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가족드라마가 가족의 불편함을 보여주는 까닭

가족은 여전히 따뜻하고 포근한 안식처인가. 지금껏 KBS 주말드라마가 그려온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면, 지금 방영되고 있는 <황금빛 내 인생>은 어딘가 수상하다.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가족의 양태는 결코 따뜻하고 포근한 안식처가 아니기 때문이다. 보통의 서민층 가족도, 또 돈 걱정 없는 재벌가 가족도 무엇 하나 따뜻하거나 부러워할만한 구석을 찾기가 쉽지 않다. 어째서 <황금빛 내 인생>은 그간 KBS 주말드라마가 그려왔던 그 가족의 면면을 완전히 뒤집어 보여주고 있는 걸까.

한 때는 잘 나가건 회사의 사장이었으나 부도를 맞고 전국의 건설현장 인부를 전전해온 서태수(천호진)는 그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숨겨왔던 마음의 응어리를 토해놓는다. 가족을 위해 뭐든 희생하며 살아왔던 그였지만 그토록 애타게 찾았던 집 나간 딸 지안(신혜선)에게서 “가족이면 다 함께해야 하냐”는 독한 말을 듣고 그는 모든 걸 놓아버린다. 아들 지태(이태성)에게 안하던 화를 쏟아내는 그는 이제 가족이 다 무슨 소용이냐고 생각하는 듯하다. 

왜 그렇지 않을까. 아내 양미정(김혜옥)이 그간 잘 지내왔던 시절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지금의 힘겨운 시기만을 얘기하는 것에 화가 나고, 서지안도 서지수도 금이야 옥이야 키웠던 그 시절을 마치 모두 잊은 듯 그를 대하는 모습에 울분이 터져 나온다. 마치 아버지의 무능 때문에 결혼은 결코 안하겠다 소리쳤던 지태의 외침 또한 그에게는 비수 같은 말들로 남아있다. 도대체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인가. 그는 그것을 이제 스스로에게 묻고 그 답을 찾고 있다. 자신을 먼저 돌보지 않고 가족만을 챙기려 했던 그 삶이 어딘가 잘못됐었다는 걸. 그에게 가족은 이제 더 이상 따뜻하고 포근한 안식처가 아니다.

그렇다면 재벌가 최도경(박시후)의 가족은 어떤가. 가족이라기보다는 마치 회사 같은 느낌을 주는 그들은 마치 인형처럼 정해진 대사들을 말하고 정해진 틀 안에서 행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몇 번 만나지도 않은 사람과의 결혼이 이미 결정된 사항이고, 그 당사자들 역시 그렇게 만나 그 날 약혼하고 결혼하자는 말을 꺼내놓는다. 그건 하나의 계약 사항 같은 것이니까.

그 속으로 들어간 뒤늦게 찾은 딸 서지수(서은수)는 그래서 이 재벌가 가족이 가진 위선적인 모습들을 드러내는 리트머스지 같은 역할을 한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거죠?”라는 질문에 이 이상한 가족은 쉽게 답을 하지 못한다. 그저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으로 정해진 것이 이 가족의 삶이다. 서민가족의 삶이 그 곤궁함으로 인해 결혼조차 포기하려 했고, 어떻게 결혼은 했지만 아이는 결코 낳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 이상한 것처럼, 재벌가의 남녀가 만나자마자 마치 모든 게 결정되어 있었다는 듯 결혼이야기를 하고 심지어 아이를 낳을 계획까지 말하는 것도 이상하다.

<황금빛 내 인생>이 그려내는 이 가족들의 양태는 정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물론 그 양태는 정반대의 모습처럼 보이지만 그런 비정상을 만들어내는 원인은 같은 곳에서 비롯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돈이다. 현실이다. 없는 자는 없어서 가진 자는 너무 많이 가져서 그 가족의 삶이 피폐해진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짐이 되고 상처가 되며 심지어 굴레가 되는 가족을 진짜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 그런 가족 체계를 굳이 지켜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황금빛 내 인생>은 그래서 가족의 불편함을 보여주는 가족드라마가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그토록 오래도록 불변의 가치로 여겨왔던 가족주의라는 틀에 대한 균열을 말하고 있다. 핏줄과 혈연으로 얽혀진 가족이라는 틀이 한때는 끈끈하게 서로를 엮어 우리를 생존하게 해주는 힘이었던 적이 있었다면, 지금은 그 끈끈함이 오히려 족쇄가 되어 서로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황금빛 내 인생>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가족주의를 극복하고 따로 ‘내 인생’을 세우고 또 같이 나아가는 진정한 가족을 지향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우리 시대가 추구해야할 가족의 새로운 가치가 아닐까.(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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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 내 인생’이 깬 주말드라마의 공식들

KBS 주말드라마는 우리에게 오래도록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해왔다. 그래서 항간에는 이 시간대에 들어가는 주말드라마는 기본이 시청률 20%부터 시작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물론 이건 선입견이다. 요즘은 작품이 시원찮으면 곧바로 채널이 돌아간다. 채널도 많아졌고 볼 것도 많아진 탓이다. 주말드라마라고 해서 무조건 잘 된다는 건 옛날이야기라는 것이다. 

게다가 주말드라마가 주로 다루는 가족극의 형태는 이제 현실성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과거의 주말드라마는 두 개 혹은 세 개의 가족을 보여주고, 그 안의 인물들이 서로 관계로 얽히는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안이한 전개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보여주던가 아니면 그 가족 속에 깃든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면 관심을 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제 중간 기점을 돌기 직전인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이 이토록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건 여러 가지 의미를 말해주고 있다. 물론 이 시간대는 여전히 그간의 가족드라마가 가진 익숙한 코드들을 다뤄야 이물감이 없는 건 사실이지만, 그 다루는 방식을 달리 해줘야 지금의 시청자들의 달라진 시선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이 드라마는 보여주고 있다. 

<황금빛 내 인생>은 소현경 작가가 이미 <찬란한 유산>을 통해 성공적인 실험을 보여줬던 것처럼 연속극과 미니시리즈가 겹쳐진 장르적 혼재를 보여준다. 매회 사건이 이어지며 다음 회를 볼 수밖에 없게 만드는 몰입감을 선사하면서도 동시에 미니시리즈가 갖는 분명한 메시지들을 곳곳에 박아 넣었다. ‘출생의 비밀’ 같은 연속극의 주요 소재를 가져와 우리 사회가 가진 금수저 흙수저의 계급문제를 비틀어 보여준 것이 단적인 사례다. 

이것은 소현경 작가가 가진 특유의 경력과 성장으로 가능해진 일이다. 소현경 작가는 그 시작을 연속극으로 했던 작가다. 하지만 소현경 작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찬란한 유산>같은 미니시리즈가 접목된 연속극의 실험을 보여줬고, <검사 프린세스>, <49일>, <투윅스> 같은 로맨틱 코미디와 장르물까지를 섭렵했다. 그러면서 <내 딸 서영이> 같은 주말드라마를 성공시킨 소현경 작가는 한 마디로 연속극과 미니시리즈 같은 장르물을 모두 다룰 줄 아는 작가로 성장했다. <황금빛 내 인생>에서 느껴지는 뚝심과 자신감 같은 건 이런 과정들을 통해 얻어진 것들이라고 볼 수 있다.

<황금빛 내 인생>은 주말드라마가 가진 틀에 박힌 가족주의의 차원을 넘어서 사회극으로서의 면면을 드러내는 이례적인 작품이다. 그것은 진짜 딸을 바꿔치기 하는 범죄 행위가 들어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그것보다는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뿌리 깊은 핏줄의식과 그로 인해 판이하게 나눠지는 빈부와 삶의 질에 대한 이야기를 문제의식을 갖고 다루고 있어서 하는 이야기다. 기존의 가족드라마들이 대부분 흔한 신데렐라 판타지 같은 걸로 다루던 문제를 <황금빛 내 인생>은 처참하게 망가지는 한 가족의 비극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흔히들 주말드라마는 밝아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그래서 젊은 청춘이 항상 등장하고 풋풋한 사랑이야기가 있으며, 혼사 장애의 갈등도 코믹한 유머가 동반된다. 하지만 <황금빛 내 인생>은 다르다. 이 드라마는 어떤 면에서 보면 요즘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본격 드라마가 가진 비극성 같은 걸 그려내고 있다. 이것 역시 소현경 작가가 깨버린 주말드라마의 공식 중 하나다. 

우리가 살아가는 가족의 양태가 달라지면서 그 가족을 담아내는 주말드라마 역시 다른 모습을 요구받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금 화제가 되고 있는 <황금빛 내 인생>은 앞으로 주말드라마들이 어떤 변화를 담보해야 비로소 달라진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 끌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달라진 가족 양태 속에서도 주말드라마가 지속 가능한 유일한 길이 될 지도 모르겠다.(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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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네>를 통해 보는 가족주의의 해체

 

저렇게 될 줄 알았지. 시작부터 나 미스코리아 나갔던 여자야를 외치며 온갖 민폐를 끼치던 왕수박(오현경)이 집을 나와 식당에 취직했다가 쫓겨나고 노숙자처럼 길거리를 전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마도 많은 시청자들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왕가네 식구들>이 이제 종반으로 치달으면서 왕가네 가족들에게 패악질 하던 캐릭터들이 이제 권선징악, 개과천선의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것 또한 시청자들이 예상 못했던 일은 아닐 것이다.

 

'왕가네 식구들(사진출처:KBS)'

수박이 동생 호박(이태란)을 만나 오늘이 아부지 생신이라며 돈 봉투를 전하는 장면이나 호박아, 너하고 광박이한테 정말 고맙다. 집도 얻어주고. 난 맏이 노릇도 못하고 못난 짓만 하는데라는 대사를 던지는 것도 그래서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사실 <왕가네 식구들>의 등장인물들이 수박과 호박이라는 이름으로 정해진 순간부터 예정된 일이다. 즉 수박이 엄마로부터 편애를 받고 비뚤어지는 인물이며 호박이 구박을 받으나 결국은 성실하게 살아가는 인물이라는 것은 이름에 나타나 있다.

 

문영남 작가의 등장인물 작명 방식은 주말드라마의 공식과 패턴을 잘 드러낸다. 즉 아버지 왕봉(장용)은 가족의 봉이고, 이앙금(김해숙)은 마음 속 앙금으로 비뚤어진 엄마이며, 수박의 남편인 고민중(조성하)은 이혼을 고민하게 되는 캐릭터이고 호박의 남편 허세달(오만석)은 실속 없이 허세만 가득한 민폐형 캐릭터다. 마치 RPG 게임처럼 시청자들은 이들 앞으로의 전개를 예감케 하는 이름의 캐릭터들이 벌이는 마인드 게임에 들어가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름이 정해지는 순간부터 <왕가네 식구들>의 이야기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예기치 못한 전개나 드라마를 통해 새로운 의미의 발견 같은 것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권선징악이나 가족이 최고같은 누구나 다 아는 가치의 반복이면서 비슷비슷한 가족드라마 전개의 반복이지만 그래도 시청률이 45%에 육박하는 놀라운 수치다.

 

물론 막장드라마를 통해서 흔히 봐왔듯이 시청률과 완성도 혹은 작품성에는 아무런 비례관계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현재 드라마의 평균적인 시청률이 10%대이고 20%를 넘기면 성공작으로 치부되는 시대에 무려 50%를 넘보는 시청률을 내고 있다는 것은 작품성과 상관없이 이 시간대의 드라마가 보여주는 사회적인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도대체 무엇이 이 시간대의 가족드라마에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걸까.

 

<왕가네 식구들>만이 아닌 이 시간대의 KBS 주말극이 일정하게 높은 시청률을 내왔다는 것은 작품 그 자체보다 이 시간대가 가진 프리미엄이 있다는 걸 말해준다. 시청자들은 무슨 일인지 이 시간대에 KBS 주말극에 채널을 고정시키고 있다. 거기에는 편안한 기대감이 있고 그 기대감을 적절히 배반하다가도 채워주는 말 그대로 시청자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하는 드라마의 공식이 있다. 그 공식을 시청자들이 모르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알기 때문에 즐기는 면이 더 크다. 마치 한 시간 동안 벌어지는 게임처럼.

 

여기에는 이 시간대의 주말드라마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가족주의가 큰 몫을 차지하는 것 같다. 즉 최근 주중 드라마들을 보면 가족주의보다는 해체되는 가족의 이야기가 더 많이 등장한다. <따뜻한 말 한 마디>가 불륜을 통해 결혼이라는 제도의 불완전함을 얘기하고, <미스코리아><별에서 온 그대> 같은 작품은 가족이 등장하긴 하지만 가족과는 상관없는 이야기 전개가 대부분이다. 최근 종편이나 케이블에서 방영되는 드라마들도 그렇다. 물론 시대극을 다루고 있는 <맏이>는 예외가 되겠지만(이 드라마 역시 과거 가족에 대한 향수를 다룬다는 점에서 현 가족의 해체를 역으로 보여주기도 하지만) <로맨스가 필요해3><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 같은 드라마들은 가족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더 추구한다.

 

결국 작금의 현실에서 가족은 과거 같은 가족드라마 틀로는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하는 변화를 겪고 있다. 늘 가족주의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던 김수현 작가마저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서는 결혼에 대한 회의적인 담론들을 담고 있다. 이 드라마가 시청률이 저조한 이유는 김수현 작가의 팬들이라면 기대하기 마련인 가족주의의 틀을 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족의 해체가 드라마에서 하나의 흐름을 만들고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보면 <왕가네 식구들> 같은 KBS 주말드라마의 성공은 거꾸로 가족주의에 대한 판타지를 이어가는데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영남 작가의 드라마가 과도한 민폐 캐릭터 때문에 막장 논란을 일으키면서도 높은 시청률을 이어가는 것은 결국 이 민폐 캐릭터가 권선징악의 형태로 결말을 맞을 것이며 또한 가족이라는 오히려 더 공고해진 틀 속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시청자들은 안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왕가네 식구들>을 보다보면 해체되어가는 가족주의에 대한 지독한 향수와 반발을 느끼게 된다. 거기 등장하는 민폐 캐릭터들은 그것을 촉발시키는 촉매제인 셈이다. 그들을 미워하고 욕하고 결국은 용서하고 다시 끌어안는 동안 우리는 가족은 여전히 지켜져야 할 최후의 보루라고 느끼게 되는 것. 하지만 이러한 안간힘은 이 시간대가 마치 유일하게 남은 가족주의의 성전처럼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뻔하고 식상해도 자꾸만 되새기며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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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턴, 가족주의 종언의 징후인가

SPECIEL 2014.01.09 11:07 Posted by 더키앙

가족보다 더 우선되는 개인의 시대, 싱글턴

 

최근 가족드라마를 보면 흥미로운 경향들이 두드러진다. 단란한 가족의 모습을 그리곤 했던 가족드라마는 언젠가부터 파탄 일보 직전의 이른바 막장이 되거나, 불륜 혹은 이혼에 직면한 가족의 위기를 다루고 있다. 문영남 작가의 <왕가네 식구들>이 소재로 내세운 것은 시월드(시댁)가 아닌 처월드(처가)지만 여기서 왕가네가 보여주는 진면목은 경제적으로 몰락하거나 가족 윤리가 파탄 난 가족의 모습이다. 김수현 작가의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제목처럼 아예 재혼한 한 여성이 엄마로서의 삶마저 포기하고 개인의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아마도 김수현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결혼과 이혼이 부쩍 많아진 현 세태 속에서 행복의 문제를 질문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가족주의라는 사회적 틀이 가진 한계처럼 보인다. 이제 따뜻하고 힘겨우면 늘 찾던 그 가족의 양태는 과거의 시대로나 가야 만나 볼 수 있는 어떤 것이 되어버렸다. 김정수 작가의 <맏이>는 그래서 시간을 60년대까지 되돌린 후에 다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속에서 가족은 물론 여전히 아련함을 남기지만 그것은 추억이나 회고일 뿐 현재를 얘기해주는 것은 아니다.

 

 

가족드라마가 가족의 해체를 드러내는 요즘, ‘싱글턴(singleton)’이라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이 대중문화에서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도대체 싱글턴이란 뭘까. 단언적으로 말해 싱글턴은 독신주의나 노총각, 노처녀와는 다른 개념이다. 독신주의나 노총각, 노처녀 모두 결혼을 전제로 해서 결혼을 안 하는(혹은 못하는)’ 이들을 지칭하는 것이지만, 싱글턴은 결혼과 상관없이 혼자 사는라이프 스타일을 총체적으로 포괄하는 개념이다. 즉 젊은 나이에 부모와 혼자 떨어져 사는 이들이나, 결혼을 안 하고 혼자 사는 이들, 또 나이가 들어 부양하는 가족이 없이 혼자 사는 노인들까지 모두 포함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싱글턴은 독신주의나 노총각, 노처녀 같은 단어가 갖고 있기 마련인 수동적이거나 부정적인 뉘앙스도 있지만 동시에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뉘앙스도 포함하고 있다. 이를 테면 과거 <결혼 못하는 남자>라는 드라마에 등장했던 혼자 사는 삶을 즐기는 남자 주인공처럼.

 

라이프 스타일에 특히 민감한 대중문화는 싱글턴을 앞 다투어 다루고 있다. MBC <나 혼자 산다>는 아예 대놓고 혼자 사는 남자들의 다양한 삶을 예능의 코드로 품어냈고, 올리브 채널의 <마트를 헤매는 당신을 위한 안내서>는 대형마트의 가공식품을 재가공해 맛볼 수 있는 노하우를 전하면서 그 타깃을 혼자 밥 먹는 것이 어색한 1인 가구에 맞췄다. KBS의 특이한 오디션 프로그램인 <슈퍼독>이나, 반려견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 온스타일 <펫토리얼리스트>는 싱글턴의 라이프 스타일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또 최근 시작한 tvN <식샤를 합시다>1인 가구들이 곤란을 겪는 두 가지 문제, 즉 식사와 안전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물론 싱글턴의 라이프 스타일을 다루는 프로그램은 아직까지는 주로 먹거리 문제 정도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혼자 영화 보러 가는 건 쉬워도 혼자 밥 먹는 게 어려운 1인 가구들에게 먹는 문제가 최대의 고민인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점심시간 혼자 맛집을 찾아갔다가 왠지 미안해서 발길을 돌린 경험은 싱글턴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이야기일 테니 말이다.

 

<SBS 스페셜>싱글턴, 혼자 살아서 좋다!?’라는 제목으로 이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에서 전문가들은 현재 우리나라의 1인 가구 비율이 네 집 건너 한 집에 육박하고 있고 2030년에는 세 가구 중 하나가 1인 가구가 될 것이라며 싱글턴은 이미 확정된 미래라고 말한다. 즉 과거의 대가족이 핵가족을 거쳐서 결국은 싱글턴의 삶의 방식으로 바뀔 것이라는 것. 이렇게 확정된 미래라 단언하는 데는 그만한 사회적 토대의 변화가 근거로서 깔려 있다.

 

<고잉 솔로 싱글턴이 온다>의 저자 에릭 크라이넨버그는 여성들의 지위가 향상되면서 점점 결혼의 틀로 들어가기 보다는 일하며 혼자 살아가는 삶이 늘고 있고, 통신혁명으로 가족이 아닌 다른 커뮤니티를 통한 소속감을 느끼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대도시의 형성은 전통적인 가족주의를 해체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삶을 만들어내고 있고, 무엇보다 혁명적인 수명연장은 어쩔 수 없이 혼자 사는 삶을 인생에서 누구나 겪게 만든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가족주의에 여전히 몰두하고 있는 사회에 이런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가정적 결합을 촉진하는 무익한 캠페인에 에너지를 적게 투입하고, 이미 혼자 사는 사람들이 더 잘살도록(더 건강하고, 더 행복하고, 사교활동도 활발하게 하도록) 돕는 데 집중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지만 가족주의 형태를 거의 유일한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온 사회가 갑작스레 싱글턴의 라이프 스타일을 모두 소화해내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혼자 살아서 좋다고 외치는 이들은 그 혼자 사는 삶을 마음껏 영위할만한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 혹은 선망하는 직업 같은 제반 조건들이 갖춰진 싱글턴에 국한되기 때문이다. 즉 잘 사는 이들에게는 싱글턴이 하나의 누릴 수 있는 자유가 되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는 외롭게 버텨내야 하는 불안한 삶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화려한 싱글은 그들을 받쳐줄 수 있는 공적 시스템이 갖춰졌을 때 골고루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가 지금껏 유지해온 시스템이 온통 가족제도에 맞춰져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이 변화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싱글턴이라는 새로운 삶의 방식은 머릿속으로는 이미 진행형이지만 현실이 받쳐주지 않는 상황에서는 자칫 더한 상대적 박탈감이나 양극화로 치달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단적으로 고독사나 고독한 노년의 삶은 이미 사회문제로까지 제기되고 있다. 고독사 문제는 싱글턴의 삶이 이미 우리네 깊숙이 들어와 있지만 이 변화된 삶에 대해 사회가 아직까지 아무런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1인 가구 비율이 이미 50%에 육박하고 있는 스웨덴의 경우 공동주택이라는 새로운 주거형태를 통해 혼자 살면서도 이웃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삶을 영위하게 해주기도 하고, 또 저소득층에게는 안정된 주거생활이 가능하도록 주택보조금을 주기도 한다고 한다. 싱글턴의 삶이 고립으로 이어지는 것을 국가와 사회가 나서 막아주고 있다는 것.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아직 요원하기만 한 일이다.

 

우리네 대중문화에서 다뤄지는 싱글턴의 삶은 주로 화려한 면만을 보여주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대중문화가 일종의 선망을 주로 다루기 때문이다. 따라서 막연히 이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따라하다가는 오히려 불행한 상황에 놓여질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것이 화려하건 불행하건 싱글턴은 앞으로 새롭게 등장할 사회유형이라는 점이다. 국가적인 차원에서든, 사회적인 차원에서는 그것도 아니라면 개인적인 차원에서든 이 새로운 사회유형에 대비하지 못한다면 그 파장과 사회적 비용은 훗날 더 톡톡한 대가를 요구하게 될 수도 있다.

 

오랜 가족주의의 전통 속에 살아온 우리에게 가족이란 여전히 불변의 가치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래서 TV를 켜건, 영화관을 가건, 아니면 흘러간 가요 한 자락에도 우리는 가족을 발견한다. 하지만 이 가족주의가 늘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왔던 것은 아니다. 가족주의는 때론 가족 이기주의로 변질되기도 했고, 나아가 혈연, 지연, 학연 하는 가족주의의 또 다른 부정적 결과로 확장되기도 했다. 싱글턴의 라이프 스타일이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이 개인주의적 삶은 때론 가족주의의 부정적인 면들을 상쇄해주는 대안적 가치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늘어난 수명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된 싱글턴을 좀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이 훨씬 유리하지 않을까. 어쨌든 가족주의 시대의 황혼은 점점 저물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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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윅스>, 진정 다 가진 드라마였던 이유

 

<투윅스>가 종영했다. 종영했지만 이 놀라운 드라마가 헤집고 간 파문은 꽤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을 듯하다. 우리네 드라마 현실에서 이처럼 실험적이면서도 대중성을 가진 작품을 시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투윅스>는 우리네 드라마에서 좀체 성공하기 힘들다는 스릴러 액션을 다루면서도 그 안에 가족드라마의 문법을 성공적으로 묶어낸 작품. 게다가 그 안에 우리네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준엄하게 꾸짖는 시선까지 담아놓았다.

 

'투윅스(사진출처:MBC)'

2주라는 짧은 시간을 나눠 하루를 한 회 분량으로 풀어내는 형식미는 이 드라마의 시간을 훨씬 더 숨 가쁘게 만들었고 그 2주를 끝없이 뛰어다니던 장태산(이준기) 옆에 늘 함께 하는 딸 수진(이채미)을 판타지로 엮어내는 방식은 탈주극이 가족드라마의 테두리 안에 온전히 놓여질 수 있게 해주었다.

 

어찌 보면 이 드라마는 가족의 의미라는 통상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여기서 머물지 않고 범죄자의 가족, 이를테면 김선생(송재림)과 한치국(천호진), 조서희(김혜옥)와 그의 장애를 가진 아들까지 가족 이야기를 확장함으로써 그 의미를 사회적인 시각으로 넓혀놓았다.

 

즉 자신의 가족을 위해 희생하면서도 타인의 가족을 걱정하는 장태산과 그 주변 인물들(임승우(류수영) 같은)이 있는 반면, 제 자식만을 챙기려 타인을 불행에 몰아넣는 조서희 같은 인물이 있고, 뒤늦게라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김선생 같은 인물이 각각 사회적인 틀 안에서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되묻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가족주의가 가진 이중성이다. 모두가 자신 때문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였다고 말하곤 하지만 그것이 가족의 테두리 안에만 머물 때 가족주의는 가족 이기주의가 된다. 마지막 회에 이르면 <투윅스>는 그래서 가족의 범주를 확장시킨다. 수진이는 사실상 두 명의 아버지를 갖게 된 것이고 박재경 검사(김소연)는 장태산 가족과 유사가족 형태를 이룬다. 장태산에게 살갑게 같이 살지 않겠냐고 묻는 한치국 역시 또 하나의 가족인 셈이다.

 

이렇게 가족의 의미가 사회적으로 확장되자 드라마는 좀 더 사회성 있는 울림을 갖게 되었다. “내가 무서웠던 것도 니 마음이 약해서였고, 내 협박에 도망치지 못한 것도 니가 용기가 없어서였어. 선택은 니가 한 거라고 이 모자란 자식아.” 문일석(조민기)이 장태산(이준기)에게 던지는 이 말이 더 아프게 다가오는 건 5년마다 우리가 듣는 ‘선택’이라는 단어 때문이다. 조서희처럼 겉으로는 번지르르하게 저마다 국민을 외치지만 정작 국민은 없고 사적 이익만 있던 이들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겪었던가.

 

이 모든 불행이 저들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 때문이라는 것. “뭘 시켜도 찍소리 못하는 놈”이었기 때문에 장태산의 불행이 비롯됐다는 문일석의 비아냥은 그래서 그저 드라마의 한 대사로 여겨지지 않는다. 조서희라는 악역이 권력이 목표가 아니라 돈이 목표라는 건 우리를 더 암울하게 만든다. 권력이야 5년의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그렇게 착복된 돈은 두고 두고 서민들의 등골을 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문일석의 비아냥은 그래서 장태산을 변화하게 하는 동기가 되었다. 도망치기만 하던 장태산이 공세적으로 돌변해 문일석과 조서희 일당을 압박하게 됐던 것. 결국 마지막에 문일석과 장태산이 정 반대의 입장으로 바뀌었을 때 장태산은 자신의 선택이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다치는 걸 걱정해서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장태산도 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도 이 이주 간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 주변사람을 진정 걱정한다면 제대로 된 선택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토록 긴박한 탈주극에 이처럼 뭉클한 가족극이면서 동시에 이토록 날카로운 사회극을 한 작품 속에 녹여낼 수 있었던 건 결국 소현경이라는 작가 덕분이다. 이 작품을 쓴 소현경 작가는 이제 확실한 자기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고 여겨진다. 주말드라마이면서도 미니시리즈의 긴박감을 엮어냈던 <찬란한 유산>으로 비로소 주목을 받기 시작한 그녀는 <검사 프린세스>, <49일> 같은 밀도 있는 작품실험을 거쳐 <내 딸 서영이> 같은 국민드라마를 만들어냈지만 진정한 성취는 <투윅스>를 통해 이뤘다 여겨진다.

 

<내 딸 서영이>가 익숙한 가족드라마 속에서 특별한 지점들을 뽑아낸 작품이었다면 <투윅스>는 낯선 설정 속에서 익숙함을 균형 있게 맞춘 작품이라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이다. 물론 시청률에서야 <내 딸 서영이>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이지만 이런 실험적인 시도로 10% 시청률을 유지했다는 것은 놀라운 필력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소현경 작가 특유의 균형감각 덕분이다. 이 작가는 보편적인 시청층이 요구하는 드라마적 설정들(가족 설정 같은)마저 장르 속에 잘 녹이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

 

좋은 드라마는 좋은 배우를 만든다. <투윅스>의 거의 모든 배우들이 호연을 펼쳤지만 그래도 이 드라마의 중심을 만든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이준기와 조민기를 말할 수 있을 게다. 이준기는 이 드라마를 통해 확실히 자신의 연기 영역을 넓혀놓았다. 아빠 연기를 제대로 소화해낸 이준기는 이제 좀 더 폭넓은 연기자의 세계로 들어오게 되었다. 한편 이 드라마의 사실상의 힘을 만들어낸 조민기의 악역 또한 상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두 연기자의 팽팽한 대결이 있어 <투윅스>는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동시간대 시청률 2위로 종영했지만 <투윅스>는 2등짜리 드라마가 아니었다. 대본과 연출과 연기가 그렇고, 작품성과 대중성을 함께 가져간 점도 그러하며 또한 드라마가 던지는 사회적 메시지 역시 결코 작다 할 수 없었다. 시청률을 무시할 순 없지만 시청률만을 위해 만들었다면 아마도 이처럼 많은 성취들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투윅스>는 진정 다 가진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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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줄 의식의 힘, 그 힘을 넘어서

내세울만한 톱스타도 없고, 눈을 잡아끄는 스펙터클도 없다. 중견연기자들이 보여주는 탄탄한 연기가 드라마의 허리를 지탱해주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제빵왕 김탁구'가 보여준 괴력을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게다가 연출이 실험적이거나 빼어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결국 스토리에 답이 있다는 것인데, 완성도로만 놓고 보면 '제빵왕 김탁구'는 과장이 많고 개연성도 많이 떨어지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뭘까. '제빵왕 김탁구'의 그 무엇이 대중들을 그토록 열광하게 한 것일까.

스토리의 완성도와는 별도로, 이 드라마는 이른바 시청률이 된다는 검증된(?) 소재들이 넘쳐난다. 출생의 비밀, 불륜, 부모와 자식 간의 상봉, 복수, 경합, 가족애, 미션이 주어지는 성장드라마, 형제애, 자식을 두고 벌이는 부모 간의 대결, 비밀, 엇갈린 사랑.... 아마도 우리네 드라마들이 가졌던 성공 코드들을 이 드라마 속에서 거의 다 발견할 수 있을 정도.

이 드라마의 세대적인 폭이 넓은 것은 시대극의 틀 속에 성장 드라마적 요소를 집어넣은 공적이지만, 또한 이를 받쳐주는 다양한 성공 코드들 때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 코드들을 김탁구(윤시윤)라는 실전적인 인물의 성장 스토리 속에 녹여낸 것이 드라마가 성공을 거둔 가장 큰 이유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코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네 가족드라마들이 늘상 강조하는 '핏줄의식'이다. 수많은 세월을 수많은 이야기들과 함께 걸어왔지만, 이 드라마가 결국 보여주는 것은 '핏줄에 대한 끈끈한 애정'이다.

구일중(전광렬)의 김탁구에 대한 남다른 애정, 오로지 자식을 위해 자기 한 몸을 희생하는 삶을 마다하지 않는 김탁구의 모친 김미순(전미선)의 절절한 자식 사랑,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끝까지 엄마를 찾아 헤매는 김탁구의 효심이 이 드라마의 긍정적인 힘을 만들어낸다면, 자기 핏줄에 대한 지나친 편애로 비뚤어져 버린 서인숙(전인화), 불륜으로 갖게 된 자식을 거성식품의 후계자로 세우기 위해 자신이 친아버지임을 숨기면서까지 모든 악행을 떠안는 한승재(정성모), 그리고 이 모든 것들 때문에 비뚤어져 버리는 구마준(주원)은 핏줄의식으로 보여지는 이 드라마의 부정적인 힘이다.

모든 것을 경쟁으로 바라보며, 누군가가 이기면 누군가는 질 수밖에 없다 여기는 한승재는 그래서 잘못된 가족 이기주의의 표상처럼 보인다. 반면 모두가 다 행복해질 수 있다 여기는 김탁구는 만나는 거의 모든 인물들을 가족으로 끌어들이는 힘을 발휘한다. 그는 가족의 범주를 확장시킨다.

시대에 따라 가족에 대한 의식도 달라져 왔다는 점에서 이 가족에 대한 서로 다른 의식은 이 시대극 속에서 서로 대결을 벌인다. 시대극으로 보면 한승재는 '경쟁'을 가치로 삼던 구시대의 인물이고, 김탁구는 '행복'을 가치로 삼는 현 시대의 인물이다.

'제빵왕 김탁구'의 힘은 바로 이 우리네 정서를 끌어당기는 핏줄의식에서 비롯된다. 물론 이 시대에 여전한 것이 바로 이 핏줄의식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이 핏줄의식이 가진 힘으로 추동력을 얻은 후에 차츰 그 핏줄 이상의 판타지로 나아간다. 구마준이 친형제임을 부정하는 것에 대해 김탁구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자칫 가족주의에 매몰될 수 있는 드라마가 그것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김탁구라는 캐릭터를 통해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을 그려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탁구와 구마준이 서로 자신들의 지분을 합쳐서 큰 누나인 구자경(최자혜)에게 거성식품의 대표이사 자리를 내주는 장면을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여성이 CEO가 되는 것이 더 이상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도래했음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고, 팔봉선생의 마지막 경합주제였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은 가족이라는 틀 그 이상을 넘어서 모두가 행복해지는 삶이라는 것을 '제빵왕 김탁구'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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