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닥터>도 피해가지 않는 멜로의 족쇄

 

사랑해요.” SBS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강동주(유연석)가 윤서정(서현진)에게 불쑥 그렇게 말하자 윤서정은 오글거림을 못 참겠다는 듯 그러지 마라하고 정색한다. 타인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 공과 사는 구분하자는 윤서정. 그래서 병원사람들이 눈치를 챈 것 같다며 두 사람은 짐짓 대판 싸우는 모습을 가짜로 연출하기도 한다.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물론 드라마 첫 회부터 강동주의 마음이 윤서정에게 있었다는 건 다소 급작스럽게 키스를 하는 장면으로 이미 예고된 바 있다. 그러니 이런 달달한 상황이 언젠가 시작될 거라는 건 시청자들도 알고 있었을 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달달해진 <낭만닥터 김사부>에 남는 아쉬움은 뭘까.

 

그건 아무래도 이 작품이 갖고 있는 사회성 같은 것들이 이 달달한 멜로에 의해 희석되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제목이 지시하고 있듯이 김사부(한석규)라는 독특한 철학을 가진 의사의 다소 낭만적이지만 지금의 현실이 귀기울여야할 이야기들을 그 기획의 의도로 갖고 있다. 그간 김사부가 던진 한 마디 한 마디가 답답한 현실에 대한 속 시원한 일갈이었으니.

 

<낭만닥터 김사부>는 돌담병원이라는 현실의 축소판 같은 공간을 통해 기득권 세력들의 부조리한 시스템을 고발하기도 하고, 갑작스레 벌어진 위기 상황을 통해 제대로 된 콘트롤 타워가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최우선이 되어야 할 것은 사람의 생명이라는 걸 거듭 강조했다. 요즘 같은 답답한 시국에 이런 이야기들은 그 울림이 더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낭만닥터 김사부>도 역시 남녀 주인공의 멜로는 피해갈 수 없는가 보다. 그것이 이야기상 개연성이 없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시청자들이 멜로보다는 좀 더 사회성 짙은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펼쳐나가기를 바라는 건 왜일까. 사적인 멜로가 주는 달달함이 지독한 현실을 접하고 있는 작금의 시청자들에게는 그다지 큰 감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강동주와 윤서정의 달달한 멜로 전개가 펼쳐지면서 이야기는 느슨해졌다. 긴박하게 굴러가던 돌담병원의 응급실은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물론 강동주와 도인범(양세종)이 수술 과정에서 대립각을 세우는 장면이 있었지만, 그 이야기보다 강동주와 윤서정의 멜로 상황과 그걸 눈치 채고는 눈을 찡긋 해주는 오명심(진경)이나 기묘한 눈빛을 던지는 장기태(임원희)의 다소 코믹스런 장면들이 더 많이 채워졌다.

 

이렇게 되면서 바로 드러나는 건 김사부의 분량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김사부는 신회장(주현)이 폐암 말기라는 사실을 알고는 심장수술을 접으려고 하고 그러다 결국 신회장 스스로가 수술 강행을 결정함으로써 상황은 원점으로 다시 돌아갔다. 강동주와 윤서정 멜로의 급 전개는 김사부를 보조적인 위치에 머물게 했다.

 

물론 이건 잠시 쉬어가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토록 몰아치며 긴박감 넘치는 사건들을 통해 통쾌한 김사부의 일침을 봐왔던 시청자들로서는 너무 느슨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멜로는 당연히 존재하고 또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큼 이 드라마가 지향하려는 방향성을 매회 잊지 않고 밀고 나가는 힘이 중요하다. 드라마가 갖고 있는 주제의식과 조금은 쉬어가는 달달한 멜로 사이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낭만닥터>, 과잉도 설득 시킨 이철민의 연기

 

조폭이 아니라 아버지였다? SBS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윤서정(서현진) 목에 낫을 들이대고 수술실에 난입한 사내(이철민)는 김사부(한석규)가 수술을 강행하려고 하자 그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자가 자신의 아내와 딸을 범한 강간범이라고 말했다. 죽어 마땅한 범죄자와 반드시 살려야 하는 응급환자 사이, 김사부는 짐짓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역시 마음의 동요를 느꼈다. 사내의 이야기가 너무나 처절했기 때문이다.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내가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겠다고 늦게까지 택배 돌리는 사이에 우리 와이프랑 딸애가 있는 집안에 들어와서는... 그 때 우리 와이프는 둘째를 임신 중이었고 내 딸은 내 딸은 겨우 11살이었는데 저 새끼가... 근데 저 새끼 형량이 얼만 줄 알아? 겨우 3년이야 초범이라고. 심지어 2년 만에 가석방까지 받고 나왔대. 초범에 모범수라고. 이게 말이 돼? 그 일로 우리 와이프는 유산을 했고 내 딸 아린이는 평생을 대변 줄을 옆에 차고 살아가야 되는데 근데 저 새끼는 가석방까지 받고 나왔대 이게 말이 되냐고 이게.”

 

사실 이전 회에서 이 사내는 조폭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응급실에서 영양제를 놔달라며 행패를 부리기도 했고, 누군가의 전화를 받아 깨끗이 처리 하겠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누가 봐도 조폭이고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있다는 뉘앙스가 풍겼다. 그리고 수술실까지 들어와 낫을 들고 위협하며 수술을 멈추라고 하는 대목이나 이런 시골병원에서 총으로 중무장한 기동타격대가 들어오는 장면들은 너무 과한 느낌을 준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과잉을 털어 내준 건 그 과잉된 스토리가 던져주는 메시지가 사내의 목소리를 통해 강렬하게 전해지면서다. 억울한 사연을 토로하는 사내에게 김사부에게 그래서 당신이 직접 벌을 주겠다는 것이냐고 묻자 사내는 울분을 토해낸다. “이 나라 법이 개떡 같은 걸 어떡해. 나라도 해야지. 내가 그래도 내가 가장인데 돈도 못 벌고 가난하고 힘도 없고 무능한 아빠지만 그래도 내가 가장인데 나라도 나서서 저 새끼 죗값을 받아내야 할 거 아냐? 나라도!”

 

여기서 이철민의 혼신을 다한 연기는 겨우 10분 남짓의 시간만으로 과잉된 비현실적 상황을 훌쩍 뛰어넘어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핏발이 선 눈빛과 분노에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대는 모습은 물론이고 땀을 철철 흘리며 그 긴장된 상황을 연기하는 이철민은 그저 스쳐지나가는 단역이라고 해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의 연기가 우리네 서민들의 처지를 대변하고 있다는 것은 더더욱 공감대를 갖게 만들었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과잉된 설정으로 인해 한 편의 우화나 만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입할 수 있게 되는 건 그 우화나 만화 같은 상황이 지향하고 있는 분명한 메시지가 존재할 때다. 이철민이 연기한 부분은 분명 개연성으로만 보면 어딘지 앞뒤가 잘 맞지 않고 비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그가 전하려는 가난한 아빠의 울분에 대한 공감대는 이런 과잉을 덮어주는 힘이 되기도 한다. 이철민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낭만닥터>에 탑승하게 된 게 행운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낭만닥터> 제작진 측에서는 이철민을 캐스팅한 게 행운이라는 평가가 나올 만하다.

 

드라마 후반부에 등장한 아버지의 치료를 중지하라는 가난한 집안의 한 아들이 하는 토로 역시 마찬가지 느낌을 준다. “1%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윤서정의 말에 사내는 지극히 현실적인 절망을 이야기 한다. “그건 있는 사람들 팔자 좋은 소리고 우린 돈이 없다고.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인데 저러다 아버지 돌아가시면 남은 가족은 평생 병원 치료비 갚다가 죽으란 소리야 뭐야. 어차피 깨어나지도 못할 거 저렇게 힘들 게 살아서 뭐하냐고?”

 

거기 누워 있는 사람이 다른 이도 아닌 아버지고 그렇게 치료를 중단하라고 말하는 이가 바로 아들이라는 점은 이 비극적 상황이 어디서 비롯되는가를 분명히 해준다. 결국은 돈이다. 생명보다 우선하는 돈. “네 아버지 평생 니들 위해 뼈 빠지게 고생하셨어. 근데 마지막 가는 길에 이것도 못해드려? 네 아버지 그 정도 대우도 받을 자격 없는 거야 니들한테? 그래 돈 없지. 그 원수 놈의 돈. 먹고 죽을래도 없는 돈. 그래도 네 아버지 눈이라도 한번 뜨게 해드리고 싶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그 과장된 상황들 때문에 아슬아슬한 느낌을 준다. 거대병원과 돌담병원의 대결구도는 마치 게임적인 느낌마저 주기 때문에 더더욱 비현실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결국 이런 비현실을 채워주는 건 갖가지 사연들을 갖고 들어오는 서민들이 전하는 현실적 공감대가 아닐 수 없다. <낭만닥터 김사부>의 관건은 결국 이 과장된 상황과 현실적 공감대의 균형을 어떻게 잡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인다

양다리 사이에서 <질투>는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

 

SBS 수목드라마 <질투의 화신>은 삼각관계의 관점이 독특한 드라마였다. 즉 보통의 삼각관계라고 하면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주인공이고 제3의 인물이 그 사이를 방해하는 연적으로 등장하기 마련이지만, 이 드라마는 거꾸로 사랑하는 남녀를 옆에서 바라보며 아파하고 질투하는 제3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세웠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이화신(조정석)이다.

 

'질투의 화신(사진출처:SBS)'

3년 간 자신을 따라 다닐 때만 해도 그다지 관심이 없던 이화신이 표나리(공효진)에게 관심을 갖게 된 건 친구인 고정원(고경표)가 그녀와 좋아하는 사이가 되면서다. 자꾸만 그들이 눈에 밟히고 왠지 모르지만 가슴이 두근대고 아파오는 걸 느끼게 되면서 이화신은 홀로 먼발치서 친구와 사랑하는 여자를 바라보며 가슴앓이를 한다. 흥미로운 건 이렇게 되자 시청자들의 마음이 이화신쪽으로 기울게 되었다는 점이다. 너무 가슴이 아파 아이처럼 투덜대고 지질하게 구는 그에게 연민과 동시에 귀여운 매력 같은 것들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

 

하지만 이화신이 자신의 속내를 표나리와 고정원에게 들킨 후 본격적으로 구애를 하기 시작하고 결국은 친구와 주먹다짐까지 하다가 셋이 함께 사는 기묘한 동거까지 하게 되면서 표나리의 마음이 흔들린다. 무엇보다 고정원에게 다른 여자가 찾아오는 것에 대해서는 무감하던 그녀가 이화신이 혜원(서지혜)과 키스를 하고 가깝게 지내는 것에 대해서는 질투를 느낀다는 걸 알게 되고는 그녀 역시 자신의 사랑이 이화신을 향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렇게 되자 상황은 뒤집어진다. 이제 이화신을 향해 표나리가 애정을 갈구하게 되고, 표나리는 고정원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으며 그를 떠난다. 이화신과 표나리가 밀고 당기며 서로의 애정전선을 확인하고 있는 달달한 순간들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서 시청자들의 마음은 이상하게도 고정원에게 다시 기울어진다. 친구에게도 연인에게도 혼자 버림받은 그가 못내 눈에 밟히는 것이다.

 

패자의 입장에서 어떤 연민의 대상이 되면서 시청자들의 몰입을 만들었던 이화신이지만 이제 그 입장은 고정원이 갖게 됐다. 어느 한 쪽을 선택하면 다른 한 쪽이 아쉬워지는 관계가 형성되면서 이 삼각관계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마음은 복잡하게 됐다. 물론 <질투의 화신>이라는 제목에 이미 적시되어 있듯이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이화신일 수밖에 없지만, 그의 입장이 바뀌게 되면서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독특한 사랑(질투하며 사랑하는)의 주인공은 고정원쪽으로 옮겨가게 됐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드라마의 전개가 마지막까지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건 예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충분히 예상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 이제 고정원과 이화신 모두가 꽤 괜찮은 인물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 시청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일이 다른 한쪽을 배제하는 불편함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는 결코 쉽게 해피엔딩에 도달할 수 없게 되었다. 어느 한쪽이 해피엔딩이면 다른 한쪽은 새드엔딩이 되니까.

 

이건 <질투의 화신>이라는 드라마가 가진 딜레마지만 동시에 그건 이 독특한 드라마의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관점을 담아낸 사랑이 아니라 여러 관점들이 동시에 투영된 사랑. 그래서 균형 잡기가 어렵지만 그것은 어쩌면 진짜 사랑의 면면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에 얽힌 관계에서 완벽한 해피엔딩이 어디 있겠나. 우리가 봐왔던 무수한 해피엔딩 뒤에도 숨겨진 새드엔딩이 있었다는 걸 상기시켜주는 드라마라니

<판타스틱>, 주상욱 판타지가 통하는 까닭

 

나 우주대스타 류해성 유서를 남긴다. 이소혜와의 지난 100년은 행복했다. 12명의 자식들과 50여명의 손주들 모두 건강하게 잘 자라줘서 고맙다. 너희들과 함께 한 시간 즐거웠다. 100편이 넘는 훌륭한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할 수 있어서 기뻤고 특히 시작과 끝을 갓소혜 작가의 작품으로 할 수 있어서 우주 최고로 행복했다. 30여개의 남우주연상 감사합니다. 특히 오스카는 기억에 남네요. 아 칸느와 베니스 영화제도 좋았습니다... 제니퍼 로렌스, 스칼렛 요한슨을 비롯한 할리우드 여배우들 이제 나 좀 그만 미워해. 나한테 이소혜 뿐인 걸 어떡해.’

 

'판타스틱(사진출처:JTBC)'

유서라고 하면 어딘지 침울해질 것 같지만 이 남자 유서로도 웃긴다. JTBC 금토드라마 <판타스틱>의 류해성(주상욱)은 암 투병을 하고 있는 이소혜가 쓴 유서를 보고는 자신도 유서를 남긴다. 그런데 그 유서 내용이 엉뚱하다. 그건 지나간 과거를 회고하는 것이 아니라 유서를 빙자해 앞으로 올 미래를 마음껏 그려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유서를 통해 현재를 정리하기보다는 미래를 계획한다. 향후 100년은 이소혜와 행복하게 살 것이고, 우주대스타라는 칭호에 걸맞게 세계적인 배우가 될 거라고.

 

물론 그건 꿈같은 이야기고 현재의 발연기를 살짝 넘어서 그나마 손연기정도를 하고 있는 류해성에게는 언감생심이다. 하지만 그러면 어떠랴. 한 바탕 마음껏 상상해보는 건 자유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걸 읽어본 사랑하는 사람이 유서라는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웃음을 터트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류해성의 말도 안 되는 유서는 그래서 말이 된다. 죽음에 대한 과도한 비장함을 한결 덜어내는 일이 유서를 미리 써보고, 관 체험을 하는 이른바 웰다잉의 전제조건이니.

 

<판타스틱>이 암 선고를 받은 이소혜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풀어가고 있기 때문에 자칫 어두워지고 무거워질 수 있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실제로 그녀가 쓰러지고 상태가 안 좋아지만 드라마는 전체적으로 비장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건 여기 류해성이라는 발연기 자칭 우주대스타라는 캐릭터가 있다는 점이다. 그는 어떤 면으로 보면 너무 긍정적이고 밝은 데다 심지어 자기애가 우주적이라 함께 있는 사람들을 결코 비장함이나 진지함에 빠뜨리지 않는다. 그래서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마음 아파하고 힘겨워 할 수 있는 상황들을 그는 애써 밝게 만들어낸다.

 

이소혜의 무거움을 류해성의 가벼움으로 중화시키는 <판타스틱>의 균형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것이 깨지게 되면 지나치게 무거움 속으로 가라앉거나, 혹은 너무나 가벼워 들여다볼 가치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류해성을 발연기 액션 배우로 세운 점은 꽤 괜찮은 선택으로 보인다. 그가 만약에 이토록 심각한 상황을 정극으로만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어땠을까. 한없이 죽음이라는 무거움 속으로 침잠하지 않았을까.

 

만일 인생이 한 편의 드라마고 우리가 거기 주인공들이라면 죽음을 앞에 두고 어떤 연기를 할 것인가. 물론 그것은 진지한 것일 수밖에 없지만, 그것은 어쩌면 지나친 일일 수도 있다. 경험하지 못한 일을 어떻게 진지하게 연기할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죽음이라는 상황에서는 발연기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런 무거움을 깨는 류해성의 발연기는 그 어떤 정극의 그것보다 더 유쾌하고 진솔하게 다가온다.

 

<판타스틱>의 이러한 이야기 구조는 류해성에 대한 판타지를 만들어낸다. 죽음으로 상정되어 있지만 그 같은 절박하고 어려운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해성처럼 웃음을 주는 존재는 판타지가 될 수밖에 없다. 힘겨워 유서라도 쓰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 유서조차 미래에 대한 황당하지만 낙관적인 계획들로 채워주는 인물. 류해성이 가볍고 발연기를 하는 캐릭터라도 판타지로 다가오는 이유일 게다

대종상의 몰아주기, 청룡의 나눠주기

 

아마도 이번 청룡영화상 대종상의 파행으로 인해 오히려 돋보인 시상식이 아니었나 싶다. 단 며칠 사이에 벌어진 두 영화상이지만 대종상 시상식장에 주조연 배우들이 대거 불참했던 것과는 상반되게 청룡영화상에는 상을 받든 못 받든 별들이 모여 들었다. 대종상에서 대리수상 불가를 공표함으로써 결국 대리수상이 남발하게 된 것과 대조적으로, 청룡영화상은 참석한 배우들이 상을 고루 가져가는 축제의 장으로 기억되게 됐다.

 


'청룔영화상(사진출처:SBS)'

청룡영화상이 참 상을 잘 주죠?” 김혜수가 던진 이 말은 물론 청룡영화상의 균형 잡힌 고른 시상에 대한 상찬이었지만 대중들에게는 대종상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번 대종상은 <국제시장>에 무려 10관왕을 몰아줬다. 이런 일이 이번 한 번이 아니다. 이미 2012년 대종상은 <광해>에 총 22개 부문에 15개의 상을 몰아준 바 있다. 어째서 같은 해에 상영됐던 같은 영화들에 대해 상을 주는 것인데도 이렇게 다를까.

 

이것이 이렇게 다른 것은 그 자체로 상의 성격이나 지향점이 다르다는 걸 말해준다. 대종상이 구태의연한 영화 시상식의 전형처럼 다가오게 된 건 이 같은 몰아주기가 과연 지금의 영화 환경과 관객 취향과 사뭇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에서부터 비롯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네 영화는 그만큼 다양해졌고, 관객들의 취향도 다양해졌다.

 

물론 1천만 대작 대박영화가 매해 나오기도 하지만 그보다 작은 중박 영화도 점점 많아지고 있고, 아예 독립영화들도 의외로 다양한 관객들의 취향을 받쳐주는 자양분이 되고 있다. 그러니 몇몇 대작 영화에 상을 몰아준다는 건 자칫 잘못하면 관객들의 다양한 취향들을 배려하지 못하는 일로 비춰질 수 있다. 나아가 이것은 승자가 모든 걸 독식하는, 적어도 문화에서는 바라보고 싶지 않은 일로 그려지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청룡영화상이 블록버스터과 독립영화에 똑같은 상의 지분을 나눠주었다는 것은 의미가 깊다. 올해 작품 중 누구나 <베테랑><암살>, <국제시장>이 상을 가져가는 것에 대해 이견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사도> 같은 의미 있는 작품도 있고, 독립영화로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거인> 같은 작품도 있었다는 걸 청룡영화상은 놓치지 않았다. 결국 최우수작품상은 <암살>이 감독상은 <베테랑>이 가져가고 남녀주연상에 <사도>의 유아인과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이정현이 받은 건 균형잡힌 배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시상식에 몰아주기만큼 비판받는 것이 나눠주기다. 하지만 이것은 방송사들의 연말 시상식에서 과연 그 상이 적절한가 싶을 인물들에게 다음해를 위해 억지로 나눠 상을 시상할 때 나오는 비판이다. 이번 청룡영화상이 보여준 나눠주기는 이것과는 다르다. 그만큼 다양해진 영화들과 관객의 취향을 고루 끌어안는다는 의미에서의 나눠주기라는 점에서 의미가 다르다는 것.

 

시상의 공정성과 균형은 결국 그 영화상이 축제의 장이 되게 만드는 이유다. 이번 청룡영화상이 유독 훈훈한 영화인들의 축제의 장이 될 수 있었던 건 그 균형이 잘 이뤄졌기 때문이다. 상을 받고도 사과하는 상, 한쪽으로 몰아주기를 해서 다른 한쪽은 커다란 그림자와 병풍을 만들어버리는 상, 권위로 오라마라 강요하는 상. 이번 청룡영화상은 이런 시상식과는 너무나 다른 행보를 보여주었다.



이영돈 PD, 회생 쉽지 않은 까닭

 

그동안 억눌렸던 감정들이 폭발하는가. 그릭 요거트 문제를 다루면서 한 식음료 광고모델을 한 사실이 밝혀진 이영돈 PD에 대한 논란은 결코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문제도 문제지만, 이 사안을 계기로 그간 수면 아래 놓여져 있던 이영돈 PD에 대한 불편한 감정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영돈 PD(사진출처:JTBC)'

그릭 요거트 문제는 이영돈 PD가 그간 해온 탐사보도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지고 있다. 업체를 방문해 그릭 요거트 검증에 나선 이영돈 PD는 첨가물이 들어있지 않은 무가당 그릭 요거트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지 않고 성급히 한국에서 시판되는 요거트 중에서는 그릭 요거트라고 평가할 수 있는 제품은 없다고 단정을 내렸다.

 

실로 자극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릭 요거트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것은 해당업체들을 순식간에 망하게도 할 수 있는 단정이었다. 뒤늦게 무가당 그릭 요거트에 대한 테스트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사과를 하고 나섰지만 이건 이미 불에 다 타버린 집에 물 붓기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이런 일들은 이미 과거 이영돈 PD의 전력에도 흔치 않게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연기자 김영애씨의 황토팩 화장품을 두고 벌어진 진실공방은 대표적이다. <이영돈의 소비자고발>에서는 이 황토팩 화장품에서 쇳가루가 검출됐다는 충격적인 방송을 내보냄으로써 해당업체에 엄청난 금전적, 정신적 손실을 안긴 적이 있다. 하지만 이 보도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실 정정보도나 사과 같은 것들이 최초에 했던 폭로보다 대중들의 눈에는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센세이셔널리즘 보도가 가진 엄청난 폐해다.

 

이번 사건에 대한 기사에 달라붙은 댓글들을 보면 이제 이영돈 PD가 탐사의 대상이 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엄청나게 많은 불만사항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개똥쑥에서부터 녹차, 라면, 아이스크림, MSG 보도 등등 이영돈 PD의 탐사 고발에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본 이들은 이번 사안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들고 일어나 다시금 문제제기를 가하고 있다.

 

그 중에는 이번 그릭 요거트와 광고 문제와 유사한 사건이 이미 라면 고발에서도 있었다는 주장도 들어있다. 채널A 개국2주년으로 <먹거리 X파일>에서 다뤘던 라면을 말하다에서 갖가지 성분들을 들어 시중에 나오는 라면들이 모두 해롭다고 얘기하고는 뜬금없이 라면 이름 짓기 공모를 내세워 이영돈 PD의 착한 라면1등으로 뽑았다는 것.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착한 라면이란 이름은 이미 채널A가 방송 6개월 전에 상표등록한 것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팔도에서는 먹거리 X파일에서 만든 바른 라면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라면을 출시했다는 것.

 

탐사보도는 공정성과 균형이 생명이다. 하지만 이번 사안으로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는 이영돈 PD식 탐사보도의 논란들을 들여다보면 공정성과는 멀고도 먼 센세이셔널리즘이 느껴진다. ‘착한이라는 수식어를 달고는 있지만 거기에 걸맞지 않는 행위들은 방송이라는 권력을 등에 업은 빗나간 방송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래서일까. 그동안 자신이 해왔던 탐사가 이제는 고스란히 부메랑이 되어 자기 자신에 대한 탐사로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이것은 이영돈 PD 개인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영돈 PD를 영입해 교양 프로그램에 새로운 기치를 세우려던 JTBC는 오히려 그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었다. 그릭 요거트를 다뤄 논란의 불씨를 만든 <이영돈 PD가 간다>는 물론이고, 그가 출연하는 <에브리바디>도 방송 중단 결정을 내렸다. JTBC측이 이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회사 내부에서도 분노를 표하고 있는 상황에 외부에서 계속 터져 나오고 있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들. 그의 회생이 결코 쉽지 않은 이유다.

 

 

<진짜사나이> 장혁의 영화 찍기와 그 역효과

 

<진짜사나이> 수방사편에서 특임대에 들어간 장혁은 매번 모의 훈련 때마다 거의 한 편의 영화를 찍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절권도로 무장한 장혁은 버스에서의 대테러진압훈련에서도 총을 내려놓고 맨손으로 테러범을 제압하는 모습을 연출해 보여주었고, 인질을 구출하는 훈련에서도 옥상에서 줄을 타고 내려와 창밖에서 진압 도중 생겨날 만일의 사태를 위해 적을 조준하는 자세를 진짜 영화처럼 보여주었다.

 

'진짜사나이(사진출처:MBC)'

훈련 과정에서 장혁의 모습은 조금 과한 느낌을 주었다. 맨손으로 적을 제압하는 훈련에서도 장혁의 동작은 다른 병사들과는 달리 한 편의 영화였다. 그 때마다 훈련교관들은 당황하는 모습으로 연출되었다. 한 마디로 ‘너무 잘 해서’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통해 예능적인 연출을 보여준 것. 하지만 장혁의 조금은 과한 동작들은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너무 영화나 드라마 같은 느낌을 준 것도 사실이다. <진짜사나이>를 보면서 <아이리스>를 떠올리게 된 것.

 

이것은 영화만큼 장혁이 잘 한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영화처럼 너무 짜여진 각본으로 보이기도 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다들 일어나는 것조차 천근만근인 상황이지만 장혁은 그 와중에 스트레칭과 운동을 한다. 그의 모습에 일반병사들은 뜨악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군 생활에 잘 적응하는 건 알겠는데 너무 실제 병사들을 압도하고 있다는 것은 연예인과 군인들이 뒤바뀐 느낌을 준다.

 

물론 이것은 부대의 성격 탓이기도 하다. 청룡대대나 이기자 부대처럼 체력적 부담을 느낄 정도의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 곳에서 장혁의 모습은 FM병사의 그것처럼 보이면서도 어떤 인간적인 허술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뭐든 말로는 최고처럼 얘기하지만 실제 경기에 나가 한 방에 모래판에 꽂혀버리는 모습은 장혁의 액션(?)에 실감을 만들어주었다. 즉 폼은 멋있고 또 체력적으로도 대단하지만 실전은 역시 실전이라는 것.

 

하지만 수방사 특임대에서 장혁이 보여주는 액션은 심지어 교관들조차 압도되는 모습으로 연출되었다. 이것은 수방사 특임대가 다른 부대에 비해 훈련 강도가 약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장혁이 너무 잘 하고 있기 때문일까. 물론 실제야 어디 그리 쉽겠냐마는 방송으로 나오는 장면만을 두고 보면 장혁이 잘 하면 잘 할수록 특임대의 훈련이 너무 쉽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이것은 <진짜사나이>의 존재이유와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준다.

 

<진짜사나이>의 주인공들은 힘들게 군복무를 하는 일반사병들이지 여기 출연하는 연예인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예인들의 역할은 사병들이 얼마나 열심히 군복무를 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또 공감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수방사 편에서는 연예인 출연자들이 계급과 상관없이 일반병사들에게 마치 선배로서의 조언을 해주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장혁이 내무반에서 사병들에게 하는 이른바 ‘연애 특강’은 인생 선배로서는 이해되는 일이지만 진짜 군대 생활에서도 가능한 일일까.

 

수방사편의 훈련내용이 지금껏 나온 다른 부대들에 비해서 너무 약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수방사편에서 일반사병 중 가장 많은 방송분량을 만들고 있는 ‘특별한 선임’ 손지민 일병은 연예인 구멍병사보다 더 한 모습을 계속 보여주었다. 심지어 손지민 일병이 받쳐주지 못해 서경석은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빗속에서 땀에 범벅이 되어 치르는 유격훈련이나 잠을 자지 않고 훈련을 버텨내는 고강도 무박훈련을 봐왔던 시청자들로서는 수방사가 보여주는 테러진압 훈련이 너무 짜여져 있어 약한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부대마다 특성이 있기 마련이고 또 훈련강도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이것은 어느 한 부대에 전입되면 거기에 맞춰 생활하는 군인들에게는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이것이 방송을 통해 나가게 될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자연스럽게 부대 간의 비교점이 생긴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이때 그 균형을 방송 제작진과 출연진이 잡아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출연진은 이전에 다른 부대를 경험하고 온 터이기 때문에 새로운 부대와 부대원들의 목소리를 더 들어주는 낮은 자세가 필요하다.

 

물론 열심히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고 칭찬받을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시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수방사편은 특히 류수영 같은 <진짜사나이>에 걸맞는 ‘힘겨워도 긍정하는’ 인물이 스케줄 때문에 중도에 부대를 빠져나갔고, 목 부상을 당한 샘 해밍턴이 훈련의 중심에 들어오지 못함으로써 전체적으로 프로그램의 균형이 깨진 측면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장혁의 영화 같은 액션은 너무 튀는 인상만 남기게 되었다. 연예인들이 일반인들과 사병들 사이에 어떤 소통의 고리를 만들어주는 것. 수방사편은 <진짜사나이>의 그 진면목을 잘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내 딸 서영이>, 그 막장과 국민드라마 사이

 

<내 딸 서영이>가 시청률 40%를 넘겼다고 난리들이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최근 들어 40% 시청률이라는 것은 거의 경이적인 수치가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시청률 40%를 넘겼다고 섣불리 국민드라마 운운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작년 <추적자>는 20% 안팎의 시청률에 머물렀지만 국민드라마로 칭송되었다. 이제 국민드라마라는 칭호가 시청률이 아니라 대중들의 공감대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내 딸 서영이'(사진출처:KBS)

그렇다면 <내 딸 서영이>는 과연 이런 의미에서의 국민드라마가 될 가능성이 있을까. 항간에는 막장드라마라는 비판이 있지만, 그래도 그 가능성만은 충분한 드라마라 여겨진다. 먼저 이서영(이보영)이라는 젊은 세대가 생각하는 가족에 대한 관점과 이삼재(천호진) 같은 아버지로 대변되는 나이든 세대가 생각하는 가족에 대한 관점이 갈등하고 부딪치면서 어떤 교집합을 찾아가는 면모가 대단히 참신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좋은 기획의도와 설정이 존재하는 것과 동시에, 이 드라마는 자칫 잘못하면 막장으로 흘러갈 자극적인 포인트들도 갖고 있다. 즉 서영이 아버지를 부정했던 그 과거의 비밀이 그렇고, 초반부터 이미 복선으로 제시되었던 강성재(이정신)의 출생의 비밀이 그렇다. 이 비밀들은 흔히 그러하듯이 자극으로만 치닫게 되면 막장이 될 수도 있지만, 잘만 균형점을 잡으면 드라마가 굴러가게 하는 적절한 동력이 될 수도 있다.

 

초반에는 이 균형이 잘 유지되었다. 이삼재의 입장에서 보여준 절절한 부성애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렸고, 동시에 아버지를 부정하고 난 후 가시방석에 살아가는 이서영의 마음도 시청자들을 아프게 했다. 또한 이서영을 위해 모든 걸 배려하는 강우재의 모습은 훈훈하면서도 극에 긴장감을 주기에 충분했고, 이상우(박해진) 역시 강미경(박정아)과 풋풋한 연인관계를 이어가면서 후에 드러날 이서영과의 얽힌 관계가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많은 비밀들이 풀어져 나가는 단계에 이르러 <내 딸 서영이>는 균형점을 잃고 그 흔한 막장드라마들이 쓰던 자극 코드들을 반복하고 있다. 강미경의 오빠가 서영이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우가 강미경과 헤어지는 것도 모자라 최호정(최윤영)과 결혼까지 하는 것은 과도해 보이고, 강우재가 서영이의 비밀을 알아채고도 직접 소통하려 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죽만 때리는 행동도 그다지 개연성 있다 여겨지지 않는다.

 

게다가 강우재와 서영이의 비밀을 둘러싼 냉전이 해소되지도 않은 채, 갑자기 드러난 강성재의 출생의 비밀 역시 너무 전형적인 자극 코드로 풀어내짐으로써 <내 딸 서영이>는 마치 갑자기 막장드라마가 된 듯한 장면들을 연달아 보여주었다. 분노에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고, 누군가의 뺨을 때리고, 어제까지 그토록 아끼던 자식을 하루아침에 원수 보듯 하는 모습이 그렇다. 물론 이 비밀들이 얼마나 엄청난 사건인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이 조금만 달랐다면 <내 딸 서영이>는 더 큰 감동을 시청자들에게 전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우리가 흔히 통칭해서 부르는 막장드라마라는 수식은 참 애매한 표현이다. 그저 출생의 비밀이 들어간다고 해서 모두가 막장드라마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게 없다고 해서 막장드라마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공감대와 자극의 문제다. 공감대가 없이 자극으로 자꾸 흘러가게 되면 같은 소재를 사용한다고 해도 대중들은 막장으로 드라마를 인식하게 된다. 그만큼 그 자극 코드들이 너무 많이 사용되면서 대중들을 학습시켰기 때문이다.

 

시청률 40%가 넘었다고, 단지 그 수치적인 것에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그것이 그대로 드라마의 공감대가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니까. 대신 <내 딸 서영이>가 그 시청률이라는 수치를 위해 더 멀리 가기 전에 빨리 본래의 좋은 의도, 즉 세대와 계층과 성별이 서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런 드라마로 돌아오길 바란다. 시청률 높은 막장드라마가 되느니 차라리 조금 시청률이 낮은 국민드라마가 되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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