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법남녀’, 망자의 목소리를 통해 분노하게 된 건

70대 노인이 집에서 잠을 자다 사망했다. 누가 보면 호상이라고도 할 만한 상황. 하지만 자식들의 모습이 어딘가 수상하다.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기보다는 비용 문제로 병원을 옮기고, 사인은 ‘심근경색’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 알고보니 ‘심근경색’에 의한 사망은 보험금 특약사항이어다. 결국 보험금을 타기 위해 자식들이 서둘러 ‘심근경색’을 주장했던 것. 하지만 ‘심근경색’이라고 사인을 쓸 수 없다는 의사가 사인불명을 선언하자 시신은 결국 법에 의거해 부검을 하게 됐다. 

그런데 부검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난다. 노인의 발목에 결박흔이 드러난 것. 노인은 넥타이로 발목이 묶인 채 방에 감금되어 있었다. 텅 비어 있는 위는 노인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생활해왔다는 걸 말해줬다. 노인학대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노인과 함께 살았던 차남이 구속되었고 그가 전자화폐 투자로 모든 돈을 날려버렸다는 사실이 나왔지만 그는 범인이 아니었다. 평소 치매를 앓고 있어 묶어 둘 수밖에 없었다는 것.

차남은 결국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그 집에서 발견한 쥐와 고인에게서 동시에 복어독이 발견되면서 횟집을 운영하는 며느리가 용의선상에 올랐다. 며느리는 사업 실패로 시아버지에게 집을 팔아 돈을 융통해달라 했지만 이를 거부당하자 복어독을 좋은 약이라며 갖다 주었던 것. 하지만 복어독 역시 사인은 아니었다. 치사량이 아니었던 것이다. 

MBC 월화드라마 <검법남녀>가 다룬 70대 노인의 사망사건은 이 드라마가 우리네 현실을 다루는 독특한 방식이 담겨져 있다. 법의학을 소재로 삼고 있는 이 드라마는 매 회 사체 부검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사체들이 몸에 남긴 흔적으로 전하는 말들이 아프고도 씁쓸하게 다가온다. 사체를 해부하고 있지만 사실을 우리 사회를 해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주판알만 튕기는 자식들. 고인에 대한 애도가 아닌 보험금에 반색하는 자식들. 어떻게든 조의금을 더 받아낼까를 고민하고, 받아낸 조의금을 서로 자기 거라고 가져가려 싸우는 자식들. 만일 그 아버지가 자식들의 이런 모습을 안다면 얼마나 큰 상처일까. 그것은 어쩌면 죽음보다도 더 큰 아픔이 아닐까.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하지만 법의학에서 이 말은 틀렸다. 법의학은 죽은 자의 말을 듣는 학문이다. 그래서 사체 해부라는 어찌 보면 눈으로 보기 힘든 과정들이 실로 엄숙하고 경건하게 다가온다. 치매를 앓고 있었지만 발목이 묶인 채 방 안에서 넋을 놓고 앉아있는 이 아버지가 느꼈을 회한의 목소리를 법의학은 듣는다. 혹여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했을 수 있는 망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바로 법의학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검법남녀>는 그래서 긴박한 사건들과 드러나는 증거에 따라 반전에 반전을 더하는 이야기가 그려지지만, 그 밑바탕에 한 사람의 죽음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만큼의 무게를 갖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깔아두고 있다. 남편의 학대에 못 이겨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여인과, 1등만을 외치는 성적 사회에 짓눌려 신음하던 학생, 그리고 방에 감금되다시피 있으면서도 자식들 사진을 옆에 두고 있던 노인이 망자가 되어 그 사연을 전한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돈 계산만 하는 자식들의 이야기에 씁쓸함을 넘어 분노하게 되는 건 그 안에 우리네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있어서다.(사진:MBC)

하늘의 별이 된 김영애, 마지막까지 보여준 연기투혼

“묵은 빚은 돈으로 갚는 거 아이다. 눈으로 발로 갚는 기다.” 아마도 영화 <변호인>을 봤던 분들이라면 고 김영애가 연기한 국밥집 아줌마의 이 대사를 기억할 것이다. 국밥 한 그릇 먹을 돈이 없어 도망쳤던 송 변호사(송강호)가 성공해 돌아와 그 때의 빚을 갚겠다며 돈을 내밀자 아줌마가 했던 그 대사. 

사진출처:영화<변호인>

이제 그렇게 찰진 대사를 더 이상은 들을 수 없게 됐다. 김영애는 지난 9일 췌장암으로 별세했다. 고인이 된 그녀의 소식이 특히 놀랍게 다가왔던 건, 최근까지도 우리의 기억 속에 선연히 남은 작품들 때문이다. 유작이 된 KBS <월계수 양복점>에서 우리는 전혀 그녀가 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느끼지 못했다. 뒤늦게 알려진 것이지만 끝까지 진통제 투혼을 보이며 펼친 연기는 그래서 우리에게 김영애가 얼마나 치열한 배우였는가를 각인시켰다. 

김영애만큼 극과 극의 이미지를 연기한 배우가 있을까. <로얄패밀리>나 <황진이> 같은 작품에서 그토록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보여줬지만, <변호인>은 물론이고 <닥터스>나 <판도라>, <카트> 같은 작품에서는 서민들의 정이 느껴지는 따뜻한 연기를 보여줬다. 이제는 고인이 되었다는 소회 때문일까. 그래도 특히 기억이 남는 건 한 그릇의 국밥 같은 따뜻함이 묻어나는 서민적인 모습이다. 

<변호인>이나 <닥터스> 그리고 <판도라> 같은 작품을 보면 김영애라는 배우가 그 작품 전체에 어떤 정서를 만들어냈는지가 분명하게 느껴진다. 물론 주인공의 역할은 아니지만 작품의 어떤 색깔을 부여하는 역할. 이를 테면 대사 한 마디로도 느껴지는 <변호인>에서 국밥집 아줌마의 그 따뜻함이 주는 서민적 정서는 속물이었던 송 변호사가 인권변호사가 되는 계기가 된다. 

<닥터스>에서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유혜정(박신혜)이 엇나가지 않고 잘 자라 당당한 의사가 되는 그 배경에는 역시 강말순 할머니(김영애)라는 존재가 자리했다. “밥 먹는데 무슨 자격이 필요해? 숨 달려 있으면 먹으면 되는 거지.” 거기서도 이 할머니는 유혜정에게 따뜻한 밥을 차려준다. <판도라>에서 사지로 아들을 보내며 오열하는 모습이나, <카트>에서 차츰 노동자들과 연대해가는 모습 역시 서민으로서의 아픔과 따뜻함 같은 걸로 기억된다. 

즉 원로배우로서 작품의 뒤편에 늘 서 있었지만 그 존재가 만들어내는 온기나 때로는 차가움마저 작품 전체의 중요한 정서를 담는 역할을 해줬다는 점이다. 이 점은 아마도 같이 작업을 해온 배우들로서는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고인이 되었다는 소식에 함께 작업했던 제작진들이나 배우들이 진심어린 애도의 뜻을 표하는 건 그래서다. 

김영애가 췌장암을 발견한 건 이미 2012년 <해를 품은 달>을 촬영하던 도중이었다고 한다. 힘겨운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끝까지 책임을 다한 후에야 비로소 9시간에 걸친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유작이 된 <월계수 양복점>을 촬영하면서도 고인은 아픈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고 대사 하나하나를 잊는 법이 없었다고 했다. 작품 속에서 그 작품의 정서를 만들어냈던 것처럼 고인은 아마도 배우들에게 하나의 귀감이 되는 모습으로 떠났다. 하지만 그 모습은 대중들에게 어떤 열정과 따뜻함으로 기억될 것이다. <변호인>에서 보여줬던 영원히 식지 않을 국밥집의 온기처럼.

수저계급론과 오디션, 그리고 고 김현지

 

김현지라는 이름으로 그녀가 누구였는가를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갑작스런 부고에 그 이름을 검색해보고 예전 <보이스 오브 코리아>에 나왔었던 사진이나 영상을 본 분들이라면 이내 그녀가 누구인가를 기억해낼 수 있다. 오로지 목소리로만 평가받고 싶었던 그녀. 마치 성별조차 구분 없이 노래로만 자신을 알리고 싶다는 듯, 까까머리에 남자 같은 복장을 하고 무대에서 김도향의 바보처럼 살았군요를 부르던 그녀.

 


'고 김현지(사진출처:Mnet)'

어느 날 난 낙엽지는 소리에 갑자기 텅 빈 내 마음을 보았죠-’로 시작되는 그 노래는 마치 고 김현지의 삶을 담아낸 듯한 기시감으로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그냥 덧없이 흘러버린 세월을 그런 세월을 느낀 거죠.’ 그 가사가 그저 노래가사가 아니라 그녀의 진심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느끼게 된다. 그녀가 그토록 바보처럼 살았군요를 외치던 모습은 재능과 실력은 있으나 기회가 없어 덧없이 흘러버린 시간을 돌아보는 그녀의 절규였다는 걸.

 

회사에 들어갔는데 잘 안 됐다. 정말 노래를 하고 싶어서 누구보다 열심히 했는데 안 되더라.” “잘 때도 노래하는 꿈만 꾼다.” 당시 인터뷰에서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했던 이 말들이 못내 가슴에 박힌다. 그녀는 절실했다. 어떻게든 자신을 알리기 위해 이미 <슈퍼스타K>에 도전했었고 그것이 좌절되자 또다시 목소리로만 승부하는’ <보이스 오브 코리아>의 무대에 올랐던 것이다.

 

<슈퍼스타K>를 처음 기획해서 만든 김용범 PD는 당시 이 오디션 프로그램을 만들게 된 이유 중 하나로 아이돌에만 집중되어 있는 기획사 시스템으로 인해 소외된 20대 이상의 가수 지망생들에게 설 무대가 없다는 점을 얘기했던 적이 있다. 아이돌로 키워지려면 10대에 그것도 어린 나이에 기획사의 연습생으로 발탁되어야 한다. 그러니 이 시스템에 들어가지 못하고 20대가 넘어선 가수지망생들은 사실상 실력이 있어도 무대에 설 기회조차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초창기 오디션 프로그램이 지금보다 훨씬 더 대중들의 열광을 이끌어냈던 것은 다름 아닌 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열려 있는 기회의 무대에 공감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이 완벽하게 공평했다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기존 대형 기획사 중심의 시스템에서 어느 정도의 숨통을 틔게 해준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기회의 무대는 또 다른 경쟁 시스템으로의 진입이기도 했다. 결국 오디션 프로그램은 라스트 맨 스탠딩의 승자 독식 구조를 재현하는 틀이 아니었던가. 기획사 중심에서 방송사 중심으로 위치만 이동했을 뿐.

 

최근 들어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해 예전 같은 반응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이 시스템이 더 이상 대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대중들이 알게 됐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이제 한 명의 승자가 아닌 다수의 다양한 개성들이 저마다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무대를 원한다. 도대체 누가 음악에 순위를 매길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오디션 프로그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살풍경한 현실은 그러나 갖가지 스펙들과 외모, 집안 아니 나아가 태생까지를 들먹이며 선택된 자들에게만 기회를 준다.

 

이른바 금수저, 흙수저로 불리는 수저계급론이 우스갯소리처럼 나와도, 실제 그것이 현실이라는 걸 알게 되고 한없이 씁쓸해지는 게 우리가 사는 현실의 모양이다. 그 무엇이 이 제대로 피어나지도 못한 청춘의 꽃이 스스로 꺾어지게 만들었단 말인가. 그나마 기회를 갖기 위해 오디션 주변을 맴돌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을 고 김현지의 삶은 그래서 너무나 쉽게 방송의 문턱을 넘어오는 금수저의 삶과 극과 극의 모습이어서 더욱 안타깝다.

 

그 누가 이 어린 나이의 청춘의 입에서 그토록 세상 다 산 듯 절절한 바보처럼 살았군요를 절규하게 만들었던가



<휴먼다큐 사랑>, 고인이 된 그가 가족을 위로하는 법

 

마왕 신해철. 그는 떠났지만 그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갑작스레 떠난 신해철을 위해 마련된 콘서트에서 선후배들의 입을 통해 불려지는 노래 속에 그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그는 후배의 목소리를 빌어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뭐야?”하고 여전히 소리쳤고, 그의 아들 동원이는 화답하듯 난 아빠를 원해!”라고 외쳤다.

 

'휴먼다큐 사랑(사진출처:MBC)'

그는 떠났지만 가족들의 곁에 그는 여전히 자그마한 밥 그릇 앞에 앉아 있었다. 또 집 한 구석에 놓여진 그의 사진 속에 있었다. 가족들은 밥을 먹을 때나 아니면 사진 앞을 지날 때나 그에게 말을 걸었다. 특별한 맛이라며 젤리를 아빠의 사진 앞에 놓고는 이제 마음껏 드시라는 딸 지우의 마음 속에, 또 그녀가 차를 타고 가면서 따라 부르는 재즈카페슬픈 표정하지 말아요같은 노래 속에 살아있었다.

 

그의 노래는 여전히 가족을 향한 걱정이자 위로이자 격려였다. 가족에게 그 노래는 다정다감했던 아빠의 목소리이고 그가 여전히 전하는 사랑이었다. 그 사랑을 냄새로도 오래도록 느끼고 싶은 아내는 그의 베개 솜을 꺼내 아이들과 자신의 베개에 넣었다. 사라져가는 냄새를 통해서라도 그녀는 계속 그를 붙잡고 싶었다.

 

아내는 둘이 같이 웃었을 때 가장 행복했다고 말했다. 특별히 어딜 갔던 일도, 특별히 함께 무언가를 했던 일도 아닌 함께 웃었던 일’. 그래서 그녀는 그렇게 행복했던 기억이 너무 많다고 했다. 그 아내의 행복한 기억 속에서 신해철은 여전히 살아있을 것이다.

 

49제는 이승에서의 마지막 날이라고 한다. 하지만 신해철의 그날 아내는 그가 좋아했던 문어와 갈비찜을 만든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문어를 아이들이 챙기며 하나씩 빼먹는다. 그 문어의 추억 속에서, 그걸 먹는 아이들의 기억 속에서 그는 여전히 밝게 웃고 있다. 마지막을 떠나보내며 팬들이 부르는 민물장어의 꿈속에서도.

 

그의 가장 좋은 옷을 챙겨 태우며 아내는 가족들 몰래 눈물을 삼킨다. 그녀는 그의 평안함을 기원하다가 아이들 잘 챙길께요라고 말한다. 그것은 아마도 떠나는 그에게 가장 위안이 되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가 떠나고 난 그 빈 자리가 얼마나 클 것이라는 것을 그 역시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의 빈 자리는 가족들이 하나씩 채워가고 있었다. 아내는 가장이 되어 더 일을 많이 하고 있었고, 아이들의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더 성장할 때까지 자신이 대신 버티겠다고 담배도 끊었다. 할아버지는 밤이면 그가 해왔던 문단속을 대신 한다. 그래도 동원이는 여전히 아이다. 누가가 잠시 자리를 비울라치면 견디지 못하는 그 아이를 이제 할머니가 맡는다. 그들은 서로가 조금씩 떠나간 그의 빈 자리를 채워간다. 위안 받을 수 있는 건 오로지 그렇게 서로 똘똘 뭉쳐있는 일 뿐이기 때문이다.

 

MBC <휴먼다큐 사랑>이 기록한 고 신해철의 다큐멘터리에 정작 신해철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예쁜 아내의 착한 마음 속에, 아빠를 진정으로 원하는 동원이의 마음 속에, 아빠가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한다는 지우의 마음 속에, 아프게 가슴에 묻어두고 그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있는 부모님들의 마음 속에, 그리고 여전히 그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같은 시대를 살았던 우리들의 마음 속에. 앞으로도.

 

BLOG main image
더키앙
문화 속에 담긴 현실을 모색하는 곳
by 더키앙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4592)
블로거의 시선 (96)
네모난 세상 (4381)
SPECIEL (19)
문화 코드 (1)
생활의 발견 (23)
술술 풀리는 이야기 (4)
스토리로 떠나는 여행 (10)
책으로 세상보기 (8)
문화 깊게 읽기 (4)
스토리스토리 (24)
사진 한 장의 이야기 (4)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다 (7)
대중문화와 마케팅 (9)

달력

«   2018/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13,149,367
  • 217732
textcubeget rss

더키앙

더키앙's Blog is powered by Tistory.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더키앙 [ http://dogguli.tistory.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