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번 사랑해'와 '그대 웃어요'가 모두 해피엔딩으로 종영했습니다. 하지만 이 두 드라마의 해피엔딩이 너무나 다른 느낌을 주는 건 왜일까요. '천만번 사랑해'는 사실상 그 해법을 찾기 어려운 거미줄 같은 관계를 인위적으로 얽어놓았습니다. 자신이 결혼한 남자가 하필이면 자신이 대리모로 한 아이가 사는 집이라는 우연은 오로지 여주인공의 신파를 만들어내기 위한 자극적인 설정이었죠.
 
하지만 이 상황에서 고은님(이수경)은 자식을 선택할 수도,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살 수도 없는 입장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극단적 상황의 해결은 결국 극단적인 처리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죠. 고은님의 위암과 시어머니인 손향숙(이휘향)의 치매 설정은 이 무리하게 얽힌 관계를 풀기 위한 고육지책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고은님은 결국 위암을 이겨내고 해피엔딩을 이루지만 그간 자극적인 신파 설정을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절망 속에 허우적대야 했던 주인공을 생각해보면 그 짧은 해피엔딩 역시 인위적인 느낌이 강합니다.

막장에 가까운 전개에서 급속히 가족 간의 화해로 봉합되는 과정은 이 드라마가 가진 작위성을 잘 보여줍니다. 드라마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자꾸 작가의 의도된 손길로 흘러갈 때, 그것은 자칫 시청자를 두고 벌이는 감정 놀음이 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천만번 사랑해'는 결과적으로 보면 작가의 손에 의해 운명이 좌지우지되는 캐릭터 게임을 함으로써 시청자들을 TV앞에 끌어들인 드라마가 되었습니다. 막장은 바로 이런 작가의 과도한 개입에서 비롯되는 것이죠.

한편 '그대 웃어요'는 이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갑니다. '그대 웃어요' 역시 공교롭게도 '천만번 사랑해'에서 설정된 암과 치매라는 소재가 사용되었지만, 그 소재는 대단히 자연스럽게 사용되었습니다. 그것은 소재가 이 드라마의 주제인 가족의 단합, 화해를 이끌어내는 장치로 활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천만번 사랑해'처럼 '결국은 병을 이기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식의 섣부른 해피엔딩을 그리지 않습니다.

'그대 웃어요'의 강만복(최불암)은 여전히 병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지만, 그 가족들은 그것을 희망으로 바꿉니다. 이것은 '그대 웃어요'라는 드라마의 독특한 태도입니다. 제목에서 풍겨나듯, '그대 웃어요'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라는 전제를 그 앞에 괄호로 채워놓고 있습니다. 힘들어도 웃다보면 희망이 올 것이라는 전언이지요. 결국 강만복은 가족들이 하나로 묶이고, 또 점점 다복해지는 것을 바라보며 속에 두었지만 좀체 내뱉지 않았던 그 말, "사랑한다!"는 그 말을 외칩니다.

'천만번 사랑해'가 인위적인 비극을 인위적인 해피엔딩으로 처리했던 반면, '그대 웃어요'는 비극을 비극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자세를 통해 희망의 해피엔딩을 연출했습니다. 이것은 극단적으로 이른바 막장드라마와 착한드라마 사이에 놓여진 거대한 차이를 보여줍니다. 진정성은 '그대 웃어요' 같은 자연스럽고 진지한 드라마의 태도에서 느껴지게 마련이죠. 두 드라마의 종영. 똑같은 해피엔딩이지만 너무나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그대 웃어요'는 보면 볼수록 최불암을 닮은 드라마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삶은 그렇게 힘겨운 것이라는 듯 잔뜩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사람좋은 인상으로 쇳소리처럼 바람빠지는 웃음 소리를 내는 최불암은 바로 이 드라마의 얼굴 같습니다. 처음에는 왜 제목이 '그대 웃어요'인지 이해할 수 없었으나, 최불암이 그 특유의 웃음을 지을 때서야 비로소 그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제목 앞에는 아마도 이런 문장이 생략되어 있었겠지요. '삶이 힘들더라도'.

'그대 웃어요'의 할아버지 강만복은 간암판정을 받았지만 손주의 행복한 결혼을 보고 싶어 그 사실을 숨깁니다. 자식들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할아버지가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한다는 걸 알고 역시 이를 숨깁니다. 그러니 이 드라마는 밑바탕에는 이 숨겨진 마음, 힘겨운 현실이 자리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숨긴 채 서로 웃습니다. 그러면서 행복을 느낍니다.

이 드라마의 희비극을 넘나드는 기막힌 설정은 보는 이를 울다가 웃게도 웃다가 울게도 만들어버립니다. 할아버지에게 간이식을 해주기 위해 결혼도 안한 손주며느리가 몸을 챙기는 그 눈물겨운 상황을 이 드라마는, 시어머니의 오해 즉 손주며느리가 임신을 했다는 상황으로 넘기면서 웃음으로 바꾸어버립니다. 간이식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밉상 사돈인 서정길(강석우)인 사실을 알게된 며느리 백금자(송옥숙)가 간을 달라며 쫓아다니면서 서정길의 술을 빼앗아 먹는 장면은 우스우면서도 눈물겹습니다.

결혼식을 하고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간다면서 사실은 떠나지 않고 호텔에 머무는 자식들과, 결혼식장에서 쓰러진 할아버지 때문에 혹 신혼여행을 망치지나 않을까 저어하는 시어머니는 전화통화를 하며 서로 거짓말을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있지만 그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 설정 속에서 눈물과 웃음은 또 한번 교차합니다.

몸을 가눌 수 없어 비틀거리고 고통에 혼자 밤을 지새우면서도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웃어주고 있는 이 드라마는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요. 흔히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고 있어서 행복한 것이라고들 말합니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건(그것이 빠르냐 더디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죠)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비극적인 상황이지만 그래도 웃으면서 살아야 행복하다고 이 드라마는 말합니다.

이 드라마에 절절한 공감이 가는 이유는 그 비극적 상황을 애써 비극으로만 비추어 눈물을 짜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힘겨움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이죠. 그러니 그 힘겨움 속에서 어떤 행복감과 즐거움을 찾아내려는 이 드라마가 불황의 그늘 속에서 늘 찡그릴 수밖에 없는 고통을 느끼는 우리네 서민들에게 잠시나마의 위안이 되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웃으라고 하면서 눈물을 나게 하는 '그대 웃어요'는 참 고약한 드라마입니다. 그 우스운 설정에 깔깔 웃게 만들고는 순간적으로 눈물이 핑 돌게 만드는 이 드라마는 참 못됐습니다. 그런데 그 고약하고 못된 드라마가 가슴을 훈훈하게 만드는 건, 아마도 저 허허로운 웃음 속에 삶의 무게까지를 담아내는 최불암을 닮은 구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지금 가족드라마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지금 우리네 가족드라마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가족드라마는 우리 드라마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오랜 세월 대중과 함께 해온 드라마 장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가족드라마는 본래 이 장르가 추구하는 가족애의 범주를 넘어서고 있다. '소문난 칠공주'와 '조강지처 클럽'을 통해 파괴되어 가는 가족의 틀을 극단으로까지 끌고 가 보여주면서 자극적인 가족드라마의 가능성을 보여준 문영남 작가는 '수상한 삼형제'로 확고한 위치를 확보했다. 지금 이 드라마는 35.4%(AGB닐슨 자료)의 시청률로 전체 주간시청률 1위에 올라있다.

한편 일일 가족드라마로 시청률 장기집권(?)을 해온 KBS 일일드라마 역시 과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너는 내 운명'이 막장드라마라는 오명을 얻은데 이어, 종영한 '다함께 차차차' 역시 배배 꼬인 관계와 지나치게 질질 끄는 드라마 진행으로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의 대열에 들어갔다. 이 드라마의 이런 자극에만 치중하는 경향 때문일까. 그럼에도 종영하는 시점 이 드라마의 시청률은 33.5%로 전체 주간시청률 2위를 기록했다.

'천만번 사랑해'는 대리모라는 설정에, 자신이 준 자식이 배우자의 형의 자식이라는 거의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우연적 상황을 통해 신파적으로 눈물샘을 자극하는 전략을 취했다. 이 드라마는 자식을 얻기 위해 첫째 며느리에게는 대리모를 강요하고, 둘째 며느리가 그 대리모를 한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된 시어머니가 그녀를 내쫓는 패륜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며느리 수난사라는 설정은 작금에는 현실성이 거의 없는 이야기로, 가족드라마의 퇴행 현상을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 가족드라마의 시청률은 전체 4위인 25.9%에 올라 있다.

어째서 가족드라마들이 과거의 훈훈한 가족 이야기의 범주를 지키지 못하고 파국적인 이야기로 달려가고 있는 것일까. 결국은 시청률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비교적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훈훈한 가족애를 다루면서도 시청률 최고를 차지하던 시대가 있었으니까. 중요한 것은 드라마를 보는 시청층의 눈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한류의 위상을 통해 미드와 일드 같은 선진적인 드라마와 접촉하면서, 우리 드라마들은 그간 실험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진화의 길을 모색해왔다. 하지만 유독 가족드라마는 그 자리에 멈춰서 있었다. 왜? 변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정적인 시청층을 확보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가족드라마가 변화하지 않고 머문다는 것은 그 자체로 퇴행적인 양상을 예고하는 길이다. 흐르지 않는 물이 썩듯이 확장의 길이 아닌 과거의 틀에 만족하던 가족드라마는 결국 가족애라는 끈끈한 힘을 자극을 위해 이용하기 시작했다. 막장의 탄생이다. 가족 복수극의 유행이다. 이처럼 변화를 모색하지 않는 가족드라마가 막장이 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는 이 장르가 가진 독특한 특성에서 비롯한다.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갈등을 근간으로 하는데, 가족드라마의 갈등은 가족 간에 벌어지기 때문에 분명, 윤리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싸우다 극단적인 상황까지 치달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막장드라마는 이 윤리의 선을 넘어섬으로서 자극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렇다면 가족드라마가 갈 길은 결국 이것밖에 없을까. 그렇지 않다. 최근 몇몇 드라마들이 가족드라마의 또 다른 길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작년에 등장해 호평은 물론 시청률까지 최고를 기록한 '찬란한 유산'이 대표적이다. 이 가족드라마는 전형적인 가족의 틀을 갖고 있으면서도 가족애를 넘어서는 인간애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유산을 자식이 아닌 타인에게 준다는 설정은 혈연과 가족의 고리를 넘어선다. 이것은 최근 '그대 웃어요'나 '별을 따다줘(물론 멜로드라마 성격이 강하지만 그 안에 가족의 형태에 있어서)' 같은 작품으로 그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타인이지만 가족처럼 살아가는 그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가족드라마의 확장으로 보인다. 가족에서 유사가족으로의 확장.

가족드라마는 지금, 막장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유사가족이라는 인간애로 확장될 것인지의 갈림길에 서 있다. 물론 이도 저도 아닌 전통적인 가족드라마의 형태도 지속적으로 등장할 것이지만, 그것이 현재적인 관점에서 과거만큼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분명한 것은 진화를 꿈꾸지 않는 한, 가족드라마가 갈 길은 상투적인 보수적 코드의 반복이거나, 파국적인 가족드라마의 윤리적 탈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확장으로의 길을 모색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대 웃어요'나 '별을 따다줘' 같은 드라마가 주목되는 이유는 그 가족의 범주를 넘어서려는 노력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붕킥'의 이순재, '그대 웃어요'의 최불암

많은 연기자들이 있지만 지금 우리네 아버지를 대변하는 연기자 둘을 찾으라면 단연 이들을 떠올릴 것이다. 이순재와 최불암. 이 둘은 지금 시대의 아버지들이 겪는 두 가지 양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들의 캐릭터 이미지에 공감하는 대중들의 마음 속의 아버지를 가늠하게 한다.

먼저 '거침없이 하이킥'의 야동순재를 통해 전 세대로 그 공감대를 넓힌 이후, '지붕 뚫고 하이킥'의 멜로순재로 돌아와 여전히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연기자, 이순재. 그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이 시대에 어떻게 아버지들이 적응해 나가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야동순재'에서 중요한 것은 '야동'이 의미하는 '야한 동영상'이 아니라, '야동'이라는 용어가 가지는 젊은이들의 인터넷 문화이다.

이순재는 단지 야한 걸 봤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게 아니라, 어색하지만 바로 그 인터넷 문화로 파고들어온 아버지와의 공감대가 순식간에 세대의 벽을 넘어섰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마음 속에 자리하게 된 것이다. 그는 '지붕 뚫고 하이킥'에 와서는 이제 잠깐 젊은이들의 문화를 어깨 너머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 문화를 노년에도 똑같이 누리려 한다. 로맨스 그레이를 연기하는 그가 김자옥을 위해 각종 이벤트를 하고, 줄리엔의 김자옥에 대한 호의에 질투하는 모습은 나이와 상관없이 똑같은 연애 감정을 표현한다.

이순재라는 아버지가 보여주는 핵심적인 것은 이처럼 젊은이들의 문화와 소통하기 위해 과거 고압적이었던 아버지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김자옥 앞에서 방귀를 참다가 결국 장례식장에서 그가 폭발하듯 방귀를 꾸는 순간, 우리는 권위적인 아버지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게 된다. 이순재는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여전히 사위와 딸에게 고압적인 아버지지만 그것은 늘 시트콤이라는 틀 속에서 그 이면을 드러내며 무너져 내린다.

반면 '그대 웃어요'의 최불암은 정반대의 위치에서 우리네 아버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 드라마에서 최불암이 연기하는 강만복이라는 캐릭터는 지나간 아버지 시대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다. 아침에 일어나 국민체조를 하는 이 아버지는 '돈보다 귀한 것은 인연'이라는 전통적인 가치를 쥐고 달라진 현 세태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본다.

그 '귀한 인연' 때문에 과거 자신과 가족들을 살 수 있게 해주었던 회장님의 아들, 서정길(강석우)이 흥청망청 사업에 실패하자, 그를 거두어 사람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하지만 이미 달라진 세태 속에서 아버지의 이 안간힘은 쓸모없는 일처럼 여겨진다. 서정길은 '인연보다는 돈'에 휘둘려 자식까지도 거래하는 파렴치한 인물이다. 이 한 세대를 거쳐 강만복이라는 아버지와 작금의 서정길이라는 아버지가 보여주는 달라진 모습은, 이 드라마가 풍자하려는 세태를 잘 보여준다.

강만복이라는 아버지는 그래서 혼자 남은 듯한 쓸쓸함에 노년을 보내지만 그래도 이 부족한 이들을 모두 가족이라 생각하며 가슴으로 끌어안는다. 돈 때문에 평생의 인연이 끊어지는 그 과정을 목도하면서 혼자 책상에 머리를 숙이고 눈물을 삼키는 강만복의 모습은 우리 시대 아버지의 또 다른 면을 보게 한다. 달라진 세태 속에서 자꾸만 잊혀져가는 아버지의 자리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 강만복이고, 최불암은 어쩌면 허허 웃은 그 웃음 속에 담긴 수만 가지 뉘앙스로 그걸 가장 잘 연기해내고 있는 연기자라고 할 것이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는 이제 이 권위 없는 시대의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 않다. 시대는 늘 젊은이들의 것이고, 아버지는 그들과의 소통을 위해 그 세계를 기웃거리거나, 달라진 세태를 안타까워하며 과거의 가치를 향수하며 잊혀져 간다. 이순재와 최불암은 바로 그 아버지들의 모습을 대변해내는 연기자로 우리의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드라마가 그리는 자매들, 그 관계가 불편한 이유

한때 '연애시대'에서 남녀의 사랑보다 진한 자매애를 보여주면서 많은 이들을 흐뭇하게 해주었던 은호(손예진)와 지호(이하나)의 이야기는 이제 옛이야기가 되어버렸나. 드라마 세상은 온통 자매들의 수난시대로 그려지고 있다. 한 남자를 두고 연적이 되어 서로 싸우는 볼썽사나운 자매들의 모습을 우리는 이제 드라마 속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도대체 무엇이 자매들을 이처럼 불편한 관계 속으로 밀어 넣었을까.

'천사의 유혹'의 주아란(이소연)과 윤재희(홍수현)는 자매지간이지만 그 사실을 모른 채 서로가 서로에게 복수를 하는 관계가 되어있다. 그 중심에는 신현우(한상진)에서 얼굴을 바꾼 안재성(배수빈)이 자리하고 있다. 주아란에 의해 죽음에 몰린 신현우를 살려낸 윤재희는 안재성으로 모습을 바꾼 그의 복수를 돕지만, 안재성은 복수를 위해 다시 주아란과 가까운 관계를 연출한다. 이 자매들은 모두 애타게 어린 시절 헤어진 언니와 동생을 찾고 있지만, 이제 모든 것을 잃게 된 주아란은 동생인줄 모르는 윤재희에게 어떤 짓을 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천만번 사랑해'의 고은님(이수경)과 오난정(박수진)은 부모들의 재혼으로 맺어진 자매지간이다. 외국생활에서 알게 된 백강호(정겨운)를 오난정이 혼자 짝사랑하지만, 백강호는 고은님을 사랑하게 되고, 결국 결혼에까지 골인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연출된 오난정이 고은님에게 "감히 내 남자를 뺐어?"하고 드잡이하는 장면은 많은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대 웃어요'는 요즘 보기 드문 착한 드라마지만, 여기에도 불편한 자매들의 한 남자를 둔 사랑이야기는 등장한다. 강현수(정경호)는 서정경(최정윤)을 대학시절부터 쭉 짝사랑해왔지만 결국 퇴짜를 맞게 되는데, 하필이면 그녀의 동생인 서정인(이민정)과 다시 사랑에 빠지게 된다. 문제는 강현수와 서정인이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서정경의 마음 또한 흔들린다는 것. 그녀는 현수에게 "다시 날 사랑해주면 안되니?"하고 묻는다. 아무리 한 남자에게 사랑의 감정이 생겼다고 해도, 이미 자기 동생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마당에 이런 행동을 하는 언니라는 존재는 그다지 쉽게 공감가지 않는다.

'다함께 차차차'에서는 친자매는 아니지만 같은 집에서 사는 사촌 간에 동생이 언니의 남자친구를 빼앗는 자극적인 내용이 방영되었다. 수현(이청하)이 사귀던 남자 이한(이중문)을 사촌동생인 진경(박한별)이 빼앗아 결혼하는 것. 애초에 착한 가족드라마의 뉘앙스를 풍겼던 이 드라마는 그러나 이 이해할 수 없는 관계설정을 통해 어떤 논란의 징조를 이미 보였던 것이 틀림없다.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을 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질질 끌던 이 드라마는 결국 기억이 돌아온 강신욱(홍요섭)을 통해 그 결혼의 여부를 다시 물고 늘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드라마 속 자매들은 이처럼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으르렁대게 된 것일까. 그것은 대본 작업에 있어서 지나치게 편의적이면서도 자극적인 관계 설정을 한 탓에 나타나는 결과이다. 사실 현실에서 한 남자를 자매가 동시에 사랑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물론 확률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이것이 드라마 속의 공식처럼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딘지 잘못된 것 같다. 이러한 불편한 관계들은 그것이 주는 어떠한 인간 조건의 문제를 이들 드라마들이 건드릴 만큼 심도가 깊지 않고 진지하지도 않다는 점에서 고전이 다루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그저 현실성 없는 클리쉐의 반복일 뿐이다.

자매들 간의 남자 쟁탈전이 벌어지게 된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이 관계를 마치 공식처럼 갈등 요소로 끼워 넣은 탓에 생긴 것이다. 그다지 공감가지도 않고, 보기 좋은 장면도 아니며, 이해할 수도 없는 이 한 남자를 사랑하는 자매들의 이야기는 그저 극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자극적인 장치로 활용된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물론 드라마들 역시 어떤 수위조절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런 근친 사이에 벌어지는 지나친 사랑 관계의 압축은 가족드라마가 지켜야할 윤리적인 선을 넘어선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혹 자매들이 서로를 위해주고 아껴주는 정상적인 이야기로는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모를 일이다.

드라마 시청에 있어서 기분이 차지하는 것들

세상에 저렇게 불쾌한 드라마가 시청률은 왜 저리도 높을까. 어쩜 이렇게 유쾌한데도 왜 시청률은 도무지 오르지 않을까. 물론 불쾌와 유쾌란 기분의 차원이지만, 누구나 드라마를 보며 이런 의문을 품어보지 않은 분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취향이 대중들의 취향과는 다르다는 조급한 결론에 도달하는 분들도 있다. 도대체 왜 이럴까.

그 이유는 시청률에 영향을 주는 것은, 이 불쾌와 유쾌를 나누는 기분의 차원뿐만 아니라, 그 위에 시청자와의 현실적인 공감대, 그리고 드라마의 완성도 같은 기준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떤 드라마가 유쾌한데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낮다는 것은 다른 측면이 부족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또 반대로 불쾌함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높다는 것은 다른 측면이 그 부족함을 채워주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유쾌한 드라마, '천하무적 이평강'
‘천하무적 이평강’이나 종영한 ‘미남이시네요’ 같은 드라마는 대표적인 유쾌한 드라마다. 경쟁작에 밀려 시청률은 낮지만, 이들 드라마들은 시종일관 그 유쾌한 시간 속으로 대중들을 인도한다. 이들 드라마들은 현실적이라기보다는 판타지에 가깝지만 특유의 긍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만든다. 이들 드라마들이 코미디의 특징을 가져가는 것은 바로 이런 긍정적인 극의 분위기를 코미디라는 장르를 통해 가장 잘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 자체가 잘 느껴지지 않는 긍정적인 분위기의 드라마는 바로 그 현실 바깥에 서 있는 듯한 위치 때문에 모든 세대의 호응을 가져가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즉 중장년층의 시선에서 보면 이 지나친 긍정론은 그들 세대에서 생각해왔던 ‘드라마는 그래도 현실적’이라는 기대치에서 멀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이 판타지는 만화의 세례를 받고 자라난 젊은 세대들에게는 오히려 열광하는 이유가 된다. 이들 드라마들이 시청률이 낮은 것은 작금의 지상파 TV 리모콘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세대가 중장년층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 완성도 높은 드라마들이 유쾌함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낮은 것은 주시청층과의 현실적 공감대가 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유쾌함에 풍자가 깃든 '그대 웃어요'와 '히어로'
하지만 ‘그대 웃어요’ 같은 드라마는 상황이 다르다. 이 드라마는 코미디라는 장르적 성격을 갖고 있으며 또한 유쾌하고 훈훈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시청률까지 사로잡고 있다. 처음 10% 초반에서 시작한 이 드라마는 현재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향해 가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이 드라마가 사용하는 코미디가 지극히 현실과 맞닿은 풍자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그대 웃어요’는 웃음 뒤에 빈부의 문제나 소통의 문제 같은 현 사회의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이 있다. 이 현실까지도 껴안고 있는 판타지는 중장년층에게 편안한 장르인 가족드라마 속에 녹여지면서 더 힘을 발하게 된다.

이러한 양상은 '히어로'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드라마는 코미디가 갖는 과장된 상황들이 과장된 캐릭터들을 통해 그려지지만, 그 속에는 날카로운 현실 풍자가 들어 있다. 정의와 진실이 사라진 세상에서 작지만 그것을 지켜내려는 신념을 가진 자들의 안간힘은 이들 평범한 인물들을 '히어로'라고 부르는 이유가 된다. 물론 현재 이 작품은 '아이리스'라는 대작에 밀려 낮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이 웃음 뒤에 남는 통쾌한 현실의 전복은 보다 폭넓은 시청층을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된다.

유쾌함과 불쾌함을 오가는 '수상한 삼형제'
반면 ‘수상한 삼형제’는 불쾌함과 유쾌함이 왔다 갔다 하는 냉탕온탕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부분은 지극히 희화화되어 있지만, 어떤 부분은 불쾌할 정도로 자극적이다. 민폐형 캐릭터, 김건강(안내상)과 그 가족들이 지지고 볶는 이야기는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지만, 한편으로 늘 밝음을 유지하려는 김이상(이준혁)이 그래도 형제라며 함께 모여 우애를 과시하는 장면에서는 훈훈함도 느껴진다. 바로 이 지나치게 극적으로 그려지는 현실의 불쾌함과, 그래도 때론 어떤 긍정을 보여주는 유쾌함의 반복은 이 드라마가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 위에서 시청률을 끌어 올리는 요소로 작용한다.

중요한 것은 불쾌함만을 이끌어내면서도 시청률이 높았던 이른바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가 최근 들어서는 차츰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여전히 논란의 소지를 갖고 있는 드라마들이 포진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들 드라마들의 시청률은 과거에 비해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다. 막장의 논란을 야기하면서도 시청률이 나오지 않은 '밥줘'라는 드라마는, 이제 제 아무리 시선을 받아도, 불쾌하기만 한 드라마를 이제는 대중들이 외면하고 있다는 것을 징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드라마를 보는 관점은 다양하다. 어떤 이들은 작품성을 위주로 보고, 어떤 이들은 그저 심심풀이로 보기도 하며, 어떤 이들은 즐겁기 위해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지극히 기능적인 관점, 즉 드라마가 우리를 즐겁게 해주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는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지금은 어떤 드라마의 특정 인물이나 상황에 대한 대중들의 즉각적인 반응이 그 어느 때보다 민감해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도 여전히 이것이 시청률과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데 제작자들의 고민이 있다. 일정한 작품성도 가지면서, 현실이 갖는 불쾌함과 판타지가 갖는 유쾌함을 어떻게 잘 엮는가의 문제는, 이제 대중들의 반응이 보이지 않는 제3의 제작자로 떠오르는 시대에 드라마의 성패로 자리하고 있다.

주말극을 이끄는 세 커플, 삼색멜로

주말극의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해졌다. 한때 주말극이 전체적인 침체기를 겪었던 것과는 대조적인 양상. 이처럼 주말극이 격전장으로 바뀔 정도로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 것은 보수적인 시청층의 눈높이에 맞춘 드라마들이 대거 포진하면서부터다. 이제 주말극은 마치 시간을 돌려놓은 듯한 가족드라마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이 가족드라마가 갖는 안정적인 재미 위에 극성을 끌어올리는 멜로를 빼놓을 수 없다. 저마다 다른 멜로의 양상은 그 드라마의 성격까지 읽게 해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수상한 삼형제'의 김이상(이준혁)과 주어영(오지은)의 멜로를 일차적으로 끌어올린 장본인은 그 사이에 끼어들어 훼방을 놓는 왕재수(고세원)다. 5년 간 사귀었지만 검사가 되자 가차 없이 주어영을 차버리고 자신은 결혼할 여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갖고 노는 왕재수는 시청자들의 공분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재수없는 왕재수의 정반대 위치에 서 있는 김이상의 이상적인 모습은 그를 주어영의 구원자로 만들어놓았다. 결국 양다리가 탄로난 왕재수가 물러나게 되지만, 상황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주어영의 아버지인 주범인(노주현)이 과거 사기 전력이 있는 인물이고, 김이상의 아버지인 김순경(박인환)이 경찰이기 때문.

이처럼 '수상한 삼형제'의 멜로는 인위적인 느낌을 준다. 왕재수의 행동이 이해할 수 없는 범죄적 성격을 갖는다는 점은 상식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분통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하필 이 남녀의 아버지들이 쫓고 쫓기는 사이인 것 역시 그렇다. 물론 이러한 인위적인 장애요소들은 가족드라마의 장르적 성격상 늘 세워지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 선을 어느 정도까지 가느냐 하는 것은 다르다. '수상한 삼형제'는 이 멜로를 통해서 볼 수 있듯이 따뜻함을 희구하게 되는 가족극과, 자극으로 치닫는 막장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드라마다.

한편 '천만번 사랑해'의 백강호(정겨운)와 고은님(이수경)의 멜로는 지극히 고전적이다.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대리모를 하게 되고 다시는 사랑을 할 수 없다고 절망하는 고은님을 백마탄 왕자 백강호가 지켜주는 이야기. 여기에 가미되는 백강호와 배다른 형제지간인 백세훈(류진) 간에 벌어지는, 위기에 빠진 가업 살리기의 이야기 역시 전형적이다. 계모 아래서 차별대우 받는 이야기와 사랑의 구원 이야기는 신데렐라 그대로이며, 결혼을 반대하는 남자측 가족들의 이야기는 신파 드라마의 전형이다.

하지만 이 전형적이고 고전적인 이야기가 가진 힘은 의외로 크다. 굳이 새로운 이야기로의 변주를 하지 않아도 신데렐라라는 고전적 틀 속에서 은님을 지켜주고픈 마음은 강호라는 왕자를 희구하게 만든다. 꽤 자극적인 설정으로 치달을 것 같지만 드라마는 의외로 따뜻한 구석을 비춰준다. 은님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돈으로 뭐든 움직일 것 같은 세상에 대한 반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 드라마는 다분히 신파로 빠져들 수 있는 상황을 갖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밝은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 그 위험성을 벗어나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 힘은 결국 멜로에서 나오고 있다. 강호와 은님의 멜로가 전면에 부각되고, 심지어 난정(수진)과 이철(김희철), 청자(김청)와 봉피디(김진수)의 코믹 멜로가 전체적으로 밝은 느낌을 주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불륜 속에 헤매는 세훈(류진)과 연희(이시영)의 어두움이 상쇄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그대 웃어요'는 서로 다른 계층에 살아가는 두 가족의 한 지붕 살이에서 만들어지는 해프닝들을 다루면서 사회적으로 나뉘어진 이 계층 간의 소통을 그려내는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제목처럼 시종일관 웃음을 주는 코믹적인 설정들이 곳곳에 들어가 있어, 극적 갈등에서조차 웃음을 뽑아낸다. 이것은 심지어 정인(이민정)을 차버리고는 다시 돌아온 한세(이규한)가 악역이면서도 웃음을 줄 정도다. 물론 이러한 웃음은 풍자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드라마가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것이 악역이라도 여전히 따뜻하다.

이 드라마에서 현수(정경호)와 정인의 풋풋한 멜로는 그저 멜로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다. 이 둘의 멜로는 결국 두 가족의 통합으로 여겨질 만큼 이 드라마의 주제에 맞닿아 있다. 그만큼 장애도 많고 아슬아슬한 점이 있지만, 이것은 또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힘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 멜로가 주목되는 것은 그 긍정적인 힘이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두 사람이 서로에게 "이런 나라도 되겠니"하고 물어보는 곳에서는 이 드라마가 가진 상대방에 대한 소통의 욕구를 강하게 드러낸다.

이처럼 멜로가 드라마의 어떤 성격까지를 드러내는 이유는 멜로가 가진 특유한 틀이 드라마의 주제를 엿보게 하기 때문이다. 멜로에는 늘 장애요소가 등장하기 마련인데, 이 장애요소는 결국 그 드라마의 문제제기가 되곤 한다. 즉 시어머니의 방해는 그러한 구세대적 가족제도에 대한 멜로의 문제제기가 된다. 그것을 넘어서는 과정을 멜로가 그려내기 때문이다. 주말극 속에 보여주는 이 세 커플의 멜로가 그 드라마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은 그런 이유다. 멜로를 통해 보면 '수상한 삼형제'는 이 드라마의 인위적 성격을, '천만번 사랑해'는 고전적인 성격을, 그리고 '그대 웃어요'는 현실비판과 긍정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수상한 삼형제'의 가족, '그대 웃어요'의 가족

저런 집구석에서라면 하루도 못살겠다. '수상한 삼형제'가 그리는 가족의 모습이 주는 인상이다. 직업조차 없고 이혼까지 한 장남은 여전히 정신 못 차리며 '인생 한 방'을 외치고, 그래도 장남이라고 챙기는 어머니 때문에 그 집 둘째 며느리는 거의 하녀처럼 구박당하며 죽어라 일만 한다. 그걸 아는 둘째 마음이 좋을 리가 없다. 그래도 어머니 보약이라도 하라며 돈을 챙겨주지만, 그 돈이 전부 장남에게 들어가는 게 둘째는 영 마음이 좋지 않다. 셋째는 건실하고 유쾌하게 살아가려 하지만, 새로 만난 여자가 나쁜 놈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꼴을 보게 된다. '수상한 삼형제'가 그리는 가족은 늘 이처럼 지지고 볶는다. 보는 이의 혀를 차게 만드는 그 진상에 그러나 시청자는 좀체 눈을 뗄 수가 없다.

저런 집이라면 정말 살고 싶다. 반면 '그대 웃어요'가 그리는 가족의 모습이 주는 인상은 정반대다. 물론 이 가족에 진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업을 실패하고도 여전히 정신 못 차리는 서정길(강석우), 고이 공주처럼만 살아와 여전히 아무 일도 못하는 아내 공주희(허윤정), 유학이라고 보냈더니 도박으로 돈만 다 날리고 돌아온 장남 서성준(이천희), 능력 있는 의사지만 어쩌다 애 딸린 이혼남에 빠져버린 장녀 서정경(최정윤), 결혼식 당일 소박을 맞은 막내 서정인(이민정). 이 가족은 진상 아닌 인물이 없다. 하지만 이 진상을 거둬서 함께 살아가는 강만복(최불암)과 그 가족이 있어 이 드라마의 가족은 살 맛이 난다.

두 가족 모두 늘 사건이 끊이지 않지만, 그 양상은 사뭇 다르다. '수상한 삼형제'의 가족은 희망을 좀체 발견하기가 힘든 반면, '그대 웃어요'의 가족은 늘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어떤 희망을 발견한다. 그 희망의 진원지는 바로 가족이다. '수상한 삼형제'의 가족은 그 부딪침이 파탄지경으로 극화되지만, '그대 웃어요'의 가족은 엇나가도 본래는 착하며, 그래서 결국에는 제 자리로 돌아올 거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이것은 두 드라마 속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멜로의 양상에서도 드러난다. '수상한 삼형제'의 막내 김이상(이준혁)과 주어영(오지은)의 멜로는 왕재수(고세원)라는 파렴치한 인물로 인해 고난을 맞는다. 왕재수는 다른 여자와 결혼을 약속했으면서도 무슨 이유인지 주어영을 말 그대로 가지고 논다. 그 양상은 혼인빙자간음 같은 범죄 수준이다. 그러니 이 관계를 바라보는 시청자의 마음은 흐뭇함이 아니라 분개에 가깝다. 김이상이라는 이상적인 인물과 주어영 같은 착한 여성 사이에 끼어든 범죄적 인물 왕재수에 대한 분노의 힘은 이 드라마의 멜로가 시청자들을 애태우게 하는 이유다.

한편 '그대 웃어요'의 강현수(정경호)와 서정인(이민정)의 멜로는 보는 이들을 풋풋하게 만든다. 정인의 언니인 정경(최정윤)을 짝사랑해오다 정리하게 된 강현수는 서정인을 동생처럼 생각하지만, 차츰 마음 속으로 들어오는 그녀에 당혹스러워 한다. 이들의 사랑을 가로막는 것은 의도적인 장애물이라기보다는 인간적인 부족함 때문이다. 완전하지 않은 그들이기에 사랑이 자꾸만 엇갈리게 되는 것이다.

가족과 멜로를 통해 볼 수 있듯이 두 드라마는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약간 다르다. '수상한 삼형제'에는 물론 희망적인 인물이 있지만 '아무리 해도 역시 안되는' 인물이 존재하고, 그 인물들로 인해 가족은 어려움을 겪는다. 작가는 가족이 늘 그렇게 지지고 볶으면서도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존재라고 말한다. 반면 '그대 웃어요'에는 아무리 인간 말종이라도 어느 부분에서는 그 허약함이 드러나고, 그 속에서 변화의 가능성은 포기되지 않는다. 작가는 가족의 어려움은 그 인간 말종의 변화 불가능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그 부족함이 채워질 때, 변화는 여전히 가능하다.

따라서 드라마의 해법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수상한 삼형제'의 해법은 그 변화 불가능한 가족의 고민거리들이 대결구도에서 지게 되는 것이다. 그만큼 이 드라마는 선악구도가 분명하다. 반면 '그대 웃어요'의 해법은 그 부정적 인물들이 긍정적인 인물로 개과천선하는 과정에 있다. 주말드라마의 이 두 가족은 어려움을 맞이해 우리가 가족을 생각하는 그 두 가지를 잘 보여준다. 하나는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벽에 서 있는 듯한 절망적 인물과 그래도 그들과 함께 살아내는 긍정적 인물이 있어 살아갈 수 있는 가족이고, 다른 하나는 절망적 인물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 속에서 발견하는 변화가능성과 희망이다. 당신은 어느 가족이 더 궁금한가.

'지붕 뚫고 하이킥'과 '그대 웃어요'

이른바 막장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자극적인 설정의 드라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웃음을 주는 완소드라마가 있어 눈길을 끈다. 그 주인공은 MBC 일일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과 SBS 주말드라마 '그대 웃어요'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짜증과 경악의 연속인 자극적인 드라마들과는 상반되게, 이들 드라마들은 보는 내내 입가에 편안한 미소가 저절로 지어지게 하는 마력을 발휘하는 것이 특징. 도대체 어떤 점들이 이들 완소드라마들만이 갖는 매력을 만드는 것일까.

'지붕 뚫고 하이킥'은 독특한 시트콤이다. 시트콤이라면 시추에이션 코미디로서 웃음이 전면에 내세워지게 되지만 이 작품은 그저 물리적인 웃음에만 머물지 않는다. 웃음 뒤에 진한 페이소스를 남기는 것이 특징. 산골에서 상경해 부모 없이 서울 하늘에서 생존해가는 세경과 신애가 보여주는 진한 자매애가 그렇고, 그런 그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은연 중에 내미는 줄리엔이나 준혁, 지훈의 이야기가 그렇다.

동생 신애에게 학용품을 마련해주기 위해 샌드위치 많이 먹기 대회에 참가하는 세경의 에피소드는 우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떤 훈훈한 감동을 준다. 해리가 가진 인형을 갖고 싶어 신애가 훔치려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정보석의 한 박자 늦는 탐정 놀이에서 웃음이 터지지만, 결국 그 사실을 알게된 지훈이 신애에게 인형을 새로 사서 전해주는 장면에서는 훈훈한 미소가 피어난다. 준혁이 버린 학교 체육복을 입고 학교를 찾아온 세경이 번번이 체육선생에서 당하는 에피소드는 큰 웃음을 주지만, 학교 공부가 그리운 세경에게 준혁이 마치 버리는 것처럼 참고서를 건네는 장면에서는 흐뭇한 마음을 갖게 만든다.

이처럼 웃음에 어떤 마음을 담아내는 것으로 '지붕 뚫고 하이킥'이 주는 웃음은 여타의 시트콤과 확실한 차별성을 갖게 된다. 폭소는 즉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것이지만 쉬 잊혀지기 쉽다. 하지만 상황이 주는 흐뭇함에 짓게 되는 미소는 오래도록 여운을 남기게 된다. 이것이 '지붕 뚫고 하이킥'이 완소 드라마이게 하는 이유다.

한편 주말드라마로 점차 주목받기 시작한 '그대 웃어요' 역시 풍자적인 웃음 속에 페이소스를 담아냈다. 허풍에 겉멋만 잔뜩 든 서정길(강석우)이 사업에 실패하고 길바닥에 나앉게 되자 그의 운전기사였던 강만복(최불암)이 그 가족을 거두어 함께 살아가는 독특한 설정의 이 드라마는 예의 없는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가 스며들어 있다. 운전기사였었다는 것만으로 여전히 하대하는 서정길은 돈이면 다된다는 식의 무례한 시대를 대변하는 인물. 그를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강만복의 결심은 이 시대에 대한 통쾌한 일침이 아닐 수 없다.

어찌 보면 이 심각해질 수 있는 계층의 부딪침을 이 드라마는 가벼운 웃음으로 전화시키는 풍자정신을 발휘한다. 게다가 강만복의 일갈은 당한 것에 대한 보복의 차원에서 머물지 않고 마치 아버지가 자식에게 하는 것 같은 사랑을 바탕에 깔고 있다. 서정길의 아버지에게 은혜를 입은 강만복이 엇나가는 서정길을 자식처럼 계도하는 이야기가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이야기는 유쾌하고 훈훈해진다.

우연의 일치인지 이 '지붕 뚫고 하이킥'과 '그대 웃어요'는 모두 계층적인 갈등을 이야기의 모티브로 삼고 있다. '지붕 뚫고 하이킥'은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 메인 줄기로서 가진 것 없고 부모마저 없이 산골에서 상경한 세경, 신애와,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어딘지 빈 구석이 많은 서울의 해리네 가족이 대비된다. '그대 웃어요' 역시 돈 걱정 없이 살아온 정인(이민정)네 가족과 늘 절약만을 외치며 살아온 현수(정경호)네 가족의 그 다른 삶의 방식이 갈등의 메인줄기다.

이러한 계층적 갈등이 갖는 빈부격차의 이야기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지극히 현실적인 소재로 다가온다. 중요한 것은 이 '지붕 뚫고 하이킥'과 '그대 웃어요' 가 이 갈등을 봉합해가는 과정이다. 대결구도가 파탄과 복수로까지 이어지는 이른바 막장드라마들과는 달리, 이 작품들은 긍정의 힘으로 어떤 소통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것이 이 작품들이 시청자들에게 현실적인 공감을 주면서도 화해가 갖는 훈훈한 웃음을 짓게 만드는 이유이다.

상황 반전된 '그대 웃어요', 그 웃음을 회복한 이유

SBS 주말드라마, '그대 웃어요'는 제목이 알려주듯 아예 내놓고 웃음을 표방한 드라마다. 하지만 6회가 지나는 동안, 이 드라마는 꽤 웃음의 포인트를 집어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좀체 웃을 수가 없었다. 그 웃음의 포인트는 건설업 회장이었다가 졸지에 망하게 되어 길바닥에 나앉게 된 서정길(강석우)과 그 가족들이 그의 운전기사였던 강만복(최불암)의 집에 얹혀산다는 그 설정에 있다. 하지만 좀체 웃을 수 없었던 이유는 이 얹혀사는 서정길과 그 가족들이 염치라는 걸 모르는 인간들로 그려지면서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기 때문이다.

서정길은 여전히 그를 도련님이라고 부르는 강만복을 함부로 하대하고, 얹혀사는 주제에 끊임없이 불만을 토로하는 뻔뻔한 인물. 불황으로 가뜩이나 빈부 격차에 대해 민감한 현재, 이런 부를 앞세워(심지어 그 부조차 사라져버린 과거지사가 되어버렸지만), 타인을 지나치게 낮게 바라보는 시선은 시청자들을 불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사업이 망했다고 결혼식날 바로 파혼을 선언하는 장면은 아무리 과장되게 연출되었다고 해도 씁쓸한 뒷맛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만큼 그 상황들은 웃기에는 지나치게 현실적이었다. 현실에 여유가 있는 이들의 눈에는 웃음을 줄 수 있었을 지 몰라도, 현실 자체가 팍팍한 서민들에게는 그렇지 못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서정길의 맏아들이자 유일한 희망이었던 서성준(이천희)이 거의 알거지로 귀국하면서 상황은 급반전되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강만복은 이제 서정길을 "사람 만들어 보겠다"고 결심하게 되고, 도련님이라 부르던 호칭 대신, "야 서정길이!"하고 호통치게 되었기 때문이다. 즉 이 드라마는 이제부터 강만복이라 대표되는 서민들의 대변자가 돈푼깨나 만졌다는 졸부들에게 한 수 가르치는, 본래하려고 했던 본격적인 제 이야기의 궤도에 들어서고 있다.

부자랍시고 사람 대하기를 하인 대하듯 해왔던 서정길과 그 가족들은 이 인간냄새 풀풀 나는 집안에서 서민들의 삶을 통해 인간적인 삶을 배워나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찬란한 유산' 이후 주말 드라마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한 고전적인 이야기의 현대적 재해석이 이 드라마에도 깃들어 있다. '찬란한 유산'이 '위대한 유산'의 재해석이라면, '그대 웃어요'는 어찌 보면 '흥부와 놀부'의 이야기 같고, 어찌 보면 '양반전'의 재해석 같은 풍자의 칼날이 숨겨져 있다. 이 위에 빈부 격차를 뛰어넘는 사랑의 이야기 역시 고전적인 맛이 있다.

고전의 재해석이 갖는 익숙함이 있기 때문에, 그 위에 양념처럼 얹어지는 웃음의 코드는 그만큼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강만복의 변신을 통한 국면전환은 이제 본격적으로 이 드라마가 제목 값을 하게 될 계기로 작용한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의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던 서정길의 행동과 그 일련의 에피소드들은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시청자들에게 작금의 불쾌한 우리 현실을 과장된 틀을 통해 환기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갖는 판타지를 강화하기 위해 먼저 현실의 각박함을 드러내주는 방식.

그렇다면 드라마가 내놓고 표방하듯이 이젠 웃을 수 있을까. 앞으로 전개될 '그대 웃어요'에서는 현실의 세태가 도마 위에 올려지는 유쾌한 웃음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그 풍자의 웃음이 갖는 현실적인 의미까지 전해줄 수 있을까. 그것을 통해 드라마가 주는 웃음이, 좀체 웃음이 터져 나오지 않는 각박한 현실에도 어떤 웃음을 던져줄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이 이 드라마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부터 본격적인 궤도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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