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의 동네한바퀴’, 동네의 푸근함은 어디서 오는가

“별 볼일 없는 가게에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복이라 생각하고 가져가세요.” 식당을 찾은 김영철에게 주인아주머니는 누룽지를 챙겨주며 그렇게 말씀하셨다. 김영철은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자꾸만 식당 쪽을 돌아봤다. 그의 눈가는 어느새 촉촉이 젖어 있었다. 그 누룽지를 챙겨주시며 주인아주머니가 울고 계셨다는 것이다. 

KBS <김영철의 동네한바퀴>가 찾아간 서울역 뒤편 중림 만리동. 김영철이 동네를 돌다 출출해져 지나던 길에 우연히 발견한 콩나물 비빔밥 집이었다. 한 그릇에 가격은 3천원. 푸짐하게 담아주는 비빔밥에 “3천원 받아서 남는 거 있냐”고 묻는 김영철은 마음 속으로 어머니가 어린 시절 자주 해주셨던 그 콩나물 비빔밥을 떠올렸을 게다. 그 밥하고 맛이 똑같다는 김영철은 어느새 아주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익 남긴다는 마음은 요만큼도 없다”는 아주머니를 보며 김영철은 그 옛날 1970년대 어느 집을 가도 “밥 먹고 가라”시던 그 시절의 어머니들을 떠올린다. 

서울역을 바쁘게 지나기만 했던 분들이라면 <김영철의 동네한바퀴>가 김영철의 발걸음에 담아 보여준 그 뒤편 골목길들의 풍경이 새삼스럽게 다가왔을 게다. 사실 천천히 걸어야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게 동네다. 그 동네는 김영철이 말하듯 고향 같다. “엄마 같기도 하고 편하고 따뜻하고.”

기차가 지날 때마다 땡땡 소리가 나서 붙은 땡땡거리 서소문 건널목을 건너 중림동으로 들어가는 김영철은 길을 걷다 우연히 본 골목 앞에 문득 멈춰선다. 옛날에는 서울 골목이 다 그랬다는 것. 두 사람이 걸으면 꽉 찰 듯한 좁은 골목길이지만 그래서 어딘가 정겨운 그 골목길은 그 곳이 서울역 뒤편에 있는 동네라고는 믿기지 않는 풍경으로 다가온다. 

제목처럼 동네 한 바퀴를 도는 것이 이 프로그램이 하는 전부지만, 궁극적으로 이 프로그램이 보여주려는 건 동네만이 아니다. 그저 지나치듯 바라보면 특별할 것 없는 조금 오래된 동네의 풍경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풍경을 특별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그 곳에 있다. <김영철의 동네한바퀴>는 그 사람들을 찾아간다.

만리시장에서 35년간 방앗간을 했다는 주인아저씨는 일일이 손으로 짜내는 참기름, 들기름을 찾는 손님들에게 담아준다. 세월의 더께가 앉아 있는 그 집을 찾는 손님들은 “이 집은 뭐든 맛있다”며 들기름을 사간다. 김영철은 어렸을 때 그 앞을 많이 뛰어다니며 놀았다고 술회한다. 그 때도 아마 그 방앗간은 거기서 고소한 냄새를 동네 한 가득 뿌려 놓고 있었을 게다. 

시간이 멈춘 듯한 노포 성우이용원은 3대에 걸쳐 총 90년 동안이나 그 자리를 지켜왔다. 그 집에서 60년째 그 일을 하고 있다는 아저씨는 그 옛날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방식 그대로 지금도 손님을 맞는다. 슬쩍 봐도 예사롭지 않은 공을 들이는 이발은 물론이고, 물뿌리개로 머리를 감겨주고 말가죽에 날을 세워 하는 면도가 보기만 해도 마음을 푸근하게 만든다. 16살 때 배웠지만 하기 싫어 방황을 했었다는 그일. 하지만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키며 쌓아온 경력은 이제 미국, 에콰도로에서까지 찾아오는 손님들을 만들었다. 

염천교 수제화 거리에서 만난 수제화 장인은 발의 본을 직접 떠서 일일이 손을 두드리고 바늘로 꿰어 그 사람에게 딱 맞는 신발을 지금도 만들고 계셨다. 한 켠에 쌓여있는 손님들 발의 본을 떠놓은 것들을 보니 어째서 사람들이 그 곳을 찾는가가 이해된다. 양 발의 크기가 다른 분이나 장애가 있는 분들이 기성화를 억지로 신으며 불편을 감수했던 걸, 아저씨는 그 발에 딱 맞는 신발을 만들어 편하게 해주신다. 손님들이 좋아해서 이 일을 계속 하고 있다는 아저씨의 말에서는 장사라는 단어로는 채울 수 없는 마음이 느껴진다. 

게스트하우스들이 많이 생기며 외국인 관광객들이 늘어난 동네에는 스타가 된 구멍가게 아주머니도 있었다. 능숙하게 영어를 하며 외국인들을 상대하는 슈퍼 아주머니는 찾은 손님들과 찍은 사진들을 가게 벽면에 가득 붙여 놓았다. 장사가 아닌 그 외국인들과의 추억이 만들어지는 공간. 이미 SNS로 알려진 그 곳은 외국인들이 꼭 찾아가는 ‘성지’가 되어 있다고 한다. 어둑해져가는 동네 관광을 마치고 돌아온 외국인들이 마치 집처럼 편안하게 슈퍼 앞에 둘러앉아 까르르 웃는 모습이 정겹다. 그들이 슈퍼에서 느낀다는 푸근함은 어쩌면 그 아주머니의 정 때문이 아닐까. 

<김영철의 동네한바퀴>는 빈티지의 가치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낡으면 싹 밀어내고 새로운 걸 세우기만 하던 시절이 있었다면 지금은 그 조금씩 시간의 더께가 얹어진 곳이 우리들의 발길을 잡아끄는 시대가 아닌가. 그래서 김영철은 그 아주머니가 소박한 누룽지 선물 하나를 건네며 흘리는 눈물에 마음이 뭉클해졌을 게다. 이 프로그램은 동네만의 따뜻함이 있는 건 그 곳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동네의 한 모퉁이를 비추는 불빛 같은 사람들이.(사진:KBS)

‘와이키키’, 갑갑한 현실 시트콤급 웃음이 못내 그리웠다면

JTBC 새 월화드라마 <으라차차 와이키키>는 벌써 제목부터가 시끌벅적하다. 드라마는 와이키키의 햇살 찬란한 해변에서 서핑을 하며 즐겁게 노니는 외국의 청춘들을 담아내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장면에서 쑥 빠져나오면 그 곳은 동구(김정현)와 준기(이이경) 그리고 두식(손승원)이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망할 위기에 처한 게스트하우스 ‘와이키키’다. 수도세와 전기세를 내지 못해 수도가 끊기고 전기마저 끊길 위기에 처한 곳.

<으라차차 와이키키>는 이 상황을 시트콤적인 웃음으로 보여준다. 물이 끊겨 머리를 감다 비누거품이 가득한 채 투덜대는 청춘들 앞에 누군가 놓고 간 아기가 울어댄다. 왜 우는 지 살피다 손에 똥이 묻어 화들짝 놀라는 청춘들이 기저귀를 갈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우는 아기를 달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상황이 주는 웃음. 마침 동구에게 결별을 선언하는 여자친구 수아(이주우) 앞에서 호기롭게 커플링을 던져버렸지만 한 푼이 아까워 그걸 다시 찾아갔다 들켜 굴욕을 당하는 장면이나, 영화촬영장에서 손가락 하나로 모든 걸 얘기하는 대배우 박성웅이 얼굴에 붙은 밥알을 떼 내라는 포즈를 잘못 이해해 뽀뽀를 하는 준기의 굴욕 또한 웃음을 준다. 

게다가 갑자기 나타난 아기 엄마 싱글맘 윤아(정인선)는 모유 수유를 위해 불쑥 가슴을 내놓는 바람에 이 청춘들을 화들짝 놀라게 하고, 젖이 나오지 않아 울어대는 아기를 위해 유축기를 사러 간 청춘들의 당황스런 상황들이 이어진다. 동구의 여동생 서진(고원희)은 갑자기 게스트하우스로 들어온 윤아와 하룻밤 동침을 하게 되고, 마치 <하얀거탑>의 의사들처럼 비장한 얼굴로 윤아의 나오지 않는 젖을 마사지하는 일을 겪게 된다. 

사실 이런 상황들과 그 속에서 만들어지는 웃음은 우리가 시트콤에서 익숙한 것들이다. 실제로 이 작품의 김기호, 송지은, 송미소 같은 작가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안녕 프란체스카>나 <푸른거탑>,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같은 시트콤에서 활약해온 이들이다. 물론 시트콤만이 아닌 <모던파머>나 <프로듀사>, <뱀파이어 탐정> 같은 드라마를 쓰기도 했었지만, 워낙 웃음 만드는 일에 이력이 난 작가들이라는 것.

그러니 <으라차차 와이키키>가 가진 기획의도가 분명해진다. 이 작품은 웃을 일 없는 현실에 한바탕 휴식 같은 웃음을 던져보겠다는 의도로 제작된 드라마다. 사실 현실이 고구마다 보니 그것을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시원한 사이다로 풀어보려는 작품도 많고, 차라리 판타지를 통해 현실을 넘어서려는 작품도 있지만, 이렇게 메시지보다는 재미로 똘똘 뭉쳐 웃음 그 자체가 주는 한 시간의 유쾌함을 제공하는 작품 역시 그 자체로 의미 있을 게다.

무엇보다 반가운 건 이 드라마가 소품인 만큼 신인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는 점이다. 김정현, 이이경, 손승원, 이주우, 정인선, 고원희가 그들이다. 아직까지는 시청자들에게 낯선 배우들이지만 첫 회만으로도 이들이 가진 풋풋한 매력과 개성은 이미 전해지고도 남았다. JTBC가 <청춘시대>를 통해 작품으로서도 성공했지만 신인연기자 발굴로서 큰 역할을 해냈던 것처럼, <으라차차 와이키키> 또한 그걸 잇는 드라마로 발돋움하길 바란다. 

그런데 왜 하필 <으라차차 와이키키>라는 제목일까. 그것은 첫 장면에서 보여준 것처럼 청춘하면 당연히 와이키키 같은 낭만이 먼저 떠올라야 하지만, 실제로는 망할 위기에 처한 게스트하우스로 다가오는 현실을 담는 것일 게다. 그런 굴욕과 힘겨움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드라마는 애써 ‘으라차차’ 힘을 내자고 제안한다. 한바탕 웃음으로 그걸 넘어서보자고. 그것이 어쩌면 청춘의 특권이기도 하니 말이다.(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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