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월화극, 조정석과 윤균상이 살아나려면

등장하는 주연들만 놓고 보면 이만한 기대작이 없다. MBC <투깝스>의 조정석이 그렇고, SBS <의문의 일승>의 윤균상이 그렇다. 전작이었던 작품들 속에서 이 두 배우가 거둔 성취는 도드라진 면이 있어서다. 조정석은 <질투의 화신>으로 코미디 연기의 대가임을 증명한 바 있고, 윤균상은 <역적>을 통해 감정 선이 남다른 카리스마와 액션 연기가 모두 가능한 배우라는 걸 입증한 바 있다. 그래서 <투깝스>와 <의문의 일승>에 시청자들이 채널을 고정시키게 된 데는 아마도 이 배우들의 지분이 가장 크다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잔뜩 기대감을 갖고 들여다본 이들 드라마는 어쩐지 생각만큼 만족스럽지가 못하다. 물론 이들이 보여주는 연기는 여전히 명불허전이다. <투깝스>에서 조정석은 사기꾼인 공수창(김선호)의 영혼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차동탁(조정석)이라는 인물을 연기해낸다. 차동탁이 굉장히 진지한 캐릭터라면 공수창은 어딘지 뺀질이에 바람둥이 캐릭터인지라, 이 둘을 오가는 조정석의 1인2역이 이 드라마가 주는 코미디의 원천이 되는 셈이다. 

게다가 공수창 역할을 맡은 김선호는 드라마에서는 새로운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그 역할을 잘 소화해내고 있다. 만일 이 드라마가 어느 정도 성과를 가져간다면 아마도 가장 큰 수확은 김선호의 발견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어딘지 남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그것은 이 드라마가 가진 ‘영혼 빙의’ 같은 황당한 설정 때문만은 아니다. 브로맨스 코미디가 만들어내는 웃음은 분명하지만, 그래서 이 드라마가 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웃음도 좋지만 그 속에 깔린 페이소스나 지향점 같은 것이 없는 코미디는 그저 휘발성이 될 가능성이 높다. <투깝스>가 그 괜찮은 연기조합에도 불구하고 조금 황당한 느낌을 주는 건 그래서다. 

이런 문제는 <의문의 일승>도 마찬가지다. 윤균상의 역시 믿고 보는 몰입도 높은 연기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설정이나 개연성은 너무 허술하다. 감옥을 들락날락한다는 그 설정 자체가 그렇고, 그 사형수 김종삼(윤균상)이 가짜 형사로 신분 세탁이 되어 비자금 천억 원의 행방을 찾는다는 이야기 전개도 어딘지 황당하다. 물론 그 비자금 이야기가 내포하고 있는 적폐에 대한 뉘앙스는 이 드라마의 메시지가 현실적인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는 걸 암시하지만.

이건 이야기나 설정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그것을 시청자들에게 설득시키는 과정의 문제로 보인다. <의문의 일승>은 빠른 전개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어떤 상황을 납득시키기 보다는 빨리 전개하고 그 속에 반전과 위기를 넣어 시청자들을 ‘놀라게 하는’ 쪽에 더 집중하는 편이다. 이러다 보니 디테일이 부족해지고 그 부족한 디테일은 개연성 부족으로 다가온다. <의문의 일승>이 보완해야 할 건 이야기의 속도보다는 이 인물의 행동 동기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디테일한 개연성이 아닐까. 

그래서 <투깝스>나 <의문의 일승>은 조정석이나 윤균상 같은 배우들이 만들어낸 기대감을 생각해보면 2% 부족한 아쉬움을 갖고 있다. <투깝스>가 그 코미디 속에 드라마가 하려는 메시지를 담아내는 부분이 부족하다면, <의문의 일승>은 빠른 전개만큼 이를 납득시키고 몰입시키는 디테일들이 부족하다. 이 각각의 부분들이 향후 어떻게 채워질 것인가가 월화극 지상파 성패의 향방을 가르지 않을까. 과연 마지막에 웃는 배우는 누가 될까. 조정석일까 윤균상일까.(사진출처:MBC,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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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의', 이런 허술한 대본으로 제대로 된 일승 가능할까

뭐 이런 허술한 드라마가 있을까. 이야기와 액션은 폭주하지만 시청자들은 그 폭주하는 전개에 이입이 잘 되지 않는다. 이유는 너무나 기본적인 걸 이 드라마가 지키지 못하고 있어서다. 개연성 부족. 사형수가 ‘어쩌다 탈옥수’가 된다는 그 설정 자체가 비현실적이고, 그럴 듯한 과정도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다. 새로 시작한 SBS 월화드라마 <의문의 일승>. 이렇게 해서 과연 일승이라도 할 수 있을까.

물론 모든 드라마가 현실성을 추구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만화 같은 전개라고 해도 나름의 개연성은 주어야 하지 않을까. 무슨 감옥이 마음만 먹으면 나갔다 들어왔다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버렸을까. 또 탈옥한 마당에 시체를 처리하는 의문의 인물들을 만나 쫓기게 되는 상황이 마침 벌어질 확률은 얼마나 될까. 

<의문의 일승>에 대한 기대를 만든 건 윤균상과 정혜성 같은 매력적인 배우가 주인공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윤균상은 <육룡이 나르샤>, <역적>, <닥터스> 같은 작품을 거치며 성장 가도를 걷는 배우이고, 정혜성은 <구르미 그린 달빛>과 <김과장>을 통해 매력적인 연기자라는 걸 증명했던 배우다. 그러니 이 두 사람의 조합이 어떤 그림을 그려낼 것인가에 대한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제 아무리 배우들이 출중해도 역시 드라마는 대본과 연출이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의문의 일승>은 대본이 너무 허술하다. 사형수에서 탈옥수 그리고 이제는 형사 역할로 변신하는 인물이 바로 오일승(윤균상)이다. 결코 쉽게 납득될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다. 그 변화 과정에 대한 디테일한 설득이 이뤄져야 비로소 이 이야기가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얘기다.

오일승이 탈옥을 결심하게 되는 그 이유도 사실 너무 약하다. 자신 때문에 살인 공범 누명을 쓰고 감방에 들어온 딱지(정성우)의 여동생 은비(김다예)을 노리는 감옥 동기의 살인을 막기 위해서가 그 탈옥의 이유다. 그렇게 탈옥해 은비를 살해하려는 범인을 막는 과정도 저게 가능할까 싶은 개연성의 부족을 보인다. 

옥상 물탱크에 묶어놓고 물이 차올라 죽을 위기에 처한 은비를 구하는 과정은 시청자가 바라보기에 끔찍한 장면일 수밖에 없다. 은비를 구하기 위해 나서는 오일승이 형사들과 대치하고 결국 물탱크에 구멍을 내서 구하고는 유유히 사라지는 그 과정도 어떻게 된 것인지 생략되어 있다. 대본도 대본이지만 이 물탱크에서 은비를 구해내는 과정의 연출은 스펙터클하긴 해도 잘 납득이 되진 않는다. 

아마도 <의문의 일승>은 다소 만화적인(그렇다고 모든 만화가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야기에 연출을 의도하고 있다고 말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납득되지 않는 상황의 반복 끝에 남는 건 잔인하고 자극적인 장면들뿐이지 않을까. 특히 강간살인을 의도하는 범인의 면면들은 너무 자세하게 등장해 보기에 불편할 수 있었다. 

첫 회이기 때문에 시선을 잡아끌려는 목적이 강했을 것이다. 그래서 좀 더 스펙터클하고 빠른 전개를 보여주려 했을 테지만, 인물과 스토리에 대한 납득 없이 그저 보여주기식 전개는 오히려 드라마에 대한 몰입만 방해할 뿐이다. 이런 대본과 연출로는 제 아무리 윤균상 같은 배우라도 매력을 드러내기가 어려울 수밖에. 첫 방의 부족한 면들은 과연 <의문의 일승>은 채워나갈 수 있을까.(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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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김수현·설리 노출조차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 괴작

이 정도면 어쨌든 영화를 보겠다고 마음먹은 이들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보게 되지 않을까. 영화 <리얼>의 평점은 4,5점대에 머물러 있다. 보통 영화가 개봉 후 바로 이런 평점을 받게 되면 흔히들 ‘평점 테러’를 염두에 두지만 이건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영화 제목 그대로 ‘리얼’ 반응이 그렇다. 영화에 따라붙는 댓글들에서 좋은 평가는 눈을 씻고 찾아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니. 

사진출처:영화<리얼>

영화를 보고 나오는 사람들은 이 두 시간이 넘는 런닝타임을 버티기가 못내 힘들다는 듯 한숨을 내쉰다. 몇몇 관객들은 헛웃음이 섞인 “대박”이라는 반응을 내놓는다. 물론 그건 영화가 대단하다는 뜻이 아니다. 정 반대의 의미로서의 ‘대박’이다. 물론 관객 중에는 자기 돈을 내고 들어왔지만 못내 못 버티고 중간에 박차고 나가는 이들도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참혹한 결과를 만들어낸 걸까. 

<리얼>은 시에스타라는 카지노 오픈을 앞둔 조직의 보스 장태영(김수현)이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나누는 첫 시퀀스까지만 해도 흥미로웠다. 두 개의 인격이 그에게 존재하고, 그래서 다른 인격인 르뽀 작가를 제거하기 위해 의사는 인격이 존재하지 않는 식물인간에게 그 르뽀 작가의 인격을 집어넣은 후 살해함으로써 장태영이 하나의 인격으로 살 수 있다는 제안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식물인간에게 투입된 르뽀 작가의 인격이 죽지 않고 살아남게 되면서 두 명의 장태영(보스 장태영과 르뽀 작가 장태영)이 서로 자신이 리얼임을 증명하기 위해 상대를 제거하려는 대결을 벌이게 된다. 

황당한 이야기처럼 보이고 또 실제로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액션들은 마치 원펀맨(원펀치맨)처럼 한 방에 날아가 버리는 초현실적인 느낌으로 그려진다. 그러한 초현실적인 이미지들을 영화는 마약에 의한 환상인 것처럼 그려내고 있지만 더 큰 그림 안에서 들여다보면 그것 자체가 하나의 장태영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두 인격의 대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죽지 않고 살아남아 재력을 통해 성형수술을 하고 시에스타의 지분 절반을 갖게 된 르뽀작가 장태영은 보스 장태영의 짝퉁처럼 인식되지만, 차츰 그 자리를 장악해나가고 결국 짝퉁과 실제가 뒤바뀌는 상황까지 나간다. 그리고 영화는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누가 리얼이고 누가 짝퉁인지 알 수 없는 혼돈 속으로 들어간다. 

시에스타라는 카지노가 의미하는 자본이라는 상징과, 카지노 칩에 들어있는 마약이 의미하는 자기 존재를 잃어버리게 만드는 욕망의 힘. 그 속에서 정체성을 잃어가는 현대인들. 영화는 아마도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 현대인들에게 진짜 나는 어떤 존재인가라는 자못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의도일 뿐, 영화는 그 의도를 관객에게 전혀 설득시키지 못한다. 이렇다 할 내적 개연성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영화는 그래서 그 표피적인 것들만 남게 되었다. 마약, 노출, 섹스, 폭력이 그것이다. 

김수현이라는 이름값에 110억이라는 제작비만으로도 팬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보게 만드는 영화일 수 있었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제대로 된 내적 개연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관객들을 설득시키지 못하게 되자 결국 남게 된 건 자극들뿐이다. 하지만 그 자극들조차 지나치게 과잉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도 도드라져 보이기 어렵게 되었다. 심지어 전라의 노출이 있어도 그다지 자극적으로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는 것. 

사실 김수현의 팬이라고 해도 납득하기가 쉽지 않은 영화다. 그러니 영화에 대한 논쟁적인 이야기들이 전면에 나오지 않고 대신 김수현과 설리의 파격 노출 같은 이야기만 가득 채워지게 되었다. 물론 1인2역을 소화해내는 김수현의 연기력이 아깝지만 어쩌랴. <리얼>은 그 과함이 독이 되어 문제작이 되지 못하고 관객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괴작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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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 아침드라마에서 흔히 사용하는 막장의 기술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답답하다’는 것이다. 아니 ‘답답하다’는 걸 넘어서 ‘해도 너무한다’는 것.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건 드라마 전개가 끝없는 도돌이표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껏 흘러온 구성을 보면 지독하게 당하는 박정우(지성)가 그걸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지만 번번이 차민호(엄기준)에 의해 그게 좌절되는 상황의 무한반복이다. 

'피고인(사진출처:SBS)'

잃어버린 기억 속에서 자신이 아내를 죽인 범인이 아닌가 하는 그 충격적인 상황에서 간신히 기억을 찾아 벗어나고, 차민호에 대한 복수를 꿈꾸며 딸이 살아있다는 걸 알고는 스스로 칼에 맞아 병원으로 이송되어 딸을 만나게 되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감옥으로 돌아오고, 그래서 결국 탈옥한 후에는 어렵게 딸을 만나 자수함으로서 반전의 기회를 갖지만 차민호가 결정적 증거를 조작하고 심지어 박정우를 돕기 위해 자수한 성규(김민석)마저 죽음을 맞이하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무한 도돌이표. 게다가 그 이야기 전개는 거의 막장에 가깝다. 차민호의 부친인 차영운 회장(장광)이 힘을 써서 박정우의 무고를 증명할 결정적 증거인 칼에 대한 국과수의 조사를 조작하는 이야기는 그게 어떻게 이뤄진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저 차회장은 그런 것 정도는 쉽게 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게 이 드라마가 던지는 설명이다. 또한 자수한 후 진실을 밝히려던 성규가 구치소에서 살해당한다는 것에도 그다지 그럴 듯한 개연성 있는 설명은 없다. 다만 차민호라면 그 정도 힘은 당연히 발휘할 수 있다는 식으로 처리되어 있을 뿐이다. 

즉 이런 개연성 없는 마구잡이식의 반전을 노리는 전개는 사실 시청자들을 낚기 위한 작가의 의도라고밖에 볼 수 없다. 끊임없이 박정우의 반격을 저지시키고 지연시킴으로써 시청자들을 답답하게 만들고 그래서 뒷부분에 이어질 사이다에 대한 갈망을 증폭시키려는 의도. 이건 아침드라마에서 흔히 사용하는 막장의 기술이다. 

하지만 이렇게 막장 전개가 가속화될수록 <피고인>의 시청률은 갈수록 치솟는다. 25% 시청률을 넘긴 이 드라마는 이제 30%를 넘기지 않을까 조심스런 예측을 내놓고 있다. 시청자들은 어째서 이런 막장드라마가 이렇게 시청률이 높을까 이야기하지만, 해답은 그것이 바로 막장드라마이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개연성을 무시하고 드라마의 충실한 이야기 전개보다는 시청자들을 잡아끌기 위한 낚시에 몰두함으로써 당연히 가져가는 수치. 그게 막장드라마의 유일한 존재의미가 아닌가. 

<피고인>은 여기에 일종의 위장술 같은 걸 사용한다. 그건 실체인 막장드라마를 가리기 위한 방법이다. 그 첫 번째는 연기에 있어서 믿고 보는 연기자인 지성을 주인공으로 세워 몰입도를 높여놓았다는 점이다. 설마 지성이 저런 놀라운 연기를 보여주는데 막장이겠어, 하는 착시효과가 이 드라마의 초반 몰입을 만들어주었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지성의 존재감이 드라마에서는 결정적으로 중요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기존의 막장드라마들이 흔한 가족드라마의 변형으로서 불륜과 출생의 비밀이 덧붙여진 가족복수극을 그려냈던 것과는 달리, <피고인>은 장르물에 막장드라마의 기술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시청자들로서는 미드에서나 많이 봐왔던 소재인 감옥이야기라는 장르적 외피를 보며 이 드라마가 주는 몰입감이 막장드라마의 기술 때문이라는 걸 부인했을지 모른다. 

<피고인>이 만들어낸 막장 장르극이라는 새로운 형태는 그래서 시청층의 외연을 넓혀놓았다. 막장드라마의 주 시청층이었던 중년 여성들에게는 익숙한 전개를 제공하면서도 이 드라마는 그간 막장드라마에 시큰둥했던 중년 남성시청자들마저 장르의 외피로 위장된 막장드라마로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여러모로 <피고인>의 성공은 막장드라마와 장르극의 혼합이라는 새로운 막장드라마의 시대를 예고하게 한다. 장르물이 갖는 미드적인 세련됨에 막장드라마가 갖는 빠른 전개, 그리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함으로써 몰입감을 높이는 방식. 그래서 높은 시청률을 가져가지만 시청자들로서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보다는 어딘가 작가가 쳐놓은 거미줄에 걸려 있는 듯한 불편함을 주는 드라마. 과연 이러한 변칙적인 드라마의 탄생은 괜찮은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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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 해도 너무한 고구마 전개, 개연성 부족

감옥에서만 빠져나오면 좀 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은 박정우(지성)가 탈옥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감옥 안과 다른 느낌이 없다. 그러고 보면 <피고인>의 지지부진한 전개와 답답함은 단지 감옥이라는 틀에 주인공이 갇혀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던 듯싶다. 어떤 메시지를 담은 이야기 전개 그 자체보다는 시청자를 고구마 감옥에 가둬두고 질질 끌고 다니려는 의도가 더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다. 

'피고인(사진출처:SBS)'

<피고인>이 시청자를 낚는 그 능력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드라마는 주인공 박정우를 한없이 힘겨운 상황으로 몰아넣음으로써 시청자들로 하여금 그가 그 상황을 벗어나기를 희구하게 만든다. 하지만 박정우의 소망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다분히 의도된 전개다. 소망을 이루는 것을 지연시킴으로써 시청자들이 참기 어려운 갑갑함을 느끼게 만들고 아주 조금씩 소망을 향해 나아가게 해준다. 

처음에는 자신이 아내와 딸을 죽였다는 자책감에서 벗어나기를 소망하고, 기억을 서서히 되찾으면서 그 진범을 알게 되고는 복수를 소망하게 만든다. 또 감방에서 박정우가 도움을 줬던 성규(김민석)가 마치 아내와 딸을 죽인 것처럼 오인하게 만들고 사실은 그가 딸을 데리고 보살피고 있다는 걸 나중에 알려준다. 복수에 대한 소망과 딸을 만나고 싶은 소망 그리고 탈옥에 대한 소망을 계속 갖게 만들고 그걸 지연시킴으로써 시청자들을 붙잡아두는 전개. 

탈옥을 한 후에도 이런 전개는 변함이 없다. 딸 하연(신린아)이를 만나기 위해 박정우가 그를 추격하는 경찰들을 따돌리는 등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드라마 마지막에 보여주는 건 그의 딸이 차민호(엄기준)에게 먼저 붙잡혔다는 사실이다. 탈옥을 하면 무언가 고구마 전개에 있어서 숨통이 트일 것으로 여겼던 시청자들로서는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런 지연 전개와 함께 <피고인>의 문제로 지목되는 건 자칫 막장으로 흐를 수 있는 개연성 부족이 너무 많이 엿보인다는 점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죽은 걸로 알려져 있는 박정우의 딸이 이렇게 몇 달 째 가족들과 떨어져 성규와 함께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게다가 어찌된 일인지 하연이는 이 모든 상황들을 다 받아들이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탈옥해 금방이라도 붙잡힐 것처럼 보이던 박정우가 갑자기 나타난 서은혜(권유리) 변호사의 차를 타고 도주하는 설정도 그렇다. 서은혜라는 인물이 왜 이렇게 위험한 일에 뛰어들어 심지어 탈옥을 돕고 있는가 하는 점은 아무런 설명도 되어 있지 않다. 간수인 윤태수(강성민)가 탈옥하는 박정우와 그 일행에게 총을 겨누는 다른 간수를 제지하는 장면도 너무 간단히 처리되어 있다. 탈옥이나 탈옥을 돕는 일이 그렇게 간단한 일일까.

물론 드라마라고 해도 완벽하게 개연성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청자를 고구마 감옥에 가두는 지연 전개를 하기 위해, 일종의 충격요법으로 엔딩에 박정우를 절규하게 만드는 반전상황을 집어넣기 위해 개연성이 무시되는 건 문제로 지목될 수밖에 없다. 지금 <피고인>은 끝없이 시청자를 붙잡아 두기 위한 것에만 더 몰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고구마 전개는 언젠가 끝날 것이다. 어쨌든 드라마는 어떤 갈등과 문제를 해결해야 끝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18부작으로 2부를 연장시킨 <피고인>이 18부 마지막까지 고구마만 던지다 끝에 가서 겨우 사이다 한 잔을 주는 전개를 보인다면 시청자들로서는 허탈해지지 않을까. 그것도 어떤 일관된 메시지를 전하기보다는 그저 시청률을 얻기 위한 목적에 그치게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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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과 ‘역적’, 시청률과 호평 왜 따로따로 놀까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의 시청률이 갈수록 치솟는다. 7회 만에 20%를 넘기더니 8회에는 22.2%(닐슨 코리아)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압도적 시청률만큼의 호평은 가져가지 못하고 있다. 매회 기억을 잃은 박정우(지성)가 그 망각의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단서 하나씩을 얻어가는 이야기 구조는 고구마 전개라는 볼멘소리가 나오게 만든다. 게다가 그 박정우를 제거하기 위해 쌍둥이 형을 죽인 살인자이자 그 사장 자리를 꿰찬 재벌3세 민호(엄기준)가 감옥, 그것도 박정우가 있는 방으로 들어온다는 설정은 현실성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피고인(사진출처:SBS)'

그런데 어째서 <피고인>은 이런 개연성을 깨는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치솟는 걸까. 그건 박정우라는 인물이 겪는 고통에 시청자들이 정서적으로 공감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여기에 지성의 연기는 절대적이다) 예상을 깨는 스토리가 주는 반전 효과의 힘이 적지 않다고 여겨진다. 박정우가 같은 감방에서 도와줘 풀려난 성규(김민석)가 갑자기 자신이 그의 딸을 죽였다고 고백하는 장면이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고, 알고 보니 그가 차마 그의 딸을 죽이지 못하고 데리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또 시청자들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반전이라고 해도 재벌3세가 사형수를 직접 제거하기 위해 감옥을 저 스스로 찾아들어온다는 설정의 이야기는 나가도 너무 나간 느낌이다. 즉 이것은 <피고인>이 시청자들이 상상할 수 없는 더 센 상황을 만들어내기 위해 자의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고 있는 인상을 줄 수밖에 없다. 당연히 시청률은 오른다. 개연성을 파괴하는 이야기만큼 자극적인 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래서는 호평이 따를 수는 없다. 

반면 MBC 월화드라마 <역적>은 연일 호평이 쏟아지는 것에 비해 시청률은 10%에서 답보 상태다. 경쟁작이 <피고인>이기 때문에 이 시청률은 물론 <피고인>과의 대결구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역적>의 이야기는 그 세세한 면들을 들여다보면 홍길동전을 재해석한 요소들이 많이 보이지만, 전반적으로는 쉽게 접근할 수 있을 정도로 쉽다. 그런데도 왜 시청률은 반등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걸까. 

<역적>은 사극의 틀을 갖고 있지만 굉장히 진보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모개(김상중)라는 노비가 주인을 살해하고 면천되어 잘 살아가는 모습은 체제 반항적인 이 사극의 방향성을 분명히 해준다. 무엇보다 홍길동이 반쪽 양반의 피를 물려받은 서자가 아니라 순수 노비 아모개의 아들이라는 설정은 <역적>이 갖고 있는 계급성을 분명히 한다. 아모개가 길동에게 장수가 되라고 하고, 그의 형인 길현에게는 과거시험을 보라고 하지만, 그들이 모두 이를 거부하고 방물장수가 되고 아버지 일을 돕는다는 이야기도 기존 시스템에 편입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드라마의 의지처럼 읽힌다. 

그래서 <역적>은 요즘 같은 시국에 더 많은 호평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금수저 흙수저 하지만 흙수저들이 금수저의 시스템에 편입되기보다는 저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찾기 때문이다. 여기에 시청자들을 공분케 하는 악역으로 등장한 참봉부인 박씨(서이숙)의 면면들은 작금의 현실을 떠올리게 만든다. “충”을 내세우며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아모개와 그 식솔들을 모두 죽이겠다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시청자들은 현재의 ‘애국’을 내세워 진실을 외면하려는 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역적>은 이처럼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상황들과 그 속에서 시스템을 거부하고 스스로 역적이 되어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현재의 시청자들로 하여금 호평을 쏟아내게 만든다. 하지만 시청률이 따라주지 않는 건 아무래도 사극의 주시청층이라고도 할 수 있는 보수적인 장년층들에게는 드라마가 너무 리버럴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인터넷에 쏟아지는 호평은 젊은 세대의 목소리가 많지만, 역시 지상파 드라마의 시청률이란 보수적인 장년층의 힘을 무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몇 년 동안 보수화되어버린 MBC의 이미지 역시 <역적>과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 게 사실이다. 

시청률은 <피고인>이 가져갔지만 호평은 <역적>에 쏟아진다. 물론 완성도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이지만 그럼에도 <피고인>도 <역적>도 근본적으로는 시대정신을 잘 담아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무고한 이들이 감옥에 들어가거나 고초를 겪는 상황이 어째서 현대극인 <피고인>이나 사극인 <역적> 모두에서 등장하고 있을까. 시청률과 호평은 따로 놀고 있지만 두 드라마의 정서적 지반이 비슷한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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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애의 ‘사임당’, 첫 방이 남긴 가능성과 문제들

SBS 새 수목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는 굳이 타임슬립 설정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사임당>은 그저 사극으로서 사임당이라는 인물을 재조명하지 않고, 굳이 현재의 인물인 서지윤(이영애)이 여러 사건을 통해 과거 사임당이었던 때로 돌아가는 설정을 갖고 있다. 서지윤은 펀드매니저의 아내이자 한 아이의 엄마 그리고 한국미술사를 전공한 시간강사로서 교수임용을 간절히 바라는 워킹맘. 그녀는 교수를 시켜주겠다던 지도교수 민정학(최종환)으로부터 버려진 후 사임당의 기록으로 추정되는 일기와 미인도를 발견하면서 점점 사임당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교통사고 후 무의식중에 사임당 시절로 돌아간 그녀는 그것이 단지 꿈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사임당, 빛의 일기(사진출처:SBS)'

이렇게 현재의 서지윤과 사임당이 타임슬립 설정으로 묶여지게 만든 까닭은 무엇일까. 그 이유는 명백하다. 서지윤이 처한 현모양처 워킹맘으로서의 삶을 과거 사임당이라는 인물을 통해 되돌아보려는 것이다. <사임당, 빛의 일기>는 우리에게 현모양처 이미지로 5만원권에 박제된 사임당을 깨워 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술가이자 워킹맘으로서의 그녀의 이야기를 다시금 쓰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History’가 아닌 ‘Herstory’로. 

그러니 이렇게 굳이 타임슬립 설정을 사용한 건 우리가 알고 있는 사임당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들을 깨기 위함이다. 현모양처 사임당이 아닌 자신의 예술세계를 끝까지 밀어붙인 당당한 예술가로서의 그녀를 재조명하겠다는 것. 또한 서지윤이 사임당 시절로 돌아가는 그 이야기는 현재의 인물인 서지윤이 스스로 현모양처이자 워킹망으로 살아가려 안간힘을 쓰는 그 삶 자체를 사임당이라는 인물을 통해 되돌아보는 일이 되기도 한다. 즉 타임슬립 설정은 판타지지만 사임당이란 인물에 대한 재조명과 현재의 여성으로서의 삶 양측을 함께 들여다보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하지만 의도는 의도일 뿐, 드라마는 시청자들이 몰입할만한 스토리의 개연성의 힘으로 굴러가는 것이다. 따라서 <사임당>이 먼저 해야 하는 건 이 갑자기 등장한 서지윤이 과거로 돌아가 사임당이 되는 타임슬립이 부자연스럽지 않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그만한 이유와 근거가 있다는 걸 밝히는 일이다. 만일 이 부분이 그럴듯하지 않으면 그 의도는 자칫 너무 자의적인 일이 되어버리고 나아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갖게 만들 위험성도 있다. 

남편 사업이 망하고 초라해져버린 집안의 아내이자 며느리, 엄마로서의 삶과 또 그토록 교수가 되기를 바랐지만 이용해먹을 대로 이용해먹고 버린 지도교수로 인해 시간강사 자리조차 빼앗기게 된 워킹우먼으로서의 삶, 여기에 지도교수가 주장했던 안견의 ‘금강전도’가 진품이 아니라는 의심을 하면서도 묵과했던 학자로서의 삶. 이런 것들이 서지윤이라는 인물의 절박함을 만들어내고 그로 인해 과거 사임당 시절로 타임슬립하는 것이지만, 그 계기가 교통사고 같은 지극히 평이하고 어찌 보면 다른 타임슬립 장르에서 무수히 써온 방식을 답습한 건 조금 안이한 느낌을 준다. 이 부분이 시청자들에게 이 드라마의 근간이 되는 타임슬립 설정을 설득시키는 중요한 신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좀 더 개연성에 신경 써야 했던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생각해보면 여러모로 타임슬립이란 설정은 파격이다. 다른 인물도 아니고 사임당은 특히 최근 들어 주목되는 인물이고 또 그렇기 때문에 곡해되기도 쉬운 인물이다. 게다가 사임당을 연기하는 배우 이영애에 대한 오해와 선입견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굳이 현대적 인물이 사임당이 되고, 그 사임당 역할을 이영애가 연기하는 그 사실들 역시 곡해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런 오해들을 뛰어넘으려는 것이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지만 그러려면 타임슬립 같은 파격적인 설정보다는 그저 그 인물을 정면으로 재조명하는 방식이 훨씬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이제 겨우 2회가 끝났을 뿐이다. 그러니 향후 현재의 인물인 서지윤의 삶과 사임당의 우리가 몰랐던 삶이 겹쳐지면서 만들어낼 이중적 효과, 즉 과거 사임당에 대한 재조명과 현재의 여성 서지윤의 각성이 어쩌면 의외의 몰입을 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다시금 이 타임슬립 설정이 왜 필요했는가를 인물의 심리적 개연성을 통해 충분히 납득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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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우연을 인연으로 엮어주는 공간의 마법

 

온 우주가 엮어주는 인연? 그들은 어떻게 그리도 우연의 만남이 반복되는 걸까. KBS <공항 가는 길>의 최수아(김하늘)와 서도우(이상윤)는 이상할 정도로 인연이 이어진다. 그 첫 번째 인연은 최수아의 딸 효은(김환희)과 서도우의 딸 애니(박서연)가 유학중 홈스테이 룸메이트로 지낸 데서부터 시작한다. 애니가 사고로 죽자 딸의 시신과 유품을 수습하러 가는 길에 최수아와 서도우는 만나고 마침 애니의 유품이 든 가방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그걸 기다리며 두 사람은 공항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공항 가는 길(사진출처:KBS)'

애니의 죽음은 최수아와 서도우의 관계를 이어주는 끈이 된다. 그것은 딸을 둔 부모로서의 공감대이면서 죽음을 애도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공감대이기도 하다. 그 공감대는 그래서 두 사람의 인연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남편 박진석(신성록)과 절친인 송미진(최여진)이 오래 전부터 관계를 맺어왔다는 걸 알게 되고 모든 일들이 뒤틀어지게 되면서 최수아는 더 이상 서도우와의 관계를 이어가지 못한다. 자신의 일탈 때문에 모든 것들이 잘못되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다.

 

결국 최수아는 딸을 데리고 무작정 떠난 제주도에서 다시금 정착해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 한다. 하지만 최수아와 서도우의 끊어져보였던 인연은 다시금 제주도에서 이어진다. 그것은 최수아가 막연히 꿈꾸던 공간이 바로 허허벌판에 불어오는 조용한 바람과 하늘을 가르는 전깃줄들 위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새들을 볼 수 있는 제주도의 한 마을이었고, 마침 돌아가신 서도우의 모친이 자신의 매듭 작품이 전시됐으면 하는 공간으로 이야기한 곳이 바로 제주도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물론 우연의 일치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우연 밑에는 필연이 감춰져 있다. 즉 최수아와 서도우가 만나서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최수아가 했던 제주도의 어느 바람 많지만 조용한 곳의 이야기는 어쩌면 서도우가 어머니의 유언으로 그녀의 작품 전시 공간을 생각할 때 막연히 떠올렸을 풍경이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두 사람은 저 마다 겪게 된 절망감(최수아는 남편과 친구 문제로 서도우는 어머니의 죽음으로)을 극복하기 위해 제주도라는 공간을 떠올렸고 찾아왔을 수 있다.

 

물론 이건 추정이지만 이야기는 독자들의 추정을 하나의 개연성으로 삼기도 한다. <공항 가는 길>에서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만남이 그저 우연의 남발이 아니라 어딘지 신비로운 인연처럼 여겨지게 되는 건 그래서다. 그런 만남은 사실 굉장히 확률이 낮은 것이지만, 공항이나 제주도 같은 특정한 느낌을 주는 공간을 매개로 하고 거기에 개인적인 욕망과 그들이 관계를 통해 서로에게 했던 이야기들 같은 것들이 얹어지면 의외로 가능성이 있는 만남으로 여겨지게 된다.

 

이것은 공간의 마법이다. 우리는 공간을 그저 물리적인 위치 정도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공간이 머금고 있는 이야기들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만들어낸다. 굉장히 우연히 아는 사람을 어떤 공간에서 마주쳤을 때 어떤 경우에는 두 사람이 똑같이 떠올리는 어떤 공통의 기억이 그들의 발길을 그 곳으로 이끌었을 수 있다.

 

<공항 가는 길>에서 최수아와 서도우가 주로 공항에서 만나게 되는 건 그 공간이 주는 상징(일탈의 설렘과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곳이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의 공감대로 이어주는 공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마음속으로 그리워하던 누군가를 우연히 만나는 것은 굉장히 확률이 낮은 일이지만, 그 그리워하는 마음들이 그들의 발길을 어느 한 공간(그것도 두 사람의 추억이 있는)으로 향하게 하고 그래서 거기서 우연히 그들이 만나게 되는 일은 그래도 가능할 것 같은 일이다.

 

<공항 가는 길>의 이 공간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만남과 헤어짐은 그래서 여타의 멜로드라마들이 갖고 있는 만남과 헤어짐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마치 하늘 위에서 공간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헤어진 사람들이 그들이 나누었던 어떤 작은 이야기나 기억 같은 것이 계기가 되어 다른 곳에서 다시 만나는 그 과정들을 관조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이 관조적 관점은 우리가 인연이라고 부르는 관계의 신비함을 드러내면서 어떤 위로와 위안을 준다. 마음 아픈 이별을 하기도 하지만 언젠가 만날 사람은 그 공유된 기억을 통해 발길이 이끌린 어떤 공간에서 결국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건네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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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의 너무 많은 설명들, 어쩔 수 없는 한계인가

 

MBC 수목드라마 <W>는 웹툰의 세계와 현실 세계가 서로 부딪치고 겹치는 독특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금껏 드라마에서 좀체 다루지 않았던 설정들이기 때문에 낯설지만 동시에 참신한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웹툰 속 주인공인 강철(이종석)이 현실 속 인물인 오연주(한효주)와 사건으로 서로 엮어지며, 강철과 진범의 팽팽한 대결 구도 속에서 피어나는 현실과 가상을 뛰어넘는 사랑이야기가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W(사진출처:MBC)'

<W>는 판타지 설정이기 때문에 그 안에 어떤 법칙 같은 것들이 세워졌다. 이를테면 웹툰 속에서 현실로 나가려면 어떤 충격적인 엔딩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오연주는 맥락 없이 강철의 뺨을 때리고 갑자기 키스를 하기도 한다. 웹툰의 세계와 현실 세계는 처음에는 웹툰을 그리는 모니터로 연결되어 있었지만 차츰 인물들이 각성하며 세계를 넘나드는 설정으로 바뀐다. 또한 웹툰의 인물들은 그 존재의미를 잃어버리면 조금씩 사라져간다.

 

이런 법칙들은 나름 이해가 가는 것들이다. 그건 시청자들이 생각하기에 웹툰 속에서 벌어질 법한 일들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름의 개연성은 그래서 <W>라는 황당할 수 있는 판타지 설정을 가능하게 해주는 중요한 장치들이다. 여기에 남녀 주인공의 멜로는 이 불가능한 상황을 이어주는 힘을 발휘한다. 두 사람이 이어지는 걸 보고픈 시청자들의 욕망은 심지어 개연성의 부족 또한 채워주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의 선은 있다. 즉 새로운 설정들이 계속 해서 생겨나기 시작하면 제 아무리 판타지 설정이라고 해도 작품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갑자기 각성한 범인이 이 세계를 그린 작가인 오성무(김의성)의 얼굴을 빼앗아 방송국에서 총기난사사건을 벌이는 장면은 충격적이지만 어떤 면으로 보면 너무 개연성에 있어서 튀는 장면처럼 보인다. 오성무의 눈 코 입 없는 얼굴은 섬뜩하지만 그런 일이 가능할까 하는 점에서는 이야기가 너무 나간 듯한 느낌을 줄 수밖에 없다.

 

이렇게 일단 사건이 마구 터지고 그 후를 수습하고 나름의 개연성을 이어붙이는 건 그래서 강철의 몫이 되었다. 오연주와 이 모든 상황을 되돌리려 하는 그는 진범을 잡으려던 시도가 어긋나게 된 것에 대해 그녀에게 장황하게 설명한다. 사실 진범과 오성무가 과거 빌딩 옥상에서 마주하게 됐을 때 오성무가 살기 위해 진범에게 강철을 죽이면 주인공이 되게 해주겠다는 말을 했다는 것. 그런데 이 사실을 강철은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강철은 또한 현실세계에서 웹툰 세계로 넘어가는 방법도 스스로 깨닫는다. 웹툰에서 각성해 현실로 넘어왔으니 그 반대도 가능하다는 것. 그래서 그는 이제 현실과 웹툰을 마음대로 오가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들은 끊임없이 강철의 입을 통해서 설명된다. 그는 오연주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그녀가 없을 때는 내레이션을 통해 상황을 설명한다.

 

<W>는 그래서 지금 강철의 설명으로 시작해 설명으로 끝나는 상황에 처해있다. 그리고 그 설명은 다름 아닌 작가의 설명이나 마찬가지다. <W>라는 세계가 그 자체로 시청자들을 설득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주인공인 강철이 그 상황들을 납득시키려 끊임없이 대변인 역할을 하는 것. 이러다 보니 <W>는 너무 자의적인 드라마가 되어가고 있다.

 

물론 <W>의 이런 맥락 없지만 흥미진진한 세계가 주는 감흥은 그 신선한 시도에 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너무 자의적으로 만들어진 상황과 그걸 연실 설명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자칫 극적 긴장감을 흐트러뜨릴 수 있는 약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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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보다 상상력, <W>의 의미 있는 드라마 실험

 

맥락 혹은 개연성. 드라마를 쓰거나 보는 사람이라면 하나의 공식처럼 되어 있는 이 틀 안에서 그게 얼마나 잘 맞춰져 있는가를 고심하고 들여다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W>의 세계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자유롭다. 대신 이 드라마가 취하고 있는 상상력이다. 맥락도 없고 개연성도 없으며 때로는 멜로에서 단 몇 분 만에 스릴러로 훌쩍 뛰어넘는 식으로 장르적 문법도 무시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허용되는 세계. 바로 <W>의 세계다.

 

'W(사진출처:MBC)'

생각해보면 <W>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뜬금없었다. 갑자기 만화 속 세계에서 손이 불쑥 튀어나와 만화가 오성무(김의성)의 딸 오연주(한효주)를 끌고 들어갔고, 웹툰 속 인물인 강철(이종석)은 누군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에 마치 작가에게 외치듯 당신 누구야하고 소리치자 그것이 웹툰처럼 글자로 새겨졌다. 웹툰 속에서 현실로 튀어나온 강철이 자신을 그린 작가인 오성무에게 총을 쏘더니 자신이 그저 캐릭터라는 사실을 알고 한강 물로 투신한다.

 

그렇게 죽으며 웹툰도 끝난 줄 알았지만 그 마지막 엔딩장면이 그대로 멈춰서 있다는 걸 알게 된 오연주는 다시 강철을 되살리고, 웹툰 속에서 강철의 동인을 만들기 위해 맥락 없이 만들어져 그의 일가족을 살해한 진범은 현실과 웹툰을 넘나들며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 각성한 진범이 어떻게든 자신의 존재근거를 찾으려 하자 강철은 이 모든 걸 처음으로 되돌리기 위해 오연주에게 현실로 돌아가 모든 게 꿈이었다는 설정으로 바꾸어 달라고 요청한다. 그래서 다시 원점으로 이야기는 돌아가는 듯 했으나, 진범을 제거하지 않으면 해피엔딩이 될 수 없다는 걸 안 오성무는 강철이 납득할 수 있는 진범으로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는다. 하지만 각성한 진범은 오히려 오성무의 얼굴만 빼앗아 방송국에서 총기난사 사건을 일으킨다.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 듯 이어지지만 그것은 맥락과 개연성을 따라간다기보다는 끊임없이 충격적인 반전을 거듭하는 식이다. 특히 모든 걸 꿈 설정으로 되돌린 후에는 어딘지 이야기가 조금 늘어지는 것처럼 여겨졌지만, 갑자기 얼굴이 사라져버린 오성무가 그 놈이 내 얼굴을 가져 갔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이 맥락 없는 반전이 소름으로 다가오기에 충분했다.

 

흥미로운 건 이러한 맥락과 개연성이 실종된 반전의 연속을 시청자들이 허용하고 심지어 나아가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W>라는 드라마가 애초에 설정한 웹툰과 현실의 교차라는 밑그림 덕분이다. 이 비현실적이고 판타지가 될 수밖에 없는 밑그림 위에서 이야기는 날개를 달았고 상상력은 한계가 사라졌다.

 

그런데 맥락보다 상상력에 몰두하는 <W>의 이러한 전개에 시청자들이 열광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건 아마도 지금껏 많은 드라마들이 그토록 문법 안에서 뱅뱅 돌며 우리가 생각하는 범주 안에서만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해왔던 것에 대한 일종의 해방감이 아닐까. 출생의 비밀과 불치병, 불륜, 신데렐라 이야기 등등 우리네 드라마에는 일종의 되는 드라마의 공식이라는 것들이 자리하고 있지만 지금도 그것이 유효한 지는 의문이다.

 

그러니 한 번쯤은 그 모든 공식들을 털어내고 오로지 할 수 있는 상상력의 끝을 향해 달려보는 것에 이토록 호응하는 것이 아닐까. <W>의 기상천외한 드라마 실험이 우리네 드라마에서 특히 의미가 있다 여겨지는 건 그래서다. 맥락보다도 또 개연성보다도 나아가 되는 드라마의 공식들보다도 지금의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새로운 상상력이라는 걸 <W>는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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