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김혜옥의 비뚤어진 선택이 만든 신혜선의 지옥

지옥도 이런 지옥이 없을 듯싶다. 자신이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서지안(신혜선)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시방석에 앉게 됐다. 재벌가의 딸이 되어 흙수저를 벗어나 새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여기며 남다른 능력을 보여줬던 그녀가 아니던가. 하지만 그것이 모두 엄마 양미정(김혜옥)의 자식 바꿔치기 때문이었고, 자신은 그 재벌가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이라는 걸 알게 된 서지안은 그 집안에서 숨 쉬는 일조차 힘겨워했다. 

'황금빛 내 인생(사진출처:KBS)'

왜 그렇지 않을까. 친 부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그 부모가 주는 돈과 옷과 갖가지 혜택들을 편하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게다. 그건 엄마의 범죄가 이제 그 선에서 머물지 않고 서지안에게도 고스란히 똑같은 실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엄마의 범죄는 이제 자식의 범죄가 되었다. 죄지은 사람이 그러하듯이 그 집안사람들이 하는 말이나 행동 모두에 긴장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이 그려내고 있는 서지안의 지옥도는 하지만 쉽게 풀어지기 어려운 국면에 들어섰다. 이 재벌가의 만만찮은 사모님 노명희(나영희)는 자신을 기만하는 이들을 결코 가만두지 않는 무서운 인물이었다. 그러니 그런 면면을 보게 된 서지안은 이 사실을 밝혔을 때 당할 부모들의 고통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됐다. 

마침 이런 시기에 서지안을 친딸이라 믿고 있는 노명희가 그에게 유학을 제안하는 대목은 그래서 더더욱 그의 갈등을 크게 만든다. 사실을 알면서도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는 뜻은 자신 역시 이 범죄에 가담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유학을 떠나버리는 것이 어쩌면 당장 하루도 버티기 힘든 이 집안에서 탈출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사실을 밝힐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런 제안을 거절하기도 힘든 상황. 서지안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하지만 그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상황 자체가 그에게는 지옥일 수밖에 없다. 친엄마에게 갖게 될 분노와 노명희와 그 집안사람들에게 갖게 될 미안함 그리고 무엇보다 그 노명희의 친 딸인 동생 서지수(서은수)에게 느껴질 죄책감. 그 속에서 제 아무리 많은 돈과 번듯한 정규직과 화려한 재벌가의 삶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황금빛 내 인생>은 그 재벌가가 막연히 그려내줬던 ‘황금빛’이 사실은 ‘내 인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서지안이 겪는 지옥 같은 삶을 담아내고 있다. 제아무리 ‘황금빛’이라고 해도 내 것이 아닌 인생이 행복할 수 없고, 차라리 ‘흙빛’이라도 내 인생이어야 비로소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이 주인공의 일순간 변해버린 처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여기 깔려 있는 또 한 가지의 이야기는 부모의 선택이라는 지점이다. 현실에 지쳐 자식이 성공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하는 부모의 선택은 결코 자식의 행복을 만들어주지 못한다는 것. 물론 그건 성장의 사다리가 끊겨버린 우리네 사회의 구조적 문제 때문에 비롯된 잘못된 선택이지만, 그렇다고 비뚤어진 선택은 오히려 더 큰 불행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황금빛 내 인생>은 다소 거친 드라마의 전개와 소재들 때문에 마치 막장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의 디테일이나 개연성의 촘촘함에 있어서 이 드라마는 허술한 면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드라마를 그저 막장드라마로 치부하긴 아까운 건 그 안에 담겨진 메시지가 남다른 면이 있어서다. 재벌가 입성이 지옥도로 변하는 이런 상황을 주말 가족드라마 시간에 보게 되다니. 그간의 주말드라마가 그리던 보수적이고 판타지적인 세계관과는 너무나 다른 풍경이 아닌가.

‘황금빛’이 출생의 비밀을 활용하는 색다른 방식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은 대놓고 ‘출생의 비밀’ 코드를 쓰고 있다. 사실 무수한 막장드라마들이 이 출생의 비밀을 활용하고 있어서 이걸 또 쓴다는 것이 KBS 주말드라마 같은 성격에는 부담이 될 수도 있었을 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금빛 내 인생>은 어째서 이런 부담을 감수하려 했던 걸까.

'황금빛 내인생(사진출처:KBS)'

그것은 <황금빛 내 인생>이 궁극적으로 다루려고 하는 금수저 흙수저 계급으로 나뉘는 사회의 허위의식을 드러내는데 있어서 바로 이 ‘출생의 비밀’ 코드만큼 효과적인 게 없기 때문이다. 보통의 ‘출생의 비밀’ 코드를 활용한 드라마들은 금수저 흙수저 계급 사회가 가진 판타지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곤 했다. 사실은 금수저인 ‘출생의 비밀’을 가진 주인공이 흙수저 인생을 살다가 부모를 만나 다시 금수저 인생으로 신데렐라가 되는 과정이 그 천편일률적인 활용법이었던 것.

하지만 <황금빛 내 인생>의 출생의 비밀 코드는 이 방향과는 정반대다. 그걸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장면이, 하루아침에 금수저가 되어 재벌가 딸로 둔갑한 서지안(신혜선)이 노명희(나영희)의 미술관 모임에 불려와 자신의 미술지식을 통해 인정을 받는 장면 같은 것이다. 혹여나 실수를 하면 어쩌나 하고 노심초사했지만 서지안은 그들 앞에서 전혀 주눅들지 않고 미술에 대한 자신의 식견을 드러낸다. 

그런 일이 있었던 걸 알게 된 최재성(전노민)이 노명희에게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 딸을 그런 위험한 상황에 내놓은 걸 나무라자 노명희는 말한다. “내 딸이니까” 잘 할 거라 믿었다고. 핏줄이 어디 가는 것이 아니라고. 또 서지안이 해성그룹 마케팅팀에 들어가자마자 자신이 예전에 내놨던 기획안으로 성과를 내기 시작하자 이 집안은 또 그놈의 핏줄을 꺼내놓는다. 그 피가 어디 가냐는 말은 이 집안사람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그런데 알다시피 서지안은 그들의 친딸이 아니다. 그저 평범한 서태수(천호진)와 양미정(김혜옥)의 딸일 뿐이다. 그런 그가 이른바 저들의 세계에서도 인정받고, 회사에서도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는 건 그래서 핏줄과는 아무 상관없는 그의 노력 때문이다. 이것이 <황금빛 내 인생>이 출생의 비밀 코드를 활용하는 색다른 방식이다. 이것은 금수저 흙수저의 세계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판타지를 공고히 하는 게 아니라, 그 허위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황금빛 내 인생>의 출생의 비밀 코드가 굉장한 속도로 전개되는 건 그래서다. 판타지를 지속시키려면 그 비밀을 오래 유지해야 가능해진다. 하지만 이 50부작 드라마는 고작 10회 남짓 넘었을 뿐인데, 출생의 비밀의 당사자가 되어버린 서지안이 스스로 자신이 그 주인공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이런 전개는 향후 서지안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에 시청자들을 주목하게 만든다. 계속 가짜노릇을 할 것인가 아니면 진짜의 자신으로 돌아올 것인가. 

물론 이런 방식으로 출생의 비밀을 활용하려다 보니 양미정이 진짜 재벌가 딸인 서지수(서은수) 대신 친딸인 서지안을 재벌가 딸로 둔갑시키는 다소 과한 설정이 들어간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선택 역시 출생의 비밀을 안고 재벌가에 들어가는 것이 막연히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는 부모의 편견 또한 깨기 위함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는 태생으로 누군가는 선택받고 누군가는 힘겨운 삶을 살게 되는 금수저 흙수저 사회가 가진 부조리에 대한 폭로다. ‘출생의 비밀’ 따위는 사실 허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흙수저가 금수저로 둔갑하자마자 그 능력을 발휘하는 건 핏줄 때문이 아니고 다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짜 인생을 황금빛으로 반드는 건 그래서 그 수저를 나누는 ‘황금’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공평해야할 기회가 아닐까.

‘황금빛 내 인생’,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이상하게 만들었을까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는 두 명의 엄마가 나온다. 한 명은 중소기업을 하며 잘 나가던 남편의 사업이 망하고 근근이 살아가는 서민층 엄마 양미정(김혜옥)이고, 다른 한 명은 재벌가 사모님인 노명희(나영희)다. 그런데 이 두 엄마들이 모두 이상하다. 양미정은 나타난 서지수(서은수)의 친모인 노명희에게 거짓으로 서지안(신혜선)이 당신 딸이라고 말한다. 너무나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지만 집안 환경 때문에 번번이 좌절하는 자신의 딸이 불쌍해서란다. 

'황금빛 내인생(사진출처:KBS)'

하지만 그건 엄연한 범죄다. 서지안에게도 할 짓이 아니고 진짜 재벌가 딸인 서지수에게도 못할 짓이다. 게다가 이렇게 비뚤어진 마음을 드러내는 것으로 그녀는 남편 서태수(천호진)의 가슴에도 대못을 박았다. 결국 그의 무능함 때문에 이 모든 거짓들이 꾸며지게 된 것이라 여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모성애 때문에 자신이 범죄자가 돼서라도 딸을 재벌가에 보내고 싶었다지만 사실 상식적인 선택은 아니다. 

그런데 또 다른 엄마인 노명희 역시 정상은 아니다. 아이를 잃어버리고 겪었을 고통은 이해하지만 그렇게 자신의 품으로 돌아온 아이에게 그녀는 과거를 지우라고 한다. 이른바 품위와 교양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런 모습이 품위 있고 교양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서지안에게 천만 원을 주고 하루에 다 쓰라는 숙제를 내주지만, 그렇게 돈 잘 쓰는 일이 품위 있는 그녀들을 만들어주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노명희는 딸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딸을 잃었던 그 기억을 떨쳐내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잃어버렸던 딸을 다시 찾은 것 그 자체로 행복해하기는커녕, 이런 일이 외부의 가십이 될 것을 더 걱정한다. 오히려 자신이 품위라 생각하는 그 따위 것들을 지키기 위해 딸의 소중했을 과거 따위는 내다 버리라고 한다. 역시 제아무리 모성애 운운해도 이해안되는 엄마다. 

<황금빛 내 인생>이 다루고 있는 건 이른바 ‘금수저 흙수저’ 사회를 가족의 풍경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이 모두 이 수저 계급의 사회 속에서 어떤 상관관계를 갖는가를 드러낸다. 그런데 부모만 이상한 게 아니다. 자식 또한 아버지가 부유하지 못해 결혼 따위는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흙수저 가족의 장남 서지태(이태성)가 그 인물이다. 

서지태는 애초부터 결혼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연애만 추구했지만 오래 사귄 이수아(박주희)가 결혼을 이야기하자 결국 이별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아파한다. 친구들과 만난 술자리에서 그는 자신의 집안 처지가 그들보다 못하다는 점을 들어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가난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는 것. 하지만 그 정도의 나이에 직장까지 갖고 있고 그래도 유년시절 아버지 덕분에 잘 살았던 그의 처지는 그리 나쁜 게 아니다. 그런데 어째서 아버지 탓만 하고 있을까. 

물론 <황금빛 내 인생>이 건드리고 있는 건 이 ‘이상한 사회’ 그 자체다. 태생적으로 모든 게 결정되고, 죽어라 정규직이 되려 노력해도 결국 낙하산이 그 자리를 차지하며, 그 낙하산을 밀어내는 건 더 높은데서 내려오는 낙하산인 사회. 부모가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자식의 삶이 결정되는 사회. 그래서 자식이 스스로 삶을 개척하기보다는 부모 탓을 하는 이상한 사회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가 느끼는 어떤 불쾌함과 불편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현실의 비상식 때문일까 아니면 드라마가 이를 상식적으로 그리지 않아서일까. 엄마들은 이상하고 자식들은 부모 탓만 하는 걸 보며 느끼는 불쾌함과 불편함. 그것은 드라마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네 현실 때문일까.

‘황금빛 내 인생’, 내 인생의 진정한 황금빛은 어디서 오나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다. 이제 2회가 지난 것이지만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는 빠르게 신데렐라와 출생의 비밀 코드 같은 것들을 뛰어넘었다. 첫 회는 어째 주말드라마의 공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신데렐라 이야기와 출생의 비밀인가 싶었지만, 그 설정은 2회에 풀려버렸다. 이로써 <황금빛 내 인생>은 그 흔한 가족드라마의 코드와는 다른 이야기 전개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황금빛 내 인생(사진출처:KBS)'

사실 첫 회는 그다지 기대할 수 없는 어디서 본 듯한 설정들이 등장한 게 사실이다. 흙수저로 열심히 살아가는 서지안(신혜선)이 부장님의 명으로 그의 차를 대신 몰고 가다 해성그룹의 외아들인 최도경(박시후)의 차와 접촉사고를 내며 인연이 이어지는 과정이나, 해성그룹의 안주인인 노명희(나영희)가 어린 시절 잃어버린 딸이 서지안일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던 첫 회만 해도 그저 그런 신데렐라와 출생의 비밀 코드를 버무린 드라마가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었던 것. 

하지만 그런 우려를 날려버리기라도 하겠다는 듯 2회에 드라마는 노명희가 직접 양미정(김혜옥)을 찾아오고, 서지안과 서지수(서은수) 중 누가 자기 딸이냐고 물으며 그래서 양미정이 결국 서지안이 그녀의 딸이라고 말하는 장면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보통의 옛 가족드라마라고 하면 이 부분 하나만으로도 한 편의 장편 가족드라마가 나오곤 했던 그 코드들이다. 

<황금빛 내 인생>이 이처럼 일찍 그 코드를 드러낸 건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가 다른 곳에 있다는 걸 말해준다. 이 드라마는 그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최근 우리 사회에 자주 거론되는 ‘금수저 흙수저’를 소재로 담고 있다. 흙수저로 살아가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온 아버지의 영향아래 기죽지 않고 열심히 자신의 삶을 개척해온 서지안(신혜선). 하지만 이제 막 정규직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잠시, 친구가 금수저 낙하산으로 그 자리를 꿰차며 역시 높은 수저의 벽 앞에서 절망하게 됐다. 

그런 서지안이 바로 그 해성그룹 노명희가 잃어버린 딸이라는 사실은 향후 이 흙수저가 하루 아침에 금수저로 그 삶이 바뀔 것이라는 걸 말해준다. 그렇다면 그 금수저의 삶이 서지안이라는 짠 내 나는 캐릭터의 장밋빛 인생을 가능하게 해줄까. 과연 가진 자들의 삶은 행복하고 못 가진 자들의 삶은 불행할까. 물론 겉으로 드러난 삶은 그렇게 빈부에 따라 행복의 질이 결정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황금빛 내 인생>이 그려내는 두 가족, 즉 부자가족 최도경의 집과 서민가족 서지안의 집은 그 느낌이 상반되게 다가온다. 어째 서민적인 삶을 살아가는 서지안의 집이 더 따뜻한 느낌을 주는 것. 

즉 서지안은 본래 태생은 금수저였지만 어린 시절의 사건(?)으로 흙수저의 삶을 살아왔던 인물이다. 그런데 그 흙수저의 삶 속에서도 그녀를 행복하게 했던 것은 돈이 아니라 아버지 서태수(천호진)가 보여준 가족에 대한 헌신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물론 그토록 귀하게 키운 딸을 어려운 현실 때문에 이제 기꺼이 재벌가로 떠나보내는 아버지의 회한이 없진 않겠지만. 

인정하기 싫어도 우리가 사는 현실은 태생으로 그 미래까지 결정되는 금수저 흙수저의 세상이다. 그 안에서 흙수저의 인생을 부여받은 이들은 노력해도 넘을 수 없는 그 ‘수저의 벽’ 앞에서 절망한다. 청춘들은 청춘들대로 부모들은 그런 청춘들을 바라보며 자신들이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아파한다. <황금빛 내 인생>은 그 청춘들과 부모들에게 그래도 당신들의 삶이 가치 있다는 위로의 말을 던지는 드라마다. 진짜 인생의 황금빛은 가진 것만으로는 얻어질 수 없다는 걸 전함으로써.

<화랑>이 유골무죄 무골유죄 청춘을 보듬는 방식

 

유골무죄 무골유죄.” 골품이 있으면 죄가 없고 골품이 없으면 죄가 있다? 이 조어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삼국시대 신라의 골품제도에 빗댄 말이다. 지금으로 치면 금수저 흙수저의 신라 버전쯤 될까. KBS 월화드라마 <화랑>이 그려내는 청춘들은 당대의 골품제도라는 태생적인 틀에 묶여 꿈이 있어도 펼칠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화랑(사진출처:KBS)'

무명(박서준)은 그 골품제도에 의해 많은 상처를 갖고 있는 인물이다. 어린 시절부터 천인촌에서 함께 자라온 둘도 없는 친구 막문(이광수)이 그 신분제의 틈바구니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누이를 찾기 위해 왕경을 넘었다는 죄로, 또 절대 신분이 노출되면 안 되는 성골 삼맥종(박형식)의 얼굴을 봤다는 죄로 막문이 죽음을 맞이하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무명은 본래 안지공(최원영)의 아들이었던 막문의 진짜 이름 선우를 자신이 대신 쓰기로 한다.

 

꽃다운 청춘들, 화랑이 모이는 선문이 겉으로 표방하는 것이 골품의 차별이 없다는 건 그래서 흥미로운 대목이다. 물론 그 안에서 뼛속까지 골품의 틀에서 살아왔던 진골들이 선우 같은 반쪽(반만 진골)을 집단적으로 따돌림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오로지 실력으로 판단하는 것 같은 기준들이 제시되는 건 <화랑>이라는 드라마가 현재에 어떤 판타지를 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골품의 차별이 없이 모두가 하나의 화랑으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자신이 해야 하는(하다못해 빨래까지) 상황은 진골들에게는 힘겨운 일이지만, 애초에 천인으로 살아왔던 선우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를 괴롭히는 건 여전히 귀천을 따져 자신을 능멸하고 나아가 여동생인 아로(고아라)까지 희롱하는 얘기를 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반류(도지한)는 마치 현재의 비뚤어진 상류층들의 갑질 행태를 고스란히 재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선우 역시 만만한 인물은 아니다. 반류가 선우에게 너 같은 반쪽이 시궁창이라고 말하자 선우는 이렇게 일침을 가한다. “시궁창은 너지. 스스로 뭘 해본적도 없고. 그 자리에서 썩고 있는 너 같은 고인 물.” 이 대사가 말해주듯 이 귀족 자제들이 화랑으로 모인 선문에서 선우라는 이질적인 인물은 그래서 향후 이들 화랑들에게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것으로 보인다. 귀족이라는 골품의 틀에서 썩어가고 있는 그들을 다시 흐르게 만들어줄.

 

선우가 온 몸에 상처를 달고 다니는 인물이라는 건 이런 그의 캐릭터를 그대로 반영한다. 흥미로운 건 그에게 마음이 설레는 아로가 의원 아버지인 안지공에게 곁눈질로 의술을 배운 인물이라는 것. 아로의 캐릭터는 다친 상처를 치료해주는 것이다. 아로를 구하다 손바닥을 칼에 베인 선우를 치료하면서 다치지 마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뭉클하게 다가오는 건 그것이 마치 상처받은 청춘을 보듬는 치유의 손길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선문에서 벌어진 화랑들의 집단 난투극으로 그들을 치료하기 위해 아로가 나서는 장면은 그래서 이 캐릭터를 보다 명확히 해준다. 또한 잠 못 드는 삼맥종을 옆에서 잠들 수 있게 해주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치유의 캐릭터 아로는 선우의 몸과 마음에 난 상처를 보듬어주고,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있는 삼맥종을 잠시 쉬게 해준다.

 

이것은 <화랑>이라는 사극이 신라의 화랑들 이야기를 통해 현재의 청춘들을 보듬는 방식일 것이다. 물 수()를 보여주며 이것의 성격을 묻는 위화공(성동일)에게 삼맥종은 물은 선하다고 말한다. 늘 자신을 낮추고 밑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선우는 물이 고단하다고 말한다. 물은 몸속에서 금이면 금, 물고기면 물고기를 내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쩌면 위화공이 물 수()자와 함께 내놓은 표제어 왕()의 역할을 묻는 질문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선우의 심경이 담겨진 이야기이기도 하다. 청춘들의 고단함. 그 고단함을 없애줄 수 있는 건 더 고단하게 백성들을 위해 일하는 왕의 역할이 아닐까 하는 그런 질문.

<화랑>은 어째서 청춘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하는가

 

천인은 그냥 짐승처럼 죽어야 하는 거야? 그깟 성문 좀 넘은 게 죽을 일인가. 왜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건데!” 둘도 없는 친구 막문(이광수)의 죽음 앞에 무명(박서준)은 절규했다. 그 절규에 대해 막문의 아버지인 안지공(최원영)은 이렇게 얘기했다. “그게 이 신국의 구역질나는 질서다.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화랑(사진출처:KBS)'

KBS <화랑>은 이렇게 한 청춘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 그 죽음을 맞은 막문이 원했던 건 그저 아버지와 누이를 만나는 것이었다. 천인 출신인 어머니와 함께 어린 시절 망망촌에 버려졌고, 가족을 찾기 위해 넘어서는 안되는 왕경을 넘어 들어온 것이지만, 그는 삼맥종(박형식)의 얼굴을 봤다는 이유만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한다.

 

유일한 성골인 삼맥종은 자신을 죽이려는 살수들 틈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굴을 숨긴 채 살아가는 인물. 막문이라는 한 청춘의 어이없는 죽음과 이를 목도한 무명의 절규는 <화랑>이라는 드라마가 겨냥하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골품제라는 걸 명확하게 해준다. 무명은 막문의 죽음 앞에 각성하게 되고 이 무참한 신분제 속에서 현실에 대한 복수를 꿈꾸게 된다.

 

<화랑>이 그리고 있는 세계는 물론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보다 더 참혹한 신분사회다. 그래서 천인으로 태어나면 갈 수 있는 곳과 갈 수 없는 곳이 정해진다. 만일 왕경 같은 곳으로 마음대로 들어왔다가는 죽음을 맞이해도 항변할 길이 없다. 무명은 하지만 이런 한계와 경계를 인정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막문이 왕경에 들어왔다는 이유로 귀족에게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무명은 말한다. “왕경에 들어온 천인을 베는 게 니들 법이면 이 선을 넘어온 귀족을 베는 건 내 법이다. 베고 싶으면 넘어와서 베. 다 상대해줄 테니까.”

 

무명이 주령구(지금으로 치면 16면체 주사위)를 던지는 인물이라는 건 그가 정해진 운명을 걷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포한다. 성골이냐 진골이냐 아니면 반인이냐 천인이냐 같은 것들이 모두 운명을 결정해버리는 사회. 그 곳에서 이제 앞날이 창창한 청춘들은 절망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이 태생으로 정해지는 사회에서 무명은 그걸 거부하고 주령구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태후는 신라를 보다 강성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 화랑을 모집하려 한다. 이 제안을 받아들인 위화공(성동일)화랑(花郞)’의 의미를 이렇게 풀어냈다. “꽃같이 아름다운 사내. 지혜롭고 어진 제상. 아름답고 특별한 존재. 신국의 미래”. 그것은 아마도 청춘이라면 누구나 추구할 수 있어야할 존재일 것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무명이나 막문 같은 청춘들에게 화랑이란 언감생심 꿈꿔서도 안 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결국 <화랑>은 신라시대의 화랑이란 특수한 청춘들을 통해 현재의 청춘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반추하게 하는 드라마다. 골품제라는 견고한 신분제도는 지금의 현실로서는 금수저 흙수저로 나뉘는 자본의 신분제로 재현되고 있다 말할 수 있다. 능력이 있어도 노력을 해도 넘어설 수 없는 한계가 보이는 현실. 이것이 골품제와 무엇이 다를까.

 

세상에는 너 따위가 열어서는 안 되는 문이 있다. 네가 그 문 앞에 있다.” 삼맥종의 엄포에 무명은 말한다. “사람이 넘지 못하는 길, 가지 못하는 곳, 열어서 안 되는 문, 그딴 게 있어도 된다고 생각 하냐. 다 개소리라 생각한다.” 그가 던지는 일갈이 지금의 현실에도 귓가에 쟁쟁하다.

<화랑>, 박서준은 왜 주령구를 굴릴까

 

난 인생 운빨이라고 생각하거든. 근데 너 오늘 운 없다.” 진골들의 연회장에 들어선 무명(박서준)은 친구인 막문(이광수)을 흠씬 두들겨 패는 귀족에게 그렇게 첫 마디를 던진다. 달려드는 그를 가볍게 제압한 무명은 바닥에 칼로 둥그런 원을 그어놓고 말한다. “왕경에 들어온 천인을 베는 게 니들 법이면 이 선을 넘어온 귀족을 베는 건 내 법이다. 베고 싶으면 넘어와서 베. 다 상대해줄 테니까.”

 

'화랑(사진출처:KBS)'

KBS <화랑> 첫 회의 이 마지막 장면은 이 사극이 앞으로 전개해나갈 이야기의 대부분을 이야기해준다. 그것은 천인의 신분이자 이름조차 없어 무명이라 불리는 이가 왕경의 진골들만 있는 곳으로 뛰어 들어와 그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자기만의 독보적 위치를 세워가는 이야기가 아닐까. 그의 모습이 진골 중의 진골인 수호(최민호) 같은 인물도 호감어린 시선을 던지는 걸 보면 신분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무명이라는 인물에는 존재한다는 걸 말해준다. 그건 바로 운빨이라고 말하는 그가 생각하는 삶의 태도에서 나온다.

 

정해진 운명을 그저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주사위를 던질 것인가. 무명이 항상 주령구를 들고 다닌다는 건 이 인물이 주사위를 던지는캐릭터라는 걸 말해준다. 주령구는 신라인들이 놀이로 사용했다는 14면체 주사위. 무명은 주령구를 굴려보고 거기 나오는 괘에 따라 행동한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주사위를 굴린다는 이 캐릭터 설정은 이 <화랑>이라는 사극에서 중요하다. 그것은 이 사극의 기본 구조가 골품제도라는 신라의 태생부터 정해지는 운명과, 그것을 깨치고 나가는 무명이라는 인물의 이야기로 축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첫 회에 이미 드러난 것들이지만 이 사극에는 성골인 지뒤(박형식)가 베일에 싸인 인물로 서 있고, 그를 돕거나 해하려는 파로 나뉜 진골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다. 여자주인공인 아로(고아라)는 진골 아버지와 천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진골도 천인도 아닌 경계인의 위치에 서 있다.

 

이처럼 <화랑>에서 신분은 이야기 구조상 중요하다. 하지만 주인공이 이름조차 없는 무명이라는 것과 그가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굴리는 것이라며 주령구를 들고 나타났다는 건 그가 이 틀에 박힌 신분제를 깨는 존재라는 걸 말해준다. 사극이지만 현대극을 사극버전으로 옮겨놓은 듯한 장소와 상황과 설정들이 등장하는 <화랑>은 그래서 그 신분제를 갖고 지금 현재 우리에게 던져진 이른바 금수저 흙수저의 시대를 얘기하는 중이다.

 

태생으로 정해진 삶이란 무명처럼 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태어난 이들만 힘겨운 건 아니다. 어쩌면 성골로 태어났으나 그래서 늘 자객의 칼날 아래 위협받으며 숨겨진 채 살아가는 지뒤도, 그렇다고 귀족의 양자가 되어 살아가면서 진골로서 자신을 세워야 하는 운명에 독한 현실적인 선택들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반류(도지한)도 그 운명이 좋다고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이 골품제라는 시스템은 운명을 태생적으로 결정짓는다는 그것 때문에 그 테두리 안에 살아가는 청춘들을 질식시킨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사는 현실도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실 <화랑>의 첫 방송은 6.9%(닐슨 코리아)의 시청률로 생각만큼 좋은 성적은 아니다. 물론 전작이었던 <우리 집에 사는 남자>보다는 높은 수치지만 사극인데다 방영 전부터 화제가 됐던 작품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보면 낮은 수치다. 아무래도 경쟁작인 <낭만닥터 김사부>의 영향이 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사극의 운명이 이대로 끝날 것이다 단정하긴 어렵다. 무엇보다 무명이 들고 있는 저 주령구가 의미하는, ‘태생적 운명과 대결하는모습이 얼마나 지금의 현실을 살아가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공감시키는가에 따라 운명은 바뀔 수도 있다. 과연 <화랑>이 던지는 주령구의 괘는 어느 쪽으로 굴러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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