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드라마의 총체적 추락, 심상찮다

 

지상파 드라마들의 추락이 심상찮다. 10시에 하는 드라마들의 시청률이 거의 10% 정도 선에 머물러 있고, 수목드라마는 아예 한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지경이다. 한때 국민드라마라고 불릴 정도의 4,50%에 육박하는 시청률은 기대조차 하기 어렵고, 이제 10%를 넘기면 선방했다고 말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TV 시청패턴이 달라지면서 현실적으로 잘 맞지 않는 시청률 추산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이건 좀 과하다 싶다.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렀을까.

 

'왔다 장보리(사진출처:MBC)'

다 비슷해보여도 지상파 드라마는 월화드라마와 수목드라마 그리고 주말드라마가 약간의 차이가 있다. 즉 월화드라마는 MBC <야경꾼일지>처럼 장편드라마가 주로 배치되어왔고, 수목드라마는 미니시리즈가 편성되어왔으며, 주말드라마는 가족드라마 같은 형태의 드라마들이 주를 이뤄왔다. 물론 최근 들어 이런 패턴은 상당부분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즉 월화에도 미니시리즈가 들어가기도 하고, 주말에도 가족드라마 형태를 벗어난 복수극 같은 장르가 편성되기도 한다. 거의 유일하게 수목에만 미니시리즈가 고수되는 형국이다.

 

이런 편성의 변화 속에는 어떻게든 드라마를 살려보려는 안간힘이 느껴진다. 하지만 정작 지상파 드라마들이 힘을 발휘하는 건 딱 한 가지다. 우리가 흔히 막장드라마라고 부르는 자극은 강하고 패턴화 되어 있으며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한다기보다는 공식을 따르는 드라마들이 그것이다. 최근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낸 MBC <왔다 장보리>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 드라마들은 우리가 흔히 아침드라마라고 부르던 것이 이제는 저녁 시간에도 주말에도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왔다 장보리>같은 MBC 주말 저녁 시간대의 드라마는 사실상 아침드라마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녁 시간대의 드라마가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낸다는 것이 어떤 착시현상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본래 전통적으로 지상파 시청률의 수위를 차지한 것은 다름 아닌 아침드라마들이었다.

 

실제로 시청률표를 보면 SBS <청담동스캔들>이나 MBC <모두 다 김치> 같은 드라마는 저녁시간대의 드라마들을 압도하는 시청률을 내고 있다. 일일드라마나 주말드라마를 빼고 나면 그 다음이 아침드라마 순으로 시청률이 높게 나오는 걸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보면 지상파 드라마들에서 시청률을 가져가는 건 하나의 패턴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것은 가족드라마 형태이거나, 아니면 그 변형으로서의 복수극을 다루는 드라마라는 것이다.

 

이러한 시청률의 획일화는 지상파 드라마들로서는 위기감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완성도 높은 미니시리즈를 만들어내려 해도 그것이 시청률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예감한다는 사실이다. 일종의 시청률 포기현상은 결국 참신한 드라마를 시도하려는 의욕 자체를 꺾을 수 있다. 애초에 시청률 목표가 그리 높지 않은 케이블이나 종편의 드라마들이 더 도전적이고 참신한 느낌을 주는 건 그래서다.

 

최근 수목드라마들이 일제히 추락하고 있는 상황을 보면, 이러한 위기상황이 이제 거의 목전에 다다른 느낌이다. 시도하지 않으면 외면 받고, 시도한다 해도 좋은 성적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 난감한 상황이 향후 지상파 드라마들의 총체적인 아침드라마화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되는 심정이다.

 

 

<내 딸 서영이>, 진정한 국민드라마였던 이유

 

자신의 존재를 부정한 딸의 주변을 빙빙 돌면서 그 딸이 잘 되기만을 바라는 아버지. 사위를 구하려다가 자신이 자동차에 치이고도 자기 정체가 밝혀질까 봐 제대로 검사도 받지 않고 도망쳐버린 아버지. 그렇게 존재를 부정한 딸을 위해서 그 딸이 편안히 앉을 수 있는 의자를 만드는 아버지. <내 딸 서영이>의 아버지 이삼재(천호진)가 국민 아버지가 된 이유다.

 

'내 딸 서영이'(사진출처:KBS)

아마도 이 땅의 부모들은 이삼재라는 존재를 통해 자신의 삶을 위안 받았을 지도 모른다. 오로지 자식만을 위해 살아왔고 그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한 평생의 삶. 그 삶에 대해 <내 딸 서영이>의 자식들은 그 부모가 쓰러지고 나서야 비로소 “죄송하다”고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 아마도 이 자식들의 뒤늦은 회한을 바라보며 눈물을 훔치는 부모세대들에게 <내 딸 서영이>의 국민 아버지 이삼재는 대단한 판타지임에 틀림없다.

 

가족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때로는 가족을 힘들게 만들었던 그 가부장제 하에서 숨조차 쉴 수 없었던 딸. 어느 날 불쑥 자기도 모르게 아버지의 존재를 부정해버린 딸. 그렇게 자신의 삶을 살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삶이 좀체 행복할 수는 없었던 딸. <내 딸 서영이>의 그 딸 서영이(이보영)가 국민 딸이 된 이유다.

 

아마도 이 땅의 젊은 세대들은 서영이를 통해서 자신들의 선택을 정당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가족이 늘 보금자리가 될 수는 없는 거라고, 때로는 그 보금자리가 도망치고픈 족쇄이기도 한 거라고, 저 서영이가 당당하게 자기 삶을 선택한 것처럼 그렇게 자신의 행복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무에 잘못된 일이냐고 서영이를 통해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늘 눈에 밟히는 부모의 그림자를 무시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서영이의 눈물은 그래서 자기 삶을 선택했던 젊은 세대들이 그 당당함 뒤에 남겨진 아픔을 대신 씻어내주는 카타르시스가 될 수 있었다.

 

국민드라마라는 호칭은 어딘지 애매하다. 단지 시청률이 높다고 해서, 드라마의 완성도가 높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고 해서 흔히들 국민드라마라고 부르지만 때로는 그것이 너무 과하게 여겨지는 건 과연 국민이라는 호칭을 붙일 만큼 모든 세대를 끌어안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삼재 같은 국민 아버지, 서영이 같은 국민 딸은 물론이고, 도무지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착하디착한 이상우 같은 국민 동생에, 역시 세상에 없을 것 같은 국민 며느리 호정(최윤영)까지. <내 딸 서영이>는 ‘국민’이란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은 드라마인 것만은 분명하다.

 

어찌 보면 뻔한 소재일 수도 있었고, 때로는 지나친 신파가 될 수도 있었으며, 혹은 너무 틀에 박힌 전개일 수도 있었지만 <내 딸 서영이>가 그토록 호평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안에 우리네 가족에 대한 판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딘지 파편화된 우리네 가족관계는 <내 딸 서영이>가 보여준 것처럼 어쩌면 극단적인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드라마 제공한 화해의 판타지는 더더욱 우리의 마음을 울렸는지도. <내 딸 서영이>를 진정한 국민드라마라고 부를 수 있는 건 그 가족 판타지가 모든 세대들을 끌어안을 만큼 강렬했기 때문이다.

<내 딸 서영이>, 그 막장과 국민드라마 사이

 

<내 딸 서영이>가 시청률 40%를 넘겼다고 난리들이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최근 들어 40% 시청률이라는 것은 거의 경이적인 수치가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시청률 40%를 넘겼다고 섣불리 국민드라마 운운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작년 <추적자>는 20% 안팎의 시청률에 머물렀지만 국민드라마로 칭송되었다. 이제 국민드라마라는 칭호가 시청률이 아니라 대중들의 공감대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내 딸 서영이'(사진출처:KBS)

그렇다면 <내 딸 서영이>는 과연 이런 의미에서의 국민드라마가 될 가능성이 있을까. 항간에는 막장드라마라는 비판이 있지만, 그래도 그 가능성만은 충분한 드라마라 여겨진다. 먼저 이서영(이보영)이라는 젊은 세대가 생각하는 가족에 대한 관점과 이삼재(천호진) 같은 아버지로 대변되는 나이든 세대가 생각하는 가족에 대한 관점이 갈등하고 부딪치면서 어떤 교집합을 찾아가는 면모가 대단히 참신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좋은 기획의도와 설정이 존재하는 것과 동시에, 이 드라마는 자칫 잘못하면 막장으로 흘러갈 자극적인 포인트들도 갖고 있다. 즉 서영이 아버지를 부정했던 그 과거의 비밀이 그렇고, 초반부터 이미 복선으로 제시되었던 강성재(이정신)의 출생의 비밀이 그렇다. 이 비밀들은 흔히 그러하듯이 자극으로만 치닫게 되면 막장이 될 수도 있지만, 잘만 균형점을 잡으면 드라마가 굴러가게 하는 적절한 동력이 될 수도 있다.

 

초반에는 이 균형이 잘 유지되었다. 이삼재의 입장에서 보여준 절절한 부성애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렸고, 동시에 아버지를 부정하고 난 후 가시방석에 살아가는 이서영의 마음도 시청자들을 아프게 했다. 또한 이서영을 위해 모든 걸 배려하는 강우재의 모습은 훈훈하면서도 극에 긴장감을 주기에 충분했고, 이상우(박해진) 역시 강미경(박정아)과 풋풋한 연인관계를 이어가면서 후에 드러날 이서영과의 얽힌 관계가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많은 비밀들이 풀어져 나가는 단계에 이르러 <내 딸 서영이>는 균형점을 잃고 그 흔한 막장드라마들이 쓰던 자극 코드들을 반복하고 있다. 강미경의 오빠가 서영이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우가 강미경과 헤어지는 것도 모자라 최호정(최윤영)과 결혼까지 하는 것은 과도해 보이고, 강우재가 서영이의 비밀을 알아채고도 직접 소통하려 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죽만 때리는 행동도 그다지 개연성 있다 여겨지지 않는다.

 

게다가 강우재와 서영이의 비밀을 둘러싼 냉전이 해소되지도 않은 채, 갑자기 드러난 강성재의 출생의 비밀 역시 너무 전형적인 자극 코드로 풀어내짐으로써 <내 딸 서영이>는 마치 갑자기 막장드라마가 된 듯한 장면들을 연달아 보여주었다. 분노에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고, 누군가의 뺨을 때리고, 어제까지 그토록 아끼던 자식을 하루아침에 원수 보듯 하는 모습이 그렇다. 물론 이 비밀들이 얼마나 엄청난 사건인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이 조금만 달랐다면 <내 딸 서영이>는 더 큰 감동을 시청자들에게 전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우리가 흔히 통칭해서 부르는 막장드라마라는 수식은 참 애매한 표현이다. 그저 출생의 비밀이 들어간다고 해서 모두가 막장드라마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게 없다고 해서 막장드라마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공감대와 자극의 문제다. 공감대가 없이 자극으로 자꾸 흘러가게 되면 같은 소재를 사용한다고 해도 대중들은 막장으로 드라마를 인식하게 된다. 그만큼 그 자극 코드들이 너무 많이 사용되면서 대중들을 학습시켰기 때문이다.

 

시청률 40%가 넘었다고, 단지 그 수치적인 것에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그것이 그대로 드라마의 공감대가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니까. 대신 <내 딸 서영이>가 그 시청률이라는 수치를 위해 더 멀리 가기 전에 빨리 본래의 좋은 의도, 즉 세대와 계층과 성별이 서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런 드라마로 돌아오길 바란다. 시청률 높은 막장드라마가 되느니 차라리 조금 시청률이 낮은 국민드라마가 되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막장이 국민이 되는 시청률 지상주의의 폐해

끊임없는 막장 논란을 가져오고 있는 '수상한 삼형제'에 대해 진형욱 PD는 "이 작품은 비난받을 이유가 없는 드라마"라고 밝혔다고 한다. 진 PD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이 드라마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작가가 쓰는 드라마"이며 "평범한 위기나 너무나 편안한 일상만 펼쳐진다면 드라마틱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는 배우 안내상은 "시청률 40%를 기록하면 국민드라마가 아니냐"며 막장이라고 평가받는 것은 이 "드라마가 불편한 이야기를 건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실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가 지금 갑자기 나온 것은 아니다. '하늘이시여'는 끊임없는 논란의 도마 위에 올라섰지만 시청률은 40%를 훌쩍 넘어섰다. '별난 여자 별난 남자'도 각종 논란에 휩싸였지만 3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들 드라마들이 시청률 고공행진을 기록한다고 해서 '국민드라마' 운운하고 나온 적은 없다. '수상한 삼형제'가 시청률을 내세워 국민드라마 운운하는 상황까지 온 것은, 시청률 지상주의 속에서 그만큼 자극에 둔감해진 드라마 제작 행태의 일면을 드러내는 것 같다.

무엇이 막장이냐에 따른 정확한 기준은 없다. 다만 대중들의 정서가 그것을 막장으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냐에 달려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어떤 요소들이 막장의 징후로 받아들여지는가 하는 것은 대충 짐작될 수 있다. 대체로 막장은 윤리적인 측면에서의 막장과 완성도의 측면에서의 막장으로 나뉘어진다. 얼개가 느슨한 것은 완성도가 막장이라는 것이며, 소재가 지나치게 자극적인 것은 윤리적인 막장이란 얘기다.

'수상한 삼형제'는 얼개가 그다지 느슨한 드라마는 아니다. 따라서 완성도 측면에서 이 드라마를 막장이라 부르기는 어렵다(물론 비정상적인 관계들은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측면에서 막장으로 치부될 수도 있지만). 하지만 윤리적인 측면을 보면 지나치게 자극적인 상황으로만 몰고 가는 드라마의 행태가 막장 논란에서 자유롭기가 어려워진다. 즉 '수상한 삼형제'의 막장 논란은 좋은 필력을 가진 작가가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기보다는, 시청률을 얻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자극적인 상황을 적재적소에 넣고 빠지는 것을 반복하는데서 나온 것들이다.

'수상한 삼형제'는 지금껏 흘러온 것을 보면 작가가 캐릭터 게임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캐릭터를 하나씩 끄집어내 자극적인 관계들을 얽는 것으로 극성을 올리고, 어느 순간 그 힘이 빠지면 다른 인물로 넘어가는 과정을 반복한다. 물론 그것이 파편화되는 현재가족의 모습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보일만큼 이 드라마는 진정성이 엿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시청률을 향해 달려가는 듯한 인상이 강하다는 이야기다.

이즈음에서 국민드라마라는 호칭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막장드라마가 시청률을 갖고 국민드라마라고 주장하는 상황은, 이 사뭇 달라 보이는 두 용어 사이에 근본적으로 시청률 지상주의라는 같은 조건이 상응하기 때문이다. 일정한 시청률을 넘긴 드라마를 흔히 우리는 '국민드라마'라고 부른다. 그만큼 많이 봤다는 뜻이고,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 '국민'이라는 호칭이 붙여지는 분야는 드라마뿐만이 아니다. '무한도전'이나 '1박2일' 같은 예능 프로그램은 '국민예능'이라 불려지고, '해운대' 같은 1천만 관객을 넘긴 영화는 '국민영화'라고 부른다. 국민배우, 국민가수, 국민여동생, 국민남동생, 국민개그맨... 이제 '국민'이라는 호칭은 조금 잘 나가는 장르나 연예인들에게 붙여주는 왕관 같은 것이 되었다.

잘 나가는 드라마나 예능에 '국민'이라고 붙여준 들 무슨 상관일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국민'이라는 호칭이 야기하는 집단적이고 강박적인 사회 분위기는 그다지 유쾌한 것이 아니다. 사실 시청률 50%나 관객 수 1천만이 정상적인 수치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온 국민의 반이 같은 드라마를 보고, 국민의 다섯 명 중 한 명이 같은 영화를 보는 사회를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

시청률 지상주의 속에서 막장드라마가 국민드라마라고 한다면, 그 말은 국민이 막장이란 얘기인가. 막장드라마가 국민드라마라고 말해지는 상황 속에서 드라마에 국민을 호명하는 이 상황도 그다지 유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청률만 높으면 다 용서된다는 이 상황은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다양해진 월화드라마, 강약 비교

'선덕여왕'이 끝난 자리, 새해의 시작점. '선덕여왕'의 뒤를 이을 월화 드라마는 무엇일까. 일제히 방송3사가 새 드라마를 포진하고 있어 그 기대감은 더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각 드라마의 첫 회를 접한 느낌은 어느 작품 하나 빠질 것이 없이 각각의 재미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시청률도 '제중원' 15.1%, 14.6%(AGB 닐슨), '공부의 신' 13.4%, 15.9% '파스타' 13.3%, 15.1%로 엎치락뒤치락하곤 있지만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시청률은 이전까지와는 상당히 다른 양상이다. 전통적으로 사극은 극성이 높은 특징이 있기 때문에, 시청률 경쟁에서 늘 수위를 차지하곤 했다. 따라서 장르적 특성으로 봤을 때 '제중원'의 우위는 당연할 것으로 여겨졌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제중원'은 첫 날 근소한 차이로 시청률 우위를 보였지만 다음날 '공부의 신'과 '파스타'에 그 자리를 내주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의외의 결과를 가져왔을까.

'제중원', 완성도 높지만 약점도 존재
'제중원'이라는 작품이 재미에 있어서나 완성도에 있어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제중원'은 구한말이라는 시대상황 속으로 들어가 실로 의학드라마와 사극을 흉터 없이 봉합시키는 성취를 이루고 있다. 박용우와 연정훈의 연기에 대한 몰입도도 좋고, 무엇보다 군더더기 없이 압축적으로 전개되는 상황과, 그러면서도 복잡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단순하고 쉽게 전달하는 점에 있어서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제중원'의 약점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 무엇보다 큰 것은 이 작품이 다루는 서양의학이라는 소재가 구한말의 시점에서 두 가지 면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 하나는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학문의 도입이라는 긍정적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그 학문을 갖고 들어온 일본과 서양열강을 제국주의적인 외세로 바라보는 부정적 측면이다. 구한말의 불행한 역사를 가진 우리로서는 서양의학을 다루는 '제중원'의 이야기는 '허준'이 한의학으로 사람들을 구하는 이야기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밖에도 의학을 구한말 시점에서 다루기 때문에, 장면 자체가 상당히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제중원'은 그 시대적 배경 상 '하얀거탑'처럼 깨끗이 정비된 수술실에서 각종 정교한 기기들을 활용해 수술을 하는 장면을 다룰 수는 없다. 바로 이런 점들이 약점으로 지목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제중원'이라는 작품에 대한 기대는 클 수밖에 없다. 구한말을 다루는 시대극들이 늘 이 역사인식에 대한 문제와 그 미지의 영역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제중원'의 시도는 그 어려운 만큼 가치가 인정된다는 이야기다.

'공부의 신', 불편한 논리지만 판타지를 건드려
한편 '공부의 신'은 일본 원작이지만 상당부분 우리네 교육 현실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다. 학원물이지만 강석호(김수로)가 병문고의 학생들에게 "너희들은 패배자"라고 도발하면서 "승자들의 손에 놀아나기 싫다면 공부해서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는 부분은 사실 궤변에 가까운 것이지만 우리네 교육 현실 속에서 바라보면 실제로 마음을 움직이는 구석이 있다. 승자독식의 세상에서 승자가 되어야 그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는 논리는 기존 잘못된 시스템에 대한 인정과 다르지 않다. 패자가 승자가 되는 순간, 승자의 논리가 유지되는 시스템을 그들이 왜 바꾸겠는가. 교묘한 논리지만 그것은 결국 지금 시스템에서 패자보다는 승자가 되라는 역설일 뿐이다.

이런 부분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중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것은 작금의 교육 현실이 그만큼 바뀌지 않는 벽처럼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빈부의 차가 성적의 차이를 만들고 그것이 결국 미래의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현 사회 시스템 속에서 '공부의 신'은 하나의 판타지를 제공한다. 현실은 바꿀 수 없으니 갖은 방법을 동원해 승자가 되는 것이다. 이 드라마가 강점을 보이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사회적인 문제를 적당히 건드리면서 판타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파스타', 익숙한 청춘 멜로지만 캐릭터의 힘이 돋보여
반면 '파스타'는 청춘 멜로에 요리사라는 전문직을 첨가한 맛좋은 요리 같은 드라마다. 멜로 드라마가 갖는 전형적인 구성이 있긴 하지만 마초이면서도 감성적이고 까칠한 카리스마를 갖고 있으면서도 부드러운 최현욱(이선균) 같은 캐릭터나, 조금은 어눌하고 존재감 없어 보이지만 그것이 오히려 매력적인 서유경(공효진) 같은 캐릭터는 이 라스페라라는 음식점에서 만들어지는 파스타 만큼 드라마에 입맛을 돋군다.

전통적으로 사극과 멜로드라마가 경쟁하면 거의 백전백패 멜로드라마의 패배로 이어졌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 드라마가 가진 결코 작지 않은 경쟁력을 이해할 수 없다. '제중원'의 심각함과 '공부의 신'이 떠올리는 현실의 무거움이 버겁다면, '파스타'라는 청춘 멜로의 세계가 매력적으로 여겨질 수 있다. 물론 '내 이름은 김삼순' 같은 비슷한 류의 드라마가 떠올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한계로 지목되지만.

'선덕여왕'이 끝나고 '선덕여왕' 같은 국민드라마는 당장에는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한 편의 국민드라마보다는 오히려 이렇게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들을 골라 즐길 수 있는 작금의 월화의 상황이 더 좋은 것은 왜일까. 다양한 취향들을 느끼게 해주는 월화 드라마의 균형 잡힌 시청률은 그래서 어쩌면 조금은 건강해진 드라마 세상을 꿈꾸게 해준다. 국민드라마 한 편의 독주보다 괜찮은 드라마 여러 편이 공존하는 그런 세상.

‘막장’과 ‘국민’이라는 용어, 남용되고 있다

막장. ‘갱도의 막다른 끝’. 흔히 ‘갈 데까지 갔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말이다. 최근 드라마들이 불륜과 자극적인 설정과 식상할 정도로 반복되는 스토리를 반복하면서, 이 말은 그런 드라마들을 지칭하는 접두어가 되어버렸다. 이 ‘갈 데까지 간’ 드라마에 대한 반발심이 ‘막장’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불러온 것이다.

현재 ‘막장’이라는 용어는 실로 전염병처럼 창궐하고 있다. 오히려 ‘막장’ 아닌 것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일찌감치 막장의 전염병을 터뜨리고 화려한 시청률로 사라진 ‘너는 내 운명’을 비롯해, 현재 그 스피디한 전개로 실험성까지 바라보게 되는 ‘아내의 유혹’이 그 대표주자. 이제 이 전염병은 일일드라마나 가족드라마에 머물지 않고 ‘에덴의 동쪽’이나 ‘꽃보다 남자’같은 미니시리즈 같은 프라임 타임까지 퍼져나가고 있다.

문제는 마구 사용되는 ‘막장’이란 용어의 남용이다. 자극적인 설정과 개연성 없는 스토리를 지적하는 ‘막장’이라는 극단적 표현은 지나치게 남용되다 보니 이제는 오히려 시청자들을 ‘막장’에 익숙해지게 만들고 있다. 게다가 일부 세대가 극단적으로 욕하지만 여전히 그 수요층(그것도 강력한 충성도를 가진)이 존재하는 이들 드라마들의 상업성은, 익숙해진 막장을 더욱 양산할 가능성이 있다. 이제 막장드라마는 그 본질인 조악함을 그 상업적으로 변모한 용어 아래 숨기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막장’이라는 용어는 또 다른 차원으로 남용되던 ‘국민’이라는 용어와 만나 웃지 못할 상황을 만들어낸다. 막장드라마가 국민드라마로도 불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시청률 때문이다.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국민드라마라는 호칭은 질적인 판단이 아니라 양적인 판단(시청률)에 의해 불려지기 시작했고, 막장드라마가 그 시청률에 도달하게 되자 ‘국민’과 ‘막장’이 동거하게 되었다. ‘아내의 유혹’에 혹자는 이렇게 이름 붙였다. ‘국민막장드라마.’

‘국민’이라는 질적인 판단으로 불려져야할 용어가 어느 순간부터 양적인 판단으로 그 의미를 남용하게 되면서 그것이 양적인 팽창(시청률 확보)을 목적으로 수행하는 ‘막장’이라는 단어와 만나고, 그렇게 되자 ‘국민’과 ‘막장’이라는 본래는 먼 거리에 떨어져 있어야할 용어가 아주 가깝게 다가와 하나로 붙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되자 ‘막장’이라는 용어는 이제 그 부정적인 질을 질타하는 용어에서 양적인 성공을 상찬하는 용어로 변질되고 있다.

‘국민’이나 ‘막장’과 같은 드라마에 붙는 말들은 둘 다 모두 질적 판단으로 등장한 용어이다. 전자가 그 질의 긍정적 측면을 지칭한다면, 후자는 그 부정적 측면을 지칭한다. 하지만 이 두 용어는 지금 모두 양적인 의미로 변질되고 있다. ‘막장’이라 아무리 불러도 그것이 부정적인 의미로 들리지 않고(오히려 상업적으로 성공한 드라마로 보이게 된다), ‘국민’이라 아무리 불러도 그 질적인 가치를 느끼지 못하게 되는 상황. 이것이 바로 시청률이란 잣대가 가진 진짜 무서운 얼굴이 아닐까. 이제 이들 막다른 길을 달리는 드라마들에 대한 비판은 용어의 차원을 넘어 좀더 섬세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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