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적인 그녀’, 주원은 이 난관마저 이겨낼 수 있을까

아마도 사극이어서 “이게 뭐지” 했을 시청자분들도 많지 않았을까. SBS 월화드라마 <엽기적인 그녀>는 우리에게는 레전드가 되어버린 영화 <엽기적인 그녀>를 원작으로 가져왔다. 하지만 영화가 현대극으로서 대학생들의 청춘 로맨스였다면, 드라마는 아예 사극으로 시대적 배경 자체를 바꿔놓았다. 

'엽기적인 그녀(사진출처:SBS)'

이런 선택을 했다는 것은 얼마나 드라마 <엽기적인 그녀>가 원작의 무게감을 덜어내려 안간힘을 썼는가를 잘 보여준다. 레전드가 된 작품과 비교되기 시작하면 리메이크된 작품의 운명이란 그 결과가 뻔해질 수밖에 없다. 원작에 대한 향수가 있는 시청자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니 드라마는 아예 사극이라는 틀을 가져와 새로운 작품으로서의 <엽기적인 그녀>를 구상하게 됐을 게다. 

물론 사극이라고 해도 그 안의 이야기 설정은 원작 영화가 가진 것에서 많이 따왔다는 것을 첫 회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견우(주원)가 혜명공주(오연서)를 처음 만나 인연을 만드는 그 장면에서 술에 취한 그녀가 견우에게 토를 하는 대목이 그렇다. 영화에서는 지하철에서 그녀(전지현)가 견우(차태현)에게 토를 하는 장면이 나오고, 어쩔 수 없이 모텔에 그녀를 데려간 견우가 토 냄새를 지우기 위해 샤워를 하다 오해를 받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 이야기 모티브는 사극으로 리메이크된 드라마 속에서도 그대로 사용된다. 

사극으로 재해석되었다고 해도 이처럼 <엽기적인 그녀>는 원작의 그림자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원작을 통해 스타덤에 올랐던 전지현과 차태현의 그림자는 너무 짙다. 이런 한계를 갖고 있는 작품이지만 이렇게 드라마화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중국이라는 시장을 빼놓을 수 없다. 중국에서 <엽기적인 그녀>에 대한 팬덤은 여전히 뜨거운데, 최근 전지현이 <별에서 온 그대>로 화제가 된 후 다시 이 작품까지 주목받았다. 그러니 이런 분위기에서 <엽기적인 그녀>의 리메이크는 꽤 괜찮은 기획으로 다가왔을 게다. 

물론 사드 배치로 인해 생겨난 한한령으로 <엽기적인 그녀>는 그 애초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끄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중국의 한한령은 조금 수그러드는 양상이지만 그 여파는 여전하다. 그렇다고 이미 만들어놓은 작품을 방치할 수도 없는 일, <엽기적인 그녀>는 그런 우여곡절 끝에 방영되게 됐다. 

원작이 드리우는 그림자의 부담감과 중국과의 관계변화에 의해 영향을 받은 콘텐츠라는 한계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엽기적인 그녀>에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그 가능성은 다름 아닌 주원이라는 배우에게서 나온다. <제빵왕 김탁구>부터 시작해, <각시탈>로 우뚝 서고, 쉽지 않을 거라는 <7급공무원>, <굿닥터> 그리고 모두가 실패를 예견하기도 했던 일드 리메이크작 <내일도 칸타빌레>까지 주원은 드라마 불패를 써온 배우다. 그러니 <엽기적인 그녀> 역시 이 난관들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그저 운이라는 뜻은 아니다. 주원은 캐릭터를 200% 살려내는 남다른 연기력을 통해 드라마의 성공까지 거뒀던 배우다. 이번 <엽기적인 그녀>에서도 상대 역할을 연기하는 오연서의 액션을 코믹하게 받아내는 주원의 리액션이 코미디의 상황을 더 빵빵 터트리게 만들어주고 있다. 물론 액면은 난관과 한계가 다분하지만 ‘그래도 주원이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건 그래서다.

만일 <태양의 후예>30% 시청률을 넘긴다면

 

KBS <태양의 후예>가 결국 일을 냈다. 이제 겨우 4회를 했을 뿐인데 시청률이 24.1%(닐슨 코리아). 이 기록은 KBS 주중드라마가 2012<각시탈>을 통해 22.9%의 최고 시청률을 낸 이래 처음이자 최고의 기록이다. 그간 SBSMBC에 비교해 늘 바닥을 쳤던 KBS 드라마는 실로 오랜만에 활짝 웃을 수 있게 됐다.

 


'태양의 후예(사진출처:KBS)'

<태양의 후예>의 대성공이 의미하는 바는 실로 크다. 시청률 20% 넘기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현재(심지어 한때 시청률 보증수표였던 사극도 마찬가지다), 지상파 드라마들은 점점 치고 올라오는 tvN 드라마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었다. <미생>8.2%, <오 나의 귀신님>7.3%, <두번째 스무살>7.2%, 그리고 <응답하라1988>이 무려 18.8%의 성적을 냈고 이 힘은 현재 방영되고 있는 <시그널>10.4% 시청률로 이어지고 있다. 이 흐름대로라면 지상파와 케이블의 드라마 시청률에 점점 편차가 사라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태양의 후예>가 낸 24.1%의 시청률은 KBS는 물론이고 나아가 지상파 드라마들로서는 한 줄기 희망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드라마를 본방사수하는 시청 연령대가 높기 때문에 완성도 높은 장르물은 오히려 너무 어렵게 느껴져 시청률은 낮았던 것이 지금까지의 지상파 드라마들이 갖고 있던 딜레마였기 때문이다. <태양의 후예>는 사전 제작되어 완성도도 높고, 멜로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전쟁드라마와 의학드라마의 장르물적 성격을 전면에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도 이런 시청률을 내고 있다는 건 지상파 드라마 역시 좋은 작품을 통해 좋은 성적도 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일이다.

 

현실적으로 지상파에서 시청률이 30%를 넘기는 사례는 KBS 주말드라마나 일일드라마 같은 고정 시청층이 있는 편성시간대를 제외하고 나면 막장드라마들뿐이었다. MBC가 일일드라마 시간대에 임성한 작가를 투입하고 주말드라마 시간대에 김순옥 작가를 투입해 시청률을 가져간 건 그래서다. 지금까지 지상파의 막장드라마 경향은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처럼 여겨졌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태양의 후예>의 성공은 이런 변명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만들어버렸다.

 

그런데 도대체 그동안 안보이던 이런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본방하는 지상파 시청자들이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걸까. 어떤 면으로 보면 tvN이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무비드라마 같은 완성도 높은 드라마의 선전으로 인해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전체적으로 높아졌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솔직히 <시그널> 같은 작품을 보고 나면 늘 틀에 박힌 이야기와 소재를 반복하는 지상파 드라마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이것은 심지어 막장드라마도 마찬가지다.

 

<태양의 후예><시그널>처럼 드라마라기보다는 영화적인 완성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지금의 지상파 드라마들과는 사뭇 다르다. 사전 제작된 드라마이면서, 블록버스터지만 단지 볼거리가 아니라(그렇다고 볼거리가 없다는 건 아니다) 극의 중심인 인물들의 감정 선을 놓치지 않고, 기존 장르적 틀에 묶이기보다는 멜로와 액션과 의학드라마 같은 다양한 장르의 경계를 넘나든다. 이런 시도는 지금껏 tvN이 해왔던 것들이다. 그것을 지상파가 그것도 KBS라는 채널에서 보여줘도 충분히 시청자들이 찾아본다는 것을 <태양의 후예>는 말해주고 있다.

 

만일 <태양의 후예>30%의 시청률을 넘긴다면 그건 지상파 드라마에도 어떤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지상파에도 이런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소비하는 시청층이 충분히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너무 완성도가 높으면 그걸 소화해내지 못한다며 얼개를 오히려 허술하게 만들고 자극만을 높인 막장드라마들은 이 상황이 되면 설 자리를 잃게 될 지도 모른다. 이것이 지상파의 타 방송국들조차 이 드라마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태양의 후예>의 어깨가 무겁다

드라마 5년 만에 대상 주원, 그럴만한 이유 있었네

 

“<용팔이> 할 때도 일주일에 일주일 밤을 새며 차에서 링거를 꽂고, ‘주원은 의사인가 환자인가그런 기사를 보며...” <SBS 연기대상>의 대상의 자리에 오른 주원은 마치 주마등같이 흘러가는 자신의 20대가 보였나 보다. 그는 힘겨웠던 촬영 현장의 이야기를 꺼내며 눈물을 흘렸다.

 


'SBS연기대상(사진출처:SBS)'

그 힘든 상황에서도 그가 열심히 촬영하며 버텨낼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스태프들과 배우 분들 때문이라고 그는 밝혔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우리네 드라마 촬영 현장은 거의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시간에 쫓기는 일이 다반사이고 배우들은 밤 새는 일을 마치 숙명처럼 여긴다. 게다가 <용팔이>는 특히 현장이 어려웠다고 한다. 연출자가 중간에 교체되는 초유의 상황까지 벌어졌던 작품이다.

 

그럼에도 주원은 그런 힘겨움을 내색 한 번 한 적이 없다. 모든 현장의 상황들을 온 몸으로 감당하며 그의 표현대로 버텨냈던. 결과는 드라마에 20%를 넘기는 시청률을 안겼고 주원에게는 드라마 데뷔 5년 만의 대상이라는 놀라운 성과로 돌아왔다.

 

주원의 공식 데뷔작은 2006년 뮤지컬 <알타보이즈>지만 드라마 데뷔작은 2010년 방영되어 놀라운 시청률과 화제를 낳은 <제빵왕 김탁구>였다. 그는 이 작품에서 첫 드라마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김탁구(윤시윤)와 대결하는 인물이었지만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그 아픔까지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연기를 선보였다.

 

물론 그 후 모든 작품이 성공했던 건 아니지만 주원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오작교 형제들>이라는 주말드라마에서도 확고한 연기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줬고, <각시탈>, <7급공무원>, <굿닥터>, <내일도 칸타빌레>, <용팔이>까지 기대 이상의 성과들을 보여줬다. 시청률이 점점 떨어지는 지상파 드라마에서 그는 <각시탈>, <굿닥터>에 이어 <용팔이>까지 20%가 넘는 시청률을 냈다. 오죽하면 주원과 하면 성공한다는 이야기까지 솔솔 흘러나왔을까.

 

하지만 단 5년 만에 거둔 이런 성과는 그저 단순한 재능과 운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이번 <SBS연기대상>에서 그가 흘린 눈물은 그간의 숨겨진 노력들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누구하나 완벽한 사람은 없다. 나도 역시 부족하고, 나의 부족한 부분을 많은 분들이 커버해주셨기 때문에 좋은 작품, 이런 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그는 제작진과 팬들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가끔 화가 너무 많이 나고 여기서 내 자신을 잃어버릴 것 같은 순간이 올 때. 늘 나를 잡아주고 지지해줬던그들이 있어 자신이 있다는 걸 분명히 했던 것.

 

성실한 노력과 타인에 대한 배려는 어쩌면 배우에게는 가장 큰 덕목이 아닐까. 이것은 주원이라는 배우가 아직도 여전히 성장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걸 말해준다. 그는 수상소감에도 밝혔듯이 이제 삼십대에 막 접어들었다. 20대의 치열함이 자양분이 되어 30대에는 더 깊은 연기로 뽑아져 나오기를. 그래서 더 멋있어지고 초심 잃지 않고 사람 냄새 나는 배우가 되어 시청자들 앞에 오래도록 설 수 있기를.



올림픽에 대한 대중들의 달라진 인식 반영

 

올림픽 방송의 시청률이 예전 같지 않다. 물론 순수하게 경기 시청률만 계산하면 다르다. AGB닐슨의 자료에 의하면 남자 양궁 개인전에서 김법민이 참가한 8강전이 29.1%로 전체 올림픽 방송 시청률 1위를 차지했고 오진혁이 금메달을 딴 결승전이 23.3%로 2위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 순수 경기 시청률을 의미하는 것일 뿐, 프로그램의 전체 시청률을 얘기해주는 건 아니다.

 

'각시탈'(사진출처:KBS)

올림픽 방송의 지금까지의 시청률 추이를 보면 거의 10% 초반대에 머물러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개막식이 있었던 지난 7월28일 MBC의 <런던올림픽 2012>가 10.4%로 최고 올림픽 방송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같은 날 방송된 <닥터진>은 오히려 선전해 13.7%의 높은 시청률을 거뒀다. 이렇게 올림픽 시즌이지만 오히려 정규 방송 중에 두각을 나타낸 프로그램들이 있다.

 

29일 올림픽 방송 최고 시청률은 KBS의 <여기는 런던 2부(11.8%)>였지만 이날 <개그콘서트>는 20%, <해피선데이>는 14.6%의 시청률을 냈다. 올림픽 시즌치고는 꽤 괜찮은 성과로 볼 수 있다. 올림픽 방송이 비슷한 10%대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동안 30일과 31일 <골든타임>은 12%와 14.2%의 높은 시청률을 냈다. 8월1일 방영된 <각시탈>은 무려 18%의 시청률을 거뒀다.

 

물론 이 수치들은 올림픽 방송으로 인해 경쟁 프로그램들이 결방되면서 집중된 결과이기도 하다. <해피선데이>는 경쟁 프로그램인 <일요일이 좋다>가 없었기 때문에 선방할 수 있었던 것이고, <각시탈> 역시 <유령> 같은 경쟁작이 없었기에 높은 시청률이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시즌이 거의 모든 방송사의 프로그램 분위기를 올림픽으로 몰아가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이런 정규방송의 시청률은 의미가 있다고 보여진다.

 

올림픽 방송의 특성 상 관심이 가는 경기(예를 들어 금메달 결정전 같은)에 대한 집중도는 높지만 그렇다고 그 예선 경기까지 전부 챙겨보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올림픽 방송은 순간 시청률은 높을 수 있지만 지속적인 시청률은 높지 않을 수 있다. 방송3사가 서로 다른 경기들을 편성하게 되면 시청자들은 끊임없이 채널을 돌려가며 보게 된다. 시청률이 분산되는 이유다.

 

하지만 이런 이유 이외에도 올림픽 같은 국가 스포츠에 대한 우리의 달라진 정서도 한 몫을 차지하는 것 같다. 과거에 88올림픽이나 2002 월드컵 같은 국가 스포츠는 온 국민이 한 사람의 화살을 쳐다보고, 탁구공에 집중하고,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유도 기술을 바라보거나, 발끝에 닿는 축구공 하나에 시선을 모으는 일들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물론 이것은 지금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하지만 확실히 그 강도는 달라진 것 같다. 사람들은 여전히 경기 결과에 관심을 가지지만, 그렇다고 그 시간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려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적어도 본방을 못 챙기면 재방을 통해 확인하면 된다는 정서는 국가 스포츠에 대한 달라진 국민정서를 말해주는 것 같다. 올림픽으로 인해 결말을 나중에 봐야만 하는 <신사의 품격>이나 <유령> 같은 작품에 대한 대중들의 아쉬움은 에둘러 이런 정서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올림픽의 재미만큼 정규방송에 대한 갈증도 깊어지는 요즘이다.

<각시탈>, 탈 안쓴 자 누가 있으랴

 

<각시탈>은 74년에 나온 허영만 원작의 만화다. 당시 이 작품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78년도에는 <각시탈 철면객>이란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그리고 무려 약 40년이 흘렀다. 시대는 달라졌다. 70년대만 하더라도 민족주의 정서가 먹히던 시대였다. 항일을 다루는 콘텐츠들은 그 자체로 경쟁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2012년 현재는 다르다. <각시탈>은 이 달라진 시대를 어떻게 극복하고 있을까.

 

 

'각시탈'(사진출처:KBS)

이것은 사실 <각시탈>이라는 70년대 원작이 지금 현재 리메이크 되도 괜찮을 만큼 탄탄한 내적 스토리를 갖추고 있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각시탈>은 여타의 민족주의에 편승한 콘텐츠들과는 다른 면모를 갖고 있었다. '조선판 쾌걸 조로'라는 표현이 걸맞을 정도로 글로벌하게 먹히고 있는 '가면'이라는 소재를 우리 식으로 해석했던 점이 민족주의적인 성격과 함께 보편적인 이야기의 재미를 동시에 가져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각시탈>은 물론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드라마의 극적인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탈'이라는 소재다. 어떤 목적을 위해 얼굴을 가리고 행동한다는 이 장치는 드라마 속 캐릭터들을 이중적으로 만들어 놓는다. 이것은 바보 행세를 하면서 사실은 각시탈인 이강산(신현준)만의 얘기가 아니다. 일본의 앞잡이 행세를 하는 이강토 역시 보이지 않는 탈을 쓰고 있는 건 마찬가지다.

 

극악무도하게 같은 민족을 괴롭히지만 그것은 이강토가 쓴 탈이다. 바보가 된 형 옆에 누워 자신의 아팠던 과거를 토로하며 눈물을 쏟아내는 모습이 그의 진면목이다. 어린 시절 이강토와 안타깝게 헤어졌던 목단(진세연)은 이제 성장해 서커스 단원이라는 탈을 쓰고 항일운동에 뛰어든다. 그런 그녀를 알아채고도 이강토는 그녀 앞에서 아닌 척 탈을 쓴다. 한편 기무라(박기웅)는 이강토와 둘도 없는 친구 사이지만 그 역시 이 불행한 시절에 조선의 적으로 설 수밖에 없는 일본인이라는 탈을 숨기고 있다.

 

사실 일제시대라는 상황 속에서 탈을 쓰지 않은 이들은 없었을 것이다. 눈앞의 총칼 앞에 어찌 속내를 숨기지 않을 수 있을까. 그들은 탈을 쓰지 않았을 때는 가면의 삶을 살아가다가 비로소 탈을 쓰고는 진면목을 드러낸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삶인가. 탈을 써야 본래 속내를 드러내는 삶.

 

<각시탈>은 그런 면에서 이 이야기가 소재로 끌어온 탈을 그대로 닮은 드라마다. 겉으로 보면 민족주의적인 이야기가 전면에 드러나 있지만, 탈 이면에는 지극히 보편적인 사랑이나 우정, 형제애, 모성애 같은 것들이 숨겨져 있다. 바보인 줄 알았던 자신의 아들이 사실은 각시탈이라는 것을 알고는 그것을 숨기기 위해 죽음을 맞이하는 어머니 한씨(송옥숙)의 모성애나, 오랜 세월 그리워하고 사모해온 여인 목단에게 마음을 얘기하지 못하는 이강토의 사랑, 친구 사이지만 목단을 사이에 두고 조금씩 대립하게 되는 이강토와 기무라의 우정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이 흥미로운 드라마는 그 누구 하나 탈을 쓰지 않은 이가 없다. 각시탈은 그 모든 탈 쓴 이들을 대변하는 상징일 뿐이다. 그리고 탈이 하나씩 벗겨져나가는 지점에서 이 드라마의 극성이 생겨난다. 이강토는 과연 자신이 쓰고 있는 일제의 앞잡이라는 탈을 벗어던질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이 사실은 사랑하는 목단 앞에 제 속내를 드러낼 수 있을까. 기무라와 국적을 넘어선 우정을 지켜낼 수 있을까. <각시탈>이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런 보편적인 인간의 정서다.

 

사실 누구든 탈을 쓰지 않고 살아가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일제시대든 70년대든 아니면 지금이든 마찬가지다. <각시탈>은 바로 이 탈이라는 시대를 넘어서는 보편적인 소재에 접근함으로써 닳고 닳은 민족주의라는 이제는 지나간 시대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1박2일>의 배우들, KBS 드라마 견인

 

<각시탈>의 주원은 <적도의 남자>로 확고한 입지를 다진 엄태웅의 뒤를 이을 수 있을까. 엄태웅은 <1박2일>에 출연하면서 새롭게 주목되었다. 어딘지 무거웠던 이미지를 벗고 순둥이 이미지에 서글서글한 면모가 부가되었고, 최근에는 이른바 '나노 개그'로 주목받고 있는 중이다.

 

 

'각시탈'(사진출처:KBS)

그런 그가 <적도의 남자>에서는 또 완전히 다른 카리스마 연기를 보여주면서 연기자로서의 입지도 확고히 다질 수 있었다. 예능을 통해 발견하게 된 본래의 선한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적도의 남자>에서의 강한 인상은 본래 이미지가 아니라 고스란히 그의 연기력으로 대중들에게 각인될 수 있었다. 시각장애라는 연기는 그 연기력을 더 극대화해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1박2일>의 막내로 자리하고 있는 주원의 차례. 그는 과연 엄태웅이 보여준 예능과 드라마 동시 출연의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각시탈> 첫 회에서의 주원의 모습은 그 가능성을 발견하게 한다. <1박2일>에서 착하고 뭐든 열심히 솔선수범하는 막내의 이미지를 보여주었던 주원은 <각시탈>에서는 이와는 상반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아직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원작으로 유추해보면 주원이 연기하는 이강토 역할은 극에서 극으로 바뀌는 반전 인물이다. 독립운동으로 가족을 돌보지 못했던 아버지, 오로지 가족의 희망으로 믿고 뒷바라지 해왔지만 모진 고문 끝에 바보가 되어 돌아온 형 이강산(신현준). 그들 때문에 절망적으로 친일에 앞장서게 된 이강토는 그러나 각시탈이 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스스로 각시탈이 되는 인물이다.

 

일본 순사가 되어 항일운동을 하는 애국지사들을 가차 없이 잡아들이면서 얻은 명성으로 밤이면 경성 최고의 사교계 황태자로 행세하는 이강토라는 캐릭터는 그 안에 또한 깊은 아픔과 정(형제애)을 숨기고 있는 인물. <적도의 남자>에서 엄태웅이 시각장애라는 연기를 통해 연기자로서의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면, <각시탈>에서 주원은 이 얄미울 정도로 친일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속으로는 아픔을 숨기고 있는 이중적 캐릭터로 강한 인상을 남길 가능성이 크다.

 

이 주원이 보여주는 이중적 캐릭터는 <각시탈>이 상징하는 탈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송골매의 노래가사에도 나오듯, 탈이란 '얼굴을 가리고 마음을 숨기는' 오브제가 아닌가. 한바탕 덩실덩실 춤을 춘다는 그 의미는 아마도 일본의 압제 속에서 억눌렸던 분노를 행동(춤)으로 풀어낸다는 뜻으로 읽힐 수도 있을 게다.

 

예능과 드라마를 동시에 소화해낸다는 것은 과거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때는 드라마 캐릭터와 실제 연기자를 혼동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대중들은 캐릭터와 연기자를 혼동하지 않는다. 그만큼 연기에 대한 인식이 과거와는 달라졌다. 따라서 예능에서 보여주던 실제 모습과 드라마에서의 상반된 연기는 오히려 연기자에게는 상호 시너지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적도의 남자'를 보며 우리가 '이 엄태웅이 저 순둥이가 맞아' 하고 놀라워했던 것처럼.

 

<1박2일>에 출연하고 있는 배우들이 나란히 KBS 드라마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이것은 어찌 보면 한 방송사에서의 예능과 드라마의 새로운 시너지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예능에서의 활약이 빛날수록, 드라마에서의 캐릭터 변신도 그만큼 주목되는 상황이다. 엄태웅과 주원의 드라마와 예능에서의 활약은 이 새로운 변화의 지점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일본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한류의 딜레마

 

한류를 얘기하면서 이제는 일본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것 같다. 그만큼 한류의 주 소비국으로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율이 압도적이라는 것. 실제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발표 자료에 의하면 2010년 K팝 수출액의 99%가 아시아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현재 한류의 소비는 결국 아시아에 편중되어 있는데, 그것도 일본 비중이 너무 크다. 일본이 이 중 전체의 81%를 차지한다고 한다.

 

 

'각시탈'(사진출처:KBS)

이렇게 되면 일본 소비자들이 등을 돌리는 순간, 한류는 무너질 수 있는 위험성도 있다. 또 이런 과도한 일본 편중은 한류라는 문화 콘텐츠를 기형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일본인의 입맛에 맞는 한류 콘텐츠가 양산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일본인들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콘텐츠 생산이 차질을 빚는 기현상도 나올 수 있다.

 

최근 벌어진 '각시탈' 캐스팅 논란은 이 징후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각시탈'의 제작발표회에서 윤성식 PD는 "한류스타들이 출연을 꺼려 캐스팅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얘기를 했다. 그 이유는 이 작품이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허영만 화백의 만화 원작인 '각시탈'은 어찌 보면 한국판 조로 같은 작품인데 반일 감정이 다분히 들어가 있다. 그러다보니 몇몇 한류스타들은 일본에서의 자신의 인기가 떨어질까 캐스팅을 고사했다는 얘기다.

 

또 일본의 소비력이 막강하다 보니 그네들의 입맛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는 상황도 나오고 있다. '겨울연가'로 한참 드라마 한류에 불이 붙었을 때, 몇몇 한류 스타들을 캐스팅해서 만들어진 드라마들 역시 따지고 보면 이런 일본의 입맛을 염두에 둔 작품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결국 이렇게 일본의 입맛에 맞춰 그들이 원하는 배우들을 집어넣는 조건으로 투자를 받고 제작된 드라마들은 대부분 실패했다.

 

물론 요즘은 이런 식으로 제작되는 드라마는 거의 없다. 다만 일본의 소비력이 지대하다 보니 드라마 제작에 있어서 이를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은 분명하다. 국내에서의 시청률 5%에 머물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방영 전에 이미 90억 원대의 선판매가 이뤄진 '사랑비'는 현재의 한류가 가진 딜레마를 잘 말해준다. 한류 콘텐츠에 대한 국내의 정서와 일본의 정서가 그만큼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선 판매로 90억 원이라면 어쨌든 수익을 내려는 제작자 입장에서는 무시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이는 회당 무려 4억5천만 원에 이르는 수치로 국내 최고 기록이다. 여기에는 다분히 장근석 파워가 들어가 있다. 일본에 불고 있는 근짱 열풍이 한 몫을 했다는 것. 물론 한류 1세대를 이끈 '겨울연가'의 윤석호 PD도, 또 소녀시대의 윤아가 들어 있다는 것도 큰 이슈가 되었다.

 

물론 '사랑비' 제작진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 작품이 애초부터 그런 한류를 겨냥하고 만든 작품은 아니라고 한다. 그저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사랑 이야기를 하나쯤 하고 싶었다는 것. 실제로 장근석이 이 드라마를 통해서 얻으려 했던 것은 해외의 수익이라기보다는 국내의 인기였던 걸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상황은 거꾸로 되어 버렸다. 시청률은 5%에 머물러 버린 반면, 해외에서의 판매는 호조를 띄고 있다. 의도는 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한류를 겨냥한 드라마가 되어 버렸다.

 

사실 국내 드라마 현실을 보면 일본의 소비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일본의 입맛에 맞추는 건 문제가 있다. 한류의 정체성은 결국 우리나라에 있어야 한다. 만일 이것이 사라진다면 결국 한류의 존재기반도 사라지는 것이다. 일본의 입맛에 맞추다 보면 자칫 일본에서 생산하는 콘텐츠를 마치 우리나라가 하청하는 입장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 이것은 한류가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일류가 된다.

 

또한 이렇게 일본 입맛에 지나치게 맞춘 콘텐츠가 반드시 성공할 거라는 장담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한류란 그들과는 다른 우리만의 독특한 정서가 있어야 진짜 소비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일본인의 입맛에 맞게 저들이 만든 기무치는 절대로 김치가 될 수는 없다. 결국 그들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 것을 소개하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지속가능한 한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역방향으로 지나치게 민족주의적인 접근을 하는 것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지구촌화되고 글로벌화 되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지나치게 민족주의에 얽매이다가는 자칫 배타주의나 국수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 사실 구한말 일제 강점기는 콘텐츠적으로 좋은 소재가 아닐 수 없다. 이 시대를 다룬 콘텐츠들이 지나치게 민족주의적인 시각만을 부여했기 때문에 좀 왜곡된 부분들도 더러 있다.

 

이제는 이런 민족적인 사안을 다루면서도 그 안에 좀 더 보편적인 이야기들을 끄집어낼 수 있어야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각시탈' 같은 옛 만화의 현재적 시점에서의 드라마화에서 성패의 갈림길이 될 수도 있다. 좀 더 현재의 글로벌한 시각에 맞는 콘텐츠적인 변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한류는 결국 특수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갖춰야 성공할 수 있는 콘텐츠다. 즉 특수성이란 우리만이 가진 특수한 정서들, 예를 들면 정의 문화라든가, 다이내믹한 성향 같은 것들이 들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 갖고는 세계의 소비자들을 상대할 수 없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또한 갖춰야 한다는 것. 즉 해외의 소비자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우리 것들 중에 보편성을 가진 것들을 끄집어내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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