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주목받는 그들의 까칠 훈훈 리더십

'하얀거탑'에서 장준혁 역할의 김명민은 성공을 위해 뭐든 할 수 있다며 욕망을 불태우는 인물이었고, 최도영 역할의 이선균은 착하기는 하지만 어딘지 칼바람 나는 세상에서 버텨내기에는 연약한 인물이었다. 그 후 김명민은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로 오합지졸 오케스트라를 이끌어내는 까칠하지만 그 속에 훈훈함을 숨긴 인물로 돌아왔다. 이선균은 '커피 프린스 1호점'과 '트리플'에서 특유의 훈훈함을 강화하더니, '파스타'에서는 까칠함까지 더한 최현욱 셰프로 돌아왔다.

강마에와 최현욱은 여러 모로 비슷한 점이 많다. 강마에가 마이너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인물들에게 "똥덩어리"라고 말하면서도 뒤에서는 그들을 지원하고 챙겨주는 것처럼, 최현욱도 주방에만 들어오면 요리사들을 잡아먹을 듯이 요리(?)하면서도 그들을 스스로 생존하게 해준다. 주방에서의 최현욱이 손님의 주문 폭풍 앞에서 요리사들에게 일사분란하게 주문을 하는 장면은 마치 강마에가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이끌어 하나의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장면을 연상시키곤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두 캐릭터가 비슷한 것은 그 리더십이다. 그들은 좀체 자신들의 팀원들을 친절하게 대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욕을 해대고 모욕을 주면서 그들을 강하게 담금질한다. '파스타'의 최현욱은 부주방장이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사실을 알면서도 그를 회유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더 강하게 밀어붙인다. 그는 "부주방장에서 쉐프가 되는 그 시기가 가장 어려운 시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레스토랑 사장과 쉐프라는 자리는 건설적인 긴장관계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도 잘 안다. 그래서 그를 직접 도와주기 보다는 그 스스로 자신을 넘어서라고 말한다. 결국 부주방장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그 줄다리기를 가르치기 위함이다.

주방 보조인 막내가 그만두겠다고 하자, 겉으로는 그러라고 하지만 그는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주방 보조란 자리가 하루에도 몇 번씩 사표를 쓰는 자리라는 걸 그도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새롭게 셰프로 온 오세영(이하늬)이 개발해낸 육수가 훨씬 괜찮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조건 반대만 해온 이태리파 요리사들을 그는 옥상으로 데려다가 벌을 준다. 자신이 스카우트한 요리사들이지만, 요리 앞에서는 정직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이들의 까칠 훈훈한 리더십은 멜로를 통해서도 나타나는데 그 멜로의 양상 또한 두 드라마가 비슷하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는 단원으로서의 두루미(이지아)를 혹독하게 이끌지만, 멜로의 대상으로서 그녀를 알게 모르게 돕는다. '파스타'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주방에서는 쉐프와 요리사의 관계로 있다가 주방 밖으로 나오면 연인관계로 돌아간다. 최현욱은 일을 할 때는 아무리 연인이라도 모질게 대하고, 욕을 먹으면서도 그것을 서유경(공효진)은 웃으며 받아들인다. 일과 사랑에 있어서 이들은 그만큼 쿨하다.

재미있는 것은 최근 들어 까칠 훈훈한 리더십이 드라마 속에 자리하면서 어떤 공감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주는 캐릭터는 '외과의사 봉달희'의 안중근(이범수)이 이른바 버럭 범수로 주목받을 때부터 지금까지 진화를 거듭해오고 있다. 무엇이 이처럼 까칠하면서도 훈훈한 캐릭터의 리더십에 주목하게 만드는 걸까. 그것은 아마도 그만큼 사회생활이 혹독해졌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일 것이다. '외과의사 봉달희'의 병원이나, '베토벤 바이러스'의 공연장, 그리고 '파스타'의 라스페라라는 공간은 모두 현실 사회의 축소판으로서 그려진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어려워진 그 현실에서 팀원들이 살아나가게 할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의 아픔을 위로해주는 소극적인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그 팀원들이 더욱 강하게 만들어 자신이 없어도 스스로 버텨낼 수 있는 자생력을 키우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일과 사랑을 동시에 그려내는 우리식의 전문직 장르 드라마들의 새로운 선택이기도 하다. 일에 있어서는 까칠함을 그리고 사랑에 있어서는 훈훈함을 전하는 것이 드라마가 현실의 빈자리를 채워 넣는 방법인 이상, 그것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캐릭터로서 까칠 훈훈한 인물이 창조되고 있는 것.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 '파스타'의 최셰프는 어쩌면 지금 우리가 혹독해진 현실이 새롭게 요구하는 리더십의 한 단면일 수 있다.

강호동이 강마에가 된 사연

‘강심장’이 처음 기획 될 때만 해도 관계자들은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하고 의문을 표했다고 한다. 게스트만 스무 명이라면 섭외하는 것도 문제겠지만 그들을 한 자리에 앉혀 놓고 토크쇼를 진행한다는 게 만만찮은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현실로도 드러났다. 초기 ‘강심장’은 이른바 ‘병풍 게스트’로 논란이 일어났다. 아무리 바쁘게 카메라가 움직이고 이야기를 이쪽저쪽으로 토스한다고 해도 그 많은 인원을 모두 비춰낸다는 건 실로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츰 ‘강심장’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병렬적으로 저마다의 주제를 하나씩 피켓에 적어놓고 순서에 따라 얘기하는 방식으로는 ‘병풍 게스트’는 피할 수 없는 한계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기에 ‘강심장’은 ‘스타킹’식의 ‘조연 시스템’을 도입한다. 즉 한 명이 주연(?)으로서 자기의 이야기를 할 때, 주변에서 몇몇이 조연으로서 그것을 받쳐주는 형식이다.

이것은 ‘스타킹’에서는 일반인이 출연할 때 그들을 중심에 세워두고 연예인들이 조연역할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스타킹’에서는 그 조연역할이 주로 몸개그에 가까운 것인 반면, ‘강심장’은 토크를 통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 주연을 받쳐주는 ‘조연시스템’을 운용하는 MC, 강호동이다. ‘스타킹’에서 그는 일반인을 주연으로 세우기 위해 무대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다해 보여준다. 무릎을 꿇거나 바닥에 드러눕는 것은 보통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러다 보니 강호동의 솔선수범(?)을 보는 게스트로 출연한 다른 연예인들도 적극적으로 리액션에 가담할 수밖에 없다. ‘스타킹’은 사실상 ‘리액션의 예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거기에는 이러한 일반인을 주연으로 세워두고 강호동의 진두지휘에 따라 조연역할을 자처하는 연예인들이 만들어내는 시스템이 자리하고 있다. 한편 ‘강심장’은 기본적으로 토크쇼이기 때문에 ‘스타킹’처럼 몸으로 보여주는 리액션보다 좀 더 복잡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강호동은 마에스트로 같은 강력한 토크의 지휘자 역할을 자처한다. ‘강심장’에는 다양한 톤의 목소리(?)가 존재한다. 즉 김영철 같은 개인기로 똘똘 뭉쳐 있는 목소리가 있는 반면, 김효진처럼 이승기를 추종하는 뒷배(?)를 갖고 강호동에게 호통치는 목소리도 있다. 정주리처럼 부담스러울 정도로 무조건 들이대는 목소리도 있고, 데니안처럼 옛 아이돌로서 지금의 아이돌과의 비교점을 세워주는 목소리도 있다. 물론 강호동 옆에 자리한 이승기는 마치 오케스트라 협연에서 지휘자 옆에 서는 메인 악기 연주자 같은 듣기만 해도 기분좋은 목소리를 낸다.

이들은 반고정된 출연자들인데, 새로 들어온 게스트들의 목소리를 하나의 합주로 만들어내는 역할을 해낸다. 강호동은 게스트의 이야기가 조금 재미없다 싶으면 확실하게 웃음을 보장하는 김영철 같은 개그맨에게 바톤을 넘기고 잠깐 한숨을 돌리고 나서 다시 게스트에게로 돌아온다. 그러면 이야기가 좀 더 매끄러워지기 때문이다. 게스트의 이야기가 좀 밋밋하다 싶으면 ‘야심만만’ 시절에 했던 것처럼 슬쩍 슬쩍 넘겨짚기로 게스트의 숨겨진 비밀을 캐내기도 하는 데, 그것이 좀 부담스러운 아이템이라면 자신이 하지 않고 좀 더 편안한 질문자(?)를 내세운다. 과거에 붐은 바로 이 역할을 하는 목소리였다. 이렇게 하면 수위가 좀 높은 질문도 질문자의 캐릭터로 인해 부드럽게 넘어가게 된다.

자신이 좀 오버했다 싶으면 김효진의 일침을 허용하고, 때로는 바른생활 청년 같은 이승기에게 자신을 내어줘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이승기는 박상혁 PD의 말대로 “미소가 좋은 청년”이다. 그 기분 좋은 리액션 한 방이면 조금 썰렁해진 분위기도 금세 일소된다. 물론 이러한 다양한 소리들의 조합은 어느 정도의 가이드 라인으로서의 대본이 역할을 하게 마련이지만, 순간순간 치고 빠지는 토크의 조화는 MC인 강호동이 만들어간다. 박상혁 PD는 “강호동의 진행을 보면서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며 게스트의 토크 중간 중간에 카메라 밖에서 손짓 발짓으로 출연자들의 리액션을 요구하는 강호동의 진두지휘를 보는 건 흔한 일이라고 말한다.

버라이어티 쇼가 집단 체제화 되면서 그 많은 인원들의 행동이나 말을 조화롭게 만들어내는 역할은 이제 MC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 면에서 ‘스타킹’에서는 일반인을 상대로, ‘강심장’에서는 연예인을 상대로 거기에 맞는 ‘리액션의 예능’을 선보이는 강호동이 이 시대의 대표적인 MC로 부상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제 그는 그 범주를 넓혀, 예능이라는 오케스트라를 진두지휘하는 강마에가 되어가고 있다. 그가 메인MC로 자리한 버라이어티 쇼가 하나의 오케스트라 같은 느낌을 주는 건 그 때문이다.

차승원이 이토록 눈에 띈 적이 있을까. '시티홀'의 조국이라는 캐릭터를 만난 차승원은 여성들의 마음을 뒤흔들 만큼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최근 드라마의 한 경향으로까지 보이는 능력있고 잘생기고 부자인 판타지남들의 출연은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이민호)에서부터 시작해 '내조의 여왕'의 태봉씨(윤상현)로 이어졌다. '시티홀'의 조국은 겉으로만 보면 이 계보를 잇는 판타지남처럼 보인다. 하지만 구준표에서 태봉씨로 또 조국으로 이어지는 진화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조국이 가진 판타지가 이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준표가 주는 판타지는 말 그대로 물질적인 판타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도무지 가늠이 안되는 부가 그 판타지의 실체가 된다. 하지만 태봉씨로 넘어오면서 그 판타지는 부와 함께 인간미를 포함시킨다. 태봉씨는 한 여성을 숨어서 사랑하는 한 남자이면서 동시에 줄이 아닌 능력에 따라 사원들을 등용할 줄 아는 판타지 속의 사장님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약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둘이(태봉씨가 30대 구준표라 불렸듯) 어떤 한 부류의 캐릭터라 여겨지는 것은 드라마가 이들에게 부여한 신적인 힘 때문이다. 이들은 드라마 속에서 거의 신처럼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

하지만 조국은 다르다. 그는 능력있고, 잘 생기고, 돈도 있지만 뭐든 다 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존재는 아니다. 항상 적들과 대치하는 상황 속에 서 있고, 심지어 자기 여자를 위해 뭔가를 해주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처해 있다. 현장에서는 특유의 능력을 발휘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한 여자 앞에서는 코믹스러울 정도로 엉뚱한 면모를 보여준다. 겉으로 보기엔 까칠해보이지만 속은 한없이 다정다감하다. 이 즈음에서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김명민)다.

이 능력있는 남성들은 모두 처음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 자리에 서게 된다. 강마에는 시향의 지휘자로 서는 것이고 조국은 인주시의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서는 것. 하지만 이 둘은 모두 거기서 서민들의 모습을 보게 되고 그 중의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내기 위해 이제는 자신의 힘을 사용하게 된다. 강마에처럼 조국도 이러한 낮은 자들의 지킴이로서 갖는 판타지적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이 두 드라마는 현실과의 맥락을 갖게 된다. 판타지가 현실과의 맥락 없이 등장할 때 그저 마취적이고 도취적인 자극으로 함몰될 수 있는 반면, 현실의 반작용으로서 등장하는 판타지는 그 자체로 현실적인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강마에는 꿈꾸지 않는 현실을 꿈꾸게 만드는 존재이며, 조국은 이미 실종되고 포기된 시민들을 위한 정치를 다시금 꿈꾸게 만드는 존재이다.

따라서 이들 드라마에 등장하는 멜로 역시 그저 멜로에 그치지 않는다. 거기에서는 사랑 그 이면에 어떤 희망이나 꿈같은 것을 등장시킨다. 강마에와 조국이 내포한 판타지가 단지 여성들의 판타지가 아닌 우리 모두의 판타지가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강마에를 닮은 조국이라는 판타지가 서민들을 위한 정치가 부재한 현실에 작은 꿈을 꾸게 만드는 것은 남녀의 차원을 넘어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을 잊고픈 판타지 vs 현실 속에서도 꿈꾸게 하는 판타지

지금 캐릭터로 가장 화제를 누리고 있는 것은 단연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이민호)다. 이 캐릭터를 통해 이민호는 ‘벼락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여성들은 자기 여자친구를 위해 백화점을 통째로 빌려 옷을 사주고, 전용비행기를 태워 뉴칼레도니아까지 날아가 주말을 보내며, 그러면서도 여자친구의 서민적 삶(?)까지 끌어 안아주는 이 만화 속에서 막 나온 듯한 꽃미남 캐릭터에 빠져들고 있다. 

구준표에 대한 반응, 왜 여성과 남성이 다를까
이상한 것은 이 구준표라는 캐릭터에 대한 남녀 간의 반응이 상반된다는 점이다. 여성들이 열광하는 반면, 남성들은 그다지 이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여기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여성들을 꿈꾸게 만드는 그 만화 속의 캐릭터와, 자신을 비교한다는 것이 지금 현실 앞에 잔뜩 주눅 들어가는 남성들에게는 여러 모로 억울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구준표는 집이나 학교에서나 일상 생활 자체가 귀족들의 그것이다. 무도회를 즐기고 휴양지의 별장으로 여행을 떠나고 하녀들이 시중드는 식사를 하는 그 모습은 만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중세 귀족의 모습이다. 무엇하나 남부러울 것 없는 귀족생활을 즐기는 구준표는 그다지 착한 캐릭터도 아니다. 돈이면 뭐든 다 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고 서민들의 힘겨운 일상을 찌질함으로 바라보기까지 하는 전형적인 무개념 캐릭터다.

중요한 것은 이 전형적인 귀족주의에 빠진 나쁜 남자가 평범한 서민 금잔디(구혜선)를 사랑하게 되고 그로 인해 자신도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것은 이 나쁜 캐릭터를 오히려 매력적으로 만든다. 능력 있는(뭐든 다해줄 수 있는) 나쁜 남자(다른 사람에겐 나쁘지만 나에게만은 잘해주는)가 한 사람만을(시청자 입장에서는 나만을!) 사랑하는 모습은 늘 드라마 속 버럭 캐릭터의 형태로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곤 했다. ‘외과의사 봉달희’의 버럭범수,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처럼 구준표도 그 버럭 캐릭터의 연장선상에 있는 캐릭터다.

하지만 구준표가 다른 버럭 캐릭터들과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그의 능력이 어떤 노력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니라 태생적으로 주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드라마에서는 바로 이 주어진 능력이 그의 유년시절을 불행하게 했다는 식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설정일 뿐이다. 만일 그가 똑같은 서민에서 시작해 귀족의 반열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면 아마도 남성들 또한 이 캐릭터에 열광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태생적으로 주어진 능력은 일반 서민으로서는 도무지 불가능한 도달지점이다. 구준표라는 만화적 캐릭터에 여성들이 열광하는 그 모습을 보는 보통의 남성들이 씁쓸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현실을 잊게 하는 판타지, 현실에서도 꿈꾸게 하는 판타지
하지만 똑같이 까탈스럽고 늘 귀족주의를 입에 달고 다니는 능력 있는 남성이었던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김명민)는 구준표와는 다릅니다. 강마에라는 캐릭터는 극심한 가난을 겪고 그 속에서 음악의 꿈을 이뤄온 입지전적인 인물이기에, 남성들은 그를 통해 꿈을 꿀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그것은 비단 남성들뿐이 아니다. 강마에가 ‘베바’를 통해 우리에게 던져준 것은 서민들이라도, 따라서 꿈을 이루기에는 버거운 현실이라도 꿈이라도 꿔보라는 그 희망이었다. 똑같이 판타지를 그리고 있지만 ‘베바’의 판타지는 ‘꽃남’의 판타지와는 이렇게 다르다. ‘베바’의 판타지는 드라마 밖으로 나와 현실로 돌아온 사람들을 여전히 꿈꾸게 하는 반면, ‘꽃남’의 판타지는 현실 자체를 잊고싶게 만든다.

물론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따라서 그 잠깐 동안의 일탈적인 판타지가 뭐가 나쁘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드라마를 보는 기본적인 욕망 속에 잠시 현실을 잊고픈 욕구가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똑같은 판타지 속에서라도 구준표보다는 강마에를 더 꿈꾸게 되는 건 왜일까. 그것은 아마도 꿈 속에서 꿈꾸는 것보다는 현실 속에서도 꿈을 꾸고 싶은 욕구가 더 크기 때문일 것이다.

'베바' 강마에, 문화현실과 맞서다

정치인이 바뀌면 문화도 다른 길을 걷게 된다는 건 우리나라 문화계의 비극이다. 문화적 소양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어느 한 구획을 책임지게 될 정치인에게는 실로 중요한 문제다.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강마에(김명민)는 문화적 소양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새로 취임한 시장을 불러 자신이 들려주는 음악의 느낌을 다섯 가지 말하라고 한다. 시장은 아름답다, 좋다는 식으로 그것을 단순히 표현한다. 강마에는 거기에 대해 수많은 표현들이 가능한 그 음악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건 본인의 자유지만, 그걸 모든 시민들에게 강요하지는 말라고 말한다. 문화에 대해 모를 수는 있지만 그것을 자기 식으로 마음대로 재단하지는 말라는 말이다.

그 새 시장은 자신의 취임식을 빛나게 할 목적으로 시향을 불러 자신의 애창곡인 ‘마이 웨이’를 연주하라고 했다. 이것은 아주 오래 전 군부독재 시절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자기 취향을 위해 문화를 굴종시키려는 것. 거기에 대해 강마에가 한 것은 존 케이지의 ‘4분33초’다. 이 전위음악은 4분33초 동안 침묵함으로써 그 즉흥적인 반응으로 들려지는 소리들을 음악으로 전화시킨 곡이다. 즉 이 4분33초 간의 침묵 속에서의 자신의 반응은 자신 스스로 연주한 음악이 되는 셈. 새 시장은 침묵으로 꺾어지는 자신의 욕망에 화를 냄으로써 자신의 음악, 즉 음악적 소양의 조야함을 드러낸다. 여기서 강마에의 선택이 보여주는 것은 문화 그 자체가 어떤 잘못된 정치적 선택에 대한 저항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새 시장이 시향의 존폐를 결정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에서 한 정치인은 이렇게 말한다. “먹고살기가 힘든데 그깟 시향이 뭔 소용입니까 그 돈으로 길이나 하나 더 내세요.” 경제가 어려운데 문화가 다 무슨 소용이냐는 말이다. 그러자 반박이 날아든다. “아무리 어려워도 밥만 먹고삽니까? 향기가 있어야죠.” 그 논박이 오고가는 자리에서 강마에는 귀에 헤드셋을 끼고 클래식을 듣는다. 이 말 저 말 다 듣기 싫다는 무언의 반항인 셈이다. 이 돈을 벌어주는 것도 아니고, 길을 내주는 것도 아닌 음악의 무모성에 대한 시퀀스는 이미 희망을 잃어버린 수재민들에게 아무 소용이 없을 것만 같은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이 진짜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에피소드에서 이미 나왔던 대목이다. 클래식으로 대변되는 문화는 불황에는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 고상한 취미처럼 여겨져 왔지만, 실상은 그것이 오히려 힘겨움에 빠진 서민들을 위무하고 희망을 주는 존재라는 걸 말해준다.

강마에는 이 가녀리고 우리의 현실과 유리되어 보이는 문화(클래식으로 대변되는)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 하고 계속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러니 석란시향의 지휘자를 그저 5급 공무원으로 생각하는 새 시장과 맞설 수밖에. 이러한 인식은 강마에가 이 오합지졸 오케스트라를 끝까지 마음 한 구석에 세워두고 보이지 않게 도움을 주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적어도 이 오합지졸 오케스트라들은 이 어려운 경기와 현실 속에서도 희망과 꿈을 잃지 않는 존재이며, 그래서 실제 현실과는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오케스트라 연주를 위해 밤잠도 설쳐가며 연습을 하는 이들이다.

이들의 모습은 경제를 내세워 문화나 생태 같은 것은 아무 소용도 없다는 식의 경제 강박증을 가진 정치인들보다 훨씬 건전하고 건설적이다. 이들은 백도 없고 학벌도 별로 없는 보통 사람들이다. 특히 클래식이라는 세계에서 보면 애송이들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이 애송이들은 클래식 즉, 문화의 힘이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 꿈은 우리네 서민들의 꿈과 맞닿아 있다. 전문가 입네 하면서 꿈은 이미 버린 지 오래인 그들과는 대립되는. 강마에가 그들을 보며 안타깝게 생각하고 또 지켜주고 싶어하는 것은 바로 그 꿈이다. 그 꿈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 강마에는 저 스스로도 그러했듯 때로는 냉혹한 현실이 되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굳건한 버팀목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그는 재능도 있고 열정도 넘치며 근성도 있는 강건우(장근석)를 현실 앞에 몰아세우면서도 “독해져라”하고 조언을 해준다. 또 클래식계에 아무런 프로필도 없는 강건우가 더 이상 연주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려 “죄송해요. 제가 너무 못나서”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그를 껴안아주며 “아니야. 넌 훌륭해. 대단해.”하고 말해주기도 한다. 그런데 그 강건우에게 하는 강마에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울림은 고스란히 어려운 시기를 마치 단원들이나 강건우처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전달된다. 강마에가 껴안은 건 강건우뿐만이 아니었던 셈이다.


억지스런 멜로와 대결구도가 ‘베토벤 바이러스’를 망친다

‘베토벤 바이러스’가 주목받게 된 것은 강마에(김명민)의 출연과 함께였다. 그가 수면제를 먹고 쓰러진 애완견 베토벤을 향해 “토벤아!”하고 외치는 순간, 드라마의 호감도는 급상승했고, 그가 늦깎이 아줌마 챌리스트 정희연(송옥숙)을 향해 거침없이 “똥.덩.어.리.”라고 얘기하는 그 순간 우리는 그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베토벤 바이러스’는 사실상 강마에, 아니 김명민 바이러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긴장감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정확히 강마에와 두루미(이지아)와의 멜로 라인이 구축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사실 이 삼각관계, 즉 강마에-두루미-강건우(장근석)의 멜로 구도는 애초부터 그 무리함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많았다. 두루미에게 어떤 식으로든(그것이 겉으로는 독설이라도) 애정표현을 하기 시작하는 강마에는 그 캐릭터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버럭 대며 사랑하는 캐릭터는 이제 좀 식상해진 경향이 있다.

게다가 멜로는 그저 애정관계만을 드라마에 짐 지우지 않는다. 거기에는 대결구도가 예고되어 있다. 강마에와 강건우가 두루미를 사이에 두고 벌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애정대결은 드라마 속 사건의 대결로 연결된다. 강마에와 강건우는 곡 해석을 가지고 부딪치지만 그 기저에는 두루미의 그림자가 꿈틀거린다. 하지만 이 강마에와 강건우의 대결구도는 초반부에 보여주었던 이 드라마의 대결구도보다 참신하지 못하다.

초반의 대결구도는 강마에와 오합지졸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대결이 있었고, 또 그 위에 결국 강마에가 맡게 되는 오케스트라와 세상과의 대결구도가 있었다. 이 구도 속에서 강마에는 살아 움직일 수 있었다. 즉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압제자이기도 하지만 세상과의 대결 속에서 단원들의 보호자가 되기도 하는 것. 강마에는 그 스스로 현실이 되어 단원들에게 자신을 넘어보라고 도발하는 존재로 서게 된다.

하지만 강마에와 오케스트라를 대변하는 강건우의 대결은 너무 멜로 중심과, 천재와 비천재의 대결로 흐르고 있다. 강건우가 천재이고 그 천재를 질투하는 강마에의 이야기는 모차르트와 살리에르를 다루던 ‘아마데우스’에서는 재미있었을지 모르지만 이 드라마가 하려던 이야기와는 너무 벗어나 있다. 그것은 이 드라마를 열광케 만들었던 서민들의 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에게 성큼 다가왔던 클래식이라는 소재는 이 천재와 비천재의 대결구도로 가면 다시 저 멀리 달아나 버린다.

또한 아무리 천재라고 하더라도 이제 몇 달 클래식을 접하게된 강건우를 강마에가 스스로 질투한다고 밝히는 것은 현실성 자체가 떨어진다. 강건우는 사실상 강마에라는 망치질이 있어서 그 천재성이 발휘되는 존재로 기능할 때, 좀더 현실적인 면모를 띄게 된다. 특히 많은 오케스트라 단원들 속에 천재이면서도 평범하게 존재하고 있어야 그 캐릭터는 다른 캐릭터들을 가리지 않고 드라마의 주제를 끌어가면서도 재미를 주게 된다.

강마에와 강건우의 대결구도 속에서 만들어진 타 캐릭터들의 극단적인 설정 또한 문제가 있다. 두루미는 청력을 잃게 된다는 극단적 설정이 없었던 시기에는 능동적인 캐릭터였지만 지금은 그 무거움에 갇혀 캐릭터가 잘 드러나지 않게 되었다. 청력을 상실한 베토벤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하더라도 이 이야기를 너무 무겁게 만들어버리는 두루미 설정은 드라마의 발랄함을 상쇄시킨다. 이것은 또한 치매를 앓고 있는 김갑용(이순재)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이들 캐릭터들은 질병이라는 지나친 설정에 갇혀 능동성을 잃어버렸다.

‘베토벤 바이러스’가 살려면 먼저 강마에를 살려내야 한다. 그러려면 멜로 구도를 끝내야 하고, 강마에와 강건우의 1대1 대결구도를 버리고 강마에와 단원들의 대결구도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리고 그 애증관계 위에서 사회적인 편견과 싸우는 모습들이 그려져야 한다. 이것이 ‘베토벤 바이러스’가 가진 중독적인 바이러스를 힘겹게 매일 매일을 살아가는 대중들과 나눌 수 있는 길이다.

리더십 부재의 시대, 강마에 신드롬이 말해주는 것

‘베토벤 바이러스’가 심상치 않다. 클래식이라는 마니아적 소재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시청률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이 드라마는 어쩌면 ‘시청률을 잡은 유일한 마니아 드라마’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 이 바이러스를 우리 사회 깊숙이 퍼뜨리고 있는 걸까. 그 중심에는 절대 카리스마, 신드롬 조짐까지 보이고 있는 강마에(김명민)가 있다. 그 캐릭터가 시청자들의 열광을 얻어내는 바로 그 지점을 보다보면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속살이 살짝 드러나는 걸 목도할 수 있다.

현실성 있는 강력한 리더십의 부재
강마에가 오케스트라를 하기 위해 모여든 단원들에게 제일 먼저 하는 작업은 그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게 하는 것이다. “실력도 없는데 노력도 안 하면서 대접을 받으려” 하는 그들에게 그는 거침없이 “똥 덩어리”라는 카운터 펀치를 날렸다. 그 충격은 단원들뿐만 아니라 드라마를 보던 이 땅의 잠재적 똥 덩어리들(?)에게도 고스란히 미쳤다. TV를 켜면 어디서나 흘러나오는 이 “생각대로 하면 되는” 긍정의 사회에 그는 강한 부정을 했다. TV가 전파하던 거짓의 희망은 그의 말 한 마디로 깨지고 우리는 거기서 진짜 냉정한 현실을 보게 되었다.

대선 때면 반짝 나타나는 리더십들은 대부분 허황된 수치를 내세우면서 장밋빛 사회를 얘기하지만 사실상 사회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현실을 얘기하기보다는 먼 미래의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혹은 일어나기 어려운) 꿈만을 이야기했다. 까칠하고 째째한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현실을 솔직히 말하는 그는 이 사회의 ‘부드럽고 한없이 너그러운 얼굴’로 거짓된 ‘핑크빛 미래’를 말하는 자들과 대비를 이루며, 이 사회에 부재한 현실성 있는 강력한 리더십을 대리충족 시키게 만들었다.

소수집단이 지배한 꿈이 없는 사회
이 드라마가 강마에식으로 표현하면 ‘귀족을 위한 것으로 천민들은 꿈에도 꿀 수 없는’ 클래식이라는 소재를 사용하면서 사회에서 누락된 서민들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이 드라마만의 강력한 반어법이다. 주부로서 꿈을 접고 살아온 정희연(송옥숙)은 가정이라는 집단에 발목이 잡혀 있고, 앞서나간 후배에게 굴욕을 당하면서도 회사에서 꿈을 갉아먹고 사는 박혁권(정석용) 역시 회사와 가정에 발목이 묶여 있다. 가난한 형편 때문에 클래식을 하려면 으레 해야만 할 것으로 생각되는 개인레슨 같은 투자(?)를 받지 못해 거리를 전전하는 하이든(쥬니)은 이 사회라는 집단에 발목이 잡혀 있다.

이들의 상황은 현실 그대로이다. 이 사회에서는 누구든 현실이라는 걸림돌에서 생존하기 위해 꿈을 버린다. 아니 어쩌면 도전조차 하지 못하게 사회는 일찌감치 그들에게 꿈을 버리는 연습을 시켜온 지도 모른다. 강마에가 말한 귀족과 천민을 나누는 클래식은 이 사회의 상류층이 가진 특권의식과 서민들이 가지도록 강요받는 천민의식을 단번에 드러내준다. 몇 프로 되지 않는 소수 집단이 사회 전체 집단을 굴러가게 하는 구조 속에서 저네들은 클래식 같은 문화를 누릴 때, 다수의 서민들은 꿈을 버리도록 강요받는 사회. 강마에의 까칠한 말 한 마디 속에는 그것이 숨겨져 있다.

환타지가 환타지에서 끝나지 않도록
하지만 이 드라마는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한다. “꿈을 이루라는 게 아니라 한번 꿔보기나 하라는 것이다. 꿔보지도 않으면서 꿈이라고 하면 그건 꿈이 아니라 그냥 별이다.” 강마에의 이 말처럼 현실을 보지 못했던 서민들에게 잔인한 현실을 보여준 후, 꿈꾸지 못하는 소외된 이들을 꿈꾸게 만든다. 이 드라마가 강력한 환타지를 갖추는 지점은 바로 이 곳이다. 드라마 속 단원들이 강마에라는 지휘자를 통해 오케스트라를 하는 그 꿈을 향해 매진할 때, 그걸 바라는 시청자들은 자신 속에 오래도록 묻어두었던 꿈 한 자락을 꺼낼 수도 있을 것이다.

각자 사회의 구성원들이 꿈을 다시 꾸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그 꿈을 꾸게 만드는 리더십이다. 강마에 같은 리더십은 드라마에서나 존재하는 것일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일까. 우리 사회가 지금 필요로 하는 리더십은 대중들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리더십이 아니라, 대중들에게 혹독할지라도 현실을 보게 만들고 또 그것을 꿈으로 연결시키는 리더십이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지만, ‘베토벤 바이러스’를 보며 환타지가 환타지에서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기는 건, 그것이 이 사회가 가면 뒤에 숨겨왔던 현실의 정곡을 찌르고 있기 때문이다.

‘베토벤...’의 강마에 김명민, ‘바람의 화원’의  신윤복 문근영

명작은 명캐릭터와 명연기로 만들어진다. 지금 수목드라마에서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김명민이 그렇고, ‘바람의 화원’에서 신윤복을 연기하는 문근영이 그렇다.

까칠한 듯 부드러운 강마에, 김명민
‘베토벤 바이러스’를 이끌어 가는 힘의 원천은 강마에라는 캐릭터에서 비롯된다. 고집불통에 따뜻한 표정이라도 하면 무슨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늘 견지하는 퉁명스러운 얼굴, 게다가 빙빙 돌려 얘기하지 않고 면전에다 대고 쏟아 붓는 직설어법의 독설까지, 강마에는 까칠한 캐릭터의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동정심이 일어날 만한 아줌마 정희연(송옥숙)에게 거침없이 ‘똥 덩어리’라고 말하고, 이제 귀가 멀게 될 두루미(이지아)에게 ‘귀가 먼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낱낱이 말하며 절망을 끄집어내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 까칠함이 시청자들의 환호를 받는 이유는 무얼까. 그 첫 번째는 강마에가 지금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그 동안 외면하려 해왔던 자기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강마에는 현실이라는 핑계거리를 내세우며 꿈을 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특유의 독설로 깨우쳐 그 현실과 맞서게 만든다. 바로 거기서부터 변화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강마에의 까칠함은 표현의 문제일 뿐이다. 강마에와 정명환(김영민)이 천재 제자 강건우를 두고 나누는 뒷 얘기는 진정한 스승으로서의 그의 면모를 드러낸다.

이 명 캐릭터를 연기하는 김명민은 과거 ‘하얀거탑’의 장준혁이라는 카리스마와는 약간 결이 다른 새로운 카리스마를 선보이고 있다. 장준혁에서부터 강마에까지 현실에 대한 삐딱함을 표현하는 특유의 비뚤어진 입 꼬리는 이제 김명민의 트레이드 마크가 될 정도다. 하지만 강마에의 비뚤어짐은 조금은 과장된 연기와 맞물려 오히려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그의 완벽에 가까운 지휘 연기와 까칠함과 부드러움을 오가는 야누스적인 연기는 강마에라는 캐릭터를 살리고, 또 드라마를 살리는 힘이 되고 있다.

순진한 듯 강인한 신윤복, 문근영
한편 ‘바람의 화원’을 이끌어가는 힘은 천재화가인 신윤복이라는 캐릭터다. 화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남장을 해야하는 천재 신윤복은, 그 설정 그대로 당대의 벽들과 마주선다. 그 첫 번째는 그림에 대한 장벽이다. 그가 그리고픈 여성성이 충만한 그림들은 춘화로 매도되고 장파형(손을 돌로 으깨는 형벌)의 위기에까지 몰리게 만든다. 도화서는 규율에 맞는 틀에 박힌 그림을 그에게 강요한다.

이 거대한 시대의 장벽 앞에 선 인물은 가녀린 도화서의 화원도 되지 못한 일개 제자인 신윤복이다. 하지만 신윤복은 겉보기처럼 약하지만은 않다. 자기 대신 장파형을 당하려하는 스승 김홍도(박신양)와 늘 맞서고, 가문을 위해 자신을 화원으로 만들려하는 아버지와도 맞선다.

문근영은 이 천재화가를 마치 어린아이 같은 특유의 해맑은 얼굴로 연기한다. 동그랗게 뜬 두 눈은 천재들이 가진 특유의 호기심을 잘 표현하고 거침없는 행동 속에도 아이 같은 순진무구함을 드러낸다. 하지만 장파형 앞에 격정적인 감정에 휘말리는 상황에서 문근영은 절정의 눈물 연기를 소화해낸다. 자신의 손을 돌로 내리치는 장면은 마치 그 동안 귀엽기만 한 국민여동생 이미지를 저 스스로 깨버리려는 듯한 몸부림처럼 보인다. 신윤복이 가진 캐릭터의 변화과정, 즉 남장여인에서 다시 김홍도에 의해 깨어나는 여성성이 드러나는 그 과정을 통해 문근영은 역시 그동안 갇혀있던 이미지를 깨고 새로운 여성 이미지로 거듭날 기회를 가지게 된 셈이다.

명작을 만드는 명캐릭터와 그 명캐릭터를 만드는 명연기. 지금 그 연기의 중심에는 김명민과 문근영이 있다.

BLOG main image
더키앙
문화 속에 담긴 현실을 모색하는 곳
by 더키앙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4571)
블로거의 시선 (96)
네모난 세상 (4360)
SPECIEL (19)
문화 코드 (1)
생활의 발견 (23)
술술 풀리는 이야기 (4)
스토리로 떠나는 여행 (10)
책으로 세상보기 (8)
문화 깊게 읽기 (4)
스토리스토리 (24)
사진 한 장의 이야기 (4)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다 (7)
대중문화와 마케팅 (9)

달력

«   2018/10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13,131,577
  • 2301,182
textcubeget rss

더키앙

더키앙's Blog is powered by Tistory.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더키앙 [ http://dogguli.tistory.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