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후예>라는 상황극, 우리의 선택은?

 

KBS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배경은 우르크라는 곳이다. 우르크는 지구 어디에도 없는 곳, 가상공간이다. 드라마의 배경이 가상공간이라는 건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역시 하나의 상황극이라는 걸 말해준다. 막연히 국제분쟁지구라고 얘기되는 곳이고 그래서 우리나라 군인이 파견된 곳이다. 동시에 한 병원의 팀이 의료봉사로 파견된 곳이기도 하다.

 


'태양의 후예(사진출처:KBS)'

이러한 상황극은 누구나 어렸을 때 한 번쯤 상상을 통해서라도 했을 법한 것들이다. 만일 이런 곳이 있다면 거기서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꿈꾸는가. 아마도 여성이라면 멜로를 꿈꿀 것이다. 하지만 남성이라면 총알이 날아다니고 때로는 지뢰가 터지고 벼랑 끝에 간신히 매달린 차에서 여자를 구하고 지진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하며 창궐한 전염병과 싸우고 나쁜 놈들을 물리치는 블록버스터를 꿈꿀 지도 모른다. 우르크는 이 남성과 여성의 판타지를 모두 그려낼 수 있는 최적의 가상공간이다. 멜로를 꿈꾸지만 블록버스터가 되는 최적지.

 

그런데 이 가상공간에서 벌어지는 상황극에 대해 우리는 많은 현실적인 일들을 떠올린다. 해외파병 문제가 가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심각한 문제들을 얘기하고, 심지어 베트남의 한 기자가 이 드라마의 베트남 방영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 공감한다. 지진과 전염병 같은 재난 상황들이 우르크라는 지역에서 연달아 발생하는 장면들이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겪은 세월호 참사부터 메르스 공포까지를 떠올렸을 지도 모른다.

 

물론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심지어 이 드라마는 현실에서 훌쩍 벗어난 우르크라는 공간에서의 가상 스토리를 다루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극은 그 상황이 가상이라고 해도 거기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한 것인가에 대한 현실적 질문을 던지는 면이 있다. 결국 모든 상황극들은 그런 점에서는 현실적이다.

 

<태양의 후예>를 이런 상황극과 거기서의 선택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로 바라보면 왜 우리가 유시진(송중기)이라는 이상화된 인물에 빠져 있는가를 쉽게 알 수 있다.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는 군인의 이미지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그것은 단지 전쟁의 이미지와 상명하복의 계급문화 같은 군인에게서 막연히 피어나는 뉘앙스 때문만은 아니다. 군부독재를 겪어내고 민주화 과정을 통과한 세대라면 군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어쩔 수 없는 일일 게다.

 

유시진은 이러한 막연한 군인의 이미지와 정반대에 서 있다. 그는 상명하복의 계급문화 속에 있긴 하지만 강모연(송혜교)이라는 여자 앞에서는 무시무시한 상황 속에서조차 유머를 날릴 줄 아는 여유를 가진 인물이다. 국가의 명령을 받는 군인이지만 생명을 구하는 것이 우선이고, 특히 사랑하는 여자를 구하기 위해서는 명령도 어기는 인물이다. 강력한 슈퍼히어로지만 약자들에게는 그토록 부드럽고 유머러스하며 자애롭기까지 한 인물.

 

유시진 신드롬이 벌어지고 있는 건 거꾸로 말하면 우리에게 이런 리더가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재난이 벌어져도 책임지려는 리더는 없고 심지어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진상을 끝까지 파헤치는 리더십은 더더욱 없다. 전쟁의 위기 상황들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무고한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지만 이를 타개하려는 노력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선거철만 되면 모두가 국민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말하지만 선거가 끝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국민은 없고 당리당략만이 가득해진다.

 

어떤 면으로 보면 우리나라라는 공간이 참으로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때가 많다. 알고 보면 저 드라마 속에서 벌어지는 가상의 상황들은 우리에게도 벌어졌던 일들이 아닌가. 그런데 그 때마다 우리는 어떤 선택들을 했나. 물론 유시진 같은 이상화된 리더가 있을 리 없고 그런 이상적인 선택들을 하는 경우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몇 번에 하나라도 비슷한 선택들이 있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우리가 이토록 빠져 있는 유시진 신드롬의 이면은 그래서 결코 달달할 수만은 없다

<태후>, 송중기는 군인이 아니라 슈퍼히어로다

 

세상에 이런 군인이 있을까. 명령을 수행하는데 있어 사사로움 따위는 없다. 하지만 소신은 분명하다. “노인과 아이와 여자는 지켜야 한다는 게 그것이다. 아랍의 무바라크 의장이 쓰러지자 자칫 잘못하면 국제분쟁이 벌어질 수 있다며 포기하라는 상관의 명령에도 군인 유시진(송중기)은 의사인 강모연(송혜교)에게 그를 살릴 수 있냐고 묻는다. 군인이라면 무조건 명령에 복종해야 하지만, 그는 노인과 아이와 여자는 지켜야 한다는 자신의 소신을 따른다. 이것이 KBS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남자주인공 유시진이라는 군인의 면면이다.

 


'태양의 후예(사진출처:KBS)'

군인이라는 직업(?)에 대해 우리가 갖는 감정은 이중적이다. 분단국가로 살아오면서 늘 분쟁과 나아가 전쟁의 위협이 끊이지 않는 이곳에서 군인은 우리가 마음 한 구석 기댈 수밖에 없는 존재다. 하지만 이러한 보호하는 존재로서의 군인은 그 직업적 특성 자체가 파괴적이고 위협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오랜 군부 정권의 폭력을 경험해온 우리로서는 그 상명하복의 권력 체계가 얼마나 비극적일 수 있는가를 잘 알고 있다. 우리에게 그것은 심지어 트라우마로 남아있지 않은가.

 

<태양의 후예>의 남자주인공이 군인이라는 사실은 그래서 우리에게 당혹감을 준다. 유시진은 그저 군인이라는 직업만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실제 군인으로서의 임무를 부여받고 분쟁지구에서 위험천만한 작전을 수행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이 인물이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 일상에서 군인이라는 직업에 여성들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군부 정권을 경험하지 못한 현재의 청춘들이라면 모를까(실제로 군인이라는 직업에 대한 젊은 여성들의 선호는 높다고 한다) 그 힘겨운 시절을 겪어낸 세대라면 고개가 갸웃해질 것이다.

 

하지만 심지어 군부 정권 시절과 그것이 가족 내에서도 가부장적 체계를 공고히 하게 했던 시대의 공기를 겪어낸 중년여성들조차 <태양의 후예>의 유시진이라는 인물에 푹 빠져든다. 이것은 남성들도 마찬가지다. 조금 손발이 오글거리기는 하지만 마치 스파이물의 주인공처럼 위험지구를 넘나들고, 노인, 아이, 여자 같은 약자들을 위해 목숨을 거는 이 인물에 빙의된다. 무엇보다 여성 앞에서는 끝없이 농담을 던질 정도로 부드럽지만 임무에 들어가면 액션 영화의 히어로처럼 맹활약하는 그 모습이 일상이 시시한 소시민들에게는 하나의 판타지로 다가온다.

 

게다가 이 군인이 우르크라는 분쟁지구에서 하는 일은 적과 싸우는 일이 아니다. 주민들을 보호하고 전쟁의 후유증으로 깔려 있는 지뢰를 제거하는 작업을 한다. 전력공급을 위해 발전소 시설을 건설하는 민간업체의 보호임무도 맡고 있다. 그리고 유시진은 이곳에서 과거에는 동료였지만 지금은 무기거래상이 된 아구스(데이비드 맥기니스)와 대립하게 된다. 또한 이곳에 벌어진 지진 때문에 무너진 건물 속에서 생존자를 구출하는 작전을 수행한다.

 

물론 이렇게 판타지화되어 있는 유시진의 면면에 의해 가려지는 해외 파병 문제를 도외시할 수 없을 것이다. <태양의 후예>국뽕이라는 해석은 과도한 면은 있지만 적어도 이 드라마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지고 있는 해외 파병의 실체를 한번쯤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 없다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태양의 후예>를 국뽕이라고 쉽게 단정해버리면 남는 문제가 있다. 이 드라마의 판타지에 푹 빠져 일주일의 피곤을 날리고 있는 그 무수한 시청자들은 그럼 모두가 국뽕에 빠져버린 중독자들인가.

 

만일 <태양의 후예>가 군인 판타지를 앞세워 국가를 홍보하고 있는 이른바 완성도 높게 찍은 배달의 기수같은 드라마라면 과연 시청자들이 지금처럼 반응할 수 있을까. 과연 <태양의 후예>는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개인을 정당화하고 있을까. 해외파병 문제를 덮어 버리려는 의도를 갖고 있을까. 아니 의도는 없더라도 실제로 이 드라마 한 편 때문에 해외파병 문제가 덮어지기는 하는 걸까.

 

<태양의 후예>는 일단 군인 판타지를 그리고 있지 않다. 유시진이라는 군인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이상화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인물은 군인이라기보다는 슈퍼히어로에 가깝다. 물론 날라 다니고 한다는 의미의 슈퍼히어로가 아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소신을 끝까지 지키고 그것을 생각만이 아니라 실행하는 인물로서의 슈퍼히어로다. 자신이 죽을 수도 있지만 붕괴된 건물 속으로 뛰어들고, ‘만약자신이 죽을 것을 대비해 부상자의 상태를 팔목에 꼼꼼히 적어놓는 건 단지 그런 임무를 부여받은 군인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오히려 유시진은 군인이라는 위치 때문에, 국가와 개인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는 인물에 가깝다. 국가는 그를 부르지만 그는 자꾸만 자신의 연인의 안부와 안전이 걱정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영화 한 편을 보고 싶지만 갑자기 부름을 받아 전장으로 뛰어가야 하는 그다. 재난지구에서조차 사사로운 욕심을 채우려는 진영수(조재윤) 같은 인물이 그걸 가로막는 유시진에게 국민의 세금운운하며 몰아 부칠 때, 그는 국가를 위한 국민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국가를 얘기한다.

 

<태양의 후예>가 제아무리 유시진의 판타지에 빠져들게 만들어도, 해외파병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우리가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군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유시진 판타지가 군인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희구하는 이상화된 슈퍼히어로(휴머니즘 같은 가치를 수행하는)이기 때문에 생겨나고 있어서다. 유시진은 그저 군인이 아니라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이상화된 존재다

<태양의 후예> 판타지, 대중의 무엇을 저격했을까

 

하이힐과 스커트. 지진이 발생해 초토화된 재난 지역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옷이다. 그만큼 경황없이 졸지에 벌어진 재난상황을 잘 말해준다. 하지만 그 불편한 옷을 입고 재난 지역의 부상자들을 치료하러 동분서주하는 강모연(송혜교)의 모습은 그래서 더더욱 절절해진다. 하이힐의 굽을 손수 떼어내고 재난 현장을 뛰어다니는 그녀의 발은 온통 상처투성이로 빨갛게 물들고, 그녀에게 치료받은 한 외국인이 갑자기 그녀를 붙잡더니 자신이 신던 신발을 내민다.

 


'태양의 후예(사진출처:KBS)'

KBS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우르크에 발생한 지진으로 재난 지역에서 목숨을 걸고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강모연의 이 장면은 휴머니즘의 뭉클함을 선사한다. 하지만 <태양의 후예>의 이야기는 거기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지진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안 유시진(송중기)은 휴가를 반납하고 곧바로 우르크로 날아갈 만큼 마음이 급하다. 거기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지만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강모연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르크에 도착한 유시진은 군인답게 재난 지역에서의 임무가 우선이다. “옆에 있어주지 못합니다라고 선을 긋지만 그가 먼저 하는 일은 강모연의 그 신발 끈을 단단히 묶어주는 일이다. “다치지 말라는 그의 한 마디는 그 어떤 사랑고백보다 더 절절하게 그녀의 마음을 흔든다. 아마도 강모연에 몰입하며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도 똑같이 느꼈을 것이다. 그 무뚝뚝하게 툭 던지는 유시진의 말 한 마디에, 매순간이 매력적이지만 동시에 위험하게 느껴지는 그를 밀어내던 강모연의 마음이 열리고 있다는 것을.

 

<태양의 후예> 신드롬이다. 6회 만에 28.5%(닐슨 코리아)라는 놀라운 시청률을 기록했다. 시청률만이 아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태양의 후예>를 얘기하고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이면 <태양의 후예>OST가 흐른다. 송중기와 송혜교는 그 신드롬의 중심에 섰다. 미소년의 얼굴과 유머에 상남자의 몸과 행동을 보여주는 송중기가 여성들의 마음을 심쿵하게 하는 진원지라면 송혜교는 여성들이라면 빙의되고 싶은 이 놀라운 로맨스의 주인공이다.

 

<태양의 후예>의 로맨스는 지금껏 우리가 봐왔던 멜로드라마의 그것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어마무시하다. 갑자기 호출을 받은 유시진이 강모연과 이별하는 곳은 그저 그런 일상적인 공간이나 방식이 아니다. 병원 옥상에서 헬기를 타고 떠나가는 유시진을 보내는 강모연은 이미 그 비현실적이지만 헤어 나올 수 없는 판타지 로맨스의 운명적인 여주인공이 되리라는 걸 일찌감치 실감했을 게다.

 

우르크라는 가상의 분쟁지구에서 운명적으로 재회하고, 총알이 날아다니고 지뢰가 깔려 있지만 동시에 비현실적으로 파란 바다 위를 유시진과 함께 보트를 타고 달리는 강모연의 로맨스. 위험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태양의 후예> 특유의 로맨스 방식이다. 자동차가 벼랑 끝에 매달려 이제 추락하기 일보 직전에 유시진이 나타나 차를 절벽 밑으로 떨어뜨리고는 강모연을 구해내는 장면은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하지만 그 비현실은 이미 조금씩 빠져들어 이제는 헤어 나올 수 없는 <태양의 후예>의 판타지 속에서 선선히 받아들여진다.

 

<태양의 후예>가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대중들의 마음을 저격한 건 유시진 같은 강력하고도 부드러운 이상화된 존재에 대한 판타지 때문이다. 군인으로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살아갈 정도로 거친 삶을 살지만 그것이 대단한 이상이나 이념 때문이 아니라 그저 노인과 아이와 여자는 지켜야한다는 자신의 소신 때문이라고 말하는 존재. 노인과 아이와 여자들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지독한 현실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만한 판타지가 있을까.

 

강모연은 그래서 우리들의 이 판타지를 대리해주는 존재로서 <태양의 후예>의 중심에 선다. 시청자들이 그러한 것처럼 그녀가 느끼는 불안감은 그것이 커질수록 강렬한 사랑으로 바뀌어간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우르크라는 분쟁지구이자 재난지구가 된 공간을 통해 조금씩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유시진이 위험하게 살아가는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을 포함한 세상 누구도 언제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위험 앞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다만 그것을 직시하고 부딪치는 사람과 피하려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워낙 강렬한 유시진의 판타지가 있기 때문에 송중기라는 배우에게 집중되는 면이 있지만, 또한 강모연이라는 대중들의 판타지를 대리해주는 존재를 연기하는 송혜교에 대한 칭찬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녀는 이 비현실적으로까지 보이는 로맨스의 중심에서 그것을 현실적으로까지 느끼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그 누구보다 자연스럽게 소화해내고 있다. 모든 이들이 빙의되고픈 존재가 되어준다는 것. 이만큼 어렵지만 빛나는 일이 있을까

<태양의 후예>, 바쁜 의사와 빡센 군인의 로맨스로 펄펄

 

의사면 남친 없겠네요. 바빠서.” “군인이면 여친 없겠네요. 빡세서.” KBS 새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 첫 방송은 김은숙 작가의 작품답게 거침이 없었다. 첫 회에 유시진(송중기)과 강모연(송혜교)이 만나고 가까워지는 과정이 물 흐르듯 빠르게 전개되었고 또한 서대영(진구)과 윤명주(김지원)의 계급이 다른 군인들 간의 관계는 향후 전개될 두 사람의 이야기에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했다.

 


'태양의 후예(사진출처:KBS)'

바쁜 의사와 빡센 군인의 로맨스. 사실 멜로드라마의 가장 큰 약점으로 지목됐던 것이 극성이 약하다는 점이라면 왜 <태양의 후예>가 이 같은 의사와 군인의 로맨스를 다뤘는가가 이해될 법도 한 부분이다. 사극을 빼놓고 보면 현대극에서 가장 극성이 강한 장르가 의학드라마와 전쟁드라마가 아닌가. 물론 최근에는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는 스릴러 장르가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멜로드라마가 스릴러를 덧붙이기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관계와 갈등이 상처를 넘어서 죽고 사는 문제와 연결되는 직업군으로 의사와 군인만큼 센 극성을 만드는 인물군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미 첫 회가 충분히 입증한대로 총알이 날아다니고 칼부림이 다반사인 전쟁터가 일터가 된 유시진과 역시 생사가 오가는 응급실이 일터인 강모연의 만남은 강렬할 수밖에 없다. 그저 평범하게 만나서 감정을 나누는 식의 일상적인 멜로드라마가 아니라 전쟁터를 오가는 이들의 멜로드라마다. 갑작스런 긴급 상황에 데이트 약속을 미루고 떠나는 유시진이 강모연에게 병원 건물 옥상에서 헬기를 타고 떠나기 전 다음 데이트 약속을 하는 장면은 이 멜로드라마가 가진 특별한 스케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마치 슈퍼히어로물에서 지구를 구하러 떠나는 듯한 남자 주인공과 그를 보내는 여자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한.

 

향후 이 드라마는 우르크라는 총알이 날아다니는 가상의 낯선 땅에서 벌어지는 군인과 의사들의 사랑 이야기를 담을 것이라고 한다. 첫 회 마지막 장면에서 아프가니스탄의 분쟁지구로 날아가는 비행기가 보여주는 것처럼 이 드라마는 그 성격상 스펙터클을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많은 블록버스터 드라마들이 스펙터클에 치중하다 엄청난 투자비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던 그 전철을 적어도 이 드라마만큼은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전쟁과 사랑이라는 거대한 스케일의 스펙터클 속에서도 김은숙 작가의 확고한 지향점은 결국 사랑과 휴머니즘 같은 사람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블록버스터란 볼거리가 아니라 그 인물과 스토리의 촘촘함에서 나오는 것이란 걸 이 멜로의 대가는 잘 알고 있다. 군인이라는 여성들에게는 조금은 낯선 남성적인 등장인물을 세우면서도 첫 회부터 달달한 로맨스의 설렘을 만들어내는 건 이 작가가 가진 공력을 실감하게 한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송중기, 송혜교, 진구, 김지원의 대본을 맛깔스럽게 살려내는 연기다. 군 제대 후 더 남성적인 매력을 보여주는 송중기와 귀여우면서도 당찬 매력의 송혜교, 그리고 진지한 남성의 향기가 느껴지는 진구와 톡톡 쏘는 차가움과 뜨거움을 동시에 갖고 있는 듯한 김지원의 괜찮은 조합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케이블 드라마의 성장으로 최근 지상파 드라마들은 그 위기의식이 확실히 높아졌다. 하지만 적어도 <태양의 후예>만큼은 지상파 드라마의 자존심을 제대로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더욱 커진 스케일과 멜로와 액션이 넘나드는 스토리. 그리고 지상파 드라마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요소들을 가져오되 그것을 세련되게 구사하는 대본. 어쩌면 이 드라마는 위기에 빠진 지상파 드라마의 대안을 보여줄 지도 모르겠다.

관객, 스크린, 노이즈까지, 다 가진 <연평해전>에 없는 하나

 

영화 <연평해전>은 지독할 정도로 상업적인 영화다. 누군가 이 영화가 정치적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일면일 뿐이다. 정치적인 것, 그 위에 상업적인 것이 뒤덮고 있다. 먼저 영화관 풍경이 그렇다. 평일 840분에 하는 조조영화를 보러간 필자는 그 시간에 영화관이 가득 메워져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른 조조시간도, 그 공포라던 메르스의 여파도 뚫고 가득 메운 관객들.

 


사진출처: 영화 <연평해전>

그런데 그 관객들의 거의 대부분이 같은 제복을 입고 있다는 사실은 조금 낯설게도 다가왔다. 군부대에서 단체 관람을 온 것이다. 해군 6만 병력이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외부단체관람을 나섰다는 뉴스는 <연평해전>이 기획단계에서부터 철저히 상업적인 전략을 구사했다는 걸 말해준다. 이미 제작에서부터 육, , 공군이 모두 참여했고, 그 이야기는 군인들의 단체관람을 어느 정도는 예비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정도의 예비 관객을 갖고 있는 영화라면 실패할 위험성의 거의 없다. 영화적 재미를 떠나서 이건 군인들의 자발적인 선택만은 아닐 것이다. 보라면 봐야 하는 게 군인들이 해야 하는 일이다.

 

기본 관객이 준비된 데다, 무슨 일인지 멀티플렉스 체인 영화관들은 일제히 이 영화의 상영관을 한없이 늘려놓았다. 첫날 667개였던 스크린 수가 5일 후 1013개까지 늘어났다. 누군가의 압력이나 지시에 의해 일어난 일이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나오지만 사실 이건 지극히 상업적인 선택이다. 이미 앞에서 말했듯이 이 영화가 군인 같은 예비 관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영화관들로서도 땅 짚고 헤엄치는 장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스크린 수도 늘렸을 것이다.

 

물론 그 안에는 보수적인 입장으로 애국주의를 설파하려는 정부의 뜻이 들어 있을 지도 모른다. 이것 역시 음모론에 불과한 것이지만 영화가 연평해전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건 이 땅에 사는 국민들로서는 그 누구도 그 의미를 부인하거나 퇴색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젊은 장병들이 희생됐다는 건 어떠한 정치적인 입장을 뛰어넘는 실로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러니 영화의 애국주의적 입장은 휴머니즘과 맞물려 자연스럽게 전해질 수 있다. 그런 애국주의적인 잣대만이 과연 옳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여간 애국주의 마케팅을 쓴다고 해도 영화관으로서는 오히려 득이 되는 일이다. 그건 잘만 풀리면 엄청난 상업적 이득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일이니까. 그러니 이러한 선택 또한 지극히 상업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만일 이 애국주의 마케팅이나 스크린 독점 같은 이슈들이 터져 나오면서 어떤 노이즈가 만들어진다면 그건 이 상업적 선택의 덤과 같은 것이다. 이 노이즈를 보수와 진보 같은 전선을 가르는 방식으로 활용하는 마케팅은 이미 저 <디 워>에서 그 효과를 본 바 있다. 이런 마케팅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힘을 발휘한다.

 

<연평해전>은 그러니 확보된 관객에 확보된 스크린 수 게다가 준비된 노이즈까지 완벽하게 상업적인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모든 걸 다 가진 영화가 갖지 못한 한 가지가 있다. 그건 영화적 재미다. 상업적인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영화가 주어야 하는 긴장과 이완, 중간 중간을 채워주는 소소한 에피소드의 재미가 하나하나 축적되어 후반부의 거대한 감동으로 이어주는 그런 흐름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이 영화의 백미는 결국 당일 날 벌어진 연평해전의 그 핏빛 전쟁 속에서도 숭고하게 희생하고 버텨내려 했던 그 장병들이 주는 먹먹한 감동이다. 하지만 그것은 영화가 주는 감동이라기보다는 실제 그 연평해전에서 희생된 장병들에 대한 애도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 장면에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분들이 그렇게 차가운 서해 바다 한 가운데서 어떻게 싸웠는가를 더 생생하게 들여다보며, 당시 편안히 월드컵을 즐겼던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의미 있다면 바로 그 점 한 가지일 것이다.

 

<연평해전>은 대단히 상업적인 영화지만 그 상업적이라는 것은 영화가 대중적이라거나 웰 메이드라는 걸 뜻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소재와 마케팅적으로 상업적인 영화를 뜻한다. 영화는 본래 상업주의를 지향하고 있으니 뭐라 할 말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가 영화적으로 대중적인 것이 아니라 영화 외적으로 대중적이어서 소비되고 있다는 사실은 21세기라는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시대착오적인 것이 아닐까. 하긴 마지막 분단국으로 남아있는 우리네 현실이 시대착오적이니 어쩌겠는가. 여전히 보수니 진보니 하며 편 가르기만 하면서 민생은 돌보지 않는 정국도 그러하고.



<진짜사나이>, 군대가 아닌 군인에 맞춰져야 하는 이유

 

배달의 기수가 된 샘 해밍턴.’ <진짜사나이> 백골부대 GOP편에서 샘 해밍턴이 GOP 근무를 서는 병사들에게 따뜻한 꿀물을 배달하기 위해 살인적인 경사의 계단을 오르내리는 장면에 쓰인 배달의 기수라는 자막에는 이 프로그램이 가진 고충과 위트가 동시에 묻어난다. 항간에는 군 홍보 프로그램이 아니냐는 시선에 의해 <배달의 기수>라는 비아냥 섞인 말까지 나왔었다. 배달의 기수라는 의미를 샘 해밍턴이 꿀물 배달하는 장면으로 뒤틀어 위트 있는 웃음을 주었던 것.

 

'진짜사나이(사진출처:MBC)'

여기에는 <진짜사나이>만의 고충이 들어가 있다. 어쨌든 군 부대가 소재가 될 수밖에 없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니 그 군대를 소개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예의가 될 것이다. 하지만 군 홍보에 대한 대중들의 관점은 민감하다. 남북 대치상황의 긴장감이 때로는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했었다는 것을 대중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진짜사나이> 해군편에서 NLL 관련 장면들이 나오면서 생겨난 비판적인 시선들은 바로 그런 정서에서 비롯된다.

 

<푸른거탑>이나 레밀리터리블같은 군대 소재 콘텐츠들이 화제가 되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군 소재는 분명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어떤 것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굉장히 민감하면서도 중요한 관건이 된다는 점이다. 지난 해군편이 부진했던 것은 단순히 NLL 관련 정치적인 논란 때문만이 아니다. 거기에는 일련의 육군부대들을 다뤘던 콘텐츠 속에 담겨져 있는 호감 가는 정서가 잘 드러나지 않았다.

 

다시 육군으로 돌아온 백골부대 GOP편이 해군편과 비교되는 지점은 생활관 장면이 주는 정서다. 매일 몇 차례씩 공포의 까치계단과 독수리계단을 오르내리는 고행을 해야 하고 끝없이 내리는 눈과 전투를 벌여야 하는 병사들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생활관의 모습은 <진짜사나이>의 핵심적인 재미가 거기서 비롯된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노래를 하며 함께 어우러지는 생활관의 풍경과 그 속에서 짓궂은 선임들에게 활력소 같은 웃음을 전해주는 김형환 이병의 어리버리함은 대표적인 사례다.

 

신병으로 모든 게 낯설고 어색할 수밖에 없는 김형환 이병이 한때 트로트 앨범을 내기도 했던 김정준 상병의 노래를 듣고 눈치 없는 평가를 냈다가 쩔쩔매는 장면은 아마도 군대를 다녀온 이들이라면, 아니 사회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구축함이 바다를 달리고 헬기가 날아오르는, 마치 적과 대치하는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블록버스터급 훈련보다 더 대중들을 주목시키는 건 거기서 살아가는 우리네 아들이자 동생이자 오빠인 군인들의 애환이다.

 

따라서 <진짜사나이>가 집중해야 하는 건 군대 그 자체보다는 한 사람으로서의 군인이 될 것이다. 군대가 중심이 서게 되면 말 그대로 배달의 기수가 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이 오가는 군인들의 이야기가 중심에 서게 되면 샘 해밍턴이 동료 병사를 위해 순례자(?)가 되어 꿀물을 날라주는 그런 따뜻한 의미에서의 배달의 기수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런 점에서 이번 백골부대 GOP편이 집중적으로 생활관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병사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은 이 프로그램의 정서가 되살아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군대라는 소재는 자칫 스펙터클이 될 수 있다. 군대의 위용을 자랑하는 블록버스터급의 화려한 장면들은 물론 방송에 참여한 해당 부대의 욕구일 수 있지만 그 부대에 대한 스펙터클이 대중들의 박수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안에서 소소히 살아가는 군인들의 이야기가 훈훈하게 살아날 때 대중들은 더 공감하게 될 것이다. <진짜사나이> 백골부대 GOP편은 그 가능성을 다시 보여주었다.

특이한 한국형 리얼리티TV, 자리잡고 있나

 

<진짜사나이>의 영향일까. SBS는 <심장이 뛴다>를 정규 편성했고 KBS는 <이상무>를 파일럿으로 방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진짜사나이>가 군인을 소재로 했다면 <심장이 뛴다>는 소방관을, <이상무>는 경찰을 소재로 하고 있다. 항간에는 비슷한 콘셉트 베끼기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맞는 얘기다. 분명 관찰카메라를 내세운 <진짜사나이>가 포문을 연 것은 사실이니까.

 

'심장이 뛴다(사진출처:SBS)'

하지만 이 군인이나 소방관(119 대원), 경찰 소재의 프로그램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군인을 소재로 한 예능은 89년 시작해 96년까지 방영되었던 <우정의 무대>가 있었고, 소방관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도 <긴급구조 119> 같은 프로그램이 있었으며, 경찰 역시 <경찰청 사람들> 같은 프로그램이 있었다. 즉 형식은 다르지만 소재는 이미 다뤄졌던 것.

 

최근 들어 소방관이나 경찰 소재의 예능 프로그램이 연예인이 출연하는 관찰카메라 형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데는 그만한 우리 예능만의 역사적 흐름이 있다. 즉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서구에서 생겨난 리얼리티TV의 영향이 그것이다. 즉 90년대 <경찰청 사람들>의 탄생 이면에는 <캅스(미국)> 같은 경찰 소재의 리얼리티TV가 있었고, <긴급구조 119> 역시 <Rescue 911(미국)> 같은 소방관 소재의 리얼리티TV가 있었던 것.

 

하지만 이 리얼리티TV의 경향을 이어받아 <빅브라더>나 <서바이버> 같은 서구의 리얼리티쇼가 21세기에 등장하지만 이 경향이 우리나라에까지 그대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일반인 출연자에 대한 사생활 노출에 정서적인 반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반인 대신 연예인을 출연시키고 이를 캐릭터쇼로 만든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하게 되었다. <무한도전>은 그 시작점이고 그 후로 <1박2일>이나 <런닝맨> 같은 흐름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즉 <진짜사나이>를 비롯해, <심장이 뛴다>, <이상무> 같은 관찰 카메라를 이용한 예능 프로그램은 이미 90년대에 등장했던 리얼리티TV에 우리 식의 연예인 출연 리얼리티쇼가 접목된 형태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프로그램에 연예인만이 아니라 일반인 출연자들도 함께 등장한다는 점이다. 즉 어찌 보면 정서적인 반감 때문에 일반인 출연 리얼리티쇼가 나오지 못했던 21세기 초의 예능 경향이 지금에 와서야 조금씩 열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즉 연예인과 일반인이 함께하는 관찰 카메라형 리얼리티쇼는 일반인 리얼리티쇼로 가는 과도기적인 예능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예능 프로그램에 있어서 이른바 ‘베끼기 논란’이 자주 벌어지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MBC 예능에서 포문을 연 이른바 ‘관찰 카메라’ 예능이 한때 트렌드를 이끌었던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형식을 조금씩 대체해가는 변화의 지점에 지금의 예능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즉 이 형식을 주도한 MBC 예능이 이 변화의 선봉에 서 있는 것만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그 변화에 동승하는 관찰 카메라 형식의 예능들을 모두 베끼기라 말하기는 이제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무한도전>이 있어서 <1박2일>도 <남자의 자격>도 또 <런닝맨> 같은 프로그램도 가능했던 것처럼, <진짜사나이> 같은 프로그램이 있어 좀 더 다양한 소재의 관찰카메라 예능이 나오는 것이 그다지 예능 전체의 발전을 위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다만 형식을 가져왔다고 해서 그 소재 자체가 가진 특성들에 맞는 저마다의 스토리텔링을 개성화하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저 소재만 달리할 뿐 스토리텔링 방식을 똑같이 한다면 그것은 창의적인 재해석이 아니라 진짜 베끼기에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군인 소재의 관찰 카메라 예능이 뜨자, 소방관, 경찰 소재의 예능이 나오는 것은 그 자체로는 잘못된 일이 아니다. 거기에는 그만한 우리네 방송의 특유한 흐름과 역사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다음부터다. 소재만 살짝 바꿔 너도나도 비슷한 스토리를 반복하게 된다면 자칫 이 새로운 트렌드로 각광받는 관찰 카메라 예능은 너무 빠른 소비를 맞을 수도 있다. 지금의 이 변화들은 소재적으로 풍성해지는 결과가 될 것인가. 아니면 짝퉁 예능들이 쏟아져 나와 오히려 소비만 빠르게 하는 결과가 될 것인가. 주목해야할 시점이다.

<진짜사나이>, 왜 손진영만 뜨지 못할까

 

이것은 캐릭터의 문제인가 아니면 태도의 문제인가. 최고의 화제 예능 <진짜사나이>의 모든 출연자들이 저마다 펄펄 날고 있는 반면, 구멍병사 손진영만 유독 주목받지 못하는 건 무슨 이유 때문일까. 최근에는 그저 주목받지 못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밉상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중이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상대적인 이미지를 만들었을까.

 

'진짜사나이(사진출처:MBC)'

체력에서나 생활 습관 등에서 군대와 영 어울리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찌감치 샘 해밍턴과 함께 그는 구멍 병사로 자리매김 하기도 했다. 하지만 샘 해밍턴이 외국인이라는 사실과 저질 체력에도 불구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통해 오히려 구멍 이미지를 반전시켰던 데 반해, 손진영은 체력도 약한데다 훈련에 임하는 자세 또한 장난스러운 면모를 보이면서 밉상이 되었다.

 

체력의 문제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서경석처럼 나이가 지긋한 병사에게서 청춘의 열혈 체력을 기대하는 건 애초부터 잘못된 일이고, 샘 해밍턴이나 손진영처럼 젊다고 해도 군대가 요구하는 체력은 늘 그 이상일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자세다. 제 아무리 체력이 못 따라간다고 해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것은 오히려 박수 받을 일이다. 구보를 하다가 심지어 넘어지기까지 하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샘 해밍턴이 박수 받은 건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이기자 부대에서 훈련을 받는 과정에서 보여준 손진영의 모습에서는 도에 지나친 장난스러움이 엿보였다. 스쿼트를 하면서 연거푸 방귀를 뀌고, 윗몸 일으키기를 장난처럼 하더니 심지어 선임의 기록을 세지 않고 멍하니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팔굽혀펴기 운동을 하면서도 그의 장난기는 멈추지 않았다. 선임들은 손진영의 진지하지 못한 모습을 수차례 지적했지만 그저 미안하다고 할뿐 아랑곳 않는 모습이었다.

 

물론 <진짜사나이>가 진짜 FM 군대생활은 아닌 만큼 약간의 여지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연예인이라도 일반병사들과 함께 훈련을 하는 만큼 최소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나 진지한 자세는 잃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군대에서 고생하는 일반병사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기 때문이다. 그 넘어설 수 있는 여지와 넘어서는 안되는 영역 사이에서 균형을 이룰 때 연예인과 일반병사들이 함께 하는 <진짜사나이>는 어떤 소통의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것은 어쩌면 손진영의 캐릭터일 수 있다. 손진영은 <세바퀴>에 나와 자신이 전역 7년차이고 당시에는 A급 병사였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물론 이것 역시 웃음을 만들어내기 위한 진술이었을 수 있지만, 적어도 현역을 다녀온 손진영이 이런 군대의 분위기를 모를 리가 없을 게다. 따라서 예능적으로 보면 샘 해밍턴과 겹치는 구멍 병사의 캐릭터에서 조금은 차별점을 찾으려 했을 지도 모른다. 구멍 병사에서 밉상 병사로.

 

하지만 이것은 방송에 도움이 될 지는 몰라도 손진영의 이미지에 그다지 큰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 뭐든 긍정적인 이미지로 활력을 만들어내는 류수영, 새내기지만 풋풋한 청춘을 보여주는 박형식, 두 말할 필요 없는 열혈병사 장혁, 최고참이지만 분위기를 선도하는 김수로, 저질체력에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일반병사들과의 소통을 이끄는 서경석 그리고 외국인이지만 군대 체험을 하며 군인들의 대단함을 온몸으로 공감해주는 샘 해밍턴. 이렇게 어느 한 구석의 호감을 먼저 만들어놓아야 가끔 하는 밉상 짓도 용인이 되는 법이다.

 

지금 손진영에게 필요한 것은 캐릭터가 아니라 진정성이다. 그렇다고 그의 모습이 억지로 만들어진 거라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군대와 군인에 대한 경의나 진지한 자세는 캐릭터 이전에 이 프로그램에서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물론 손진영이 본래 예의 없고 진지하지 못한 인물은 아닐 것이다. 다만 관찰예능이라는 틀에 아직 적응이 덜된 데서 비롯된 일일 게다. 대기만성이라고 했다. 구멍에서 밉상까지 간 손진영. 그가 어떤 반전을 보여준다면 그 감흥은 오히려 더 커질 수 있다.

연예병사 문제, 일부 연예사병만의 문제 아니다

 

이것은 군인도 아니고 군대도 아니다. 그저 슈퍼갑이 되어버린 연예인들이 있을 뿐이고 그 연예인들을 대동해 갑 행세를 하는 이벤트 회사가 있을 뿐이다. <현장21>이 지난 주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온 ‘연예병사들의 화려한 외출’에 이어 방영된 연예병사와 국방홍보원을 둘러싼 ‘불편한 진실’은 이것이 단지 몇몇 연예병사들만의 돌출적인 행동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현장21(사진출처:SBS)'

평상시 휴대전화를 당연하다는 듯 사용하고, 사복 차림에 사제 가방을 이용하며, 대형TV와 게임기, 과자 등이 모두 구비된 사실상 게임룸에 가까운 체력단련실을 쓰는 모습은 군인이라 말하기 어려웠다. 그들은 계급에 걸맞는 군대의 호칭을 사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연예인 선후배 관계처럼 형 동생 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고, 이른바 ‘스타일’을 살리기 위해 외출을 나와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른다는 건 이들이 그저 연예인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시켜주었다.

 

국방홍보원에서 전에 근무했다는 한 제보자는 연예병사가 국방홍보원에서는 슈퍼갑이라고 증언했다. 갖가지 말도 안되는 이유를 붙여 외박이나 외출을 일삼고, 심지어 법인카드를 사용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이렇게 이들이 슈퍼갑 행세를 하게 된 이유는 총체적인 관리 부실에서 비롯된다. 1년에 무려 50회, 심지어 72회까지 각종 행사에 불려가는 연예병사들의 요구사항을 묵살하기 어렵다는 것. 게다가 이 행사들에는 군대와 관련 없는 것들까지 끼어 있어 연예병사를 사적으로 활용한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갖게 만든다.

 

즉 그만한 국방홍보원측의 약점이 있기 때문에 연예병사들을 제대로 관리하기가 어려웠으리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들의 관리를 군인이 아닌 공무원이거나 PD들이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제보자의 증언대로 국방홍보원은 군대라기보다는 회사처럼 운영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다보니 군대에서는 더더욱 일어나지 말아야할 비리의 정황까지 포착되고 있다. 위문열차 공연단에서 활동했다는 소영씨(가명)는 인사식으로 엉덩이를 만지고 술자리에 불려가 술집여자처럼 옆에 앉혀놓고 술을 따르라고 하고 심지어는 입에 넣었던 고기를 빼서 사랑테스트라며 먹으라고 했다는 충격적인 증언을 했다.

 

또한 공연에 필수적인 조명이나 카메라 등을 외주로 활용하면서 떡값이 오갔다는 증언도 잇따랐다. 매번 공연을 하기 때문에 각종 이권에 갑이 될 수밖에 없는 국방홍보원은 어쩌면 그 자체로 각종 비리들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국방홍보원에 들어가기 위해 연예인 기획사들이 로비를 하기도 하고, 그동안 사회적인 파장까지 만들었던 여러 차례의 연예병사 문제들이 불거졌지만 5년여 동안 단 한 차례도 문책받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켜온 관리책임자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지난 1월 450일 중 무려 94일을 군대 밖에 지낸 비로 인해 불거져 나온 연예병사의 휴가와 외박 문제는 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연예병사 시스템의 문제였던 셈이다. 연예사병 휴가일수로만 따지면 비의 94일은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붐은 무려 150일을 군 밖에서 보냈고, 다이나믹듀오의 개코와 최자는 각각 116일, 108일을 휴가나 외박으로 보냈다. 이런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최근 5년 간 징계를 받은 병사는 비, 정재일, 이진욱, 김재원 이렇게 네 명이 전부다. 즉 징계라는 것도 결국 사회의 눈치 보기와 제스처에 불과했다는 얘기다.

 

사실 모든 군대를 다녀온 연예인들이 이들 같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연예병사로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와 마치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각종 토크쇼에 나와 고생담을 떠벌이는 것이 이제는 더 이상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일이 되어버렸다. 군인이 아니라 연예인으로서 무엇 하나 통제받지 않고 마치 회사를 다니듯 복무한 군대 생활이 어떻게 자랑거리가 될 수 있을까.

 

슈퍼갑이 된 연예병사와 이들을 앞세워 갑 행세를 하는 국방홍보원의 문제는 그것이 모두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대중들의 공분을 일으킬 만한 일이다. 군 사기진작이 이들의 존재근거가 아니었던가. 군인으로서의 자세를 잃어버린 이들에게서 어찌 군 장병들의 사기 진작이 가능하겠는가. 상대적 박탈감만 더 할 일이다.

BLOG main image
더키앙
문화 속에 담긴 현실을 모색하는 곳
by 더키앙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4501)
블로거의 시선 (96)
네모난 세상 (4290)
SPECIEL (19)
문화 코드 (1)
생활의 발견 (23)
술술 풀리는 이야기 (4)
스토리로 떠나는 여행 (10)
책으로 세상보기 (8)
문화 깊게 읽기 (4)
스토리스토리 (24)
사진 한 장의 이야기 (4)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다 (7)
대중문화와 마케팅 (9)

달력

«   2018/08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13,090,757
  • 283577
textcubeget rss

더키앙

더키앙's Blog is powered by Tistory.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더키앙 [ http://dogguli.tistory.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