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립군’, 왕과 백성은 어떻게 소통하고 성장하는가

‘남을 대신해 군역을 하는 사람’을 뜻하는 <대립군>이라는 제목은 두 가지 의미가 담겨져 있다. 그렇게 누군가의 허깨비가 되어 오로지 살아남아야 그 존재가 의미를 갖는 ‘대립질’을 하는 민초들을 뜻하기도 하지만, 임진왜란 시절 선조의 분조에 의해 반쪽짜리 왕으로 추대된 광해를 뜻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군’은 군대를 뜻하기도 하지만 임금을 뜻할 수도 있는 것이니 말이다. 

사진출처:영화<대립군>

영화 <대립군>은 그래서 임진왜란이라는 절체절명의 국가위기 상황을 전제하고, 그 안에 왕과 백성이라는 두 존재를 ‘대립군’이라는 하나의 틀로 묶어낸다. 애초에 왕이 되고 싶지 않았던 유약한 왕 광해는 대립군과 함께 하는 여정을 통해 조금씩 백성들의 고단함이 무엇인지 또 그들이 원하는 왕이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를 깨달아간다. 

백성을 대표하는 인물은 대립군의 수장 토우(이정재)다. 그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광해를 절벽 끝에 세우는 인물이다. 그는 용감하게 적과 맞설 수 있는 그 힘은 바로 그 절벽 끝에 서있어 갖게 되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광해에게 말한다. 편안한 삶을 살아왔을 광해는 이 대립군과 함께 지내는 절벽 끝의 시간들을 통해 점점 왕으로서의 자신을 세워나간다. 

자신을 죽이려는 조정의 세력들과 또 왜군들에게도 추격당하며 굶주림 속에 산속을 헤매던 광해가 일단의 백성의 무리들을 만나는 장면은 드디어 왕과 백성이 제대로 마주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백성들로부터 식량을 빼앗으려는 신하들을 광해는 제지하고, 그래서 백성들이 밥을 지어 왕과 나누자 광해는 자신이 그들에게 해줄 게 잠시간의 고단함을 풀어줄 춤사위밖에 없다며 춤을 춘다. 백성 앞에서 춤을 추는 왕. 그렇게 한껏 자신을 낮추는 순간, 백성들은 저절로 고개를 숙인다. 

왕이 제대로 된 왕으로 서게 되고, 또 백성이 백성의 자리를 찾아가는 그 과정은 또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대신하는 삶을 살아온 광해와 대립군이 절벽을 뒤로 한 작은 성에서 결사항전을 하며 그들은 그 전쟁이 이제 누군가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위한 사투라는 걸 확인한다. 광해는 그 결사항전을 거쳐 스스로를 왕이라고 자인하게 되고, 대립군들은 비로소 자신의 이름으로서 당당히 서게 된다. 

<대립군>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 이야기가 작년부터 현재까지 우리가 겪고 있는 정국과 맞물려 묘한 여운을 남기기 때문이다.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를 접하고 대통령 탄핵과 새로운 대통령을 세우는 그 과정을 온전히 해낸 건 다름 아닌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갔던 국민들이 아닌가. 문재인 대통령이 ‘운명’이라고 말하며 그 힘겨운 여정을 통해 대통령이 된 과정에는 항상 함께하는 국민들이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며 국가의 위기상황에 힘을 모으고 그럼으로써 대통령과 국민이 스스로 자신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 역할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아가는 과정은 그래서 저 영화 <대립군>의 광해와 대립군 사이의 소통과 성장을 닮았다. 

<대립군>은 물론 스펙터클한 전투 장면들이 있지만 그런 액션 장르를 추구하는 영화는 아니다. 대신 왕과 백성의 소통을 통한 성장과정을 그들이 겪는 혹독한 전쟁을 통해 담아낸다. 그래서 속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보여주기보다는 한번쯤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주는 영화다. 특히 지금의 정국을 영화 속 상황과 견주어보면 더더욱 큰 울림을 주는.

<징비록>, 선조에 실망할수록 광해를 희망하게 되는 까닭

 

세상에 이런 통치자가 있을까. KBS <징비록>의 선조(김태우)는 임진왜란의 전란 통에 도성을 버리고 개성으로, 또 개성을 버리고 평양으로, 심지어는 평양마저 버리고 의주로 도주했다. 그것도 모자라 명나라로의 망명을 시도하려는 선조는 명나라 황제가 관전보(여진족과의 국경지대)의 빈 관아를 빌려주겠다는 굴욕적인 이야기까지 들어야 했다.

 

'징비록(사진출처:KBS)'

자기 안위만을 위해 도망치며 절치부심운운 변명만 늘어놓는 선조에게 가까운 신하들조차 등을 돌렸다. 명나라 망명에 극렬하게 신하들이 반대하자 선조는 급기야 광해군(노영학)에게 조정을 맡기고 떠나는 분조(조정을 둘로 나눔)를 단행한다. 이런 선조에게 류성룡(김상중)필부처럼 행동 한다며 강한 어조로 비판을 하기도 했다.

 

선조의 행동은 백성들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명나라 황제가 위로조로 보내온 은자를 신하들에게 포상으로 내리자 오히려 신하들은 이를 거부했다. 그 포상은 왕과 함께 도주하고 있는 자신들이 아니라 왜군과 싸우고 있는 병사들에게 가야 하는 것이고 전쟁으로 피폐해진 백성들의 구휼을 위해 사용되어져야 한다는 걸 선조는 잘 알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그 전쟁과 기아로 고통 받는 백성들이 관아를 털어 군량미를 탈취하자 그들을 회유해 그 죄를 사해주는 대신 군량미를 회수한 류성룡의 처사에 선조는 발끈하는 모습이었다. 관아를 턴 백성들이 왜 그랬는가를 생각하기보다는 그들의 죄를 처벌하지 않은 류성룡의 처사와 이를 허한 광해군의 결정을 못마땅하게 여긴 것.

 

자신이 해야 할 소임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도 왕으로서의 존중을 받으려는 통치자. 도대체 그 누가 이런 통치자에게 지지를 표할 것이며, 존경을 표할 것인가. 게다가 선조는 백성들의 마음이 점점 광해군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사실을 불안해하며 분조를 거두고 자신이 국사를 맡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신하들의 극렬한 반대로 무산되었지만 이런 행동은 이미 광해군을 중심으로 민심이 모여 국난 극복의 힘으로 작용하고 있는 터에 찬물을 뿌리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선조를 보면 왜 임진왜란이라는 비극적인 일이 발생하게 됐는가 하는 이유가 명백해진다. 백성들을 돌보지 않고 제 안위만을 살피는 통치자가 위에서 군림하는 한 그 국가가 온전할 리가 만무다. 심지어 평시에 그를 따르던 신하들조차 등을 돌리게 되는 것은 전시에 그 통치자의 진면목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선조의 무능을 넘어선 무개념은 새롭게 등장한 광해군의 행보를 하나의 희망으로 보이게 만든다. 그는 도망치기 보다는 적진으로 뛰어들어 적진을 혼란시키고 관군을 독려하는 길을 선택하려 한다. 그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류성룡의 마음은 아마도 당대의 백성들의 마음이자 지금 현재 이 사극을 바라보고 있는 시청자들의 마음 그대로였을 것이다.

 

MBC 사극 <화정>은 바로 그 선조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 죽어가는 선조 앞에서 광해는 절규한다. “결국 이렇게 될 거면서...” 자신을 인정하지 않은 선조에 대한 깊은 원망을 광해는 드러낸다. 역사는 광해를 이라는 호칭을 붙여 폭군으로 기록하지만 <징비록>을 통해 선조의 행위를 보다 보면 광해의 깊은 고통이 이해가 된다. 나라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했을 때 선조는 도대체 무얼 했단 말인가. 그러면서 그 위기에 맞섰던 광해를 내치려 한다는 건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다.

 

<징비록><화정>이 기묘하게도 선조에서 광해군에 이르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그 이야기에 지금의 대중들이 호응하고 있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들이 이 두 사극을 통해 많은 것들을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선조에 대해 실망할수록 광해에 대한 지지의 마음이 커져가는 건 그래서 당대의 백성이나 지금의 시청자들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화정>이 흥미로워지는 지점, 욕망하는 존재들

 

차승원이 연기하는 광해군은 무엇이 다를까. MBC 월화 사극 <화정>이 다루고 있는 광해는 최근 들어 수차례 사극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정도로 재평가됐다. 역사에서 광해군은 사후에 이 붙여졌고 죽었을 때 붙는 묘호도 갖지 못한 왕이다. 하지만 역사는 시대에 따라 다른 시각으로 해석되기 마련이다. 최근 다뤄지는 광해군은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훨씬 더 부각되는 면이 있다.

 

'화정(사진출처:MBC)'

<화정>의 광해군이 여타의 사극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그가 일면으로 그려지기보다는 다양한 입장에서 다양한 감정들이 뒤섞인 존재로서 그려진다는 점이다. <화정>에서 광해군은 어린 정명공주(허정은)에게 둘만 있는 자리에서는 세자저하가 아니라 오라버니라 부르라고 말할 정도로 자애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어린 공주 앞에서 한없이 자애로운 눈빛을 보내는 광해군은 아버지 선조(박영규)가 죽어가는 자리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독을 마시고 목이 타는 듯 물을 달라고 애원하는 선조에게 이를 거부하며 그는 외친다. “결국엔 이렇게 될 것을, 어찌 그토록 소자를 미워하셨습니까. 나는 전하와 다른 임금이 될 것입니다. 이제 이 나라의 왕은 접니다. 아버지.” 즉 공주와 사적인 자리에서 보여준 광해군의 모습은 일면에 불과하다는 것. 그는 죽어가는 선조 앞에서 자신의 야망을 드러낸다.

 

광해군의 이런 모습은 <화정>이 인물들을 다루는 방식이다. <화정>은 형제와 남매로 엮어진 사적인 관계에서의 모습과 정적이 될 수밖에 없는 공적인 관계에서의 모습이 공존하는 인물을 그려내고 있다. 광해군과 그의 형인 임해군(최종환)의 관계가 그렇다. 임해군은 광해군을 돕는 인물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그가 영창대군(전진서)을 제거하려 해 오히려 그 어머니인 인목대비(신은정)의 숨겨진 생존본능을 건드렸다는 것 때문에 광해군에 의해 내쳐진다.

 

임해군은 결국 역모로 붙잡히게 되지만 그를 믿어준 광해군 때문에 명나라 사신단 앞에 나서 정신이 온전치 못한 모습을 일부러 보여준다. 장자인 자신이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 광해군의 즉위의 정당성을 만들어주려 한 것. 이를 고맙게 여긴 광해군이 사적으로 임해군을 찾아가 자신도 그가 역심을 품었다 생각한 걸 미안하다고 말하자, 의외로 임해군은 그것이 사실이었다는 걸 털어놓는다.

 

부왕의 장자는 나였으니까. 그 자리는 원래 내 것이 아니었더냐. 그래서 나는 네가 보위에 오르면 날 세제로 삼을 줄 알았다. 당연히 다음 자리는 나였을 터. 날 그렇게 내칠 줄은 몰랐다.” 형제로서 눈물을 흘리던 임해군 역시 그 왕좌에 대한 욕망을 품고 있었다는 것. 광해군은 이 사실을 알고는 충격에 빠진다. 즉 제 아무리 형제라 하더라도 왕좌라는 욕망 앞에서 적이 되어버리는 현실을 깨닫게 되는 것.

 

광해군은 역사를 통해 알고 있듯이 임해군, 능창군, 영창대군과 그의 세력들까지 냉혹하게 처리한 인물이다. 그래서 훗날 폭군으로 기록된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화정>은 광해군을 그리면서 그가 왜 그렇게 냉혹해질 수밖에 없었는가를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욕망으로 다루고 있다. 왕좌를 놓고 벌어지는 제거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그 용상에 오르려는 욕망의 분출은 그래서 사적인 관계의 살가움과는 사뭇 다른 광해군의 모습을 그려낼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모두 욕망하는 존재입니다. 더구나 용상은 욕망의 끝 이제 곧 지난 16년의 시간보다 더한 것을 아시게 되겠지요. 인간의 다짐이란 허망하고 누구도 믿을 수 없단 것을. 왕좌는 뜨거운 불처럼 강하고 아름답지만 전하를 삼킬 수도 있다는 걸요.” 광해군의 책사 역할인 김개시(김여진)의 이 말은 <화정>이라는 사극이 흥미롭게 다가오는 지점이다. 이 사극이 드러낼 각각의 인물들의 욕망이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지 기대된다.

 

 

대선과 올해의 대중문화 콘텐츠들

 

대선이 있는 해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을 지도 모르겠다. 대중문화 자체가 본래 대중들의 정서와 염원을 담기 마련이지만 올해는 특히 더 그랬던 것 같다. 이미 대선은 끝났고 그 결과도 나왔지만, 그 결과만큼 중요한 것이 그 과정이 담고 있었던 대중들의 염원일 게다. 올해의 어떤 작품들이 대중들의 어떤 정서를 담아내고 있었을까.

 

'추적자'(사진출처:SBS)

올 전체 드라마 중 가장 돋보였던 작품으로 지목받는 것은 단연 <추적자>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작품이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국민드라마’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이것은 과거 시청률 몇 프로를 넘었을 때 붙이던 그런 호칭이 아니라, 국민들의 열망을 담아냈다는 의미의 호칭이었다. <추적자>가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이번 대선에서도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되었던 양극화의 문제라든가, 사회 정의의 문제를 정면에서 다뤘다는 점이다.

 

백홍석(손현주)이라는 서민 가장을 대변하는 인물과 강동윤(김상중), 서회장(박근형) 같은 이른바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인물들의 대결구도가 양극화에 허덕이는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흥미로운 건 드라마 말미에 절정 부분에 들어간 내용이 대선이었다는 점이다. 작가의 염원이 들어간 것일 게다. 투표로서 세상을 바꾸고픈 대중들의 의지를.

 

영화에서 대중들이 소망하는 리더십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은 <광해>일 것이다. 올해 1천2백만여 관객이 이 영화를 봤다. 늘 대선에 즈음해 리더십을 다루는 작품이 주목을 끌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광해>는 기존 왕의 리더십을 다루던 사극에서 한 차원 더 나아간다. 백성을 살피는 성군을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백성 중 하나가 그 왕 역할을 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것은 다분히 SNS로 대변되는 대중정치 시대의 달라진 대중정서를 반영하고 있다.

 

즉 왕이나 정치인보다 더 뛰어난 일개 광대를 왕의 대리 역할로 세움으로써 정치란 그렇게 복잡한 역학관계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인 것을 행하는 것이란 걸 잘 보여주었다. 이것은 지금 대중들이 정치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상식적으로 이해가지 않는 정치적 행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광해>가 대중들을 통쾌하게 했던 것은 바로 그 명쾌한 상식(일개 광대도 알고 있는)을 행하는 것만으로도 성군이 되는 정치의 세계를 목도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현재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중에서 가장 청춘들의 문제를 잘 반영하고 있는 작품은 <마의>일 것이다. 겉으로 보면 출생의 비밀을 안고 마의로 자라난 백광현(조승우)이 인의가 되어가는 성장담을 그린 전형적인 퓨전사극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담겨진 메시지는 지금 현재의 청춘들과 맞닿아 있다. 출생에 의해 모든 게 결정되는 조선사회는 우리가 현재 당면하고 있는 청년실업 문제나 스펙사회를 그대로 그려내고 있다.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정치하는 자들의 끝없는 모략과 편견에 의해 궁지에 몰리게 되는 백광현이 그 장애물들을 하나 하나 넘어가며 성장하는 모습은 아마도 작금의 청춘들에게는 대단히 매력적인 판타지가 될 것이다. 스펙을 넘어서 오로지 실력으로 인정받는 일련의 과정들은 어쩌면 그런 기회조차 잘 주어지지 않고 있는 작금의 청춘들에게는 부러운 일이 될 수도 있다. 어쨌든 이 잘못된 구조에 대한 비판의식을 기저에 깔고 있는 것이 바로 <마의>다.

 

한편 이정희 전 대선후보가 대선토론에서 언급해 화제를 모았던 <청담동 앨리스>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많은 아파트 중에서 내가 살 수 있는 아파트는 없다.” 그녀가 언급한 극중 이 대사는 역시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양극화를 담고 있다. 이 드라마는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청담동이라는 ‘이상한 나라’에 들어와 자신이 태생부터 결정되어버린 가진 것으로는 도무지 넘어설 수 없고 또 이해할 수도 없는 그 세계를 경험 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결국 이 많은 대중문화 콘텐츠들이 담고 있는 이야기들은 현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핵심들을 건드리고 있다. 아마도 이 각박한 현실 속에서 어디 위로받을 곳 하나 없는 대중들은 값싼 대중문화를 통해 잠시 동안의 위안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대선의 결과가 나왔다. 누가 당선이 되었고 당선되지 못했다고 해도 이 대중들의 소망이나 염원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모쪼록 이 소망들이 실현되는 세상이 오기를.

낯 뜨겁고 부끄러운 <광해> 대종상 몰아주기

 

누가 보면 올해 한국영화가 <광해, 왕이 된 남자(이하 광해)>밖에 없었다고 오해받을 만한 몰아주기였다. 무려 15관왕. 제49회 <대종상>에서 <광해>는 최우수작품상, 남우주연상, 감독상, 남우조연상, 인기상, 조명상, 편집상, 기획상, 시나리오상, 의상상, 미술상, 음악상, 음향기술상, 촬영상, 영상기술상 총 15개 부문을 휩쓸었다.

 

사진출처: 영화 <광해>

반면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는 여우주연상과 심사위원상 두 부문을 수상하는데 그쳤고, 올 여름 최고 흥행을 거둔 <도둑들> 역시 여우조연상 한 개 부문을 수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정통 멜로 영화로서 화제를 모았던 <건축학개론>이나 저예산 영화지만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던 <부러진 화살>, 영화로서 현실을 변화시키는 힘을 발휘했던 <도가니>, 또 굵직한 연기로 화제를 모았던 <범죄와의 전쟁>은 아무런 상도 받지 못했다. 비평가들과 관객들에게 모두 호평을 받았던 홍상수 감독의 <다른 나라에서>도 상을 받지 못했고 <은교>는 신인여우상 한 개 부문에 그쳤다.

 

올해만큼 한국영화가 풍성했던 적도 없었지만 제49회 대종상 시상식은 <광해>에 상이 집중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올 한해의 한국영화를 앙상하게 만들었다. 물론 나눠 먹기식 시상 역시 문제가 될 수밖에 없지만, 15개 부문을 싹쓸이 한 <광해>는 몰아줘도 너무 몰아준 인상을 지웠다. 결과적으로 이런 시상은 진행자도 시상자도 또 당사자인 수상자에게도 불편함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진행자인 신현준은 “그야말로 <광해>의 날”이라고 시상자로 나선 원로영화인 역시 “속된 말로 <광해> 싹쓸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김기덕 심사위원장(김기덕 감독과 동명이인)은 “특정작품에 쏠리는 것에 대한 오해가 있을 것 같다. 기존에는 모든 작품을 모두 심사를 하고 비교 평가를 했으나 올해는 한 작품 실사가 끝날 때마다 평점을 기입해서 봉합하고 은행 금고에 넣어두었다. 심사위원장인 저조차 이렇게 결과가 나올지 몰랐다. 집계를 안해서 어떤 작품이 어떤 부문의 수상작인지 짐작을 할 수 없었다. 이해를 바란다"고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또 최다 수상의 영광을 안게 된 <광해>의 제작사인 리얼라이즈픽쳐스 원동연 대표 역시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최우수작품상을 받는 무대에서 그는 "오늘 너무 기쁜데 많은 영화 동료들에게 미안한 감정도 있다. 이렇게 많은 상을 받을지 몰랐는데 죄송하단 말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수상자가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말을 해야 하는 시상식. 결과적으로 15개 부문을 수상한 <광해>는 지나친 마케팅으로 논란을 겪은데 이어 과도한 몰아주기식 수상으로 또 논란의 도마 위에 서게 됐다.

 

<광해>는 작품으로만 보면 꽤 괜찮은 완성도를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광해>는 영화 외적인 부분들 때문에 끊임없이 논란을 일으켜왔다. 그냥 내버려두었다면 입소문으로 충분히 좋은 성적과 평가를 거두었을 영화가 너무 과한 홍보 마케팅으로 오히려 논란을 겪게 된 것에 이어, 이번 대종상에서의 싹쓸이 수상으로 또 작품에 흠집을 만들게 됐다.

 

영화인 전체의 축제가 되어야할 영화상을 마치 독식하는 듯한 인상을 지운 주역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올 한 해 한국영화의 풍성함을 보여주지는 못할망정, 그것을 앙상하게 만들어버린 대종상은 결과적으로 그 누구에게도 결코 기분 좋은 시상식이 되지 못했다. 이제 50년이 다 되어가는 국내의 영화상으로서 부끄럽고 낯 뜨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광대는 어떻게 대중들을 대변했나

 

이병헌 주연의 영화 <광해>는 자꾸만 ‘광대’로 읽힌다. 그 영화 속 주인공이 다름 아닌 기방에서 왕 흉내 내며 웃음을 주는 대가로 살아가는 광대다. 그 광대가 광해를 대신한다. 처음엔 연기였는데 하다 보니 점점 왕의 역할을 제대로 해나가기 시작한다. 광대가 광해가 되어 광해보다 더 민초들을 생각하는 정치를 하게 되는 이야기. 1천만 관객 돌파에 스크린 독점과 지나친 마케팅이 일조한 것이 사실이지만 <광해>의 흥행에는 바로 이 ‘광대’라는 위치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다.

 

'강남스타일'과 '광해'(사진출처:YG엔테테인먼트, 영화 광해)

지금으로 치면 연예인에 해당할 것이다. 대중들에게 값싼 대중문화를 통해 심지어 희망까지 주는 존재. 청소년들 세 명 중 한 명이 희망하는 직업. 물론 그만큼 치러야할 대가도 만만치 않지만 대중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대변하는 그런 사람들. 영화 <광해> 속 하선(이병헌)은 분명 작금의 연예인을 빼닮았다.

 

요즘 연예인들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고 그런 발언이 대중들의 귀에 쏙쏙 들어온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러고 보니 영화 속 하선이 던지는 “그대들이 죽고 못 사는 사대의 명분보다 내 나라, 내 백성이 열 갑절 백 갑절은 더 소중하오!”라는 대사는 SNS 시대에 때론 소셜테이너들이 던지기도 하는 속 시원한 한 줄 촌철살인 그대로다. <광해>는 여러모로 광대로 읽힌다.

 

또 한 명의 광대가 있다. 이 시대를 온통 말춤으로 들썩거리게 만든. 바로 싸이다. 광대나 딴따라라는 표현은 어딘지 비하적인 뉘앙스가 있어 많은 연예인들이 피해왔던 것이 사실이지만, 싸이는 아예 자신이 광대임을 드러냈다. “내 직업은 광대, 떴다고 모범적으로 살지 않겠다.” 싸이의 이 발언은 아예 광대의 본분과 철학을 담고 있다.

 

월드스타니 한류스타, 혹은 국민가수(?) 같은 호칭을 거부하고 국제가수라는 애매한 명칭을 스스로 부여한 것에도 광대의 철학이 묻어난다. 국제가수라는 명칭에는 국가나 민족이라는 뉘앙스가 없다. 그저 해외에도 활동하는 가수라는 의미만 있을 뿐. 광대는 국가나 민족의 부름에 구획되어 모범적으로 억지로 살고 싶지 않았던 거다. 저 하선이 저잣거리에서 왕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웃음거리로 만들며 살아가듯이. 저 하던 대로 그대로.

 

사실 ‘강남스타일’이 미국에서 빵 터지기 전까지 국내에서 싸이에 대한 관심은 그냥 그랬다. 국가가 관심을 가졌던 적도 없다. ‘라잇나우’ 같은 곡에 19금 딱지를 붙이는 것이 국가가 가진 관심의 표현(?)이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비롯되어 전 세계로 싸이에 대한 관심이 번져나가자 상황은 역전되었다.

 

시청 앞 광장이 월드컵을 재연하고, ‘라잇나우’는 19금 딱지를 떼었으며 심지어 국가는 싸이에게 훈장을 부여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해외에 그만큼 우리나라를 알렸으니 훈장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가 대중문화를 이끌어가는 이 시대의 광대들을 위해 해주는 것이 고작 결과를 만들어낸 자들을 공치사 하는 일 밖에 없는가 하는 의구심은 있다. 이것은 싸이의 공을 치하하는 것인가 아니면 싸이에게 훈장을 줌으로써 정부도 한 일이 있다는 식의 또 다른 숟가락 얹기인가.

 

사실 정치인들보다 더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이 시대의 광대, 연예인들이다. 하지만 지금껏 연예인들은 정치적인 상황에 이용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문제는 시대가 바뀌었다는 거다. 정치가 대중문화에 종사하는 연예인들을 딴따라 취급하며 저 발톱의 때처럼 바라보던 시대가 가고, 이제는 대중문화가 정치적인 힘을 발휘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올해 대선에서 3강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가 모두 <힐링캠프>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제 정치인들은 어떻게 하면 대중문화라는 말 등 위에 올라탈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저마다 말 춤을 추며 광대 싸이를 코스프레 하고 있다. 이것이 대중의 시대의 새로운 정치 스타일이다.

 

<광해>가 광대로 읽히고, 싸이가 스스로를 광대로 내세우게 된 건 대중문화가 이제 우리네 정치적 입장까지를 대변해주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러니 제발 대중문화나 광대를 우습게 보지 말라. 선거 때 반짝 광대 흉내 내고는 막상 정치권에 들어가면 언제 그랬냐 싶게 저 <광해>의 신하들처럼 저들 이익에만 휘둘리면서, 대중문화의 토대와 저변을 마련해주기 보다는 뜬 대중문화에 서둘러 숟가락이나 얹는 그런 짓은 하지 말라. 저 왕을 연기한 광대가 대중들의 입을 빌려 한 그 준엄한 꾸짖음을 잊지 말라.

표절시비부터 강제 천만 영화 만들기 논란까지

 

영화 <광해>가 31일 만에 9백만 관객을 돌파함으로써 천만 관객 동원 초읽기에 들어갔다. 최근 몇 년 동안 영화에서 그다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던 CJ E&M이 추석 시즌을 목표로 야심차게 준비한 작품이라는 말이 허언이 아닌 것이 되었다. 마치 예상한 시나리오대로의 흥행 성적을 보이고 있는 <광해>. 하지만 여기에 대해 대중들의 반응은 시큰둥한 편이다. 국내에서 천만 관객 영화라면 사실상 신드롬에 해당한다고 봐야 할 텐데, 어째서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걸까.

 

사진출처: 영화 '광해'

그 발목을 잡고 있는 첫 번째는 표절 시비다. <광해>는 할리우드 영화 <데이브>를 표절했다는 논란을 받아왔다. 동아일보는 <광해>와 <데이브>의 18가지 유사점을 조목조목 짚어낸 기사를 내기도 했다. 그 내용들을 보면 대통령 대신 왕이, 대역 직장인 대신 대역 만담꾼이, 비서실장 대신 도승지 허균이, 대통령 부인 대신 중전이, 각료들 대신 신하들이, 흑인 어린이 대신 어린 나인이, 경호원 대신 호위무사가... 등등. 대구를 이루는 것들이 너무 많을 정도로 유사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데이브>를 보지 않은 관객이라면 <광해>가 꽤 괜찮은 작품이라 여길 만하다. 스토리도 탄탄하고 이병헌의 1인2역도 단단한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왕이라는 항상 서민들의 판타지가 투영되기 마련인 존재의 이야기를 왕이 된 평범한 민초의 시각으로 풀어내기 때문에 공감대가 더 클 수밖에 없다. 이것은 대선을 앞두고 있는 올해 같은 상황을 두고 보면 기획적으로도 적절했다 여겨진다. 하지만 <데이브>와의 유사성을 느끼는 관객이라면 이 괜찮은 완성도가 오히려 너무 심했다고 생각될 수 있다. 표절을 했건 안했건 영화로서 너무 비슷한 것만은 사실이니까.

 

여기에 천 만 관객을 끌어 모으기 위한 각종 마케팅과 스크린 독과점의 문제까지 겹쳐지면 <광해>에 대한 대중들의 정서를 가늠할 수 있다. 자사 계열 배급사의 영화에 멀티플렉스 상영관이 스크린 수 밀어주기를 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 들어 특히 그 불공정성이 노골화되는 양상이다. <광해>는 개봉일에 상영관 689개를 확보하며 시작했지만 반달 만에 1000개가 넘는 상영관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는 무료 26%가 넘는 스크린 수 점유율이다. 이 정도면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볼 게 없어 <광해>를 본다는 볼멘소리가 이해될 법 하다.

 

또한 <광해>의 관객 수가 마케팅에 의해 강제로 만들어진 허수라는 논란도 있다. <광해>는 CGV에서 이른바 ‘1+1’이라는 한 명이 보면 다른 한 명은 공짜 이벤트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되면 관객 수의 수치는 천 만을 넘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진짜 유효 관객 수라고 할 수 있는 근거가 애매해진다. 결국 천 만 관객 마케팅을 위해 그 수치를 강제로 뽑아내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고 있다는 얘기다.

 

<광해>는 콘텐츠적으로 괜찮은 완성도를 가진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작품의 표절 시비나 배급과 마케팅 문제에 있어서 꽤 시끄러운 잡음을 내고 있는 영화인 것도 분명하다. 소급해서 생각해보면 <도둑들>이 올 여름 최고의 기록을 낸 데도 결국 대형 배급사의 마케팅 수완이 한몫을 했을 거라는 심증이 짙다. 이제 천 만 관객도 마케팅으로 만들어내는 시대가 된 것일까. 또 그렇게 영화가 작품보다는 상품에 더 골몰하는 처지가 된 것일까. 거대 자본이 만들어내는 이러한 그림자는 국내 영화 산업 전체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

<광해>, 이병헌의 연기학 개론

 

왕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것일까. 아니면 자리가 만들어내는 것일까. 영화 <광해>가 던지는 질문이다. 왕을 연기하던 광대 하선(이병헌)은 그 얼굴이 똑같다는 이유로 광해(이병헌)에게 불려가게 되고 왕을 연기하게 된다. 그러다 어느 날 광해가 중독으로 쓰러지게 되자 허균(류승룡)은 하선을 당분간 왕의 자리에 앉히게 된다. 흥미로운 건 하선이 그 왕의 자리에 앉게 되면서 점점 왕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사진출처:영화 <광해>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는 말은 아마도 <광해>가 가진 뭉클한 정치적 지점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일 것이다. 광해는 왕의 자리에 앉아 그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폭군의 면모를 보이지만, 그저 저잣거리에서 살아가던 민초 하선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 그는 지극히 상식적이다. 외척세력을 문제 삼아 중전을 폐하려는 신하들의 청 앞에 그는 조강지처를 내치는 남편이 어디 있느냐며 호통을 치고, 대동법 시행에 반대하는 신하들에게 땅 더 가진 자가 더 세금을 내는 게 뭐가 잘못됐냐고 말한다.

 

이것은 왕이 백성을 생각하는 차원이 아니라, 아예 민초인 자가 왕의 입을 빌려 하는 말이다. 이것은 <광해>라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가 대선을 앞두고 있는 2012년에도 울림을 갖는 이유다. 국민을 호명하는 정치인들은 많아도, 진짜 국민이 무엇을 바라는 지 그 목소리를 내는 정치인은 보기 힘든 현실. 이것이 어쩌면 <광해>에서 광해를 연기하는 하선이라는 존재가 지극히 비현실적이면서도 영화라는 장막을 통해 기꺼이 현실적으로 믿게 되는(믿고 싶은)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이 왕이 타고난 왕이 아니라, 왕을 연기하는 하선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병헌은 왕을 연기하는 하선을 연기한 셈이다. 연기론으로 보면 연기는 연기를 흉내 내는 게 아니고 그 캐릭터 자체가 되는 일이다. 하선이 왕 연기를 하다가 점차 광해와 동화되어가는 과정은 바로 이 진정한 연기가 구현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게다가 하선은 직업이 광대다). <광해>는 따라서 한 연기자(하선이라는 광대)의 연기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병헌으로서는 이 지점이 굉장히 매력적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결국 연기라는 것이 흉내 내기가 아니고, 자신 속에 있는 또 다른 나를 끄집어내 그 캐릭터에 동화시키는 것이라는 걸 이 영화 속 인물인 하선과 그를 연기하는 이병헌이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진짜로 왕이 될 것인가 아니면 다시 광대로 돌아갈 것인가 하는 선택의 순간은 중요해진다. 이것은 연기자가 캐릭터에 몰입되어 있다가도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는(그래야 연기자로서 살아갈 수 있다. 광인이 아니라) 그 과정을 보여준다. 이병헌은 아마도 <광해>를 연기하면서 어느 순간에는 진짜 왕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다시 광대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지만.

 

<광해>에서의 이병헌이 그 어떤 다른 작품에서의 이병헌보다 돋보이는 이유는 바로 이 자신의 연기에 대한 자세를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가졌기 때문이다. 이 안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왕이 된 독한 카리스마의 이병헌을 볼 수도 있고, 그 왕을 연기하는 연기자로서의 이병헌을 볼 수도 있다. 거기에는 진지함과 코믹함이 뒤섞이고, 무거움과 가벼움이 공존한다. 이 이질적인 면들이 충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구현되었다는 것은 이병헌이라는 한 연기자의 이 작품을 통한 성취라고 여겨진다. 그리하여 <광해>는 마치 이병헌의 연기학 개론 같은 작품이 되었다.

<괴물>과 싸우던 김기덕, 이번엔 <도둑들>


김기덕 감독의 스크린 독점과의 싸움은 오래되었다. 2006년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1천만 관객을 단 21일 만에 돌파하는 괴력을 발휘했을 때, 그는 <100분 토론>에 토론자로 나와 이 성공 이면에 놓인 스크린 독점의 문제를 성토했다. 실제로 당시 전국 1400여 개의 상영관 중 <괴물>은 무려 620여개 상영관을 싹쓸이했었다.


사진출처: '피에타'

물론 영화는 완성도도 높고 작품성도 뛰어났지만(김기덕 감독 스스로도 <괴물>은 훌륭한 영화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스크린 독과점은 반칙이라는 거였다. 그도 그럴 것이 <괴물>과 김기덕 감독의 작품 <활>을 비교해보면 그가 얼마나 자신의 영화를 틀어주지 않는 현실에 통탄했던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괴물>이 620여개 상영관에서 1천만 관객의 기록을 깰 때, <활>은 고작 한 개의 상영관에서 1398명의 관객을 맞이했으니.


6년여가 흐른 지금 기막히게도 이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번에는 바로 그 <괴물>이 냈던 관객 수 최다기록인 1301만 명의 기록을 깨겠다고 나선 <도둑들>이다. 이미 몇 만 명만 넘기면 기록을 깨는 상황이다. 그래서인지 한 차례 흥행의 파도가 지나간 시점이지만 여전히 이 영화는 일일 상영회수가 1000여회 이상이다.


김기덕 감독은 기자회견을 통해서 “<피에타>가 해외에서 대단한 일을 하고 돌아왔지만 막상 상영관이 없어 관객들이 영화를 못보고 있다. 스크린수가 많아 보이는데 교차상영이라 상영횟수가 적은 편”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또 “<피에타>가 교차상영되고 있는 현실에 어떤 영화는 기록을 깨기 위해 여전히 스크린을 장악하고 있다. 그게 말 그대로 ‘도둑’이 아닌가”라며 현재 최고관객기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도둑들>의 스크린독과점을 꼬집기도 했다.


이런 비판과 여론 때문인지 <피에타>는 애초 100여개로 시작한 스크린 수가 12일 현재 288개까지 늘어난 상황이다. 좌석점유율도 40-60%에 달하고 있어 스크린 수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도둑들> 이후의 복병으로 <광해>가 스크린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개봉 첫날 17만 명에 달하는 관객몰이를 성공한 이 영화는 스크린 수가 무려 688개관이나 된다. 한동안 줄줄이 흥행에 실패했던 CJ엔터테인먼트가 투자배급사로 흥행에 총력을 기울이는 이 영화는 당연하게도 CJ계열인 멀티플렉스 체인 CGV의 물량공세가 예상된다.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는 다행스럽게도 누적 관객수 20만을 넘기면서 손익분기점을 넘은 상태다. 하지만 그의 비판은 여전히 날이 서 있다. 그는 영진위 주최 축하연에 참석해 “다행히 저희 <피에타>는 손익분기점을 넘겼고,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개런티를 나눠줄 수 있게 됐지만 다른 소규모 저예산 영화들은 상영할 기회조차 없어 (불법) 다운로드로 넘어간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스크린 독과점의 문제는 단지 흥행의 차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영화가 자본에 잠식됨으로써 결국 자본의 입맛에 맞는 영화만 제작될 수 있는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김기덕 감독은 여기에 대해 “투자자와 창작자 사이 균형이 깨지고 있다”며 “그 균형을 되찾지 못한다면 제2의 이창동, 박찬욱, 홍상수, 봉준호, 그리고 김기덕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영화는 예술을 담고 있지만 분명한 건 자본이 투입되는 상업적인 성격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 덩어리가 크건 작건 자본의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다만 영화를 문화로 바라보면 전체 영화의 발전을 위해서 국가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부분들이 있다고 여겨진다. 즉 멀티플렉스에서도 저예산 영화나 독립 영화가 방영될 수 있는 공간 하나 정도는 내주는 것이 전체적으로 보면 국가 산업적으로 이득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이것은 또한 대중들의 좀 더 다양한 영화 선택권의 확보라는 측면에서도 의의가 있을 것이다.


한때 최고 관객 기록을 깼던 <괴물>과 싸우던 김기덕 감독. 이제 그 기록을 깨려 하고 있는 <도둑들>과도 싸우는 상황이 되었다. 과연 이번 싸움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 거대 투자배급사와 연계된 멀티플렉스 상영관이라는 ‘괴물’과 ‘도둑들’을 이겨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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