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키오>, 진경의 개과천선 왜 <펀치>를 닮았을까

 

SBS 수목드라마 <피노키오>와 월화드라마 <펀치>를 보다보면 그 유사한 현실이 눈에 들어온다. <피노키오>는 언론의 문제를 다루는 드라마이고, <펀치>는 법 정의의 문제를 다루는 드라마다. 물론 소재가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그 이야기의 전개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그 배경이 되고 있는 정치, 언론, 법은 같은 드라마인 것처럼 똑같다.

 

'피노키오(사진출처:SBS)'

<피노키오>에서 언론은 대기업 회장과 결탁해 여론조작을 일삼으며, 그 대기업 회장은 그 위에 정치인과 맞닿아 있다. 이 커넥션으로 인해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양으로 고통 받는다. 기하명(이종석)과 최인하(박신혜)는 이 커넥션을 폭로하고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무고한 이들의 희생을 막고 정의를 실현하려 한다.

 

<피노키오>가 그나마 어떤 풍자를 섞어 약간의 여유를 보여주고 있다면, <펀치>는 쉴 틈 없는 진지함과 무게감으로 법 정의는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권력 투쟁만이 남은 현실을 두드려 댄다. <펀치>의 이태준(조재현) 총장이나 윤지숙(최명길) 법무부 장관은 그 과정에서 결탁된 언론들을 움직여 여론을 조작한다. 그들과 맞서 박정환(김래원)과 신하경(김아중)은 그들의 결탁을 밝혀내려 한다. <피노키오>와 다른 얘기 같아도 주인공의 관점만 다를 뿐 대동소이한 이야기다.

 

흥미로운 건 이 두 드라마에서 내부고발자가 가진 파괴력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펀치>의 박정환은 이태준을 검찰총장으로 세운 인물로서 그를 감옥으로 보내기 위해 마음을 바꾼 내부고발자다. <피노키오>의 송차옥(진경) 부장은 대기업 회장인 박로사(김해숙)와 결탁한 부패언론인이었지만 딸 최인하로 인해 개과천선해 오히려 내부고발자로 나선다. 박정환은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이태준 총장을 감옥에 보내려 하고, 송차옥 역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면서 박로사 회장의 비리를 폭로하려 한다.

 

작년 <개과천선>이라는 드라마도 잘 살펴보면 이 구조와 다르지 않다. 그것은 정치-언론-법이라는 커넥션에서 변호사의 입장을 통해 들여다본 <펀치><피노키오>의 현실이나 마찬가지다. 거기서도 김석주(김명민)라는 내부고발자가 등장한다. 그는 권력자들에게 붙어 그들의 죄를 덮는 역할을 해온 인물이지만 드라마 제목처럼 어떤 계기를 만나 개과천선하면서 오히려 이들과 싸워나간다.

 

드라마에서 내부고발자가 더 힘을 발휘하고 오히려 현실적이라 여겨지는 건 선악 구도가 그다지 리얼하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착한 이들이 나쁜 놈들과 싸워 이기기에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래서 <펀치>가 보여주는 것처럼 나쁜 놈덜 나쁜 놈이 맞붙는 형국이 훨씬 더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펀치>의 박정환이 내가 살아왔던 세계의 방식으로 더 나쁜 놈들과 맞서는 장면이나, <피노키오>의 송차옥이 박로사가 취할 일련의 방식들을 모두 꿰면서 거기에 맞는 대처방식을 얘기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 통쾌하면서도 현실감을 만든다.

 

드라마 속 내부고발자들이 해결사로 등장하는 이 상황은 씁쓸한 현실을 담아낸다. 시스템 바깥에서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제 시스템 안을 경험한 이들만이 그들과 싸울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 현실이다. 최근 대한항공 사태는 그런 점에서 보면 이들 드라마들의 커넥션 구조가 꽤나 현실감이 있다는 것을 에둘러 말해준 사건이 되었다. 박창진 사무장을 위시한 대한항공 전현직 사원들의 내부고발은 이 시스템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끄집어낸 힘이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용기 있는 내부고발자들 덕분이라는 걸 드라마도 현실도 말해주고 있다.

 

조기종영 <개과천선>, 시즌제 주장 나오는 까닭

 

MBC 수목드라마 <개과천선>이 오늘을 마지막으로 종영한다. 본래 18부작이었지만 중간에 몇 번 결방을 하게 되면서 16부로 조기종영하게 됐다. 워낙 아쉬움이 남기 때문인지 조기종영에 대한 서로 다른 이유들이 제시되었다. MBC측은 김명민의 스케줄을 이유로 댔고, 김명민측은 스케줄문제가 아니라 열악한 드라마 제작 현실을 이유로 들었다.

 

'개과천선(사진출처:MBC)'

하지만 이런 이유 이외에도 <개과천선>이라는 드라마가 가진 날카로운 현실 비판이 방송사에 부담이 됐을 거라는 추론도 나온다. 물론 그것이 진짜 조기종영의 이유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현실에서 벌어졌던 대기업과 관련된 사건들이 이 드라마의 소재로 등장해 그 적나라한 얼굴을 보여줬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 다른 측에서는 <개과천선>의 조기종영 이유로 시청률을 들고 있지만 사실 이 정도의 완성도와 디테일을 담고 있는 본격 법정물로 8% 내외의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다. 복잡한 금융 사건들은 전문가들이 봐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이 복잡함은 사건이 커도 관계자들 이외에 대중들이 사건에 무관심하게 되는 이유가 되었다. 그런 사건들을 드라마를 통해 자세하게 보여준다는 그래서 시청률 8%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질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는 조기 종영되었지만 드라마 팬들은 벌써부터 시즌2를 얘기하고 있다. 드라마 내용만으로 보면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니다. 이제 차영우펌을 나온 김석주(김명민)가 막 본격적으로 차영우펌에 맞서 한판 승부를 겨루는 시점이다. 중소기업에게 불리한 금융상품을 제대로된 설명 없이 판매한 은행에 맞서 김석주 변호사는 고군분투하지만 그는 차영우펌이 가진 네트워크에 첫 패배를 맛본다. 변호사의 역할을 마치 로비스트처럼 생각하는 차영우(김상중)의 말처럼 한 개인의 노력으로는 인적 네트워크를 쥐고 있는 시스템과의 대결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인 것.

 

김석주 변호사는 그래서 지금 이런 사건들과 본격적으로 싸워나가는 그 스타트 라인에 서 있는 셈이다. 게다가 현실에서 서민들이 억울하게 판결 받은 사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 많은 사건들을 하나하나 반추해나가는 것만으로도 <개과천선>의 이야기 소재는 차고 넘친다. 무엇보다 개과천선한 김석주 변호사의 면면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에 팬들은 각별한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현실에서 찾기 힘든 희망처럼 그가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수많은 시즌2 요구 드라마들이 실제 시즌2를 한 적이 별로 없었던 것처럼 <개과천선>이 시즌2를 할 가능성도 많지 않다. 하지만 이번 시즌2 요구는 여타의 드라마들과는 사뭇 다른 대중들의 정서가 들어가 있다. 현실에 있었던 사건들을 소재로 끌고 와 디테일하게 다룬 <개과천선>에 쏟아지는 호평이 말해주듯, 이 드라마에 대한 시즌2 요구는 공고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시스템에 의해 불의가 정의인 양 둔갑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정서가 깔려 있다. 현실의 시스템에 의해 묵과되는 사안들을 드라마에서나마 확인하고픈 마음. <개과천선> 시즌2 요구에는 그 간절한 마음이 담겨져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도 울고 갈 개과천선의 디테일

 

살릴 수 있습니다. 기회를 주십시오. 저는 대학 4학년 때 백두그룹을 물려받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그룹을 물려받았지만 한국 소주시장의 마켓 쉐어를 40에서 60% 늘렸습니다. 판사님도 백두소주 드시죠? 그게 바로 제 작품입니다. 하하하. 백두소주와 그룹 살려내겠습니다. 백두그룹은 민족기업입니다. 잠시 외세 투기자본과 악덕로펌이 결탁한 농간에 시달리는 것뿐입니다. 국내 채권단의 90%와 전체 평균 60%가 저 진진호가 단독 경영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동의서를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

 

'개과천선(사진출처:MBC)'

MBC 수목드라마 <개과천선>에 짧게 등장한 이 법원의 장면은 여러 모로 진로그룹을 떠올리게 한다. 이렇게 진술한 백두그룹 진진호 회장(이병준)은 당시 진로그룹을 이끌었던 장진호 회장을 모델로 한 듯하다. 이야기의 소재도 그렇지만 심지어 외모까지도 비슷하게 연출되어 있다. 드라마에서 진진호 회장이 주장하는 것처럼 국제금융위기 때문에 국내의 그룹들이 휘청했던 건 사실이지만 소주 매출을 통해 진로만큼 현금보유고가 높았던 회사가 무너진 건 외세 투기자본인 골드만삭스의 작업(?)과 법정싸움에서 졌던 점이 결정적이었다. 결국 김석주(김명민) 변호사의 마지막 의뢰인으로 등장할 이 진진호 회장의 이야기는 진로그룹이 겪은 과정을 재현할 것으로 보인다.

 

<개과천선>에 등장하는 사건들은 이처럼 거의 실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태안 기름 유출 사고를 낸 기업의 편에 서서 생업이 달린 어부들의 보상을 막는 차영우펌의 이야기는 물론이고, 재벌의 부실 사채 판매를 한 유림그룹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국민에게 부실사채를 떠넘기고 돈을 챙긴 후 회사를 법정관리로 넘겨 채무를 청산한 다음, 그렇게 번 돈으로 다시 부실을 털어낸 회사를 다시 장악하는 대기업의 행태는 실로 시청자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대형 은행이 중소기업을 상대로 벌인 파생상품 영업 문제는 키코사태를 다루었다. 드라마로도 이 파생상품이 갖고 있는 복잡한 금융의 문제는 결코 쉽게 전달되지 못했다. 그것은 이 사태 자체가 전문가들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복잡한 금융 문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가 양산되었지만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사태를 드라마가 정면에서 다룬다는 건 놀라운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디테일은 세세한 취재와 조사가 아니라면 도무지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일 것이다

 

사실상 국내의 법조계를 거의 흔들고 있는 차영우펌의 이야기는 여러모로 국내 굴지의 로펌들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 같다. “니네 차영우펌은 손이 안 닿는 데가 어디야 대체.” 이렇게 묻는 이선희 검사에게 김석주는 이렇게 줄줄이 관련 기관들을 늘어놓는다. “청와대, 내각, 법무부, 법원, 검찰청, 국세청, 금감원, 공정거래위원회 심지어 교정국 출신 고위간부들도 영입해 오는 거 알지? 회장님들 옥수발해야 하거든.” 중수부장 출신이나 대법원장 판사 출신들을 영입해 전관예우를 받는 차원을 넘어서 거의 모든 공공기관들에 손을 뻗고 있는 것. 이러니 사법정의가 제대로 이뤄질 까닭이 없다.

 

<개과천선>처럼 하나의 드라마가 이처럼 우리 사회를 강타한 금융과 법조 비리의 문제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낸 적이 있던가. 이것은 드라마를 보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는 것만 같은 디테일들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말하는 개과천선이란 단지 김석주 변호사만의 이야기를 지목하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거기에는 금융경제로 넘어오면서 대기업들에 의해 자행된 그 많은 잘못된 일들의 개과천선을 바라는 작가의 의지가 느껴진다. 그만한 의지와 뜻이 아니라면 이런 디테일이 어떻게 가능하겠나.

간만에 볼만한 <개과천선>, 왜 조기종영?

 

애초에 18부작이었던 MBC 수목드라마 <개과천선>16부로 조기종영 한다는 소식에 드라마 팬들은 의아할 수밖에 없다. 간만에 볼만한 드라마가 아닌가. 지금껏 봐왔던 변호사 소재 드라마들과는 차원이 다른 깊이가 있고, 현실에 대한 냉엄한 비판정신이 살아있는데다, 김명민과 김상중의 명불허전 연기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었다. 그런데 조기종영이라니.

 

'개과천선(사진출처:MBC)'

시청률이 과도하게 떨어진 것도 아니다. 중간에 두 차례 결방을 한 탓에 드라마의 연결고리가 느슨해지면서 시청률이 조금 떨어진 부분은 있지만 그래도 이 정도의 완성도와 깊이를 가진 드라마가 9%대를 유지한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개과천선>은 결코 쉽게 볼 수 있는 드라마는 아니다. 지금껏 다루지 않았던 금융 전문 변호사의 세계는 그 자체로 대단히 복잡하다.

 

복잡한 금융 전문 변호사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리얼하게 다루게 된 건 그것이 실제로 대중들을 눈속임하기 위한 금융의 술책이기 때문이다. 그 복잡한 금융의 세계는 일반 서민들이 모두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심지어 금융전문가들도 컴퓨터를 돌려봐야 그 결과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니까. 그러니 서민들은 전문가들을 말을 그저 신뢰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만일 믿어왔던 은행조차 복잡한 금융상품을 내놓으며 뒤통수를 치려한다면 어떨까.

 

<개과천선>이 다루는 이야기는 그래서 현실적으로 대단히 민감한 문제들이다. 겉으로 보기엔 신뢰의 표상처럼 보이는 금융권이나 대기업의 이면을 슬쩍 드러내기 때문이다. 물론 초반에 다뤄진 몇몇 에피소드들도 우리네 현실에서 벌어졌던 사건사고들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이 드라마의 대본은 날카로웠다. 태안 기름 유출사고를 직접적으로 겨냥한 에피소드도 있었고, 종금사태를 소재로 다룬 것도 있었다.

 

이렇게 완성도도 높고 메시지도 충분히 의미 있는 <개과천선>의 조기종영은 사실 이해하기가 어렵다. MBC측은 이것을 김명민의 스케줄 탓이라고 얘기했지만 한 드라마의 조기종영이 그저 배우의 스케줄 하나 때문이라고 치부하는 건 어딘지 방송사의 책임회피 같은 느낌이 짙다.

 

김명민 측은 이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스케줄로 인해 그렇게 결정된 것 같지만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것. 김명민 측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미 오래 전부터 영화 스케줄이 잡혀 있었다고는 해도 결방만큼 촬영시간도 충분히 있었다는 걸 감안해보면 조기종영을 단지 스케줄 탓으로 돌리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다. 이미 3회부터 생방송 일정이었다는 드라마 제작현실은 결방에도 벌충을 하지 못한 속사정을 드러낸다.

 

즉 이 모든 책임을 김명민이라는 배우 한 사람의 스케줄 탓으로 돌리는 건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또한 김명민 측에서 말하는 생방송 촬영의 힘겨움은 물론 배우의 어려운 입장을 전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직접적으로 조기종영의 이유로 제시되긴 어렵다. 그 많은 생방송 촬영이 드라마판에서 반복되고 있지만 그것 때문에 드라마가 조기 종영된 적이 있던가. 방송사는 김명민의 스케줄 때문이라고 얘기하고 김명민 측은 힘겨운 제작현실 때문이라고 얘기하지만 어딘지 그 두 가지 이유 모두 궁색한 변명처럼 들리는 건 왜일까.

 

배우 한 사람의 힘이 언제부터 방송사의 편성을 쥐락펴락할 수 있을 만큼의 힘을 갖게 됐단 말인가. 만일 <개과천선>이 더 높은 시청률을 내는 드라마였다면 과연 MBC는 역시 똑같은 결정을 내렸을까. 현실적으로 말해 방송사의 의지가 있었다면 배우의 스케줄 조정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았을까. 혹여나 의심되는 부분은 이 드라마가 가진 가감 없는 현실비판이 누군가에게는 몹시 불편했을 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과연 이 문제가 단지 스케줄 문제와 생방송 드라마 제작현실 때문 만이었을까. 좋은 드라마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없게 된 현 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

<개과천선>의 질문, 변화는 가능한가

 

시간

MBC <개과천선>은 시간에 대한 드라마다. 거기에는 과거가 있고 과거로부터 단절된 현재가 있으며 그 현재가 만들어갈 미래가 있다. 김석주(김명민)는 기억상실을 겪게 되는 사건을 통해 과거로부터 단절된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과거 속에는 자신만 있는 게 아니다. 자신과 관계된 사람들이 있다. 차영우펌에서 에이스로 일하며 관계해온 대기업의 인물들은 김석주가 자신들을 대변해 더 많은 이득을 가져다주기를 바란다.

 

'개과천선(사진출처:MBC)'

하지만 과거와 단절된 김석주는 현재라는 시간대에 새로운 자신을 세우려 한다. 심지어 과거의 자신이 만들어놓은 것들을 현재 뒤집으려 한다. 현재는 과거와 대결한다. 그의 약혼자인 유정선(채정안)과 그녀의 집안인 유림그룹은 과거로부터 튀어나온 이들이지만 현재의 그와 약혼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아마도 과거의 김석주와 유정선의 관계는 이익관계였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현재의 김석주는 진정으로 유정선을 걱정하는 관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집안으로부터 버림을 받을 위기에 처한 유정선을 구해주는 과정은 현재와 과거의 대결에서 그의 승리를 보여준다.

 

시간과 기억

기억으로 단절되어 있지만 시간은 단절되지 않는다. 병을 앓고 있는 김석주가 키우는 개는 기억 속에서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그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인권변호사인 아버지 김신일(최일화)도 마찬가지다. 인권변호사의 삶이 가족을 고통스럽게 한 것에 대한 반발로 김석주는 과거 아버지로부터 등을 돌리나, 그 기억을 지워버린 그는 아들로서 아버지를 찾아간다. 그 기억이 남아 있는 아버지는 아들의 변화에 이상함을 느낀다.

 

흥미로운 건 아버지 또한 치매를 앓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점점 그의 기억은 사라져간다. 만일 아들이 과거의 기억을 잃고 아버지 또한 기억을 잃어버린다면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얼마나 위태로워질까. 관계란 기억의 축적이 만들어낸 산물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 가냘픈 기억의 끈은 이제 과거의 기억을 잃고 현재의 기억으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아들 김석주에 의해 이어져갈 것이다. 아버지를 도와 은행에 피해를 본 중소기업을 도우며 그는 아버지를 닮아간다.

 

시간과 기억 그리고 선택

시간은 무수한 선택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기억으로 축적된다. 김석주는 차영우펌에 사직서를 내지만 그 시간에 강직한 판사였던 전지원(진이한)은 차영우펌에 들어온다. 김석주의 선택과 전지원의 선택은 그래서 이제 그들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갈 것이고 기억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견고한 시스템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은 선택하려 하지만 시스템은 언제든지 그 사람을 바꿔치기 한다. 시스템에 입장에서 전지원은 김석주의 과거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때로는 사람이 시스템과 대항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시스템은 결국 사람이 만든 것이다. 차영우펌이 가진 그 시스템의 견고함은 어쩌면 김석주 자신이 과거에 이룩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차영우펌을 나온 김석주는 그래서 또다시 과거 자신이 만들었던 이 괴물 같은 시스템과 맞서게 된다. 과거는 또다시 현재와 대결한다.

 

변화, 개과천선은 가능한가

<개과천선>이 김석주라는 문제적 인물을 통해 보여주려는 건 한 사람의 선택이 얼마나 중대한 미래를 만들어내는가 하는 점이며, 그 선택으로 만들어진 과거를 되돌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점이다. 기억이라는 견고한 틀로 과거와 현재가 단단히 연결되어 있는 인간은 사실 변화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만일 과거를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김석주는 그 기억의 일관성 속에서 현재와 미래를 그냥 살아갔을 가능성이 높다.

 

변화는 어렵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다. 김석주 변호사가 과거 그러했듯이 현실에서는 도대체 인간이 어쩌면 저런 끔찍한 선택을 아무런 가책 없이 할 수 있을까 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이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시스템이 하는 것이다. 각종 금융시스템은 그 숫자들 뒤에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을 은폐한다. 변호사들이 다루는 법조항들은 그 문구들 뒤에 달린 누군가의 인권을 지워버린다. 인간이 아니라 그저 숫자를 다루고 법조항을 다루고 있다는 착각은 끔찍한 선택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것은 기억의 조작이다. 시스템이 조장하는 일종의 치매다.

 

김석주 변호사는 그래서 그렇게 시스템에 연루된 과거를 지워버리고 시스템을 빠져나오는 것으로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과거의 기억을 잃었지만 어쩌면 그것은 시스템이 잠시 인간성에 대한 기억상실을 조장했던 기억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새로운 선택은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낸다. 시스템과 대결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변화는 불가능하지 않다. 흔히들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나오는 이들이 느끼는 그 순간의 무한한 자유가 새로운 선택들을 가능하게 하듯이. 김석주 변호사가 차영우펌을 빠져나올 때 그를 향해 축복처럼 쏟아지는 햇살처럼. 변화는 가능하다.

<개과천선> 김명민의 딜레마가 담는 예사롭지 않은 질문들

 

<개과천선>의 이야기 전개는 생각보다 예사롭지 않다. 어느 날 겪은 기억상실로 인해 윤리적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김석주(김명민) 변호사라는 인물은 그 자체로 흥미로웠다. 같은 사람이지만 김석주는 과거와 현재가 분리되어 있는 것. 현재의 김석주는 과거의 김석주가가 저지른 잘못들을 스스로 고쳐나가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개과천선(사진출처:MBC)'

따라서 <개과천선>은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한 사람의 정체성이란 과거와 현재가 단절되지 않고 일관되게 흘러온 사적인 역사에 다름없다. 그런데 김석주 변호사는 기억 상실로 인해 이 정체성이 단절되어 버린 것이다. 현재가 과거를 부정할 때 과연 그 사람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터미네이터>나 최근 개봉한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패스트>가 보여주듯 과거를 바꾸려는 현재의 노력은 현재의 자신을 변화시킬 수밖에 없다.

 

<개과천선>이 놀라운 것은 이 드라마가 기업의 편에 서서 서민들의 힘겨움 따위는 신경쓰지도 않던 피도 눈물도 없는 변호사가 그저 서민들을 위한 변호사로 변신하는 이야기 정도를 다루는 단계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이야기였다면 김석주는 서민들의 슈퍼히어로로 그려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도 시청자들에게 꽤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줬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개과천선>은 단순한 서민들을 위한 슈퍼히어로 이야기를 선선히 던져버리고 진지한 정체성의 문제로 돌아간다. 그것은 기억상실로 개과천선한 김석주 변호사가 과거 약혼녀였던 유정선(채정안)을 만나면서부터 다시 시작한다. 김석주 변호사가 유정선에게 인간적인 끌림을 느끼게 되는 동시에, 유정선은 서민들을 나락으로 몰고 간 주가조작 혐의로 법정에 서고 구속을 당하게 된다.

 

여기서 김석주 변호사의 정체성 혼란에 의한 두 번째 딜레마가 시작된다. 첫 번째 딜레마가 서민들을 위한 변호사냐 아니면 가진 자들을 위한 변호사냐를 두고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려는 변호사로 재탄생된 김석주의 문제를 다뤘다면, 두 번째 딜레마는 이렇게 서민들을 위한 변호사로 변신한 김석주가 개인적인 사랑을 앞에 두고 겪는 문제를 다룬다. 변호사는 공적인 직업이지만 그 역시 지극히 사적인 감정을 가진 한 인간이라는 것.

 

무수한 사람들을 피해보게 만들고 그것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서민들을 생각한다면 개과천선한 김석주 변호사는 그들의 편에 서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 여인에게 점점 마음을 주기 시작한 한 남자의 입장에서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곤경에 처한 여인, 그것도 모든 죄를 뒤집어쓰게 된 여인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개과천선>은 올해 보기 드문 문제작이다. 그저 그런 판타지를 주는 단계를 넘어서서 인간의 딜레마를 탐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직업으로서의 변호사인가 아니면 한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인간으로서의 변호사인가. 또 공적인 일을 하는 변호사인가 아니면 한 사적인 존재로서의 변호사인가. <개과천선>은 능력을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이미 능력은 검증된 김석주라는 변호사가 서게 되는 딜레마의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질문한다.

 

아마도 이런 전개는 시청률면에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서민들을 위한 변호사로 개과천선하는 과정이 주는 통쾌한 카타르시스일 가능성이 높고, 또 한 여인을 위해 목숨을 걸고 변호하는 한 남자의 절절한 멜로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개과천선>은 이런 일반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 놀라운 드라마다. 그래서 <개과천선>이라는 드라마의 입장 또한 딜레마에 처하게 된다. 시청률인가. 아니면 좀 더 진지한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인가. 만일 후자라면 이 드라마는 비록 시청률은 떨어지더라도 그 어떤 드라마도 가지 않은 선택을 하게 되는 셈이다.

<개과천선><밀회>가 그리는 법 정의의 문제

 

최근 종영한 JTBC <밀회>에는 김인겸(장현성)이라는 변호사가 등장한다. 그는 서한그룹의 사위이면서 그 재벌가를 지키는 변호사지만 정략결혼으로 맺어진 그에게 가족이라고 손이 안으로 굽는 일은 좀체 없다. 그는 철저히 자기 이득에 따라 아무 쪽에나 붙을 수 있는 사람이다. 실제로 그는 서한그룹 비리의 증거를 갖고 있는 오혜원(김희애)을 구석으로 몰아붙이다가 거꾸로 그 증거를 공유하는 조건으로 그녀의 편으로 돌아선다. <밀회>가 그리는 김인겸이라는 인물은 아마도 가장 현실적인 변호사의 모습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소위 잘 나간다는 변호사들이 누구를 위해 일하고 어떤 일들을 하는지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드라마는 현재 방영되고 있는 MBC 수목드라마 <개과천선>이다. 이 드라마에는 차영우펌이라는 로펌이 등장한다. 차영우가 대표 변호사지만 이 로펌의 실질적인 에이스는 김석주(김명민). 그가 맡는 대부분의 일은 돈 많은 재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저지르는 온갖 비리와 악행들을 비호하는 것이다. 그는 로펌에 고용된 변호사로서 그 일이 어떤 일인가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다. 그저 회사의 샐러리맨으로서 이익이 되는 일을 하는 것뿐이다.

 

김석주는 일제에 강제 징용당한 어르신들의 반대편에 서서 일본기업을 변호하고, 재벌2세의 강간치상을 변호하면서 피해자 여자 연예인의 치부를 드러내 자살시도까지 하게 만든다. 그녀는 결국 죽은 재벌2세로 인해 살인혐의로 기소된다. 또한 그는 태안반도 기름 유출사고에 책임이 있는 기업을 변호하면서 어민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이 가지 않도록 무려 5년 간이나 사건을 질질 끌기도 한다. 결국 이 때문에 몇몇 절망한 어민들은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에 봉사하는 전형적인 변호사인 셈이다.

 

흥미로운 건 이 두 드라마가 모두 인물의 변화를 통해 상황을 역전시킨다는 점이다. 재벌가들의 하수인 역할을 해온 이들이 어떤 계기를 만나 마음을 고쳐먹는다는 것. <밀회>에서 오혜원은 순수한 청년 선재(유아인)와의 사랑을 통해 자신의 욕망이 부질없는 짓이라는 걸 알게 되고 결국 자신이 비호하던 서한그룹 재벌가의 비리를 공개하고 스스로 죗값을 받는 길을 걸어간다. 자폭을 선택함으로써 법 정의를 다시 세우는 것. <개과천선>의 김석주는 어느 날 우연히 당한 사고로 인해 기억을 잃게 되고 과거 자신이 했던 짓들을 되새기며 조금씩 재벌가가 아닌 서민 편으로 돌아서는 개과천선의 모습을 보여준다.

 

두 드라마가 모두 말해주는 건 법 정의라는 것이 어떤 인물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때 그 좋은 머리를 재벌가를 유지하고 비호하는데 써왔던 이들이 이제는 그들의 비리를 폭로하고 공격하는 입장에 선다는 점에서 이들 드라마는 현실에서 좀체 발견하기 어려운 판타지를 만들어낸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실에서 법은 정의의 편이 아니라 자본의 편이라는 것.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서민들을 위한 법은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작년 <변호인>이라는 드라마가 그토록 대중들을 열광시킨 이유는 바로 이 서민들을 위한 법 정의를 부르짖는 송우석(송강호)이라는 변호인이 슈퍼히어로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변호사가 아니라 변호인을 원한다. 변호사와 변호인의 차이는 그것이 직업적인 것이냐 아니면 인간적인 것이냐 에서 비롯된다. 직업적인 선택은 자본의 시스템에 지배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인간적인 선택을 희구하게 된다. 김석주 같은 자본의 첨병으로서의 변호사가 어느 날 억울한 이들을 위한 변호인으로 개과천선하는 것. 이것이 더 이상 판타지가 아닌 현실이 되는 세상은 과연 올 수 있을까.

MBC, 대중들의 편에 설 수는 없는 걸까

 

최근 <무한도전>은 향후 10년을 책임질 리더를 뽑는 선거특집을 방영했다.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아이템이고,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의 미래를 얘기하는 소재이지만, 그것은 또한 MBC라는 방송사나 나아가 정부가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멤버들이 공약으로 내세운 관료주의 타파투명성 확보등의 공약 문구는 그래서 지금의 MBC와 정부를 겨냥한 듯한 뉘앙스마저 풍겼다.

 

'개과천선(사진출처:MBC)'

결국 <무한도전>이 이러한 선거특집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시청자들과의 소통이다. 시청자들 편에서 시청자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들어주기 위함이고, 그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기 위함이다. <무한도전>에 대한 지지층이 많아지는 건 당연한 결과다. 자신의 편의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시청자 지상주의를 내세우고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최근 수목드라마로 방영되고 있는 <개과천선>은 피도 눈물도 없는 차영우펌의 변호사 김석주(김명민)가 어느 날 사고로 기억상실을 겪게 되고 자신이 변호라는 이름으로 해왔던 추악한 일들을 하나하나 되짚고 말 그대로 개과천선하는 드라마다. 김석주는 태안반도에 벌어진 기름유출 사건에서 사건을 일으킨 기업측에 서서 고통받는 어민들의 보상을 가로막았고, 승소하기 위해 한 여자 연예인의 치부까지 드러내 결국 그녀가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되게 만들었다.

 

자신이 자신을 돌아보는 흥미로운 구조를 가진 이 드라마는 결국 김석주가 어민들 입장을 자꾸 생각하게 되고, 또 자신이 궁지에까지 몰았던 여자 연예인을 위해 변호를 맡는 극적인 반전을 다룬다. 가해자인 자본과 대기업의 더러운 입으로만 살아왔던 그가 거꾸로 서민들과 피해자의 입장에 서게 되는 것. 무엇보다 변호사로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던 그가 기업이 아닌 서민들 편으로 돌아선다는 이야기는 그래서 MBC라는 방송사의 현 상황에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최근 MBC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은 실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단 몇 년만에 MBC는 너무나 다른 방송국이 되어버렸다. 지난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MBC는 대중들의 눈과 입을 대변해주는 방송국이었다. <PD수첩>이나 <뉴스데스크> 같은 뉴스 시사프로그램은 사회가 가진 부조리를 콕콕 집어내었고, 드라마왕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드라마에 대한 호평이 쏟아졌었다.

 

하지만 그 몇 년 사이 어떤 일들이 벌어졌나. 뉴스 시사 프로그램은 더 이상 대중들의 눈과 입이 되어주지 못했고 드라마들 역시 막장드라마의 일일과 주말 편성은 물론이고 역사왜곡의 위험성이 있는 사극을 버젓이 강행했으며 최근에는 일선 PD들의 자율성을 깨는 PD 교체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해할 수 없는 기자와 아나운서들의 인사이동이 진행 중이고, 능력 있는 PD들은 견디지 못하고 방송국으로부터의 이탈을 시도 중이다.

 

항간에는 <무한도전> 같은 프로그램이 MBC에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이 신기하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처럼 다시 대중을 위한 방송을 위해 쇄신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무한도전>의 외침을 귀 기울일 수는 없는 일일까. 그 좋은 제작 능력으로 자본과 권력의 편에 서기보다는 서민들의 편에 서는 개과천선은 불가능한 일일까. MBC는 지금 대중들을 외면하고 침몰하느냐, 아니면 다시 대중들의 편으로 돌아와 생존하느냐는 갈림길에 서 있다. 방송사의 근간은 자본과 권력이 아니라 대중들의 지지로부터 나오기 마련이다.

변호사들의 개과천선, 서민들에게는 판타지

 

우리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변호사가 서민들을 위해 변호하는 장면은 얼마나 될까. 아니 실제 현실에서는? 서민들이 변호사를 쓴다는 일은 그렇게 일상적인 일이 아니다. 적지 않은 돈이 들기 때문이다. 결국 변호사들의 일이란 돈 많은 이들을 의뢰인으로 삼았을 때 직업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물론 인권변호사 같은 특별한 존재들이 있지만.

 

'개과천선(사진출처:MBC)'

변호사의 개과천선이 주는 깊은 감동을 가장 잘 보여준 건 영화 <변호인>이다. 송우석 변호사(송강호)는 세법 변호사로 돈을 버는 지극히 평범한 속물 변호사에서 자신과 인연이 있는 국밥집 아들이 인권을 유린당하는 과정을 보면서 인권 변호사로 거듭난다. 서민들에게 자신들을 대변해주는 변호사가 일종의 슈퍼히어로처럼 여겨지는 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법에 의해 움직이고 그 법은 돈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돈이 아닌 억울한 서민들의 편에 서는 변호사는 그래서 서민들의 판타지이기도 하다.

 

MBC 수목드라마 <개과천선>의 김석주(김명민) 변호사는 최고의 로펌인 차영우펌의 에이스. 피도 눈물도 없는 그는 오로지 회사에 돈을 주는 재벌 의뢰인들의 편에 서서 그들에게 이득이 되는 변호를 해온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어느 날 사고를 당하고 기억상실을 겪게 되면서 그 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인물로 개과천선한다는 이야기가 이 드라마의 핵심 테마다.

 

엄청난 법 지식과 노련한 경험을 갖춘 이 변호사 슈퍼히어로는 사고 후 깨어난 병원에서부터 아무렇지도 않게 서민들의 일들을 척척 해결해낸다. 옆 병상에 있는 자동차 사고를 겪은 이가 보험회사 직원과 벌이는 실랑이를 지나가는 말처럼 툭툭 몇 마디 던지는 걸로 김석주 변호사는 문제를 해결한다. 카시트는 대물배상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보험회사 직원의 말에 대해 그는 만 8세 이하 아이들은 카시트에 태우는 게 의무화되어 있기 때문에 카시트가 고객 개인의 편의나 취향에 따라 장착된 설비가 아니라는 점을 들어 당연히 보험회사에서 대물배상 범위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또 병상에서 떨어져 다친 환자에게 병원측이 그건 환자의 부주의에 의해 발생한 2차 사고라며 병원비나 간병비 모두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고 하자, 김석주 변호사는 병원 내에서 충분한 보호장치를 하지 않았고, 병원 지배구역 내에서 일어난 일이며, 간호 수칙과 간호 매뉴얼을 100% 수행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병원측이 병원비, 간병비를 보상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법 조항과 적용에 대해 잘 모르는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모르면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런데 이 김석주 변호사는 뭐 대단한 일도 아니라는 듯 심드렁한 표정으로 몇 마디 던지는 것만으로 일을 척척 해결해낸다. 이것은 <개과천선>이라는 드라마가 대중들에게 기대감을 주는 가장 큰 이유다. 그 대단한 실력과 능력을 가진 자들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갖지 못한 서민들을 위해 쓴다는 것.

 

김석주 변호사의 옆자리에 위치해 그와 점점 가까워질 존재로서 이지윤 인턴(박민영)의 역할 또한 작지 않다. 그녀는 김석주 변호사의 변화를 가까이서 목도하는 인물이고, 그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곱씹게 해주는 역할이다. 물론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질 멜로는 그 인간적인 변화가 가져오는 달콤함 결과물이 될 수 있다.

 

왜 현실에서는 개과천선한 변호사를 만나기 힘들까. 그것은 그 직업적 선택이 결국은 자본에 귀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법이 정의를 구현하기는 쉽지 않은 일일 게다. 그래서일 것이다. 더더욱 <변호인>의 송우석 변호사나 <개과천선>의 김석주 변호사 같은 이들의 변신을 기대하게 되는 것은. 마치 사회적 부조리가 터져 나올 때마다 거꾸로 정의에 대한 욕구가 커지는 것처럼.

<닥터 이방인>, <개과천선> 그리고 <그것이 알고 싶다>의 김상중

 

그런데 말입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김상중이 버릇처럼 이렇게 말하면 다음에는 어떤 말이 나올까를 자못 기대하게 된다. 상대방의 입장을 그대로 전해주면서 거기에 어떤 의구심을 덧붙이는 이 전환용 멘트는 그래서 김상중의, 아니 나아가 <그것이 알고 싶다>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섹션TV 연예통신(사진출처:MBC)'

조금은 차가운 듯한 이미지에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얘기하듯 또박또박 내뱉는 대사는 김상중이란 배우를 딱딱한 이미지로 각인시킨 이유였다. 그래서 <내 남자의 여자>에서의 홍준표는 우유부단하고 뻔뻔하기까지 하면서 전혀 변화하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냈고, <추적자>에서의 강동윤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이랬던 김상중의 이미지가 조금씩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그것이 알고싶다>가 점점 세간의 주목을 받으면서부터였다. 상류층의 부조리를 폭로하면서 공분을 일으켰던 사모님의 수상한 외출이나, 영훈 국제중학교 비리를 다뤘던 수상한 배려 귀족학교 반칙스캔들같은 소재들은 대중들의 열렬한 공감을 얻었다.

 

그러면서 김상중의 차가운 이미지는 이지적이고 냉철한 이미지로 바뀌었다. 사회에 존재하는 부조리와 비리들에 대해서 좀 더 철두철미하게 다뤄줬으면 하는 대중들의 바람은 그래서 김상중의 그런데 말입니다를 기다리게 만들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점점 김상중의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며 신뢰를 쌓아갔다.

 

세월호 참사를 다루면서 엔딩에서 김상중은 MC로서가 아닌 한 개인으로서의 진심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 차디찬 바다 밑에서 어른들의 말을 믿고, 어른들이 구해주길 기다렸을 아이들과, 아직도 그 날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생존자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부끄럽고 무기력한 어른이라 죄송합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김상중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는 드라마에서의 시너지로 이어졌다. MBC <개과천선>에서 로펌 차영우펌의 대표 차영우를 연기하는 김상중은 돈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하는 대표 변호사지만 그 이미지는 귀여운 면까지 보이는 인물이다. 인턴으로 들어온 이지윤(박민영)에게 호감을 보이기도 하는 그는 그래서 냉혈한과 로맨티스트의 양면을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새롭게 시작한 SBS <닥터 이방인>에서 박훈(이종석)의 아버지 역할로 특별출연한 김상중은 아들의 앞날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김상중의 잔뜩 찡그린 듯한 얼굴은 아들을 걱정하는 한없는 자애로움을 표현해내기도 한다.

 

냉철하고 차가운 이미지로 각인되었던 김상중이 심지어 로맨티스트의 면모와 아버지의 자애로움까지 껴안을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나온 걸까. 그것은 그 이지적인 이미지가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 긍정화 되었기 때문이다. 때론 엄정하게 그런데 말입니다를 던지면서 때론 진심어린 눈물을 흘려주는 인간적인 면모까지. 김상중은 연기자로서 이미지를 가로막고 있던 어떤 벽 하나를 깼다는 점에서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배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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