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신잡3’, 우리 시대에 맞는 논개 해석이 필요한 까닭

“우리가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논개라는 한 인간의 선택에 대해서 우리가 들어온 이야기가 국가주의 서사라는 거예요. 국가라는 어떤 권위 있는 인간조직을 위해서 한 여인이 국가를 위해서 뭘 한 것과 같이 스토리를 만들어낸 이 서사가 왠지 불편한 거예요.” 

진주에서 펼쳐진 tvN 예능 <알쓸신잡3>에서는 그 지역에서 빼놓을 수 없는 논개 이야기가 화제로 올랐다. 우리에게는 왜장을 껴안고 강물로 뛰어들었다는 기생으로 알려진 이야기. 그래서 진주성의 촉석루에서 보이는 진주교의 다리 밑으로는 논개가 왜장을 껴안을 떼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끼었다는 황동가락지 모양이 조형물로 들어가 있었다.

한 때는 이 논개의 이야기가 마치 국민이라면 누구나 숭앙해야할 애국적 서사로 읽혔던 적이 있었다. 사실 남아있는 사료도 거의 없어 일종의 해석에 의해 이야기가 더해진 논개 서사는 조선시대에는 충효를 하나의 근간으로 보던 유교적 서사로 이야기되었고, 이승만 정권 때부터는 국가주의 서사가 더해졌다. 하지만 이러한 국가주의 서사는 이제 지나간 유물로 여겨진 지 오래다. 그러니 하나의 해석일 뿐이지만 마치 사실 자체인 것으로 받아들이지는 논개의 국가주의 서사가 불편하게 다가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여성이 해야 될 일은 국가를 위해서 하루 종일 밥도 하고 그러면서도 국가를 위해 애국하고 죽을 수 있는 이런 사람 되라는 식의 어떤 국가주의가 이 사건을 다루는 거예요. 저는 언제나 생각하지만 누군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에 대해서는 진실을 외부에서 알기는 거의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아주 복합한 감정상태였을 거고 그런 것을 이제 우리가 와서 지금 21세기 2018년인데 지금 우리가 이 논개를 놓고 다시 애국적 시각, 국가주의 시각으로 볼 것인가? 그건 아닌 거 같아요. 그 진실을 추구하는데 새로운 사실이 없다면 이제 우리 시대의 잣대로 한 인간으로서 그렇게 보는 게 우리의 시각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건 사실 끔찍한 사건이거든요. 이건 아름다운 일도 아니고 멋있는 일도 아니고 한 개인으로 보면 정말 끔찍한 일이에요. 그걸 이제 국가를 걷어내고 봐야할 때가 되지 않았나.”

김상욱 박사는 이 사건을 국가주의가 아닌 한 개인에게 맞춰져 다시금 들여다봐야하지 않겠느냐고 역설했다. 거기에 대해 김영하 작가 역시 똑같이 공감했다. 논개의 이야기는 “국가를 위해서 개인을 희생해야 되는 걸 또 국가를 위해서 아낌없이 몸을 바쳐야 되는 걸 칭송하는 이야기”라는 것. 김영하는 이제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며, 과거 <심청전>은 효녀 이야기로 그려졌을지 모르지만 지금으로 보면 ‘인신매매’ 풍습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논개의 이야기가 현재의 우리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지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국가주의 서사라는 점이고 또 하나는 여성을 바라보는 비뚤어진 시각이 들어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다른 관점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에는 충을 집안에서는 효를 하나의 동일한 근간으로 보는 유교적 사고관에 기반한 관점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후대에 이르러 가부장적 사고관으로 굳어지게 된 이유가 되었다. 국가를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그 사고관은 가족에서는 여성과 아이 같은 약자가 남성과 어른을 위해 희생하는 서사를 정당화했다. 

유시민은 아이에게 <무덤 속의 산삼>이라는 동화책을 읽어주다 반성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딸이 갖은 고생을 해서 산삼을 구해와 아픈 아빠를 구해낸다는 이야기였는데, 그걸 읽어주고 아이에게 “너도 아빠가 아프면 그렇게 해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아이가 너무나 힘들어했다는 것이다. 유시민은 결국 반성하며 “그래 너는 아빠가 아파도 그렇게 할 필요 없어. 아빠가 병원 가면 돼”라고 말했다고 한다. 

농담처럼 들리지만 이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주입된 ‘교훈’이 그걸 그대로 당연히 받아들이게 된 이들에게는 얼마나 큰 고통을 줄 수 있는가를 말해주는 대목이었다. 김영하는 조선시대 사람들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었던 유교적 세계관의 끔찍함을 ‘삼강오륜 행실도’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며느리가 시아버지가 아프면 허벅지살을 베어서 먹이고, 아픈 아버지를 위해 아이를 삶아 먹였다는 식의 “호러가 따로 없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는 것. 

유시민이 “불편하다”고 지목한 논개의 국가주의 서사는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남긴다. 그것은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들어온 많은 이야기들이 사실은 어떤 시대착오적 관점들을 여전히 담고 있음으로써 그 자체로 우리를 억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똑같이 전해져 내려오는 고전의 이야기라도 현재 우리의 시각에 맞게 재해석하고 관점을 새롭게 하는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알쓸신잡3>는 논개를 두고 벌어진 지식수다를 통해 들려주었다.(사진:tvN)

‘알쓸신잡3’, 시에나 캄포광장에서 떠올려진 우리의 포용성 수준

이것이 진정한 <알쓸신잡>의 묘미가 아닐까. 이탈리아 시에나의 캄포광장 이야기가 우리네 공동체 문화 이야기로 옮겨가고, 그 이야기는 포용성 문화가 얼마나 그 지역을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코드가 되는가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 이야기들은 이탈리아의 시에나 캄포광장에서 시작해 우리네 아파트 이야기, 산업혁명 시기의 영국이야기, 인구가 서울에만 집중되는 이유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심지어 음악하던 친구들이 모이던 홍대와 최근 새로운 음악인들의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는 온라인으로까지 옮아간다. 대화를 통한 인식의 확장. 지식들이 겹쳐지면서 생겨나는 깨달음. <알쓸신잡3>가 시에나 캄포광장을 통해 우리의 포용성 수준을 질문하는 대목이 흥미로웠던 이유다. 

이야기는 김진애 교수가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갖고 있다는 시에나의 캄포광장을 다녀온 소감에서 비롯됐다. 마치 미로처럼 펼쳐진 이탈리아 특유의 좁은 골목길들을 헤매다 보면 어느 새 캄포광장에 와 닿아 있게 그 도시가 설계되어 있다는 것. 그러한 공간 설계는 각각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기회들을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탈리아의 골목들은 다니다 보면 조금 넓어지는 공간들이 존재하는데, 그 곳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 역할을 해준다고 한다.

캄포 광장 이야기는 김영하로 하여금 우리네 아파트 문화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왜 그렇게 아파트를 선호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 이유로 김영하는 개인 공간을 인정하지 않고 치고 들어오는 우리네 문화를 지적한다. 유시민 작가는 거기에 더해 우리가 “너무 많은 공동체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개인을 무시하고 관계망을 중시하는” 사회라는 것. 그러면서 캄포 광장이 말해주는 건 “유럽의 공동체”가 “개인주의의 기반 위에 있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이 개인을 무시하는 사회의 문제에서 유시민은 ‘포용성’이 얼마나 그 지역 발전에 중요한 인자인가를 말해주는 이른바 ‘게이 지수(Gay Index)’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어떤 지역의 번창 혹은 몰락에 영향을 미치는 주된 요소’를 연구해 도시들의 순위를 나열해 보니, 그 순서가 게이 지수(도시마다 동성애자의 거주 비율)와 일치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3T이론’이라는 가설로 분석했다. 

도시가 발전하려면 테크놀로지(1T)가 높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재능 있는 사람(탤런트, 2T)이 많이 모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재능 있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이유는 톨러런스(포용성, 3T)라는 것이다. 게이지수가 포용성의 지표가 되는 건, 제일 마지막까지 차별받는 소수집단으로서의 동성애자들까지 별 문제를 느끼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란다. 그런 곳이라면 모든 유형, 모든 종류의 괴짜들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김영하는 실제 그 사례로 지난 몇 십 년 간의 샌프란시스코를 들었다. 미국 5대 밀집지역으로서 성소수자의 상징적 도시이고 동시에 실리콘 밸리가 있는 곳이 그 곳이다. 유시민은 나치 독일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 과학기술에서 완전히 뒤지게 된 이유가 바로 그 포용성이 사라지면서 많은 인재들이 전부 미국으로 빠져나갔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상욱 박사는 그 사례를 19세기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던 이유에서도 찾았다. 당시 영국에 천재들이 많이 나왔는데 출신성분이 미천했던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가난한 집 7형제 중 막내로 태어나 방적기를 발명한 리처드 아크라이트나 빈민가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전기모터를 발명한 마이클 패러데이가 그 사례다. 즉 당시 영국사회는 일을 잘하고 능력이 있으면 성공할 수 있는 사회였다는 것이다. 

<알쓸신잡3>가 시에나의 캄포광장 이야기에서부터 비롯되어 나온 포용성 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다시 우리의 현실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개인을 인정하지 않는 공동체 문화로 인해 똑같은 익명성으로 존재하는 아파트 속으로 숨어들어가는 우리들. 유시민이 말하듯 천만 인구가 서울에 모여사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괴짜들이 이방인이 살 수 있도록 지역이 포용성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그나마 익명성으로 살 수 있는 서울로 모여 든다는 것이다. 

특히 이런 인식의 지평이 아픈 깨달음으로 다가오는 건 김상욱이 얘기한 산업혁명 시기의 영국사회처럼 우리는 “일 잘하고 능력 있으면 성공할 수 있는” 그런 사회일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스펙과 출신으로 미래가 결정되고, 성장의 사다리가 끊겨버린 우리 사회는 언젠가부터 일 잘하고 능력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그런 믿음이 사라져버린 건 아닐까.

이런 문제들은 이야기를 듣다 1990년대 홍대를 떠올린 유희열처럼 우리 사회 어디서나 발견되는 것들이다. 클럽 한두 개였던 당시 홍대에 몇몇 괴짜들이 음악을 시작하면서 실력 없는 친구들도 데뷔할 수 있는 포용성이 만들어지고 이른바 ‘홍대문화’가 생겨났는데, 자본이 들어오면서 클럽들이 사라져갔다는 것. 그런데 최근 들어 다시 괴짜들이 나오고 있는데 그 공간이 이제는 온라인 공간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포용성을 찾기 힘든 우리네 현실(오프라인)의 씁쓸함을 보여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이 대안적으로 찾아낸 온라인 공간이 어째서 최근 들어 우리 사회를 변혁시키는 중요한 공간이 되고 있는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유시민이 적어도 “뭘 하지 말라고 하는 거 좀 안했으면 좋겠다”고 한 말이 속 시원하게 느껴진 건, 포용성 없는 우리네 현실의 갑갑함을 우리가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사진:tvN)

BLOG main image
더키앙
문화 속에 담긴 현실을 모색하는 곳
by 더키앙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4594)
블로거의 시선 (96)
네모난 세상 (4383)
SPECIEL (19)
문화 코드 (1)
생활의 발견 (23)
술술 풀리는 이야기 (4)
스토리로 떠나는 여행 (10)
책으로 세상보기 (8)
문화 깊게 읽기 (4)
스토리스토리 (24)
사진 한 장의 이야기 (4)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다 (7)
대중문화와 마케팅 (9)

달력

«   2018/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13,150,706
  • 749807
textcubeget rss

더키앙

더키앙's Blog is powered by Tistory.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더키앙 [ http://dogguli.tistory.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NM Media