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온 마스’, 쌍팔년도를 보니 성차별이 확실히 보이네

“그리고 미스 윤은... 커피 좀 타와.” 인성시 서부경찰서 강력계 계장 강동철(박성웅)은 다른 형사들에게는 범인을 잡기 위한 탐문 등을 지시하고는 윤나영(고아성)에게는 커피나 타달라고 지시한다. 가택침입을 당했다는 한말숙(김재경)이 겪은 것과 비슷한 사건이 4개월 전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찾아낸 장본인이 윤나영이었지만 그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은 바뀌지 않는다. 

만일 지금이라면 그렇게 대놓고 벌어지는 성차별에 순순히 수긍하는 분위기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1988년도로 되돌아간 OCN 토일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의 시점은 당대에 심지어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퍼져있던 성차별의 풍경들을 담아낸다. 윤나영은 이 서부경찰서에서는 윤순경이 아니라 ‘미스 윤’으로 불린다. 사건수사에 동참하기보다는 커피 타주는 일이 진짜 그가 하는 일이 되어버린.

하지만 이 드라마는 1988년을 다루고 있어도 그걸 보고 있는 우리들은 2018년에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현재 시점에서 그 해로 되돌아가게 된 한태주(정경호)가 느끼는 서부경찰서의 성차별적 분위기의 부당함과 불편함은 고스란히 시청자들의 마음 그대로 그려진다. 커피 타오라는 강동철에게 한태주는 굳이 윤나영과 함께 조사를 하러 가겠다고 말한다. “윤순경하고 같이 가겠습니다. 남자인 저보다도 피해자 조사하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라이프 온 마스>는 1988년도로 돌아간 그 복고적 감성이 주는 아날로그 수사의 묘미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물론 현재 한태주에게 벌어진 사고로 인해 어느 것이 현실이고 어느 것이 환상인지 알 수 없는 미스터리가 전편에 깔려 있지만, 사실상 드라마가 가진 재미의 핵심은 물론 주먹구구식이기는 하지만 어딘가 인간미가 묻어나는 형사들과 아날로그적인 사건 수사 방식에 있다. 

용의자와 혈액 대조를 하기 위해 조서를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한태주의 말에 강동철이 그 때까지 어떻게 기다리냐며 용의자의 머리를 책상에 들이받아 피를 흘리게 하고 바로 혈액 대조를 하게 하는 장면이나, 약국에서 제조한 약에 수면제 성분이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국과수에 보내기보다는 막내 조남식(노종현)에게 직접 먹이는 장면 같은 게 그렇다. 물론 코믹한 설정이지만 그 주먹구구식 수사가 당시의 상황에 비춰보면(국과수에 의뢰하면 너무 오래 걸린다는 현실) 이해가 되고 또 효과적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그런데 이러한 아날로그 수사의 묘미를 포착해내면서도, 당대의 성 차별적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윤나영이라는 캐릭터는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재미 포인트를 만들어낸다. 1988년도의 상황을 2018년을 살아가는 우리의 관점으로 들여다봄으로써, 윤나영의 성장과 그 성장을 은근히 지지하는 한태주의 훈훈한 관계를 볼 수 있게 만든 점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수사에 힘을 더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 서부경찰서에서 유일하게 프로파일링을 하고 용의자의 심리까지 파고 들어가는 윤나영의 사건 해결과정을 통해 드러난다. 유사한 사건을 겪은 두 피해자가 모두 아팠다는 사실을 발견해내고, 두 사람이 같은 약국에서 약을 조제해먹었다는 걸 밝혀냄으로써 그 약사가 범인임을 찾아낸 것. 

“박영근씨는 어릴 때부터 가까운 사람의 아픔을 보면서 살았어요. 아마 그 사람들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이 응어리로 남아서 계속 유사관계를 반복했을 지도 몰라요. 점점 관계에 집착하고 강박증세가 심해질수록 망상도 더 커졌을 거예요. 이주영씨를 갑자기 공격한 건 자기만의 망상이 깨졌기 때문일 거예요.”

윤나영의 이런 프로파일링에 근거한 추리는 사실상 현재에서 과거로 간 한태주에게는 당연한 수사방식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래서 한태주는 윤나영의 가능성을 가장 먼저 발견하고 그가 수사에 참여할 수 했게 해줌으로써 그 가치를 끄집어낸다. 사사건건 성차별적 발언을 해대는 어딘지 무능해 보이는 이용기(오대환)가 열성적으로 수사에 뛰어든 윤나영에게 “제법 경찰 흉내 낸다”고 비아냥거리자, 한태주가 정색하며 “이미 경찰입니다”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어떤 시원함을 느끼게 되는 건 그래서다. 자꾸만 윤순경의 성장을 응원하게 되는 것도.(사진:OCN)

멜로보다 사건, ‘검법남녀’로 채널 돌아간 까닭

MBC 월화드라마 <검법남녀>는 사실 방영되기 전까지만 해도 별 기대감이 없는 드라마였다. 워낙 MBC드라마들이 그간의 방송사 파행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연전연패를 해오고 있던 터라, 이번 작품도 생각만큼 쉽지는 않을 거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작가나 캐스팅만을 두고 봐도 <검법남녀>는 그리 눈에 띄는 드라마가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동시간대 방영되는 KBS <우리가 만난 기적>과 SBS에 새로 포진한 <기름진 멜로>는 시작 전부터 화제가 될 만큼 화려했다. <우리가 만난 기적>은 <품위 있는 그녀>와 <힘쎈여자 도봉순>을 쓴 백미경 작가의 작품인데다, 믿고 보는 배우라 불리는 김명민에 김현주까지 캐스팅된 작품이다. 또 <기름진 멜로>는 <파스타>부터 <질투의 화신>까지 역시 스타 작가로 자리한 서숙향 작가의 작품으로, 장혁, 이준호, 정려원 같은 배우들이 캐스팅됐다. 여러모로 <검법남녀>를 쓴 신인작가 민지은, 원영실이나 정재영, 정유미 같은 배우들과 비교해보면 그들 작품들의 면면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었다. 

결국 <검법남녀>는 그 액면으로만 보면 채널에서부터 작가, 캐스팅까지 약하게 느껴지는 작품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국 드라마는 스토리가 가진 힘에 의해 좌우되기 마련이다. 조금씩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검법남녀>는 시청률 6%대를 넘어서며 동시간대 2위 시청률을 기록하던 <기름진 멜로>를 앞질러 버렸다. <우리가 만난 기적>은 이미 충성도 높은 시청층을 확보하고 있어 굳건한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었지만, 같이 시작한 <기름진 멜로>와의 경쟁에서 <검법남녀>가 순위를 뒤집는 이변을 만든 것.

도대체 무엇이 이런 결과를 가져온 걸까. 가장 큰 건 <기름진 멜로>의 부진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애초 중국집이라는 소재를 가져왔고, 음식이 가진 그 비주얼만으로도 시청자들을 유입할 수 있을 거라 여겨졌지만, 어딘지 이야기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빙빙 도는 듯한 지지부진함 속에서 시청자들의 이탈이 가속화됐다. 가진 자들이 모든 걸 가져가버리는 현실을 가져와 중국집과 사랑이야기로 엮어낸 그 틀은 나쁘지 않다 여겨졌지만, 그 사회적 복수극의 틀이 지나치게 홍콩 영화풍 코미디(사실 그리 웃긴 지는 잘 모르겠지만)로 풀어내지는 바람에 시청자들이 몰입하기가 어려워졌다. 마치 시청자들은 짜장면을 원하는데, 작가는 중국 본토 음식이 진짜라며 꺼내놓는 듯한 느낌이다. 결국 그 음식을 먹어주는 건 우리 시청자들인데.

차라리 복수극의 틀을 잘 활용해 시원한 사이다를 제 때 넣어줬다면 더 좋은 흐름이 만들어질 수도 있었을 것이지만 <기름진 멜로>는 ‘웃픈’ 상황에 지나치게 빠져 있는 듯한 흐름이다. 슬프지만 웃음을 던질 수 있는 드라마가 되어야 하는데, 웃으면서도 고구마를 사이다 없이 먹는 듯한 퍽퍽함이 더 느껴지는 드라마가 되고 있는 것. 또 지나치게 멜로의 구도에만 갇혀 있는 것도 한계로 여겨진다.

반면 <검법남녀>는 멜로보다는 사건 중심으로 흘러가고, 그 사건을 해결해가는 검사와 법의관의 케미가 흥미진진한 반전을 이루면서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고 있다. 고인의 냉동정자를 통해 임신해 아이를 낳았다며 그 유산을 주장하는 한 여인의 사건은, 무덤에서 꺼낸 사체를 부검하면서 몇 단계의 반전 이야기로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처음에는 사체가 타살된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 때 병원에 있었던 간호사가 의심되었지만 역시 누군가에 의해 타살된 간호사를 발견하고는 그를 죽인 범인이 바로 그 유산을 주장했던 여인으로 밝혀지는 과정은 법의학이 가진 증거들을 통해 소름 돋는 반전을 만들었다. 그리고 후반부에 이르러 사체가 뒤바뀐 사실과 아이가 본래부터 고인의 친자라 가만히 있어도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검법남녀>는 결국 그 과학수사라는 틀에 냉정함을 유지하는 법의관과 열정적인 검사라는 상반된 캐릭터를 엮어 두 케미가 만들어내는 흥미진진한 수사과정을 담아냄으로써 안정감 있는 이야기를 구사해내고 있다. 결국 <기름진 멜로>라는 기대작을 <검법남녀>가 밀어낸 저력은 멜로 같은 공식이 아니라 매회 시선을 잡아끄는 사건들이 보여졌기 때문이다. <기름진 멜로>로서는 지금이라도 본격적인 스토리 전개에 박차를 가해야하는 이유다.(사진:MBC)

<시그널>의 욕망, 조진웅의 몸과 이제훈의 머리

 

죄를 지었으면 돈이 많건, 빽이 있건, 거기에 맞는 죗값을 받게 해야죠. 그게 경찰이 해야 되는 일이잖아요.” 지극히 당연한 대사지만 이 대사가 주는 울림은 너무나 크다. 상식보다 권력이 앞서는 법 정의 현실에서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의 이재한(조진웅) 경사라는 캐릭터는 이상적인 인물이다. 어떤 권력의 협박이나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우직하게 할 일을 실천해 가는 그런 인물.

 


'시그널(사진출처:tvN)'

이재한 경사는 지금의 과학수사와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다. 영화 <살인의 추억>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듯이 당대의 형사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래서 대도사건 수사에서는 제보만으로 엉뚱한 인물을 체포함으로써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생각보다는 몸이 앞서지만 그가 여느 형사들과 다른 것은 정의에 대한 남다른 신념과 소신이다. 그의 대사를 통해서도 잘 드러나지만 그는 죄를 지었다면 그 사람이 누구든(심지어 잘 아는 사람이라도) 죗값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와는 정반대의 형사도 있다. 그것은 자신을 향해 총을 쏜 안치수(정해균) 같은 형사다. 그는 바로 이 원죄 때문에 상관인 김범주(장현성)와 같은 배에 타게 된다. 이재한 경사처럼 정의를 위해 온 몸을 던진 이는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지만 권력과 결탁해 제 배를 채우는 김범주나 안치수 같은 인물은 현재까지도 잘 살아간다. 이 부조리한 현실은 시청자들이 분노하게 되는 이유다.

 

이재한 경사가 몸으로 뛰는 형사라면 그와 무전기로 연결되어 있는 현재의 프로파일러 박해영(이제훈)은 머리로 승부하는 형사다. 그는 프로파일러답게 모든 정황들을 사건현장의 작은 단서에서도 찾아낸다. 재벌가 자제로서 대도사건의 진범이자 이와 관련해 살인을 저지른 변호사 한세규(이동하)를 두뇌싸움으로 증언을 받아내는 과정에서 그는 사이다 같은 시원한 한 방을 보여준다. 요즘처럼 법을 잘 알고 그래서 법망을 이용하거나 빠져나가는 점점 지능화되는 범죄에서 박해영처럼 머리를 쓰는 형사가 필요한 이유를 잘 보여준다.

 

무전기라는 판타지로 연결되어 있지만 과거의 형사 이재한 경사와 현재의 프로파일러 박해영의 조합은 그래서 완벽하다. 이재한은 몸으로 뛰고 박해영은 머리로 분석한다. <시그널>이 타임 리프라는 설정으로 과거의 형사와 현재의 프로파일러를 각각 우직한 행동파와 과학수사의 상징처럼 엮어놓은 건 흥미롭다. 이 과거와 현재의 중첩이 그저 시간을 뛰어넘는 신기함만이 아니라 의미를 담고 있다는 얘기다. 어딘지 과학수사는 아니더라도 몸으로 더 뛰어 범인을 잡으려는 과거의 형사와 훨씬 진화된 방식으로 과학수사를 해나가는 현재의 프로파일러의 조합을 이상적인 형사상으로 그려내는 것.

 

물론 이 상이한 성향의 두 사람이라도 같은 점은 있다. 그것은 권력에 굴하지 않는 정신이다. 과거 이재한의 상사였고 현재는 박해영의 상사인 김범주의 그 긴 세월동안 해온 권력과의 결탁과 압력에도 두 사람은 모두 소신 있는 수사를 해나간다. 결국 <시그널>의 공적으로서 한세규나 김범주 같은 인물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악의 고리이고 이재한과 박해영 두 사람 모두가 대결해야할 적이 되고 있다는 건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만큼 법 집행이 오래도록 권력과 결탁해왔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두 형사. 한 사람은 사건 해결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다른 한 사람은 끝없이 두뇌를 사용하지만 모두 정의 실현에 갈증을 가진 그들의 조합은 이상적이다. 그 이상적인 조합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부조리의 상징처럼 등장하는 안치수, 김범주와 대결하는 이야기. <시그널>은 이 대결구도를 통해 지금 현재 우리네 서민들이 느끼는 공정하지 못한 법 집행의 연원이 꽤 오래도록 지속되어 왔다는 걸 말해주는 것만 같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달라지지 않고 있는 그 뿌리 깊은 부조리를 척결하는 것. 그것이 이 두 시대의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형사들을 이어놓은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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