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코드 다른 활용, ‘황금빛 내 인생’ 저력의 원천

도대체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의 무엇이 이토록 우리의 시선을 잡아끄는 걸까. 서지안(신혜선)이 진짜 재벌가의 딸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그 순간 <황금빛 내 인생>의 시청률은 36%(닐슨 코리아)를 기록했다. 이런 속도감에 이런 폭풍전개라면 40% 시청률을 경신하는 건 시간문제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황금빛 내 인생(사진출처:KBS)'

놀라운 건 이 드라마가 50부작이며 지금 겨우 20부가 방영됐다는 점이다. 보통의 ‘출생의 비밀’을 다루는 드라마라면 이렇게 그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은 거의 드라마가 끝나는 시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이게 끝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시작이다. 이렇게 드러난 출생의 비밀 이후, 그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 <황금빛 내 인생>이라는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이 증폭되는 건 아직도 한참 드라마가 하지 않은 이야기가 남았고, 그것 역시 우리가 생각했던 것 그 이상으로 나아갈 거라는 예감 때문이다.

사실 어찌 보면 뻔한 이야기일 수 있다. 흙수저가 금수저로 탈바꿈되어 가짜 신분상승을 하게 된다는 설정은 결국 그 실체가 드러나면서 벌어질 파국을 예고한다. 그 당사자인 서지안이 겪을 고통은 물론이고, 실제 재벌가의 딸인 서지수(서은수)가 느낄 충격 또한 만만찮다. 게다가 이 모든 일을 꼬이게 만든 장본인인 그들의 엄마 양미정(김혜옥)이 느낄 회한과 그걸 알게 됐음에도 막을 수 없었던 서태수(천호진)의 자책감도 결코 작지 않다.

즉 드라마적인 극적 상황들이 이보다 클 수는 없다는 거다. 하지만 이건 자칫 잘못하면 막장드라마들이 쓰는 자극적인 전개처럼 비춰질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황금빛 내 인생>이 주는 느낌은 그렇지가 않다. 그것은 자극을 위한 자극이라기보다는 우리에게 진짜 ‘황금빛 인생’이라는 것이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지옥도’라는 느낌이 든다. 바로 이 드라마가 가진 진정성의 지점이 이 드라마가 가진 엄청난 자극을 눌러주는 힘이다. 

‘딸 바꿔치기’나 ‘출생의 비밀’, 나아가 왕자님과 신데렐라 설정 같은 익숙한 코드들을 우리는 이 드라마에서 쉽게 발견한다. 서지안에 대한 동정심과 미안함을 넘어 애정을 갖게 된 최도경(박시후)은 현대판 왕자님이나 다름없고, 물론 출생의 비밀을 안고 동생으로 왔지만 그것이 밝혀지면서 그에게 기대는 서지안은 신데렐라의 변형 캐릭터다.

그런데 이런 익숙한 코드들을 가져와 이 드라마는 다른 방식으로 활용한다. ‘출생의 비밀’은 흙수저가 금수저가 되는 신데렐라 판타지를 위해 가져온 코드가 아니라, 흙수저가 가짜 신분을 얻어 금수저가 되도 전혀 행복할 수 없고 오히려 지옥 같은 불행을 겪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며, 금수저가 아니라도 그 흙수저가 얼마나 자기 능력으로 설 수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코드다. 

여기서 최도경이라는 왕자님의 역할은 신데렐라 서지안이 가질 수 없는 걸 갖게 해주는 그런 판타지적 존재가 아니라, 그가 겪는 아픔을 공감해주며 나아가 보호해주려는 역할이다. 그러니 이 왕자님을 통해 느끼는 감정은 물적 욕망이 아니라 정신적 공감대가 주는 인간적인 따뜻함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 출생의 비밀 주인공인 서지수는 어떻게 변할까. 지금껏 천사표 동생의 모습을 보이며, 가진 것 없어도 구김살 없이 살아왔던 그가 아니던가. 하지만 부모와 언니에게 철저히 속았다 오해하게 된 그는 어쩌면 우리가 그간 ‘출생의 비밀’ 코드를 담은 드라마에서 봐왔던 그 착한 신데렐라가 아닌 악녀의 면면을 드러낼 지도 모른다. 

익숙한 코드가 주는 선입견은 <황금빛 내 인생>이 가진 가장 큰 약점 중 하나였다. 그건 자칫 드라마가 하려는 진심을 덮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소현경 작가가 뚝심 있게 하려던 이야기를 밀고 나간 그 점이 이 드라마가 가진 저력의 원천이 되었다. 코드보다 중요한 건 그 코드들을 달리 활용해 담아내려는 메시지라는 걸 이 드라마는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김생민의 영수증'이 건드린 서민들의 소비정서


과연 저렇게 아끼면서 살 수 있을까 싶지만 김생민이 대놓고 “스튜핏”과 “그뤠잇”을 반복하며 요리조리 쪼개 보는 누군가의 영수증 이야기가 어쩐지 마음속에 콕콕 박힌다. ‘돈은 안쓰는 것이다’라고 적혀진 커다란 문구는 우스우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을 잡아 끈다. 김생민이 아끼고 아끼라는 말을 줄줄이 늘어놓을 때 옆 자리에 앉아 정반대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자신의 소비욕망을 드러내는 김숙과 송은이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김생민의 말과 김숙, 송은이의 말은 정반대의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그 두 이야기가 모두 고개가 끄덕여지는 건 왜일까. 바로 이 지점에 KBS <김생민의 영수증>이라는 프로그램이 이른바 ‘김생민 열풍’까지 만들어낸 저력이 숨겨져 있다. 


'김생민의 영수증(사진출처:KBS)'

사실 소비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가만히 있어도 부추겨지는 욕망이다. 물건들이 넘쳐나는 세상이고 그러니 그걸 사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그렇게 쓰고 싶은 대로 쓰면 점점 살기 힘들어지는 현실은 기형적이다. 정상적인 소비를 하고도 집을 사고 차를 타고 직장을 다니며 때론 여행을 가는 일이 누구나 가능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집 하나를 사기 위해 수십 년의 인생을 은행 빚을 갚아나가는데 보내야 하는 게 우리의 처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모 잘 만나 집 한 채 정도는 뚝딱 받아 살아가는 금수저가 아니라면 절망적일 수밖에 없다. 도무지 그 흙수저의 삶을 벗어날 수 없는 사회 시스템 안에서 도대체 어떻게 버텨내야 한단 말인가. 그래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는 삶(아파트 하나를 장만하기 위해 우리가 누구나 그렇게 하듯)을 ‘스튜핏’하다고 깨달은 대중들은 미래가 아닌 현재를 살라고 말한다. 이른바 ‘욜로’ 열풍이 나온 건 바로 이런 절망적인 현실이라는 텃밭에서였다. 당장 하루하루를 즐기는 삶이 그걸 희생해 한참 후에 올 미래의 행복보다 중요하다는 것. 


하지만 <김생민의 영수증>은 정반대 이야기를 한다. 미래가 아닌 현재를 즐기는 건 ‘스튜핏’한 삶이라고 말한다. 대신 지금 당장 적금통장을 만들고 하루하루 당신의 통장을 점검해 쓸데없는 소비들을 없애나가라고 말한다. 그러다 보면 포기했던 ‘그뤠잇’한 미래가 꿈이 아니라 현실로 펼쳐질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김생민의 영수증>은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그가 하는 일련의 해법들은 일견 공감 가는 것이고 합리적인 것이긴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솔루션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건 김생민도 알고 있고 함께 앉아 있는 송은이도 김숙도 알고 있따. 다만 이 프로그램이 건드리는 건 그런 솔루션이 아니다. 오히려 미래를 준비하려니 현재를 포기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그렇다고 현재를 즐기자니 미래가 불안한 서민들의 그 양가적 감정을 모두 공감하는 일이다. 김생민이 아끼라고 하고 김숙이 그래도 사고 싶다고 말하는 그 균형점 안에 서민들이 가진 소비에 대한 양가감정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그래서 <김생민의 영수증>은 궁극적으로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이 해결해주지는 않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만이라도 동병상련을 겪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을 쓰다듬는다.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한의원에서 꽤 비싼 한약을 구입하지만 그러고 채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야식을 먹는 분이나, 빵집을 자주 들르면서 굳이 토스터기를 사는 분들이 보여주는 합리적이지 않은 소비의 모습이 나와 다르지 않다는 걸 확인하면서 공감하는 시간. 그래서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그렇다는 걸 우리는 그 타인의 영수증을 통해 보면서 위로받는다. 


그래서 <김생민의 영수증>이라는 프로그램은 어찌 보면 한 편의 짧은 ‘블랙코미디’를 보는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쓰지 말라”고 강변하는 김생민의 극단적인 짠돌이의 모습은 그 자체로 우리가 얼마나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가를 캐릭터로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쓰고 싶지만 여유가 없고, 여유 없이 살자니 퍽퍽해지는 삶. 그 사이에 서 있는 지금의 대중들의 정서를 이만큼 제대로 저격한 프로그램도 보기 드물 것이다. 그래서 어찌 보면 수십 년 간 화려해 보이는 연예계 속에서, 홀로 그뤠잇한 서민의 삶을 살아온 김생민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강렬한 풍자처럼 보이는 면이 있다. (이 글은 농민신문에 게재되었습니다.)

<상속자>, 현실의 축소판을 보는 재미 혹은 끔찍함

 

SBS가 새로 파일럿으로 내놓은 <인생게임-상속자(이하 상속자)>9명의 일반인들이 한 공간에 모여 네 계급으로 나뉜 채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낸 일종의 리얼리티쇼다. 과거 <>이 애정촌에 모인 남녀들의 관계를 리얼리티쇼로 담아냈다면, <상속자>는 태생()적으로 정해진 계급에 의해 만들어지는 정치, 경제, 사회적인 양상들을 역시 리얼리티쇼 형식으로 담아낸다.

 

'상속자(사진출처:SBS)'

룰은 간단하다. 운으로 금수저를 뽑은 인물이 초대 상속자가 되어 계급의 맨 꼭대기에 서고 그가 바로 밑 계급 집사 1명과 그 밑 계급 정규직 3명을 뽑는다. 그리고 남은 인원 4명은 비정규직이 된다. 상속자는 이들이 지내는 방세와 식비를 받아 돈을 벌 수 있지만, 나머지 인원들은 방세와 식비를 내야 살아갈 수 있다. 물론 이 룰에서 집사는 예외적 존재다. 이렇게 해서 마지막에 가장 많은 돈을 갖고 있는 자가 우승자가 되는 게임.

 

아주 간단한 게임처럼 보이지만, 이렇게 계급으로 구성된 룰은 지독할 정도로 현실적이다. 금수저 흙수저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기고, 권력을 가진 상속자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거의 폭군에 가까운 방세와 식비를 가져가려 한다. 조악한 상황에서 살아가야 하는 비정규직들은 연합하여 다음 선거에 권력을 잡으려 하지만 이게 만만치가 않다. 상속자와 정규직들이 이미 더 공고한 연합을 만들어 비정규직들을 지속적으로 배제하려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장난처럼 시작한 게임이지만 어떻게든 계급을 넘어서기 위해 배신과 야합이 난무하면서 이들은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된다. 그리고 아직 방영되지 않은 다음 편 예고에서는 눈물을 쏟는 이들의 모습이 담겨지기도 했다. 이처럼 게임이 게임에 머물지 않고 감정을 건드리는 건 그것이 고스란히 현실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등록금 대출금에 허덕이며 알바를 전전해 살아온 닉네임 샤샤샤라는 여성출연자가 상속자가 되어 그 호사와 권력에 취하는 모습은 너무 현실적이라 마음 한 구석이 씁쓸해지기까지 한다.

 

<상속자>는 이처럼 리얼리티쇼가 보여주곤 하는 사람들의 치부를 드러내면서도 거기에 우리 사회의 현실을 투영시킴으로써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대단히 자극적일 수 있는 내용들이다. 즉 누군가가 연합할 것처럼 행동하다가 갑자기 혼자 잘 살기 위해 배신을 하는 장면은 보는 이들마저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이 계급의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 시스템이란 다름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작동방식 그대로다.

 

그런데 이 <상속자>에서 주목해야할 것이 있다. 그건 방영 전부터 예고편에 등장해 기대감을 높였던 김상중이다. 그리고 그는 마스터라는 이름으로 이 프로그램의 이면에 참여하고 있다. 대부분의 방송분량이 일반인 출연자들의 리얼한 행동들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이 마스터 김상중의 모습은 뒤편으로 슬쩍 빠져 있다. 도대체 김상중은 이렇게 전면에 나오지도 않으면서 왜 이 프로그램의 중요한 인물로 서 있는 걸까.

 

그건 바로 그가 이러한 끔찍한 현실이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조장되고 만들어진 현실이라는 걸 은연중에 드러내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계급사회라는 시스템 속에서 불공평한 삶을 살아가며 경쟁해야 하는 사람들. 그들은 하루하루가 힘들고 서로를 경쟁자로 생각하며 밟고 밟히며 살아가지만 그것이 사실은 누군가 조장한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 삶이라는 것. 김상중은 그런 존재가 현실에도 있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잘 보이지 않던 우리네 현실을 다시금 들여다보게 만드는 인물이다.

 

김상중이라는 외부적 시선을 통해 보여지는 <상속자>는 그래서 인간군상을 보는 재미를 선사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 적나라함이 주는 끔찍함 같은 걸 느끼게도 해준다. 물론 이 같은 시스템 상황 속에서도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당사자들에게 달려 있다. 그러니 실제 현실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 이 가상 시스템 안에 들어오느냐에 따라 다른 스토리를 전해줄 가능성도 높다. <상속자>라는 파일럿의 확장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에릭, 서현진의 인생작 된 <또 오해영>

 

서현진이 이렇게 예뻤던가. 에릭이 이렇게 멋있었나. 아마도 tvN <또 오해영>을 보면서 시청자들의 느낌은 비슷할 게다. 드라마가 좋으면 배우들은 더더욱 반짝반짝 빛난다. <또 오해영>이란 작품 속에서 그냥 오해영을 연기하는 서현진이 그렇고, 깐깐하게 소리를 듣고 모으는 박도경을 연기하는 에릭이 그렇다.

 

'또 오해영(사진출처:tvN)'

<또 오해영>은 로맨틱 코미디로서의 웃음이 충만한 드라마지만, 또한 금수저 흙수저를 달리 해석한 듯한 1급수와 3급수의 사랑 이야기로 한편으로는 짠하고 한편으로는 통쾌함을 안겨주는 그런 드라마다. 1급수에서 그들끼리 만나고 사랑해온 예쁜 오해영(전혜빈)’3급수에서 살아온 그냥 오해영은 박도경이라는 인물을 사이에 두고 급수를 뛰어넘는 사랑을 시도한다.

 

1급수와 3급수의 비교는 그냥 오해영이 항상 괴로워했던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의 예쁜 오해영이 늘 주변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사랑받는 모습을 보이고, 반대로 그냥 오해영은 항상 비교되면서 무시되는 모습을 보일수록 시청자들의 마음은 드라마와는 정반대로 움직인다. 박도경이 그런 느낌을 갖는 것처럼 한없이 그냥 오해영이 짠하게 다가오고 그래서 더욱 사랑스럽게 보이는 것.

 

사실 어떤 면으로 보면 전혜빈이 연기하는 예쁜 오해영은 여성 시청자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캐릭터일 수 있다. 늘 여성스러움을 드러내며 예쁜 척하는 듯한 그 모습이 그렇다. 반면 그냥 오해영은 여성 시청자들이 좋아할만한 캐릭터다. 털털하고 솔직하며 한편으로는 동정이 가기도 하는 그런 캐릭터. 그러니 드라마 속에서 그냥 오해영예쁜 오해영이 처한 상황은 그걸 보는 시청자들에게는 거꾸로 느껴지게 된다. ‘그냥 오해영이 더 예쁜 존재로 다가오는 것. 이것은 <또 오해영>이라는 드라마가 만들어낸 마법 같은 장치다.

 

물론 예쁜 오해영역시 나쁜 의도를 가진 존재는 아니다. 그녀가 도경을 결혼식 날 바람 맞춘 데는 그만한 남모를 사연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사연이 드러나는 순간 도경은 두 오해영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도경의 캐릭터다. 그는 과연 그냥 오해영이 말하듯 1급수에 살아가면서 그들끼리 사랑하는 그런 존재일까.

 

그렇지 않다는 건 도경이 가진 직업에서 드러난다. 도경은 소리를 찾고 모으는 일에 그 누구보다 깊게 빠져 있다. 그는 창문을 열면 들어오는 빛에도 소리가 있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와 지나가는 찻소리 등이 겹쳐지면 그 빛의 소리가 비로소 선명해지는 것. 하다못해 분노한 여자가 찬 깡통 소리도 경쾌한 소리와 화난 소리로 구분해내는 인물이 도경이다.

 

굳이 이 드라마가 도경에게 이런 직업을 부여한 이유는 뭘까. 그건 아마도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소리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귀 기울이는 캐릭터를 그려내려 한 게 아닐까. ‘그냥 오해영이 말하듯 도경은 현실적으로는 1급수에서 살아가는 사람일 수 있지만 그는 저 길거리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일 줄 아는 그런 인물이다. 스스로를 3급수라 표현하는 그냥 오해영이 점점 그의 눈에 들어오는 건 그래서일 게다.

 

하지만 그냥 오해영이 말하는 1급수와 3급수의 세상은 어찌 보면 그녀가 가진 오해이자 편견일 수 있다. 그녀 스스로도 나는 나고 너는 너다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러니 <또 오해영>이라는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하려는 이야기는 급수를 뛰어넘는 사랑이 아니라 애초에 사랑에는 급수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일 것이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어찌 보면 가볍게 느껴질 수 있는 장르에 이토록 촘촘히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지면서 그것을 또한 두 오해영 캐릭터와 도경이라는 인물로 그려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너무나 균형 있게 그려지고 있어 캐릭터들이 그토록 빛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서현진과 에릭, 그리고 나아가 전혜빈까지 이 작품이 인생작이 될 거라는 기시감은 아마도 틀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리멤버> 남궁민과 박성웅, 거악과 거악 잡는 소악

 

SBS 수목극 <리멤버-아들의 전쟁(이하 리멤버)>에서 극의 힘을 만들어주는 장본인은 남규만(남궁민)이다. 재벌 망나니 후계자로서 갑질금수저의 면면들을 보여주는 이 캐릭터는 시청자들을 공분하게 만든다. 사람을 죽이고도 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비아냥대는 사이코 패스 같은 모습이나, 술집에서 접시에 술을 따라놓고 개처럼 마시면 차키를 주겠다고 하는 장면에서는 돈이면 뭐든 다 된다는 식의 갑질이 그렇다.

 


'리멤버-아들의 전쟁(사진출처:SBS)'

남규만이라는 캐릭터는 여러모로 올 여름 영화 시장을 강타했던 <베테랑>의 조태오(유아인) 캐릭터를 연상시킨다. <베테랑>의 성공은 어쩌면 이 조태오라는 악역에 의해 가능했다고도 여겨진다. 우리 사회의 현실적인 악을 캐릭터화한 그 인물이 어떻게든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픈 욕망은 이 땅에 살아가는 서민들이라면 인지상정일 것이다. 남규만이란 조태오를 잇는 유사한 악역 캐릭터가 등장했다는 건 이제 이런 공분의 대상이 새로운 흥행 캐릭터로 자리 잡았다는 걸 말해준다.

 

그런가 하면 이 남규만이라는 자본의 힘을 거머쥔 악역을 잡는 인물로서 박동호(박성웅)라는 캐릭터 또한 특이하다 여겨진다. 그는 그저 악에 대항하는 선한 인물이 아니다. 변호사지만 조폭들과 손이 닿아 있고 사실상 그들을 변호한다는 점에서 조폭 변호사라는 지칭이 그리 틀리다고 말할 수 없다. 등짝에 커다란 문신을 한 변호사라는 캐릭터 설정은 이 인물의 위치를 정확히 설명해준다.

 

박동호는 법을 꿰고 있는 변호사지만 그의 변호가 법이라는 정상적인 틀로서만 이뤄지는 건 아니다. 그는 오히려 변호인의 상대가 가진 약점을 잡아 협박을 하거나 심지어 불법적인 도촬을 감행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유능한 변호사란 법정에서 이기는 변호사가 아니라 의뢰인을 법정에 세우지 않는 변호사다. 이 캐릭터에 의하면 법은 판정만 내릴 뿐, 진실이나 정의라는 순수한 단어만으로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걸 보여준다.

 

흥미롭게도 우리는 박동호라는 캐릭터 역시 최근 흥행에 성공하고 있는 영화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내부자들>의 정치깡패 안상구(이병헌)가 그 캐릭터다. 안상구는 불법을 자행하는 나쁜 놈이지만 정재계와 언론, 법조계가 형성하고 있는 카르텔이라는 거악(巨惡)과 대적하게 되면서 긍정적인 캐릭터가 된다. 거악과 대항하는 소악(小惡)은 오히려 그 악에 대한 이해나 칼에는 칼로 대적하는 거친 면면들에 의해 환영받는다.

 

박동호는 법의 세계도 알고 있지만 동시에 범법의 세계도 이해하고 있다. 그러니 남규만처럼 보통의 평범한 서민들이 대적하기에는 버거운 악인과의 대적이 가능해진다. 그렇다면 거악과 거악 잡는 소악 캐릭터가 하나의 흥행 캐릭터로 자리한 이유는 뭘까. 거기에는 안타깝게도 순진한 선의만으로는 이제 세상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는 대중들의 법 집행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리멤버>를 보다보면 이 거악과 싸워 나가는 독특한 캐릭터들이 모두 범상치 않은 능력을 갖고 있다는 데 놀라게 된다. 서진우(유승호)는 뭐든 한 번 보기만 하면 사진처럼 생생하게 기억해낼 수 있는 절대 기억의 능력자이고, 박동호는 앞에서 말했듯 법도 알고 범법의 생리도 아는 승률 100%의 변호사다. 이런 능력자들이 등장한다는 건 그들이 대적할 남규만 같은 상대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거악과 거악 잡는 소악. 남규만과 박동호 같은 캐릭터는 우리네 현실이 가진 정의의 문제를 다루는 콘텐츠에서 점점 하나의 흥행 캐릭터로 자리하고 있다. 물론 드라마로는 이들 캐릭터들이 깊은 몰입과 잠시간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평범한 변호사들이 법대로만 해도 불의가 척결되는 그런 현실은 우리에게 너무나 먼 일이 되어가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에 이들 새로운 흥행 캐릭터에 씁쓸함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위대한 유산>이 서민들의 눈높이로 다가온 까닭

 

MBC <위대한 유산>이라는 프로그램의 제목이 우리에게 먼저 상기시키는 건 안타깝게도 찰스 디킨스의 소설 같은 것이 아니다. 사회가 워낙 금수저 흙수저 같은 암담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보니 이 위대한 유산이라는 제목도 꼭 그런 이야기마냥 들린다. 하지만 적어도 <위대한 유산>에 있어서 금수저 따위의 우려는 접어도 좋을 듯하다. 이 예능이 비추고 있는 세계는 우리네 서민들이 살아가는 공간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위대한 유산(사진출처:MBC)'

부산 영도의 강지섭의 부모님이 무려 43년 간이나 운영하고 있다는 중국집은 우리가 흔히 지나치곤 하는 그런 중국집과 별 다를 바 없다. 아니 어찌 보면 도시에서 점점 기업화되고 있는 중국 레스토랑과는 전혀 다른 변두리의 소박하고도 정감 가는 동네 중국집이다. 어느 대기업 2세가 어울릴 법한 강지섭이라는 배우와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그가 그 중국집 문을 열고 들어가 어색한 아버지와 마주 앉는 순간, 순박하기 이를 데 없는 부산 사투리가 튀어나온다.

 

오래도록 사용해서 바닥이 검게 그을려버린 전기장판에 앉아 서울에서 찾아온 아들을 보는 부모의 얼굴은 무심한 듯 반가움이 역력하다. 하지만 강지섭이 이 곳에 온 이유는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기 위함이다. 그 유산이란 다름 아닌 중국집에서 한 평생 요리를 해 오신 아버지의 그 요리 노하우다. 철가방 들고 동네 배달을 나가 아주머니들과 한바탕 어우러지고, 늦게 돌아온 아들에게 지청구를 날리며 중국집의 노하우를 알려주는 아버지의 모습. 아마도 이 이야기 속에서 강지섭은 요리 기술을 넘어선 삶의 노하우가 아닐까.

 

걸 그룹 AOA의 찬미 하면 먼저 떠올리는 것이 화려한 무대지만, 그녀가 찾아간 곳은 다름 아닌 엄마의 작은 미용실. 그 작은 미용실에서 엄마는 찬미를 언니와 동생과 함께 홀로 오롯이 키워냈다. 그 미용기술을 배우러 온 찬미에게 엄마는 대뜸 단골손님의 머리를 맡기고는 가위질을 해보라고 시킨다. 어렵게 기술을 배웠던 자신과는 달리 좀 더 빨리 그 노하우를 전수해주고픈 엄마의 마음과, 서툴러도 열심히 해보려는 딸의 마음 게다가 불안해하면서도 정이 넘치는 단골손님의 마음까지 그 안에는 우리가 도시에서 잘 느끼지 못하는 따뜻함이 묻어난다.

 

강지섭이 중국집 노하우를 배우기 위함이 아버지를 이해하고 그 진정한 유산이 무엇인가를 직접 체험을 통해 알아보려 하는 것인 것처럼, 찬미 역시 그 미용기술 전수를 통해 알려하는 건 그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자신은 돌보지 않고 쉬지 않고 가위질을 하면서 세 딸을 잘 키워낸 엄마가 전하는 진짜 유산일 것이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술 한 잔을 기울이며 이제 잘 큰 딸이 엄마를 이해하는 그 마음을 내비칠 때 그토록 단단해 보이던 엄마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이 프로그램이 전하려는 유산이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삶의 가치라는 걸 드러낸다.

 

동명의 찰스 디킨스의 소설이 본래 전하려는 유산이란 바로 그런 것이었을 게다. 하지만 너무나 물질화된 세상에 살다보니 유산이란 분쟁의 주역으로 떠오르는 재산이거나 금수저 논란의 진원지가 되고 있는 부모의 후광 같은 의미로 변질되어 버렸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위대한 유산>이 포착하고 있는 강지섭네 중국집과 찬미네 미용실 이야기는 우리네 서민들의 삶을 통해 오히려 진정한 유산의 의미를 되새겨주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서민들의 눈높이를 찾는 것만으로도 <위대한 유산>은 꽤 괜찮은 예능의 지점을 찾아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논란만 가중시킨 <슈퍼맨><장영실>의 콜라보

 

송일국이 KBS 대하사극 <장영실>에 출연하겠다는 의사를 보였을 때 많은 이들이 우려를 표했다. 그가 이미 출연하고 있는 <슈퍼맨이 돌아왔다><장영실>을 동시에 소화해낸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저 보통의 드라마라면 모를까 <장영실>은 사극이다. 사극은 그 특성상 노동 강도가 높고 때로는 산 속에 들어가 며칠씩 촬영을 하기도 한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사진출처:KBS)'

그래도 KBS로서는 송일국을 <장영실>에서도 또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도 포기하기 어려웠을 게다. 송일국은 <주몽> 이후에 이렇다 할 연기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주몽>에서 보여줬던 그 저력은 여전히 사극에서 그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사실상 송일국과 삼둥이에 의해 견인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하차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KBS가 생각해낸 건 이 둘을 엮어보려는 것이었나 보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송일국이 아이들에게 아빠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냐고 물어보고 그걸 잘 모른다고 하자 배우라고 말해주지만 여전히 그게 뭔지 모르는 모습을 보여준 건 다분히 <장영실>과의 연계를 염두에 둔 포석처럼 보인다.

 

그리고 역시나 아빠 송일국의 <장영실> 촬영현장을 찾은 삼둥이의 모습이 스틸로 공개됐다. 그 사진 속에서 삼둥이는 거지 분장을 한 채 흙바닥에서 장난을 치고 송일국이 태워주는 수레에서 즐거워하는 모습이다. <장영실>을 찍으면서 송일국은 그렇게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통해 간간히 그 비하인드를 삼둥이와 함께 보여줄 수 있다. 그건 <장영실>이라는 사극의 자연스러운 홍보효과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이 홍보효과가 거꾸로 역효과를 내고 있다. 사진 몇 장이 공개된 것뿐이지만 금수저 논란까지 가세되는 모양새다. 배우인 아빠를 둔 아이들이 촬영현장에 가서 분장도 하고 사극을 체험하는 모습은 일상적인 아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아이들이 거지 분장을 하고 나오자 항간에는 흙수저 흉내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겠나. 다만 그걸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정서가 그리 곱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송일국과 삼둥이에게 만들어지고 있는 금수저 이미지<장영실>이라는 사극에도 그다지 도움이 될 것 같지가 않다. 장영실이 누구인가. 천출로 태어나 평생을 노비로 살아갈 뻔한 인물이다. 그러니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때만 되면 화보모델처럼 단장하고 나와 사진을 찍고 그것이 화제가 되는 집안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고 할 수밖에 없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장영실>의 만남이 그다지 좋은 효과를 낼 것처럼 여겨지지 않는 건 그래서다. 아이들이 너무 많이 방송에 노출되고 소비되는 것에 대해서 시청자들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또한 서민들의 삶과는 너무나 다른 그 괴리감에 불편함도 호소하고 있다. 만일 이러한 우려와 불편함이 <장영실>이라는 드라마를 보는 데에도 어떤 몰입감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면 그 후폭풍은 송일국이 고스란히 맞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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