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립군’, 왕과 백성은 어떻게 소통하고 성장하는가

‘남을 대신해 군역을 하는 사람’을 뜻하는 <대립군>이라는 제목은 두 가지 의미가 담겨져 있다. 그렇게 누군가의 허깨비가 되어 오로지 살아남아야 그 존재가 의미를 갖는 ‘대립질’을 하는 민초들을 뜻하기도 하지만, 임진왜란 시절 선조의 분조에 의해 반쪽짜리 왕으로 추대된 광해를 뜻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군’은 군대를 뜻하기도 하지만 임금을 뜻할 수도 있는 것이니 말이다. 

사진출처:영화<대립군>

영화 <대립군>은 그래서 임진왜란이라는 절체절명의 국가위기 상황을 전제하고, 그 안에 왕과 백성이라는 두 존재를 ‘대립군’이라는 하나의 틀로 묶어낸다. 애초에 왕이 되고 싶지 않았던 유약한 왕 광해는 대립군과 함께 하는 여정을 통해 조금씩 백성들의 고단함이 무엇인지 또 그들이 원하는 왕이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를 깨달아간다. 

백성을 대표하는 인물은 대립군의 수장 토우(이정재)다. 그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광해를 절벽 끝에 세우는 인물이다. 그는 용감하게 적과 맞설 수 있는 그 힘은 바로 그 절벽 끝에 서있어 갖게 되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광해에게 말한다. 편안한 삶을 살아왔을 광해는 이 대립군과 함께 지내는 절벽 끝의 시간들을 통해 점점 왕으로서의 자신을 세워나간다. 

자신을 죽이려는 조정의 세력들과 또 왜군들에게도 추격당하며 굶주림 속에 산속을 헤매던 광해가 일단의 백성의 무리들을 만나는 장면은 드디어 왕과 백성이 제대로 마주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백성들로부터 식량을 빼앗으려는 신하들을 광해는 제지하고, 그래서 백성들이 밥을 지어 왕과 나누자 광해는 자신이 그들에게 해줄 게 잠시간의 고단함을 풀어줄 춤사위밖에 없다며 춤을 춘다. 백성 앞에서 춤을 추는 왕. 그렇게 한껏 자신을 낮추는 순간, 백성들은 저절로 고개를 숙인다. 

왕이 제대로 된 왕으로 서게 되고, 또 백성이 백성의 자리를 찾아가는 그 과정은 또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대신하는 삶을 살아온 광해와 대립군이 절벽을 뒤로 한 작은 성에서 결사항전을 하며 그들은 그 전쟁이 이제 누군가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위한 사투라는 걸 확인한다. 광해는 그 결사항전을 거쳐 스스로를 왕이라고 자인하게 되고, 대립군들은 비로소 자신의 이름으로서 당당히 서게 된다. 

<대립군>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 이야기가 작년부터 현재까지 우리가 겪고 있는 정국과 맞물려 묘한 여운을 남기기 때문이다.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를 접하고 대통령 탄핵과 새로운 대통령을 세우는 그 과정을 온전히 해낸 건 다름 아닌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갔던 국민들이 아닌가. 문재인 대통령이 ‘운명’이라고 말하며 그 힘겨운 여정을 통해 대통령이 된 과정에는 항상 함께하는 국민들이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며 국가의 위기상황에 힘을 모으고 그럼으로써 대통령과 국민이 스스로 자신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 역할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아가는 과정은 그래서 저 영화 <대립군>의 광해와 대립군 사이의 소통과 성장을 닮았다. 

<대립군>은 물론 스펙터클한 전투 장면들이 있지만 그런 액션 장르를 추구하는 영화는 아니다. 대신 왕과 백성의 소통을 통한 성장과정을 그들이 겪는 혹독한 전쟁을 통해 담아낸다. 그래서 속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보여주기보다는 한번쯤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주는 영화다. 특히 지금의 정국을 영화 속 상황과 견주어보면 더더욱 큰 울림을 주는.

법안 아이디어 넘쳐난 ‘무한도전’, 이대로만 된다면...

“교육 관련법은 저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직접 뽑을 수가 없어요. 직접 뽑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국민의원 특집’에서 청소년 참정권을 제안한 한 여학생은 적어도 교육감 선거에는 청소년이 참여할 수 있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녀는 자신들이 원하는 건 자신들이 제일 잘 알고 있다며 그런 자신들이 배제된 선거권에 대한 불합리함을 지적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한 임신부는 평소 차량을 주차할 때의 불편함을 호소하며 ‘임신부 주차 편리법’을 제안했다. 임신부로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너무 힘들고 그래서 차를 끌고 나가면 주차할 때 공간이 너무 좁아서 내릴 때 배가 끼거나 긁힌다는 것. 그녀는 장애인 주차공간에 임신부도 포함시켜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법안 제안에 담았다. 

한 국민의원은 항상 정치인들이 ‘국민의 뜻’이라고 말하는데 자신은 그런 뜻을 밝힌 적이 없다며 지역구 주민들과 국회의원이 만나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이른바 ‘국회의원 미팅법’을 제안했다. 국민의 의견을 입법을 담당하고 있는 국회의원들에게 직접적으로 전하고픈 마음이 그 안에서는 느껴졌다. 

‘국회의원 4선 방지법’도 눈에 띄는 법안 아이디어였다. 오래도록 연임하는 국회의원들과 새내기 의원들이 공정하게 선거를 하기가 쉽지 않고, 또 이렇게 새로운 의원들이 들어와야 다양한 의견이 담겨진 법안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뜻에서였다. 또 한 대학생은 학비도 어마어마한데 집에서 나와 자취를 해야 하는 학생들의 경우 주거비 역시 감당하기 어렵다며 ‘청년 주거 지원법’을 제안했다. 감옥 독방보다도 작은 고시원에서 청춘을 버텨내고 있는 청년들의 현실이 절절히 담겨진 법안 아이디어였다. 

국민들의 이러한 제안에 그 자리에 참여한 현역 국회의원들은 적이 깊은 감명을 받았다. 박주민 의원은 “마지막쯤 되니까 꼭 한 마디씩 하고 싶어하시더라”며 평소 국민들이 얼마나 하고픈 이야기들이 많았다는 걸 실감했다고 했다. 이용주 의원은 “200분의 국민의원들이 300명의 국회의원보다 더 많은 생각을 갖고 계셨다”고 말했고, 이정미 의원은 법안이 자신들을 위한 필요보다는 타인들을 위한 것들이 대부분이었음을 짚어내며 “함께 사는 공동체를 꿈꾸신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고 했다. 

<무한도전> 국민의원 특집은 예능이라는 새로운 접근방식으로 정치에 대한 문턱을 대폭 낮춰주었고 법안이라는 것이 저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 생활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안들이이라는 걸 확인시켜줬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인만이 아니라 국민들 역시 함께 머리를 모을 때 더 좋은 사회를 위한 아이디어들이 나올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무엇보다 <무한도전> 국민의원 특집이 특별하게 다가온 건 그 자리가 현 국민들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법안이란 사실 국민들이 느끼는 힘겨움이나 갈증, 불만 같은 것을 담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정미 의원이 밝힌 것처럼 우리네 국민들이 자신만의 문제보다는 함께 살아가는 우리 사회가 보다 나아지기를 바라는 그 진심들이 느껴진 부분이다. 이러한 국민들의 뜻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유재석의 개념, 정준하의 겸손, 김태호의 고민

 

대상 유재석, 올해의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버라이어티 부문 최우수상 정준하. <2016 MBC방송연예대상>에서 단연 빛난 건 <무한도전>이었다. 물론 MBC 예능 프로그램들 중 <복면가왕>이나 <진짜사나이>, <나 혼자 산다>, <라디오스타> 같은 프로그램들이 올해도 선전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존재감이나 화제성으로 보면 역시 <무한도전>에 비교하기는 어렵다. 심지어 예능만이 아니라 전 부문에서 MBC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프로그램은 <무한도전>이라는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이 아닌가.

 

'MBC연예대상(사진출처:MBC)'

올해 대상 후보에서 단연 주목되는 인물은 정준하였다. 물론 유재석이 있지만 그는 이미 상의 차원을 넘어선 인물이다. 대상을 받는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당연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조금은 색다른 대상을 꼽는다면 역시 올해 <무한도전>에서 보여준 다양한 활약을 보여준 정준하가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MBC는 이런 이변보다는 누구나 인정하는 유재석을 선택했다.

 

모두가 기대했지만 최우수상을 받은 정준하는 그러나 수상 소감에서 자신이 대상 후보에 올랐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다고 말하며 자신을 낮췄다. 그는 또 자신이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이 <무한도전> 멤버들이 그만큼 밀어주고 도와준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그는 자신의 분수를 안다며, 같이 후보로 올라간 김성주, 김구라, 유재석이 자신보다 천배 백배 능력있고”, “넘어설 수 없는 분들이라고 했다.

 

물론 대상은 불발됐지만 정준하에게 최우수상의 의미는 남달랐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많은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던 정준하였다. 하지만 늘 조금은 자신을 낮춘 바보 같은 캐릭터로 웃음을 주기 위해 노력해왔다. 올해는 다양한 미션들에도 도전했고 그만한 성과도 거두었다. 그런 노력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알려주는 건 대상 후보에 올랐을 때 이미 대중들이 보여준 그에 대한 지지의 표시들이었다. 대상 그 자체보다도 이런 지지가 그에게는 더 값진 결실이라고 볼 수 있다.

 

올해의 예능 프로그램상을 받아 무대에 오른 김태호 PD는 조금 마른 듯한 모습이었다. 그것이 그가 요즘 갖고 있는 스트레스의 무게를 고스란히 느끼게 했다. 그의 힘겨움은 수상소감에도 묻어났다. “요즘 같이 아이템 고민하기 힘든 때도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시국이 시국이다보니 예능이 주목받기 어렵고 또 어떤 아이템도 예민하게 신경 써야 되는 때라는 걸 그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찾아주기 위한 고민을 멈추지 않을 거라는 걸 확실히 했다.

 

대상을 받은 유재석은 먼저 같이 후보에 오른 정준하와 김구라, 김성주에게 죄송함과 감사함을 표했다. 올해 특히 <무한도전>이 겪은 우여곡절들에 대한 소회도 빼놓지 않았다. 정형돈의 하차에 대해서는 어디서든 본인이 행복하게 방송을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했고, 노홍철과 길에 대해서는 시청자가 원할 때 다 같이 방송을 하면 좋겠다고 말했으며, 막내 광희와 양세형에 대한 격려도 잊지 않았다. 자신이 대상을 받은 것이지만 유재석은 동료들을 먼저 챙긴 것.

 

또한 그는 <무한도전>을 대하는 자신의 입장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꺼냈다. 벌써 12년차를 향해가는 <무한도전>과 함께 나이 들어온 그들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우리가 서있는 시간이 내가 제일 나이 든 날일지 모르겠지만 남아있는 날 중에는 가장 젊은 날이다.’라고 말해줬다는 이적의 이야기를 통해서 시청자들이 허락해주는 그 날까지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동료에 대한 감사함을 표하고 시청자들에게 더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유재석은 현 시국에 대한 개념 있는 소신 또한 잊지 않았다. “<무한도전>을 통해 많은 걸 보고 배운다. 역사를 통해서, 나라가 힘들 때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소수의 몇몇 사람이 꽃길을 걷는 게 아니라 내년엔 대한민국이 꽃길로 바뀌어서 모든 국민들이 꽃길을 걷는 그런 날이 됐으면 좋겠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자신의 맡은 바 임무를 열심히 수행해온 정준하와 매번 힘겨움을 토로하면서도 최선을 다해 재미와 의미를 모두 거둘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두지휘해온 김태호 PD, 그리고 진심으로 시청자들을 위하는 마음이 개념어린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담겨져 있던 유재석. 이들이 있어 2016<MBC방송연예대상>이 그 어느 때보다 빛날 수 있었다

'육룡'의 질문, 백성이냐 가족이냐

 

백성인가 아니면 가족인가. SBS <육룡이 나르샤>가 이성계(천호진)의 위화도 회군을 통해 던진 질문이다. 회군을 결정하자 최영(전국환) 장군은 이성계의 식솔들을 인질로 잡고 만일 군사를 이끌고 도성으로 들어올 시 만월대 위에 그들의 목을 내걸 것이라고 위협한다. 5만의 군사들을 구하자니 가족의 생명이 위태롭고, 그렇다고 가족을 구하자니 5만의 군사들이 눈에 밟힌다. 이성계의 선택은 결국 군사들, 아니 영문도 모르고 죽을 전쟁에 차출된 백성들이었다.

 


'육룡이 나르샤(사진출처:SBS)'

백성이냐 가족이냐는 질문은 고스란히 지금 현재로 되돌려진다.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정치인들은 과연 국민들을 위한 선택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자신들의 가족적인 당파와 세력을 위한 선택만을 하고 있을까. 물론 정당정치가 그러한 당의 방향성을 어느 정도는 만들어내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래도 정치인들은 당 이전에 국민이 우선이 아닌가. 국민의 어려움과 고통이 어느 정도인가를 생각한다면 과연 지금처럼 그들끼리의 정쟁에만 휘둘리는 모습을 보여도 되는 것일까.

 

<육룡이 나르샤>는 지난 회에서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요동정벌이라는 무모한 결정에 백성들을 사지로 몰아넣으며, 어느 정도의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고 말하는 위정자에게 과연 그 자격이 있는가를 질문한다. 국가의 명령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백성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이라면 과연 따라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홍인방(전노민)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처했을 때 그는 정도전(김명민)에게 인간의 욕망은 결국 권력욕으로 향하게 되어 있어 개혁이 성공할 수 없음을 피력한다. 그는 누구나 가슴 속에 벌레 한 마리씩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인물. 즉 개혁을 부르짖던 인물도 권좌에 오르게 되면 권력욕에 휘둘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시스템에 대한 질문이다. 개혁에 있어서 사람은 바뀌어도 권력 시스템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정도전은 홍인방에게 자신이 하려는 것이 개혁이 아니라 나라를 바꾸는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그의 논리를 무너뜨린다. 즉 고려를 되살리기 위한 개혁이 아니라 새로운 나라를 세우겠다는 이야기는 시스템 자체를 바꾸겠다는 뜻이다. 그는 왕이 바뀌어도 신하들이 서로 견제하여 권력이 쏠리는 것을 막는 시스템을 고안해낸다.

 

<육룡이 나르샤>를 보다 보면 마치 <100분토론>의 한 장면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것은 이 사극이 선과 악의 대결로서 단순히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입장과 생각의 차이에 의해 대결하는 인물들을 그리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다. 적이라고 해도 길태미(박혁권)나 홍인방 그리고 이인겸(최종원)이 저마다의 논리를 갖고 있는 건 그래서다. 그래서 그들이 서로 대결할 때 그 모습은 마치 토론을 벌이는 것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가능한 건 김영현, 박상연 작가의 독특한 대본 작업 방식 때문이다. 이들은 대본 작업에서 각자 캐릭터들이 가진 입장을 정해놓고 실제 토론을 벌인다고 한다.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한석규)과 정기준(윤제문)이 한글 유포를 갖고 나누는 대결이 토론 방식으로 전개됐던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육룡이 나르샤>는 그래서 매회 시청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여말 선초에 벌어진 위화도 회군이라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역사적 지식이지만 그 안에 현재적 질문을 집어넣음으로써 그 사건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다. 물론 그 질문에 답은 어느 정도 나와 있다. 하지만 그 답을 실행하느냐 아니냐는 또 다른 문제일 것이다. 백성인가 가족인가라는 질문도 마찬가지다. 역사든 사극이든 그래서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다면 이렇게 실행하기 어려운 갈등 상황에서 어떤 결정에 대한 하나의 답을 제시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육룡이 나르샤>의 끊임없이 던져지는 질문들이 의미 있는 건 그것이 현재에도 같은 울림의 질문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명량>, 애국영화보다는 <변호인>에 가까운 까닭

 

요즘은 영화관에서 박수를 치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지지만 70년대 말 80년대 초반만 해도 영화를 보며 박수치는 일이 흔했다. 이렇게 된 것은 과거에는 영화가 연극이나 비슷한 실제 무대 체험으로 받아들여졌던 반면, 이제는 영화가 그저 하나의 가상체험일 뿐이라고 인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량>을 보다보면 저도 모르게 이 시간을 거슬러 박수라도 쳐주고 싶은 충동을 순간순간 느끼게 된다.

 

사진출처:영화 <명량>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을 좇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는 법이지.” 이순신이 아들에게 던져주는 이 한 마디는 이 영화의 굵직한 메시지를 고스란히 담는다. 자신은 압송되어 고문까지 당하고 백의종군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나라를 지키는 최 일선에 서 있는 이순신. 그 이유는 왕이 아니라 백성이라는 것. <변호인>국가는 국민입니다!”라는 한 마디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명량>은 후반부의 해전 장면이 압도적인 스펙타클을 보여주는 블록버스터지만 그렇다고 단지 전투의 재미만을 보여주는 영화는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다. 영화의 전반부가 다소 지루할 정도로 이순신 장군의 내면을 향해 있는 건 그 장수로서의 고민을 감성적으로 이해한 연후에야 바다에서의 전투가 더 깊은 감동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죽음을 향해 스스럼없이 나아가는 자에게서 느껴지는 숭고미는 <명량>이 이순신 장군을 재조명하면서 바라보려는 것이다. 점점 다가오는 330척에 달하는 왜군의 배와 대적해야 하는 고작 12척 남은 배. 한 대 남은 거북선까지 불타버리고 병사들도 두려움에 탈영하는 상황에서 이순신은 단 하나 남은 희망의 불씨를 떠올린다. 그것은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죽음을 향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명량이라는 회오리 바다는 그래서 바로 이 죽음에 대한 완벽한 상징으로 다가온다. 죽은 자들의 외침처럼 들려오는 그 바다의 울음소리가 주는 두려움을 내려다보는 이순신의 모습은 두려움을 용기로 바꾼다는 표현이 중의적이라는 걸 말해준다. 그것은 이순신을 포함한 조선 병사들의 마음 속을 회오리치며 헤집고 다니는 두려움을 이겨내는 일이면서, 저 울돌목 바다가 만들어내는 무서운 조류변화를 오히려 전투의 기폭제로 활용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명량>은 저 77년 반공시절의 <난중일기> 같은 다소 애국심에 호소하는 영화와는 여러모로 궤를 달리한다. 영화는 국가 같은 애국에 호소하기보다는 차라리 백성들을 위하는 애민에 더 호소한다.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장수가 백성들과의 의리를 위해 기꺼이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다. 게다가 영화가 포착해내는 이순신의 내면은 그것만으로도 국적과 상관없는 위대한 인간승리의 휴먼드라마를 보여준다.

 

김한민 감독은 <최종병기 활>이 그랬던 것처럼 <명량>에서도 역사적 상황을 바탕으로 단순하지만 묵직한 대결이 주는 액션의 묘미를 선사하면서도, 동시에 그 속에서 활이나 바다가 주는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액션 속에 인물들의 감정이나 정서를 잘 얹는 감독인 만큼 죽음의 바다를 향해 나가는 이순신의 내면이 압도적인 전투신과 절묘하게 어우러지게 만들었다.

 

최민식의 연기는 한 마디로 압권이다. 그 스스로는 이순신 장군의 내면을 100% 이해하지 못해 흉내만 냈다고 했지만 영화는 최민식이라는 배우가 있어 비로소 수백 년 전의 영웅을 부활시킬 수 있었다. 표정 하나 동작 하나도 빼놓을 수 없는 그의 연기는 죽음 앞에서 오히려 담대하게 맞섬으로써 죽고자 하면 살 것이라는 걸 몸소 보여준 이순신의 면면을 되살려놓았다.

 

만일 영화를 보면서 박수를 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면 그것은 명량 해전 당시 유일한 희망이었던 이순신 장군에 대한 백성들의 마음과 공감하는 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절체절명의 국가적 위기 상황 속에서 정작 나라를 지켜야할 정치인들은 저 살길만을 찾을 때, 오롯이 백성들만을 생각하며 선선히 죽음을 불사하고 나가는 리더십에 대한 강렬한 대중의 욕망이 수백 년을 넘어 전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앞에는 아직도 저 명량의 회오리 바다가 놓여있다.

 

<정도전>, 당신은 정도전인가 정몽주인가

 

역심인가 민심인가. 썩어 빠진 조정을 쇄신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겠다는 정도전(조재현)이 오로지 생각하는 건 도탄에 빠진 백성들이다. 그는 백성들을 위해서 잘못된 나라를 뒤집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고 한다. 그것은 민심이기도 하지만 또한 역성혁명이기도 하다.

 

'정도전(사진출처:KBS)'

충심인가 타협인가. 한편 정도전과 맞서는 정몽주(임호)는 그래도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개혁은 하되 그 개혁 또한 나라를 전제해야 한다는 것. 역성혁명이란 민심을 빙자한 정치적인 야심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고려에 대한 충심이기도 하지만 또한 타협처럼 보이기도 한다.

 

정도전이 혁명을 위해 꺼내놓은 카드는 사전을 혁파하겠다는 전제 개혁이다. 가진 자들의 땅을 백성들에게 나눠주려는 것. 이것 때문에 스승인 이색(박지일)과 그는 날선 대결을 벌인다. 결국 이색을 탄핵하자는 주장이 나오면서 이를 반대하는 정몽주와 철회는 없다는 정도전이 다시 맞선다.

 

삼봉은 지금 정치를 포기하고 전쟁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정치의 소임은 절충입니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공격을 서슴지 않는 것은 야만이란 말입니다(정몽주).” “정치의 소임은 세상의 정의를 바로 잡는 것입니다. 수백 년 간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은 밥버러지들과 절충이라뇨. 야합이고 불의이며 백성들에 대한 배신입니다(정도전).”

 

KBS 주말사극 <정도전>에서 정도전과 정몽주가 대립하는 이 장면들은 무려 6백년이 훌쩍 넘은 과거의 역사지만 지금 현재 우리네 현실과 고스란히 맞닿아 또 다른 울림을 만들어낸다. 비단 옷을 입고 있는 자들 앞에서 고개를 숙인 배고픈 걸인들의 모습이 과거의 일로만 보이지 않는다. 정도전이 그 걸인들과 길바닥에 앉아 만두를 나누는 장면은 그래서 인상적이다.

 

영화 <변호인>에서 송우석 변호사(송강호)국가는 국민입니다라고 외쳤을 때 그것이 그토록 대중들의 마음을 사무치게 한 것은 현실이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가와 국민은 어느 순간부터 분리되기 시작했다.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고 몇몇 가진 자들의 배만을 불리게 해주며 거짓말을 일삼으니 국민이 국가를 국가로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정도전>은 끝까지 고려를 선택하다 결국은 죽음을 맞이한 정몽주와, 국가가 아닌 백성을 선택해 조선을 세운 정도전을 대립시킨다. 이 둘의 설전은 그래서 지금 현재 국가냐 국민이냐를 놓고 벌어지는 보수와 진보 사이의 대립을 환기시킨다. 한쪽에서는 그래도 애국을 말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힘겨운 현실에서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는 국민을 말한다.

 

역사책을 열어보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극화한 정통사극 <정도전>이 이토록 대중들의 반응을 얻어내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기막힌 과거와 현재의 조우가 있기 때문이다. 역사란 결국 현재에 의미 있는 과거를 찾아내는 일이 아닌가. 국가인가 국민인가를 묻는 <정도전>의 질문은 그래서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정도전인가 정몽주인가.

병든 세상까지 고치는 심의(心醫), <허준>

 

오로지 올곧은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얼마나 힘겨운 일일까. <구암 허준>이 그려내는 이른바 심의(心醫)의 길에 어떤 감동이 느껴졌다면 그것은 아마도 허준(김주혁)의 그 고군분투가 지금 현재 우리네 현실에 어떤 울림을 던져주기 때문이었을 게다. 오로지 병자만을 바라보는 심의의 길은 부조리한 세상에서는 그 자체로 가시밭길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길을 통해 허준은 아픈 병자들만이 아니라 아픈 세상까지 고쳐나간다.

 

'구암 허준(사진출처:MBC)'

혜민서(惠民署). 말 그대로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곳이지만, 부패한 관리들이 있어 이 곳 역시 병이 들었다. 순번을 바꿔주는 식으로 백성들의 돈이나 뜯어내고, 약재나 빼돌려 착복하는 곳이 되어버린 것. 허준은 이를 엄금하려 하나 서리들의 만만찮은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국법 또한 허준이 가려는 심의의 길을 방해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병자를 외면하지 말라는 스승 유의태(백윤식)의 가르침을 지키려 하나, 국법은 집으로 찾아오는 가난한 병자를 도운 허준에게 벌을 내린다. 내의원은 사사로이 병자를 볼 수 없다는 국법 때문이다.

 

‘중문과 정청을 오가며 어필 현판을 천 회 낭독하라’는 벌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허준이 수행하는 것은, 그 행위 자체가 잘못된 법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어의 양예수(최종환)는 자신이 책임을 질 것이니 앞으로는 내의원도 돈을 받지 않는다면 병자를 사사로이 봐도 된다는 결정을 내린다. 결국 허준은 병자만 고친 것이 아니라 잘못된 법도 바로 잡았던 것.

 

또한 자신을 모함했던 혜민서 서리가 온 몸에 농가진이 생겨 혜민서로 실려 오자 허준은 자신이 심지어 농가진에 전염되면서도 끝까지 병자를 고쳐낸다. 이 사실에 감복한 혜민서 서리들은 허준을 마음 속으로부터 존경하게 되고 결국 혜민서를 바로잡겠다는 그의 뜻에 따르게 된다. 허준은 병만 고친 것이 아니라 병든 마음까지 고친 것이다.

 

<구암 허준>이 단지 조선시대의 한 명의가 성취한 의술의 이야기만을 다루었다면 어쩌면 얄팍한 잔재미에 머물렀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구암 허준>은 병자들을 구하는 허준의 모습을 통해 한 가지 뜻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는 성인의 길을 모색한다. 병자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 한 가지로 병만이 아니라 병자들의 마음까지 고쳐주고, 올곧은 심의의 길을 걸어감으로써 병든 세상까지 고친다는 건 이 이야기가 가진 묵직한 주제의식을 드러낸다.

 

실로 병든 세상이 아닐 수 없다. 돈 많은 세상의 갑들은 바로 그 돈으로 을들을 유린하고, 국민의 종이 되어야할 정치인들은 오히려 권력을 이용해 국민들을 기만한다. 광주 시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누게 했던 전직 대통령에게 공소시효를 늘리고 벌금을 받아내기 위해 추징법을 세우려 하자 ‘인권침해’ 운운하는 세상이다. 법이 범법자들을 오히려 보호하게 될 때 그 누가 그 법을 믿으려 할 것인가.

 

<구암 허준>을 보면서 현재를 개탄하게 되는 것은 허준이 걸어가는 그 올곧은 길이 이 시대에는 이미 사라져버린 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오로지 병자만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허준처럼, 오로지 국민만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정치인, 법조인, 공무원들은 기대하기가 어려운 세태일까. 병든 세상까지 고치는 허준의 이야기는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그만큼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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