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네 반찬' 일본편, 합석해 음식을 나누는 풍경이라니

이것이 바로 잔칫집 분위기가 아닐까. tvN 예능 프로그램 <수미네 반찬>이 일본에서 연 반찬가게는 물밀 듯이 손님들이 찾아와 북새통을 이뤘다. 줄은 점점 길어져 한 블록 끝까지 이어졌고, 두 시간씩 기다리는 분들도 있었다. 첫 날 찾은 손님들이 맘카페 같은 데 후기를 올리면서 입소문이 났기 때문이었다.

반찬은 순식간에 동이 나버렸고, 그래서 마지막에는 한 손님 당 한 개씩만 가져가게 하는 ‘특단의 조치’가 내려졌다. 식사를 위해 오신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음식들도 하나씩 동이 나버렸다. 게장은 제일 먼저 바닥을 보였고, 김치찜도 전부 나가 나중에는 김치찌개로 전환하기도 했고, 새로운 메뉴로 닭볶음탕에 제육볶음이 즉석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어떻게든 찾아주신 손님들에게 음식 하나라도 대접하고픈 <수미네 반찬>의 진심이 느껴졌다. 그러니 음식에서도 손님들은 그리운 고향의 맛, 엄마가 해주시던 집밥의 맛을 찾았다. “한국에서 엄마가 만들어준 맛이다”라는 손님의 말은 왜 <수미네 반찬>이 일본까지 가서 반찬가게를 열었는가에 대한 답변에 가까웠다.

하지만 <수미네 반찬>을 더욱 감동적으로 만든 건 자리가 부족해 합석할 수밖에 없었던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서 ‘집밥’을 먹으며 소통하는 모습이었다. 김수미의 다음 작품을 함께 하기로 한 영화감독은 자리를 함께 한 유학생들에게 손수 자신이 주문한 게장을 건네며 맛보라고 했고, 유학하면 집밥 생각이 더 난다며 그들의 입장을 공감했다. 그리고 나오면서 그 유학생들 몰래 음식 값을 대신 내주고 나오는 배려도 보여줬다.

그 자리에서 합석으로 처음 만난 손님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음식을 공유했다. 처음에는 일거리를 줄이기 위해 한 자리에 반찬들을 가운데 함께 먹도록 내놓은 것이지만, 그렇게 함께 음식을 먹다보니 낯선 타인들도 가족 같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재일교포와 함께 온 손님은 주문한 닭볶음탕을 앞에 함께 앉은 손님들에게 일일이 나눠주며 같이 먹자고 했다.

이런 분위기가 가장 고조된 건 오래 기다리는 손님들 때문에 안에 들어와 있는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장면에서였다. 김수미 특유의 호통으로 “빨리 먹고 가라”는 유머 섞인 권유에 손님들은 웃으며 화답해주었다. 장동민도 세상에서 제일 천천히 드시는 분이 왔다며 밖에서 몇 시간씩 기다리는 분들이 있으니 천천히 드시고 가라는 반어법으로 웃음을 줬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만 그 말에 손님들도 기꺼이 동조해주었다.

아마도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건 모두가 똑같이 그리운 한국음식에 대한 마음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일 게다. 그러니 내가 그리웠던 만큼 다른 분들도 똑같이 그리울 거라는 걸 공감하고 한 뜻이 되었던 것. 한 자리에서 자기가 시킨 음식이지만 앞자리 사람에게도 맛보라 권하는 진풍경은 그런 공감대가 있어 가능했다.

그리고 그건 우리네 잔칫집 분위기 그대로였다. 낯선 사람이 함께 앉아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도 나누던 그 잔칫집 분위기. <수미네 반찬>이 일본에서 연 반찬가게가 거둔 가장 큰 성과는 바로 이 음식 하나로 묶여지는 마음들이 아니었을까. 그 마음에 담긴 그리움과 진심이 느껴져 특히 감동적인 풍경이 될 수 있었다.(사진:tvN)

‘수미네 반찬’이 주부들의 시선 사로잡은 비결

도대체 이 묘한 카타르시스는 어디서 오는 걸까. tvN <수미네 반찬>을 보면 속이 다 시원하다는 주부들이 있다. 엄마가 했던 그 추억의 레시피를 떠올리며 거침없이 만들어내는 김수미의 요리 실력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하는 요리의 방식과 더불어, 이 프로그램이 구도로 잡아놓은 셰프들과의 역전된 관계가 그간 일상에서 짓눌려온 주부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준다는 것이다. 

<수미네 반찬>은 제목에서 드러나듯 김수미라는 인물의 캐릭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프로그램이다. 우리에게는 일용이 엄마로 더 알려져 있고, 여러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욕 잘하는 센 캐릭터로 각인되어 있는 인물이다. 물론 그 센 캐릭터와 엄마의 이미지가 더해지면 그 어렵던 시절에 쉽지 않은 살림으로도 자식들 건사한 억척 엄마의 면모가 그려진다. 억척스럽고 세지만 자애로움을 동시에 가진 그런 엄마가 김수미에게서 떠오른다는 것.

요리하는 방식도 딱 그런 억척 엄마의 그것이다. 밥 달라 아우성치는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빨리 먹이려는 마음과 그러면서도 맛도 좋고 영양도 좋은 음식을 해주려는 그 마음이 더해져 김수미의 요리법은 독특한 지점을 만들어낸다. 손이 너무나 빨라서 셰프들조차 그걸 따라가기가 쉽지 않아 진땀을 흘리게 만들고, 하나하나 계량을 해서 정량의 레시피를 추구하기보다는 손에 익은 감각으로 척척 양을 맞춘다. 보기에는 대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게스트로 나온 요리연구가 이혜정이 말한 것처럼 ‘세월의 고수’의 내공이 느껴진다.

김수미가 ‘요만치’ 식의 ‘계량법’을 시전하면서도 딱딱 맞춰내는 간은 그래서 신기하게 보일 정도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 이유는 그렇게 정량을 맞추진 않아도 넣어가며 맛을 봐가며 부족하면 채우고 넘치면 재료를 더 넣어 간을 맞추는 방식이 어쩌면 ‘가족의 입맛’에는 최적화될 수 있어서다. 가족은 저마다 입맛이 다르기 마련이다. 그러니 정량의 레시피는 가족마다 또 누가 먹느냐에 따라 달라져야 최적화된다. <식객>의 ‘세상의 모든 맛있는 음식의 가짓수는 세상의 엄마의 숫자와 동일하다’는 그 명대사가 그저 멋있는 표현이 아니라 실제인 이유다. 

물론 요즘은 가사노동 역시 부부가 분담하고, 요리를 하는 일에 남성들 역시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엄마들의 몫이 더 큰 게 현실이다. 그래서일까. 그 엄마들의 입장에서 보면 <수미네 반찬>의 김수미가 하는 시원시원한 요리는 마음까지 시원하게 만든다. 물론 정성이 담긴 요리지만, 척척 해내면서 “그냥 먹어”라고 퉁명스럽게 말하면서 입에 넣어주는 그 모습은, 그 힘든 살림도 모르고 밥 투정 반찬 투정하기도 하는 가족들 앞에서 서운함 같은 걸 느꼈을 주부들에게는 기분 좋은 ‘한 방’ 같은 느낌을 선사한다. 

게다가 <수미네 반찬>은 일련의 사회적 통념이 만들어내고 있는 권력구도(?)를 김수미라는 엄마를 통해 모두 뒤집어놓았다. 이 프로그램 안에서는 그래서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구도가, 남성과 여성의 구도가 역전되어 있다. 김수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쩔쩔 매는 셰프들의 모습은 그래서 요리 프로그램 그 이상의 카타르시스를 준다. 그러면서 이혜정과는 같은 엄마로서, 여성으로서의 공감대를 이어가는 대화를 나눈다. 

퉁명스럽고, 불친절하기 이를 데 없는 레시피지만 이상하게도 <수미네 반찬>이 주부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김수미라는 엄마가 하는 요리 속에 그 정서적 공감대가 들어 있어서다. 가끔 재료를 넣으며 너무 많이 넣으면 “죽는다”는 식의 얘기 속에 담겨진 두 가지 정서. 가사노동의 힘겨움이 살짝 감정적으로 얹어진 정서와, 그러면서도 가족들 건사하려는 그 따뜻한 정서가 김수미를 통해 드러날 때 주부들은 그것이 제 마음 같아 속이 다 시원해진다.(사진:tvN)

역시 '무도'는 평균 이하인 분야에 도전할 때가 제 맛이다

퀴즈 문제를 내고 얼토당토않은 답을 내놔 웃음을 주는 방식은 예능 프로그램의 고전적인 코드 중 하나다. 하지만 MBC 예능 <무한도전>이 가져온 ‘수학능력시험’은 이러한 퀴즈형 예능 코드와는 한 차원 다른 웃음의 격이 느껴졌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진짜 이번 수학능력시험의 시험지이고, 그것을 풀면서 멘붕에 빠져버리는 멤버들의 면면들이 주는 어떤 공감대가 그 밑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결과야 이미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제 아무리 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열심히 했던 사람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난 후 보는 시험이 낯설 수밖에 없고, 그 시험에 나오는 지문들이 기억에 남아있을 턱이 없다. 게다가 끊임없이 변화해온 시험의 경향이나 내용들은 더더욱 <무한도전> 멤버들을 당황하게 만들었을 게다. 

그나마 영어영역에서 괜찮은 점수가 나온 건 그것이 이후에도 계속 써먹는 분야여서다. 수학영역은 사실 따로 공부를 하지 않으면 풀기 어려운 건 당연한 사실 아닌가. 하지만 국어영역처럼 어찌 보면 우리가 일상영역에서 늘 들여다보는 분야가 그토록 어렵게 다가오는 건 이례적이다. 한번쯤 수학능력시험의 국어영역 문제를 시험 삼아서라도 들여다본 분들이라면 우리말이 언제부터 이렇게 어려웠나를 실감했을 것이다. 

응시자가 넘쳐나니 변별력을 갖기 위해 문제들이 어려워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보면 저런 문제들이 대학에 들어가서도 아니 사회에 나와서도 여전히 쓸모가 있을 지는 의문이다. 그래서일까. <무한도전> 수학능력시험에서 출연자들이 문제를 보며 황당해 하고 어떻게 하면 잘 찍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어느 정도는 포기하고 체념하는 모습을 보이는 장면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무한도전>은 물론 그 특유의 방식과 캐릭터로 수학능력시험에 처한 출연자들의 여러 면면들을 보여주며 빵빵 터트리는 웃음을 선사했다. 시험을 치르기 전 수능금지곡을 들려줘 혼란에 빠지는 출연자들의 모습이 그랬고, 시험을 보며 머리를 쥐어짜는 모습이나 나중에 답을 맞추며 하나도 맞은 게 없는 자기 시험지를 놓고 바보처럼 어색한 웃음을 짓는 모습들이 그랬다. 

그 시험을 직접 치렀을 수험생들이라면 이들이 보여주는 이 멘붕 상황들이 어떤 공감대와 함께 통쾌함마저 주었을 것이다. 그것은 어찌 보면 <무한도전>식의 수험생 위로법처럼 보인 건 그래서다. 예를 들어 조세호가 영어영역에서 53점의 높은(?) 점수를 맞자 유재석이 “너 무도랑 안 어울린다”고 말하는 대목이 그렇다. <무한도전>은 초창기 그토록 외쳤던 ‘대한민국 평균 이하’라는 지향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물론 지금 <무한도전>이 가진 위상은 이미 최고라고 할 수밖에 없다. 여기 출연하고 있는 멤버들이 모두 저마다 프로그램 한두 개씩은 이끌어나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학능력시험’ 같은 ‘새로운 실제영역’은 이들이라고 해도 여전히 ‘평균 이하’임을 끄집어내면서 동시에 보통의 대중들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위로할 수 있는 방식이 남아있다는 걸 보여줬다. 

역시 <무한도전>은 초창기 그들이 외치고 다녔던 ‘평균 이하’의 캐릭터였을 때 가장 빛난다는 걸 ‘수학능력시험’ 특집은 확인시켜줬다. 또 이미 최고의 위치에 오른 그들이지만, ‘수학능력시험’처럼 여전히 그들이 ‘평균 이하’임을 증명해주는 ‘도전 분야’는 아직도 많다는 것도. 웃으면서 공감하고 그리고 그 공감 안에서 어떤 위로까지 느껴지는 맛. 이것이 바로 <무한도전>이 지금껏 시청자들을 매료시킨 힘이 아닌가.(사진:MBC)

‘동상이몽2’는 어떻게 연예인 관찰카메라의 한계 넘었나

이른바 관찰카메라의 시대지만 그 호불호는 확실히 나눠진다. 특히 연예인이 그 가족과 함께 등장하는 관찰카메라에 대해 대중들은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싱글와이프>나 <둥지탈출>이 연예인들의 가족이 등장하는 것만으로도(사실 내용은 다를 수 있지만) 시청자들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건 단적인 사례다. 

'동상이몽2(사진출처:SBS)'

그런데 이상하게도 <동상이몽2>는 그 반응이 다르다. 여기에도 추자현과 우효광 부부가 등장하고, 이지애와 김정근 아나운서 부부가 등장한다. 물론 이재명 시장과 그의 아내 김혜경이라는 특별한 출연진이 눈에 띄지만 정치인과 연예인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유명인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리 이질적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도대체 <동상이몽2>는 무엇이 다르기에 연예인(유명인) 가족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불편함이 아닌 호평을 받고 있는 걸까. 

가장 큰 것은 <동상이몽2>가 보여주는 게 그저 연예인 부부의 특별한 일상이 아니라, 보통의 부부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면면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이재명 시장과 김혜경 부부가 강원도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는 모습은 그 나이의 부부들이 보여줄 만한 현실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풀 빌라가 로망인 아내와 낚시를 하고픈 남편. 그 사이에 갈등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금세 “내가 정말 당신을 사랑했나보다”라며 과거 임신했을 때조차 낚시를 하러 갔던 때를 회고하는 아내의 이야기는 둘 사이에 쌓인 남다른 부부의 정을 느끼게 해준다.

추자현과 우효광의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대륙의 별’이라 불릴 만큼 유명해진 추자현이지만 우효광과의 부부생활에서 그녀는 달콤살벌한 현실 부부의 면면을 드러낸다. 용돈을 올려달라는 우효광의 요구에 과거 목돈을 줬다가 주식투자를 해 날린 남편 이야기를 꺼내 말문을 막아버리는 추자현의 모습이 그렇다. 그렇게 현실적인 갈등을 보이지만 또 헤어질 때면 보고 있어도 그립다는 말을 할 정도로 절절한 애정을 보여준다. 유명한 연예인으로서의 일상은 거의 보이지 않고 대신 현실 부부로서의 공감대가 시청자들에게도 전해지는 이유다. 

짧은 분량으로 등장하는 이지애와 김정근 아나운서 부부의 일상은 더더욱 현실적이다. 프리 선언한 후 백수가 되어 육아대디의 삶을 살아가는 김정근이 마트에 들어가자마자 “나 카드가 없지롱”하고 말하는 대목은 빵 터지면서도 짠한 현실감을 준다. 조금이라도 아끼려는 아내와 철없이 비싸도 최고의 제품만을 사려는 남편 사이의 실랑이나, 아내가 준 카드를 바로바로 내역이 문자전송 되는 것 때문에 쓰지 않는 남편의 이야기는 보통의 우리 같은 부부들 역시 공감할만한 내용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이런 공감대가 바탕이 되어 있고, 그것이 <동상이몽2>라는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남편과 아내의 서로 다른 입장을 통한 소통이라는 지점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이 프로그램이 연예인 가족 홍보와는 거리가 멀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즉 최근 민감해진 연예인 가족 관찰카메라의 관건은 연예인 가족이 출연한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그 방송이 어떤 걸 지향하고 있고 그 메시지가 충실하게 시청자들을 공감시킬 만한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시청자들이 불편해하는 건 저들 만의 이야기가 보통의 시청자들과의 공감대와 상관없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관찰카메라를 제작하는 이들이라면 먼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봐할 것이다. 왜 그 방송을 시청자들이 봐야 하는가 하는 것에 대한 질문. <동상이몽2>는 현실부부의 서로 다른 생각을 공유하고 소통한다는 지점에서 그 질문에 충실히 답하고 있다.

‘집밥3’, 지금 백종원에게 필요한 건 일반인과의 소통

tvN 예능 프로그램 <집밥 백선생> LA특집에서 백종원이 한 요리 중 가장 빛난 건 아마도 한 교민의 가정집에서 한 짠지냉국이 아니었을까. 사실 가장 쉽게 만든 요리가 바로 짠지냉국이었다. 짠지를 그저 잘게 자른 후 물을 붓고 고명으로 파를 얹은 것이 요리의 끝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냉국을 먹어본 교민은 이내 먹먹해졌다. 오랜 타지에서의 생활로 잊고 있던 고향의 맛이 새록새록 떠올랐기 때문이다. 

'집밥 백선생(사진출처:tvN)'

그것은 ‘군내’라고 불리는 젊은 세대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맛이지만, 나이든 세대에게는 어릴 적 먹던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맛이었다. 결코 자극적이지도 또 화려하지도 않은 맛이지만 먹다보면 조금씩 찾게 되는 맛. 느릿느릿 시간을 두고 묵혀져 은근하지만 오랜 여운을 남기는 그런 맛. 짠지냉국이라는 어찌 보면 너무나 단순한 요리는 그래서 LA특집의 가장 큰 수확물로 남았다. 

그런데 만일 이 짠지냉국을 평소에 <집밥 백선생>이 하던 대로 스튜디오에서 제자들과 만들어 먹었다면 어땠을까. 거기에서 어떤 감흥을 느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즉 이 짠지냉국이 어떤 감동을 주는 맛으로 다가올 수 있었던 건, 바로 거기 그 맛이 고향의 맛으로 다가오는 교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맛이란 이처럼 일반화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맛이고 누군가에게는 심지어 싫어하는 군내에 불과한 것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눈물 나는 것. 그것이 맛의 실체다. 

그리고 이것은 <집밥 백선생>이 시즌3까지 이어오며 해왔던 쿡방 전도사로서의 ‘일반화된 맛’이 또한 갖게 되는 한계를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간 양념이 과하다는 비판이 가끔 등장하기도 하고, 그래서 양념은 각자 입맛에 맞게 그 양을 조절하라고 굳이 백종원이 얘기를 했던 건 바로 맛의 일반화가 갖는 오류를 넘어서려는 노력이기도 했다. 

‘만능간장’으로 대변되는 백종원 쿡방의 가장 큰 장점은 누구나 쉽게 ‘어느 정도의 맛’을 내는 ‘일반적인 맛의 공식’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밥 백선생>에 남는 아쉬움은 그 공식이라는 것이 갖는 한계로 인해 비판의 소지 또한 감수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 LA특집은 이런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의외의 발견이 되지 않을까. 그것은 저마다 다를 수 있는 맛의 체감을 인정하고, 다양한 일반인들과 어우러지는 일이다. 교민이 참여했던 것처럼 일반인들이 가진 맛의 기억과 어우러지는 쿡방. 그래서 백종원이 일반적인 맛을 제안하면서도 그 특수성을 찾아 어떤 맛의 공감대를 추구하는 그런 방식으로의 진화가 가능하다는 걸 이번 LA특집이 말해주고 있었다.

쿡방이 범람하고 레시피 또한 넘쳐나는 시대에 백종원의 신 생존법으로 제시되는 건 그래서 일반인과의 소통이다. 지금껏 스튜디오 안에만 머물렀다면 이제는 일반인들이 사는 현장으로 다가갈 필요가 있다. 거기에 더 다양한 맛의 세계가 존재하고, 무엇보다 그들의 삶의 이야기들이 맛으로 녹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과장', '약치기 드라마'라고 불러도 과언 아니다

“어지간히 좀 해요!” 참다 참다 못한 김과장(남궁민)이 직장상사인 서율(준호)에게 소리친다. ‘구조조정 없는 회생안’을 만들어보겠다고 경리부가 나서자 직장상사인 서율은 도와주기는커녕 터무니없이 짧은 기간에 마무리하라 통보하고 만일 제대로 된 회생안이 나오지 않으면 경리부를 공중분해 하겠다고 한다. 그래도 경리부 직원들이 동요되는 걸 막으려 그 통보를 쉬쉬하던 차에 이제는 아예 서율이 나서서 경리부 직원들에게 그 이야기를 떠들어댄다. 제 아무리 직장상사라지만 김과장의 입에서 ‘어지간히 좀 해라’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김과장(사진출처:KBS)'

드라마 <김과장>의 이야기지만, 현실에서 김과장 같은 대꾸는 입 안에서만 뱅뱅 돌 뿐, 입 밖으로 나오기 힘들 것이다. 그러니 김과장이 터트리는 이 사이다 같은 일갈은 속 시원하긴 하지만 비현실적인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같은 회사의 부하직원이 회사 잘 되자고 하는 짓을 대놓고 막는 서율 같은 직장상사는 비현실일까. 그렇지 않다. 이사급의 임원들 중에 일부는 회사 잘 되자고 어떤 일을 도모하기보다는 자신이 좀 더 오래 버티기 위해, 또 더 높은 곳을 올라가기 위해 일을 한다. 그러니 비상식적인 일들이 벌어진다.

그 와중에 등 터지는 건 애꿎은 직원들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괜스레 쓸데없이 야근을 하는 일도,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면 회사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일도 때론 상사의 요구에 해야 하는 샐러리맨들은 넘쳐난다. 샐러리맨들이 힘겨운 건 업무 그 자체 때문이 아니다. 이런 갖가지 비합리적인 일들을 괜찮은 척 웃으며 견뎌내야 하는 게 더 큰 스트레스다. 

최근 직장인들의 애환을 속 시원한 이야기로 풀어내는 이른바 ‘사이다 콘텐츠’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른바 ‘약치기 작가’로 불리는 양경수 작가의 <일하기 실어증>이라는 한 컷 짜리 웹툰도 그 중 하나. “보고서가 개판이네”라는 상사의 말에 속으로 ‘개처럼 일만 시키니까요’라고 응수하고,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에 상사의 뺨을 때리며 “못 피했으니 즐기세요”라고 하는 이 웹툰 속 인물이 주는 공감은 샐러리맨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웹툰이 가진 힐링적 성격 때문에 직장인들에게는 일종의 약이 된다는 의미에서 팬들이 그에게 ‘약치기’라는 예명을 붙여줄 정도.

<김과장>의 엔딩에 들어가는 웹툰이 바로 이 약치기 작가 양경수의 그림이다. 드라마와 웹툰이 이렇게 완벽한 콜라보를 이루게 된 건 둘 다 직장인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사이다라는 유사점 때문일 게다. <김과장>이 상상 이상의 엄청난 열광을 이끌어낸 가장 큰 이유는 최근 직장인들 사이에 화제가 된 바로 그 약치기 콘텐츠의 명맥을 드라마로 제대로 이어주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실로 <김과장>은 그런 의미에서 ‘약치기 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월급 로그아웃, 직장살이, 메신저 감옥, 야근각.... 최근 직장인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는 이런 신조어들을 보면 지금의 직장생활이 얼마나 힘겨운가를 잘 말해준다. <김과장>이 보여주고 있듯이 그들이 힘겨운 건 업무의 어려움 때문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비상식적인 일들로 인해 그 상황을 견뎌야 하는 것이 더 큰 스트레스다. 

하지만 어쩌랴.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말 한 마디 못하고 그 답답한 속내를 꾸역꾸역 안으로 삼킬 수밖에 없는 샐러리맨의 처지. 그런 그들에게 김과장이 마치 갑질 하는 직장상사와 회사를 비웃듯이 골려주고 비아냥대고 때로는 속 시원히 일갈하는 그 모습이 어찌 마음에 닿지 않을까. 직장인들이 김과장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격하게 공감하는 까닭은 하루 종일 시달리고 견뎌내던 그들이 이 드라마를 볼 때만큼은 그 힘겨움을 날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보이스>가 형사물에 골든타임을 덧붙인 까닭

 

즉석사진도 경찰과 응급환자들을 위한 비상출동 시간도 세계 어느 곳이든 3분이다. 왜냐하면 3분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기적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3분력>의 저자인 타카이 노부오의 문구는 왜 OCN <보이스>에 들어가게 된 걸까. 마치 tvN <시그널>을 연상시키는 형사물의 색채를 깔고 들어온 <보이스>는 거기에 골든타임이라는 콘셉트를 장착했다.

 

'보이스(사진출처:OCN)'

<시그널>이 과거와 현재를 잇는 무전기라는 판타지를 활용해서까지 미제사건을 해결하려는 그 간절함을 형사물에 담아냈다면, <보이스>는 누군가에게는 생과 사를 오가는 몇 분이 될 수 있는 사건 후 몇 분 간의 골든타임에 대한 절박함을 형사물에 녹여낸다. 그 시간은 단지 몇 분에서 몇 십 분에 불과할 수 있지만 그 시간에 대한 몰입이 그 어떤 작품들보다 강하게 다가오는 건 골든타임이라는 장치를 달았기 때문이다.

 

사건이 발생하고 112 콜센터에 피해자의 전화가 울린다. 그 전화 저편에서는 살려주세요라는 피해자의 간절한 목소리가 울려 펴지고 강권주(이하나) 센터장은 피해자와 지속적으로 통화하며 그들을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불의의 사고로 눈을 다친 후 남다른 청각을 소유하게 된 그녀는 작은 소리까지도 듣고는 피해자의 상황들을 추리해낸다. 그리고 그녀의 지시에 따라 현장에 투입된 무진혁(장혁)은 온 몸으로 부딪쳐 골든타임에 몰려 있는 피해자를 가해자들로부터 구해낸다.

 

물론 우리가 흔히 많이 봐왔던 연쇄살인범들이 등장하는 스릴러물의 장면들처럼 보이지만 <보이스>는 여기에 현실적 공감대들을 더 얹어 놓는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적인 트라우마가 되어 있는 골든타임에 대한 절박함이 그것이다. 전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살려주세요라는 말은 그래서 더 절절하게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몰입시킨다. 어떻게든 그 절박한 골든타임을 넘기지 않고 그들을 구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얹어지면서 <보이스>는 흔한 스릴러물 이상의 미친 몰입감을 만들어낸다.

 

이 일련의 골든타임을 요구하는 사건들을 해결해가는 강권주와 무진혁이 모두 과거의 트라우마로 엮여 있는 이야기 구조는 현실에서 트라우마를 갖게 된 시청자들을 심적 공감대로 연결시켜 놓았다. 3년 전 무진혁의 아내가 무참하게 살해당했고 마침 당시 콜센터에서 일하던 강권주는 검찰 측이 내놓은 범인이 목소리가 다르다는 이유로 진범이 아니라는 증언을 내놨다. 결국 당시의 진범은 따로 있을 것이지만 이 사건으로 무진혁은 강권주를 오해하게 된다.

 

결국 이 오해가 서서히 깨지고 강권주의 진심을 알게 되는 건 이들이 함께 골든타임을 요하는 많은 사건들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통해서다. 이런 이야기 구조는 형사물이 갖고 있는 편편이 끊어질 수밖에 없는 여러 사건들의 이야기를 또 통합적으로 이어가는 힘이 된다. 매회 새로운 사건이 터지고 그걸 해결해가는 이야기가 에피소드로 등장하지만, 그건 결국 강권주와 무진혁이 연관된 사건을 해결하고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큰 이야기 틀 속에 담기게 된다.

 

형사물이 골든타임 설정을 만나면서 한 시간을 훌쩍 넘기는 이야기는 실로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만든다. 그것이 마치 진짜 골든타임(너무나 빨리 지나가버리는)처럼 다가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물론 <보이스>는 거의 공포물에 가깝게 극악무도한 범인들이 등장하고 심지어 아이가 칼에 찔려 범인으로부터 도망치려 안간힘을 쓰는 자극적인 장면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적어도 이 골든타임에 대한 공감대는 이런 과한 자극들을 자극으로만 그치지 않게 해주는 힘이 된다.

 

무엇보다 침착하고 냉철하게 소리들을 분석해 사건을 진두지휘하는 강권주 역할을 연기하는 이하나의 연기변신이 흥미롭다. 지금껏 조금은 풀어지거나 가벼운 캐릭터를 연기해오던 그녀는 이번 역할에서는 훨씬 무게감이 있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끊임없이 추론해가는 그 내면의 목소리들이 사건과 중첩되며 만들어내는 긴박감은 <보이스>라는 형사물만의 독특한 재미를 만들어준다.

 

<보이스>가 형사물에 골든타임이라는 설정을 덧붙인 이유는 명백해 보인다. 우리사회가 얼마나 골든타임에 목말라 하는가를 이 드라마는 정확히 짚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살려달라는 목소리에 콘트롤타워는 얼마나 빨리 침착하게 대응했던가. 콘트롤타워 부재에 대한 트라우마와 그래서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결핍을 채워줄 판타지에 대한 욕망. <보이스>는 이 정서들을 건드림으로써 우리의 시선을 돌릴 수 없게 만든다

<낭만닥터>, 과잉도 설득 시킨 이철민의 연기

 

조폭이 아니라 아버지였다? SBS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윤서정(서현진) 목에 낫을 들이대고 수술실에 난입한 사내(이철민)는 김사부(한석규)가 수술을 강행하려고 하자 그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자가 자신의 아내와 딸을 범한 강간범이라고 말했다. 죽어 마땅한 범죄자와 반드시 살려야 하는 응급환자 사이, 김사부는 짐짓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역시 마음의 동요를 느꼈다. 사내의 이야기가 너무나 처절했기 때문이다.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내가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겠다고 늦게까지 택배 돌리는 사이에 우리 와이프랑 딸애가 있는 집안에 들어와서는... 그 때 우리 와이프는 둘째를 임신 중이었고 내 딸은 내 딸은 겨우 11살이었는데 저 새끼가... 근데 저 새끼 형량이 얼만 줄 알아? 겨우 3년이야 초범이라고. 심지어 2년 만에 가석방까지 받고 나왔대. 초범에 모범수라고. 이게 말이 돼? 그 일로 우리 와이프는 유산을 했고 내 딸 아린이는 평생을 대변 줄을 옆에 차고 살아가야 되는데 근데 저 새끼는 가석방까지 받고 나왔대 이게 말이 되냐고 이게.”

 

사실 이전 회에서 이 사내는 조폭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응급실에서 영양제를 놔달라며 행패를 부리기도 했고, 누군가의 전화를 받아 깨끗이 처리 하겠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누가 봐도 조폭이고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있다는 뉘앙스가 풍겼다. 그리고 수술실까지 들어와 낫을 들고 위협하며 수술을 멈추라고 하는 대목이나 이런 시골병원에서 총으로 중무장한 기동타격대가 들어오는 장면들은 너무 과한 느낌을 준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과잉을 털어 내준 건 그 과잉된 스토리가 던져주는 메시지가 사내의 목소리를 통해 강렬하게 전해지면서다. 억울한 사연을 토로하는 사내에게 김사부에게 그래서 당신이 직접 벌을 주겠다는 것이냐고 묻자 사내는 울분을 토해낸다. “이 나라 법이 개떡 같은 걸 어떡해. 나라도 해야지. 내가 그래도 내가 가장인데 돈도 못 벌고 가난하고 힘도 없고 무능한 아빠지만 그래도 내가 가장인데 나라도 나서서 저 새끼 죗값을 받아내야 할 거 아냐? 나라도!”

 

여기서 이철민의 혼신을 다한 연기는 겨우 10분 남짓의 시간만으로 과잉된 비현실적 상황을 훌쩍 뛰어넘어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핏발이 선 눈빛과 분노에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대는 모습은 물론이고 땀을 철철 흘리며 그 긴장된 상황을 연기하는 이철민은 그저 스쳐지나가는 단역이라고 해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의 연기가 우리네 서민들의 처지를 대변하고 있다는 것은 더더욱 공감대를 갖게 만들었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과잉된 설정으로 인해 한 편의 우화나 만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입할 수 있게 되는 건 그 우화나 만화 같은 상황이 지향하고 있는 분명한 메시지가 존재할 때다. 이철민이 연기한 부분은 분명 개연성으로만 보면 어딘지 앞뒤가 잘 맞지 않고 비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그가 전하려는 가난한 아빠의 울분에 대한 공감대는 이런 과잉을 덮어주는 힘이 되기도 한다. 이철민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낭만닥터>에 탑승하게 된 게 행운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낭만닥터> 제작진 측에서는 이철민을 캐스팅한 게 행운이라는 평가가 나올 만하다.

 

드라마 후반부에 등장한 아버지의 치료를 중지하라는 가난한 집안의 한 아들이 하는 토로 역시 마찬가지 느낌을 준다. “1%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윤서정의 말에 사내는 지극히 현실적인 절망을 이야기 한다. “그건 있는 사람들 팔자 좋은 소리고 우린 돈이 없다고.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인데 저러다 아버지 돌아가시면 남은 가족은 평생 병원 치료비 갚다가 죽으란 소리야 뭐야. 어차피 깨어나지도 못할 거 저렇게 힘들 게 살아서 뭐하냐고?”

 

거기 누워 있는 사람이 다른 이도 아닌 아버지고 그렇게 치료를 중단하라고 말하는 이가 바로 아들이라는 점은 이 비극적 상황이 어디서 비롯되는가를 분명히 해준다. 결국은 돈이다. 생명보다 우선하는 돈. “네 아버지 평생 니들 위해 뼈 빠지게 고생하셨어. 근데 마지막 가는 길에 이것도 못해드려? 네 아버지 그 정도 대우도 받을 자격 없는 거야 니들한테? 그래 돈 없지. 그 원수 놈의 돈. 먹고 죽을래도 없는 돈. 그래도 네 아버지 눈이라도 한번 뜨게 해드리고 싶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그 과장된 상황들 때문에 아슬아슬한 느낌을 준다. 거대병원과 돌담병원의 대결구도는 마치 게임적인 느낌마저 주기 때문에 더더욱 비현실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결국 이런 비현실을 채워주는 건 갖가지 사연들을 갖고 들어오는 서민들이 전하는 현실적 공감대가 아닐 수 없다. <낭만닥터 김사부>의 관건은 결국 이 과장된 상황과 현실적 공감대의 균형을 어떻게 잡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인다

서두르지 않아 좋다, <공항 가는 길>의 감성멜로

 

오랜만에 보는 정통 감성멜로다. 아주 천천히 전개되는 것 같지만 감성이 켜켜이 쌓여가면서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어버리면 어찌할 도리 없이 넘쳐 흘러내리는 그런 감정의 경험. KBS 새 수목드라마 <공항 가는 길>의 멜로는 지금껏 드라마들이 첫 회에 폭풍전개를 쏟아 붓는 그런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터트리는 게 아니라 조금씩 젖어간다고 할까.

 

'공항 가는 길(사진출처:KBS)'

첫 회 최수아(김하늘)와 말레이시아에 딸 효은(김환희)을 유학 보내며 딸의 룸메이트인 애니의 아빠인 서도우(이상윤)와 얽히는 과정은 그래서 조금은 느슨한 느낌마저 주었다. 하지만 딸들을 해외에 두게 된 부모로서 서로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으로 최수아와 서도우가 인연을 갖게 된다는 점은 신선했다.

 

최수아가 노트북으로 화상통화를 할 때, 효은의 노트북에 비춰진 반대편 책상 애니의 노트북을 통해 서도우가 고국을 그리워하는 딸을 위해 한국의 갖가지 풍경들을 담아주는 장면을 보는 장면은 흥미로웠다. 각각 다른 공간에 놓여 있지만 부모에서 딸들로 또 그 딸들을 위하는 부모들끼리의 마음이 오가는 것이 그 장면에 한꺼번에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수제맥주집을 찾았다가 해외에 딸을 보내고 자신이 그런 자리에 있다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 최수아에게 서도우가 전화를 걸어 딸들이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위로해주는 장면도 두 사람의 관계가 동병상련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조금씩 전개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사실 최근 드라마들을 보면 마치 조급증에나 걸린 것처럼 서두르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첫 회의 기세가 드라마의 향방을 좌우한다는 현실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맥락 없이 남녀가 우연히 만나 그 해프닝이 첫 회에 일찌감치 사랑으로 발전하는 드라마들은 너무 성급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건 마치 이미 정해진 짝짓기 놀이를 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공항 가는 길>은 그런 점에서 보면 차근차근 진행되어 무리함이 없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것이 이 드라마가 밋밋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첫 회 중반 이후를 지나면서 고국으로 돌아오지 말라는 엄마의 전화를 받은 애니가 절망하고 그러다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급물살을 탄다. 딸의 사망 소식을 접한 서도우와 그가 애니의 아빠라는 사실을 뒤늦게 안 스튜어디스 최수아는 그래서 드디어 미묘한 관계의 선을 넘기 시작한다.

 

해외에 딸을 보낸 부모의 공감대가 딸을 잃은 아빠, 그것도 그 딸에 대한 애정이 지극했던 아빠에 대한 연민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 물론 서도우도 최수아도 모두 결혼한 기혼남녀지만 그들의 결혼생활은 그다지 평범하지 않아 보인다. 서도우는 딸의 사망 소식을 듣고도 자신이 견디기 힘들다며 딸을 거기 묻어달라고 말하는 아내 김혜원(장희진)의 이야기를 듣고 놀라워한다. 최수아는 기장인 남편 박진석(신성록)과 사내 연애로 결혼했지만 직업적 특성상 같이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이 거의 없다. 회사에서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아예 모른 척 지나치기 일쑤. 서도우와 최수아의 평탄치 않은 결혼생활은 두 사람의 관계를 촉발시킬 것으로 보인다.

 

어찌 보면 평범해 보이는 멜로의 틀을 보이는 것 같지만 <공항 가는 길>은 그 접근 방식이나 인물의 심리 묘사가 디테일해 확연히 다른 느낌을 준다. 그래서 이미 결혼한 사이에서 갖게 되는 상대방에 대한 마음들이 그저 불륜의 느낌을 준다기보다는 일상에 던져진 파문이나 삶에서 우연히 맞닥뜨리게 되는 운명적인 경험처럼 다가오는 면이 있다.

 

가을에, 무엇보다 김하늘이라는 배우와 정말 잘 어울리는 감성 멜로다. 물론 그 감성이 어느 정도의 선까지 나갈 것인가에 따라 호불호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잔잔한 바다 밑으로 격정적으로 흘러가는 조류들이 뒤엉키듯 그 감정들이 점점이 묻어나는 <공항 가는 길>의 감성 멜로는 의외로 우리를 위로해주는 이야기로 다가올 수 있다. 무엇보다 아이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은 그것이 어떻게 치유되는가에 대한 과정으로 이 감성 멜로가 그려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굿와이프> 미드 리메이크 그 어려운 걸 해내는 연기자들

 

사실 tvN <굿와이프>는 전도연 같은 연기자들에게는 부담스런 작품이다. 본래 리메이크라는 것이 원작과 늘 비교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굿와이프>2007년부터 CBS에서 방영되어 무려 시즌7을 이어오고 있는 인기 미드다. 이 작품의 여주인공 알리샤 역의 줄리아나 마굴리스는 이 연기로 여러 차례를 상을 받은 바 있다. 그 알리샤라는 인물을 이제 김혜경이라는 인물로 재탄생시켜야 하는 전도연으로서는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굿와이프(사진출처:tvN)'

미드를 리메이크하는 것도 낯선 일이다. 미국적 정서는 아무래도 중국이나 일본 같은 아시아권보다 우리에게는 더 멀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실제로 <굿와이프>의 알리샤라는 인물은 남편의 불륜 스캔들이 터져도 꿋꿋하게 자신의 일을 해나가고, 물론 화는 나지만 그래도 일상생활에서 쿨함을 유지하는 여성이다. 이것은 우리네 정서와는 조금 다른 면면일 수 있다. 조금만 엇나가면 공감대가 일어나지 않아 그 연기가 어색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원작에서 알리샤는 그래서 감옥에 들어간 남편 때문에 다시 변호사 일을 하게 되고, 집안 일을 시어머니가 와서 돕는 설정으로 되어 있다. 이것 역시 우리네 정서와는 맞지 않기 때문에 리메이크는 그 설정 자체를 바꾸었다. 밖에서는 변호사로 일하고 집에 와서는 엄마로서 아이들을 돌보는 우리네 워킹우먼들 중 한 명이고, 시어머니는 원작과는 달리(원작에서 알리샤는 시어머니와 그래도 같은 여성으로서의 쿨한 공감대가 있다) 그녀와 그리 사이가 좋지 않다.

 

리메이크된 <굿와이프>는 원작의 내용들을 세세한 장면의 디테일들까지 그대로 가져올 정도로 충실히 따라고 있다. 물론 한국적 정서와 다른 점들은 바뀐 요소들도 적지 않다. 이를 테면 원작에서 집으로 불쑥 배달된 불륜 스캔들 사진을 아이들이 먼저 보게 되고 컴퓨터에 능숙한 아이가 그 사진을 분석해 그것이 합성이라는 걸 발견해내는 장면 같은 건 재미있는 이야기지만 우리 정서와는 맞지 않아 빠져 있다.

 

원작의 알리샤 남편이자 함정에 빠진 검사인 피터 플로릭(크리스 노스) 역시 미국적인 정서가 물씬 풍기는 캐릭터다. 그 역할을 맡아 이태준 검사를 연기하는 유지태는 우리 정서로 보면 자칫 뻔뻔해 보일 수도 있는 인물이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스캔들 상대였던 여자를 붙잡아 수틀리면 죽일 수도 있다는 식의 은근한 협박을 하기도 하는 자다. 하지만 유지태는 이렇게 부정적으로만 보일 수 있는 인물을 어딘가 미스테리한 인물로 그려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그가 진짜 함정에 빠졌을 수도 있고, 이 모든 게 아내 김혜경을 위한 일처럼 보이게도 만든다.

 

<굿와이프>의 리메이크는 커다란 이야기의 줄기를 바꾼 게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실제 변호사를 직업으로 갖고 있던 작가들이 여럿 모여 쓴 대본인 만큼 그 디테일들이 워낙 좋기 때문일 게다. 그래서 <굿와이프>는 좀 더 표현적인 면들에서 섬세한 변화들을 통해 이질감을 없애는 쪽에 더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결국 그걸 떠안은 건 전도연이나 유지태 같은 연기자들이다. 일종의 우리 식의 연기 해석이 똑같은 설정과 장면에도 조금씩 달리 표현되고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이 전혀 미드 같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도연과 유지태의 저력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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