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윅스>가 보여준 이준기의 특별한 연기영역

 

이준기는 온 몸으로 연기하는 연기자다. 물론 모든 연기자들이 그렇겠지만 특히 이준기의 연기 속에서는 그의 몸이 부서질 듯 애처로워지는 지점이 있다. <왕의 남자>에서 여성성을 가진 공길이라는 인물이 그토록 처절하게 여겨졌던 이유는 줄 위에 자신을 세우는 몸의 연기가 보여주는 진정성이 거기에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개와 늑대의 시간>에서 눈에 핏발이 서가며 이중적으로 갈라져버린 자신의 존재를 온 몸으로 고통스러워하던 이준기의 모습은 또 어떻고. 이준기는 실로 그 몸의 진정성이 가진 힘을 아는 연기자다.

 

'투윅스(사진출처:MBC)'

그래서 <투윅스>에서 그가 연기하는 장태산이라는 인물은 이준기가 가진 몸의 진정성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캐릭터처럼 보인다. 첫 회부터 온 몸에 피칠갑을 하고 도망자가 된 장태산은 온 몸이 깨지고 넘어지고 심지어 총에 맞고 물로 떨어지며 도망치기 위해 빨대 하나를 입에 물고 흙 속에 묻히는 그런 캐릭터다. 산 속을 뛰는 장면이나 거친 물살의 계곡물에 휩쓸려 내려가는 장면은 그래서 마치 진짜 사나이들의 야전훈련을 보는 느낌이다.

 

신출귀몰할 정도로 포위망을 빠져나가면서도 장태산이라는 인물이 그저 신창원 같은 희대의 탈주범으로 느껴지지 않는 건 이 몸의 절실함에 덧대진 이준기의 섬세한 내면 연기가 있기 때문이다. <추적자>의 백홍석(손현주)과 비교되는 <투윅스>의 장태산이라는 인물의 변별성은 전자가 말 그대로 추적자인 반면(물론 그래도 쫓기는 인물이 되지만), 후자는 도망자라는 데서 나온다. 추적자가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는 쪽에 더 집중한다면, <투윅스>는 그가 왜 도망치게 되었고 왜 살아남으려 안간힘을 쓰는가에 더 집중한다.

 

온 몸이 땀으로 흥건한 이준기의 눈에서 남모르게 쉴 새 없이 흐르는 눈물은 그래서 이 드라마의 핵심적인 주제의식을 내포한다. 그는 왜 필사적으로 도망쳐야만 하는 것일까. 그것은 표피적으로는 보스 문일석(조민기)이 그를 살인자로 누명을 씌우고 그것도 모자라 그를 죽이려 하기 때문이지만, 그 이면에는 문일석과 조서희(김혜옥) 변호사 간의 추악한 거래가 담긴 증거를 그가 갖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즉 이 부분에서 서민과 권력자 간의 대결구도가 만들어진다. 가진 것 없는 이들은 살인자로 몰려 단 2주도 살기 힘든 세상이다.

 

그런데 <투윅스>는 <추적자>가 가진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분노와 대결보다는 한 개인의 가족애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장태산이 끝없는 도주 속에서 그 힘겨움을 버텨낼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자신이 지켜야할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장태산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백혈병에 걸린 딸에게 골수이식을 해줘야 할 몸이다. 그러니 살뜰하게 상처난 곳을 덧나지 않게 살피는 것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딸을 위해서이고, 그가 단 2주만이라도 버텨내야 하는 것도 모두 딸을 살리기 위함이다. 거기에 자신의 자리 따위는 없다.

 

이준기의 땀과 눈물이 범벅이 된 몸은 그래서 그 어떤 통렬한 비판보다도 더 절절하게 사회의 부조리를 에둘러 말해주기도 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네 가장들의 모습이 아닌가. 온 몸이 부서져라 하루를 보내고 남 모르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버텨내고 또 버텨내는 건 자신을 기다리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시스템 속에서 심지어 소모되는 삶을 살아간다고 해도 가족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감당하는 장태산 같은 가장이 그 땀과 눈물로 뭉클해지는 건 그 때문이다.

 

<투윅스>라는 제목은 그래서 이 우리네 시스템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가장의 의미를 떠올리면 지금의 현실이 얼마나 힘겨워졌는가를 에둘러 말해준다. 단 2주다. 단 2주를 버텨내기 힘든 현실. 이준기라는 연기자는 그래서 이 2주 간의 버텨냄을 자신의 온 몸으로 보여주는 중이다. 드라마를 보며 가끔씩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면 그것은 이준기의 몸이 말해주는 그 진정성을 느꼈기 때문일 게다. 그런 점에서 <투윅스>는 이준기라는 연기자의 특별한 영역을 제대로 드러내주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준기, 서민으로 돌아와 영웅이 된다

이준기는 한때 꽃미남 이미지로 소비됐다. ‘왕의 남자’에서 공길이라는 역할을 하면서 갖게 된 중성적인 이미지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것 때문에 이준기의 중성적 매력은 광고를 통해 확장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이준기가 바랐던 것도 아니고 본래 갖고 있던 색깔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것은 상품 광고가 공길이라는 인물을 그저 여장을 한 남자로만 바라보면서 생긴 이미지의 오해였다. 공길은 여장 남자라는 표피를 떼어내고 보면 거기 서 있는 것은 정확히 우리네 민초의 자화상이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그러니까 이준기에게 덧씌워진 불편하기 짝이 없는 중성적인 꽃미남의 이미지를 떼어내는 시간이었다. 눈에 핏발이 잡힐 정도로 내면 속에 숨겨진 야수성을 끄집어내는 과정은, 이준기가 스타라는 겉 이미지를 찢어내고 연기자라는 본래의 스펙트럼 속으로 들어오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그가 다시 돌아간 곳은 바로 그 민초들의 세계였다.

‘일지매’에서 본래 양반의 서자에서 서민의 아들로 내쳐진 뒤, 거기서 다시 일지매라는 서민들의 영웅으로 탄생하는 과정은, 재미있게도 바로 이준기의 변화과정을 미리 예고한 듯 보인다. 화려하지만 허황된 스타의 세계에서 소박하지만 진실된 연기자의 세계로 넘어온 그는 잰 체 하지 않으면서 늘 서민들의 옆자리에서 너스레를 떠는 서민 영웅의 자화상을 그려낸다. 그리고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는 제목 자체가 ‘히어로’다.

현대판 일지매를 떠올리게 하는 제목 때문일까. ‘히어로’는 시작 전부터 ‘서민적인 영웅’의 모습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과연 칼 대신 펜을 들고, 대도의 근성 대신 올곧은 기자정신을 갖고 있는 도혁(이준기)은 진짜 일지매와 판박이일까.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일지매는 평범을 가장하지만 그 면모는 실제 영웅인 반면, 도혁은 우리와 다를 바 없는 그저 평범한 인물일 뿐이라는 점이다.

그는 실제로 삼류 잡지사의 기자이고, 그가 쓰는 기사는 실제로도 자극적인 그저 그런 기사들이다. 결국 그 잡지사는 문을 닫게 되고 그래서 다시 세우게 된다는 신문사 역시 뭔가 대단한 사회 정의의 뜻을 갖고 세우는 그런 회사가 아니다. 그저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들이다. 그런데 왜 ‘히어로’일까. 도대체 어떤 면이 도혁을 영웅이라 칭하게 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지극한 평범함조차 비범하게 만들어버리는 썩어버린 사회다. 도혁은 그저 정상적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려 하지만, 세상이 그를 가만 놔두질 않는다. 대세일보라는 거대 언론사의 기자라는 강해성(엄기준)은 대세그룹이라는 기업의 뒤를 봐주는 역할을 할 뿐, 그로인해 피해를 보게 되는 서민들에게는 관심조차 없다. 진실? 돈과 권력 앞에 거짓과 자리바꿈하기 일쑤다. 그러니 그 속에서 피해를 겪게 되는 도혁은 그저 정상적으로 진실을 진실이라고 말하는 일을 할뿐이다.

이 평범한, 아니 심지어는 지질해보이기까지 하는 한 인물이 영웅이 되는 이야기는 거꾸로 평범함이 통하지 않는 세상을 통렬하게 그려낸다. 따라서 '히어로'는 이제 '일지매'를 통해 서민들의 영웅으로 자리한 이준기가 온전히 특별한(?) 서민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작품이 될 것이다. 그러니 이 서민적인 영웅을 통해 이준기에게서 기대하게 되는 것은 따뜻한 면모다. 어딘지 가볍게도 느껴지고, 때로는 초라하게도 보이지만 그래도 모든 낮은 사람들에게 던지는 따뜻한 관심. 이것이 영웅을 잃어버린 시대, '히어로'가 말하는 영웅이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서민적 이미지로 돌아와 오히려 영웅 그 이상의 매력을 보이게 된 이준기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의학, 멜로, 액션, 정치, 휴머니티까지 봉합하려는 ‘카인과 아벨’

장르 속에서도 새로운 것을 찾기 때문일까.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장르의 시도가 갖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백화점식 나열일까. 장르 드라마들은 한 가지 이상의 장르를 봉합하며 진화해 왔다. ‘하얀거탑’은 의학드라마에 법정드라마와 정치드라마를 칵테일했고, ‘외과의사 봉달희’는 의학드라마에 멜로드라마를 성공적으로 봉합했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액션드라마에 가족드라마의 관계망을 접목해 한국형 느와르를 선보였다. 그렇다면 ‘카인과 아벨’은 어떨까. 놀랍게도 이 드라마는 이 모든 장르 드라마들의 디테일들을 하나로 끌어 모으고 있다.

‘카인과 아벨’에는 ‘하얀거탑’이 가진 권력대결구도가 있다. 그것은 이초인(소지섭)으로 대변되는 응급의학 센터와 이선우(신현준)로 대변되는 뇌의학 센터 건립을 두고 벌어지는 권력의 충돌이다. ‘하얀거탑’에서 긴장감 넘치게 그려졌던 투표 장면은 이 드라마에서도 여전히 효력을 발휘한다. 한편 ‘카인과 아벨’은 의드로서 ‘외과의사 봉달희’가 가진 멜로드라마와 휴먼드라마의 요소도 숨겨져 있다. 형제의 한 여자를 두고 벌어지는 삼각관계와 새롭게 멜로의 축으로 들어올 오영지(한지민)가 멜로드라마의 구도를 이루고 있고, 한편으로는 인술을 향해 달려가는 이초인의 휴머니티가 기술에 편향된 이선우와 대결구도를 이룬다.

‘카인과 아벨’에는 또한 ‘개와 늑대의 시간’의 그림자도 어른거린다. 이 드라마는 의드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 권력 대결구도의 극한으로 끌어올려지면서 액션드라마와 복수극의 양상을 띄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여기에 기억의 문제를 끼워 넣었다는 것이다. 이초인의 탄생이 교통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진 어머니로부터 꺼내지는 것이나, 자신을 아버지처럼 키워준 이종민 원장(장용)이 뇌사상태에 빠져있었던 것, 그리고 자신도 음모에 빠져 기억상실에 빠지는 것이 그렇다. 무엇보다 이 의학드라마에서 그 분야로 잡고 있는 것이 뇌 의학이라는 점은 이 드라마가 그만큼 기억에 천착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물론 ‘개와 늑대의 시간’이 그려낸 기억의 문제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겠지만, 일정부분 모티브가 연결되어 있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카인과 아벨’은 이처럼 꽤 많은 장르 드라마들의 속성들을 끌어들이고 있으며, 그 봉합은 현재까지는 꽤 성공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판단된다. 화두로서 제시했듯, 이렇게 많은 장르적 요소들을 한 틀 안으로 끌어 모은 데는 이제는 장르적 재미에만 머무는 것만으로는 어딘지 부족하게 되어버린 현 드라마 소비층들의 높아진 안목에서 기인된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장르 드라마라는 아직까지도 여전히 낯선 그 틀에 전통적인 드라마의 형식을 접목하면서 생겨난 것일 수도 있다. 모쪼록 그 장르 실험이 백화점식 나열에 그치거나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기를 기대하는 것은 그 시도가 작금의 정체된 장르 드라마들에 꽤 괜찮은 의미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그들의 두 가지 얼굴

‘일지매’로 새로 돌아온 이준기가 선택한 것은 이번에도 ‘두 얼굴을 가진 존재’였다. 어떤 충격적인 사건으로 기억을 잃고 과거와 현재, 그 두 존재 사이에서 갈등하고 방황하는 역할은 ‘개와 늑대의 시간’에 이어 ‘일지매’로 이어진다. 이준기가 ‘개와 늑대의 시간’에서 이수현과 케이 사이에 서 있었다면, ‘일지매’에서는 겸이와 용이 사이에 서 있다. 이런 야누스의 얼굴은 베테랑 연기자들마저 해내기 어려운 것이지만 이제 그것은 이준기에게는 하나의 이미지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이준기의 두 가지 얼굴
한 드라마 속에서의 배역뿐만이 아니라 이준기 개인이 연기자로서 걸어온 길 또한 변신의 연속이었다. ‘마이걸’에서 곱상한 외모와 털털한 이미지를 동시에 선보이던 이준기는 ‘왕의 남자’를 통해 여성적인 이미지로 변신한다. 그 이미지로 이준기는 각종 CF를 통해서 그루밍족의 표상처럼 구획된다. 문제는 ‘왕의 남자’를 통해 일약 1천만 관객의 스타가 된 이준기가 그 굳어진 이미지를 어떻게 벗어버리느냐는 데 있었다. 하지만 ‘개와 늑대의 시간’을 통해 이준기는 연기자로서의 본연의 모습을 찾아냈다. 그것은 예쁜 남자와 거친 남자의 두 얼굴을 동시에 보이는 것이었다.

‘일지매’의 일지매 캐릭터가 갖는 야누스적인 성격, 정체성의 문제 같은 것은 역시 ‘개와 늑대의 시간’을 빼 닮았다. 하지만 ‘일지매’의 두 얼굴이 갖는 의미는 ‘개와 늑대의 시간’의 그것과는 다르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 정체성의 혼동을 통한 관계의 역전을 이수현이란 캐릭터의 끝없는 변화과정을 통해 포착하고 있다면, ‘일지매’의 두 얼굴은 혼동의 시간 속에서 자기 존재를 찾고 가치를 알아가는 과정을 잡아내기 위함이다.

일지매의 두 가지 얼굴
첫 회에서 멋진 갑의를 걸치고 지붕 위를 날아다니는 일지매는 저 스스로 말하듯 ‘못할 게 없는 존재’다. 하지만 이 못할 게 없는 일지매가 어떤 기억의 자각 이전으로 돌아가면 거기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청년, 용이(이준기)가 서 있다. 충격적인 아버지의 살해장면을 목격한 겸이가 기억을 지우고 용이가 되었을 때 그 앞에 던져진 삶은 쇠돌(이문식)의 자식으로서의 천한 삶이다. 천하다는 이유로 양반자제들에게 갖은 모욕과 수모를 당하면서도 기억하지 못하는 자로서의 용이는 거기에 대해 아무런 항변을 하지 못한다. 그저 “살려주십쇼”하고 애걸할 뿐이다.

하지만 용이가 기억을 되살려내고 천한 존재로 치부되었던 자신이 귀한 존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일지매가 탄생한다. 하지만 이 일지매라는 존재는 단순히 겸이로의 회귀를 뜻하지 않는다. 일지매는 자신이 귀한 존재라는 것을 알 듯이 저 저잣거리에서 자신 때문에 기꺼이 이빨 하나 정도는 빼주고 바보처럼 웃어주는 쇠돌 같은 민초들이 더 이상 천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일지매 속에는 겸이와 용이 이 두 인물이 교차한다.

천함과 귀함 사이에서 이 두 인물이 한 몸 속에서 갈등하는 이 부조리한 상황이 저 세상의 잘못된 선 가르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된 일지매가 하는 것은 그 선을 넘는 일이다. 그가 서는 자리는 양반과 서민들 사이에서, 도적과 의적 사이에 서서 자신처럼 갈라진 정체성을 가진 부조리한 세상을 바꿔보고자 함이다.

이 시대 청춘들의 두 가지 얼굴
이 일지매의 이중적인 의식(귀한 존재지만 천덕꾸리기 취급을 받는)은 이 사극이 왜 지금 존재해야 하는가를 말해주기도 한다. 이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서자 의식을 일깨운다. 386이 80년대 민주화를 통해 역사의 주역이 되었다면,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영문도 모른 채 이 깊은 경제 불황의 나락 속에서 ‘88만원 세대’로 전락했다. 역사에서도 빗겨나 있고 현실에서도 주역이 되지 못하는 이들이 처한 상황은 일지매의 ‘기억을 잃고 부유하는 용이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꿈꾸는 세상은 용이도 아니고 겸이도 아닌 일지매이다. 즉 과거도 아니고 현재도 아닌 미래라는 뜻이다. 이 지점이 바로 이준기라는 연기자가 일지매를 통해 만나는 자신의 얼굴이다. 여성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속에 강렬한 피를 끓게 하는 남성적 이미지를 공유한 이준기는, 이제 이미지를 넘어서 이 시대의 청춘들이 공유한 두 가지 의식, 즉 청춘으로서의 쾌활함과 그 쾌활함 이면에 현실로서의 어두움을 공유한 존재로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고 있다. 이것은 실제로 연기자로서의 활동과 함께 현실참여에 적극적인 이준기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일지매의 이중적인 캐릭터와, 이준기의 이중적인 이미지, 그리고 이 시대 청춘들이 갖는 이중적인 얼굴은 모두 닮았다. 그래서 일지매가 웃고 있거나, 배우이자 한 청년으로서의 이준기가 웃고 있거나, 혹은 이 시대 청춘들이 웃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짠해지는 것은 바로 그 아래 숨겨진 슬픔이나 분노 같은 것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역사 자체를 전복하고 새로운 저들만의 역사를 허구 속에서라도 그려내고픈 ‘일지매’라는 파격적인 사극이 존재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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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마니아 드라마가 말해주는 방송사별 특색

2007년 한 해의 드라마를 특징짓는 한 현상은 시청률은 낮은데 호평 받았던 이른바 ‘마니아 드라마’일 것이다. ‘마왕’, ‘경성스캔들’, ‘한성별곡’, ‘얼렁뚱땅 흥신소’까지 가장 많은 마니아 드라마를 양산한 곳은 KBS. 여기에 MBC의 ‘메리대구 공방전’ 정도가 그 범주에 들어간다 할 수 있다. 희한한 일이지만 SBS는 단 한 편도 마니아 드라마라 꼽을 만한 것이 없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마니아 드라마를 등장하게 했고, 그 양태가 방송사별로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만화 같은 드라마에 웃고 울고
마니아 드라마의 한 특징은 그것이 만화를 닮았다는 점이다. 만일 만화로 친다면 ‘마왕’은 사이코 메트리가 등장하는 본격 스릴러가 될 것이며, ‘경성스캔들’은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순정만화가 될 것이다. ‘한성별곡’이 정조시대를 다룬 본격 역사만화가 된다면, ‘얼렁뚱땅 흥신소’는 도심 속의 보물찾기라는 코믹 모험 만화가 될 것이며, ‘메리대구 공방전’은 코믹한 청춘 멜로를 그린 순정만화가 될 것이다.

이 드라마들의 만화 같은 특징이 만화의 세계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보통은 20대에서 30대 중반까지)에게 열광적인 반응을 가져왔으리라는 것은 익히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경성스캔들’, ‘얼렁뚱땅 흥신소’, ‘메리대구 공방전’같은 드라마는 아예 영상 구성 자체를 만화적인 컷으로 하는 실험성까지 보였다. 톡톡 튀는 재미와 심각한 주제마저도 가볍게 끌어가는 연출은 이들 마니아 드라마가 호평을 이끌어낸 원천적인 힘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은 기존 드라마 시청층(30대 후반부터 60대까지)으로부터 외면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보통의 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층은 일단 만화적인 상상력이 엉뚱하다는 것 이상으로는 이해될 수 없었고, 스토리텔링의 촘촘함이 무기인 이들 작품들은 한 회 정도 걸렀을 때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드라마가 되었다. 찾아보는데 익숙하지 않은 이 시청층은 늘 봐야 이해할 수 있는 낮선 드라마보다는 아무 때고 봐도 이해될 수 있는 조금은 느슨하고 편안한 드라마를 찾았다. 그러니 이들 드라마들의 본방 시청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마니아 드라마가 될 뻔했던 드라마들
하지만 만화적인 상상력을 동원했다 해서 모두가 마니아 드라마가 됐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들이 ‘쩐의 전쟁’이나 ‘개와 늑대의 시간’, ‘히트’, ‘커피프린스 1호점’같은 드라마들이다. ‘쩐의 전쟁’은 아예 원작이 만화였으며, ‘개와 늑대의 시간’은 국내 드라마로서는 처음으로 느와르의 세계를 만화적 상상력으로 그려냈다. ‘히트’ 역시 전형적인 연쇄살인범을 좇는 형사물로 인기를 끌었고, ‘커피프린스 1호점’은 순정만화 톤의 드라마연출로 각광을 받았다.

어째서 이들 드라마들은 시청자들이 외면하지 않은 것일까. 그것은 이들 드라마들이 완전히 낯선 만화적 세계를 그렸다기보다는 어느 정도의 현실성이나 익숙함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쩐의 전쟁’은 사채업자라는 낯선 세계를 소재로 삼았지만, 그 사채라는 소재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도가 그만큼 높았으며, ‘히트’와 ‘개와 늑대의 시간’은 장르의 익숙함과 멜로적인 인간관계의 구성으로 그 벽을 넘어섰다. ‘커피프린스 1호점’은 꼼꼼한 연출력과 캐릭터의 힘, 게다가 트렌디에 바탕하면서도 그걸 넘어서는 스토리 전개로 호평과 시청률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즉 2007년도를 특징짓는 이른바 마니아 드라마들의 탄생은 바로 그 낯선 세계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만화적인 낯설음이기도 하고 젊은 세대의 감성에 대한 낯설음이기도 하다. 젊은 것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등식은 허용될 수 없겠지만 적어도 그 젊은 세대가 앞으로 미래의 시청자가 된다는 점에서 이들 마니아 드라마들은 과거의 답습보다는 미래의 드라마에 도전한 드라마로 볼 수 있다.

마니아 드라마가 말해주는 2007 방송사별 드라마 특색
마니아 드라마가 생기는 이유로서, TV 본방 시청보다 인터넷이나 IPTV 등의 다운로드형 시청 패턴이 젊은 층을 통해 늘고 있다는 것은 또한 현재의 시청률 집계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방송사의 고민은 현재의 시청률 집계 속에서 시청률을 잡기 위해 나이든 시청층에 맞는 익숙한 드라마를 내보내야할 것이지만, 또한 달라지고 있는 미래의 시청자들의 눈높이도 도외시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이러한 고민이 깃든 방송사들에서 저마다 마니아 드라마의 양태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올 한 해 방송사별 드라마의 특색을 가장 잘 말해주기도 한다.

가장 많이 마니아 드라마를 양산한 KBS는 완성도만을 고려한 정통적인 드라마 기획을 한 점은 높이 살만하나, 결과적으로 현실적인 변화의 흐름을 포착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단 한 개의 마니아 드라마도 양산하지 않은 SBS의 경우는 그만큼 올 한 해의 드라마들이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청률이 낮은 드라마들은 실제로 완성도가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MBC는 어찌 보면 이를 가장 잘 조화시킨 경우가 될 것이다. 도전적인 시도를 하면서도 완전히 낯선 세계가 아닌 익숙한 세계를 끼워넣는 노력을 보였다.

그 성과가 어떻든 방송사들의 마니아 드라마 양산은 새로운 시도에 대한 고민으로 볼 수 있으며 따라서 결과에 상관없이 박수 받을 만한 것이다. 문제는 지나친 마니아 드라마만의 양산은 자칫 방송사의 방만함으로 보일 수도 있으며, 반면 마니아 드라마가 한편도 없다는 것은 방송사 자체의 도전이 없었다는 것을 말해준다는 점이다.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었던 마니아 드라마들은 따라서 올 한 해의 방송사별 드라마 특색을 말해주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어쨌든 2007년 한 해, 마니아 드라마가 있어서 우리는 행복했다.

장르, 사회극, 사극 속에서 계속되는 멜로의 실험들

미드(미국드라마), 일드(일본드라마)로 대변되는 외국드라마 전성시대에 우리는 너무 쉽게 우리 드라마의 문법을 열등한 것으로 치부하고 있는 건 아닐까. 엄청난 물량이 투입된 제작비에 완벽한 사전제작으로 꽉 짜여진 완성도 높은 외국드라마들을 보다가 무언가 어수룩한 우리 드라마를 보면 단박에 그 열등감에 휩싸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지금까지 우리 드라마들이 쌓아온 공력은 적지 않다. 그것을 모두 무시한 채 그저 미드, 일드는 정답이고 우리 드라마는 오답이라는 편견은 어딘지 부적절해 보인다.

모든 멜로가 죄인은 아니다
특히 멜로에 강점을 가진 우리 드라마들이 어느 순간부터 멜로드라마를 ‘표방하지 않게 된’ 것은 미드, 일드가 준 영향임에 틀림없다. 한 마디로 쿨해 보이는 그네들의 드라마를 보면서 왜 우리는 매번 똑같은 삼각 사각 구도에 신데렐라 이야기, 그리고 눈물이나 짜는 그런 드라마밖에 없는가 하는 비판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것으로 모든 우리의 멜로드라마를 다 싸잡아 비판하는 건 문제가 있다. ‘멜로드라마 = 식상한 것’이라는 등식으로 괜찮은 멜로드라마들 역시 시청률의 무덤에 던져져 온 것이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90일 사랑할 시간’같은 실험적인 멜로드라마의 시청률 실패이다. 소재만으로 보면 불륜에 불치 코드가 뒤섞여 있었지만 이 드라마는 이 두 가지를 엮어서 전혀 다른 형태의 멜로드라마를 직조해냈다. 하지만 당시 멜로드라마라고 표방하기만 하면 하나같이 철퇴를 맞는 분위기에서 방영된 이 드라마는 역시나 참담한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물러나야 했다. 멜로라는 말은 쑥 들어가 버렸다. 하지만 위에서 표현한대로 드라마들은 멜로드라마를 표방하지 않았을 뿐, 멜로를 완전 버린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비판으로 식상한 틀을 벗어버린 멜로는 다양한 외투를 입고 새로운 진화의 길을 걸어온 것으로 보인다.

장르 속으로 들어온 멜로
미드, 일드의 영향으로 등장한 우리네 전문직 장르 드라마들은 장르를 구사하면서도 여전히 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본격 수사물을 표방했던 ‘히트’는 범인을 좇는 이야기만큼 시청자들을 설레게 한 것이 차수경(고현정)과 김재윤(하정우)의 닭살 멜로였다. 차수경에게 ‘바보팅이’라고 말하는 김재윤의 모습에서 저 미드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캐릭터나, 일드의 쿨한 캐릭터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우리 식 로맨틱 코미디류의 멜로드라마에서 익숙한 귀여운 남자가 있었을 뿐이다.

‘외과의사 봉달희’는 의사라는 전문직의 장르 드라마를 구사하면서 그 중심에 봉달희(이요원)와 버럭범수 안중근(이범수)의 멜로드라마를 접목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네들의 톡톡 튀는 사랑법이 병원이란 공간에서 인간으로서의 의사들 이야기와 맞물리면서 독특한 아우라를 형성했다. 한편 ‘에어시티’의 실패는 공항이라는 공간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장르의 실패로도 볼 수 있지만, 오히려 멜로드라마를 적극 활용하지 못한 데서도 패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장르드라마라는 무게에 짓눌려 어정쩡하게 구사한 한도경(최지우)과 김지성(이정재)의 멜로라인은 드라마를 이도 저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최근 종영한 본격 느와르 ‘개와 늑대의 시간’ 역시 멜로를 상당부분 뺐다고 해도 여전히 그 중심에 멜로드라마가 섞여 있다. 이 느와르만의 특징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인간관계들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 없는 주인공들의 심리를 다룬다는데 있다. 따라서 이수현(이준기)과 강민기(정경호) 그리고 서지우(남상미)의 삼각구도는 심리적으로 멜로드라마의 구조를 그대로 가져온다. 다만 그 양상이 사랑타령으로 드러나는 게 아니라 총을 든 느와르의 양태로 나타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사회극을 표방한 멜로
한편 SBS가 계속해서 사회극을 표방한 드라마를 내놓는데는 역시 이 멜로에 대한 대중들의 무조건적인 혐오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그 사회극 속에는 여전히 멜로드라마가 존재한다. ‘쩐의 전쟁’은 사채업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그 안에 기본적으로 금나라(박신양) - 서주희(박진희)의 멜로드라마를 엮었고, 여기에 공식적으로 이차연(김정화)이란 인물을 끼워 넣어 삼각라인을 만들었다. 드라마는 한창 사회적인 이슈들을 잡아나가다가 마지막회에 이르러 주인공들의 결혼식으로 흘러가는 멜로드라마의 양상을 보였다.

‘내 남자의 여자’는 과거 전형적인 틀을 가진 식상한 멜로드라마를 철저히 부수는 멜로드라마이다. 이 드라마는 멜로드라마들이 가진 전형성을 마치 탐구라도 하듯이 현미경을 들고 조명해나간다. 식상한 멜로드라마들이 어찌어찌 우여곡절을 겪다가 결혼에 골인하는 해피엔딩으로 끝났다면, 이 드라마는 결혼에서 시작해서 결국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그 중심에 결혼이라는 틀 속에서 사랑과 질투, 분노, 기쁨 같은 것들이 환타지가 아닌 현실적인 결론으로 끌고 가기에 ‘내 남자의 여자’는 사회극과 멜로드라마가 그 정점에서 만난 드라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현재 방영되고 있는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은 멜로드라마라는 틀을 통해 사회를 들여다보는 실험적인 작품이다. 결론을 정해놓지 않고 멜로드라마가 가질 수 있는 인물들을 배치해놓은 다음, 그 화학반응을 통해 인간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식이다. 당신이 알고 있는 이웃이라고 하는 사람은 사실 당신이 아는 그 한도 내에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드라마는 말한다. 그 기본 틀은 정윤희(배두나)를 사이에 둔 백수찬(김승우)과 유준석(박시후), 그리고 유준석을 따라다니는 고혜미(민지혜)가 이루는 사각관계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이들 사각관계 내부에서 벌어지는 멜로드라마가 아닌, 그 틀 바깥에 존재하는 많은 이웃들(조연들)의 화학관계를 통해 그 멜로를 이어가는 차이를 보인다. 즉 멜로는 나타난 현상이지 목적은 인간관계 자체에 놓여 있다는 말이다.

우리 식의 멜로드라마, 외면 말아야
이러한 멜로드라마의 실험과 진화는 최근 불고 있는 사극 열풍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사극의 메인 테마가 되고 있는 것이다. ‘왕과 나’는 내시인 나, 김처선(오만석)이 왕(고주원)이 사모해온 여인 윤소화(구혜선)를 운명적으로 사랑하는 이야기다. 새롭게 시작한 ‘이산’에서도 정조 이산(이서진)과 성송연(한지민)의 애틋한 멜로드라마가 그려진다. 현대물에서는 외면한 운명적인 멜로드라마를 사극이라는 형식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멜로드라마는 늘 식상하다는 편견 속에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멜로드라마는 늘 우리가 보는 드라마 속에 존재해왔다. 다만 새로운 외투를 입고 나타났을 뿐이다. 멜로드라마는 그렇게 비하되거나 구닥다리로 손가락질 받을 존재가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네 드라마들의 성패를 가름하는 진짜 숨은 주역인지도 모른다. 상대적으로 타 분야보다 더 많은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는 멜로드라마를 외국 드라마와 단순히 비교하면서 그 가치를 평가절하 하는 것은 우리 드라마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일이다. 멜로는 죽지 않았다. 다만 끊임없이 다양한 틀 속에서 실험을 해왔을 뿐이다.

단순 복수극을 넘어서는 ‘개늑시’의 힘

MBC 수목드라마 ‘개와 늑대의 시간’이 다루고 있는 것은, 기억이란 부서지기 쉬운 장치에 기대 살아가는 가녀린 인간이 겪는 운명에 대한 것이다. 만일 ‘기억’이란 부분이 없었다면 이 드라마는 그저 부모를 죽인 원수를 찾아 복수하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홍콩 액션 영화의 답습에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 이 드라마를 보는 재미는 단순한 복수극과 액션에만 있지 않다.

드라마가 주시하고 있는 것은 주먹을 날리고, 칼을 휘두르고, 몽둥이를 휘두르는 액션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취하는 캐릭터가 가진 내면의 갈등이다. 자신이 싸우고 있는 것이 도대체 개인지 늑대인지 알 수 없는 그 상황 속에서 끝없는 갈등에 휩싸이게 되는 인물들이 가진 어쩔 수 없는 자가당착 같은 것이 드라마를 관통하는 진짜 재미이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은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청방이란 조직 속에 언더커버로 잠입해 있다가 기억상실이 되어버린 이수현(이준기)이다.

드라마는 이수현의 변화과정을 고스란히 따라감으로써 그가 겪을 심적 고통을 예지하게 만든다. 기억이 사라진 상황 속에서 K로 한 행동들은 후에 다시 돌아올 기억 속에서는 악몽이 될 것이 분명하다. 먼저 친아버지처럼 자신을 길러준 강중호(이기영)의 죽음 앞에 무심했다는 것, 그로 인해 친구처럼 형제처럼 지내던 강민기(정경호)와 철천지 원수가 되었다는 것, 그로 인해 자신이 사랑했던 서지우(남상미) 앞에 설 수 없다는 것들이 부메랑처럼 자신을 공격할 것이다. 무엇보다 원수 밑에서 충복생활을 하면서, 오히려 자신을 길러주고 돌봐준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린 자기 자신을 이기기가 어려울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수현이란 인물이 기억이란 터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 야누스적인 변신을 하는 과정 속에서 주변인물들 역시 모두 ‘개와 늑대의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수현이 적인지 아군인지를 알 수 없는 상황 속에 빠지는 것이다. 강민기는 그와의 극한 대결 구도 속에서 그 상황을 가장 치열하게 드러낼 캐릭터다. 국정원 요원들의 상황은 대체로 강민기의 심적 갈등 상황을 고스란히 따라가게 된다.

이수현과 강민기 사이에 끼어 있는 서지우란 캐릭터는 이 상황을 더 복잡한 미궁 속에 빠뜨린다. 서지우는 마치 자기의 친아버지인 마오(최재성)와의 기억을 지워버리듯 살아왔지만 절대로 지워질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즉 서지우 역시 이수현이 겪는 기억상실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상황 속에 있는 것. 그녀는 있는 사실을 없는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왔다는 점에서 능동적인 기억상실 속에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강민기나 이수현 둘 다 서지우의 친아버지인 마오와 섞일 수 없는 원수 사이라는 점은, 그녀로 인해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없게 되는 이수현과 강민기의 갈등 상황을 예견케 한다.

이처럼 복잡한 인물의 갈등관계 속에서 액션을 끄집어내는 ‘개와 늑대의 시간’은 드라마에서는 전혀 시도되지 않았던 액션 스릴러의 한 장을 열고 있다. 미드 ‘24’에서 잭 바우어가 세상에서 가장 길게 보낸 하루 동안 끝없이 반복되는 갈등과 선택의 상황을 보여줘 액션 스릴러의 강한 중독성의 세계 속으로 이끌었듯이, ‘개와 늑대의 시간’ 역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 속에 빠진 인물들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내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24’는 오리무중의 상황 속에 빠진 잭 바우어에 직접 시청자들이 감정이입되어 똑같은 갈등 상황을 경험하는 짜릿함을 주는 반면, ‘개와 늑대의 시간’은 이수현이 처한 그 상황 자체를 관조적으로 이해하면서 후에 벌어질 파고를 예상하는 재미를 준다는 점이다. 이렇게 복잡한 미스테리적인 요소를 피하고, 상황 자체를 드러냄으로써 드라마의 구조는 좀더 쉽게 따라갈 수 있는 형태를 가지며, 동시에 캐릭터들의 변화되는 감정선이 극대화된다는 장점을 가진다. 이러한 감정선을 따라가는 한국형(?) 액션 스릴러의 시도는 우리네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맞아떨어진 점이 분명히 있다.

무엇보다 이 흥미진진함을 엮어내는 힘은 ‘태극기 휘날리며’, ‘야수’의 한지훈 작가와 유용재라는 신인작가의 탄탄한 스토리텔링에서 나온다. 여기에 혼신을 불태우는 연기를 보여주는 연기자들은 스토리 속 캐릭터의 결을 제대로 살려내고 있다. 이 드라마는 거의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야누스적인 감정 선의 급격한 변화를 그려내야 하는 난점을 갖고 있지만, 성지루, 김갑수, 이기영, 최재성 같은 중견배우들이 무게 있는 존재감으로 안정감을 살리면서 그 위에 이준기를 비롯한 정경호, 남상미의 광적인 연기가 덧붙여지면서 폭발력을 얻고 있다.

제목에 걸맞는 갈등과 대결구도로 가고 있는 ‘개와 늑대의 시간’. 드라마 속 캐릭터들은 각자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 개인지 늑대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만 하는 갈등의 시간을 맞고 있다. 그 속에서 허우적대는 군상들을 보면서 깊은 공감대를 느끼는 것은, 우리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한 생을 살아가는 시간 역시 저들이 겪는 오리무중의 상황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일 것이다. 기억이라는 가녀린 힘에 덧대 살아가는, 그래서 기억, 추억, 시간 같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운명적인 것들이 한없이 소중할 수밖에 없는 우리네 인간이라는 상황 말이다.

기대 이상 전문직 장르 드라마, ‘개늑시’

이제 막 새롭게 등장한 전문직 장르 드라마들에서 우리가 기대했던 것은 오랜 전통과 노하우를 가진 미드 수준의 그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기대한 것은 그저 장르에 충실한 드라마였을 뿐이다. 그것은 적어도 소재가 획일화된 우리네 드라마 풍토에서 장르 드라마가 가진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얀거탑’, ‘외과의사 봉달희’에서 가능성을 보인 전문직 장르 드라마는 그러나 ‘히트’와 ‘에어시티’에서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물론 형사라는 직업과 공항이라는 공간만 가지고도 이들 드라마는 가치가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전문직 장르 드라마로서 기본적으로 지켜야할 장르에 충실하지 못한 단점이 있었다.

액션이든 미스테리든 휴먼드라마든 장르는 그것을 선택 혹은 표방하는 순간, 거기에 충실할 것이 요구된다. 연쇄살인범을 좇는 형사물에서 갑작스런 멜로가 섞이고, 공항이라는 긴박한 공간 속에서 국정원 요원이 뛰어다니는 상황에 멜로와 휴먼드라마가 틈입하는 건 용납하기가 쉽지 않다. 이것이 ‘히트’와 ‘에어시티’가 훌륭한 캐릭터와 좋은 소재를 갖고도 기대만큼의 성과를 이루지 못한 이유다.

이런 면에서 보면 MBC 수목 드라마 ‘개와 늑대의 시간’은 기대 이상의 전문직 장르 드라마라 할 수 있다. 먼저 기본적으로 이 전문직 장르 드라마는 액션과 스릴러라는 장르가 갖춰야 하는 요건들을 제대로 구비하고 있다. 먼저 이수현(이준기)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상처와 그로 인한 갈증이 살해당한 부모에 대한 복수심으로부터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단순할 수 있는 이 설정은 그러나 이수현 눈앞에서 벌어진 어머니의 살해장면이 등장하면서 강력하게 자리를 잡는다.

이 복수심을 속에 품고 태국과 한국을 넘나드는 액션극이 장르적으로 성취를 이루고 있는 것은 적절한 타이밍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때문이다. 태국의 어린 시절에서 지우(남상미)와 추억을 만들 즈음, 갑자기 등장하는 어머니의 살해장면은 상황을 급박하게 만들어버린다. 한국에 들어와 강중호(이기영)에 의해 자라나 국정원 요원이 되는 것까지 아픔을 잊고 평탄한 삶을 살아갈 것 같은 장면들이 연출될 즈음, 갑자기 이수현은 어머니를 살해한 마오(최재성)를 보고 다시금 복수의 불길에 휩싸인다. 이후에도 이수현의 감정은 적절한 간격으로 완급조절되면서 시청자를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는 즐거움에 빠뜨린다.

이렇듯 이 드라마가 가진 강점은 액션, 서스펜스가 가진 장르적 호흡을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거기에 중심이 되는 것은 마오라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적과 거기에 도달하기엔 아직도 약하기만 한 이수현의 성장이다. 이 대척 구도는 사실상 거리가 멀면 멀수록 시청자들에게 더 흥분되는 재미를 줄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이 드라마가 활용한 멜로는 기존 전문직 장르 드라마들이 활용한 멜로의 방식보다 효과적이다.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 이수현이 죽이려는 마오는 그가 사랑하는 지우의 아버지이기에, 그들의 멜로가 강해질수록 이수현은 더 깊은 혼란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드라마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기억에 대한 것이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바로 사고로 기억을 잃어버린 이수현이 처한 정체성을 상징한다. 복수의 일념으로 마오의 심복을 하게 된 이수현이 기억상실로 그 복수심을 잊어버리는 상황은 이 드라마가 가진 최대의 극적 장치가 아닐 수 없다. 기억 하나를 중심으로 원수와 심복의 갈림길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이수현이 서 있는 지점에서 마오에 대한 복수를 하게되는 곳까지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진다. 그것이 바로 이 드라마가 주는 재미의 핵심이다.

그렇게 장르에 충실하면서 얻어낸 재미는 이수현이 가진 기억이라는 문제를 끄집어내면서 의미까지 확보한다. 복수심이나 충성심 같은 감정이라는 것은 기억이 만들어내는 정체성에서 비롯된다는 것. 인간은 그것이 개인지 늑대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을 겪을 수 있을 만큼 이성적인 존재만은 아니라는 것을 드라마는 얘기해준다. 군더더기 없는 연출과 무엇보다도 양 대척점을 이루고 있는 마오와 이수현을 연기하는 최재성과 이준기의 광적인 연기는 이 전문직 장르 드라마에서 장르적인 충실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하게 만든다.

여자의 로망과 남자의 로망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이 욕망하는 캐릭터의 트렌드는 달라지기 마련. 최근 두 아이콘이 그 트렌드의 정수를 헤집는 중이다. 하나는 ‘궁’의 명랑소녀에서 ‘커피 프린스 1호점’의 미소년으로 온 윤은혜, 그리고 또 하나는 ‘왕의 남자’의 미소년에서 ‘개와 늑대의 시간’의 남자로 온 이준기다. 이 두 아이콘의 변신은 이 시대 남녀 각각의 로망을 끄집어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청춘 멜로의 진화, 명랑소녀에서 미소년으로
‘커피 프린스 1호점’의 고은찬(윤은혜)은 남장여자. 겉모습은 남자이고 실제는 여자이니 남자와의 트렌디한 연애는 애초부터 글러먹었다. 그래서 이 남장여자는 한참을 우정과 의리로 우회해 사랑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런데 그 사랑의 과정을 담은 청춘 멜로 드라마의 캐릭터가 가진 색다른 결은 굉장한 파괴력을 갖고 있다. 그것은 기존 멜로 드라마들이 트렌디해지면서 주지 못했던 설렘 같은 것이다. 마치 잊고 있던 청춘의 한 때를 기억하며 가슴이 뛰는 느낌을 갖는 것. ‘커피 프린스 1호점’은 한 마디로 불감증에 걸린 가슴을 ‘두근두근’하게 만드는 드라마다.

그런데 왜 하필 남장여자라는 캐릭터였을까. 바로 여기에 해답이 있다. 여성 캐릭터의 진화는 여성들의 사회진출과 함께 비례적으로 변화를 거듭해왔다. 과거 최루성 멜로 드라마 속의 여성 캐릭터는 눈물 하나로 충분히 당대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여성 캐릭터들은 신파로 오인 받는 눈물을 거두고 가슴 설레는 신데렐라의 로망을 꿈꾸게 되었다. 신데렐라는 차츰 가녀린 모습에서 가난하지만 씩씩한 명랑소녀로 변신했고 이 부분이 윤은혜가 등장하는 시점이다. 소녀장사 이미지의 윤은혜는 ‘궁’의 채경을 만나서 명랑소녀 전성시대의 정점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 또한 남성에 의해 거두어지거나 보호받는 캐릭터로 여전히 남성의 그늘이 남아 있었다. 완전히 남성의 테두리를 벗어나 오로지 독립적인 여성으로서 오히려 남자를 선택할 수는 없는 걸까. 여성의 사회진출이 남녀관계의 진정한 동등함을 요구할 때 윤은혜는 명랑소녀에서 미소년으로 변신했다. 남장여자가 되자 먼저 종속적이던 여성의 모습은 사라졌다. 그들은 의리와 우정으로 만남을 시작하지 구질구질한 남녀관계로 서로를 작업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 고은찬이란 캐릭터는 그러면서도 두 남자를 한 손아귀에 쥐고 있는 캐릭터란 점이다. 여기가 여성들의 로망을 살짝 드러내는 부분이다.

전문직 장르 드라마의 부활, 미소년에서 남자로
반면 ‘개와 늑대의 시간’의 이수현(이준기)은 평범한 듯 보이면서도 강력한 카리스마를 내재한 캐릭터다. 눈앞에서 킬러에 의해 어머니가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했으니 애초부터 평탄한 삶은 글러먹었다. 그래서 일상에 지쳐 나른한 남성들의 아드레날린을 자극해 칼과 총알이 날아다니는 모험의 세계로 인도할 이 오딧세우스는 태국이라는 이국적인 공간 속에 온 몸을 던지는 중이다. 그런데 이 평탄한 삶을 던져버리고 거친 복수의 길로 뛰어든 이수현이란 캐릭터는, 사회적으로 고개 숙인 남성들의 피를 끓게 하는 구석이 있다.

이준기는 왜 그의 명성을 만들어준 미소년이란 캐릭터를 그다지도 버리고 남자로 서고 싶었을까. 사회의 남녀 성차가 사라지는 것과 비례해서 드라마 속 남성캐릭터들은 마초적인 캐릭터에서 한없이 미소년으로 변모해왔다. 그것은 드라마의 주 시청층이 여성이라는 점에서 그 여성 캐릭터의 변화에 발맞춰 변모된 결과. 남성 캐릭터들은 한없이 친절해졌고 심지어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사극과 전문직 장르 드라마에서 남성시청자들의 존재가 증명된 뒤, 남성 캐릭터는 다시 카리스마의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주몽’이나 ‘하얀거탑’은 끝없이 욕망을 분출하는 남성의 로망이 투영된 드라마다.

최근 들어 등장했던 ‘히트’나 ‘에어시티’같은 전문직 장르 드라마들은 남성 캐릭터들은 다시 미소년으로 갈아치웠다는데 있다. 멜로와 장르 드라마의 부조화에서 불거져 나온 문제의 근원은 남성 캐릭터가 너무 친절하다는 점이다. 이준기가 미소년의 대명사로 등장한 것은 한창 남성 캐릭터들이 예뻐지다 그 정점에 올랐던 2006년. ‘왕의 남자’의 공길(이준기)은 사실 그 예쁘게 우는 남성 캐릭터의 극점이었다. 그것은 이준기라는 연기자의 성공과 동시에 커다란 족쇄를 의미했다. 그 이미지를 버리려 남자가 되려는 이준기라는 연기자의 축과, 남성의 로망을 다시 끄집어 내줄 새로운 카리스마가 필요해진 전문직 장르 드라마라는 축이 만난 것이 ‘개와 늑대의 시간’이다. 여기서 이준기가 연기하는 이수현이란 캐릭터는 과거의 그저 마초적이기만 한 카리스마가 아닌, 겉으로는 공길 같은 부드러움이 있지만 내적으로는 야수 같은 강렬함을 가진 카리스마를 갖고 있다.

여자의 로망과 남자의 로망
재미있는 것은 이 두 연기자의 이미지 변신이 한 발작이 아닌 반 발작 정도의 지점에 있다는 점이다. 윤은혜는 과거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왔지만 캐릭터가 주는 소명대로 소년의 이미지를 부가시켰다. 이준기는 여전히 미소년의 풍모를 가졌지만 순간순간 숨겨진 야수성을 보여준다. 이렇게 된 것은 이 두 연기자가 자신의 이미지 변신과 연기자로서의 평가를 제대로 받기 위해 들인 치열한 노력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이 한 발작이 아닌 반 발작이란 의미는 이들의 변신이 단지 오버에 의해 억지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방증한다.

멜로드라마의 쇠퇴 이후 그 대안처럼 등장한 전문직 장르 드라마의 부침은 이제 이 두 장르의 공존을 모색하는 시기로 넘어가는 듯 하다. 그것은 여성 시청자층으로 대변되던 과거에서 점차 남성 시청자층이 늘고 있는 현재가 만나는 지점이다. 그 핵심에는 여자의 로망과 남자의 로망이 있고 그걸 대변하듯 등장한 연기자들은 바로 윤은혜와 이준기다.

‘개와 늑대의 시간’, 전문직 장르 드라마 살릴까

이준기가 출연한다는 점만 갖고도 충분히 ‘개와 늑대의 시간’이란 드라마는 이점을 갖고 출발한다. ‘왕의 남자’와 ‘마이걸’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그는 ‘플라이 대디’로 주춤했지만 최근 들어 ‘화려한 휴가’로 연기의 진폭이 달라졌다는 걸 보여줬다. 연기자 이준기의 연기는 과거보다 좀 묵직해지고 날이 서 있다.

첫 회 시작부분에 강렬한 추격 신에서 보여준 이수현(이준기)의 모습은 2회에서의 번듯하게 자란 모습과 대비를 이루면서 드라마가 진행될 그 중간 변화의 과정에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란 독특한 제목 또한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을 말해준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제목을 이렇게 달 때부터 이 드라마는 분명한 선악구도보다는 선인지 악인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 놓여지는 인물들에 더 집중될 것이라는 걸 기대하게 한다.

스토리는 복수극의 구도를 따라가되 거기에 제목에서 암시한대로 상당히 많은 갈등 요소들을 포함시킬 것이 예상된다. 지금의 캐릭터를 그 스토리 라인에 잘만 풀어놓으면 꽤 괜찮은 복수극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면 초반 설정에서 이 드라마는 상당한 가능성을 기대하게 한 셈.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어딘지 위태롭게 보이는 건 왜일까.

그것은 아무래도 ‘히트’나 ‘에어시티’에서 보였던 액션과 멜로 라인의 부조화가 염려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드라마의 첫 회 도입부에 등장했던 추격 신은 ‘히트’의 도입을 연상케 하고, 2회에 등장한 공항 신은 ‘에어시티’를 연상케 한다. 그리고 이수현, 서지우(남상미) 그리고 강민기(정경호)의 멜로 라인은 2회를 넘긴 지금 이미 설정되어 있다.

지난 드라마들에서 장르 드라마가 갖는 긴장감을 여지없이 느슨하게 만든 장본인이 멜로였다는 점은, 액션과 멜로의 조화가 이 드라마의 성패를 갈라놓을 수도 있을 거라는 걸 말해준다. 다행스러운 건 이수현이란 캐릭터가 ‘에어시티’의 김지성(이정재)이나, ‘히트’의 차수경(고현정)처럼 애인이나 동료의 복수가 아닌 부모의 복수를 꾀한다는 점이다. 그만큼 절실하고 강렬한 욕망을 가진 캐릭터이기에 느슨한 멜로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 구석이 있다.

현재 드라마에 쏟아지는 엇갈린 반응들은 이 장르 드라마가 아직까지는 어설픈 느낌을 주고 있다는 걸 반증한다. 그 비교대상은 홍콩 느와르로 대변되는 세련된 액션이다. 앞으로 전개될 이수현이 청방의 언더커버로 들어갈 것이란 점은 애석하게도 이 드라마를 저 ‘무간도’와 비교하게 만든다. 하지만 같은 내용에도 전개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의 영화로 탄생한 ‘티파티드’를 볼 때, 비슷한 설정에도 중요한 것은 그 장르를 제대로 살려냈느냐 하는 점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드라마는 장르를 제대로 살려내는 것이 관건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큰 위험성은 아이러니 하게도 바로 그 가능성을 기대하게 만드는 제목에서 비롯된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란 제목에서 드러난 이수현과 서지우(남상미)의 상황이 너무 일찍 구도를 잡은 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만일 ‘개와 늑대의 시간’의 의미가 사랑하는 여인의 아버지가 원수라는 상황을 말하는 거라면 이야기는 너무 일찍 단서를 제공한 셈이다. 다행히 여기에 이수현과 강민기의 관계가 변수로 작용한다. 어쩌면 남녀 관계에 우정 관계를 접목하는 부분에서 드라마는 좀더 힘을 얻을 지도 모른다.

물론 이 모든 건 2회가 끝난 지금 하나의 가정일 뿐이다. 지금 상황은 말 그대로 ‘개와 늑대의 시간’이다. 그럼에도 멀리서 다가오는 실루엣에 가정과 제언을 붙이는 이유는 이 드라마가 지금 현재 전문직 장르 드라마가 겪은 어려운 길을 걷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다. 저 해가 땅 끝에 붙어 있는 사물을 분별하기 어려운 시각에 조금씩 다가오고 있는 이 드라마가 개가 될지 늑대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어느 것이든 장르에 충실한 드라마가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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