렵고, 또 나와는 상관없는 공염불만 외는 그런 종류의 책일까. 남의 경제 다 집어치우더라도 내 경제에 도움되는 그런 경제서는 없을까. 뭔가 거대한 흐름을 읽는 시선이면서도 그 시선이 바로 나와 직결된 이야기라는 것을 해주는 그런 경제서. 평소 이런 생각을 가졌던 분이라면 한상완 박사의 <경제를 보는 두 개의 눈>이라는 책을 권한다. 이 책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쉽게 경제적 상황을 거시적으로 설명하면서도, 그것이 바로 가계경제와 연결되는 지점을 포착해낸다. 저자는 현대경제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축적해온 분석 데이터를 활용해, 경제학자들이 좀체 건드리지 않는 투자 트렌드를 짚어낸다.

저자는 투자의 기회로서 이른바 디바이드(divide)라는 현상에 주목한다. 경제는 늘 균형상태를 추구하는데, 그 균형상태가 일시적으로 이탈하는 현상이 바로 디바이드다. 예를 들어 버블현상 같은 것이 대표적인 디바이드 상태인데, 이렇게 이탈된 격차가 커지면 디바이드는 거꾸로 균형상태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때가 부의 기회라고 필자는 말한다. 결국 부라는 것은 어떤 변화의 물결이 새롭게 일어날 때 새롭게 탄생한다. 수렵에서 농경사회로 전환될 때 나타난 봉건 지주 계급이나, 산업혁명으로 나타난 부르주아 등은 바로 이 새로운 변화에 올라탄 집단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보는 현재 세계는 최소한 3개의 디바이드가 존재한다고 한다. 서구 국가들과 아시아 국가들 간의 컨트리 디바이드, 1차 산업과 2차 산업 간의 인더스트리 디바이드, 노년 세대와 청장년 세대 간의 제네레이션 디바이드가 그것이다. 이 책은 이 디바이드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고 또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어 갈 것인가를 분석하면서, 그 기회를 어떻게 부로 만들어낼 것인지 가계경제의 입장에서 조언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이 '경제를 보는 두 개의 눈'이고 그 부제가 '당신의 세상의 절반만 보고 있다'는 것은 이 책이 거시적인 시선과 실용적인 관점을 모두 아우르고 있다는 것을 잘 말해준다. 즉 '세상의 흐름을 투자자의 관점에서 개인이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 된다. 이것은 저자가 깨려고 한 편견, 즉 다름아닌 '경제서가 나와는 상관없는 딴 나라 이야기'라는 생각을 깨뜨리는 방식이기도 하다. 쉽고 재미있게 쓰여져 있어 빠져서 읽다보면 어느새 투자의 눈을 가진 당신을 발견하게 되는 즐거운 순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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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안의 '누가 칼레의 시민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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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벌어진 백년전쟁에서 프랑스 칼레를 점령한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1년 동안 끈질기게 저항한 칼레 시민들을 몰살하고 싶었다. 하지만 측근들의 만류와 칼레시의 탄원으로 한 발 물러선 에드워드 3세는 실로 잔인한 조건을 내건다. 모든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대신, 시민들 중 처형될 6명을 뽑아오라고 한 것이다. 칼레 시민들이 고민에 빠졌을 때, 나선 인물이 당시 최대의 거부였던 생 피에르였다. 그는 스스로 희생양을 자처했고, 이어 칼레시의 부호, 귀족, 법률가 등이 손을 들었다. 결국 생 피에르의 자결과 칼레시 부호와 귀족들이 보여준 희생정신에 감복한 에드워드 3세는 사형을 포기하고 관용을 베풀었고, 이 이야기는 '고귀한 자일수록 먼저 책임을 진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의 원형이 되었다.

현대자동차 최연소 대표이사 사장을 지낸 이계안 전 국회의원이 펴낸 '누가 칼레의 시민이 될 것인가?'는 바로 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담론들을 담고 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지금 칼레의 시민들이 처한 상황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인식은 그가 말하는 우리 사회의 네 가지 개미지옥을 통해 보여진다. 그것은 10대의 사교육, 20대의 청년실업, 30-40대의 내 집 마련, 그리고 50-60대 정년퇴직 후 겪게 되는 노후문제가 그 4대 개미지옥이다. 이계안 전 의원이 주장하는 것은 이러한 4대 개미지옥이 가진 시스템적인 문제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칼레의 시민들처럼 권력과 부를 가진 자들이 스스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흔히 의원 출신 저자들이 쓰곤 하는 자서전류나 정치적 입지를 마련하기 위한 홍보용 서적과는 결을 달리 한다. 이계안 의원이 평소 갖고 있던 소신이 들어있는 것은 물론이지만, 서울 곳곳을 다니며 현장에서 목격된 경제적 약자들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들은 지금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에 닿는다는 점에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무엇보다 이계안 의원 특유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낮은 눈높이는 저자가 대기업 CEO 출신이 맞는가 하는 의구심까지 자아내게 만든다. 지배층에 속하면서도 늘 시선을 아래쪽을 향해 두고 있는 저자의 생각들을 대변하듯, 이 책의 추천사에서 '88만원 세대'의 우석훈 교수는 다음과 같이 썼다.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는 한국의 지배층, 그 속에서 처음으로 적정한 비용을 지불하자고 제안한 첫 번째 한국인이 바로 이계안이다.'

결국 문제는 성장의 뒤안길에서 만들어진 초양극화와 사회분열이라는 대가를 어떻게 해야 치유할 수 있는가이다. 저자가 말하는 것은 선진국으로 길에 아직 도달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물질적인 풍요에 걸맞는 문화의식, 선진의식이 부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고, 거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배층의 의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그 자리에까지 오르는 것이 자신만의 공적이 아니라 그 사회가 부여한 것이라는 의식, 따라서 그것을 또한 사회와 약자들과 나누어야 한다는 의식만이 지금의 문제를 넘어서게 하고, 또 앞으로 우리 사회가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다. 칼레의 시민으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이 4대 지옥 속에서 아비규환의 무한경쟁 속에 살아갈 것인가. 그 선택은 바로 우리들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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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는 청개구리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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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생전, 아버지가 “꼭 해라”고 한 일이 한 가지와 “하지 말라”고 한 일이 한 가지 있다. 1988,년 정몽준 현 한나라당 대표가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을 때 아버지는 “내가 정주영 회장만 못한 것이 무엇이더냐”라며 내가 정치하기를 바라셨다. 1998년, 현대자동차(주) 사장이 되어 고향에 내려가 아버지를 찾아뵈었을 때 마흔 여섯 살의 젊은 나이에 대기업 사장이 된 아들이 자랑스러울 법도 하지만,아내의 손을 잡고 의기양양하게 찾아간 나를..

    2009/12/15 23:22
  2. 지금 왜 칼레의 시민이 필요한가?

    Tracked from 이계안의 희망만들기  삭제

    UN에서 발표한 2009년 <세계인구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1.22라고 한다. 내전에 휘말려 있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제외하면 세계 1위의 저출산국이다. 왜 이렇게 한국인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일까?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단순히 개인적 문제 때문일까? 그 근원적 원인은 한국이라면 누구나 통과해야 할 4개의 개미지옥이라고 생각한다. 10대에는 사교육, 20대에는 청년실업, 30대와 40대에는 내집 마련, 50대와 60대는..

    2009/12/16 19:10
  3. 2.1사회를 위해 한국의 지배층도 비용을 지불하자

    Tracked from 열린공론장 "바실리카"  삭제

    황의홍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한국의 지배층도 비용을 지불하자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현 시점에서 정치인이 쓴 책은 목적과 내용이 정형화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마찬가지로 “누가 칼레의 시민이 될 것인가”라는 책을 처음 발견했을 때 선입견이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책상 한 귀퉁이에 놓아두었는데 책 표지 추천의 글 중 「88만원 세..

    2009/12/17 15:00

'선덕여왕'이 떠올리는 별자리 이야기

당신이 가끔 고개를 쳐들고 별을 보던 그 시절을 기억하는가.
지금도 저기 당신의 별은 빛나고 있건만,
당신은 지금 왜 고개를 떨구고 하늘을 바라보지 않는가.
기억해야 할 것이다.
바로 그 별을 보던 사람들이 있어 우리는 꿈꿀 수 있었고
살 수 있었다는 것을.

어린 시절, 바라보았던 그 별
매포 외할머니댁을 찾아가는 길은 늘 낯설고 두려웠다. 버스가 당도하는 시각은 늘 어둠이 내린 한밤중이었고, 외할머니댁으로 가는 나룻배를 타려면 빛 한 자락 찾기 힘든 캄캄한 길을 걸어야 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그 길을 어머니는 어떻게 걸었던 것일까. 어린 나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가면서도 그게 궁금했다. 배 건너 와요- 어둠만큼 깊은 정적 속에 어머니가 소리를 치면 한참 후에 저편에서 삐걱삐걱하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어디가 물이고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도 모를 어둠 속에서 어디론가 흘러가는 나룻배의 움직임을 강물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겨우 알게 될 즈음, 문득 쳐다본 하늘 위에 펼쳐진 별들의 향연. 빛 한 자락 없는 두려움 속에서 오히려 더 반짝반짝 빛나며 무언가 이야기를 건네던 그 별들은 지금도 저 하늘에서 빛나고 있을까.

물론 그 별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지만, 이제 도시의 빛에 멀어버린 눈은 그 별을 바라보지 못한다. 별들은 분명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고, 지금도 건네고 있지만 도시의 소음에 먹어버린 귀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 어머니가 조곤조곤 들려주시던 하늘의 별자리에 대한 이야기들은 어둠 속에 갇혀 두려워하는 어린 아이의 마음을 꿈으로 채워주곤 했다. 그 때 알았다. 이야기는 바로 꿈의 다른 말이라는 것을.

'선덕여왕'의 별자리가 상기시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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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사진출처:MBC)

'선덕여왕'이라는 사극이 끊임없이 그 때의 그 별자리를 상기시킨 것은 우연이 아니다. 덕만(이요원)이 태어날 때 화두처럼 던져진 "북두칠성의 개양성이 둘로 갈라져 여덟이 되는 날, 미실을 대적할 자가 오리라"는 예언은 바로 별자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미실(고현정)과 덕만이 천문을 사이에 두고 권력의 대결구도를 벌이는 장면에서도 이 별자리의 이야기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고 있었다. 드라마가 끝날 때, 인물의 정지된 화면 위로 반짝반짝 빛나며 별자리들이 드리워지는 엔딩장면은 오래도록 이 드라마의 이야기가 별자리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별자리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들려주셨던 것처럼 이야기일 뿐이다. 하늘의 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별들은 그저 그렇게 흩어져 있는 것일 뿐, 아무런 이야기도 들려주지 않는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어머니처럼 그 별을 보고 이야기를 생각하는 사람뿐이다. 아무 의미 없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해 어떤 이야기를 만드는 것. 이것은 사람만이 가진 능력이다. 아주 오래 전, 하늘의 별빛조차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시절을 떠올려 보면, 그 두려움의 하늘을 아름다운 이야기가 흐르는 하늘로 변모시킨 이야기꾼은 사실 세상을 바꾼 것이다. 그 이야기는 아무 의미 없이 죽어버리고 사라져버리는 덧없는 삶을 의미 있는 것으로 바꾸었을 테니까. 그로써 사람들은 비로소 꿈이라는 것을 꿀 수 있었을 테니까. 이야기는 실로 꿈의 다른 말이다.

'선덕여왕'은 그 별자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미실이 백성들을 다스리는 방법으로서 환상을 내세웠다면, 덕만은 희망을 내세웠다. 환상은 실체를 모르면서 이야기를 믿는 것이라면, 희망은 실체를 알면서도 이야기를 믿는 것이다. 우리는 하늘의 별이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 별자리 이야기들을 통해 어떤 삶의 계획들, 덕목들, 꿈들을 떠올리곤 한다. 이야기는 사람을 꿈꾸게 하고 그 꿈을 실체로 만들어주는 힘을 갖고 있다.

당신의 별자리,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별자리 이야기는 이제 우리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우리들이야말로 저 하늘의 별처럼 그저 흩어져 무엇이 될 지도 모르고 숨 쉬고 있는 존재들이 아닌가. 그런 존재들이 어떻게 삶의 목표를 만들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어린 시절 우리는 인생이라는 커다란 빈 도화지를 하나씩 받았고, 그 위에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이야기들을 써나갔던 적이 있다. 그것은 바로 당신의 별자리 이야기다. 당신 스스로 꿈꾸었던 인생이 이야기처럼 그 속에는 들어 있었고, 그 이야기가 일러주는 대로 당신은 부지불식간에 빛 한 줄기 없어 어디가 앞인지 어디가 뒤인지조차 알 수 없는 그 암흑의 길 위를 한 발작씩 걸어왔다. 두려움조차 없이. 어떻게? 이야기가 당신의 손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삶이 힘겨워질 때, 고개 숙인 당신이 해야 할 것은 바로 그 하늘을 다시 올려다보는 일이다.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그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떠올려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도시의 불빛에 멀어버린 눈을, 도시의 소음에 먹어버린 귀를 찾기 위해 한참을 달려 인적 드문 어딘가로 떠나도 좋을 것이다. 그 곳에 서서 어린 시절부터 늘 거기서 이야기의 빛을 쏟아내던 그 별들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 것. 그 상상의 힘을 복원하는 것. 당신이 힘겨운 것은 현실이 주는 어려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어느새 상상하기를 멈춰버린 당신 자신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자. 별을 보자. 적어도 하늘에 붙어 있는 별은 숙여진 당신의 고개를 꼿꼿이 쳐들게 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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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TV의 시대, 새로운 가족의 풍경

자물쇠를 찬 바보상자, 옛날TV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TV에 대한 첫 기억으로 무엇이 떠오르느냐고 묻는다면 ‘자물쇠’라고 말할 것이다. 큰 맘 먹고 아버님이 모셔온(?) TV는 방 한 가운데를 떡 하니 차지하고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접근 불가능의 물건이었다. 가구와 일체형으로 되어 있던 그 녀석은 커다란 자물쇠를 풀고, 문을 양옆으로 연 후에야 겨우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교육열이 유난히도 뜨거웠던 그 시기, 이른바 ‘TV는 바보상자’라는 말에 아이들의 눈을 가리고 저희들끼리만 보려고 누군가 고안했던 고약한 아이디어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가린다고 안볼 우리들이었을까. 저녁 시간마다 TV를 볼 수 있는 친구 집으로 달려가는 건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결국 서랍장에 모셔둔 TV 때문에 밖을 전전하는 아이들에게 백기를 든 아버님은 저녁 공부 몇 시간을 조건으로 자물쇠를 풀어내며 감금된 TV를 해방시켜주었다. 그 순간, 조그만 시골마을에서 저 바깥세상과 유리된 채 살아가던 우리들의 눈도 해방되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바보상자이기는커녕 온갖 진기한 세상의 일들을 바로 눈앞으로 가져다 주는 놀라운 알라딘의 마술램프가 아니었나 싶다.

TV는 늘 집안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고, 가족들은 TV를 중심으로 저녁을 보내기 시작했다. TV가 점점 많이 보급될수록 동네의 유대감도 TV로 매개되는 새로운 풍경이 나타났다. 프로레슬러 김 일 선수가 일본 선수에게 연실 박치기를 해댈 때마다 온 마을은 들썩거렸고, ‘짜자자잔짜잔 -’하는 특유의 시그널송이 울리면 당연히 그 앞에 앉아 봐야만 했던 ‘수사반장’에 대한 국민적인 열광은 묘한 집단적인 도취감마저 느끼게 했다. 바보상자로 서랍장 속에 가둬져 있던 TV는 어느새 가족의 중심에 서 있었다.

영상시대, 여가로 자리한 TV, 가족을 대리해주다
80년대 컬러TV시대가 열리자 바뀌어진 총천연색 화면은 그 때까지 무채색으로만 존재하던 세상에 색깔을 입히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신기하기만 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명암 속에서 잡힐 듯 잡히지 않았던 흑백TV가 가진 그 아우라를 깨버린 것은 바로 그 컬러영상이 아니었나 싶다. 컬러시대와 함께 현란해진 광고들은 눈을 피곤하게 만들었으며 영상은 점점 대중화되었다. 이른바 영상시대에 우리는 들어와 있었다.

때마침 등장한 리모컨은 홍수처럼 쏟아져 나와 눈과 귀를 어지럽히는 광고들로부터의 탈출을 가능하게 했다. 프로그램 전에 방영되던 수십 개에 달하는 광고를 피하기 위해 더 이상 TV 앞으로 가서 드륵 드륵 채널을 돌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그저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채널을 바꿔주는 리모컨은 멀찌감치 놓여진 소파와 한 세트를 이루면서, TV 시청을 새로운 여가문화의 하나로 만들어버렸다. ‘육백만 불의 사나이’나 ‘소머즈’에서부터 ‘게리슨 유격대’, ‘맥가이버’에 이르는 미국드라마 시리즈를 보는 것은 지금의 미드 열풍처럼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고, 영화는 꼭 영화관에 가거나 비디오를 빌려야 볼 수 있었던 당대에 ‘주말의 명화’는 안방극장이란 말을 탄생케 했다.

가족들은 이제 집에서의 대부분의 여가생활을 TV를 통해서 하기 시작했다. 리모콘을 누가 쥐는가는 그 가족의 헤게모니를 누가 잡고 있느냐를 대변했고, 그것에 따라 가족들은 멜로 드라마를 보며 울거나, 스포츠를 보며 열광하거나, 오락프로그램을 보며 웃곤 했다. 오랜 시간 가족의 중심에 서있던 TV는 이제 더 이상 타인이 아니었고, 심지어 핵가족화되고 개인화된 공간으로 사라진 가족을 대리해주는 존재가 되었다.

똑똑한 TV 시대, 시공을 넘어 개개인의 삶 속으로
디지털 시대의 도래는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컴퓨터는 점점 TV를 향해 진화했고 결국 이 두 지점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IPTV가 등장했다. TV에 대한 전통적인 생각, 즉 송출하는 영상을 수용하기만 하는 수동적인 입장은 수정되어야 했다. 이제 자신이 보고싶은 영상을 스스로 선택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사람들은 TV를 보면서 실시간으로 뉴스를 확인할 수 있고, 보다가 무언가 해야할 다른 일이 생기면 화면을 멈춰놓을 수도 있다. 물론 지나간 장면을 되돌려보면서 좀더 분석적으로 TV를 바라볼 수도 있다. 분석적인 시선들은 또다시 인터넷을 통해 나누어지고 그 힘이 모아져 TV가 독주하는 것을 견제한다. IPTV 시대의 TV란 이제 늘 대상으로서 시청자를 세워놓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시청자의 참여를 통해 집중되는 존재로 변모했다. 이른바 똑똑한 TV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동네에 한 대 있는 TV를 보기 위해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그 어린 시절과, 또 TV 한 대를 놓고 서로 가족들이 리모콘 쟁탈전을 벌이던 시대와 비교해보면 지금은 실로 수없이 많은 TV들에 둘러싸여 가족의 풍경이 달라져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거실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벽걸이 TV와 버리기에는 아까워 안방 한 구석에 놓아둔 옛날 TV는 물론이고, 버튼 하나로 유선TV로 변신하는(?) 모니터, 자동차에 떡 하니 자리하고 있는 네비게이션 속으로 들어온 DMB, 그리고 주머니 속에서 언제든 꺼내 TV를 볼 수 있는 휴대폰까지. 가족들은 저마다의 시공간 속에서 TV(이제는 그저 영상이라 불리는)와 생활하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본방을 사수하고 있을 때, 자녀들은 DMB나 모니터를 이용해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보고, 못 본 프로그램들은 IPTV를 통해 언제든 내려볼 수 있게 되었다. 다운로드를 통한 시청은 몰아보기 같은 새로운 시청 패턴을 만들어 이제 주말 가족의 여가풍경을 바꾸기도 했다. TV를 중심으로 채널권으로 대변되는 가족 간의 관계는 이제 가족 구성원의 다양한 매체 선택 가능성(시공간을 넘어서는)으로 인해 좀더 수평적으로 바뀌었다. 아버지나 어머니에 의한 강권이 아닌, 저마다의 기호에 따른 선택이 가능해졌다는 얘기다.

이 똑똑한 TV의 시대에 이제 바보상자는 자물쇠가 채워진 저 과거의 서랍 속에 넣어진 옛유물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또 하나의 가족이 되어 우리 가족 구성원의 풍경을 바꿔나가고 있다. 하지만 TV가 똑똑해지거나 아니면 바보로 있거나 하는 것은 전적으로 당신에게 달린 일이다. 이제 당신의 집안에 자리한 또 하나의 가족을 돌아 보라. 그 가족은 충분히 똑똑한가, 아니면 여전히 바보인가.(이 글은 IPTV가이드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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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스페셜’ 곰배령 사람들 편에서는 강원도 오지 중의 오지인 곰배령으로 들어가는 취재진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눈길에 바퀴가 빠져버리자 취재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나와 뒤에서 차를 민다. 그것은 만일 현지에 살아가는 생활인들이라면 몹시 곤란하고 귀찮은 상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취재를 하기 위해 산을 오르는 그들에게는 그 사건(?)조차 일상의 파격이 주는 어떤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그들은 결국 차가 오를 수 없는 길에서부터 카메라와 장비를 메고 한 시간이 넘게 산을 올라가야 했다.

현장에서조차 현지인들과 방문인들의 느낌이 이다지도 다른데, 오지에서의 삶에 대한 현지인들의 느낌과 그걸 편안하게 집안에서 리모콘을 만지작거리며 보는 우리의 느낌은 얼마나 먼 거리에 있을까. 아름다운 곰배령의 눈과 자연 풍광이 담겨진 영상 속에서 현지인들이 겪는 실제 삶의 아우라는 이미 여러 차례 벗겨져 있다. 시청하는 입장에서 그 곰배령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노스탤지어의 영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거기에는 이미 카메라와 TV의 인공적인 작업들에 매개된(그래서 익숙한) 산골이 있을 뿐, 실제 혹한의 날씨나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밤의 포근한 어둠이 자연의 일부로서 사람을 감싸안는 그 느낌, 산골 생활에 귀할 수밖에 없는 생선 요리가 주는 미감, 인공이 삭제된 공간 속에 흐드러지게 피어나 있는 야생화들, 그 야생화에서 벌들이 모아놓은 벌꿀을 손으로 직접 뜯어먹는 그 느낌 같은 것들은 체험될 수 없다. TV 속의 곰배령은 따라서 엄밀히 말해 진짜 곰배령이 아니다.

‘곰배령 사람들’같은 다큐멘터리는 그래도 촘촘한 취재를 통해 현실에 가까운 곰배령을 재현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는 여행 관련 프로그램들은 어떨까. 이른바 여행 버라이어티쇼가 주말이면 몇 명의 캐릭터들을 내세워 여행을 대리하고 있고, 아침방송과 저녁방송에서는 매일 여행지로 달려간 리포터들이 현지의 먹거리와 볼거리를 시청자들 앞에 날라다주고 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바쁜 현대인들의 향수를 채워주기 위해 매개된 영상이 여행을 대리해주는 것을 그다지 나쁘게만 바라볼 수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그 매개된 영상이 바꿔놓는 진짜 여행지의 모습이다.

진짜 시골은 ‘패밀리가 떴다’가 보여주는 것처럼 노동이 삭제된 공간이 아니며, ‘1박2일’이 보여주는 것처럼 먹거리를 놓고 복불복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하지만 매개된 삶이 더 리얼하게 되어버린 작금의 상황에서 이 진짜가 아닌 여행지의 영상들은 진짜 여행지를 바꿔버린다. 종종 촬영에 따른 현지인들의 불만이 논란거리로 등장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워낭소리’같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성공하자 경상북도가 이 촬영지를 관광상품화하겠다고 나선 것도 마찬가지다. 매개된 영상이 삶의 공간마저 여행지로 바꾸는 이 현상은, 이제 노동실종의 시대에 시골이라는 공간이 노동과 삶의 공간이 아닌 전시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는 징후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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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위한 다이어트

“다이어트 아니면 죽음을(Diet or die!)!” 이 말장난 같은 문구가 식상해질 정도로 다이어트는 이제 생활이 되었다. 과거 같으면 “다이어트를 한다”는 참으로 애매모호한 표현 속에 다이어트가 있었다면, 지금은 “운동을 한다”거나 “좀 덜 먹는다”는 식으로 구체적인 행동방식으로 다이어트가 들어와 있다. 이것은 다이어트에 대한 인식이 이제는 삶의 한 행동양식 속에 포함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굶어서 병나던 시대에서 많이 먹어 병나는 시대로
우리나라에서 다이어트라고 하면 최근의 일처럼 여겨지지만 서구에서 다이어트의 역사는 꽤 이전으로 돌아간다. 뉴욕타임스 과학전문기자인 지나 콜라타가 쓴 ‘사상 최고의 다이어트’에 의하면 서구에서 다이어트는 이미 19세기에 광풍이 불었다고 한다. 당시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이었던 바이런은 식초 다이어트의 선두주자였으며, 저단백 다이어트, 저탄수화물 다이어트 등등 다양한 다이어트 비법들이 이미 당대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다이어트를 얘기한다면 일단 80년대는 들어서야 그 본격적인 유행의 흐름이 생기기 시작한다. 물론 몇몇 특정 계층들은 그 이전에도 서구의 다이어트를 생활 속에서 실행하고 있었겠지만 대중들에게 널리 유행처럼 퍼진 것은 그나마 좀 먹고 살기 시작해지는 80년대 이후부터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80년대 이전까지 우리의 관심사는 다이어트가 아니었다. 그 때의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에너지를 음식을 통해 축적할 수 있는가 하는 ‘영양’에 있었다. 70년대 짜여진 영양식단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은 그 영양의 3대요소로서 우리 생활에 이것을 어떻게 골고루 섭취하느냐가 관건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관심사는 ‘균형 잡힌 식단’에 있다. 이른바 식품 피라미드에서 위 3대 요소는 그 피라미드 속에서의 위치가 정해진다. 피라미드의 맨 밑 부분은 곡류, 즉 탄수화물이 차지하고 맨 윗 부분은 육류 즉 지방과 단백질이 차지한다. 그런데 이 피라미드의 중간에는 과거의 3대 요소 이외에 새로운 요소들이 추가된다. 그것은 바로 채소와 과일 즉 비타민, 무기질, 섬유질 같은 요소들이다. 그런데 이 추가된 것들을 보면 알겠지만 이것들은 실제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요소들이 아니다. 오히려 에너지를 대사시키는데 활용되는 요소들이다. 이처럼 지금 같은 과잉영양이 보편화된 시대에는 먹는 것은 오히려 병을 일으킨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과거에는 못 먹어서 병이 났고, 지금은 너무 많이 먹어 병이 난다. 따라서 과거의 관심사는 잘 먹는 것이었고, 지금의 관심사는 오히려 잘 배설하는 것이 되었다. 최근 들어 점점 늘어가는 위장질환과 장 질환, 고혈압, 당뇨병 같은 대사질환들은 바로 이런 변화를 말해주는 바로미터다.

정신의 시대에서 몸의 시대로
그러나 다이어트에 대한 관심은 위에서 언급한 건강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보기 좋은 몸을 만들기 위해 시작되었다. 20세기 후반까지 사실상 몸은 정신의 지배를 받으며 핍박받는 존재였다. 수행을 위해 고행하는 몸과 시각이 주는 정신적인 만족감을 위해 코르셋에 구겨 넣어지는 몸이란 존재는 늘 정신의 하위의 것으로 치부되어 왔다. 하지만 과학의 시대가 인체의 비밀을 파헤치면서 몸은 오히려 정신을 지배하는 그 무엇으로 바뀌어졌다. 몸의 생리학적인 변화가 우리의 사고를 지배할 수도 있다는 패러다임의 변화는 몸의 시대를 열었다.

몸은 더 이상 숨기거나 억눌려져야될 존재가 아니라 드러내고 가꾸어져야할 존재로 변모했고, 따라서 몸 가꾸기는 당당해졌다. 과거에 똥배는 인격이라는 정신적인 무엇을 뜻했지만, 지금은 그저 축 늘어진 비계덩어리로 거꾸로 그 사람의 게으름과 나태를 뜻하게 되었다. 몸 가꾸기는 보기 좋은 외모 정도에서 머물지 않고 사회적인 관계를 위해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다이어트에 대한 작금의 지대한 관심은 바로 이 몸의 시대가 가져온 변화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몸의 시대로의 변화는 시대적 흐름일 뿐, 거기에 어떤 가치판단을 남기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몸의 시대가 가진 긍정적인 요소, 즉 몸을 가꾸고 또 그로 인해 건강을 챙기며 궁극적으로 행복한 삶을 영유하겠다는 그 목적에 우리는 얼마나 부응하고 있는가가 문제다.

무식한 살 빼기, 똑똑한 다이어트
다이어트에 대한 수많은 유행 속에 숨겨진 것은 두 가지다. 다이어트의 방법들은 유행처럼 돌고 돈다는 것과, 결국 다이어트의 왕도는 없다는 것이다. 단식이나 절식으로 살을 빼려고 노력한다 해도 그것은 오히려 거꾸로 몸의 역공(?)을 받을 수 있다. 적게 먹는다는 것은 몸에게는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결국 몸은 생존을 위해 에너지를 저장하려 하며, 그것은 결국 지방(이것이 지방의 존재이유이기도 하다)을 더 만들어내게 만든다. 한 가지 음식만을 섭취해 살을 빼겠다는 건, 마치 영양 불균형을 스스로 초래하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우둔한 생각이다. 운동도 가장 안전한 방법처럼 소개되지만 지나치면 오히려 몸을 망치게 만든다. 운동은 신체에 대한 일종의 스트레스. 따라서,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은 신체는 비정상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증상으로는 급성적으로 심한 어지럼증, 호흡곤란 등으로 나타나며 만성적으로는 근육통, 만성피로 등이 나타난다. 또한, 소위 과사용증후군이라 불리는 근육이나 관절의 각종 손상 등도 가끔 발생하게 된다. 또 편안하게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지방흡입술 같은 몸에 칼을 대는 과감한 방식을 활용하기도 하는데, 이미 몇몇 언론에서 발표된 것처럼 이것은 보조적인 것일 뿐, 그 자체로 살을 빼겠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따라서 똑똑한 다이어트를 하려면 일단 기본적인 생활 속에서 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쉬운 말이지만 행하기는 어려운 그것은, 좀 적게 먹는 습관을 들이고 적당한 운동을 무리하지 않고 매일 해주며, 지나친 다이어트에 대한 집착을 오히려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똑똑한 다이어트가 무식한 살빼기가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것이 생활이 되지 못하고 그저 속성 코스의 어떤 목표가 되기 때문이다. 균형 잡힌 삶은 자연스레 당신의 진정한 다이어트를 이루어주는 열쇠가 된다.

삶의 다이어트, +사고에서 -사고로
자 이제 몸의 시대에서 방만해진 몸을 거꾸로 보완해줄 수 있는 것은 당신의 사고이다. 균형 잡힌 삶이란 당신의 삶에 대한 가치관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삶, 즉 생활의 다이어트는 당신의 정신과 몸을 모두 균형 잡히게 해주는데, 그것은 사고의 전환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를 위해 먼저 버려야 할 것은 과거의 플러스(+)적인 사고관을 버리는 것이다. 플러스(+)적인 사고관이란 무언가를 축적하기 위해 살아가는 욕망의 사고관이다. 더 많은 돈을 축적하고, 더 좋은 차를 사고, 더 넓은 집을 사고, 더 좋은 음식을 먹겠다는 욕망의 사고관은 삶의 비만을 만든다. 욕망에 가득한 삶이 가져오는 것은 결국 보다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는 부작용이다. 타인을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과 가족만 살찌우면 그만이라는 가족이기주의는 그 대표적인 부작용이다. 이 플러스(+)적인 사고관이 가져오는 이러한 병폐는 사회를 병들게 만든다.

대신 조금씩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욕망을 비워나가는 마이너스(-)적인 사고관은 이미 풍요라는 이름으로 비만병의 징후를 앓기 시작한 이 시대에 필요한 사고방식이다. 더 많은 돈을 벌기보다는 자신이 쓸 만큼을 쓰고 주위와 나누는 그런 사고방식, 무언가를 끊임없이 생산해서 소비하고 버리기보다는 그 욕망 자체를 줄이겠다는 환경 생태적인 사고 같은 것이 마이너스(-)적인 사고방식의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한정된 자원을 가진 지구촌에서 어느 나라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서 죽고, 어느 나라는 먹을 것이 넘쳐나 과잉되어 죽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플러스적인 사고관이 만들어낸 자원의 동맥경화가 아닐 수 없다. 이 막힌 곳을 뚫어주는 수술이 중요한 것처럼, 아예 이런 흐름이 막히는 것 자체를 만들지 않으려면 이 시대에 맞는 사고관이 절실하게 필요해진다.

당신이 고민하는 당신 몸의 다이어트의 문제는 그저 당신의 문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 지구 위에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들과 연관되어 있는 삶의 균형의 문제이다. 우리들 하나 하나가 그 삶의 균형을 맞춰나가려고 할 때, 그것을 어떤 구호 같은 단기적 목표가 아니라 삶의 한 방식으로 받아들일 때, 그것은 당신의 몸을 변화시키고, 당신의 정신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당신이 살아가는 사회와 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다. 당신의 균형잡인 삶은 지구라는 존재가 현재 겪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해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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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3일간의 태안, 그 꿈같은 날들

태안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 신두리. 홍상수 감독은 '해변의 여인'을 통해 신두리를 꽤나 냉소적으로 그려냈다.
해변하면 떠오르는 백사장과 푸른 파도 대신에 시커먼 갯벌만을 잡아내고, 여인하면 떠오르는 무언가 분위기 있는 아우라를 걷어내고 좀더 현실적인(한마디로 깨는) 여성을 그 자리 위에 세운다.
홍상수 감독은 사람들이 어떤 단어에 일상적으로 떠올리는 이미지를 깨고 대신 추하고 좀스럽고 째째한 현실을 보여주려 했다. 하지만 이것은 홍상수 감독의 프레임 안에서일뿐, 신두리가 주는 진짜 즐거움과 아름다움은 아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는 홍상수 감독이 했던 방식으로 홍상수 감독이 냉소적으로 바라봤던 태안을 다시 볼 참이었다. 이제 태안하면 사람들이 떠올리는 기름유출사고의 이미지. 이번 여행은 그 이미지를 깨고 얼마나 태안이 우리에게 편안한 휴식을 주는가를 확인해보는 시간이었다.

여행코스
첫째날 : 간월도 - 안면도(꽃지 해수욕장, 안면도 자연휴양림) - 마검포(낙조, 스타팰리스에서 별관측, 영화 '가문의 위기'촬영지)
둘째날 : 마검포 갯벌 산책 - 파도리해수욕장, 만리포해수욕장, 백리포해수욕장 - 신두리해수욕장(해변의 여인 촬영지 자작나무 리조트, 바베큐와인파티, 불꽃놀이)
셋째날 : 신두리해변산책 - 태안이원박속낙지탕 시식 - 볏가리마을 둘러보기 - 상경하는 길에 백제의 미소(태안삼존석불) 관람
--> 빡빡해 보이지만 2박3일의 일정으로 충분히 여유있게 즐길 수 있는 코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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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IC를 빠져나와 바로 당도하게 되는 간월도. 섬이지만 밀물썰물에 따라 길이 열렸다 닫혔다는 하는 재미가 있다. 자그마한 섬 위에 놓여진 도량에서는 저 멀리 파란 바다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고개를 숙여야만 앉을 수 있는 낮은 나무와 이곳을 지키는 개가 명물로 꼽힌다. 기도빨이 세기로 유명한 이곳에는 연말연시에 소원을 비는 인파로 몰린다고 한다. 어리굴젓이 유명해 백반을 먹으려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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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도에서 간단하게 여행기분을 냈다면 본격적으로 안면도의 매력에 빠져볼 때다. 특유의 쭉쭉 뻗은 적송들이 즐비한 그 곳의 명물은 단연 꽃지해수욕장에서 바라보는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 간단히 둘러보고 곧바로 안면도 자연휴양림에 들어선다. 웅장한 소나무숲 속에 서는 것만으로 도시에서 뜨거웠던 속은 어떤 청량감으로 가득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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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잠자리를 찾아갈 시간. 안면도가 조금 번잡한 반면, 조금 벗어나 있는 마검포(꽃지에서 5분거리)는 편안하고 고요한 저녁이 기다린다. 신두리 사구만큼 고운 모래를 자랑하는 마검포 해수욕장은 한 가족이 오롯이 차지할만큼 한가하다. 스타팰리스(www.starspalace.net)는 천문대가 있는 펜션으로 유명하다. 그 곳에 짐을 풀고 바다로 나가 낙조를 바라보며 눈을 씻는다. 별을 보고 싶다면 미리 날씨를 체크하는 건 필수. 아침 일찍 호미 하나 들고 갯벌체험에 나가는 것도 큰 재미다. 스타팰리스는 영화 '가문의 위기'에서 신현준, 김원희씨가 펜션 옥상 천문대에서 별을 보는 장면을 찍은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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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태안의 바다를 둘러볼 차례. 파도리와 만리포, 천리포, 백리포는 모두 근처에 있어 그 각각의 풍광을 즐기기에 그만이다. 파도리는 다갈다갈한 자갈들이 많아 아이들이 옥돌 찾기 놀이를 할 수 있고, 만리포는 그 유명한 노래 '만리포사랑'처럼 번화한 해변을 자랑한다. 한편 덜컹덜컹 비포장도로를 달려가다 빠져나오면 갑자기 펼쳐지는 아담한 바닷가 백리포는 가족적인 휴양지로 일품이다.

그렇게 먼 길을 돌아.... 드디어!! 신두리에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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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두리 해수욕장 이정표 바로 앞에 있는 자작나무 리조트.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객실과 바비큐파티로 늘 북적거리는 밤을 느낄 수 있는 널찍한 정원. '해변의 여인'을 찍었던 곳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 '해변의 여인'
한 여자와 두 남자가 신두리에서 벌이는 밀고당기기. 고상한 척 이미지 운운하는 감독 중래(김승우)와 예쁜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쌍욕을 쏟아내는 문숙(고현정), 그리고 만만찮은 까칠함을 숨기고 있는 중래의 후배 창욱(김태우). 신두리라는 낯선 공간 속에서 이들은 일상의 진면목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낯설은 바다 풍경을 보여준 신두리는 또 하나의 주역이었다.

--> 자작나무 리조트 앞에 선 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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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바비큐 장소가 있으니 와인은 필수다. 이날 준비한 것은 식전주겸으로 부담없이 마실 칠레산 운두라가 샤도네이와 메인으로 준비한 부르고뉴 피노누아. 특히 라이트하면서도 깊은 뒷맛이 있는 부르고뉴 피노누아는 바비큐와도 아주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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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날이 흐려 낙조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아름다운 저녁 풍광. 바다를 앞에 둔 채 익어가는 바비큐 그릴 위의 새우와 조개와 고기, 그리고 거기에 곁들여지는 와인 한 잔... 어느새 누군가 쏘아대는 폭죽에 신두리는 저녁의 축제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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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하는 폭죽놀이는 신두리의 또다른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20발짜리로 멀리 날아가는 폭죽과 30발짜리로 낮게 날아가는 폭죽이 있는데, 날아가는 모양에 따라 또 여러 종류로 나눠진다. 아이들은 종류에 상관없이 즐거워 하지만... 그렇게 신두리의 밤은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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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일찍 나선 신두리 바닷가. 흔적을 남기기 위해 플래카드도 펼쳐놓고...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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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보니 거기에는 생명들이 꿈틀대고 있었다. 작은 게와 소라게를 잡은 아이들의 환호성이 신두리의 아침바닷가를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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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두리의 최대 리조트인 하늘과 바다사이 펜션에는 공룡 테마 파크가 있어 아이들의 발길을 끌었다. 공룡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이국적인 풍경이 파란 하늘과 함께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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볏가리 마을로 가는 길에 출출하기도 하고 해장도 할 겸 태안 이원의 박속낙지탕을 먹으러 갔다. 박속을 먼저 끓이고, 꿈틀대는 산낙지를 넣은 후, 잘게 잘라 소스에 찍어먹고 마무리는 칼국수와 수제비로 말끔하게... 전날 마신 술로 더부룩하던 속이 확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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볏가리마을은 한적했다. 벼가 노릇노릇 익어가고 새우 양식장에서는 인부들의 손길이 바빴다. 체험을 하려면 미리 연락을 해야 제대로 농가체험을 할 수 있다. 우리 가족은 그저 마을을 한 바퀴 빙 돌면서 산책을 즐겼다. 가을의 농가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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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올라오는 길 아이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어 태안마애삼존불을 찾았다. '백제의 미소'는 여전히 찾는 이를 환한 미소를 반겨주었고.

돌아오는 길에 떠날 때 마음에 품었던 기름유출사고로 인한 태안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마음 한 가득 채워진 건 그 평화롭고 편안했던 바다의 잊을 수 없는 추억들... 돌아오는 발길이 가벼웠다.

>> 여정의 마침표. 지친 몸 풀어주는 뜨끈한 온천
안면도의 오션 캐슬 아쿠아월드는 푸른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며 유황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노천탕을 갖추고 있다. (www.oceancastle.com) 또한 충남 예산에 위치한 야외 온천 테마파크인 덕산 스파캐슬은 온천과 물놀이를 함께 즐기기에 그만인 곳이다.

▶ 찾아 가는 길 :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가면 태안이 지척이다. 만리포쪽으로 가려면 당진IC를 빠져나와 32번 국도를 따라가면 되고, 그 길을 따라가다 신두리로 빠지는 길이 나온다. 만일 안면도쪽으로 간다면 홍성IC를 빠져나가 서산 A방조제를 건너면 된다. 마검포는 안면도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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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와 한국블로그산업협회가 공동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대한민국 트래블로거에 도전하라' 행사가 진행중입니다. (9월11~9월21일까지)국내 5개지역을 나눠  트래블로거에 선정되면 여행경비의 일부를 지원 한답니다.

꽤 오랫동안 여행 칼럼을 쓴 경험이 있고 요즘도 여행을 하고 있는 터라 이번 모집이 제게는 딱 맞는 것 같답니다.

- 지원 사유 : 요즘 대중문화와 여행을 연결한 컨텐츠 발굴을 생각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저 드라마 촬영지나 영화 촬영지를 얘기하는 정도가 아니라 각각의 대중문화 컨텐츠 속에서 여행지가 의미나 이미지적인 기능 같은 걸 생각하고 있습니다. 거창해 보여도 사실은 대중문화 컨텐츠와 연계하여 재미있게 여행지를 소개하고자 하는 목적이 큽니다.

- 여행 지역 : 충청남도 태안군의 숨겨진 바다 해수욕장을 가고자 합니다.

- 여행 날짜 : 10월3일-5일(2박3일) 자동차 여행

- 여행 컨셉 : 대중문화와 연계된 여행지 소개(예를 들면 신두리와 '해변의 여인', 안면도와 '드라마 촬영지들'

- 여행 일정 : 10월 3일 (오후태안으로 출발 )- 태안 마애삼존불 - 안면도 자연휴양림 - 안면도 인근 마검포(영화 촬영지)에서 1박
10월4일 : 마검포 갯벌체험 - 만리포, 천리포, 백리포, 파도리, 신두리 해수욕장 순례 - 볏가리 마을 체험 - 신두리에서 1박
10월 5일 : 박속낙지탕 시식 - 서울로 출발

볏가리 마을 체험이 어떤 식으로 될 지 몰라 가변적입니다만, 모두 인근에 있는 지역이고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 이름이 높은 곳이 많아 순서에 상관없이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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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한민국 트래블로거에 도전하라!

    Tracked from 문화체육관광부 뉴미디어산업과  삭제

    한국관광공사, 한국블로그산업협회에서 여행을 좋아하시는 블로거들을 위해 재미있는 이벤트를 마련했습니다. (저희 뉴미디어과는 행사 기획에 참여하였고 일부 예산을 지원합니다만, 트래블로거 선발에는 참여하지 않습니다. ^^;) 자신의 여행계획서를 작성하여 트레블로거로 선발이 되면 여행경비를 지급받을 수 있습니다.. 대신, 여행을 다녀오신 다음에 자신의 블로그와 한국관광공사 사이트에 판타~스틱한(ㅋ) 여행 후기를 올려주시면 됩니다. 그때, 저희 뉴미디어산업과..

    2008/09/22 09:25
  2. 트래블로거 당첨자 명단.. 축하드립니다~^^

    Tracked from 문화체육관광부 뉴미디어산업과  삭제

    관광공사와 블로그산업협회에서 주최한 트래블로거 이벤트의 당첨자 명단이 발표되었습니다. 당첨되신 분들 모두 축하드립니다~~^^ 계획하신대로 즐거운 여행 다녀오셔서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산천과 그 곳에 사시는 분들의 정겨운 이야기를 멋지게 포스팅해주시를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번 축하드리며, 이번 이벤트에 많은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더불어, 많은 분들이 응모해주셨는데, 모두에게 기회를 드리지 못해 안타깝네요...ㅠㅠ 다음 기회가 된다..

    2008/09/24 18:50

세계 최초 유기농 뮤지컬, ‘총각네 야채가게’

이젠 뮤지컬도 유기농(?) 시대인가. 세계 최초 유기농 뮤지컬을 주창한 ‘총각네 야채가게’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 뮤지컬은 현실에 치이면서도 좋은 야채와 과일을 소비자들에게 전하겠다는 꿈으로 야채가게를 낸 다섯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왜 처녀도 아저씨도 아줌마도 아닌 굳이 ‘총각네’ 야채가게였을까. 그것은 ‘총각’이라는 이미지가 갖는 독특한 성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무언가 열정에 가득 차 있고, 꿈 하나만으로도 하루가 배고프지 않은 그 젊음. 하지만 늘 어깨를 짓누르는 현실을 또한 온몸으로 느끼며 때론 좌절하고, 때론 엇나가는 그 젊음의 굴곡. 그래도 순수함을 잊지 않고 초심을 지키려는 젊음의 건강함 같은 것들이 그 단어 하나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야채가게가 갖는 두 가지 의미, 즉 건강과 상품이라는 두 가치는 총각들이 갖게 되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것들이다. 즉 좀더 값싸게 좋은 야채와 과일을 소비자에게 제공하겠다는 건강한 마음은 이 젊음들에게는 이상이지만, “그래도 장산데...”하는 마음에서 남는 상품을 팔고자하는 욕망은 현실이다. 그러니 ‘총각’과 ‘야채가게’는 그렇게 잘 맞는 궁합을 갖고 있다.

그런데 ‘유기농 뮤지컬’이라는 말은 단지 이 뮤지컬의 내용이 좋은 야채와 과일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 뮤지컬이라 하면 떠오르는 것들, 예를 들면 관객을 압도하는 무대와, 그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세트들, 그리고 그 위를 가득 메우는 대규모 인원들의 군무 같은 것들과는 이 뮤지컬이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화려한 무대의 장면들에 넋을 잃고 보다가 극장 문을 나설 때 무언가 허전함이 남았던 기억. 그 허전함의 실체는 어쩌면 뮤지컬의 본 맛(그 뮤지컬만의 내용이나 형식)보다 조미료 맛(뮤지컬이라면 흔히 떠올리는 코드들) 때문은 아니었을까. 실제로 새로움은 별로 없고 그다지 메시지도 없는 뮤지컬이 화려함이라는 포장을 뒤집어쓰고 명품 뮤지컬로 둔갑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

‘총각네 야채가게’가 유기농인 점은 바로 그런 포장을 걷어냈다는 점에서일 것이다. 소박한 야채가게로 시선을 낮추자, 뮤지컬은 볼거리를 넘어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뮤지컬은 젊은이들의 꿈과 현실, 세상에 대한 지켜야할 것과 지켜지지 않는 현실, 상품논리와 대결을 벌이는 먹거리의 문제 같은 많은 이야기들을 그 총각들을 통해 보여준다.

볼거리와 화려함보다는 많은 생각과 이야기를 하게 만드는 뮤지컬이 ‘총각네 야채가게’다. 이 뮤지컬은 또한 극작가이자 방송작가, 그리고 연극배우인 이재국 작가가 만든 청춘스토리의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그만큼 풋풋함이 살아있는 ‘총각(?) 뮤지컬’이지만, 한편으로 기존 뮤지컬에 익숙했던 분들에게는 밋밋한 맛을 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지나치게 설명적인 부분들이 어떤 지점에서는 의미과잉으로 보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것조차 이 뮤지컬의 어떤 제스처로 읽혀질 수 있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아무래도 유기농이라는 말 때문일 것이다. 맛보다는 의미를 찾게 되는 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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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 이야기, 다른 눈으로 바라보기

예쁜 공주가 나와 자신을 구원해줄 왕자를 기다리는 이야기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백설공주 이야기는 이제 어린 아이들마저도 하품을 할 정도의 컨텐츠가 되었다. 지금은 못생겨도 당당하고 능력 있는 피오나 공주가 차라리 박수를 받는 시대. 능력 없이 오로지 예쁜 외모만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에서 백설공주는 시대착오적인 컨텐츠임이 분명하다. 그러니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이후 백사난. 본래 표준말은 난쟁이지만 작가가 난장이라 표현함)’는 어떤 식으로든 본래 동화의 재해석을 요구한다.

가장 흔한 동화로 가장 특별한 사랑을 전하는 연극
이 2001년부터 무려 8년 동안 꾸준히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온 ‘백사난’이 원작 동화에서 선택한 것은 공주가 아니라 난쟁이다. 일곱 난쟁이 중에서도 가장 작은 막내이자 벙어리인 반달이를 그 중심에 세우자 이야기는 왕자 공주 같은 높으신 분들에서 아주 낮은 곳으로 내려온다. ‘백사난’이 거기서 발견한 것은 왕자와 공주 같은 표피적인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좀더 깊고 보편적인 인간애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왕비의 음모로 난쟁이들이 사는 안개숲에 들어온 백설공주는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데, 왕비는 계속해서 백설공주를 죽이려 한다. 그 때마다 백설공주를 사랑하는 막내 반달이가 나서서 그녀를 구하는데 마지막 저주를 풀기 위해 데려온 왕자와 깨어난 공주가 결혼을 한다. 말을 하지 못하는 반달이는 끝내 자신의 사랑을 가슴에 품은 채 죽고, 안개꽃 속에 묻힌다는 이야기. 작고 말도 못하지만 가장 큰 사랑을 한 반달이의 이야기는 그다지 복잡하고 무언가 대단한 사랑이야기는 아니다. 이 연극이 어린이극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단순함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웬 일일까. 이 어린이극에 차츰 어른들이 찾아오기 시작하고, 왠만한 복잡한 사연의 이야기에도 끄덕 없던 그들이 연극의 말미에 가서는 함께 간 아이의 손을 잡고 대책 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게 된 것은.

대사보다 강한 동작의 진정성, 몸으로 표현하다
그 이유는 이 연극이 대사보다는 동작으로 마음을 표현하는데 있다. 말 못하는 반달이가 백설공주에게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추는 춤은 그 어떤 말보다도 강렬하게 진심을 전해준다. 따라서 이 연극의 진짜 힘은 백설공주 스토리의 재구성에 있다기보다는 연출의 힘에 있다. 액자식으로 구성된 형식 상 일곱 명의 등장인물들이 마치 그림동화책을 읽어주듯 마임과 춤과 노래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이 연극은 그 몸의 언어가 가진 진정성을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해준다. 몸의 언어는 말의 내용이 담은 앙상함을 넘어서 그 행위 자체에 마음이 깃들기 마련이다.

단순한 천 조각 몇 개로 바다에 빠진 백설공주를 구해내는 반달이를 표현하고, 등장인물들이 몸으로 만들어낸 계단과 바다를 지나 공주를 구할 수 있는 장미요정의 눈물을 찾아가는 과정은 하나의 짧은 무용처럼 그려진다. 이러한 말보다는 동작으로 그려주는 연출은 그대로 글자보다는 그림으로 감동을 주는 그림동화책 같은 효과를 준다. 가장 인상깊고 감동적인 마지막 장면이 주는 감동은 마치 글자 가득한 페이지를 읽고서 넘긴 다음 페이지에서 보게된 양면 가득한 그림이 주는 뭉클한 감동을 전해준다. 어른들의 굳게 닫힌 마음을 무장해제 시킨 것은 바로 이 천진난만하게 보이는 연출이 가진 단순함과 순수함이다.

사회적 약자, 미(美) 그리고 자연
게다가 이 연극은 시점을 공주에서 난쟁이로 낮춤으로써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끌어낸다. 연극 속에서 인간들은 난쟁이를 못살게 굴었고 그래서 안개숲 속에 숨어살게 된 것. 하지만 그 숲에 들어온 백설공주를 두고 난쟁이들은 그리 오래 고민하지 않는다. 난쟁이들은 자신들의 집을 깨끗이 치워준 공주의 착한 마음씨를 보고 함께 살자고 한다. 이를 통해 외모(피부색이나 장애 같은)를 통한 편견을 가진 인간들과 마음을 쳐다보는 난쟁이들이 대비된다. 난쟁이들 중에서도 막내, 게다가 말조차 못하는 달님이가 주인공인 점은 이 연극의 낮은 곳에 대한 깊은 애착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한편 이 연극은 미(美)를 지키려하는 예술에 대한 상징으로도 읽을 수 있다. 백설공주는 바로 미의 상징이며, 난쟁이가 ‘땅 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황금을 찾아내 갈고 닦아 아름다운 보물을 만들어 세상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전하는’ 일을 한다는 점은 흥미롭다. 인간의 추악함을 상징하는 왕비가 바로 그 미를 없애려하는 자이며, 난쟁이는 그 미를 구하려는 존재로서의 예술가로 그려진다. 결국엔 안개꽃밭이라는 자연의 일부로 돌아감으로써 이 예술가는 다름 아닌 자연 그 자체로도 읽혀진다. 개인적인 욕망으로 채취하려는 사람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주는 자연.

‘백사난’의 이 다채로운 시선들은 보여지는 연출을 통해, 관객에게 강변하기보다는 습자지에 빨려드는 물기처럼 보는 이의 온 몸으로 흡수된다. 연극의 끝자락에서 눈물을 흘렸다면 그것은 스며든 물기가 어느새 당신 가슴 가득 차 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동화의 힘이기도 하다. 그 순수한 동화의 세계 속에서 잊고 있었던 단순하지만 위대한 사랑을 발견하게 하는 연극, ‘백사난’을 보고 나오는 길, 어쩌면 당신의 마음 속에는 그토록 사랑스러운 난쟁이가 안개꽃 숲에서 춤을 추고 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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