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혜·소지섭의 ‘숲속의 작은집’, 이 기분 좋은 심심함이란

심심할 수 있다고 했지만 전혀 심심하지 않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사실 한 것들이 많았다. 다만 우리가 도시생활에서 했던 그런 일들이 아니었던 것일 뿐. tvN 예능 <숲속의 작은집>은 도시생활에서 너무 많은 소리와 빛과 욕망들 때문에 가려졌던 또 다른 소리와 빛 그리고 평온함을 우리 앞에 보여줬다. 심심하다는 건 도시생활의 기준으로 말했을 때 그랬다는 것이지만, 그 곳에서는 심심함을 넉넉히 채워주는 또 다른 즐거운 감각들이 깨어났다. 

‘실험’, ‘다큐멘터리’, ‘피실험자’ 등등. <숲속의 작은집>은 그 스스로도 기존 예능프로그램과는 너무나 다른 것들을 담는 것에 대한 제작진의 불안감을 그 표현들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가지 않은 길이 불안한 것뿐이지, 그 길에 새로운 설렘이 있다는 걸 이 실험적인 프로그램은 충분히 보여줬다.

첫 날 주어진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실천들은 그래서 흥미로운 것들이었다. 가진 것들을 꼭 필요한 것만 빼고 덜어내고, 밥 한 그릇 반찬 하나로 저녁 한 끼를 하는 체험은 어째서 우리가 비워내야 또 다른 것들이 채워질 수 있는가를 일깨워주는 것들이었다. 너무 많은 걸 갖고 있을 때는 그 가진 것들의 소중함이나 그 고유의 가치들을 느끼기 어려운 법이다. 옷도 그렇고 먹을 것도 그렇다. 

하지만 밥 한 그릇 반찬 하나를 놓고 대하는 저녁 밥상은 그 밥과 반찬이 주는 맛에 더욱 집중하게 만들었다. 많은 반찬들이 가득한 밥상 위에서 그 맛들의 향연을 누릴 때는 정작 반찬 하나가 가진 맛을 제대로 누리기 어려웠을 수 있다. 하지만 밥 한 그릇만을 오롯이 집중해 먹게 되면 오래 씹을수록 올라오는 밥 자체의 단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이 실험적인 예능 프로그램을 좀 더 흥미진진하게 만든 건 박신혜와 소지섭을 캐스팅한 점이었다. 두 사람은 성향도 너무 달랐고, 또 각각 다른 공간, 다른 날씨 속에서 이 숲속의 시간들을 경험했다. 그들의 성향이 다르다는 건 각각 이 숲속의 작은 집에 가져온 가방의 크기에서부터 나타났다. 박신혜가 꽤 무거워 보이는 트렁크 두 개를 낑낑대며 가져왔다면 소지섭은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듯 가볍고 단출한 가방 하나가 끝이었다. 

트렁크 가득 채워온 옷가지며 먹을거리들을 소개하는 박신혜와, 어쩌면 이런 단출한 삶 자체가 너무나 익숙해 보이는 듯한 소지섭은 그래서 어떤 비교하는 재미를 선사했다. 밥과 반찬 하나로 저녁을 해먹으라는 미션에 울상이 되어버린 박신혜가 도시의 삶에 익숙한 우리들의 감정을 그대로 이입하게 만들었다면, 그 미션에도 “배가 고프면 먹겠다”는 소지섭의 모습은 이 오프그리드의 삶이 어떤 것인가를 가늠하게 해줬다.

그래서 깨어난 건 도시에서 우리가 잊고 있던 감각들이다. 너무 많은 빛 때문에 사실은 하늘에 지천을 깔려 있었지만 보지 못했던 별을 보며 행복해하고, 너무 많은 소리들 때문에 제대로 듣지 못했던 빗소리, 바람소리, 개울가의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기분이 좋아진다. 아침 가득한 안개 때문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숲속에서 청각에 집중하며 시냇물 소리를 찾아가는 소지섭의 발걸음은 그래서 그 기분 좋게 숲이 녹아든 듯한 축축한 공기와 청량한 물소리가 더해져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스마트폰이 어디든 우리를 연결해주는 세상이지만,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바람소리와 물소리, 빗소리를 들려주는 앱을 다운로드에 듣곤 한다. 가끔은 모든 것들로부터 자신을 고립시키고 그 깊은 고요 속에서 잃어가던 나의 감각을 다시 찾아내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본래의 자신으로 되돌리는 과정이다. 본래는 자연의 일부지만 자기도 모르게 자연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낯선 도시 속에 살아가다보니 잊고 있던 우리 자신. 우린 지쳐있었던가 보다. <숲속의 작은집>의 기분 좋은 심심함에 이토록 빠져드는 걸 보니.(사진:tvN)

‘효리네 민박’, 폭설에 고립도 판타지로 만든다는 건

어찌 보면 JTBC 예능 <효리네 민박>이 처한 최대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제주에 폭설이 내리고, 그로 인해 ‘효리네’는 나가지도 들어가지도 못한 채 고립되어버렸다. 첫 손님으로 찾아와 이제 서울로 돌아가야 할 유도소녀들은 공항으로부터 날아온 결항 소식에 난감해 했다. ‘효리네’도 아침을 챙겨 먹이며 고립된 상황에 비축해놓은 식량 걱정을 했다. 

든든히 아침을 챙겨먹는 와중에도 눈은 그칠 줄 몰랐다. 그래도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려 노천탕에 들어가려 했지만 꽁꽁 얼어버려 물조차 나오지 않는 걸 확인하고는 이상순과 임윤아는 그걸 녹여보려 안간힘을 쓰기도 했다. 그래도 공항으로 가보기 위해 나선 유도소녀들은 미끄러운 언덕길을 차가 오르지 못해 결국 이상순이 직접 와 차를 몰고 소녀들이 뒤에서 밀어 가까스로 그 곳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래도 눈발이 조금 잠잠해지자 ‘효리네’에 고립된 손님들은 슬슬 주변을 둘러보기로 나섰지만 역시 여의치 않아 가까운 음식점에서 식사를 할 수밖에 없었고, 집을 나선 이효리와 이상순, 임윤아도 그 음식점을 찾아 식사를 했다. 하지만 오도 가도 못하는 그 상황에 이효리의 한 마디 제안이 반전을 만들었다. 갑자기 눈썰매를 타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고 모두가 기대감에 찾은 언덕은 아이들이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었다.

언덕 위까지 걸어 올라가는 일은 힘들었지만, 거기서 눈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길은 모두를 까르르 웃게 만들었다. 이상순은 이효리와 임윤아의 동영상을 슬로우 모션으로 찍어줘 그 즐거운 눈썰매의 추억을 담아냈고, 이효리는 그 곳에서 만난 한 귀여운 아이와 함께 눈썰매를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서핑을 하기 위해 ‘효리네’를 찾은 서퍼 청년들은 눈보라에 서핑을 갈 수는 없었지만 대신 눈썰매를 서프보드처럼 타고 내려오는 멋진 장면을 보여줬다. 

한바탕 눈썰매를 타며 신나게 놀고 난 후 카페에서 마시는 따끈한 코코아 한 잔의 맛은 보는 이들조차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모두가 다시 ‘효리네’로 돌아왔다. 귀경하려다 결국 비행기를 타지 못한 유도소녀들도 다시 ‘효리네’로 왔고 그래서 집은 북적북적했다. 저마다 하나씩 챙겨온 음식들로 저녁이 차려지고 모두 둘러앉아 함께 하는 식사자리. 어찌된 일인지 그 장면은 고립된 사람들이 아니라 외부와 단절된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사실 ‘고립’이라는 상황은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더 다가온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고립’의 의미는 정반대 느낌으로 도시인들을 자극하는 면이 있다. 어디를 가든 연결되어 버리는 ‘초연결사회’에서 살다보면 어느 순간에는 모든 연결고리가 끊어진 곳에서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픈 욕망이 하나의 판타지가 되기 마련이다. 최근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이 직접 시도하지 못하는 고립과 야생의 시간들을 대리경험 해줌으로써 인기는 끌고 있는 건 그래서다. 

<효리네 민박> 겨울편은 뜻하지 않게 쏟아진 폭설로 인해 고립된 상황이지만, 의외로 그 고립조차 하나의 판타지로 전해진다. 외부와 단절된 그 곳에서 서로가 나누는 음식과 대화와 놀이가 더더욱 즐거운 일로 다가오는 것이다. 먼 곳까지 왔는데 폭설을 만난 손님들에게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이효리는 끊임없이 그 고립에서의 ‘즐거움 찾기’를 시도한다. 쏟아지는 눈발이 그냥 보면 ‘폭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만, 그걸 슬로우모션으로 포착해내면 그림 같은 장면이 되는 것처럼, 고립의 상황에 그걸 즐기려는 노력의 필터를 끼워 상황을 반전시키는 것. 그렇게 이효리와 함께 하니 고립도 판타지가 된다.(사진:JTBC)

나영석 PD의 <삼시세끼>가 흥미로운 몇 가지 이유

 

이명한 CP에게 대놓고 물었다. 이번 나영석 PD<삼시세끼>는 어떨 것 같냐고. 그러자 답변 대신 이런 말이 돌아왔다. “너무 잘 하는 팀이라 제가 관여할 일이 별로 없어요. 저는 기획단계에 조금 참여했을 뿐이죠.” <12> 시절부터 나영석 PD의 사수 역할을 해온 이명한 CP. 그도 이제는 나영석 PD의 감과 능력을 100% 신뢰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그러면서 <꽃보다> 시리즈와는 다른 <삼시세끼>의 몇 가지 특징을 얘기했다. 그 첫 번째는 도시 문명과의 격리였다. 필자는 거기서 고립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사실 격리든 고립이든 그렇게 긍정적으로 들리는 단어는 아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복잡하게 연결된 네트워크 세상에서 이 단어를 떠올리면 의외로 긍정적인 뉘앙스가 묻어난다.

 

매분 매초마다 울려대는 스마트폰에 어디든 즉각적으로 연결시켜주는 최첨단의 네트워크 속에서 우리는 좀체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니 이런 네트워크를 잠시 끊어버리고 좀 더 본질적인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으로서의 격리나 고립은 결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닐 것이다. 특히 회사에 가족에 수많은 관계 속에 내몰려진 도시인이라면 더더욱. 격리나 고립은 여기서는 하나의 로망이 된다.

 

두 번째 <삼시세끼>의 특징은 그것이 오랜만에 나영석 PD가 해외가 아닌 국내에서 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이다. 이명한 CP“<꽃보다> 시리즈의 기획은 사실 굉장히 크다고 말했다. 인물 섭외에서부터 해외의 장소 선정까지 꽤 거대한 기획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비해 <삼시세끼>는 훨씬 가볍고 그만큼 소박한 프로그램으로 확연한 차별점을 보인다.

 

하지만 바로 그 소박한 지점이 오히려 이 프로그램만의 재미요소를 만들어낼 것으로 보인다.넓은 세상 밖으로 한없이 펼쳐져 나가던 카메라는 이제 소소하고 소박해 보이는 시골의 작은 일들 속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지 않을까. 그렇게 생활과 일상 속으로 밀착한 이야기들이 주는 새로운 묘미. 그것이 <삼시세끼>의 새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사실 농사를 짓는 예능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서세원의 <좋은 세상 만들기><청춘불패> 같은 프로그램이 아이돌들을 시골에 정착시켜 농사를 짓게 하고 그걸 카메라에 담아냈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들은 어떤 한계를 보이는 지점이 있었다. 그것은 농촌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다. <좋은 세상 만들기><청춘불패>가 담아내는 시선은 도시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농촌의 신기함이나 힘겨움에 대한 공감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명한 CP<삼시세끼>의 농촌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즉 지금의 농촌이란 단순히 농사를 짓는 곳을 의미하지 않고 도시인들에게는 살고 싶은 곳의 로망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즉 농사를 짓는 것은 맞지만 결코 농사라는 노동에만 집착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그 농촌의 삶이 지금의 현대인들에게 주는 그 단순하고 소박하며 편안하게까지 다가오는 그 판타지. 이것이 <삼시세끼>의 세 번째 특징이 될 것이다.

 

사실 사는 건 복잡해 보여도 결국 삼시세끼먹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 간단한 것을 어쩌면 잊고 살아가는 것일지도. 이명한 CP와 헤어지고 나오는 길에 한참 마지막 작업으로 정신없을 나영석 PD에게 못 참고 전화를 걸었다. “<삼시세끼>, 도대체 무슨 프로그램이죠?” 섣부른 궁금증으로 던진 질문에 나영석 PD에게 결국 돌아온 답변은 직접 확인하시라는 것이었다. 하긴 설명이 어떻게 그 격리와 소박함과 단순함의 로망을 모두 말해줄 수 있으랴. 직접 느껴볼 밖에.

 

때론 고립을 즐기자

스토리스토리 2011.03.14 18:31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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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배령에 대한 첫번째 기억은 'MBC 스페셜'이라는 프로그램이다. 카메라라는 것이 늘 그렇듯이 그 프로그램은 우리가 평소에 발견하지 못하는 것들까지 세세하게 우리 앞에 던져 놓았다. '곰배령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그 다큐멘터리는 나를 단박에 매료시켰다. 그래서 나는 "우리 한 번 곰배령 가볼까?"하고 물었고 아내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휴식년제에 들어간 곰배령은 사람들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는다, 지만 그래도 가려면 갈 길은 있다. 그 해에는 민박집 주인 아주머니가 곰배령 안에 사는 분의 이름을 가르쳐주면서 입구에서 그분을 만나러 왔다고 얘기하고 들어가라고 일러줬다. 우리 가족은 그 패스워드를 정확히 불러주었고, 그 입구를 막고 있는 관리인은 들어가라고 해주었다.

참 이런 자연이 없었다. 사람 발길이 없어서 그런지 모든 게 생생한 야생이었다. 산을 잘 오르지 않는 성격이지만 그래도 그 날은 꾸역꾸역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중간에 비가 내리는 바람에 아내와 막내는 낙오했지만, 나와 딸내미는 꼭대기에 올라 사진도 찍었다. 곰이 누워 있는 모양이라 붙여진 이름, 곰배령. 그 느낌만큼 편안함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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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기억이 워낙 좋아서였던 지 다시 곰배령에 가자는 내 얘기에 가족들은 모두 들떠 했다. 그래도 겨울인데 눈이라도 오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면 또 눈을 즐기면 되지 않나 하는 호기까지 생겼다. 묵을 펜션은 '강선산방'이라는 곳으로 아예 곰배령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나 30분 정도 걸어야 닿는 곳이었다.

차를 세우고 들어가니 녹지 않은 눈길이 별천지 같았다. 펜션도 좋았고 주인 내외도 친절했다. 그 날 밤 누운 자리에서는 하늘의 별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넘쳐났다. 그걸 가슴 한 가득 품으며 잠이 들 수 있었다.

다음 날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야호 했다. 그런데 눈이 계속 내렸다. 그치지 않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눈사람을 만들고 삽으로 눈을 파서 눈썰매도 타면서 아이들은 신나했다. 그런데 눈은 점점 더 많이 내렸고 거의 1미터에 가깝게 쌓여 버렸다. 마침 주인 내외는 딸내미가 대학을 졸업한다며 출타중이었고, 그 외진 집에는 우리 가족만 덩그라니 남아 있었다.

할 수 있는 건 그저 눈을 보고 밥을 먹고 산방이(그 곳을 지키는 멍멍이다)에게 밥을 주는 일이었다. 핸드폰이 되지 않는 지역이라 외부와 완전히 고립된 느낌이었다. 다음날 아침 밥을 챙겨먹고 여전히 그치지 않는 눈을 맞으면서 길을 나서려는데 옆집 총각이 산방이 밥을 주겠다며 집을 찾아왔다. 그 총각에게 "와도 너무 눈이 많이 오네요." 했더니 글쎄 이 총각이 해맑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좋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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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어렵게 곰배령을 탈출했다. 푹푹 빠지는 눈 덕에 주차장까지 걸어오는 길이 너무나 멀게 느껴졌고, 주차장을 가득 뒤덮은 눈은 도저히 차를 빼낼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을 주었다. 어찌 어찌 차를 빼고 비포장길을 달리는 그 순간순간은 생과 사를 오가는 아찔함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빠져나와 비로소 눈을 다 녹여놓은 도로로 올랐을 때, 내 머릿 속에는 계속해서 그 총각의 "좋잖아요!"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사실 뭐 불안할 게 있었을까. 조금 고립되더라도 조금 고생하더라도 그 자체를 사실은 좀 즐기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곰배령을 빠져나오면서 그동안 막혀 있다 뚫린 댐처럼 휴대폰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메시지들의 홍수를 들으며 한편으로는 좀 아쉬워 했었다는 거. 늘 저쪽과 연결되어 있기를 욕망하면서도 때론 완전한 고립을 꿈꾸는...

하긴 그런 기억이 또 있다. 어느 해 산사에 가서 겪었던 그 기억. 시간이 흐르고 나니 그 고립은 너무나 달콤한 것으로 남게 되었다.

월정사에서 하룻밤을 지낸 적이 있다. 어둑해진 밤에 도착한 나는 스님께 하룻밤 묵을 수 없겠냐고 물었다. 하루 방세로 대신 시주를 하고 스님이 안내해준 방에 들어갔다. 방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TV도 없고 라디오도 없고 장롱도 없고 소파도 없는 그 방에는 덩그러니 이불 한 채만 놓여 있었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것이 차츰 익숙해지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유는 뭐였을까. 있는 것으로 특징되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으로 특징되는 그 방이 주는 편안함. 산사의 밤은 고요했다. 불을 끄자 하늘에 별이 지천이었다. 모든 게 꺼진 듯한 그 기분. 완전한 어둠과 고요 속에서 나는 마치 어머니의 자궁 속에 들어온 것처럼 깊고 단 잠을 잤다. 그 때 내 머리 위에 늘 곤두세워져 있던 안테나도 꺼졌다. off. - '가끔은 꺼두셔도 좋습니다'(숨은 마흔 찾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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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배령 대탈출..ㅎ)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에서 김서방은 수없이 많은 불특정 다수를 말한다. '김씨표류기'의 김씨는 그런 의미다. 그 김씨는 밤섬에 표류하게 된 남자 김씨(정재영)이기도 하고, 자신의 방 속에 스스로를 고립한 채 표류하고 있는 여자 김씨(정려원)이기도 하며, 그 밖에 도시라는 정글의 바다 위에 각자 저마다의 섬을 갖고 표류해 살아가는 우리네 현대인들이기도 하다.

따라서 표류라는 말 또한 의미를 달리한다. 흔히 생각하듯 여기서의 표류는 바다 한 가운데 고립되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도심 한 가운데서도 표류할 수 있고, 집 한 칸에서도 표류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함유하는 의미로서의 표류란 '문명화된 공간으로부터의 이탈'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남자 김씨나 여자 김씨 모두 도시로부터 이탈된, 정확히 말하자면 밀려난 존재들이다.

구구절절, 그들이 왜 도시로부터 밀려났는가를 설명하는 건 재미없는 일이다. 영화에서는 남자 김씨가 밤섬에 표류하게 되는 동기로서 자살시도가 들어있기 때문에 굳이 카드빚이나 변심한 애인 같은 상투적인 이유를 붙여놓고 있지만, 사실 이런 이유는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다 이해되는 일이다. 여자 김씨에 대한 아무런 설명이 없어도(물론 이마의 상처가 그 이유를 다 설명해주지만) 그저 그 상황 자체가 이해되는 것처럼 말이다.

중요한 것은 고립된 표류하는 그들이 서로에게 어떻게 손을 내미는가(커뮤니케이션) 하는 문제다. 따라서 이 영화는 미디어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인간과 인간의 직접적인 소통이 사라진 공간 속에서 고립은 시작된다. 미디어를 통해 매개된 관계들은 종종 소통에 실패하고 만다. 섬에 표류된 남자 김씨는 핸드폰에 남은 배터리로 구조를 요청하지만 그것은 장난전화가 되거나, "그러십니까 손님"하는 규정화된 안내 멘트의 벽에 부딪치게 된다. 핸드폰이 꺼져버리자, 세계와 연결된 고리가 끊겨버리는 이 상황은 도시적 삶이 가진 소통의 가벼움을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그렇게 남자 김씨는 미디어가 사라진 공간 속에 표류된다.

한편 여자 김씨는 미디어에만 둘러 싸여 자신을 익명화한 채 살아간다. 인터넷과 미니홈피 속에서 살아가는 그녀의 삶은 온통 미디어에 둘러싸여 있지만(심지어 미디어 속에 들어가 있다), 그 누구와도 진짜 소통을 이루지 못한다. 심지어 그런 그녀에게 불쑥 들어온 외계생명체(남자 김씨) 역시 망원 카메라를 매개한 것이다. 실제적인 소통은 아마도 그녀에게는 상처 그 자체였던 모양이다. 그녀는 매일 밤 잠들기전 기억을 지우듯 비디오 클리너를 돌려본다.

영화는 각자의 섬 사이에 놓여진 이들 사이의 거리가 점차 좁혀져가는 과정에 천착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 고립된 두 사람이 소통의 매개로 활용하는 미디어의 방식이다. 그것은 병 속의 편지나 땅 위에 커다랗게 써놓는 글씨 같은 원시적이고 직접적인 미디어들이다. 버튼 하나면 메시지가 지구 반대쪽까지 날아가는 시대에 이 불편하기 짝이 없는 구미디어들의 소통이란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어쩌면 이 불가능해 보이는 소통이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진짜 소통인지도 모른다고 영화는 말한다.

표류기가 이 땅의 도시인들의 삶을 표상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소통은 기적처럼 보이고 대단할 것 없는 행위 조차 모험으로 여겨지게 된다. 무인도 시리즈가 갖는 고전적인 코미디의 웃음 코드 속에 푹 빠지다가도 어떤 뭉클한 감동에 다다르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도시 모험이 희구하는 목표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통을 가로막는 것들이 도시적 삶이라고 상정할 때, 도시에 둘러싸여 고립되어 있는 밤섬이라는 공간은 통조림 통 속에 담겨진 흙처럼 절망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그 밤섬이라는 공간 속에서 가지게 되는 작은 희망이 결코 작지만은 않은 것이란 점을 그려낸다. 여자 김씨의 방안을 가득 메우던 통조림 통의 절망감이 그 통 속에 자라는 옥수수처럼 희망으로 바뀌는 것은, 남자 김씨가 도시로 둘러싸인 고립된 밤섬을 희망으로 바꾸는 그 모습과 정확히 쌍을 이룬다.

'김씨표류기'는 무수한 미디어에 둘러싸여 오히려 소통 부재가 되어버린 시대 속에서 어떤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을 얘기한다.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보여주었던 이해준 감독 특유의 유머는 이처럼 포복절도의 웃음의 언저리에 늘 생각할 여지를 남겨놓는다. 정재영은 충분히 엉뚱하고 진지하게 우리를 웃겨주었고, 정려원은 사랑스러우면서도 마음 한 자리가 얼얼하게 우리를 감동시켜 주었다. 헐리우드 대작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김씨표류기'라는 존재는 어쩌면 통조림 통 속에서 피어나던 옥수수같은 존재가 아닐까. 이 영화가 내미는 손의 울림이 결코 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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