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타임리프라도 ‘명불허전’은 달랐던 까닭

마지막에 즈음해 드디어 tvN 주말드라마 <명불허전>이 왜 굳이 타임리프라는 장치를 사용했는가 하는 그 진심이 보인다. 조선 최고의 침구술 실력을 가진 허임(김남길)이 40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현재로 떨어지는 그 설정이 처음에는 어딘지 그 이질적 시간에 놓은 인물이 겪는 흥미를 위한 것이 아닐까 여겨졌던 게 사실이다. 조선의 의원이 현재에서 느끼는 황당함이 주는 코믹함이 있었고 침 하나로 위급한 생명을 살려내는 상황이 주는 재미도 있었기 때문이다. 

'명불허전(사진출처:tvN)'

하지만 만일 이 드라마가 이러한 타임리프의 재미만을 추구했다면 그 메시지는 앙상해졌을 지도 모른다. 물론 조선과 현재를 허임과 최연경(김아중)이 함께 오가며 겪는 파란만장한 상황들이 주는 흥미로움을 빼놓을 수 없고, 그러면서 두 사람이 차츰 가까워지고 서로 진가를 알아보며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 주는 재미도 빼놓을 수는 없다. 하지만 <명불허전>은 거기 머물지 않고 왜 이 드라마가 타임리프라는 장치를 활용했는가 하는 이유를 끝까지 놓치지 않았다. 

이 드라마에서 타임리프는 결국 각자 자신의 위치에 서서 소임을 다하는 것이 그 사람이 가장 빛나게 된다는 메시지를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그저 마음대로 시간을 뛰어넘는 것이 아니라 허임이 죽어야 시간을 뛰어넘는다는 건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조선에 두고 온 아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심장을 찌르는 의원이라는 설정은 자신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인물을 그대로 표상한다. 

즉 이 드라마의 타임리프는 그저 재미를 위해 설정된 것이 아니라, 그 주제의식을 가장 잘 드러내기 위해 설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 장치를 통해 조선이든 현재든 그리 다르지 않는 서민들의 현실을 보여주고, 그래서 의원이든 의사든 진정 자신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를 드러내주기도 했다. 

천출인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여 재물을 모으는 것으로 그 허탈함을 채워보려고도 했던 허임이지만, 그가 차츰 진정한 의원의 길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는 과정도 이 타임리프를 통해서였다. 시간을 뛰어넘는 과정에서 어느 곳에서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아픈 생명들이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되고, 그들을 위해 침을 들었을 때 결국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깨닫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즈음해서 이 타임리프라는 장치는 그 소임이 사적인 사랑의 차원까지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활용된다. 결국 허임은 조선으로 돌아가 왜란으로 피 흘리는 민초들을 위해 침을 든다. 침술은 값비싼 약재를 쓰지 않고도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도 하기 때문에 가난한 서민들을 위해 더더욱 좋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는 그 많은 민초들을 끝내 외면할 수 없었다. 

어찌 보면 뻔할 수 있는 타임리프라는 장치를 이렇게도 쓸 수 있다는 건 작가가 이 장치를 그저 흥미로 접근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겨진 함의를 읽어내려 했다는 뜻이다. 시간대는 달라도 상황은 그리 다르지 않고, 그 각자의 시간대에서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소임에 최선을 다할 때 비로소 그 존재의 가치가 빛날 수 있다는 것. <명불허전>의 타임리프는 그 판타지 안에 꽤 진중한 메시지를 담아내는데 성공했다. 같은 장치라도 얼마나 더 깊게 궁구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걸 이 드라마는 확인시켜 줬다.

‘명불허전’의 타임슬립, 의외로 다양한 묘미가 있다

타임슬립은 이제 지겹다? 적어도 tvN 주말드라마 <명불허전>에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인 것 같다. 조선과 현재를 오가는 타임슬립이라는 장치를 쓰고 있지만, 그 양상이 다채롭고 드라마의 극적 재미를 더 고조시키는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불허전(사진출처:tvN)'

처음 타임슬립은 조선시대에서 왕을 시술하려다 실패한 허임(김남길)이 쫓기다 활에 맞아 다리 밑으로 떨어지며 벌어졌다. 그래서 조선시대에서 갑자기 현재로 온 허임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들과 거기서 적응해가는 이야기 자체가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외과의사 최연경(김아중)을 만나고 탁월한 침술로 위급한 환자를 고치는 이야기까지 더해지면서 기대감을 갖게 만든 것.

하지만 이 드라마의 타임슬립이라는 장치는 그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었다. 허임과 최연경이 죽을 위기에 처하면서 함께 조선으로 시간을 뛰어넘은 것. 그러자 이제는 조선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최연경의 이야기가 흥미로워졌다. 서로 다른 시간대에 들어가면서 겪는 그 난감함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게 해준 것.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임진왜란이 막 터진 조선 사회에서 죽어나가는 백성들의 처지와 현재 우리네 서민들이 살아가는 그 현실이 비교되었다. 이른바 ‘두 개의 헬조선’이 시간을 뛰어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슷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리고 시대는 달라도 눈앞에서 죽어가는 생명들을 위해 이 두 의사들이 해야 할 소임들이 조금씩 부각되었다. 

그리고 어째서 타임슬립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걸 알아차린(사즉생, 즉 죽어야 산다는 장치) 두 사람은 이제 죽을 위기에 처하자 오히려 함께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시간을 뛰어넘어 살 수 있는 길을 연다. 거대한 트럭이 돌진해오자 허임이 최연경을 안고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조선으로 시간을 뛰어넘는 것. 

여기에 <명불허전>은 역사 속 실존인물을 만난다는 또 다른 흥밋거리를 더했다. 허준(엄효섭)이 그렇고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허임 역시 실존인물로서 조선시대 침술의 대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드라마는 허준 역시 타임슬립으로 현재를 왔다 간 인물로 설정되어 있고 허임을 현재를 오가게 한 숨은 뜻이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또한 허임과 최연경이 임진왜란 속에서 구해준 사야가(타케다 히로미츠)가 훗날 조선으로 귀화한 실존인물인 일본인 김충선이라는 설정도 눈에 띈다. 이처럼 상상과 실제의 과감한 결합이 타임슬립이라는 장치를 통해 쏠쏠한 재미를 만들고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명불허전>은 또 다른 타임슬립의 묘미를 만들었다. 조선시대에서 다시 죽을 위기에 처한 허임과 최연경이 죽음으로써 현재로 돌아오려 하지만 결국 각각 칼에 맞으며 허임만 홀로 현재로 돌아오는 상황이 벌어진 것. 같이 타임슬립을 하던 설정에서 이런 두 사람이 조선과 현재로 갈라지는 방식으로 변주하는 건 향후 어떤 일이 벌어질까에 대한 궁금증을 만들어낸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타임슬립이라는 장치 하나가 이토록 다채로운 극적 사건들을 계속 만들어낼 수 있었던 건, 그 방식들을 다양화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그저 재미를 위한 장치로만 흘렀다면 너무 가벼워졌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장치를 통해 의사라는 업이 가진 실존적인 질문과, 생명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헬조선’의 현실 같은 무게감 있는 메시지들이 이야기되고 있기 때문에 타임슬립의 변주는 더 흥미진진해진다. 같은 걸 해도 어떻게 변주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 그것을 <명불허전>은 입증해 보여주고 있다.

‘명불허전’, 헬조선을 넘나드는 타임리프가 보여주는 것

드디어 tvN 주말드라마 <명불허전>이 그 본색을 드러냈다. 지금껏 조선과 현재를 뛰어넘는 타임리프가 주로 보여줬던 건 그 다른 환경을 마주한 인물들의 멘붕 코미디에 가까웠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고 한의학과 현대의학이 서로 공존하는 그 장면들이 주는 흥미로움 또한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건 <명불허전>이 하려는 이야기의 진짜 알맹이는 아니었다. 

'명불허전(사진출처:tvN)'

그 진짜 메시지가 드러난 대목은 허임(김남길)이 두칠(오대환)의 형을 치료해주지만 결국 주인 양반에 의해 맞아 죽게 되는 그 에피소드였다. 제 아무리 뛰어난 의술을 갖고 있어 다 죽어가는 생명을 구해놓아도 천출들은 양반의 명 하나로 맞아 죽을 수밖에 없는 비천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 과거 허임은 이미 그런 비슷한 상황을 겪은 바 있다. 동막개(문가영)의 어머니를 치료해주지만 그녀 역시 노비라는 이유로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됐던 것. 

이러한 신분의 벽은 허임에게는 절망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 누구보다 신분과 상관없이 생명은 귀하다 여겨온 의원이 그였다. 밤마다 아픈 노비들을 몰래 치료해왔던 그가 아니던가. 하지만 그런 자신의 노력이 아무 소용없는 세상이다. 우리가 자주 거론하는 ‘헬조선’이라는 그 표현이 이 곳은 표현이 아닌 진짜 현실이 되는 세상이니. 

그래서 그 곳을 뛰어넘어 현재로 넘어온 허임은 과연 좋은 세상에서 마음껏 생명을 살리는 의원이 될 수 있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양반과 노비로 나뉘는 신분제는 없어졌지만 이 곳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뉘는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한다. 그래서 허임은 한방병원에서 VIP들의 병을 고치며 잠시 쾌재를 부르지만 또한 가난해 길거리로 내몰리고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된 노숙자들을 또한 보게 된다. 거대한 한방병원의 VIP들과 길거리 노숙자들이 다른 생명으로 비교되는 현실. 헬조선과 다를 게 뭐가 있단 말인가. 

<명불허전>이 과거로 회귀하는 그 시점이 하필이면 임진왜란이 터지는 그 때라는 건 이 드라마가 건드리고 있는 지점을 명확히 한다. 선량한 백성들은 선조가 도망친 줄도 모르고 자신의 삶의 터전을 지키며 살아간다. 그런 그들을 보며 이미 역사를 알고 있는 최연경(김아중)은 안타까운 마음을 갖는다. 책임을 가져야할 권력자들의 도주가 결국은 백성들의 생명을 담보로 하고 있다는 암담한 현실이라니.

<명불허전>이 담고 있는 두 개의 헬조선이라는 설정은 그래서 이 타임리프 설정을 그저 트렌드가 아닌 중요한 메시지를 담아내는 장치로 바라보게 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지만 그것이 어째 다른 풍경이 아니라는 것. 굳이 두 개의 헬조선에서 허임과 최연경이 각각 의원과 의사라는 생명을 살리는 직업을 갖고 있다는 사실 또한 예사롭지 않은 설정으로 다가온다. 생명에 어디 신분이 있고 빈부가 있으며 계급이 있겠는가마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

두 개의 헬조선을 오가며 허임과 최연경이 보는 그 암담한 현실과 그래서 그들이 각성하고 성장하는 과정이 <명불허전>의 본색이다. 좌절하거나 분노하고 한탄하는 것을 뛰어넘어 어떤 스스로의 결단을 통해 이 헬조선을 극복할 수 있는 그 길은 과연 이들에 의해 제시될 수 있을까. 물론 그것이 완전한 해결방법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과정의 노력들이 우리네 보통의 서민들에게 주는 위안과 위로는 그 자체로도 적지 않을 것이지만.

<판도라>, 결국 위기를 해결하는 건 서민들 뿐

 

영화 <판도라>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재난영화다. 여기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다는 의미 속에는 이 영화가 신파적 코드를 활용하고 있다는 것만을 뜻하는 건 아니다. 그것은 이 재난상황을 다룬 영화가 그저 영화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우리네 현실을 담아내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서 스러져간 많은 이름 모를 희생자들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다.

 

사진출처:영화<판도라>

<판도라>는 영화 시작 전에 자막으로 이 영화가 드러내고 있는 것들이 허구일 뿐 특정한 사실과는 무관하다는 걸 고지한다. 하지만 그 고지는 오히려 거꾸로 우리에게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허구를 통해 그려지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네 현실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최악의 원전사고를 소재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최근 경주 인근에서 벌어진 지진 때문에 오히려 더 실감 있는 허구가 되었고, 콘트롤타워의 무능함으로 국민들을 위험 속에 몰아넣는 영화 속 이야기 역시 최근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탄핵안이 의결되고 세월호 참사의 미스테리가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는 현실 속에서 진짜 같은 허구로 다가온다.

 

영화는 재난영화들이 흔히 만들어가는 그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진으로 인해 원자력발전소 원자로 냉각장치가 정지되고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면서 결국 원자로의 노심까지 녹아내리는 멜트다운의 지경에 이르게 되는 그 숨 가쁜 과정들 속에서 영화는 청와대의 상황과 사고 현장의 상황을 병치하며 콘트롤타워 부재가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일으키는가를 보여준다. 세월호 7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청와대에서의 별 문제는 없을 겁니다라는 보고가 생각보다 심각한 모양입니다로 바뀌는 장면은 마치 전쟁이 터진 듯 처참하게 변해가고 있는 현장과 대비되며 관객들을 분노와 허탈감으로 몰아넣는다.

 

하지만 <판도라>는 이 통제 불능의 원전사고를 해결하는 슈퍼히어로의 탄생을 그리지 않는다. 할리우드 영화라면 놀라운 통제력을 발휘하는 대통령이 나서거나 하다못해 초능력을 가진 슈퍼히어로가 간단히 문제를 해결하며 영웅이 되겠지만, <판도라>는 결코 이런 모습을 그려내지 못한다. 지금껏 무수한 재난을 겪어온 우리네 대중들에게 그런 이야기는 허황된 거짓말이라는 게 단박에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신 <판도라>가 그리는 건 통제 불능의 그 상황 속에서 그나마 스러져 가는 생명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려는 평범한 서민들이다. 원전에서 일하던 재혁(김남길)은 그 무너진 원전 속에 갇혀 신음하고 있는 이들이 자신의 동료이자 선후배라는 점에서 발길을 돌리지 못한다. 결국 몇몇을 구해내지만 그 스스로도 피폭되어 쓰러져버리는 평범한 서민들.

 

그 와중에 원전을 지켜내려는 업주측은 가까이 있는 바닷물을 길어 끓어오르고 있는 원자로에 붓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바닷물이 들어가면 원전을 폐기해야 하기 때문. 현장을 뛰어다니며 상황을 진두지휘하는 소장(정진영)은 울분을 터트린다. 하지만 콘트롤 타워인 대통령은 노련한 총리(이경영)에 의해 실제 상황을 제대로 보고받지 못하고 결국 원전은 2차 폭발의 위험 속에 빠져버린다.

 

<판도라>가 던지고 있는 질문은 물론 원전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이 표면적인 것이지만, 실제로는 이러한 재난 상황 속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콘트롤타워의 위험성에 관한 것이다. <판도라> 속 등장하는 총리의 모습에서 우리네 현실의 누군가를 떠올리는 일이 너무나 쉽다는 것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마치 진짜 일처럼 몰입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다. 현실이 <판도라>라는 영화를 더더욱 실감나게 만드는 비극이라니.

 

결국 영화는 마지막 순간 위대한 한 서민의 희생을 통해 판도라의 상자 마지막에 남겨져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는다. 하지만 그것은 희망이라기보다는 서민들이 현실에 던지는 일종의 경고이고 갖가지 사건 사고 속에서 스러져간 희생자들이 영화의 입을 통해 전하는 외침이다. 죽음을 앞둔 재혁이 기억해 달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래서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누군가는 지우려하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 최악의 위기 상황에서 이를 위해 나서는 건 결국 서민들뿐이다. 위기 상황 때마다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들처럼.

<무뢰한>, 표현을 안 해 더 절박해진 사랑이라니

 

<무뢰한>은 독특한 멜로다. 사실 멜로라고 하기도 애매하지만 이게 실제로는 멜로의 실체라는 생각도 든다. 어딘지 달달하기만 한 멜로는 너무 관습적이기도 하고 그것이 실제 현실을 담아낸 듯한 느낌은 거의 주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은 본래 그렇게 비현실적인 거라고? 맞는 얘기지만 그 비현실이 달달함으로만 구성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비현실적인 결정들을 내리는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도 사랑은 그 진면목을 드러내는 법이니 말이다.

 

사진출처: 영화 <무뢰한>

강력계 형사와 범죄자의 여자. 이 둘의 조합은 너무 뻔한 장르물의 한 틀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이 영화의 이야기 구조는 뻔해서 스포일러라고 하기도 애매할 정도로 단순하다. 형사가 범죄자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 범죄자의 여자에게 감정을 느끼는 것. 하지만 이런 단순한 한 줄의 해설은 이 영화가 전해주는 기묘한 감정과 정서들을 전혀 담아낼 수 없다. 그것은 영화 속에 한 번 푹 담가져야 이해할 수 있는 감정들이다.

 

사람의 감정은 복합적이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감정은 때로는 그를 너무나 사랑한다는 엉뚱한 표현이기도 하다. <무뢰한>이 그렇다. 여기 등장하는 형사 재곤(김남길)과 범죄자의 여자 혜경(전도연)은 마치 마음의 문을 누군가 들어올까 무섭다는 듯 꼭꼭 닫아 잠근 채 살아가는 이들이다. 그들의 삶은 그래서 사적인 감정들은 사라지고 오로지 직업적인 모습들로만 표현되는 삶이다. 재곤은 그 지긋지긋해보이는 형사질로서만 자신을 드러내고, 혜경은 범죄자의 여자로서 때론 퇴폐적이고 때론 아련해 보이는 단란주점 마담으로서만 존재를 보인다.

 

그런데 이런 남녀가 만나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적 감정을 느끼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진짜 속내는 저 밑으로 꾹꾹 눌러놓고 괜스레 주변만 빙빙 돌며 서성대는 재곤은 그래서 그것이 사랑의 설렘 때문인지 아니면 형사로서 그녀를 예의주시하는 직업적 태도 때문인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대사도 거의 없거나 몇 마디 툭툭 던지는 것으로 끝내는 이 인물은 그래서 영화의 끝까지 진심을 들여다보기가 어렵다.

 

이것은 혜경도 마찬가지다. 고통 속에 살아가면서도 그것을 내면화하고 절대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인물이 바로 그녀다. 그녀에게는 심지어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가 낯설다. 그런 그녀에게 재곤이 불쑥 들어온다. 그런데 그것이 사랑인지 일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사랑처럼 보였던 것이 금세 그걸 뒤집어버리는 재곤의 허허로운 거짓말로 가려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녀 역시 드러냈던 진실을 숨겨버리고 본래 가면의 그녀로 돌아가버린다.

 

그래서 이들의 만남과 사랑은 전혀 지금까지 우리가 멜로에서 봐왔던 그런 장면들을 보여주지 않는다. <무뢰한>이 한 편의 하드 보일드한 스릴러나 형사물처럼 여겨지는 건 그래서다. 하지만 이 영화가 이처럼 형사물의 태도를 취하고 있는 건 저 두 남녀가 사랑에 대해 취하고 있는 태도 때문이다. 그들은 그렇게 표현하지 않고, 어떤 면에서는 표현할 수 없는 삶 속에 갇혀 있다.

 

이것은 <무뢰한>이란 영화가 식상한 멜로로 흐르지 않고 어떤 여운을 남기는 이유다. 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결국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들이 보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처한 극한 상황이 아닐 뿐, 우리 역시 철저히 일을 위한 가면을 쓴 채 일터로 나간다. 그리고 지금 현재 우리가 처한 일터란 칼과 주먹만 안 들었을 뿐 저 <무뢰한>들의 세상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 곳은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곳이란 점에서 비슷하다.

 

어쩌면 그래서 <무뢰한>은 더 이 시대에 현실적인 사랑처럼 다가온다. 그것은 허공으로 몇 센티씩 붕붕 떠오르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 저 밑으로 자꾸만 내동댕이처지는 바닥의 사랑이다. 그들이 감정을 잔뜩 숨긴 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고통을 참아내려는 얼굴들이 못내 마음을 쿡쿡 찌른다. 그리고 그 끝에는 어떤 공감과 각성이 생겨난다. 우리 역시 <무뢰한>들의 세상에 살고 있다.

 

막장드라마들 속 <참 좋은 시절>의 가치

 

착한 여잔 나쁜 남잘 좋아해 왜. 나쁜 남잔 나쁜 여잘 좋아해 왜. 그래서 난 너를 이렇게 사랑해. 근데 너는 이런 내 맘을 몰라 왜.’ 최근 발표된 2NE1착한 여자라는 곡이다. 노래가 말해주듯이 요즘 착하다는 것은 어딘지 시대에 뒤떨어진 듯한 느낌을 준다. 차라리 나쁘다는 것이 쿨하고 세련된 듯한 인상마저 풍긴다. 한때 권선징악이라는 말이 줄곧 시대의 거역할 수 없는 가치로 세워지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시대가 변해도 너무 변했다.

 

드라마 속에서도 착한 남자보다는 나쁜 남자에 대한 열광이 더 두드러진다. <학교 2013>에서 이종석만큼 주목을 끈 김우빈은 나쁜 남자의 전형적인 매력을 보여주었다. 반항아의 이미지를 가진 그는 무언가 꽉 막혀 있는 듯한 세상에 대한 속 시원한 울분 같은 걸 보여준다. 김우빈의 나쁜 남자 이미지는 <상속자들>을 통해서 그 매력을 폭발시켰다. 최근 <사남일녀> 같은 가족 버라이어티에 출연하고 있는 김우빈은 오히려 이 나쁜 남자 이미지로 고정되는 자신을 부담으로까지 느끼고 있는 듯 보인다.

 

사실 나쁜 남자라고 표현되지만 이들이 진짜 악역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나쁘게 행동하고는 있지만 속내는 상처받은 착한 영혼이 있기 마련이다. 또한 나쁘다는 건 캐릭터의 능력과도 연관되어 있다. <파스타>의 이선균이나 <나쁜 남자>의 김남길처럼 재력이든 능력이든 있는 이들이기 때문에 심지어 나쁘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쁘게 행동해도 멋있게 보일 수 있는 것. 즉 나쁘다는 건 성공한 자, 혹은 가진 자의 자신감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그 실체가 무엇이든 선의 가치가 구닥다리로 치부되는 세상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일까. 이른바 착한 드라마들은 독하디 독한 막장드라마들의 홍수 속에서 점점 찾아보기 힘든 드라마가 되어가고 있다. KBS의 새 주말극 <참 좋은 시절>에 대해 낯설다는 반응이 나오는 건 거꾸로 지금껏 우리가 얼마나 독한 드라마들에 중독되어 왔는가를 말해준다. 이전 동시간대 드라마였던 <왕가네 식구들>은 그 자극적인 설정과 전개 때문에 막장 논란이 쏟아져 나오면서도 꽤 높은 시청률을 가져갔다. <왕가네 식구들>의 자극에 익숙한 시청자들은 그래서 <참 좋은 시절>의 이 착함이 너무 밋밋하다고 여겨질 지도 모를 일이다.

 

남편의 세컨드와 함께 가족을 이뤄 생활하면서도 싸우기는커녕 서로를 챙겨주기 바쁜 며느리와, 권위라고는 손톱만큼 발견하기 어려운 자애롭다 못해 연민마저 느껴지는 시아버지, 자신처럼 살지 말라며 이 집에 맡긴 아들을 도련님이라고 부르며 사는 여인이나, 어찌해 갖게 된 아이들을 제 자식이라 못하고 동생이라 부르며 사는 그 여인의 아들 또한 그 밑바탕에는 따뜻한 사람 냄새가 느껴진다. <오로라 공주>처럼 툭하면 작가의 손에 의해 인물이 죽어나가는 드라마와는 정반대다. <참 좋은 시절>에는 인물 하나하나에 대한 작가의 따스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 작품을 쓴 이경희 작가의 전작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였다. 이미 <고맙습니다> 같은 작품을 통해 보여준 것처럼 이경희 작가는 선의 가치를 믿게 만드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는 마치 세상에 매력적인 착한 남자는 없다는 세태와의 정면대결을 벌이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참 좋은 시절> 역시 마찬가지다. 주말극이고 일일극이고 할 것 없이 막장이 창궐하며 선의 가치보다는 악의 가치를 세련됨의 상징이나 되듯이 보여주는 요즘의 세태에 이 드라마는 어딘지 투박해보여도 정감이 가는 참 좋음의 가치를 새삼 드러내준다. 선하다는 건 진정 한물 간 가치가 아니다. 다만 난무하는 자극이 우리를 둔감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상어>, 복수극과 멜로 사이에서 길 잃었나

 

박찬홍 감독에 김지우 작가. 드라마를 좀 봤다 싶은 시청자들에게 이 이름은 각별할 것이다. <부활>과 <마왕>이라는 이들의 전작이 갖고 있는 아우라가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이들 작품들은 시청률은 상대적으로 낮았지만 모두 웰 메이드 드라마라는 호평을 받았다. 심지어 당시로서는 너무 앞서가 보였던 꽉 짜인 스토리 전개를 시청률이 따라오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상어(사진출처:KBS)'

<상어>는 이들의 아우라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작품이다. 시작 전부터 김남길과 손예진의 합류로 기대감을 한껏 모았던 것도 전작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여기에는 부정적인 영향도 존재한다. 그것은 전작들이 폭넓은 대중성을 확보하지는 못했다는 점. 따라서 마니아 드라마처럼 여겨지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시청률은 안 나와도 호평은 받는.

 

하지만 <상어>가 과연 마니아 드라마일까. 아마도 1,2년 전만 해도 그런 호칭을 받았을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이미 <추적자> 같은 작품이 복수극과 사회극의 접점으로써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싸인> 같은 작품 역시 형사물이나 스릴러는 드라마로서 성공할 수 없다는 편견을 뒤집은 바 있다. 그렇다면 <상어>는 이들 작품과 비교해 과연 웰 메이드라 말할 수 있을까.

 

<상어>의 이야기 구조는 <추적자>와 유사하다. 불편한 진실에 대한 접근방식이 그렇고, 복수극이라는 장르적 틀을 갖고 있는 것이 그렇다. <상어>가 결국 하려는 이야기는 ‘과거사’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장 오현식(정원중)이 진실을 위해 과거를 파헤치려는 검사 며느리 해우(손예진)에게 “묻어둬. 과거란 들출 때만 존재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은 이 작품의 메시지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즉 이 드라마는 우리의 근대사로부터 지금까지 남아있는 뿌리 깊은 과거사 청산의 문제를 한 가족사를 통해 그려내고 있다. 가야호텔그룹 회장인 조상득(이정길)은 그 과거사를 덮으려 하는 인물이고 그 과정에서 이수(김남길)와 가족은 죽음으로 내몰린다. 조상득의 손녀 딸인 해우는 조상득의 과거사와 연관된 오현식의 아들 준영(하석진)과 결혼함으로써 복잡한 가족 내의 숨겨진 갈등이 생겨난다. 기성세대들은 과거사를 덮으려하고 이수를 여전히 잊지 못하는 그의 친구(이자 여전히 연인)들은 그 과거의 진실을 파헤치려한다.

 

그리 복잡한 이야기도 아니고 어려운 이야기도 아니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전작과는 달리 주제의식을 향해 달려가기보다는 드라마의 대중적인 코드들에 더 충실해졌다. 이수가 돌아왔지만 본격적인 복수극이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얼굴을 몰라보는 이수와 해우 사이의 안타까운 멜로나, 이수와 준영 사이의 우정 또는 이수와 관계된 과거 인물들(동생, 친구 등)과의 만남 등에서 머뭇대고 있는 건 그 헤어진 이들이 다시 만나는 시퀀스들이 전형적인 드라마들의 성공방정식이기 때문이다.

 

물론 <상어>의 연출력은 ‘웰 메이드’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만큼 단단하다. 또 이를 연기하는 김남길이나 손예진의 호연 또한 볼만하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스토리는 어딘지 너무 지지부진하게 여겨진다. 이수의 말 한 마디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해우로 하여금 과거의 그를 떠올리게 하고 그녀를 뒤흔드는 시퀀스들은 너무 반복되면서 지루해져버렸다. 이 드라마는 물론 과거의 불편한 문제를 다시 들춰내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드라마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건 어딘지 정체된 느낌을 만들어낸다.

 

<상어>는 멜로와 복수극이 얽혀있는 드라마다. 복수극이 드라마의 속도감을 만들어낸다면 멜로는 감정을 덧붙인다. 이 두 가지가 잘 엮어진다면 그 힘은 의외로 강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상어>는 멜로의 늪에 빠져 복수극이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진실을 파헤쳐야할 검사 해우의 혼돈과 방황에 드라마가 머물러 있는 셈이다.

 

이수의 복수극은 물론 여타의 복수극과는 다르다. 그것은 해우의 눈을 통해 자신의 가족사에 얽혀 있는 불편한 과거사를 들여다보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우를 사랑하는 이수 역시 복수와 사랑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 진실을 그녀 앞에 내놓으면서도 “도망치라!”고 분열되는 것. 이것은 마치 그리스 비극을 보는 것 같은 비장미를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감정에 드라마가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은 이 좋은 설정마저 지루하게 만들 수 있다.

 

“상어는 부레가 없어. 살기 위해선 끊임없이 움직여야 된대.” 이것은 이수가 처한, 진실을 밝혀야만 비로소 자신의 존재가 의미 있어지는 상황을 에둘러 말하는 것일 게다. 해우는 상어 조각을 만들어 이수에게 주면서 “눈에 보이진 않지만 부레도 만들어 줬어. 언제나 편안하게 숨 쉴 수 있게 하려고...”라고 말한다. 이것은 이수에 대한 해우의 사랑을 담고 있다. <상어>가 더 속도감이 있어지려면 안타까워도 해우가 달려 하는 부레를 떼어내야 한다. 그래야 끊임없이 움직일 수 있다. 상어처럼.

표절, 폭행, 거짓말... 연예계 끝없는 사건사고, 왜?

이건 우연히 겹쳐서 일어나는 악재일 뿐일까. 연예계가 휘청하고 있다. 거의 한 주가 멀다하고 사건사고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연예계.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혹자들은 이것이 인터넷 같은 매체가 양산해내는 소문 탓으로 돌린다. 과거라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을 일들이 이제 낱낱이 드러나 문제가 되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환경이 그렇게 바뀌었다고 해서 문제가 문제가 아닌 것은 아니다.

가요계의 고질병인 표절에 대한 무신경함은 현 대중문화에서의 키워드가 된 이효리를 통해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한 앨범에 무려 여섯 곡이 표절. 물론 이효리는 자신도 피해자라고 밝혔지만 과거라면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티스트의 도의적 책임으로 한 동안은 자숙의 기간을 가져야 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거의 쏟아져 나온 표절 논란으로 표절에 대한 예방주사를 잔뜩 맞아온 탓인지, 여기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별로 없어 보인다. 차질 없는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그 자체보다 이런 불감증이 더 심각해 보인다.

한창 잘 나가던 배우를 단 한 순간에 추락시켜버린 최철호의 폭행 사건도 마찬가지다. 음주 후 자제력을 잃고 벌어진 사건이라지만, 그 사건 자체보다 더 상황을 어렵게 만든 것은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 했던 거짓말이다. 실수는 누구나 저지를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 실수를 덮기 위한 고의적인 거짓말은 당사자에 대한 신뢰 자체를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뭐든 유리병처럼 투명하게 비치는 세상 속에서 언젠가는 드러날 거짓말을 그는 왜 했을까.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MC몽의 병역기피 의혹이나 타블로의 학력 의혹 역시 그저 인터넷이라는 환경이 만들어낸 구설수라고 치부하기는 어렵다. 만일 그것이 그저 구설수라면 왜 당사자들은 속 시원히 의혹을 걷어내려 하지 않을까. 병역문제나 국적문제가 특히 뜨겁게 되는 것은 그것이 담고 있는 함의가 대중들의 마음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대중문화에 종사하는 이들로서 그 마음을 헤아리고 확실한 진실을 제대로 드러내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드라마를 찍는 중간에 갑자기 군 입대를 발표하는 상황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지난 5월 갑작스럽게 군 입대 발표를 한 이준기는 당시 영화 '그랑프리'와 SBS 드라마 '신의'에 캐스팅된 상태였다. 최근 '나쁜 남자'에 출연하고 있는 김남길은 입대 3일 전인 12일 군입대를 발표했다. 이로써 드라마는 애초 20부작에서 17회로 조기종영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물론 소속사측은 본래 16부작이었으며 오히려 1회 연장된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그 과정이 석연찮은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연예인의 개인적인 과욕이 드라마나 영화 자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잘 말해주는 사례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대중들에게 전가된다.

물론 모든 연예인들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대중문화라는 영역을 넘어서 사회에까지 귀감이 되는 행동을 보여주는 연예인들도 많다. 그렇다고 대중들이 이들에게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기본적인 것을 지켜달라는 것뿐이다. 아티스트로서 표절하지 말라는 것이고, 표절을 했다면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며, 사건을 저질렀다면 솔직하게 인정하고 잘못을 빌라는 것이고, 군대에 가는 시점이 되면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군대를 가라는 얘기다. 하지만 작금의 연예계는 이런 기본적인 것이 기본이 아닌 것이 된 느낌이다.

'나쁜 남자'의 김남길, '동이'의 한효주

사극과 현대극의 연기는 다를 수밖에 없다.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극을 연기하던 배우가 사극 속으로 들어갔을 때 부담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반대로 사극 속에서 강력한 캐릭터 이미지를 만들어낸 배우가 현대극으로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런 부담감이 무색할 정도로 자연스런 변신을 하는 경우도 있다. '찬란한 유산'에서 사극 '동이'로 간 한효주와 '선덕여왕'에서 '나쁜 남자'로 온 김남길이 그렇다. 어떻게 그들은 현대극과 사극을 그처럼 자연스럽게 오갈 수 있었던 것일까.

먼저 캐릭터를 들여다봐야 그 해답을 알 수 있다. '선덕여왕'의 비밀병기로 등장한 비담이란 캐릭터는 사극 속이지만 지극히 현대적인 캐릭터다. 그는 '선덕여왕' 속 캐릭터들이 하는 것처럼 옛 어투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 캐릭터는 '선덕여왕'이라는 신라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툭 떨어진 현대인처럼 보인다. 이 지극히 현대적인 일상어투를 사용하는 비담은 심지어 공주(장차 여왕이 될) 앞에서도 반말을 한다.

그저 한없이 착하기보다는 욕망에 충실하며 때로는 지독히도 상대방을 아프게도 만드는 이 캐릭터가 갑자기 이 사극이라는 공간 속에 들어왔을 때 대중들이 열광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사극이라면 갖게 되는 그 형식적인 무게를 가볍게 깨버리는 그 파격, 그리고 그 파격 속에 자리한 현대적인 쿨한 감성이 버무려지는 순간, 그는 단번에 이 사극 속 모든 인물들과 대비되는 강력한 존재감의 캐릭터가 된다. '선덕여왕'의 후반부로 가면서 비담이라는 캐릭터가 조금씩 존재감을 상실한 것은 그가 악역으로 변신해서가 아니라, 차츰 사극 속의 인물로 변해가며 그 차별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연기자 김남길은 비담이라는 캐릭터 그 자체의 아우라를 그대로 갖게 되었다. 그의 연기자로서의 이미지가 비담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것은 그만큼 이 캐릭터가 그에게 부여한 힘이 강력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한 '나쁜 남자'. 심건욱은 비담이란 캐릭터의 현대적인 버전처럼 보인다. 어찌 보면 '나쁜 남자'라는 드라마는 저 비담이란 캐릭터의 아우라를 이미지로 보유한 김남길을 위한 드라마처럼 보인다.

시니컬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속을 시원하게 하는 독한 어투나, 독해보이면서도 슬픈 눈은 이 드라마의 주제와도 그대로 닿아있을 정도다. '나쁜 남자'는 속물로 가득한 세상에 슬픈 눈으로 침을 뱉는 남자의 이야기다. 혹자들은 같은 캐릭터의 반복으로 김남길의 이미지 소비를 빠르게 하는 드라마라고 걱정을 했지만, 실제는 상황이 다르다. 김남길은 사극 밖으로 빠져나와, 현대극 속에서도 비담이 가졌던 그 아우라의 영역을 오히려 공고하게 하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전술한 대로 비담이 사극과 현대극을 넘나드는 캐릭터로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한편 '찬란한 유산'의 은성이란 캐릭터는 현대극이지만 지극히 고전적인 캐릭터다. 착하고 맑고 씩씩하며 때론 지독한 상황에 빠져도 좌절하지 않는 전형적인 캐릭터. '찬란한 유산'에서 그녀가 돋보인 것은 그녀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심지어 악마적으로 보이는 현대적 욕망의 화신들과 그녀가 비교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욕망의 시대에 살아남은 지극히 선한 천연기념물처럼 반짝인다.

그런 그녀가 사극 속의 주인공 동이로 분하는 것에서, 어떤 변신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비담이란 현대적인 이미지가 현대극으로 와서 심건욱이란 캐릭터로 자연스러운 것처럼, 은성이란 고전적인 이미지는 사극 속 동이라는 캐릭터로 와서도 자연스럽다. 그녀는 여전히 밝고 맑고 그러면서도 불굴의 의지를 갖고 있는 선한 캐릭터다. 게다가 '동이'라는 사극은 그 인물들의 대사가 이중적이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고어가 사용되지만 일상적인 자리에서는 현대어가 나온다. 이것은 깨방정 숙종(지진희)만이 아니라 동이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사극에서 온 남자, 사극으로 간 여자. 둘 다 새로운 캐릭터로의 변신을 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작이 가진 캐릭터를 보다 공고히 하고 확장하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다. 보통 똑같은 캐릭터가 사극과 현대극을 넘나들 때 흔히 그 어색함이 느껴지기 마련이지만, 이 두 사람의 경우 그 이질감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은 물론 사극과 현대극의 경계가 그만큼 얇아져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만큼 이들 배우들이 갖는 아우라가(옴므파탈의 절정을 보여주는 김남길과 인상녀라는 말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밝은 한효주) 꽤 크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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