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1>, 헛똑똑이 세상에 던지는 바보들의 일침

 

주말 내내 김종민은 바빴다. <무한도전> ‘바보전쟁에 빠질 수 없는 캐릭터이면서 동시에 <12>의 터줏대감(?)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바보 캐릭터’. 진짜 바보인가 아니면 바보를 가장한 천재인가에 대한 의문은 끊임없이 김종민에게 제기된 바 있다. 은지원이 그는 사실 천재라고 했던 말은 이런 의문에 불을 지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경북 성주군으로 떠난 <12>에서 마침 김종민이 보인 새로운 면면들은 이것이 단지 농담만은 아닐 거라는 심증을 줬다. 씨름 복불복에서 스모를 배웠다는 료헤이와 접전을 벌이다 결국 이기고, 퀴즈 대결에서도 척척 맞추는 모습을 보여줬다. 지금껏 김종민이 갖고 왔던 이른바 신바(신난 바보)’ 캐릭터와는 사뭇 다른 행보였다.

 

사실 방송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그 일을 이토록 오래도록 잘 해온 그가 진짜 바보일 리 만무다. 하지만 그토록 많은 의문 제기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캐릭터를 저버린 적이 없다. 그 이유는 하나다. 그것이 많은 시청자분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시청자분들이 보면서 훨씬 편안하게 볼 수 있게 만드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 이외에 무슨 이유가 있을까.

 

<무한도전>은 왜 갑자기 바보 전쟁이라는 타이틀로 이른바 바보 어벤져스를 모으고, 또 그렇게 어벤져스에 선택된 출연자들은 기꺼이 거기에 응했던 걸까. 물론 <무한도전>에 나간다는 건 심형탁이 말했듯 소속사가 축하 파티를 할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막상 프로그램에 나왔다고 해도 거기에서 적극적으로 조금은 모자란 모습을 보여주거나 자신이 희화화되는 걸 기꺼이 감수한다는 건 또다른 얘기다.

 

심형탁은 지금까지 우리가 보지 못했던 독특한 바보 캐릭터의 모습을 보여줬다. 댄스 신고식에서 무반부로 듣도 보도 못한 뚜찌빠찌뽀찌를 연발하며 <미니언스>의 노래를 부르는 그에게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처음에는 멍해졌다가 잠시 후에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평소 피규어 마니아다운 모습으로 그는 엉뚱한 매력을 쏟아냈다.

 

<12>에서 가장 드러내지 않고 바보 캐릭터를 연기하는 인물은 김준호다. 그는 프로그램을 위해 적당히 무식함을 드러낼 줄도 알고 기상미션으로 김종민의 노비가 되자 비굴함을 연기해 웃음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누가 봐도 코미디언으로서의 연기다. 김준호가 대단하게 여겨지는 건 그가 광대의 역할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이다. <12>의 맛을 계속 살려낸 건 다름 아닌 그가 자처한 바보스런 광대 역할 덕분이다.

 

김준호와 김종민이 떡 하니 붙어 양대 바보 캐릭터를 선보이니 게스트로 초대되어 그 중간에 선 존박이 두드러지게 보인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을 것 같은 일에 너무 열심히 하는 모습이 드러나면서 존박은 어딘지 김종민을 닮은 듯한 이미지로 캐릭터화되었다. 그러고 보면 <12>이든 <무한도전>이든 항상 그들은 바보 캐릭터가 가진 낮은 위치를 지향하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들이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는 본분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 뇌섹녀가 새로운 신조어로 올라왔고, 이를 표방한 예능 프로그램들도 생겼다. 하지만 이런 뇌섹남, 뇌섹녀보다 바보 캐릭터에 대한 갈증이 훨씬 깊었던 모양이다. <무한도전>이 바보 어벤져스를 꾸리고 <12>이 늘 그렇듯 바보 같은 복불복 게임에 집착하는 건 그래서가 아닐까.

 

<무한도전>의 이른바 바보 어벤져스가 찾아간 숙소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바보 같은 세상에 바보가 아닌 것이 바보다.’ 아마도 바보에 대한 희구는 어쩌면 바보 같은 세상에 의해 비롯되는 일일 게다. 저마다 똑똑하다고는 하지만 어째서 세상은 이토록 살기가 힘들어지는 걸까. 똑똑함을 주장하지만 그래서 헛똑똑이인 세상. 우리가 바보들에게서 심지어 삶의 위로를 받는 이유다



김준호, 예능에선 얍쓰, 후배들에겐 든든한 버팀목

 

웃기기 위해 웃통을 벗고 한없이 망가지는 광대의 진짜 얼굴은 어떨까. 심지어 부모의 부고를 들을 때도 웃는 얼굴 분장을 한 채 무대에 올랐다는 과거 코미디언의 삶은 지금도 그리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웃음을 주는 이들이다. 그러니 자신의 눈물조차 웃음으로 승화시킨다. 그 맘은 얼마나 무너질 것인가.

 

'김준호(사진출처:KBS)'

김준호의 마음이 딱 그랬을 것이다. 코코엔터테인먼트는 결국 폐업을 결정했다. 대표이사 김모씨가 회사자금을 횡령해 도주한 후, 어떻게든 회생해보려 애썼지만 회사의 부실경영이 점점 더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도저히 회생이 어렵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배 개그맨들과 함께 이 일을 헤쳐 나가기 위해 자비를 털어서까지 일부 연기자들의 출연료를 정산해주었다고 한다.

 

그는 <12>을 통해 얍쓰라는 캐릭터를 갖게 되었다. ‘얍삽한 쓰레기라는 다소 거친 이 캐릭터로 인해 본인은 항상 망가지는 입장에 처했다. 마치 노출증 환자나 되는 것처럼 자꾸 웃통을 벗어젖히는 모습은 그의 투철한 직업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심지어 대표이사 김모씨가 도주를 한 상황에서도 그는 프로그램에 단 한 번도 그 내색을 하지 않았다.

 

왜 마음고생이 없겠는가. 열심히 해왔던 일들이 한순간 날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고, 믿었던 사람에 대한 배신감은 더더욱 클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건 자신을 믿고 묵묵히 따랐던 후배 개그맨들에 대한 책임감이다. 그들과 함께 앞으로 코미디계의 큰 비전을 공유하려던 그 꿈이 커다란 걸림돌을 맞이하면서 큰 좌절감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연말 시상식을 통해 확인된 것처럼, 김준호가 뿌린 신뢰의 씨앗은 후배들의 든든한 지지로 돌아왔다. <개그콘서트>의 김준현을 비롯해 김대희, 조윤호, 김지민이 김준호에 대한 감사와 신뢰의 뜻을 전했고, <웃찾사><코미디 빅리그>에서 활동하는 김현정, 홍윤화, 이국주가 변함없는 마음과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니 그런 후배들의 응원은 김준호에게는 천군만마의 힘을 보태주었을 것이다. 한때 그 개그맨 후배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기 때문에, 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그렇게 성장한 개그맨들은 이제 거꾸로 김준호의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었다. 그러니 힘들어도 내색 한 번 안한 채 여전히 <12>의 얍쓰로 또 <개그콘서트> ‘닥치고의 교장선생님으로 나와 기꺼이 망가질 수 있었을 게다.

 

코코엔터테인먼트라는 개그맨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던 회사의 폐업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비온 뒤 땅은 더 단단해진다고 했던가. 이번 위기 상황은 오히려 김준호와 후배 개그맨들 사이의 신뢰를 더욱 돈독하게 해준 격이 되었다.

 

물론 개그맨으로 살아가는 것과 회사를 운영하는 것에는 크나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번 사태를 통해 충분히 알게 되었을 것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사전에 어떤 방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모쪼록 그가 후배들과 꿈꾸었던 코미디계의 비전을 함께 이뤄나가길 기원한다.

 

김준호의 의리, 후배들의 신뢰, 웃음 뒤의 눈물

 

때로는 상을 받은 사람들보다 더 시상식에서 빛나는 인물이 있다. 올해는 KBS 연예대상에서 무관에 그친 김준호가 그렇다. 그는 대상을 받지 못했지만 무수한 동료, 후배 개그맨들로부터 대상 이상의 사랑을 받았다.

 

'KBS연예대상(사진출처:KBS)'

이렇게 된 것은 최근 그가 공동대표로 있는 코코엔터인먼트의 위기 때문이었다. 공동대표인 김모씨가 회삿돈을 횡령해 도주함으로써 회사에 대한 흉흉한 루머들이 나돌았던 것. 특히 소속 개그맨들의 이탈로 분열 조짐이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성 기사들은 김준호는 물론이고 소속 개그맨들에게도 뼈아픈 상처를 주었다.

 

하지만 마치 비온 뒤에 땅이 굳듯, 그런 루머와 추측성 기사들을 일축하며 시상 무대에 오른 개그맨들은 일제히 김준호에 대한 신뢰를 드러냈다. KBS 연예대상에서는 김준현의 감동적인 존경발언이 김준호를 울렸고, 이어서 김대희, 조윤호, 김지민 등이 그에 대한 감사와 신뢰의 뜻을 전했다.

 

그에 대한 언급은 그가 전혀 출연하고 있지 않은 SBS 연예대상에서도 흘러나왔다. 그의 소속사 개그맨들은 KBS <개그콘서트> 뿐만 아니라 SBS <웃찾사>tvN <코미디 빅리그>에서도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SBS 연예대상 코미디 부문 우수상과 최우수상 수상자인 김현정과 홍윤화는 김준호에 대한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이국주는 가장 힘든 분은 김준호 선배 아닌가 생각한다. 그 소속사에 있다. 배신 때리지 않고 똘똘 뭉쳐서 기다리고 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 코코엔터 사랑한다.”고 말해 그에 대한 여전한 신뢰와 믿음을 드러냈다. 사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주목된 인물이 이국주였다. 최근 대세 개그우먼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소속사의 이번 사태의 충격도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국주는 변함없는 마음을 전했다.

 

개그맨들이 이처럼 일제히 김준호에 대한 지지를 하고 나선 데는 이들의 특별한 관계에서 비롯된다. SBS 연예대상 코미디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홍윤화가 거론한 김준호에 대한 이야기 속에는 그 특별한 관계가 묻어난다. 그녀는 제가 가장 힘들 때 제 편이 된 사람이 김준호 선배였다. 선배가 힘들 때 저도 편이 돼 드리겠다. 힘내라. 날아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국주와 김준호의 관계 역시 방송가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국주가 어렵던 시절부터 꾸준히 김준호가 그녀를 지지해줬기 때문에 지금의 이국주가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코코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는 깨질 위기에 처했을지 몰라도, 김준호와 개그맨들 사이의 끈끈한 관계는 오히려 더 돈독해진 셈이다.

 

김준호가 든든히 지지해온 후배 개그맨들이 시상대에 올라 상을 받는 모습을 보며 그는 얼마나 흐뭇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자신이 대상을 받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 어려운 시기에 그들의 여전한 신뢰를 받는다는 것은.

 

지상파 3사의 올해 연예대상을 보면 공로상의 성격이 짙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KBS가 유재석에게 또 SBS가 이경규에게 대상을 준 것은 올해의 성과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간의 공로를 치하하는 성격이 강했다. MBC는 물론 <무한도전>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성과를 만든 프로그램이지만 유재석의 대상 역시 그간의 공로를 치하하는 의미를 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어딘지 늘 봐 오던 대상 수상의 풍경들 속에서 오히려 김준호와 개그맨들의 변함없는 의리가 더 눈에 띈다. 또한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12><개그콘서트>에서 온몸을 던져 웃음을 주는 그 모습에서는 무대에 서서 웃음을 전하는 광대의 눈물마저 엿보게 된다. 실로 올해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무관의 김준호가 아니었을까 싶다.

 

박명수에게서 광대의 기질을 느낄 때

 

마치 찰리 채플린이 <독재자>라는 영화를 통해 세상의 독재자들을 희화화했듯이 <무한도전> 선거특집의 박명수는 선거에 즈음해 벌어지는 온갖 정치인들의 행태들을 풍자하는 듯 보였다. 선거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유재석 저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발언으로 네거티브 선거 운동에 대한 뾰족한 풍자를 보여주었고, 수박 한 통을 사면서도 가격을 깎는 모습이나 그걸 들고 선배 한무를 찾아 선거운동 청탁을 하는 장면도 예사롭지 않았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흥미로운 건 박명수가 자신을 ‘MBC의 성골로 캐릭터화 했다는 점이다. MBC의 순수혈통, MBC의 가족, MBC의 상징으로 자신을 내세운 박명수는 후배들을 챙기는 모습을 캠페인 영상으로 내보냈지만, 공개된 메이킹 필름 속에서는 후배들에게 명령하고 호통 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정치인들의 거짓 이미지를 에둘러 비판했다.

 

자신의 지지율이 별로 없어 당선 가능성이 사라지자 노홍철과 유재석을 오가며 자신의 이득만을 챙기는 철새 정치인의 모습을 연출해 보여주었고, TV 토론회에서는 갑자기 유재석 지지를 선언했다가 이를 철회하고 시민 논객으로 둔갑하기도 했다. 난데없이 스튜디오에서 전화연결을 해 토론회에 참여하다 진행자인 정관용과 대립하는 모습으로 웃음을 주기도 한 그는 갑자기 정관용의 팬을 자처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번 선거 특집을 통해 보여준 박명수의 모습은 한 마디로 망가짐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거침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정치인들의 거드름을 희화화시키기도 했고 성골을 자처하며 관계를 내세우는 정치인들의 유착을 풍자하기도 했으며, 거짓 이미지 정치와 철새 정치인들을 비판하다가 나중에는 시민논객으로 변신하는 등 끊임없는 변화를 보여주었다. 이 변화의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정치 풍자의 폭은 입체적으로 다양해질 수 있었다.

 

이것은 유재석이 기본에 충실하자고 외치고 노홍철이 투명성을 강조하며 또 정형돈이 소탈한 서민적 이미지를 계속 보여주고 하하의 의리를 내세우는 그 일관된 모습과는 사뭇 다른 행보다. 박명수는 당선에 대한 의지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정치인의 희화화된 모습으로 한없이 망가뜨려 풍자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박명수가 지금껏 일관되게 해왔던 캐릭터 때문이다. 그는 1인자를 꿈꾸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지만 결코 1인자가 된 적은 별로 없었다. 게다가 유재석처럼 늘 긍정적이고 바른 이미지를 보여준 적도 없다. 호통치고 때로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구사하면서 욕을 먹으며 웃음을 주는 캐릭터가 바로 박명수라는 것.

 

바로 이 웃음을 주기 위해 기꺼이 욕먹는 캐릭터라는 지점은 박명수가 풍자와 패러디를 소재로 했을 때 그 누구보다 더 빛을 발하는 이유가 된다. 박명수의 의도적인 부정적 이미지는 정치인 풍자 같은 경우에 있어서 더 자연스럽고 강력하게 다가온다. 그것이 박명수의 진짜 모습인지 아니면 정치인 풍자인지가 애매해질 정도로 자연스러워질 때 풍자의 강도도 높아진다는 점이다.

 

박명수가 선거 후보자에서 시민의 대표를 자처하고 나섰을 때 순간적으로 정치인과 보통 사람들 사이의 경계가 해체된다. 정치인이라고 특별할까. 박명수의 지극히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은 그래서 선거 후보자 같은 캐릭터 설정의 이면으로 드러날 때 일종의 폭로의 쾌감을 선사한다. 박명수는 그 희화화를 통해 말하고 있는 듯하다. 잘난 사람들이라고 다를 바 없고, 오히려 못한 경우가 더 많다고.

 

본래 예전부터 광대가 대중들에게 웃음을 주는 기제는 그 낮은 자세였다. 대중들보다 더 낮은 위치를 보여줌으로써(이를 테면 바보 같은) 보는 이들에게 우월감을 심어주는 것. 하지만 여기서 광대가 상황을 뒤집는 경우도 있다. 때때로 임금 흉내를 내며 희화화할 때다. 대중들은 그 순간 임금을 다른 존재로 여겨지게 만들어 놓은 시스템이 무너지며 광대와 동질화되는 쾌감을 느낀다. 박명수가 때로는 유재석보다 더 멋지게 느껴질 때가 바로 그 때다. 그가 광대의 기질을 드러낼 때.

<인간의 조건>이 보여준 박성호의 맨 얼굴

 

“괜히 마음이 불안하곤 했죠. 그런데 안 불안한 상황이 있더라구요. 분장할 때.” 개그맨 박성호는 얼굴에 분장을 하지 않으면 울렁증이 있다고 한다. 자신의 모습이 아닌 타인의 모습에 이입돼서 하는 게 가장 편하다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인간의 조건>이란 프로그램은 큰 숙제가 아닐 수 없다. 그 분장 속에 감춰졌던 자신의 맨 얼굴을 가감 없이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조건'(사진출처:KBS)

우리가 <인간의 조건>에 출연한 박성호를 보면서 어딘지 낯선 느낌을 받았다면 그가 늘 어떤 캐릭터로서 우리에게 자리했었기 때문일 게다. <개그콘서트>의 서수민 PD는 이렇게 말했다. “박성호는 일상적인 연기를 안 해요. 예를 들어 ‘미필적 고의’ 같은 거 절대 못하죠. 원래 센 캐릭터라...” 박성호 스스로도 그런 캐릭터는 “한 세 번 환생해야 가능할 것 같다”고 농담 섞어 얘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의 조건>을 통해서 박성호는 분장을 지우고도 조금씩 편안해진 얼굴을 보이고 있다.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미션을 수행하다 벌칙으로 재활용 센터를 찾게 된 박성호는 직접 분리수거를 해보기도 했고, 스키장 행사를 가서도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쓰레기를 줄이자”는 간이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물론 갸루상 분장을 하고 거리를 활보하고 심지어 집까지 그러고 돌아왔지만, 거기에는 갸루상 캐릭터가 아닌 박성호의 진심이 묻어났다.

 

맨 얼굴을 드러내면서 진통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인간의 조건> 첫 번째 파일럿에서 박성호와 김준호가 불편한 관계(?)를 드러냈을 때가 그랬다. 김준호는 그 때 방송이 나가고 자신이 너무 미안했던 마음을 전했다. “<인간의 조건> 처음 나가고 성호 형한테 악성 댓글이 너무 많이 붙었어요. 정말 미안하더라구요. 형수님도 볼 텐데...” 그런 마음은 서수민 PD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저도 미안하더라구요. 근데 와이프가 쓴 편지를 보여줬는데 대단하시더라구요. 그랬구나 우리 남편 힘들었구나. 불편했구나.. 그렇게 썼는데 참 찡 하더라구요.”

 

실제로 박성호는 말없이 후배를 챙기는 선배로 잘 알려져 있다. 많은 개그맨들은 박성호를 그래서 ‘선배 같지 않은 편안한 선배’라고 부르곤 한다. 허경환이 전한 CF 뒷얘기에는 박성호의 속 깊은 마음이 느껴졌다. “‘거지의 품격’이 뜨면서 CF를 많이 찍었는데요, 그 때마다 마지막 최종 클라이언트에게 올라갔던 게 거지와 갸루상이었어요. 결국 거지가 뽑히곤 했죠. 박성호 선배 너무 고마운 게 거기에 대해서 내색도 하지 않더라구요. 좀 미안하기도 했어요.”

 

박성호는 <인간의 조건>을 통해 하나의 성장통을 겪고 있는 중이다. 지금껏 캐릭터에 가려져 보여주지 않았던 자신의 모습은 때론 자신도 낯설다고 했다. “방송 하면서 몰래카메라 설치해서 자신을 보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저를 보고 저도 깜짝 놀랐어요. 제 개인적인 세계를 구축하려면 또 해야 될 것들이 있지만 그래도 대인관계도 챙겨야 할 게 있더라구요. 그걸 알게 됐죠.”

 

하지만 그것은 박성호가 생각하는 개그맨의 모습과 거기에 몰두하는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늘 캐릭터에만 집중하다 보니 조금 소원했던 적도 있었다는 것. 박성호는 이 프로그램이 자신을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김준호, 김대희와 함께 이른바 <개콘> 원로(?) 술자리를 처음 가지게 된 것도 이 프로그램 덕분이라고. 그간 한 번도 같이 술자리를 한 적이 없었던 그들이었다.

 

<인간의 조건>을 하면서 박성호는 실제 생활에서도 변화를 느낀다고 한다. “체험 주제에 대한 부담 같은 게 있죠. 공인 같은 느낌을 갖는 것 같아요. 운전을 하면서도 조심하게 되고 쓰레기 줄이기를 미션으로 하고 있으니 음식 남기는 것도 눈치가 보이죠(웃음).” 이것은 <인간의 조건>에 출연하는 모든 개그맨들이 겪고 있는 부담감이다. 심지어 뷔페에 가서도 음식 남기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는 자신들을 발견한다고 하니 말이다.

 

캐릭터 분장을 해야 마음이 편해진다는 박성호는 천상 개그맨이었다. <인간의 조건>을 통해 편안하고 유쾌한 선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래도 개그맨 분장이 더 어울리는. 박성호는 <인간의 조건>의 마지막 미션으로 실제로 머리 깎고 ‘스님 되기’를 하면 어떻겠냐며 허허 웃었다. 속으로는 울어도 겉으로는 늘 웃음으로써 누군가에게 웃음을 주는 개그맨이라는 존재를 다시금 느끼게 해주는 이가 바로 박성호다. 그래서 그의 “사람이 아니무니다”라는 유행어는 빵 터지면서도 마음 한 구석을 짠하게 만든다.

광대는 어떻게 대중들을 대변했나

 

이병헌 주연의 영화 <광해>는 자꾸만 ‘광대’로 읽힌다. 그 영화 속 주인공이 다름 아닌 기방에서 왕 흉내 내며 웃음을 주는 대가로 살아가는 광대다. 그 광대가 광해를 대신한다. 처음엔 연기였는데 하다 보니 점점 왕의 역할을 제대로 해나가기 시작한다. 광대가 광해가 되어 광해보다 더 민초들을 생각하는 정치를 하게 되는 이야기. 1천만 관객 돌파에 스크린 독점과 지나친 마케팅이 일조한 것이 사실이지만 <광해>의 흥행에는 바로 이 ‘광대’라는 위치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다.

 

'강남스타일'과 '광해'(사진출처:YG엔테테인먼트, 영화 광해)

지금으로 치면 연예인에 해당할 것이다. 대중들에게 값싼 대중문화를 통해 심지어 희망까지 주는 존재. 청소년들 세 명 중 한 명이 희망하는 직업. 물론 그만큼 치러야할 대가도 만만치 않지만 대중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대변하는 그런 사람들. 영화 <광해> 속 하선(이병헌)은 분명 작금의 연예인을 빼닮았다.

 

요즘 연예인들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고 그런 발언이 대중들의 귀에 쏙쏙 들어온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러고 보니 영화 속 하선이 던지는 “그대들이 죽고 못 사는 사대의 명분보다 내 나라, 내 백성이 열 갑절 백 갑절은 더 소중하오!”라는 대사는 SNS 시대에 때론 소셜테이너들이 던지기도 하는 속 시원한 한 줄 촌철살인 그대로다. <광해>는 여러모로 광대로 읽힌다.

 

또 한 명의 광대가 있다. 이 시대를 온통 말춤으로 들썩거리게 만든. 바로 싸이다. 광대나 딴따라라는 표현은 어딘지 비하적인 뉘앙스가 있어 많은 연예인들이 피해왔던 것이 사실이지만, 싸이는 아예 자신이 광대임을 드러냈다. “내 직업은 광대, 떴다고 모범적으로 살지 않겠다.” 싸이의 이 발언은 아예 광대의 본분과 철학을 담고 있다.

 

월드스타니 한류스타, 혹은 국민가수(?) 같은 호칭을 거부하고 국제가수라는 애매한 명칭을 스스로 부여한 것에도 광대의 철학이 묻어난다. 국제가수라는 명칭에는 국가나 민족이라는 뉘앙스가 없다. 그저 해외에도 활동하는 가수라는 의미만 있을 뿐. 광대는 국가나 민족의 부름에 구획되어 모범적으로 억지로 살고 싶지 않았던 거다. 저 하선이 저잣거리에서 왕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웃음거리로 만들며 살아가듯이. 저 하던 대로 그대로.

 

사실 ‘강남스타일’이 미국에서 빵 터지기 전까지 국내에서 싸이에 대한 관심은 그냥 그랬다. 국가가 관심을 가졌던 적도 없다. ‘라잇나우’ 같은 곡에 19금 딱지를 붙이는 것이 국가가 가진 관심의 표현(?)이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비롯되어 전 세계로 싸이에 대한 관심이 번져나가자 상황은 역전되었다.

 

시청 앞 광장이 월드컵을 재연하고, ‘라잇나우’는 19금 딱지를 떼었으며 심지어 국가는 싸이에게 훈장을 부여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해외에 그만큼 우리나라를 알렸으니 훈장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가 대중문화를 이끌어가는 이 시대의 광대들을 위해 해주는 것이 고작 결과를 만들어낸 자들을 공치사 하는 일 밖에 없는가 하는 의구심은 있다. 이것은 싸이의 공을 치하하는 것인가 아니면 싸이에게 훈장을 줌으로써 정부도 한 일이 있다는 식의 또 다른 숟가락 얹기인가.

 

사실 정치인들보다 더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이 시대의 광대, 연예인들이다. 하지만 지금껏 연예인들은 정치적인 상황에 이용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문제는 시대가 바뀌었다는 거다. 정치가 대중문화에 종사하는 연예인들을 딴따라 취급하며 저 발톱의 때처럼 바라보던 시대가 가고, 이제는 대중문화가 정치적인 힘을 발휘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올해 대선에서 3강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가 모두 <힐링캠프>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제 정치인들은 어떻게 하면 대중문화라는 말 등 위에 올라탈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저마다 말 춤을 추며 광대 싸이를 코스프레 하고 있다. 이것이 대중의 시대의 새로운 정치 스타일이다.

 

<광해>가 광대로 읽히고, 싸이가 스스로를 광대로 내세우게 된 건 대중문화가 이제 우리네 정치적 입장까지를 대변해주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러니 제발 대중문화나 광대를 우습게 보지 말라. 선거 때 반짝 광대 흉내 내고는 막상 정치권에 들어가면 언제 그랬냐 싶게 저 <광해>의 신하들처럼 저들 이익에만 휘둘리면서, 대중문화의 토대와 저변을 마련해주기 보다는 뜬 대중문화에 서둘러 숟가락이나 얹는 그런 짓은 하지 말라. 저 왕을 연기한 광대가 대중들의 입을 빌려 한 그 준엄한 꾸짖음을 잊지 말라.

<광해>, 이병헌의 연기학 개론

 

왕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것일까. 아니면 자리가 만들어내는 것일까. 영화 <광해>가 던지는 질문이다. 왕을 연기하던 광대 하선(이병헌)은 그 얼굴이 똑같다는 이유로 광해(이병헌)에게 불려가게 되고 왕을 연기하게 된다. 그러다 어느 날 광해가 중독으로 쓰러지게 되자 허균(류승룡)은 하선을 당분간 왕의 자리에 앉히게 된다. 흥미로운 건 하선이 그 왕의 자리에 앉게 되면서 점점 왕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사진출처:영화 <광해>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는 말은 아마도 <광해>가 가진 뭉클한 정치적 지점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일 것이다. 광해는 왕의 자리에 앉아 그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폭군의 면모를 보이지만, 그저 저잣거리에서 살아가던 민초 하선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 그는 지극히 상식적이다. 외척세력을 문제 삼아 중전을 폐하려는 신하들의 청 앞에 그는 조강지처를 내치는 남편이 어디 있느냐며 호통을 치고, 대동법 시행에 반대하는 신하들에게 땅 더 가진 자가 더 세금을 내는 게 뭐가 잘못됐냐고 말한다.

 

이것은 왕이 백성을 생각하는 차원이 아니라, 아예 민초인 자가 왕의 입을 빌려 하는 말이다. 이것은 <광해>라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가 대선을 앞두고 있는 2012년에도 울림을 갖는 이유다. 국민을 호명하는 정치인들은 많아도, 진짜 국민이 무엇을 바라는 지 그 목소리를 내는 정치인은 보기 힘든 현실. 이것이 어쩌면 <광해>에서 광해를 연기하는 하선이라는 존재가 지극히 비현실적이면서도 영화라는 장막을 통해 기꺼이 현실적으로 믿게 되는(믿고 싶은)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이 왕이 타고난 왕이 아니라, 왕을 연기하는 하선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병헌은 왕을 연기하는 하선을 연기한 셈이다. 연기론으로 보면 연기는 연기를 흉내 내는 게 아니고 그 캐릭터 자체가 되는 일이다. 하선이 왕 연기를 하다가 점차 광해와 동화되어가는 과정은 바로 이 진정한 연기가 구현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게다가 하선은 직업이 광대다). <광해>는 따라서 한 연기자(하선이라는 광대)의 연기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병헌으로서는 이 지점이 굉장히 매력적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결국 연기라는 것이 흉내 내기가 아니고, 자신 속에 있는 또 다른 나를 끄집어내 그 캐릭터에 동화시키는 것이라는 걸 이 영화 속 인물인 하선과 그를 연기하는 이병헌이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진짜로 왕이 될 것인가 아니면 다시 광대로 돌아갈 것인가 하는 선택의 순간은 중요해진다. 이것은 연기자가 캐릭터에 몰입되어 있다가도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는(그래야 연기자로서 살아갈 수 있다. 광인이 아니라) 그 과정을 보여준다. 이병헌은 아마도 <광해>를 연기하면서 어느 순간에는 진짜 왕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다시 광대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지만.

 

<광해>에서의 이병헌이 그 어떤 다른 작품에서의 이병헌보다 돋보이는 이유는 바로 이 자신의 연기에 대한 자세를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가졌기 때문이다. 이 안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왕이 된 독한 카리스마의 이병헌을 볼 수도 있고, 그 왕을 연기하는 연기자로서의 이병헌을 볼 수도 있다. 거기에는 진지함과 코믹함이 뒤섞이고, 무거움과 가벼움이 공존한다. 이 이질적인 면들이 충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구현되었다는 것은 이병헌이라는 한 연기자의 이 작품을 통한 성취라고 여겨진다. 그리하여 <광해>는 마치 이병헌의 연기학 개론 같은 작품이 되었다.


김병만, '정글'에서도 그는 타고난 코미디언이다

'정글의 법칙'(사진출처:SBS)

'얼굴을 가리고, 마음을 숨기고.' 송골매가 부른 '탈춤'이라는 노래는 이런 가사로 시작한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부르는 이 시대의 광대, 즉 코미디언의 조건이기도 하다. 그들은 얼굴을 가리고 마음을 숨긴다. 무대 위에서 넘어지고 쓰러지고 깨지더라도 그 고통이나 심적인 흔들림을 관객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것이 드러나는 순간, 관객의 웃음은 사라지고 대신 싸한 정적이 일어날 테니까.

김병만이 '개그콘서트' 달인을 무려 4년 간이나 이어오면서 관객들에게 보여주지 않은 것은 바로 이 진짜 얼굴과 마음이다. 김병만은 늘 달인이라는 캐릭터 뒤에 서 있었다. 줄타기를 배우기 위해 명인을 찾아가고, 수없이 떨어지고 넘어지는 것을 반복했지만 그것은 모두 숨겨졌다. 대신 무대 위에서의 천연덕스럽게 줄을 타는 달인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놀라워했고, 웃었다. 때론 감동을 받기도 했다. 도대체 얼마나 노력을 하면 저 경지에 다다를 수 있는 거지?

'개그콘서트' 서수민 PD는 언젠가 사석에서 이런 얘길 한 적이 있다. 만일 달인이 노력해온 그 모습을 시청자들이 보게 된다면 필시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실제로 김병만의 연습과정을 지켜본 PD들 중 그 놀라운 노력에 눈물을 흘렸다는 이들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만큼 무대라는 일각 아래에는 우리가 보지 못한(아니 김병만이 숨겨온) 거대한 그의 살을 깎는 연습이라는 빙산이 놓여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코미디언으로서 그가 '얼굴을 가리고 마음을 숨긴' 이유는 충분히 납득이 된다.

그런 그가 정글에 갔다. 일주일 간 먹을 것도 주어지지 않고 텐트도 없이 야생에서 생존해야 한다. 악어가 출몰하고, 독사와 벌레가 득시글대며, 먹을 게 없어 뱀과 물고기를 맛있게 먹는 상황에서 그가 코미디언으로서의 자세를 유지한다는 건 실로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그는 이른바 김병만족의 일원인 리키 김, 류담, 광희를 한 가족으로 이끌어야 하는 리더가 아닌가. 그 중압감이 결코 작지 않았을 것이다.

첫 날부터 김병만과 리키 김은 의견충돌을 일으켰다. 그 역시 이 야생의 생존 리얼리티쇼에서는 얼굴이나 마음을 숨기기가 버거웠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 정도가 지난 후, 그는 조금씩 코미디언의 얼굴을 찾아갔다. 나무를 타고 올라가 그 아찔한 위에서도 달인쇼를 벌이고, 뜨거운 폭염 속에서 물장난을 치며 몸 개그를 선보인다. 물론 모든 게 드러나는 상황이지만 그 속에서도 최소한의 코미디언으로서 웃음 뒤에 자신의 모습을 감추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은 것이다.

그런 그가 갑자기 폭발했다. 류담이 코피를 흘리며 쓰러진 것 때문에 신경이 곤두선 상황에서 인터뷰를 하자는 PD에게 불만을 토로한 것이다. 급기야 김병만은 "(인터뷰를)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 그러면 포기할 겁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이유가 가슴을 찡하게 울린다. "자꾸 속 얘기를 끄집어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즉 이들은 실제로 굉장히 힘겨운 상황을 각자 버텨내고 있으며, 또 그 상황에서도 마구 힘든 내색을 드러내기 보다는 코미디언으로서의 웃음을 주기 위해 얼굴을 가리고 마음을 가리고 있었다는 얘기다.

힘겨움을 극복하고 상황을 오히려 웃음으로 전화시키려는 이 놀라운 코미디언의 노력은 그것이 '정글'이라고 해도 바뀌지 않았다. 일행을 데리고 강을 건너서 악어섬을 빠져나온 김병만이 그제야 눈물을 흘리며 "정말 힘겨웠다"고 말하는 장면은 그래서 우리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그것이 바로 늘 웃고 있고 망가지면서도 웃음을 짓고 있는 코미디언의 진짜 얼굴이기 때문이다.


'김병만 쇼'를 기대하는 이유

'달인' 김병만

김병만만큼 독보적인 개그맨이 있을까. 그는 강호동도 아니고 유재석도 아니며 이경규도 아닌 자신만의 영역을 가진 몇 안 되는 개그맨이다. 강호동이 잠정은퇴를 선언하고 난 후, 혹자들은 '포스트 강호동'으로서 그를 지목하기도 한다. 하지만 김병만이 구축하고 있는 독특한 자신만의 영역을 생각해보면 누군가의 '포스트'로 지목되는 것조차 무례로 여겨질 정도다.

김병만의 개그가 특별한 것은 그것이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쇼나 토크쇼, 심지어는 무대 개그 같은 작금의 예능 트렌드 그 어느 것에도 야합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의 개그는 말에 치중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몸으로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무대개그처럼 어떤 짜여진 틀 속에서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몸을 통해 말하는 것이고, 짜여진 틀 속에서 변주하는 것이다.

'달인'의 가치는 그 진화과정에 있다. 처음 '달인'은 콩트에 가까웠다. 즉 진짜 달인이 아니지만 달인이라고 우기는 그 상황이 웃음을 주었던 것. 하지만 '달인'은 어느 순간부터 리얼 상황 그대로가 되었다. 김병만은 실제로 줄을 탔고, 저글링을 했으며, 고난도의 덤블링을 해냈다. 이것은 무대에서 벌어지는 것이지만 리얼 버라이어티가 아니라 리얼리티쇼에 가까웠다.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가상상황을 뛰어넘은 것이고, 무대 개그의 무대를 뛰어넘은 것이다. 그렇게 달인이라고 우기던 자가 진짜 달인으로 돌아오자 대중들은 그 놀라운 장면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지금은 이 '가짜와 진짜' 달인을 오가면서 웃음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최근 예능에서 그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개그의 영역이다.

굳이 김병만이 하고 있는 개그의 원류를 찾아가자면 분명 거기에는 수많은 선대 광대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찰리 채플린식의 슬랙스틱 코미디는 김병만의 기본기다. 그가 '키스 앤 크라이'에서 채플린을 완벽히 소화해낸 것은 그의 개그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그 채플린이 다름 아닌 피겨스케이팅이라는 고난도의 기술 위에서 펼쳐진 것이란 점은 김병만 개그의 원류를 좀 더 전통적인 연희에서 찾게 만든다.

서커스에서 묘기를 보이면서도 웃음을 만들어내는 광대들이나, 기예를 바탕으로 한 바탕 볼거리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순간적인 해학을 만들어내는 우리네 남사당패들이 그들이다. 팽팽한 줄 위에서 아슬아슬한 기예를 선보이며 동시에 줄 아래 있는 매호씨와 우스갯소리를 통해 웃음을 주는 줄광대는 김병만 개그의 원류에 가깝다. 실제상황이고 한계를 뛰어넘는 기술이 있으며, 그 위험한 상황을 웃음을 전화시키는 개그가 있다. 김병만은 이제는 맥이 끊겨버린(적어도 대중매체에서는) 이 전통적이면서 원형적인 연희 속 광대를 우리네 예능 속에 되살린 전무후무한 개그맨이다.

따라서 김병만을 기존 예능 프로그램의 틀에 끼워 맞춰 그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무모하고 무익한 일이다. 김병만이 누군가의 포스트로 지목되는 것도 어색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다. 차라리 김병만은 자신만의 쇼를 해야 되는 위치에 서 있다. 그래야 제 가치가 나올 수 있는 인물다. 지금껏 무대개그나 몇몇 사라진 콩트 프로그램이 그의 가치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것은 그 틀이 김병만에게는 너무나 작았기 때문이다(달인은 이미 무대개그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키스 앤 크라이' 또한 김병만의 가능성을 더 많이 보여줬지만 이 또한 작은 틀이기는 마찬가지다. 그에게는 그의 가능성을 제대로 보여줄 그만의 틀이 필요하다.

김병만은 이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자신만의 개그를 개척해낸 인물이다. 그것은 강호동도 할 수 없는 일이고, 유재석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오로지 김병만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이 독보적인 재능을 받쳐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만일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을 끄집어낼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이 나온다면, 그것은 어쩌면 이제는 볼 수 없는 과거의 연희를 현대적으로 계승한 어떤 것이면서, 동시에 우리네 예능사에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할 어떤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김병만 쇼'를 기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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