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는 것을 빼고, 하루는 평상시와 다를 바가 없었다.
책을 읽다가 글을 쓰다가 때가 되면 밥을 챙겨먹고...
비가 오기에 간혹 창밖을 쳐다보았다.
아주 어린 시절 생각이 떠올랐다.
콘크리트가 아닌 맨 흙바닥이었던 옛날 시골집에
살 때는 비가 오면 특유의 냄새가 났다.
시멘트에 물이 부어질 때 나던 것 같은 그 텁텁한 냄새는
잘은 모르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던 먼지들이
빗방울과 함께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콘크리트로 뒤덮여진 서울로 오면서
그 냄새는 향수가 되었다.
그래도 흙먼지 알갱이들이 만들어내는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운동장이었다.
아이의 학교를 찾았다.
그 곳에서 한참을 서서 운동장으로 떨어져내리는 빗방울을 바라보았다.
아이와 함께 집으로 와서는 늘 그렇듯 간식을 챙겨주고
학원가는 아이를 바래다주고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그날 밤, 욱신거리는 손바닥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
비는 그쳐 있었고 손바닥에 난 작은 상처는 덧나 있었다.
퉁퉁 부은 상처에 약을 발라주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또 하루가 지났다. 그리고 며칠이 또 지났다.
작은 상처였지만 손바닥의 상처는 낫지 않았다.
설거지를 하다 갑자기 어머니가 떠올랐다.
늘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밥을 차려주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면서
늘 물에 젖어 있는 손을 하고 있던 어머니.
거기 그렇게 있는 지 조차 몰랐던,
그래서 때론 마치 저 바닥의 흙먼지처럼
때론 저 무심히 내리던 비처럼,
때론 늘 젖거나 상처나도 묵묵히 일을 해주던 손처럼,
의식하기 어려웠던 어머니.
내 삶의 타자가 아닌 일부였던 어머니.
세상에는 그렇게 존재감을 느끼기가 어려울 정도로
삶의 일부가 된 것들이 있었다. 이 상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