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의 드라마 진출이 말해주는 것

중견 남성 연기자들의 두각은 사극에서 빛을 발한다.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은 그 각축전이라 할만하다. 먼저 드라마 ‘주몽’을 보면 주몽의 든든한 후견자로 드라마의 뼈대역할을 해주고 있는 전광렬, 드라마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이계인이 대표적이며 ‘연개소문’에서는 단연 김갑수가 돋보인다. ‘대조영’은 실로 중견 남성 연기자들의 종합선물세트를 보는 듯 하다. 87년 ‘사랑이 꽃피는 나무’로 데뷔한 이래 연기내공 20년 세월을 거친 최수종은 시청자들의 혼을 빼는 연기력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연개소문 역의 김진태, 양만춘의 임동진, 대중상의 임혁은 ‘대조영 포스 3인방’으로 불릴 정도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여기에 적으로 등장하는 이덕화와 정보석의 연기가 더해지면서 드라마는 점점 팽팽한 긴장감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중견 연기자들의 두각이 말해주는 것은 뭘까. 물론 어떠한 역할이든 100% 소화해내는 연기 9단이라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 드라마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신인 연기자들은 보이지 않고 가수들만 보이는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혹 진정한 신인 연기자들의 실종이 불러온 공백을 우리네 든든한 중견 연기자들이 버텨주고 있는 건 아닐까.
가수가 드라마에 진출하게 된 사연

하지만 최근 들어 주연급으로 발탁되고 있는 가수들은 얘기가 다르다. 비, 강타, 에릭, 환희, 세븐, 윤은혜, 정려원 등은 이제 가수들도 본격적인 드라마 진출의 포문을 열었다는 걸 말해준다. 최근의 ‘궁2’ 캐스팅 논란은 이러한 가수들의 드라마 진출이 가져온 공채연기자들의 위기의식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제 시청자들도 검증 받지 않은 가수들의 연기 진출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수들의 드라마 진출은 그 이유가 명백하다. 음반시장의 불황이 가수로 투자해 키워놓고 특별한 수입을 얻지 못하는 기획사 측면에서는 새로운 시장을 찾을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들을 홍보하는 데 있어 드라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또한 가수들 스스로도 이제 노래 이외에 이미지를 가져야 성공하는 시대라는 걸 알고 있다. 최근의 TV 가요 프로그램의 퇴조로 가수들이 얼굴을 들이밀 공간이 없어졌으며 이로 인해 이제는 TV 프로그램(그것이 오락이든 드라마든) 속으로 직접 뛰어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또한 드라마 제작사와 방송사들의 이해가 공조한 면이 있다. 외주 제작이 많아진 현실은 방송사에서 뽑은 공채 연기자보다는 인지도 있는 가수가 보다 쉽게 드라마에 진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든다. 제작사 입장에서도 가수가 신인 연기자보다 드라마를 홍보하기가 더 쉽다.
그들은 연기자인가 가수인가
그런데 이렇게 드라마에 진출한 가수들을 우리는 가수로 봐야 하나 연기자로 봐야 하나. 투잡시대에 그게 뭐가 중요하냐 할 수 있겠지만 드라마의 질을 두고 볼 때 이 부분은 중요하다. 드라마는 아마추어의 장이 아니며 철저한 프로의식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안 되는 대사, 표정연기, 동작은 단 한 순간이라도 극의 집중도를 여지없이 떨어뜨려 놓는다.
그렇다면 가수의 드라마 진출의 준거로 종종 활용되는 성공사례는 어떨까. 그들은 진정으로 연기자로 변신했던 것일까. 드라마의 성공은 대본과 연출, 연기의 삼박자가 맞아 떨어져야 가능하다. 그런데 이들 가수들이 등장해 성공한 드라마를 그들 연기력의 성공으로 보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많다. 그것은 오히려 캐스팅의 성공이 될 것이다. 캐스팅이 정확히 맞아떨어질 때 연기자는 연기를 해야한다는 부담을 덜게 된다. 이런 드라마는 가수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극으로 가져와 활용할 뿐, 연기를 강요하지는 않는 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가수 캐스팅을 많이 하기로 유명한 황인뢰 감독의 모 매체와의 인터뷰하면서 ‘궁2’의 캐스팅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에 대해 “일종의 ‘이미지 캐스팅’이라 할 수 있는데 연기하게 될 캐릭터와 어떤 배우가 가장 잘 어울릴 것인지 고민했다. 연기경험이 있는 사람이든 신인이든 이미지가 우선한다고 생각하고 극중 이미지와 가장 흡사한 사람을 뽑는데 최우선의 포인트를 두었다”고 말했다. 이것은 이제 드라마가 연기자의 연기력보다는 극중 캐릭터와 딱 맞아떨어지는 이미지의 배우를 발굴하는데 집중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신입은 없고 경력만 있다

여기에 더 위험한 것은 연기자들 스스로 이런 시류에 굴복한다는 점이다. 진정한 연기자의 길보다는 보다 이미지에 집중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신에게 어울리는 연기만 하게 되며 그것은 결국 연기자의 단명을 가져온다. 연기자란 자기 성격에 맞는 캐릭터를 찾아 연기하는 사람이 아니다. 어떠한 역이라도 자기 스스로 소화해낼 수 있어야 진정한 연기자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최불암씨는 ‘나를 작품에 맞추는 배우’와 ‘작품을 나에게 맞추는 배우’로 나누어 쓴 소리를 했다. 요즘은 후자에 머무는 배우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앞으로 10년, 아니 5년 후에는 한국 드라마의 허리를 든든히 맡아줄 중견배우들을 잃게 될 지도 모른다. 지금의 중견 배우자들이 과거 끝없는 자기변신을 통해 쌓아온 내공이 이제 빛을 발하듯이, 앞으로 중견 배우자가 될 신인 연기자들의 발굴과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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