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룸’의 영혼체인지, 그 흥미진진함과 복잡함 사이

사형수와 변호사. 두 인물의 영혼이 바뀌었다. 장화사(김해숙)는 자신의 애인 추영배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사형수가 되었지만, 영혼이 바뀌어 변호사 을지해이(김희선)의 몸에 들어가 감옥을 나온 후 추영배가 버젓이 살아 SHC그룹의 기산 회장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향후 장화사가 어떤 방식이든 을지해이의 몸을 빌어 복수를 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상황이다. 

한편 장화사 사건을 수사하다 끝없이 추락해버린 아버지 을지성(강신일)의 딸 을지해이는, 그 때문에 돈과 출세를 위해서 뛰고 또 뛰는 변호사가 되었다. 기산 회장이 소유하고 있는 법무법인 담장에서 시니어 파트너가 되기 위해 할 짓 못할 짓 다 하던 차에 장화사와 영혼이 바뀌어버린다. 잘나가던 변호사에서 졸지에 사형수의 처지가 되어버린 을지해이는 장화사로부터 제 몸을 돌려받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tvN 토일드라마 <나인룸>은 이처럼 나이도 다르고 상황도 다른 두 인물의 몸과 영혼이 뒤바뀌어버리는 판타지를 통해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겉으로 보면 장화사의 몸에 들어오게 되어 이제 꼼짝없이 감방에서 지내야 하는 을지해이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당할 것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평소 장화사가 감방에서 지낼 때 유일한 소망이었던 그의 어머니가 그의 족쇄가 된다. 장화사의 몸에 갇히고, 그래서 감방에도 갇히게 된 을지해이는 장화사의 어머니를 간병하는 감미란(김재화)을 이용해 그의 어머니를 빼돌림으로써 을지해이의 몸을 가진 장화사를 꼼짝 못하게 만든다. 

게다가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는 을지해이는, 을지해이의 몸을 갖고 있지만 그 사실을 전혀 모르는 장화사로 하여금 복숭아를 먹게 해 알레르기를 일으키고, 이를 통해 그 영혼체인지를 만들었던 제세동기로 다시금 영혼을 되돌려 놓으려 한다. <나인룸>의 이야기는 그래서 서로 다른 처지에 놓인 두 여인의 대결구도처럼 보이지만, 또한 두 여인의 몸을 서로 차지하기 위한 투쟁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몸은 그저 육체가 아니라, 그 몸을 가진 자의 삶 전체를 규정하고 지배하는 틀이 된다. 마치 영혼을 가두는 감옥 같은.

<나인룸>의 영혼체인지는 그래서 단지 영혼 하나 바뀐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두 인물이 처한 상황들이 너무나 극적이고 다르기 때문에 그 변화는 엄청나게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장화사는 자신의 삶 전체를 갉아먹어버린 과거 추영배와 얽힌 사건들을 풀어나가야 한다. 을지해이는 감옥에서 나가기 위해 장화사와 바뀐 영혼을 되돌리려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서 법무법인 담장에서의 자신의 입지나 자신의 애인인 기유진(김영광)을 지키기 위해 머리를 써야 한다. 그래서 장화사는 을지해이의 몸을 이용하고, 을지해이는 장화사의 어머니를 볼모로 잡거나 그 알레르기가 있는 몸을 이용한다. 

시청자들로서는 영혼이 바뀐 장화사와 을지해이의 몸을 차지하려는 대결구도가 헷갈릴 정도로 복잡하게 다가올 수 있다. 장화사의 몸이지만 그가 을지해이고 을지해이의 몸이지만 그가 장화사라는 사실을 드라마를 보면서 스스로 계속 생각하며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왜 저런 행동을 하는 지가 납득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몸을 그 사람의 존재 자체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영혼이 바뀌었다고 설정을 했어도 자꾸 혼동을 일으키는 건 어쩔 수 없다. 

이건 아마도 이 두 인물을 연기하는 연기자들이 갖는 고충일 수 있다. 김희선은 김희선의 몸으로 김해숙을 연기해야 하고, 김해숙은 김해숙의 몸으로 김희선을 연기해야 한다. 사형수지만 모범수로서 살아가던 장화사가 어느 순간 영혼이 바뀌어 을지해이의 그 간교하기까지 보이는 두뇌플레이를 하는 장면은 그래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놀라운 김해숙의 연기가 바탕이 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는 역시 그 욕망의 화신이었던 을지해이가 영혼이 바뀌어 장화사의 그 어눌하고 억울한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에서의 김희선의 연기에서도 보이는 것들이다. 

하지만 시청자들에게 이야기가 복잡하게 다가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영혼이 바뀌었다는 설정은 알겠지만 몸으로 부지불식간에 그 존재를 인식하는 우리네 습관 때문에 그 상황에 대한 일종의 저항감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나인룸>이 하려는 복수의 이야기 속에는, ‘몸이라는 감방에 갇혀 있는 현대인들의 영혼’이라는 또 다른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이 몸이 바뀐 두 사람은 그 몸을 차지하기 위해 대결하던 걸 끝내고, 그 바뀐 상황을 통해 서로를 공감하며 함께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을까. 복잡함과 흥미진진함 사이에 놓여진 <나인룸>이라는 드라마의 처지다.(사진:tvN)

'미션'이 말하는 "사랑하라"와 "살아남아라"의 의미

tvN 주말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유진 초이(이병헌)는 빵집 테이블 밀가루 위에 L, V, E를 쓰고 L과 V 사이에 반지를 놓아 ‘LOVE’라는 글자를 만들어 고애신(김태리)에게 건넨다. 그는 반지를 손가락으로 집어 고애신의 손에 끼워주며 말했다. “이 반지의 의미는, 이 여인은 사랑하는 나의 아내란 표식이오.” 그런데 유진 초이가 반지를 손으로 집을 때 L과 V 사이에 O 대신 I라는 선이 그어진다. 그래서 ‘LOVE’는 ‘LIVE’가 된다.

이 짧은 장면 속에 <미스터 션샤인>이 담아내려는 많은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다. 고애신은 유진 초이에게 미국으로 함께 가자고 속여 일본에 들어가 무신회에 붙잡힌 이정문(강신일)을 구하려고 한다. 고애신은 유진 초이를 사랑하지만 차마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다. 자신이 갈 길이 ‘불꽃’을 향해 뛰어드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속이려 한다.

하지만 유진 초이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진짜 미국에 함께 가려 했다면 “사랑한다”는 말을 했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애신에게 기꺼이 속아주겠다 말한다. “당신이 나를 꺾고, 나를 건너, 제 나라 조선을 구하려 한다면 나는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당신의 손에 꺾이겠구나...”라고 자신의 사랑하는 마음을 에둘러 토로한다.

고애신은 일본행 배를 타기 위해 제물포항으로 가는 기차에서 유진 초이에게 드디어 자신의 진짜 마음을 드러낸다. 마치 애써 숨기고 있는 사랑처럼 유진 초이가 품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반지를 고애신은 그의 손에 끼워준다. 그러며 고애신은 “사랑하오. 사랑하고 있었소.”라고 말한다.

어쩌면 죽음의 불꽃이 될 수 있는 그 일본행에 부부행세를 하며 함께하는 유진 초이와 고애신에게는 그래서 사랑(LOVE)과 삶(LIVE)이 겹쳐진다. 사랑하지만 사랑할 수 없고, 살아남고 싶지만 자꾸만 불꽃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삶. 유진 초이는 고사홍(이호재)의 유언을 받아들여 자신이 타카시(김남희)를 처단했다는 사실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고 있다. 미국인 신분이어야 가능한 그 일은 고애신과 영영 멀어질 수 있는 길일 테니 말이다.

결국 미국행 배를 포기하고 고애신을 구하기 위해 달려온 유진 초이는 무신회의 낭인들에게 쫓긴다. 그런데 그 짧은 동반도주 속에서 하늘 위로 마치 이들의 사랑과 삶에 축포를 내리듯 불꽃놀이의 불꽃들이 솟아오른다. 도주 중이고 그 도주의 끝에 그들은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될 지도 모르지만, 그 짧은 순간 유진 초이는 웃고 있다. “낭인들을 보았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달리고 있었소. 불꽃 속으로.”라며.

과연 이 불꽃같은 사랑과 삶은 어떤 결말을 맞이할 수 있을까. 그 끝에서 어떤 장면을 만날 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미스터 션샤인>이 말하는 두 가지 메시지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사랑하라”와 “살아남아라”다. 개화기의 그 혼돈 속에서 초개 같이 목숨을 내던졌던 의병들이지만, 그 속에서도 그들은 서로를 향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개인적 사랑이든, 조선에 대한 사랑이든, 아니면 인간에 대한 사랑이든 그런 사랑이 없었다면 그들은 그런 어려운 불꽃의 길을 걸어갈 수 없었을 것이다. 죽음을 향해 걸어가더라도 “살아남으라” 말해주는 이들의 애틋한 사랑이 없었다면.

그리고 이것은 진짜 “살아남는다”는 것이 그저 목숨을 연명하는 생존의 의미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걸 말해주기도 한다. 짧았어도 불꽃같은 뜨거움을 향해 달려간 그 삶이야말로 진정 ‘살아남는’ 길일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의 기억 속에 반복되어 여전히 그 뜨거움이 전해지는 그들의 삶은 여전히 살아남아 있으니. 그들의 ‘LOVE’는 그래서 ‘LIVE’가 되었다.(사진:tvN)

‘스케치’, 정해진 미래와 그 미래를 깨려는 사람들

JTBC 금토드라마 <스케치>는 일종의 두뇌게임 같은 드라마다. 미래에 벌어질 사건이 그려진 스케치라는 판타지 설정은 이 두뇌게임의 판을 제공한다. 그 능력을 가진 유시현(이선빈)이 그리는 스케치를 보며 그 그림이 어디서 누구에게 언제 벌어진 것인가를 찾아내고, 사건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뛰고 또 뛰는 나비 프로젝트팀이 있지만, 이야기는 결코 ‘벌어질 사건’과 그 ‘사건을 막으려는 이들’의 단순한 과정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성 범죄자에게 아내를 잃고 폭주하는 김도진(이동건)과, 그를 회유해 미래에 사건을 저지를 인물을 사전에 제거해나가는 장태준(정진영)이라는 미스터리한 인물, 그리고 김도진에 의해 아내를 잃은 강동수(정지훈) 형사 같은 인물들이 가진 저마다의 욕망이 뒤얽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신약을 출시하려 하는 제약회사 대표 남선우(김형묵)를 김도진은 사전에 제거하려하지만, 남선우는 오히려 김도진의 아내를 죽인 강간범 정일수(박두식)를 감옥에 빼내고 그를 미끼삼아 김도진을 납치한다. 

남선우는 또한 제약회사의 신약 부작용 자료를 갖고 있는 오박사(박성근)를 제거하고 강동수에게 그 살인누명을 씌우려 계획한다. 하지만 스케치를 통해 오박사의 심장약이 바꿔치기 될 것을 알게 된 강동수는 마치 남선우의 계획대로 속는 척 하면서 김도진을 찾아내려 한다. 모든 게 강동수의 계획대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여기서 또 다른 변수가 발생한다. 그것은 무슨 일인지 장태준이 남선우에게 전화를 해 그가 함정에 빠져 있다는 걸 알려준 것. 결국 경찰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남선우는 장소를 바꿔 강동수와 김도진을 마주하게 만든다. 

이 정도의 스토리를 정리해보면, 사실 <스케치>라는 드라마가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이야기는 계속해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여기에 스케치로 그려진 그림들은 단서이면서 동시에 보는 이들을 혼돈에 빠뜨리는 트릭처럼 활용된다.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 생각했던 이야기는 갑자기 어느 한 인물의 욕망이 개입되면서 방향을 틀어버린다. 시청자들의 예상은 여지없이 깨지고, 그 깨진 스토리만큼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이게 바로 <스케치>라는 드라마가 작동되는 방식이다. 이야기의 흥미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는 시청자가 갖는 예상치를 어느 지점에서 깨는 반전의 이야기가 들어가야 하고, 그렇게 틀어진 이야기도 또 어느 정도 흘러가서는 다시 또 다른 반전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시청자가 예상한 대로의 이야기가 전개된다면 맥이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뒤집히고 또 뒤집히는 두뇌게임의 연속은 그 이야기 속에 처음부터 깊이 발을 디딘 시청자들에게는 충분히 흥미로운 일이지만, 우연히 드라마를 보게 된 새로운 시청자들에게는 엄청난 진입장벽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저 인물들이 왜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애초에 이 드라마가 ‘인과율’이라는 치밀한 논리 게임으로 짜여지고, 그 인과율을 깨는 변수들에 의해 또 다른 인과율이 이어지는 과정을 이야기의 중요한 기폭제로 삼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한계다. 두뇌게임은 어느 정도 그 게임판에 익숙해져야 즐길 수 있는 것이 된다. 이것이 <스케치>가 가진 남다른 묘미인 동시에 한계가 겹쳐지는 부분이다. 

ㅁ이런 한계를 넘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건 김도진이나 강동수 같은 주요인물들이 가진 감정과 정서에 시청자들을 깊이 이입시키는 일이다. 복잡하게 얽힌 거미줄 같은 사건 속에서 적어도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인물들이 갖는 감정선을 손에 쥐어주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케치>는 따라가야 할 인물들이 너무 많다는 느낌이다. 김도진과 강동수의 이야기에 이어 이제는 유시현의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고 거기에는 다시 나비 팀을 이끌고 있는 문재현(강신일)과의 관계도 얽혀있다. 여기에 유시현의 오빠인 유시준(이승주)까지 등장하면서 인물들은 더 복잡해졌다. 장태준이라는 미스터리한 인물도 빼놓을 수 없고.

두뇌게임의 묘미를 안겨주는 이야기 전개의 재미는 물론 충분하지만, 좀 더 상황을 정리해줄 수 있는 인물들에 대한 집중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미 이 드라마를 즐기고 있는 시청자들이라면 상관이 없겠지만 이제라도 드라마에 관심을 갖는 이들을 위해서는 이 게임판과 인물들에 대한 보다 명쾌한 설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사진:JTBC)

‘귓속말’, 이들의 폭주가 보여주는 통쾌함과 씁쓸함

“법대로 살 수 없어 사는 법을 배웠죠.” 이동준(이상윤)이 태백의 대표 최일환(김갑수)에게 던진 이 말은 SBS 월화드라마 <귓속말>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실 이 드라마는 한 회 한 회 긴장을 늦추고 볼 수가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끝없는 대결구도로 이뤄진 이 드라마는 또한 끝없이 새로운 판이 그 때마다 짜지기 때문이다. 어제의 적은 오늘의 동지가 되고 오늘의 동지는 다시 내일의 적이 된다. 

'귓속말(사진출처:SBS)'

이들이 대립하는 가장 큰 골격은 로펌 태백의 경영권을 두고 벌어지는 최일환과 보국산업 강유택(김홍파)의 패권다툼이다. 하지만 이 대결구도 속에 틀어 앉은 또 하나의 사건이 방산비리다. 보국산업과 태백이 얽혀 있는 이 비리를 캐던 기자가 최일환의 딸 최수연의 사주로 인해 살해당하고 그녀의 연인인 강정일(권율) 역시 그 살해에 동조한다. 그리고 살인범으로 대신 신영주(이보영)의 아버지 신창호(강신일)가 누명을 쓰고 수감된다. 여기에 판사였던 이동준은 최일환의 위협에 못 이겨 신창호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잘못된 판결을 내게 된다. 

비리 기업이 있고 그 비리에 동조하고 있는 로펌이 있으며 그걸 취재하다 죽음을 맞이한 기자가 있다. 그 기자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간 아버지의 무고를 밝히기 위해 딸 신영주가 나선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 관계들은 사건과 비리와 권력 등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리고 그 이해관계들은 부모자식 관계나 부부, 연인 관계보다도 더 앞서있다. 

최일환은 태백을 집어 삼키려는 보국산업 강유택 회장과 맞서기 위해 딸 최수연(박세영)이 사랑하는 강회장의 아들 강정일(권율)을 밀어내고 대신 이동준과 정략결혼을 시킨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최일환의 발목을 잡는 건 바로 이 딸이다. 강정일이 구속될 위기에 처하게 되자 딸은 모든 죄를 자신이 내린 것이라고 증언하라며 오히려 아버지 최일환을 겁박한다. 

이런 상황은 강정일과 강유택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강유택은 아들 강정일을 태백에 심어놓고 결국 그 태백을 집어삼킬 야망을 갖고 있다. 그래서 강정일을 밀어내려는 최일환의 공격으로부터 아들을 보호하려 한다. 하지만 그 아들이 최일환의 딸 최수연과 연인 관계라는 사실은 탐탁찮은 일이다. 그래서 위기에 몰린 강정일을 직접 도와주지 않고 대신 그에게 최수연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라고 제안한다. 

가족도 믿지 못하는 얄팍한 인간적 관계인데다, 법이란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타협하는 것으로 치부되는 이 <귓속말>의 세계는 그래서 팽팽해질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고, 법 역시 정의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의 욕망이 부딪치는 이전투구의 장이 끊임없이 생겨나는 건 그래서다. 

<귓속말>이 한번 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는 반전의 반전을 보여줄 수 있는 건 바로 이런 냉혹한 세계가 거기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박경수 작가가 <황금의 제국>이나 <펀치>를 통해 지금껏 그려온 권력자들의 세상이 시청자들에게 주는 흥미진진함이고 속 시원함이며 동시에 씁쓸함이다. 

엎치락뒤치락 하는 세계의 대결구도는 흥미진진하고, 한껏 몰렸던 누군가가 하나의 키를 새롭게 쥐고 상황을 반전시키는 이야기는 통쾌하지만, 동시에 한 걸음 물러나 이 싸움판을 보게 되면 우리네 현실이 얼마나 법 정의와는 멀어져 있는가를 확인하는 씁쓸함이 느껴진다. <귓속말>은 법 정의가 무너진 세상에서 사는 법에만 능숙한 이들의 대결을 보여주는 드라마다. 그리고 그 시선에는 풍자적 관점 또한 들어 있다. 도대체 저게 뭐하는 짓들인가.

‘귓속말’, 첫 회만 봐도 우리 시국의 밑바닥이 보인다

“법을 이용해서 사욕을 채우는 도적을 법비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법률회사 태백은 법비라고 하더군요. 도적떼나 되려고 법 배운 게 아닙니다.” 대놓고 시국과 한판 승부를 벌이기라도 하려는 걸까. SBS 새 월화드라마 <귓속말>의 첫 회는 현 탄핵 시국을 맞은 우리네 현실의 적나라한 시스템을 화두로 던졌다. ‘법비(法匪)’. 지금 이 단어를 인터넷 검색 창에 치면 우리는 이번 탄핵 정국에서 이른바 ‘법꾸라지’로 지칭되는 이들의 이름들이 줄줄이 나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귓속말> 첫 회 대쪽 같은 판사 이동준(이상윤)은 자신을 회유하려는 로펌 태백 대표 최일환(김갑수)에게 바로 이 ‘법비’라는 표현을 썼다. 

'귓속말(사진출처:SBS)'

법비 로펌 태백은 정관계까지 광범위하게 권력을 뻗치고 있는 시대의 악. 태백의 최일환은 방산비리가 드러날 위기에 놓이자 그 진실을 추적하던 기자를 살해하고 그의 선배 해직기자였던 신창호(강신일)를 살인범으로 몰아 사건을 덮으려 한다. 그가 살인범이 아니라는 증거도 나왔지만 태백의 힘은 막강하다. 판결을 맡게 된 대쪽 같던 판사 이동준마저 그 신념을 저버리고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일 만큼. 판사 임용을 저지하고 누명을 씌워 감옥에 보내겠다는 위협 앞에 이동준은 결국 소신을 저버린다. 

이 과정에서 신창호 살인죄로 형이 확정되고, 그의 딸인 형사 신영주(이보영)은 형사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법이 무고한 서민들을 지켜주기는커녕, 권력자들이 마구 휘두르는 칼날이 되어 서민들을 피눈물 흘리게 하는 현실. 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우리네 참담한 법비들이 활개치는 현실이 드러난다. 아버지의 도움마저 물리칠 정도로 소신 있던 이동준 판사가 결국 무너지는 그 과정은 우리네 사회가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말 안 듣는 소신 있는 판사는 재임용 심사에서 누락시켜버리고, 그 싹마저 밟아버리기 위해 사찰을 통해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 나선 일을 판사의 권력 남용으로 몰아세운다. 갖가지 비윤리적인 일들을 해온 법비는 이동준 같은 판사를 끌어들여 이미지 세탁을 하려 한다. 위협과 함께 회유책도 따라온다. 태백에 무릎을 꿇으면 이동준을 사위로 삼고, 그의 아버지를 대통령 주치의로 만들어준다고 한다. 소신을 버리는 순간, 권력을 쥐게 되는 시스템의 구조. 게다가 충격적인 건 이들의 악행은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까지 보여준다는 점이다. 

“악은 성실하다.” 탄핵 시국 속에서 법망을 피해가려 별의 별 방법을 다 동원하는 그 과정들 속에서 대중들은 이 대사가 실감났을 게다. <귓속말>이 첫 회에 보여준 건 그래서 이토록 성실하게 악행을 준비하고 처리해가는 그 우리네 현실의 밑바닥이다. 그리고 그 밑바닥을 첫 회에 드러낸 이유 또한 명백하다. 그 곳에 내버려져 더 이상 잃을 것조차 없는 신영주 같은 인물들이 온 몸을 던져 법비와 대항해가는 이야기를 해보려는 것.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귓속말>이라는 제목에 담겨진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거꾸로 우리네 현실이 이런 소소한 서민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 적이 없었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저들이 방산비리를 일삼으며 자신들의 권력의 배를 채우고 있을 때 소소한 서민들이 쓰러져 나갔다는 사실을 큰 소리로 듣지 못하고 그저 작은 소리로 치부하는 현실. 하지만 그 작은 귓속말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때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가를 우리는 또한 이번 시국에서 느끼지 않았던가. 드라마 <귓속말>이 보여줄 시국과의 한판 승부에서 과연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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