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새로운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숨은 마흔 찾기>, <웃기는 레볼루션(공저)>에 이어 꽤 오랜 시간이 흘렀네요.

 

이번 책 제목은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입니다.

제가 그간 가깝게 봐온 예능 PD 6인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요즘 가장 뜨거운 <삼시세끼>의 나영석 PD는 물론이고

<개그콘서트>에 이어 <1박2일>을 성공시킨 서수민 PD,

<응답하라> 시리즈로 예능과 드라마를 일통한 신원호 PD,

<슈퍼스타K>와 <댄싱9>을 만들어낸 김용범 PD,

<MAMA>라는 범아시아적인 음악 페스티벌을 만든 평PD 출신 상무 신형관 PD

그리고 이름 석자만으로도 충분한 <무한도전>의 김태호 PD까지

 

 

그들이 가진 직장인으로서 또 창조자로서 갖고 있는

삶과 일에 대한 노하우를 들여다봤습니다.

 

이들의 프로그램과 삶은 서로 조우하는 면이 있어

거기서 각각의 키워드들을 뽑아낼 수 있었는데요.

이들이 제시하는

'미완성. 관계, 무경계, 스토리텔링, 마니아, 도전'

이 6가지의 키워드와 화두가 여러분들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데

자그마한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북트레일러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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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음악인의 애티튜드로 남은 마왕

 

평소엔 안 그런 형인데, 쫓아 나와서 저를 불러 세워요. “왜요?” 그랬더니 해철아 잘해라”, “?” 그랬더니 잘하라고”, 그래서 했는데요. 나중에 보니 그게 작별인사였던 것 같아요.’ 신해철의 인터뷰집인 <신해철의 쾌변독설>에는 고 김현식에 대한 그의 마지막 기억이 담겨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많은 이들은 이제 그가 고 김현식의 마지막을 기억했던 것처럼 그를 떠올릴 것이다.

 

'고인이 된 신해철(사진출처:KCA엔터테인먼트)'

어떤 이들은 그가 마지막으로 방송에 나와 했던 말들에서 새삼 신해철을 떠올릴 것이다. JTBC <비정상회담>에 출연해 꿈을 이룬다는 성공의 결과보다는 자신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고 했던 말은 그저 마왕이라는 별칭으로 불려져 독설가의 이미지가 강한 그의 새로운 면을 느껴지게 할 것이다. 그의 독설은 타인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지독히도 비뚤어진 세상에 대한 공격에서 나온 것이며, 고 김현식에게서 배웠다는 본받을만한 음악을 하는 애티튜드에서 비롯된 것이다.

 

현식이 형이 나한테 남긴 유언은 잘해라였어요. 그 형이 방송국 들어와서 PD한테 커피 잔 던지고, 마이크 던지고 그런 모습을 너무 사랑하고 존경했기 때문에 그 형이 제 인생의 빛이었어요.’ 아마도 지금은 그가 누군가의 빛이 되고 있을 것이다. 그가 가요계에 남긴 애티튜드역시 남다른 것이었으니 말이다.

 

고등학교 때 대학생으로 신분을 속이고 음악다방 디제이로 일했고, 대학에 와서는 무한궤도라는 팀의 그대에게로 대학가요제 대상을 받고 다음 해에 팀을 해산했다. 대마초로 입건되기도 했지만 다음 해 보란 듯이 솔로로 데뷔해 모든 음악상을 휩쓸었다. 넥스트로 마왕의 위치를 공고히 하며 음악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거머쥐었을 때, ‘개교 이래 최저 학점(?)’으로 서강대 철학과를 자퇴했으며 결국 잘 나가던 넥스트도 해산하고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

 

영국 멤버와 만든 앨범 모노크롬은 상업적으로 실패했으나 음악적인 극찬을 받았고, 인터넷 방송으로 시작한 고스트스테이션은 이듬해 SBS라디오를 통해 <고스트스테이션>으로 빛을 보았다. 그의 거침없는 발언은 정치에서부터 사회문제에 이르기까지 한계가 없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많은 악플들이 달렸지만 그것은 음악이 아티스트 세계관의 반영이라는 그의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그의 많은 행적들보다 더 우리가 그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음악이다. 그의 1집에 수록된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나 넥스트 2집에 수록된 날아라 병아리의 얄리 이야기는 그래서 그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한 기시감처럼 다가온다. ‘이 세상 살아가는 이 짧은 순간에도 우린 얼마나 서로를 아쉬워하는지 뒤돌아 바라보면 우린 아주 먼 길을 걸어 왔네라는 가사는 이제 우리와 함께 해온 그를 두고두고 떠올리게 할 문구가 되었다.

 

조금은 여위어진 그대의 얼굴 모습 육교위의 네모난 상자 속에서 처음 나와 만난 노란 병아리 얄리는 처음처럼 다시 조그만 상자 속으로 들어가 우리 집 앞뜰에 묻혔다. 나는 어린 내 눈에 처음 죽음을 보았던 1974년의 봄을 아직 기억한다.’ 1974년에서 어언 40년이 흘렀다. 그는 떠났고 이제 누군가는 얄리를 노래했던 신해철처럼 그를 노래 부를 것이다. 그가 고 김현식의 뒤를 따라갔던 것처럼. 시간은 그렇게 기억을 남기고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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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의 바다와 세월호의 바다

SPECIEL 2014.08.26 09:38 Posted by 더키앙

<명량> 신드롬과 리더십에 대한 갈증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다룬 영화 <명량>은 이미 신드롬이 되었다. 일찌감치 천만 관객을 예고해버린 이 영화를 보기 위해 하루에 거의 1백만 명이나 되는 관객들이 영화관을 찾았다. 알다시피 명량해전이야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모두가 포기했던 그 전쟁에서 단 열두 척의 배로 3백여 척에 달하는 왜군을 깬 조선은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넘어설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다 아는 이야기에 왜 이렇게 신드롬에 가까운 열광이 이어지는 걸까. 그것은 영화의 만듦새가 그만큼 정교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영화 외적으로도 우리가 처한 작금의 현실이 작용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현실이란 다름 아닌 리더십의 부재이고, 그럼에도 힘겹게 이 나라를 버텨내고 있는 서민들이 갖는 치열함이다.

 

<명량>1977년도에 만들어진 영화 <난중일기>2004년도에 시작해 2005년까지 방영됐던 사극 <불멸의 이순신>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바로 이순신 장군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비롯된다. <난중일기>가 당대의 반공 분위기에 걸맞는 구국의 영웅 이순신을 그려냈고, <불멸의 이순신>이 성웅이 아닌 인간적인 결점을 가진 이순신의 모습을 그려냈다면, <명량>은 왕이나 국가가 아닌 민초들을 위해 기꺼이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민중의 영웅 이순신을 그려냈다.

 

영화의 제목이 영웅 이순신이 아니고 <명량>이라는 점은 이 전쟁의 주역이 이순신 장군만이 아닌 함께 싸운 무명의 병사들이나 멀리서 기도를 하는 아낙네에 이르기까지 그 현장에 있던 모든 민초들이라는 걸 암시한다. 따라서 <명량>은 그저 역사의 한 줄에 놓여진 명량해전이라는 특정 사실의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다가온다. 즉 밑으로는 회오리 파도가 치고 있고, 저 앞으로는 수백 척의 배를 몰고 쳐들어오는 왜군들이 있으며, 그럼에도 이 전쟁을 지원하기는커녕 항명한다며 이들을 핍박하는 통치자들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이것은 정확히 현재의 우리네 현실을 환기시킨다. 세월호 참사를 떠올려보면 그 바다와 <명량>의 바다가 얼마나 비슷한 공간으로 다가오는지를 공감할 수 있다. 배가 기울어지는 위기 상황에서 도망치는 선장이나 속수무책 아무런 위기대응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정부는 왜적이 쳐들어올 때 제일 먼저 도망쳤던 군신들을 떠올리게 하고, 그럼에도 한 명의 아이라도 더 구해내기 위해 죽음의 아가리 속으로 기꺼이 몸을 던진 교사와 승무원들은 명량의 바다에서 이순신 장군과 함께 감히 살 것을 생각하지 않고목숨을 내던진 병사들과 민초들을 떠올리게 한다.

 

무언가 사건이 터질 때마다, 혹은 국가적인 위기를 맞을 때마다 누구보다 앞장서 그 위기를 넘길 수 있게 해준 건 다름 아닌 국민들이었다. 그러니 이미 역사를 통해 다 알고 있는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다시 <명량>이라는 영화로 보며 박수를 치는 것일 게다. 거기에는 적들 앞에 추상같고 민중들 앞에는 한없이 자애로운 아버지 같은, 이순신 장군 리더십에 대한 대중들의 갈증이 있다.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라는 그 유명한 말은 그래서 다른 의미로 현재적 울림을 전해준다. 이 땅의 지도자라는 인물들이 저 혼자만의 살길을 찾는다면 그 나라는 반드시 공멸의 길로 가게 될 것이고, 반면 저 스스로 희생하는 리더십을 발휘한다면 위기에 처한 우리를 살릴 것이라는 것. <명량>이 보여주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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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 행오버의 성취, 순위가 아닌 자기 세계

 

싸이가 새롭게 들고 온 신곡 행오버는 우리말로 숙취라는 뜻이다. 신나게 진탕 마시고 나서 오는 지끈지끈한 두통과 속 쓰림. ‘행오버뮤직비디오는 술 마신 다음날 깨어난 싸이가 화장실 변기에 머리를 쳐 박고 토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번 곡에 함께 참여한 스눕독은 그런 싸이의 등을 두드려준다. 마치 이 장면은 싸이의 구토하듯 쏟아내는 음악과 그 음악을 행오버라는 곡을 통해 다독이며 도와주는 스눕독을 연상케 한다.

 

구토 장면은 고통스럽고 힘겨운 것 같지만 사실은 다르다. 자세히 보면 음악에 맞춰 싸이의 손이 변기를 마치 박자 맞추듯 두드리고 있으며, 그런 싸이의 등을 마치 변기를 두드리는 싸이처럼 스눕독이 두드리고 있다.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장면처럼 보이지만 토해낸다는 의미와 숙취가 풍기는 나른함과 고통스러움의 뉘앙스, 그리고 변기를 두드리고 등을 두드리는 장면의 의미들을 연결해보면 이 장면이 주는 의미심장함은 싸이를 우리가 바라보는 상반된 느낌과 맞닿아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건 불편함과 통쾌함 사이의 어떤 것이다.

 

사실 싸이의 행오버라는 곡이 노래로서 그리 좋은 지는 잘 모르겠다. 많은 이들이 강남스타일과 비교해 한 방이 부족하다고도 말하고, 그럼에도 받으시오-’ 같은 후렴구나 태평소가 들어가 흥을 돋우는 대목에서는 중독성이 느껴진다고도 말한다. 댄스곡과 본격 힙합이라는 장르적 차이가 만들어내는 취향 때문에 생겨나는 호불호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미국에 현재 트렌드로 자리한 힙합 장르에 겨냥한 곡이기 때문에 아직은 주저리주저리 랩이 거의 채워진 노래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네 대중들에게는 낯설게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이다.

 

행오버는 싸이라는 가수의 취향이고 개성일 뿐 꼭 모두에게 좋아야 하고 사랑받아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강남스타일이 빌보드 2위까지 올라간 순위를 거론하거나, 유튜브 조회 수가 천문학적이라는 수치를 마케팅적으로 내세우는 난감한 지점이 발생하곤 한다. 물론 팝의 본고장인 미국 본토에 진출한 싸이가 대견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국가대표 응원하듯 취향 무시하고 싸이를 응원할 필요는 없다. 취향이 맞지 않더라도 개성은 개성으로 받아들이면 되고 그렇다고 싸이의 곡이 싫은 취향이 잘못된 것도 아니니까. 정답은 없다.

 

분명한 건 싸이가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분명히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음악의 근간은 한 번 놀아보자는 흥을 바탕으로 한다. 그 위에서 젠 체하고 예의 바른 척 하며 억누르고 있는 본성을 그는 음악을 통해 밖으로 표출해낸다. ‘강남스타일의 말춤이나 메뚜기춤 그리고 보기 민망한 저질댄스는 모든 걸 잊고 한바탕 뒤집어지는춤의 흥으로 전 세계를 들썩이게 만들었고, ‘젠틀맨동방예의지국의 예의에 눌려진 억압된 본능을 악동처럼 끄집어냈다. 시건방춤은 예의와는 정반대의 맥락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행오버는 이제 우리의 과도하게 흥겨운(?) 술 문화를 전면에 내세운다.

 

폭탄주에 러브샷에 12차를 반복하고 노래방에서 입가심을 하며 진탕 마시고 나서는, 다음날 지끈지끈한 머리를 부여잡고 편의점 컵라면과 삼각 김밥에 숙취해소음료로 해장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사우나에서 마치 알코올을 뽑아내겠다는 듯 땀을 빼는 이 기이하게 흥겨운 술 문화는 우리가 술자리에서 그대로 느끼듯 현실을 벗어난 통쾌한 카타르시스와 동시에 다시 현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불쾌한 숙취를 남긴다. 싸이의 이 일관된 우리문화 비틀기는 그래서 불편하지만 통쾌한 정서를 동반한다. 이만하면 싸이는 확고한 자기 스타일과 취향 그리고 색깔을 보여준 셈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도 빌보드 차트 몇 위의 수치보다 이번 행오버에서 싸이가 성취한 가장 큰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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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밀회>가 그리는 법 정의의 문제

 

최근 종영한 JTBC <밀회>에는 김인겸(장현성)이라는 변호사가 등장한다. 그는 서한그룹의 사위이면서 그 재벌가를 지키는 변호사지만 정략결혼으로 맺어진 그에게 가족이라고 손이 안으로 굽는 일은 좀체 없다. 그는 철저히 자기 이득에 따라 아무 쪽에나 붙을 수 있는 사람이다. 실제로 그는 서한그룹 비리의 증거를 갖고 있는 오혜원(김희애)을 구석으로 몰아붙이다가 거꾸로 그 증거를 공유하는 조건으로 그녀의 편으로 돌아선다. <밀회>가 그리는 김인겸이라는 인물은 아마도 가장 현실적인 변호사의 모습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소위 잘 나간다는 변호사들이 누구를 위해 일하고 어떤 일들을 하는지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드라마는 현재 방영되고 있는 MBC 수목드라마 <개과천선>이다. 이 드라마에는 차영우펌이라는 로펌이 등장한다. 차영우가 대표 변호사지만 이 로펌의 실질적인 에이스는 김석주(김명민). 그가 맡는 대부분의 일은 돈 많은 재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저지르는 온갖 비리와 악행들을 비호하는 것이다. 그는 로펌에 고용된 변호사로서 그 일이 어떤 일인가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다. 그저 회사의 샐러리맨으로서 이익이 되는 일을 하는 것뿐이다.

 

김석주는 일제에 강제 징용당한 어르신들의 반대편에 서서 일본기업을 변호하고, 재벌2세의 강간치상을 변호하면서 피해자 여자 연예인의 치부를 드러내 자살시도까지 하게 만든다. 그녀는 결국 죽은 재벌2세로 인해 살인혐의로 기소된다. 또한 그는 태안반도 기름 유출사고에 책임이 있는 기업을 변호하면서 어민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이 가지 않도록 무려 5년 간이나 사건을 질질 끌기도 한다. 결국 이 때문에 몇몇 절망한 어민들은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에 봉사하는 전형적인 변호사인 셈이다.

 

흥미로운 건 이 두 드라마가 모두 인물의 변화를 통해 상황을 역전시킨다는 점이다. 재벌가들의 하수인 역할을 해온 이들이 어떤 계기를 만나 마음을 고쳐먹는다는 것. <밀회>에서 오혜원은 순수한 청년 선재(유아인)와의 사랑을 통해 자신의 욕망이 부질없는 짓이라는 걸 알게 되고 결국 자신이 비호하던 서한그룹 재벌가의 비리를 공개하고 스스로 죗값을 받는 길을 걸어간다. 자폭을 선택함으로써 법 정의를 다시 세우는 것. <개과천선>의 김석주는 어느 날 우연히 당한 사고로 인해 기억을 잃게 되고 과거 자신이 했던 짓들을 되새기며 조금씩 재벌가가 아닌 서민 편으로 돌아서는 개과천선의 모습을 보여준다.

 

두 드라마가 모두 말해주는 건 법 정의라는 것이 어떤 인물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때 그 좋은 머리를 재벌가를 유지하고 비호하는데 써왔던 이들이 이제는 그들의 비리를 폭로하고 공격하는 입장에 선다는 점에서 이들 드라마는 현실에서 좀체 발견하기 어려운 판타지를 만들어낸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실에서 법은 정의의 편이 아니라 자본의 편이라는 것.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서민들을 위한 법은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작년 <변호인>이라는 드라마가 그토록 대중들을 열광시킨 이유는 바로 이 서민들을 위한 법 정의를 부르짖는 송우석(송강호)이라는 변호인이 슈퍼히어로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변호사가 아니라 변호인을 원한다. 변호사와 변호인의 차이는 그것이 직업적인 것이냐 아니면 인간적인 것이냐 에서 비롯된다. 직업적인 선택은 자본의 시스템에 지배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인간적인 선택을 희구하게 된다. 김석주 같은 자본의 첨병으로서의 변호사가 어느 날 억울한 이들을 위한 변호인으로 개과천선하는 것. 이것이 더 이상 판타지가 아닌 현실이 되는 세상은 과연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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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가 묻다, 정부는 믿을 만한가

SPECIEL 2014.04.24 11:34 Posted by 더키앙

대중문화에 투영된 정부에 대한 불신

 

정부는 과연 믿을 만한가. 요즘 드라마를 보다보면 먼저 떠오르는 질문이다. <신의 선물 14>은 아이를 구하려는 한 엄마의 고군분투를 그리는 드라마지만,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대통령까지 용의자가 되는 상황에 이른다. 처음에는 그저 사적인 유괴사건에 불과하다고 여겼던 것이 뒤로 갈수록 거대한 사건과 연루된 일이었다는 게 밝혀지는 것. 그 과정에서 아이와 엄마와 관계된 모든 인물들의 숨겨진 면모들이 드러난다.

 

평범한 변호사인 줄만 알았던 남편은 회사 후배와 불륜인데다 이 거대한 사건과 깊이 연루되어 있고, 그를 도와주는 기동찬(조승우) 역시 조금씩 과거 그가 형을 여자 친구의 살인범으로 증언했던 사실과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이 밝혀진다. 기동찬은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이 아이의 유괴와 관련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그것이 사형집행을 서두르기 위해 만들어낸 정치적 쇼라고 추리한다.

 

유괴사건이 거대한 정치적 음모와 연루되는 과정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이미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다루어진 정부의 모습들이 대부분 음모론과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추적자> 같은 드라마는 어떻게 권력자들이 비리를 은폐하고 정치를 통한 권력을 쥐려 하는가에 대한 밑그림이 들어가 있다. 대중들은 이 정부와 관련된 음모론을 수긍하면서 그것을 파헤치고 그 음모를 분쇄하는, 현실에는 없는 서민들의 영웅상을 희구하는 중이다.

 

<골든크로스>는 대한민국의 경제를 움직이는 상위 0.001%의 집단이 유린하는 우리네 경제를 가감 없이 그려낸다. 드라마라고는 해도 이 풍경은 IMF 이후 외자들이 대거 들어와 국내의 멀쩡한 기업들까지 사냥했던 실제 상황들을 고스란히 연상시킨다. 이 드라마에서 정부의 고위층이란 나라와 국민을 걱정하기보다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국내의 건실한 기업을 저평가시켜 싼 가격에 팔아넘기고 그 대가로 거액의 뒷돈을 챙기는 이들로 그려진다.

 

<쓰리데이즈>는 남북관계를 이용해 긴장관계를 조성하고 그를 통해 어마어마한 무기를 판매해 이득을 챙기려는 무기거래상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들은 긴장관계를 조성하기 위해 북한을 동원해 양진리에 무고한 양민들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또 제2IMF를 만들어 그 반사이익을 거둬가려는 시도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러진다. 이 과정에서 국내의 정관계 인사들 상당수가 돈에 매수되어 무기거래상의 노예가 되어버린다.

 

<골든크로스><쓰리데이즈>에서 정부 고위 인사들은 어떻게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오가는 일들을 아무런 가책도 없이 저지를 수 있었을까. 그것은 그들이 실체가 아닌 숫자로만 세상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골든크로스>에서 회사 하나가 헐값에 넘어가면 자신에게 얼마만큼의 이익이 남는지만 알았지, 그로 인해 파산한 회사가 파탄 내는 가족들의 면면은 나 몰라라 했던 것이다. 이것은 <쓰리데이즈>의 양진리에서 희생된 무고한 양민들도 마찬가지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정부의 위기대처능력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준 건, 사고 초기 전원 구출 발표 같은 어처구니없는 오보에 이어 구조자와 희생자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오락가락했던 일이다. 그 과정에서 실종자 가족들은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만일 그 숫자가 누군가의 아들 딸이라는 사실을 인지했다면 발표 하나에도 신중해질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대중문화에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정부에 대한 불신. 그것이 지금의 대중정서이고 그걸 자초한 건 지금의 정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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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드라마들 속 <참 좋은 시절>의 가치

 

착한 여잔 나쁜 남잘 좋아해 왜. 나쁜 남잔 나쁜 여잘 좋아해 왜. 그래서 난 너를 이렇게 사랑해. 근데 너는 이런 내 맘을 몰라 왜.’ 최근 발표된 2NE1착한 여자라는 곡이다. 노래가 말해주듯이 요즘 착하다는 것은 어딘지 시대에 뒤떨어진 듯한 느낌을 준다. 차라리 나쁘다는 것이 쿨하고 세련된 듯한 인상마저 풍긴다. 한때 권선징악이라는 말이 줄곧 시대의 거역할 수 없는 가치로 세워지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시대가 변해도 너무 변했다.

 

드라마 속에서도 착한 남자보다는 나쁜 남자에 대한 열광이 더 두드러진다. <학교 2013>에서 이종석만큼 주목을 끈 김우빈은 나쁜 남자의 전형적인 매력을 보여주었다. 반항아의 이미지를 가진 그는 무언가 꽉 막혀 있는 듯한 세상에 대한 속 시원한 울분 같은 걸 보여준다. 김우빈의 나쁜 남자 이미지는 <상속자들>을 통해서 그 매력을 폭발시켰다. 최근 <사남일녀> 같은 가족 버라이어티에 출연하고 있는 김우빈은 오히려 이 나쁜 남자 이미지로 고정되는 자신을 부담으로까지 느끼고 있는 듯 보인다.

 

사실 나쁜 남자라고 표현되지만 이들이 진짜 악역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나쁘게 행동하고는 있지만 속내는 상처받은 착한 영혼이 있기 마련이다. 또한 나쁘다는 건 캐릭터의 능력과도 연관되어 있다. <파스타>의 이선균이나 <나쁜 남자>의 김남길처럼 재력이든 능력이든 있는 이들이기 때문에 심지어 나쁘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쁘게 행동해도 멋있게 보일 수 있는 것. 즉 나쁘다는 건 성공한 자, 혹은 가진 자의 자신감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그 실체가 무엇이든 선의 가치가 구닥다리로 치부되는 세상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일까. 이른바 착한 드라마들은 독하디 독한 막장드라마들의 홍수 속에서 점점 찾아보기 힘든 드라마가 되어가고 있다. KBS의 새 주말극 <참 좋은 시절>에 대해 낯설다는 반응이 나오는 건 거꾸로 지금껏 우리가 얼마나 독한 드라마들에 중독되어 왔는가를 말해준다. 이전 동시간대 드라마였던 <왕가네 식구들>은 그 자극적인 설정과 전개 때문에 막장 논란이 쏟아져 나오면서도 꽤 높은 시청률을 가져갔다. <왕가네 식구들>의 자극에 익숙한 시청자들은 그래서 <참 좋은 시절>의 이 착함이 너무 밋밋하다고 여겨질 지도 모를 일이다.

 

남편의 세컨드와 함께 가족을 이뤄 생활하면서도 싸우기는커녕 서로를 챙겨주기 바쁜 며느리와, 권위라고는 손톱만큼 발견하기 어려운 자애롭다 못해 연민마저 느껴지는 시아버지, 자신처럼 살지 말라며 이 집에 맡긴 아들을 도련님이라고 부르며 사는 여인이나, 어찌해 갖게 된 아이들을 제 자식이라 못하고 동생이라 부르며 사는 그 여인의 아들 또한 그 밑바탕에는 따뜻한 사람 냄새가 느껴진다. <오로라 공주>처럼 툭하면 작가의 손에 의해 인물이 죽어나가는 드라마와는 정반대다. <참 좋은 시절>에는 인물 하나하나에 대한 작가의 따스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 작품을 쓴 이경희 작가의 전작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였다. 이미 <고맙습니다> 같은 작품을 통해 보여준 것처럼 이경희 작가는 선의 가치를 믿게 만드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는 마치 세상에 매력적인 착한 남자는 없다는 세태와의 정면대결을 벌이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참 좋은 시절> 역시 마찬가지다. 주말극이고 일일극이고 할 것 없이 막장이 창궐하며 선의 가치보다는 악의 가치를 세련됨의 상징이나 되듯이 보여주는 요즘의 세태에 이 드라마는 어딘지 투박해보여도 정감이 가는 참 좋음의 가치를 새삼 드러내준다. 선하다는 건 진정 한물 간 가치가 아니다. 다만 난무하는 자극이 우리를 둔감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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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틈은 어떻게 지지 않는 청춘을 만들었나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 어느덧 봄이 오긴 오나보다.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엔딩이 들리는 걸 보니. 마치 캐럴 같은 시즌 송이라고 이 노래를 지칭하곤 하지만, 해마다 봄이 되면 꽃이 피듯 피어나는 이 곡에 대한 정의치고는 너무나 인색한 표현이다. 도대체 이 노래에 무엇이 숨겨져 있기에 이토록 봄을 부르는 것일까. 마치 눈앞에 풍경이 펼쳐지는 것 같은 가사말의 힘일까, 아니면 무심한 듯 툭툭 던져 넣는 장범준의 목소리가 가진 마력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어디론가 누군가와 함께 떠나 걷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경쾌한 반주의 설렘 때문일까.

 

올해도 어김없이 버스커 버스커는 봄의 전령처럼 찾아왔다. ‘청춘(靑春)’이라는 말이 늘 푸른 봄이란 뜻을 갖고 있는 것처럼 버스커 버스커의 시간은 이 노래가 나왔던 2012년에 멈춰 있다. 마치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김수현)400년 전 모습 그대로 청춘을 구가하는 것처럼. 본래 노래가 그 짧은 시간 안에 적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그 노래가 처음 흘러나오던 시절의 추억을 되살려놓는 것 같이. 버스커 버스커의 노래는 음악이 가진 시간여행을 판타지가 아닌 현실에서 가능하게 하고 있다.

 

버스커 버스커가 처음 <슈퍼스타K> 무대에 나왔을 때를 떠올려보면 그들이 이런 마력의 노래를 내놓을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당시는 <나는 가수다>가 한창 피 튀기는 가창력의 제전을 벌이던 때가 아닌가. 누구 목청이 더 좋은가에서부터 누가 더 높이 올라가나가 이 오디션에서 생존하는 조건이었다. 노래는 칼과 창이 되었고, 그 화려한 기교와 현란한 악기들의 향연은 대중들의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이런 시기에 버스커 버스커는 너무나 가녀린 아마추어 밴드 같았다. <슈퍼스타K>의 심사위원들은 일제히 장범준의 고음을 지적했고 패턴화된 버스커 버스커의 사운드를 한계로 지목했다. 결국 버스커 버스커는 톱10에도 들지 못하고 떨어져 생방송 무대에 올라가지 못할 위기에 처했지만 그 때 행운의 여신이 그들에게 미소를 지었다. 10에 들었던 예리밴드가 무단 탈퇴를 선언하면서 그 공석을 메우게 됐던 것. 하지만 그 후 정상을 향해 정주행한 버스커 버스커는 톱2에 오르게 되었고, 무엇보다 오디션 이후 발표한 음반은 매해 봄이면 음원차트에 등장하는 좀비음악(결코 죽지 않고 돌아오는)으로 자리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것은 버스커 버스커라는 밴드가 가진 빈틈 혹은 허점의 매력에서 비롯된다. 노래가 무기가 되고 무대는 전장이 되던 오디션 열풍의 충격이 어느 정도 지나가자 대중들은 다시 본래의 음악을 찾게 되었다. 감성을 전하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그런 음악. 무엇보다 너무 인위적이거나 만들어진 느낌이 아닌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음악을. 완벽함이 아니라 어딘지 빈 구석이 있는 듯한 버스커 버스커의 노래는 바로 그 단점으로만 지적되었던 것들이 오히려 장점으로 발휘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기계음을 넣어 자로 잰 듯 깔끔하게 나오는 MR에 맞춰 마치 로봇처럼 기계적인 동작을 반복하는 아이돌. 나 노래 잘해!”하고 외치는 듯, 노래를 통한 마음의 전달이 아니라 가창력 뽐내기를 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가수들. 버스커 버스커는 그들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갔다. 완벽한 사운드가 주는 인공적인 느낌을 제거하고 차라리 빈틈을 제공하고, 가창력 자랑의 과잉을 빼고 대신 편안함과 인간적인 감성을 노래에 담아냈던 것. 그 흔한 방송 출연도 극도로 자제하면서 노래는 오로지 라이브 무대에서만 부르는 아날로그적 행보도 이례적인 것이었다. 결국 이러한 버스커 버스커의 노래는 기존 가요계의 마치 찍어낸 듯한 음악들의 홍수 속에 지쳐있던 대중들의 귀를 편안하게 파고들었다. 단점은 오히려 개성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개성은 도드라진 장점이 만드는 것으로 착각하곤 한다. 따라서 청춘은 미숙한 것이고 차츰 성숙해져가는 것이 보다 바람직한 것이고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오히려 개성을 만드는 것은 장점이 아니라 단점이다. 완벽하게 모든 걸 구사하는 이들에게 인간적인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반면, 어느 한 구석 비어있는 이들이 그것을 오히려 장점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개성이 드러나게 된다. 봄이면 찾아오는 버스커 버스커의 노래는 그래서 청춘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그 조금은 부족하고 빈틈이 많지만 그래도 바로 그것을 마음껏 긍정함으로써 우리네 인생의 최절정으로 기억되는 순간. 바로 청춘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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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에 중독된 일중독 사회

SPECIEL 2014.03.29 08:40 Posted by 더키앙

일상이 예능이 된 사회의 디스토피아

 

 

방송의 중심에 교양이나 드라마가 아니라 예능이 선 지는 그리 오래 되진 않았다. 하지만 최근 예능 프로그램의 존재감은 방송의 거의 전 분야에 걸쳐 이뤄지고 있다. 교양 프로그램이 해오던 사회적 실험이나 관찰은 예능과 만나 이른바 관찰 카메라,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자리했다. 최근 종영된 <> 같은 프로그램은 교양 프로그램으로 시작해 예능화된 경우이고, <정글의 법칙>은 교양팀과 예능팀이 합쳐져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아빠 어디가>, <진짜 사나이>, <슈퍼맨이 돌아왔다>, <나 혼자 산다>, <오 마이 베이비>, <백년손님-자기야>, <심장이 뛴다> 등등. 최근 예능 프로그램의 대부분이 본래는 교양에서 했던 소재나 방식을 예능의 문법으로 껴안아 제작된 것들이다. 이제 예능은 <글로벌 홈스테이 집으로>처럼 아마존에 사는 원주민들과의 공감과 교류를 다루는 단계에까지 접어들었다.

 

예능의 확장은 드라마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 열풍을 만들어낸 <별에서 온 그대>를 보면 그 안에 꽤 <개그콘서트>류의 코미디가 엿보이는 걸 볼 수 있다. 극중 여주인공인 전지현이 하지마-”하고 외치는 장면은 개그우먼 오나미의 유행어를 패러디했다. 이런 코미디 코드들이 능수능란하게 사용될 수 있었던 건 이 작품의 박지은 작가가 한때 예능 작가의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능의 드라마 분야로의 확장은 <응답하라>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을 쓴 이우정 작가는 <12>부터 <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 같은 히트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방송국에서의 예능의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한 때는 교양PD, 드라마PD 그리고 예능PD 순으로 암묵적인 순위가 있었지만, 지금은 예능PD가 첫 번째로 꼽힌다. PD 지망생들 중에도 예능PD가 되겠다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이른바 스타 PD가 과거에는 드라마에서 나왔다면 요즘은 예능에서 주로 배출된다. <무한도전>의 김태호PD, <12>의 나영석PD는 대표적이다. 예능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사회가 교양의 시대에서 재미, 놀이의 시대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열심히 노력하는 것보다 즐기는 것이 경쟁력인 사회다. 호이징가가 말한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의 출현이다.

 

하지만 예능의 위상이 놀이의 시대를 말해준다고 해도, 사회가 일보다 놀이의 가치를 중시하는 것 같지는 않다. 특히 우리 사회는 일 중독 사회혹은 피로사회라고 불릴 정도로 심한 경쟁과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다.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호소하는 이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고 자살률도 OECD 국가 중 늘 1위다. 일에 대한 강박으로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직장인들은 일도 일이지만 가족들이나 지역사회 같은 타 집단들과의 교류가 끊겨버리는 문제를 겪는다. 심지어 주말에 집에 있어도 대화와 교류가 없던 가족들이 투명인간 취급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일 때문에 시간이 없는데다, 관계도 소원해진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건 다름 아닌 예능 프로그램들이다. 바빠서 아이와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아빠들은 <아빠 어디가>를 보며 위안을 받고, 변변한 여행 한 번 가기 힘든 이들은 <12>을 보며 대리 충족을 받는다. 현실 여건이 맞지 않아 혼자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나 혼자 산다> 같은 프로그램을 보며 세상에 혼자가 자신만이 아니라는 걸 확인한다. 좀체 새로운 도전을 해볼 기회조차 없었던 이들이 <무한도전>을 보고, 제대로 된 교제 경험이 별로 없는 이들은 <>이나 <마녀사냥> 같은 프로그램을 보며 이성의 심리를 읽어보려 애쓴다. 물론 예능 프로그램은 그나마 이런 현대인들의 허전함을 채워주는 고마운 존재다. 하지만 예능에 푹 빠진 사회가 보여주는 일중독 사회의 디스토피아는 우리 사회의 어둠을 고스란히 드러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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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선택, 하지만 아이는...

SPECIEL 2014.03.01 09:37 Posted by 더키앙

파경 드라마, 하지만 육아 예능 그 의미

 

적어도 우리네 드라마 상에서 결혼은 이제 필수가 아니라 선택인 것 같다. 흔하디흔한 가족드라마들이 파경을 다루고 있다. 김수현 작가의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이미 한 번 결혼에 실패해지만 재혼한 여자가 겪는 또 한 번의 파경에 이르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제목에서부터 풍겨나듯이 이 드라마에서 결혼한 이들은 하나 같이 불행하다. 재혼한 여자는 남편이 불륜을 저지르고도 너무나 뻔뻔해질 수 있는 지독한 이기주의자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고, 재혼한 남자는 아내가 아이를 보듬어주기는커녕 아이를 심지어 질시하는 미성숙한 인물이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된. 결국 김수현 작가가 하려는 얘기는 타인과 함께 살만큼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거나 혹은 자신을 기만하고 결혼한 이들은 예정된 파행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즉 결혼은 반드시 해야 될 어떤 것이 아니라 대단히 신중히 선택해야 할 것이라는 전언.

 

 

흥미로운 건 이 드라마에 세 번 결혼할 여자의 언니는 아직까지 미혼인데 남자친구와 결혼하기보다는 동거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아마도 최근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로 등장하는 싱글턴(혼자 사는 삶)을 표징하는 캐릭터처럼 보이는데 주목할 점은 그녀 역시 그다지 행복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결혼해서 누군가와 같이 살거나, 아니면 미혼으로 혼자 살거나 그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행복과 불행을 가름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최근 종영한 <따뜻한 말 한 마디>라는 드라마는 파경의 위기에 놓인 부부들의 이야기를 좀 더 심도 있게 다루었다. 이 부부들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서로 주고받지만 흔히 드라마에서 당연한 선택지로 내세워지던 이혼이 실제로는 상당히 많은 변수들에 의해 그리 쉬운 선택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아이의 문제가 그렇고, 양가 가족들의 문제가 그렇다. 때로는 그렇게 한 발 물러서고 나서 오히려 상대방이 이해되고 그러다보니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이 피어나기도 한다. 이 드라마 역시 결혼이 남녀 간의 사랑을 묶어내는 틀로서 얼마나 불안한 제도인가를 잘 드러낸다.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제시되는 상황은 싱글턴의 라이프 스타일과도 관련이 있다. <고잉 솔로 싱글턴이 온다>의 저자 에릭 크라이넨버그는 여성들의 지위가 향상되면서 점점 결혼의 틀로 들어가기 보다는 일하며 혼자 살아가는 삶이 늘고 있고, 통신혁명으로 가족이 아닌 다른 커뮤니티를 통한 소속감을 느끼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대도시의 형성은 전통적인 가족주의를 해체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삶을 만들어내고 있고, 무엇보다 혁명적인 수명연장은 어쩔 수 없이 혼자 사는 삶을 인생에서 누구나 겪게 만든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도 1인 가구 비율이 네 집 건너 한 집에 육박하고 있으니 싱글턴의 사회에 이미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식샤를 합시다> 같은 드라마나 <나 혼자 산다> 같은 예능은 이런 트렌드를 반영한 방송 콘텐츠들이다. 이 라이프 스타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 결혼은 사실상 그다지 중요한 일도 아니게 되었다.

 

하지만 결혼이 제 아무리 선택이 된다고 해도 여전히 남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아이의 문제다. 남자든 여자든 그 혼자 사는 삶에 만족한다고 해도 본능적으로 인간은 아이에 대한 욕망을 버리기가 어렵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종족 보존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최근 들어 TV만 켜면 여기 저기 아이들이 나오는 육아 예능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쳐다보기만 해도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점점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들어오고 있는 느낌. 그것이 왠지 결혼이 선택이 되고 싱글턴의 라이프 스타일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와 무관하게 여겨지지 않는 건 왜일까. 우리는 어쩌면 책임 없는 과실로서의 행복만을 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록 그것이 가상의 행복이라고 할 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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