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참시' 방송 파문, 제작진 몰랐다는 게 면죄부 될 순 없다

과연 MBC 예능 <전지적 참견 시점>의 제작진은 사전에 몰랐던 것일까. 예능 프로그램에 세월호 참사 보도 장면이 ‘조미료’처럼 편집되어 들어갔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시 보고 또 봐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 장면이 예능 프로그램이 만들어내려는 웃음의 재료로 쓰였다니. 어떤 변명을 해도 상식적으로 결코 납득될 수 없는 일이다.

이 비상식적인 장면은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이영자가 어묵을 먹는 장면에 삽입되었다. 마치 속보라도 들어온 것처럼 뉴스 보도 장면에 ‘[속보] 이영자 어묵 먹다 말고 충격 고백’이라는 자막이 붙여 웃음을 주려 했던 것이었다. 보도 앵커 뒤편에 담겨진 세월호 침몰 장면은 블러 처리되어 있었지만 그 장면이 세월호 참사 보도였다는 게 밝혀지면서 논란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하필이면 어묵을 먹는 장면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도 대중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어묵은 일베 일부 회원이 세월호 희생자분들을 모욕하는데 활용됐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사건이 불거지고 나서 대중들은 MBC에 일베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다. 

이미 해당 장면이 블러 처리되었다는 사실과 일베를 연상케 하는 어묵 장면에 삽입됐다는 점은 제작진이 사전에 알고 한 의도적인 행위가 아니냐는 의심을 갖게 만든다. 하지만 제작진은 해당 장면을 ‘자료 영상을 담당하는 직원으로부터 모자이크 상태로 제공 받은 것’이라고 했다. 즉 제작진은 그 장면이 세월호 참사 보도 장면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제작진은 사과와 함께 ‘삭제조치’ 그리고 향후 이 문제를 MBC 내부에서 엄밀히 조사해 합당한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제 아무리 모자이크 상태로 제공 받은 것이라고 해도 이를 인지하지 못한 것 역시 책임을 모면하기는 어려운 일이 된다. 편집과 자막은 결국 최종 제작진의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선택에는 그 자료의 선별과정 또한 포함되는 일이다. 파문이 커지자 MBC 최승호 사장이 직접 SNS에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여러분 그리고 시청자 여러분께 사과드린다”는 글을 게재했다. 또 “관련자의 책임을 묻고 유사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재발방지책을 강구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일베 논란을 일으킨 많은 사건들이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비일비재하게 벌어진 바 있다. 그 때마다 방송사들은 내부적인 책임자 처벌과 향후 이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자체 검증 시스템을 갖추겠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 검증 시스템은 늘 구멍을 보여왔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이렇게 된 건 방송, 특히 예능 프로그램에 있어서 ‘자료화면’을 통한 편집이 갈수록 비중이 높아지고 있어서다. 특히 ‘관찰카메라’ 형식이 이제 대세로 자리 잡은 예능 프로그램은, 현장에서 찍어온 영상을 어떻게 편집하고 자막을 얹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질감의 웃음이 만들어지는 결과를 보이게 됐다. 평범한 장면도 편집을 통한 일종의 ‘조미료 치기’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지게 된 것.

문제는 이게 과도해질 때다. 적절한 조미료야 원 재료의 맛을 돋워줄 수 있지만, 아예 조미료만으로 맛을 낼 때는 과한 인위적인 느낌이 들기 마련이다. 게다가 이런 조미료에 대한 강박은 이번 사건 같은 말 그대로의 ‘방송 참사’가 빚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검증 시스템을 강화하는 건 이제 부수적인 일이 아니라 방송 프로그램의 성패를 결정짓는 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편집과 자막이 사실상 그 프로그램의 생사를 가르는 일이 된 지금, 그 검증에도 그만한 인력과 노력이 투여되고 있는지 반드시 점검해봐야 하는 시점이다. 또한 과도한 편집과 자막에 대한 강박 역시 결국은 프로그램의 진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제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지적 참견 시점>처럼 이제 막 자리를 잡아가는 프로그램이라면 더더욱 그렇다.(사진:MBC)

<돌아저씨>, 복수극 아닌 공감의 방식을 택한 까닭

 

만일 웃음을 걷어냈다면 SBS 수목드라마 <돌아와요 아저씨>는 얼마나 슬픈 드라마가 됐을까. 뼈 빠지게 회사에서 온 몸을 바쳐 일하다 덜컥 죽음을 맞이하게 됐지만 그것 역시 자살로 덮어버리려는 현실. 돌연사니 과로사니 하는 사인들이 분명하지만 그 노고를 인정해주기는커녕 부정하고, 그 노고의 과실 또한 가로채는 현실. 무엇보다 모두의 기억 속에 그런 식으로 마지막을 남겨버리고 떠나는 이의 마음이라니. 아마도 억장이 무너질 이야기다.

 


'돌아와요 아저씨(사진출처:SBS)'

또한 이러한 가장의 죽음은 그 가족의 슬픔이자 비극이기도 하다. 김영수(김인권) 과장의 죽음으로 그의 가족들은 냉혹한 현실에 내몰린다. 당장 살 길이 막막한 그의 아내 다혜(이민정)는 발도 딛기 싫을 남편이 죽은 그 백화점에서 일한다. 무엇보다 자살로 알려진 사인은 가족을 충격 속에 빠뜨린다. 가장의 자살이라면 그 가족에게 남을 깊은 죄책감과 부채감이 도대체 얼마나 될까.

 

너무나 큰 비극이지만 <돌아와요 아저씨>는 이 비극을 그저 비극으로만 그리지는 않는다. 물론 그 비극은 슬프고 나아가 당사자들을 분노하게 만들지만 이 드라마는 그 이야기를 코미디의 형태로 담아낸다. 인물들은 과장되어 있고, 상황은 판타지다. 이미 죽은 자들의 이야기라면 그 자체로 비극일 수밖에 없지만, 드라마는 여기에 코미디와 판타지를 엮어 이들을 되살려 놓는다.

 

죽음 앞에 그 사람의 존재보다 더 큰 가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본주의 세상에서 심지어 생명보다 더 큰 가치인 양 내세워지는 돈보다 더 큰 가치다.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 그것을 깨닫기는 쉽지 않다. 살아내야 하는 당장의 삶과 나아가 큰 돈의 유혹은 모든 걸 덮어버리기도 하니까.

 

이해준(정지훈)의 몸으로 역송된 김영수가 결국 그것이 자살이 아니었다고 스스로 밝혀내지만 회사를 대표하는 차재국(최원영)은 거액의 돈으로 이를 덮어버리려 한다. 그 돈이면 다혜네 가족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살 수 있다. 하지만 다혜는 이를 거부한다. 그것이 마치 남편의 죽음을 돈으로 가치 매기는 듯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사실 이 이야기는 최근 그토록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가진 자들의 갑질을 담은 무수한 복수극과 소재적으로는 그리 다르지 않다. 결국 최근 많아진 범죄 스릴러 장르에서 우리가 공분하는 건 가진 자들이 생명조차 돈 몇 푼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태도다. 어찌 보면 자본화된 세상의 극단에 대한 비판이 최근의 무수한 범죄 스릴러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정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의 소재라고 해도 <돌아와요 아저씨>는 그 시선이 사뭇 다르다. 이 드라마에서 우리가 느끼는 건 그런 현실에 대한 복수가 주는 판타지적인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돌아온 자들이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다시금 알게 되면서 갖게 되는 위로와 위안이다. 적어도 그들은 돈이 아닌 자기 자신의 존재를 더 귀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

 

판타지를 담은 코미디 장르로 변환되면서 역송된 이들은 한 가지 지켜야할 약속을 갖게 된다. 그것은 복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가가 이런 설정을 집어넣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여겨진다. 복수를 통한 해결이 아니라 이 드라마는 타인의 마음을 공감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최근 커져가는 사회적 분노와 그것을 반영해 쏟아져 나오고 있는 흔한 복수극들과는 사뭇 다른 이 드라마만의 가치다. 어쩌면 자본 세상에 고군분투하다 그렇게 어이없이 세상을 등지게 되었지만 기사 한 줄 없이 기억 속에 사라져버린 그들의 입장을 다시금 공감해보는 일. 그래서 그들을 위해 잠시나마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 코미디의 가벼운 웃음을 주는 이 드라마가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다.

<리멤버> 남궁민, 분노유발자이자 드라마의 동력

 

역시 이번에도 고구마인가. 속 시원한 한 방을 보여주는 이른바 사이다전개를 원하지만 드라마는 마치 도돌이표를 돌리듯 답답한 고구마전개로 돌아간다. SBS 수목드라마 <리멤버-아들의 전쟁(이하 리멤버)>의 시청자들은 그래서 볼수록 답답해진다. 절대 악역인 남규만(남궁민)이 한 방 먹는 장면을 보고 싶지만 <리멤버>는 그걸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아니 그럴 생각도 없는 것만 같다.

 


'리멤버 아들의 전쟁(사진출처:SBS)'

<리멤버>에서 남규만은 분노유발자이자 이 드라마의 동력이다. 그는 살인을 저지르고 그 살인죄를 서진우(유승호)의 아버지에게 뒤집어씌우는 인물이다. 그 아버지는 교도소에서 심한 복통을 호소하지만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남규만이 분노를 유발하는 건 그 범죄 사실 때문만이 아니다. 그가 보여주는 돈이면 뭐든 다 된다는 식의 안하무인격 갑질은 시청자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개미로 태어난 것들은 개미로 살다 뒤져야지.” 주식을 갖고 장난을 쳐 용돈벌이라도 하자며 무심코 던지는 이런 말들은 개미의 입장일 수밖에 없는 서민들에게는 뒷목을 잡게 만드는 말이다. 그는 친구인 안수범(이시언)을 비서로 두고 친구 이하의 취급을 하는 인물이고, 절친이라는 배철주(신현수)에게도 금수저라고 다 같은 금수저인 줄 아냐고 말해 금수저 그 이상의 특권의식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이러니 분노유발자가 되지 않을까.

 

게다가 남규만은 서진우에게 마음의 빚을 갖고 있는 박동호(박성웅)마저 돈으로 옭아매는 인물이다. 박동호 역시 자신의 아버지가 죽게 된 이유가 바로 그 남규만의 아버지인 남일호(한진희)라는 걸 알게 되고 복수를 꿈꾸게 되지만 그는 지금껏 남규만의 변호사로서 그의 더러운 입이 되어왔다. 박동호가 서진우와 함께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시청자들을 답답하게 만드는 것도 결과적으로 보면 남규만이라는 악의 축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 남규만을 잡기 위해 서진우는 갖가지 방법들을 동원하지만 그는 그 때마다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다. 마약파티를 하고 있는 남규만을 잡기 위해 서진우와 그 동료들이 진을 치고 있었지만 그는 마약에 취한 채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간다. 그가 타고 있다고 여긴 차를 급습하지만 대신 안수범이 타고 있었고 경찰차들이 운집한 곳을 살짝 비껴 차를 몰고 나오는 남규만은 마치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비웃음을 던진다.

 

남규만이라는 분노유발자와 그를 무너뜨리려 하지만 번번히 실패하는 서진우라는 구도는 아마도 <리멤버>가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이 될 것이다. 갑질하는 현실의 답답증을 느끼는 시청자들은 남규만이라는 인물에 그 현실을 투사하고 그가 철저히 무너지는 모습을 보기를 원한다. 하지만 서진우와 박동호는 그 시청자들의 바람을 쉽게 이뤄주지 않는다. 시청자들이 사이다 전개를 바라면 바랄수록 드라마는 고구마 전개로 나아간다.

 

그러면서 아주 조금씩 사이다 전개의 가능성을 풀어놓는다. 이를테면 안수범 같은 남규만의 비서가 어쩌면 배신을 할 것 같은 뉘앙스를 깔아놓는다거나, 그동안 남규만의 변호사를 해온 박동호가 이제는 본격적으로 그와의 대결을 예고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것은 살짝살짝 풍기는 뉘앙스일 뿐 그 속도는 결코 빠르지 않다.

 

<리멤버>가 이처럼 현실의 답답함을 드라마적 판타지로 쉽게 이뤄주지 않는 건, 그것이 현실적이어서이기도 하지만 드라마의 동력이 사실은 바로 그 답답함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드라마의 실질적인 힘은 남규만이라는 희대의 악역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실이 얼마나 답답하면 현실의 분노유발 요소를 그대로 가져와 집대성한 듯한 남규만이라는 인물이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철저히 응징당하기를 바랄까. 그 커다란 현실에 대한 분노가 이 드라마에 대한 몰입을 만드는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왜 비행기에서 유독 갑질 논란이 많을까

 

바비킴이 비행기 안에서 음주난동을 부리고 심지어 성희롱까지 했다? 이렇게 처음 나온 뉴스보도는 또 다른 갑질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유독 항공기에서 갑질사건들이 쏟아져 나온 탓이기도 하다. ‘라면 상무이야기도, 팝핀현준이 항공기 협찬 관련해 불만을 토로하면서 나온 논란도, 무엇보다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이 땅콩 하나 때문에 항공기를 돌려 국민적인 공분을 일으킨 사건도 모두 비행기의 좌석에서 벌어진 갑질 논란들이다.

 

'비정상회담(사진출처:JTBC)'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비킴의 이번 사건은 바비킴보다는 오히려 대한항공측이 더 손가락질을 받는 상황이 됐다. 드라마 <피노키오>가 과도한 살빼기를 시도하다 사망에 이른 한 여인의 에피소드(과도한 다이어트가 문제가 아니라 사실은 딸에게 이식을 하기 위한 모성애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를 통해 보여준 것처럼 드러난 사건은 그 내막을 모르면 엉뚱한 이슈를 양산하기 마련이다. 바비킴 사건이 딱 그렇다.

 

문제는 그간 자신이 쌓아놓은 마일리지로 정당하게 요구될 수 있는 비즈니스석 업그레이드가 어떤 이유에선지 직원의 실수로 되지 않은 것에서 비롯됐다. 게다가 비즈니스석에는 여유 좌석이 있었고 심지어 다른 손님은 그 자리로 옮겨 타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독 바비킴만 거부된 사안은 그를 흥분하게 했던 것. 이해할 수 없는 건 그런 그에게 계속해서 와인을 갖다 줘 만취상태에 이르도록 방치했다는 점이다. 이쯤 되면 얼마나 음주 상태에서도 참을 수 있는가 하는 한 사람의 인내력 테스트를 제대로 한 셈이다.

 

물론 그 상황에서 음주난동을 부리고 성희롱에 가까운 이야기를 한 바비킴은 스스로도 인정했듯이 분명한 잘못을 저질렀다. 그게 어떤 상황이든 비행기 안에서의 난동은 심각한 법적 책임을 물을 수도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그런 행동이 나오게 어떤 원인제공을 한 건 대한항공측이다. 바비킴 같은 연예인이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이런 음주난동을 의도적으로 부릴 까닭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갑질의 이야기는 거꾸로 뒤집어진다. 즉 요즘 툭하면 터지는 손님은 왕이란 명목으로 벌어지는 갑질이 아니라, 항공사가 정당한 요구조차 제 맘대로 들어주지 않는 갑질로 역전되는 것. 물론 조현아 전 부사장으로 인해 가뜩이나 대한항공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갖고 있는 대중들의 심리가 작용한 탓도 있지만 거기에는 서민들이 비행기를 타게 될 때마다 느끼는 그 놈의 클래스가 주는 상대적 박탈감도 들어가 있다.

 

비행기가 어느 때인가부터 갑을 정서를 떠올리게 하는 곳으로 인식되게 된 것은 그것이 철저히 자본의 논리에 의해 클래스가 나뉘어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내면 다리도 쭉 펼 수 있고 심지어 비행 중 라면도 먹을 수 있는 기내서비스의 퍼스트 클래스에 탈 수 있지만, 돈이 없으면 앉아 있다기보다는 거의 짐짝처럼 쳐박혀 갈 수밖에 없는 이코노미 클래스에 앉아야 한다. 이것은 <설국열차>의 머리 칸과 꼬리 칸의 현실 그대로다.

 

그러니 우리 같은 서민들은 마치 탕수육 하나 먹으려고 짜장면 쿠폰을 모으듯이 마일리지를 모은다. 하지만 그 마일리지라는 것이 100 프로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성수기는 아예 제외되고 성수기가 아니라도 빈 자리가 있어야 가능한 게 마일리지다. 그래서 자리를 업그레이드시키는데 주로 쓰기도 하지만 그것마저 좌절될 때는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물론 바비킴이 이런 우리네 서민들의 상황과 똑같다는 얘기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최근 벌어진 비행기에서의 갑질 논란에서부터 이번 바비킴 사건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정서에는 분명 비행기 안에서 클래스로 나뉘어지는 그 갑을정서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점이다. 특이하게도 바비킴의 경우 그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항공사에 대한 비난여론이 커진 것은 그 갑질이 고객으로부터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항공사로부터 생겨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바비킴이 잘한 것은 없다. 하지만 이런 사건이 벌어지게 만든 항공사는 더더욱 잘한 게 없다. 도대체 클래스가 뭐고 돈이 뭐라고 텅텅 빈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이 남아 있어도 돈 낸 만큼 좁고 불편하게 이코노미 클래스에 앉아 가본 사람이라면 이번 사안의 불편한 정서가 어디서부터 비롯되고 있는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동수단에까지 자본의 논리로 붙여지는 클래스. 현대판 계급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닐까.

 

<왕가네 식구들>, 비정상 캐릭터들이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

 

드라마를 보면서도 공분이 생긴다? <왕가네 식구들>에 대한 대중들의 정서다. 문영남 작가의 드라마가 늘 그러하듯이 <왕가네 식구들>에도 여지없이 찌질함의 극치와 도저히 이해 안 되는 울화통 캐릭터가 등장한다. 딸 차별하는 엄마 앙금(김해숙)과 정신병자에 가까운 사치와 과시욕으로 살아가는 첫째 딸 수박(오현경)이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왕가네 식구들(사진출처:KBS)

엄마와 딸이 세트로 거의 정신병에 가까운 막장 짓을 해대니 다른 가족이 정상적일 수가 없다. 이앙금의 차별로 둘째 딸 호박은 늘 구박당하는 자신에 익숙할 만큼 피해의식에 절어 있다. 먹을 거 안 사먹고 지독하게 돈을 모아 집을 샀지만 엄마와 언니는 축하해주기는커녕 비난만 한 가득이다. 마침 수박네가 사업에 망해 힘겨워하는데 혼자만 살 궁리한다는 것. 이름이 벌써 수박과 호박이니 이건 아예 작가가 대놓고 차별하겠다 선언한 캐릭터들이나 마찬가지다. 호박에 줄 간다고 수박이 안 된다는 얘기.

 

수박의 남편 민중(조성하)은 사업에 실패해 택배 사업에 뛰어들어 돈 몇 만 원 벌려고 달동네를 허리가 부러지도록 뛰어다니지만, 아내 수박은 이런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채를 빌려 3백만 원이나 하는 유모차를 사고 초라한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며 모텔에서 지낸다. 그러니 하고 싶은 것 무엇이든 하라고 장인 왕봉(장용)이 말하자 민중은 운동장에 드러누워 오열을 터트릴 수밖에 없다. 수박 때문에 남편도 정신병자가 되기 일보직전이다.

 

이런 민중에게 장모라는 사람은 보듬어주기는커녕 차라리 헤어지라는 막말을 해댄다. 이렇게 제멋대로인 여자를 아내로 둔 왕봉의 마음이 편할 리 없다. 게다가 그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감선생님이다. 은퇴를 코앞에 두고 있지만 이런 가족을 보며 막막한 생각밖에 더 들겠는가. 그나마 이 가족의 버팀목으로 서있는 자신이기 때문에 정작 자신의 고민은 아무에게도 토로하지 못한다. 그 역시 언제 쓰러질 지 알 수 없는 아슬아슬한 인물이기는 마찬가지.

 

한편 허세만 가득한 호박의 남편 허세달(오만석)은 장모의 차별대우를 똑같이 받아오면서 아내가 집을 사자 기고만장하고 있는 중이다. 아직 본격적으로 등장하진 않았지만 이 캐릭터는 장차 조강지처 호박을 놔두고 바람이 날 모양이다. 호텔 상속녀 은미란(김윤경)이 대놓고 들이대기 때문인데, 왜 그녀가 허세달에게 그러는지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결국 호박의 뒤통수를 치는 불륜 행각으로 대국민 울화통을 터트리려는 캐릭터라고 밖에.

 

<왕가네 식구들>은 정상이 아니다. 엄마가 정상이 아니니 자식들이 정상일 리 없고, 그들과 가족으로 얽힌 인물들이 제 아무리 정상적으로 살아보려 해도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온 가족이 비정상적인 상태로 빠져들게 되는 것. 실로 한 가족에 비정상적인 정신 상태를 가진 이가 있을 때 그만이 아니라 온 가족이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건 그 관계가 타인까지 비정상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청자는 어떨까. 시청자들에게 일일드라마가 주말드라마 같은 가족드라마들은 일종의 유사가족 관계를 형성한다. 집에서 온가족이 둘러 앉아 이들 가족드라마를 보면서 때론 공감하고 때론 혀를 차는 건 그 때문이다. 물론 갈등 없는 가족이 어디 있겠냐마는 그것도 어느 정도다. 정신병에 가까운 인물들이 끊임없이 울화통을 터트리는 행동들을 보여주는 것이 드라마 속 캐릭터들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에게도 똑같이 스트레스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정신병적인 양태를 극단으로 보여주는 드라마는 그걸 보는 시청자들에게도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주말 저녁, 온 가족이 모여 있는 시간에 왜 KBS 같은 공영방송이 이런 비정상적인 가족의 행태를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물론 훈훈한 가족이야기만을 그리라는 얘기가 아니다. 적어도 지금의 대중들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선에서 가족의 문제도 표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 드라마는 차츰 진행되면서 어떤 갈등의 해결이나 화합의 분위기를 만들어갈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드라마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점에서 결과가 정상적이라고 해도 과정 대부분이 비정상적이라면 받아들여지기가 쉽지 않다.

 

물론 백분 양보해서 이런 가족들도 분명 실제로 있을 것이다(아니 어쩌면 많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기획의도에 연어족, 갱거루족, 처월드, 편애, 학벌지상주의 등을 예로 들며 이것이 2013년 현실적인 가족의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게 진짜 현실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기획의도에 적혀 있는 것처럼 이 드라마가 ‘현실에 지치고 피곤한 우리들의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줄 통쾌한 웃음과 진한 감동’을 주고 있는 지는 미지수다. 혹 이것은 명분일 뿐 시청률이 진짜 목표는 아닌지. 살기도 힘겨워 죽겠는데 공영방송의 드라마마저 심지어 공분의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4대강 살린다더니 흐르지 않는 강이 강인가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것일까. ‘4대강 살리기’ 사업이 검토되던 단계부터 재앙을 예고하는 목소리들이 많았지만 그 소리들은 거대한 포크레인 소리에 덮여버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보를 만들었다고 해서 물이 썩느냐. 물이 썩도록 보를 만들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라며 TV에 나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지만 <SBS스페셜>이 취재한 4대강의 현실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SBS스페셜(사진출처:SBS)'

물론 전부터 녹조 현상은 어느 정도 있었지만 낙동강 곳곳의 녹조는 더 오래 더 넓게 퍼져 있었다. ‘녹조라떼’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 자연재해를 대비하고 수질을 개선하며 기후환경 변화에 대비한다는 그럴 듯한 명분으로 시작된 사업이지만, 상식적으로 흐르는 물을 막고 모래를 퍼내 거대한 물그릇을 만드는 것이 이런 명분을 현실화해줄 거라 믿기는 어려운 일이다. 강은 흘러야 강이고 고이면 썩게 된다는 것은 어린 아이도 알 일이 아닌가.

 

이 녹조의 주범은 남조류로 치명적인 독성을 지녔지만 아직까지 해독제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 1996년 2월 브라질에서는 한 병원에서 이 남조류 때문에 무려 50여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많은 조사와 자료에 의해 4대강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지만 정작 정종환 전 국토해양부 장관은 여기에 대해 “썩고 있다 라는 거는 근거를 가지고 얘기해야지 우리가 지금 확인한 바로는 전혀, 수질이 좋아지고 있는데”라며 이를 부인했다.

 

<SBS스페셜>이 입수한 금강의 4대강 사업에 대한 수질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1년 중 다섯 달이 암모니아 기준치를 넘어섰고 발암물질 및 청색증 발생 우려가 있어 상수원수로 사용이 곤란하다고 한다. 실제로 금강은 4대강 사업 이후 세 차례나 물고기 떼죽음 사태가 벌어져 문제가 됐던 곳이기도 하다.

 

문제는 강에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강의 흐름을 막고 물의 양이 많아지자 인근 농지에도 그 영향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 수박재배로 유명한 경북 고령에서는 물이 농지로 차올라 수박농사를 망쳤다고 한다. 농민 곽상수씨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인디언들은 조그마한 변화가 있는 의사결정을 할 때는 애들한테 물어본다 하잖아요. 일은 우리가 추진하더라도 결국 앞으로 감내해야할 당사자들은 애들이잖아요.”

 

상식적으로 강물 수위를 높여 홍수 조절을 한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렵고, 수질을 깨끗하게 하겠다면서 강물의 흐름을 막는다는 게 상식적인가. 문제는 이렇게 비상식적인 대규모 사업이(수십 년이 걸려도 모자랄 판이다) 거의 3년이 채 안된 기간에 이뤄졌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법은 무시되었다. 사전환경성 검토, 환경영향평가 심의, 문화재지표조사와 심의, 국책사업 예비타당성 검토, 하천법에 의거한 중앙하천관리위원회 심의 등이 거의 하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소위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이 정부의 시녀로 전락했고 그 와중에 올바른 목소리를 내려는 이들은 조직에서 배제되거나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34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고 40조원의 생산유발효과를 낼 수 있다 공언하던 단군 이래 최대의 국책사업은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국민의 강을 망가뜨리는 결과로 이어졌던 것. 불필요한 토목공사들은 결국 4대강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토목사업 그 자체를 위한 것일 뿐이었다. 마치 연말만 되면 예산을 쓰기 위해 멀쩡한 아스팔트를 벗겨내고 다시 씌우는 것처럼.

 

여기 들어간 돈이 무려 22조2천억 원이다. 4개의 해군기동단을 만들 수 있고, 나로호 44개를 발사시킬 수 있으며, 평창 동계올림픽을 두 번 치를 수 있는 돈이다. 또 비정규직 전부를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고, 4년간 모든 3-5세 유아의 무상교육도 가능하다. 반값등록금도 가능하게 해줄 수 있는 돈이다. 김정욱 서울대환경공학과 명예교수는 4대강 사업을 한 마디로 “총체적 사기”라고 정의했다. 이상돈 중앙대 법학과 명예교수는 4대강 사업이 “국토환경에 대한 반역”으로 “내란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낙동강 인근의 아이들이 그린 낙동강의 그림은 충격적이었다. 유려히 굽이굽이 흐르던 강은 사라지고 일직선으로 반듯하게 구획된 강의 모습들이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때론 에둘러 돌아가는 그 자연의 아름다운 흐름에는 저마다 이유가 있고 그만한 역사와 삶의 흔적들이 남아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어찌 보면 그 땅을 살아온 우리네 국민들과 동격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두 그 강에 기대어 살아온 것이 아닌가. 결국 포크 레인이 남긴 깊은 상처는 강만이 아니라 국민들을 향해 있었던 것. 국민의 세금으로 국민을 파괴시키고 있었다는 것. 이것이 대중들이 공분하는 이유일 게다.

<황금의 제국>, 이 지옥에서 살고 싶은가

 

또 다른 <추적자>를 기대했다면 실망했을 수 있다. <황금의 제국>에는 <추적자>에서 보여졌던 서민 대 재벌의 대결구도가 본격적으로 그려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추적자>의 백홍석(손현주)과 <황금의 제국>의 장태주(고수)는 같은 서민의 모습으로 시작하지만 그 변해가는 모습이 다르다. 백홍석이 가진 자들의 편에 선 잘못된 사법정의와 맞선다면, 장태주는 “당신 아버지 최동성 회장은 그렇게 살아도 되는데 난 왜 안돼죠?”하고 되묻는 인물이다.

 

'황금의 제국(사진출처:SBS)

장태주가 살아보겠다는 그 최동성(박근형) 회장은 “수십 번의 고소를 당했고 몇 번이나 검찰 조사를 받았고 시멘트 공장으로 시작해서 불량 시멘트로 큰 돈을 벌고 멀쩡한 회사를 자금압박해서 인수하고 마흔 두 군데의 계열사를 만든” 인물이다. 장태주가 최동성 회장처럼 살겠다 마음먹는 근거는 아버지가 남긴 말 때문이다. “아버지가 한 번도 못 이겨본 이 세상에서 태주 니는 꼭 한번 이겨봐라.”

 

즉 <황금의 제국>에 가난한 자의 선함과 부자인 자의 악함 같은 단순히 빈부 차이로 나눠지는 선악대립구도 따위는 없다. 다만 황금의 법칙으로 굴러가는 돈이라는 감정 없는 괴물이 있을 뿐, 선함으로 호소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은 없다. 무언가를 얻으려면 이겨야 한다. 착하게 살았다며 자기 위안에 빠지는 일은 이 ‘황금의 제국’에서는 패자의 넋두리가 될 뿐이다.

 

<황금의 제국>에는 이처럼 정의의 수호자나 서민의 대변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추적자>가 정의를 수호하려는 서민의 주인공을 내세워 만들어낸 ‘공분’이나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카타르시스가 있을 리 없다. 하지만 <황금의 제국>은 이러한 단순 해소의 카타르시스보다 더 중요한 대결의식을 보여준다.

 

재벌가 하나가 무너진다고 해서 이 ‘황금의 제국’이 사람 냄새 나는 곳이 될 것인가. 시스템이 건재한 이상 또 다른 제국의 지배자가 그 자리에 생겨날 것이다. <황금의 제국>이 겨냥하는 것은 그래서 이 모든 문제를 만들어내는 그 시스템이다. 그 시스템은 제목이 말해주듯 ‘돈’의 흐름이 지배한다.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의 악역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게 이 때문이다. 이 드라마의 악역은 ‘돈’이 만들어내는 자본의 시스템 그 자체이니까.

 

최동성 회장의 집안은 ‘황금의 제국’의 축소판이다. 가족이 모여 함께 밥을 먹으면서도 말 한 마디로 회사의 사장이 바뀌고 수만 명 노동자들의 운명이 바뀌며 수백 억 원의 손실을 입혔어도 용서가 되는 곳. 최동성 회장의 병환이 깊어지면서 형제와 자식들 간에 회장 자리를 놓고 벌어진 이전투구는 이 곳이 과연 한 가족의 보금자리가 맞는가 의심하게 만들 정도다.

 

동생이 형에게 총을 겨누며 위협하고, 그 형은 동생의 자식을 교도소로 보내 결국 죽음에 이르게 만들며 그 동생의 아들은 큰 아버지에게 복수하기 위해 칼을 가는 곳. 또 지주회사 쟁탈전을 벌이면서 형제들 간에 자기 지분과 회사를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해 싸움을 벌이는 곳. 그 곳이 바로 황금의 제국의 축소판인 최동성 회장의 집안 풍경이다. 혈육이 서로에게 칼을 들이대는 이곳을 최동성 회장은 어떻게 느끼겠는가. 지옥도 이런 지옥이 없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태주는 그 최동성 회장처럼 살아가겠다고 말한다. 그는 성진그룹의 새로운 회장이 된 최서윤(이요원)에게 ‘해님 달님’ 동화를 얘기하면서 자신은 동아줄을 잡기보다는 쫓아오는 호랑이와 싸우겠다고 말한다. 그것은 아마도 ‘야망’ 같은 것이겠지만 그 야망이 불러올 비극적인 결말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가 꿈꾸는 최동성 회장의 삶은 결국 그 지옥 같은 황금의 제국 속에서 초라한 죽음으로 끝을 맺을테니 말이다.

 

본래 돈은 모두를 평등하게 구분 짓는 힘을 가졌다. 즉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고 그 가진 만큼으로 자신의 신분이나 지위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 태생으로 신분이 결정되던 시대를 무너뜨리고 근대사회를 만들어내는 힘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과연 돈이 상징하는 평등한 사회는 이뤄졌는가. 많이 가진 자는 더 많이 가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고 그러자 없는 자는 더 적게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

 

그렇다면 많이 가진 자는 진정 ‘황금의 제국’의 제왕이 되었을까. 이것은 환상일 수밖에 없다. ‘황금의 제국’의 주인은 오로지 하나, ‘황금’일뿐이니까. <황금의 제국>이 최동성 회장의 몰락과 장태주의 끝없이 타오르는 야망을 통해 보여주는 세상은 그래서 <추적자>의 다소 낭만적인 카타르시스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황금의 제국>이 <추적자>보다 더 도발적으로 여겨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MBC 시사교양, SBS에 밀려버린 이유

 

지난달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내보낸 ‘사모님의 이상한 외출’은 잘못된 우리네 사법 정의의 문제에 대한 사회적 담론을 만들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사법정의의 부조리는 이 한 편의 프로그램으로 인해 사회적 의제로 떠올랐으며 그간 한숨으로 침묵하던 서민들의 공분을 터트렸다. 그 후속편으로 나간 ‘죄와 벌-사모님의 이상한 외출 그 후’ 역시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왔다. 사모님의 뒤에 놓여진 의사-변호사-검사의 커넥션을 파고들어 ‘그들만의 사법’이라는 충격적인 문제를 꺼내놓았다.

 

'그것이 알고싶다(사진출처:SBS)'

최근 들어 <그것이 알고 싶다>는 이른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공분’을 잡아내고 있다. 이전에 방영된 ‘수상한 배려-귀족학교 반칙스캔들’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던 영훈국제중학교의 비리를 파헤쳤다. 물론 이것은 <그것이 알고 싶다>만의 새로운 아이템은 아니다. 이미 뉴스 보도를 통해 대중들의 관심이 집중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모님의 이상한 외출’ 편도 완전히 새로운 아이템은 아니었다. 이미 이 프로그램이 밝힌 대로 MBC <시사매거진 2580>이 지난 4월 ‘의문의 형 집행정지’편에서 다룬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엇이 똑같은 아이템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영향력의 차이를 낳았을까.

 

여기에는 물론 <그것이 알고 싶다>가 가진 특유의 연출 방식과 스토리텔링의 힘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김상중을 진행자로 세워 증거들을 하나씩 분석하고, 복잡해 보이는 사건 기록들은 재현 방식으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노력은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사안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보여주기 때문에 전달효과가 그만큼 뛰어나다. 물론 어떤 아이템을 할 것인가의 문제가 시사 프로그램의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또한 그 소재를 얼마나 일목요연하게 핵심을 정리해주는가도 관건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러한 프로그램 내적인 문제보다 더 중요한 건 프로그램 외적인 문제다. 즉 방송사에 대한 대중들의 신뢰가 결국은 그 방송사 프로그램의 의제설정 기능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즉 MBC의 <시사매거진 2580>이 ‘사모님 사건’을 다뤘음에도 의제설정이 되지 않았던 것은 그만큼 방송사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는 얘기다. 이것은 지난 정권에 들어선 김재철 전 사장에 의해 MBC의 뉴스 시사 프로그램들이 일제히 공신력을 잃은 것과 관련이 있다. 대중들은 지금도 사회적 의제라고 할 수 있는 국정원 불법 선거 개입의혹 문제나 5.18관련 왜곡 문제 같은 사안에 이렇다 할 시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MBC <뉴스데스크>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 <PD수첩>이 국민들의 눈과 귀가 되어주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현재 MBC 뉴스 시사프로그램이 주는 실망감은 그만큼 더 클 수밖에 없다. 이슈가 사라져버리고 점점 연성화된 아이템만을 다루는 MBC 뉴스에 대한 총체적인 실망감이 시사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마저 사라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기자와 PD들의 문제일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데스크들의 아이템 사전검열에서 비롯되는 일이다. 지금 MBC의 기자, PD들은 아예 이슈아이템을 다루지조차 않는 검열로 인해 심지어 무기력증에 도달하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최근 SBS는 <그것이 알고 싶다>뿐만 아니라 <현장21>이 다룬 ‘연예병사들의 화려한 외출’편으로 또 한번 대중들의 호감을 샀다. 연예병사 특별관리지침이 잘 이행되고 있는가를 확인 취재하는 과정에서 연예병사들이 술을 마시고 안마시술소를 들락거리는 장면을 포착해낸 것. 이 사안은 일파만파 커져 결국 국방부가 나서 전면 수사에 들어가게 되었고, 국방부는 만일 문제가 있다면 ‘연예병사 제도’의 존폐까지 염두에 두겠다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

 

이것은 어찌 보면 SBS의 뉴스 시사 프로그램에 대중들이 함께 하고 있는 인상을 갖게 만든다. 그렇다면 MBC는 어떨까. 최근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에서 MBC는 괜찮은 성적을 내고 있지만 사실 방송사에 대한 신뢰와 호감은 뉴스 시사 프로그램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이슈메이킹이나 사회적 의제 설정 기능이 상실된 보도는 그래서 MBC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젯거리가 아닐 수 없다. 한 때 <PD수첩>이 이끌고 <100분토론>이 밀어주던 MBC 시절은 다시 오기 어려운 것일까. 안타까운 일이다.

빵빵 터지다 먹먹해지는 실업청년들의 한 방

 

한음아 이따 저녁에 뭐 먹을래? 불고기 어때? 별론데? 그럼 숯불갈비 먹을까? 고기 말고 밥 먹자. 그럼 전주비빔밥 먹자. 그냥 참치 마요네즈 먹을래. 그래. 삼각김밥은 그게 최고야. 새로 나온 날치알 먹어봤냐? 그건 원 플러스 원 아니잖아.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오성(김진철)과 한음(이혜석)이 캐치볼을 하며 이런 대화를 나누는 곳은 아마도 변두리 공터 어디쯤일 게다. 모두가 서울로 출근해서 텅 비어버린 한낮에 동네 한 귀퉁이에서 저녁으로 어떤 삼각김밥을 먹을까 고민하는 이들의 얼굴은 무표정하다. 희망조차 사치인 이들 실업청년들은 그 단단한 현실의 절망 덕분에 좀체 웃지도 울지도 화를 내지도 못하는 얼굴이 되어버린 듯하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답답한 현실이다. 2002년 월드컵의 감동을 이야기하다가, 그 감동이 월드컵 경기 때문이 아니고 당시 광화문 사거리에서 지갑을 주운 것 때문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지갑 안에 들어있던 ‘만 사천 구백 원’을 그리워(?) 하며 “그 때처럼 막 쓰고 싶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빵 터지다가도 마음 한 구석이 저릿해진다.

 

모두가 누리거나 즐기는 어떤 것들이 이들에게는 생계가 되는 현실을 ‘오성과 한음’은 애써 무덤덤하게 표현한다. “오랜만에 해외에 나가서 바람이나 쐬고 오자”는 말에 “이번에도 새우 잡냐?”고 말하고, 클럽에 마치 놀러갈 것처럼 얘기하다가 “주방은 오천오백 원, 홀서빙은 사천구백 원”이라고 말하며, 차에 여자 태우고 여자 집에 간 친구에게 “좋았겠네”라고 말하자 “그럼. 일산은 대리비 2만원이거든”이라고 말하는 식이다.

 

심지어 보이스 피싱을 당하면서도 “다행히 구천 원은 인출이 안된다”며 안도하는 이들은 함께 근무하면서 월급도 제 때 나오고, 유니폼도 쫙 차려입고, 교회도 열심히 다녔던 ‘군대 시절’을 그리워하며 “아 다시 삽질하고 싶다”고 말한다. 가진 것 없고 미래도 보이지 않는 변두리 청년백수들이지만 이들이 보이는 허세는 그래서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들의 선명한 대비를 만들어낸다. 당장 로또 한 장 살 돈도 없으면서 10억이 돈이냐 말하는 허세가 그렇다.

 

너 로또 되면 10억 당첨 되면 뭐 할거야? 10억이 돈이냐? 요즘 10억 갖곤 강남에 집 한 채도 못 사. 그렇긴 하지. 10억 은행에 넣어봤자 한 달 이자 이백도 안 나와. 하긴. 너 이번 주 로또 샀어? 아직 돈 모으고 있는 중이야. 다음 주에는 같이 사러 가자. 그 때까지 무리야.

 

여자 친구도 없을 법한 그들이 그래도 자존심을 지키려 하는 여자 이야기는 그 대상이 온통 연예인들뿐이다. 김태희나 이민정, 한혜진, 이효리 같은 언감생심 꿈에도 못 꿀 연예인들을 끌어다 마치 사귈 것처럼 고민하는 대화는 그 엄청난 격차 때문에 큰 웃음을 주지만 쓸쓸함을 남긴다. “김태희와 자기가 사귀면 누가 더 아깝냐”는 말도 안 되는 질문에 그래도 친구라고 고민하는 모습이 그러하며, 모두 남자친구가 있다는 친구 이야기에 말이라도 “뺐을까?”하고 던져보는 허세가 쓸쓸하다.

 

어딘지 허무함까지 느껴지는 이들이지만 그 힘없는 캐치볼의 대화 속에는 세상을 향한 뾰족한 풍자들도 숨어 있다. 영어공부해서 미국 간다는 친구에게 가서 뭐할 거냐는 말에 “대변인.”이라고 천연덕스럽게 하는 얘기나, 욕을 막 하며 “취업 준비 중”이라는 친구에게 어디를 갈 거냐고 묻자 “우유회사”라고 하는 얘기, 또 끝말잇기에서 ‘아베’라는 단어가 나오자 “할 말이 없다..”고 속내를 드러내고 십센티의 ‘아메리카노’를 “아 베 아 베”로 부르는 친구에게 누구 노래냐고 묻자 “십 센티? 십팔 센티인가?”하고 말 장난 개그를 거는 식의 얘기가 그렇다. 현실에서 멀어져 있는 이들은 뒤틀어진 세태에 대한 공분을 저들의 언어 속에 담아낸다.

 

한음아. 넌 다시 태어나면 뭐가 되고 싶냐? 난 거위. 왜? 꿈이 있잖아. 넌? 난 갈매기가 될 거야. 왜? 새우과자 배터지게 먹을 수 있잖아.

 

거위나 갈매기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이들의 이야기가 어찌 우스울 수만 있을까. ‘오성과 한음’이 그리는 세태 풍자는 이처럼 한없이 맥빠진 허무의 세계를 보여주지만 그 깊은 허무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가를 더 명쾌하게 보여주는 면이 있다. 힘겨운 현실 속에서도 애써 무덤덤한 듯 얘기하고 있는 이들의 처절함. 이것이 이 개그가 가진 빵빵 터지다가도 먹먹해지는 한 방이 아닐까.

 

<개콘>이 그간 직설화법으로 던진 세태 풍자들이 답답한 세상에 대한 속 시원한 일갈을 보여주었다면, ‘오성과 한음’은 그 한없는 무표정과 캐치볼처럼 하릴없이 반복되는 어눌한 대화를 통해 이들과 현실 사이에 놓여진 엄청난 괴리감을 실감하게 해준다. 오랜만의 <개콘>다운 풍자정신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을 다시 되살려낸 <개콘>의 현실감각이 반갑고 또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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