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가는 <객주>, 도 넘은 아이에 대한 집착

 

왜 이토록 아이에 대한 쟁탈전을 반복하는 것일까. KBS <장사의 신 객주(이하 객주)>의 아이 쟁탈전에 대한 집착이 도를 넘었다. 마치 이 사극 속의 육의전 대행수 신석주(이덕화)가 아이에 대해 집착하는 모습이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처럼, ‘장사의 신이라고 떡 하니 문패를 박아놓은 드라마가 장사는 안하고 아이를 두고 벌이는 쟁탈전이 상식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장사의 신 객주(사진출처:KBS)'

덕분에 이야기는 산으로 가고 있고, 괜찮았던 캐릭터들은 점점 매력을 잃어가고 있다. 국사당 마마로서 전체 장사판을 혀 하나로 좌지우지 하던 매월(김민정)은 천봉삼(장혁)이 조소사(한채아)와 혼인을 맺은 일 때문에 질투에 눈이 멀어버렸다. 한 때는 마음 속 연인인 천봉삼을 음으로 도왔던 매력적인 인물이지만 이제는 그의 아이를 훔쳐 길소개(유오성)가 신석주를 망신 주는 술수를 쓰는 인물로 전락했다.

 

천봉삼과 팽팽한 대결구도를 이루던 신석주도 마찬가지다. 육의전 대행수로서 적수지만 그래도 대인으로서의 풍모를 보이던 그는 천봉삼과 조소사 사이에 태어난 아이에 집착하기 시작하면서 추락하기 시작했다. 결국 매월이 훔쳐 온 아이를 길소개가 그에게 넘겨주고, 김보현(김규철), 민겸호(임호)와 객주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아이의 친부는 사실 천봉삼이라는 것이 폭로됨으로서 대행수로서의 위신은 바닥에 떨어지고 만다. “내 아들이야 육의전을 이어받을 내 아들이야!”라고 소리치며 악쓰는 신석주에게서 한 때 천봉삼의 호적수였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다.

 

원산객주와 길소개의 모략으로 천가객주의 말뚝이(황태)라고 속여 못 먹을 말뚝이를 섞어 팔던 전주객주를 찾아간 천봉삼은 결국 모든 문제들을 풀어나갈 실마리를 잡지만, 마침 온 원산객주가 신석주와 자신의 아이의 일을 얘기하자 모든 걸 집어치고 천가객주로 달려간다. 그나마 장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던 참에 이야기는 다시 아이 쟁탈전 문제로 돌아가 버린다.

 

물론 아이 쟁탈전 문제가 <객주>에서 전혀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어찌 보면 신석주의 유일한 약점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어찌 보면 무모해 보이는 아이 쟁탈전이 감행되고, 그 하나의 약점이 만천하에 드러남으로써 신석주가 육의전 대행수로부터 불신임을 얻게 됐다는 것. 따라서 이 아이 쟁탈전으로 신석주는 뒤로 물러나고 대신 길소개가 전면에 나서게 되는 이야기가 이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이제 신석주가 물러난 마당에 아이 쟁탈전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게 되지 않을까. 이제 본연의 장사 이야기로 흘러가지 않을까. 하지만 길소개라는 인물이 전면으로 나서는 만큼 그것이 온전히 장사에 대한 이야기가 될 지는 의문이다. 길소개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온갖 술수를 다 동원하는 인물이다. 신석주보다 더 하면 더했지 덜 하지 않은 캐릭터라는 것이다. 결국 온전한 장사의 대결을 보기보다는 그의 술수와 맞서는 천봉삼의 이야기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객주>에 대한 시청자들의 볼 멘 소리는 장사에 집중된 성공과 실패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이면에 벌어지는 온갖 술수들이 너무 과도하게 등장함으로써 이야기의 본말이 흔들리고 있는 것 때문에 생겨난 일이다. 물론 이런 술수와의 대결이 <객주>가 그리려는 진정한 상인의 길을 말하는 것일 테지만 그것이 너무 과도한 것이 문제다. 과도한 설정의 반복은 자칫 캐릭터의 매력까지 앗아갈 수 있다. 산으로 가고 있는 <객주>. 빨리 제 갈 길을 찾아야 시청자들을 되돌릴 수 있지 않을까.



장사 안 보인다는 <객주>, 현실도 그렇지 않을까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KBS에서 드라마화 되며 장사의 신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장사의 신이라는 수식어에 걸맞는 장사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볼 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장사의 신 객주(사진출처:KBS)'

그저 나오는 소리가 아니고 실제가 그렇다. <객주>가 최근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건 육의전을 대표하는 신석주(이덕화)와 보부상들을 대표하는 천봉삼(장혁)의 대결이다. 천봉삼은 대놓고 신석주에게 장사로서 대결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신석주는 번번이 이런 천봉삼의 바람을 무너뜨리고 술수를 써 천봉삼을 궁지로 몰아세우려 한다.

 

조소사(한채아)를 사이에 두고 신석주와 천봉삼이 벌이는 밀고 당기기는 <객주>에 장사는 안보이고 심지어 막장 같다는 얘기가 나오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다. 조소사는 천봉삼의 아이를 낳지만 신석주는 그 아이를 자신의 아들로 두려는 욕망을 멈추지 않는다. 잠깐 안아보자고 조소사로부터 건네받은 아이를 안고는 도주해버리는 장면은 실제로 막장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풍경이었다.

 

용대리에 말뚝이(황태) 덕장을 직접 만들어 신석주의 독점을 막으려는 천봉삼의 노력에, 신석주의 사주를 받은 길소개(유오성)는 덕장 창고에 쌓아둔 말뚝이에 불을 질러버리는 만행을 저지른다. 천가객주에 관군을 몰고 가 쫓기는 신세인 쇠살주 조성준(김명수)을 잡는다는 핑계로 토포를 하고, 여기에 질투에 눈이 먼 매월(김민정)까지 조소사를 죽여달라는 요구를 함으로써 대신 방금이(양정아)가 살해되는 일도 벌어진다.

 

이런 사정이니 <객주>에 정작 장사가 보이지 않는다는 불만이 나오는 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객주>가 그리고 있는 것이 온전히 장사 이야기에만 국한되지 않는 것 또한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천봉삼은 신석주의 독점으로 막혀 있는 판로를 뚫고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아예 자체 생산을 하는 장사의 신다운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신석주는 그런 장사를 통한 대결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는 막장에 가까운 일들을 막후에서 벌임으로써 자신이 갖고 있는 장사의 헤게모니를 유지하려 한다.

 

지금의 대중들이 원하는 건 아마도 공정한 장사로서의 대결일 지도 모른다. 최소한 공정하기만 하다면 실패한다고 해도 그다지 서럽게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네 현실에서 장사의 성공은 그런 공정함과는 거리가 멀다. 돈이 많은 자들은 자본의 힘으로 영세 상인들이 힘겹게 일궈온 장사 밑천들을 하루아침에 밀어버릴 수 있는 환경이다. 때로는 그 불공정한 경쟁의 우위를 잡기 위해 불법적인 정치적 결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심지어는 법 역시 가난한 자들을 핍박하기 위해 도용되기도 한다. 지리한 소송 끝에 영세한 상인들은 잘못한 일도 없으면서 무너져 내린다.

 

안타깝지만 이게 우리네 현실이다. 장사가 어려운 건 장사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헤게모니들의 불공정하고 불법적인 행위들 때문이다. <객주>가 온전히 장사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지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는 아닐까. 결국 <객주>가 보여주려는 건 단순히 장사를 잘해 일가를 이룬 장사의 신을 그리려는 게 아니라, 육의전 신석주로 대변되는 기득권자들이 모든 걸 장악한 현실에서 그들과 싸워나가는 그 과정이 아닐까. 장사는 안하고 술수와 모략들만 넘쳐난다는 비판은 공감 가는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네 현실이 그렇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물화길 막는 육의전, 그 길을 뚫는 보부상

 

도대체 영세한 상인들은 뭘 먹고 살란 말인가. 시대가 흘렀어도 달라진 건 별로 없는 것만 같다. KBS 수목드라마 <객주>에서 나오는 보부상들의 희망 천봉삼(장혁)의 이 토로는 어찌 보면 지금도 여전히 영세 상인들에게서 나오는 이야기이니 말이다.

 


'장사의 신 객주(사진출처:KBS)'

보부상의 대표격인 천봉삼이 싸우고 있는 건 육의전의 대행수인 신석주(이덕화). 신석주는 물화 독점에 의한 매점매석을 통해 거대한 자본을 모은다. 그는 풍등령 고개에 자신의 친척을 화적으로 세워 장삿길을 막고는 대신 물길을 독점해 손 하나 까닥하지 않고 돈을 끌어 모은다. 그러자 천봉삼은 그 풍등령 길을 뚫어 20만 보부상들의 장삿길을 열어놓는다.

 

천봉삼에게 장삿길은 마치 우리 몸의 혈관과 같은 것이다. 그 길이 막히면 한쪽으로만 피가 몰리고 다른 한쪽은 피가 미치지 못한다. 물화길이 뻥뻥 뚫려 있어야 보부상들이 구석구석 다니며 지역 곳곳을 살아가게 만든다. 하지만 신석주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 천봉삼이 풍등령 장삿길을 뚫자 신석주는 길소개(유오성)를 시켜 이제 물화길을 끊어버린다. 원산포의 지주들에게 보부상에게는 물화를 내주지 말라고 한 것.

 

하지만 흐르는 강물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천봉삼은 신석주의 독점 체제로 인해 원산포 지주에게 헐값에 명주실을 울며 겨자 먹기로 팔아온 상촌마을과 거래를 틈으로써 보부상들의 물화길까지 열어 놓는다. 이것은 <객주>가 이야기를 그리는 방식이다. 신석주는 막으려하고 천봉삼은 뚫으려 한다. 신석주는 육의전과 보부청 뒷거래를 이용해 돈을 모으려 하지만 천봉삼은 이 뒷거래를 끊기 위해 도접장 선거에 나가 20만 보부상들의 지지로 당선된다. 이번에는 신석주가 당선된 천봉삼을 우피밀매와 소밀도살 누명으로 죽이려하지만 결국 살아난 천봉삼은 이제 말뚝이(말린 명태) 덕장을 독자적으로 운영해 신석주의 독점 체제를 무너뜨리려 한다.

 

독점으로 몇몇 일부만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나머지는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길. 그 독점을 뚫어서 모두가 아주 풍족하진 않아도 조금씩이나마 살아갈 수 있는 방도를 여는 길. <객주>가 육의전 신석주와 보부상 천봉삼이라는 두 인물의 대결을 통해 그리고 있는 이야기다. 아마도 신석주의 독점 체계 안에서는 빈익빈부익부가 당연한 결과로서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과적으로는 나라 경제의 파탄을 불러오는 일이다.

 

이 이야기는 <객주>라는 사극이 지금 현재 방영되고 있는 이유다. 19세기말에 있었던 보부상들의 활약을 다룬 드라마지만 이 독점자본과 영세 상인들의 문제는 여전히 지금 우리네 현실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적은 돈으로 장사를 하거나 가게나마 차려 한 가족 생계를 만들려는 소시민들 앞에 대기업들의 자본 앞에 장삿길을 잃고 물화길을 잃는 일이 어디 19세기말에나 있었던 일인가.

 

한 세기가 훌쩍 지나간 지금은 어쩌면 더 체계적이고 공고해진 시스템으로 독점자본들의 매점매석이 그 어느 때보다 정교해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신석주에 대적하는 천봉삼의 고군분투에 마음이 닿는 건 우리네 현실도 그와 다르지 않다는 반증이 아닐까.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한 육의전들이 세상의 장사길을 독점하는 사이 가난한 이 땅의 보부상들은 가슴을 치며 <객주>의 천봉삼 같은 인물을 기다리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상도가 땅에 떨어진 현실, <객주>의 시사점

 

장사에도 상도가 있다. 그것을 지키는 것이 장사꾼의 첫 번째 도리다.’ KBS 드라마 <객주>의 천봉삼(장혁)이 말하는 장사다. 하지만 이런 얘기를 건네는 천봉삼에게 길소개(유오성)는 장사에 상도가 어디 있냐고 말한다. 그는 장사는 그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버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두 관점의 부딪침. 이것은 아마도 <객주>가 현재에 전하려는 메시지의 대부분일 것이다.

 


'장사의 신 객주(사진출처:KBS)'

상도를 지키려는 천봉삼의 길은 험난하다. 그는 화적들에 의해 막혀있던 북관대로를 뚫고 그 길을 막아놓은 것이 육의전 대행수인 신석주(이덕화)라는 사실에 분노한다. 수로를 이용한 유통망을 독점하고 있는 신석주가 육로를 일부러 막아 엄청난 이문을 남기고 있었던 것. 하지만 한달음에 찾아와 상도를 얘기하는 천봉삼에게 신선주는 오히려 달콤한 제안을 한다. 북관대로를 놔두면 자신이 육의전 어물전을 내주겠다는 것. 하지만 천봉삼은 이를 거부하고 전국의 보부상들에게 이제 북관대로가 열렸다는 사발통문을 돌린다.

 

그렇다면 상도는커녕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가까운 이들조차 죽음으로 몰아넣는 길소개나 신석주의 길은 어떨까. 거대한 자본을 이용해 매점매석하는 것이 이들이 돈을 쉽게 버는 방식이다. 북관대로가 열려 보부상들에 의해 장삿길이 열리자 이들은 대신 물화를 꽉 움켜쥐고 내놓지 않음으로써 보부상들의 뒤통수를 친다.

 

육의전과 보부상. 육의전을 표상하는 인물이 신석주와 길소개라면 보부상을 대표하는 인물은 천봉삼이다. <객주>는 결국 천봉삼이라는 주인공을 통해 국가에 의해 독점적인 권리가 부여된 육의전의 폐해를 알리고 대신 보부상들이 열어갔던 그 험난해도 가치 있는 장삿길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육의전은 거대한 자본을 이용해 장삿길을 막음으로써 매점매석으로 폭리를 취하고, 보부상은 그렇게 막혀있는 장삿길을 맨몸으로 뚫고 나간다.

 

<객주>가 지금의 시청자들에게도 어떤 통쾌함을 주고 있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세상이 달라졌고 시대도 많이 흘렀으며 먹고 사는 문제도 조선시대에 비해서는 훨씬 나아진 현재이지만 그럼에도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고 어떤 면에서도 더 나빠진 것도 있다. 그것은 지금도 여전한 정경유착의 육의전들이 대자본을 이용해 폭리를 취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 과정에서 작은 장삿길들이 막혀 고사하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상도 따위는 없어진 지 오래다.

 

그러니 <객주>의 천봉삼 같은 인물이 육의전 대행수와 맞서 막혀있던 북관대로를 뚫고 달콤한 유혹을 거부한 채 전국의 보부상들이 살아갈 길을 열어주는 대목이 우리에게 특별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객주>가 다루는 길은 그래서 여러 가지 의미들을 내포한다. 그것은 장사꾼들에게는 자신은 물론이고 식구들의 목숨이 달려있는 목숨길이다. 하지만 그것은 장사꾼들만이 살기 위한 길은 아니다. 그 삶과 죽음의 문제는 그들만이 아니라 이 나라 백성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이기도 하다.

 

<객주>의 천봉삼이 육의전의 독점적 상권과 맞서 자유로운 상업의 길을 주창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신자유주의적인 자유방임을 얘기하는 건 아니다. 그가 말하고 있는 상도는 그 안에서도 지켜져야 할 것들이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 상도가 지켜져야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천봉삼은 말한다. 장삿길은 그래서 마치 우리네 몸에 돌고 있는 혈관처럼 비유된다. 그 길이 막히면 누구 하나만 죽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가 쓰러질 수밖에 없다.

 

<객주>는 그래서 단순히 천봉삼이라는 민초들이 그들끼리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식의 영웅담이 아니라 함께 사는 길의 모색이다. 원작자인 김주영 작가는 <객주>라는 작품에 대해 환난상구십시일반의 정신을 얘기한 적이 있다. 환난상구란 곤란에 빠진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정신이고 십시일반은 완전히 망한 동료에게 한 푼씩 모아 최소한의 밑천을 만들어주던 정신이다. 지금 우리네 경제에는 환난상구십시일반의 정신이 남아있는가. 오히려 저 누군가 막아놓고 독점적 이득을 취하는 북관대로와 작은 장삿길들을 막아버리는 자본만 남은 것은 아닌가. 함께 사는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공멸한다는 것을 <객주>의 그 장삿길이 보여주고 있다.



'객주' 장혁, 순애보는 달달하고 성장기는 살벌하고

 

MBC <그녀는 예뻤다>의 그림자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KBS <장사의 신-객주(이후 객주)>가 조금씩 눈에 띄기 시작한다. <그녀는 예뻤다>가 종영한 자리에 <객주>가 그 자리를 꿰찰 수 있을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장사의 신 객주(사진출처:KBS)'

김주영 작가의 원작소설 <객주>79년부터 서울신문에 연재되어 84년까지 총 9권 분량으로 씌어진 대하소설이다. 내내 미련이 남았다는 김주영 작가는 최근 10권을 내놓으며 그 마침표를 찍은 바 있다. 아무래도 79년부터 84년까지 쓰인 소설이기 때문에 2015년 현재의 공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이야기가 진부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 속의 정서들이 지금의 쿨한 세태와는 조금 결을 달리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사극 <객주>는 마치 옛 사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어린 시절 파산해버린 천가객주의 후계로 태어나 누이와도 이별한 채 송파마방에서 잔뼈가 굵은 천봉삼(장혁)이라는 인물의 인생역정과 성장스토리가 그렇다. 그 성장스토리는 우리가 성장사극에서 많이 봐왔던 그 익숙한 구조 그대로다. 또 천봉삼의 조소사(한채아)에 대한 순애보 역시 요즘 정서의 사랑이야기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하지만 지금의 세태와는 사뭇 달라 조금은 촌스럽게까지 느껴지는 이 이야기가 의외로 강력한 몰입감을 주는 건 왜일까. 송파마방의 쇠살주인 조성준(김명수)이 친동생 같은 차인행수 송만치(박상면)가 아닌 천봉삼에게 객주를 물려주려 하자 송만치가 조성준의 처인 방금이(양정아)와 도주해 마방을 팔아먹는 이야기는 <객주>가 단지 장사에서 이문을 남기거나 혹은 손해를 보는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잘 보여준다.

 

이 사건으로 결국 조성준에게 붙잡힌 방금이는 오른쪽 발뒷꿈치를 작두로 잘리고, 송만치는 거세된다. 즉 장사만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객주의 엄격한 규칙 속에서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결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 혀를 잘못 놀리면 그대로 잡혀 혀가 잘린 채 길바닥에 버려진다. 이것이 객주라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객주>는 망하면 식구들이 모두 길거리에 나앉아 굶어죽을 수도 있다는 그 살벌함을 바탕에 깔아놓는다. 또한 돈을 벌겠다는 욕망이 과할 때 그 결과가 참혹하다는 것도 알려준다. 그래서 <객주>는 하나의 전쟁터 같은 살벌함을 장사라는 판에 끼워 넣는다. 무수한 인물들이 저마다의 욕망을 또아리처럼 틀고 앉아 기회를 노리고 있는 상황이니 이야기의 극성은 최고조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

 

여기에 <객주>는 천봉삼의 조소사에 대한 달달한 순애보와 그런 천봉삼을 또 사모하는 매월(김민정)의 비틀린 사랑을 더해 놓는다. 또 어릴 때 헤어졌던 누이 천소례(박은혜)와 천봉삼의 극적인 상봉 이야기는 마치 출생의 비밀 같은 강력한 힘을 심어놓는다. 성장스토리와 멜로, 가족이야기와 복수극. 실로 대하사극이 담아낼 수 있는 거의 모든 이야기적 요소들을 갖춘 셈이다.

 

그 중심에 천봉삼이라는 인물이 서 있다. 그는 누이도 찾아야 하고 스스로를 성장시켜 다시 천가객주를 되살려야 한다. 게다가 천가객주를 그렇게 만든 이들에게 복수를 해야 하며 동시에 그를 따르는 여인들과 애증의 멜로를 그려나가야 한다.

 

결국 조금은 촌스럽게 느껴져도 한번 들여다보면 빨려들 수밖에 없는 몰입감의 원천은 생생히 저마다의 욕망이 꿈틀대는 캐릭터들과 그들이 엮어가는 스토리의 힘에서 나온다. 순애보는 달달하지만 성장기는 살벌한 <객주>가 의외로 강한 이유다



<객주> 장혁의 등장, 그 기대감과 불안감

 

과거 거상 임상옥의 일대기를 다룬 고 최인호의 원작을 드라마화 했던 <상도>IMF 이후 제기된 상도덕과 기업 윤리에 대한 대중정서에 힘입어 큰 성공을 거두었던 바 있다. <객주2015>는 여러모로 <상도>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지만 사실은 소설가 김주영이 쓴 <객주(1979년 작)>는 최인호 원작 <상도(2000년 작)>보다 훨씬 앞서는 작품이다.

 


'객주2015(사진출처:KBS)'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객주>를 통해 <상도>를 떠올리게 된 까닭은 드라마로서 <상도>가 그만큼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작품이기 때문이다. 대중들에게는 작품의 선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작품의 성공과 그로 인한 화제성이다. <상도>가 얘기하는 기업가 정신이나 기업 윤리에 대한 이야기는 그래서 <객주>의 초반부를 장식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천가객주 천오수(김승수)의 곧은 삶을 통해 다시금 환기된다.

 

물론 초반의 이야기는 천오수의 아들 천봉삼(장혁)이 어떤 배경을 갖고 성장하는가를 보여주는 일종의 밑그림이다. 그래서 대작임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6% 남짓에 머물러 있는 것일 게다. 하지만 <객주>는 결코 이야기성에 있어서 약하지 않다. <상도>가 임상옥이라는 인물 하나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성장드라마의 성격이 강하다면 <객주>는 여러 인간 군상들이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수호지><삼국지> 같은 말 그대로의 대하드라마의 성격이 강하다.

 

한 인물의 성취나 성장이 아니라 여러 인물들이 저마다 부를 쥐려는 욕망들이 꿈틀대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갈등은 드라마를 더 긴박감 넘치게 만들어낼 수 있고, 무엇보다 선악의 단순 대결구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사실 부를 갖게 된다는 것은 개인적 노력만큼 중요한 게 어떤 우연적 계기다. 그것은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우연히 생겨나는 것들이다. <객주>가 부의 성취를 다루는 관점이 <상도>보다 낫게 여겨지는 건 바로 이 점이다. 어디 돈을 버는 일이 개인의 노력에 의해서만 되는 일인가. 대하드라마는 이것을 인간군상의 조감도로 그려냄으로써 부의 성취를 좀더 겸허하게 바라보는 시점을 제공한다.

 

아역을 지나 성인역으로 들어오면서 천봉삼의 역할을 맡게 된 장혁의 어깨는 더 무거워졌다. 결국 드라마의 중심축으로서 장혁이 그려낼 천봉삼이라는 인물의 매력이 <객주>라는 드라마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 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혁에게서 여전히 저 <추노>의 대길이가 먼저 떠오르는 건 어찌 된 일일까. 치켜뜨는 눈이나 비아냥대는 목소리 그리고 특유의 제스처까지 <객주>의 장혁은 <추노>의 장혁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처럼 보인다.

 

이래서야 <객주> 특유의 개성적인 색채를 만들어내기가 어렵게 된다. 아역 봉삼이가 보여줬던 캐릭터를 떠올려보라. 장사에는 관심도 없고 심지어 장사가 두렵다는 그 여리디 여린 인물이 바로 아역 봉삼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10년이 지나고 이 봉삼이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져 있다. 물론 성장과정을 통해 성격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그래도 그 본바탕으로서의 여리고 섬세한 봉삼이의 캐릭터는 깔려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객주>는 원작이 그러하듯이 이야기성이 탄탄하고 캐릭터들 또한 매력적인 작품이다. 그러니 그 이야기를 제대로 전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넘어야할 산이 있다. <객주><상도>의 이미지를 벗어내야 하고, 장혁은 <추노>의 이미지를 떨쳐내야 한다는 점이다. 장혁의 등장으로 기대감도 커졌지만 불안감도 커진 게 사실이다. 이 불안을 떨구고 그것을 기대로 채우는 일. 그것이 <객주>가 제 색깔로 훨훨 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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